분류없음2012/08/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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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쉴 곳 없을지라도

잘츠부르크는 도시 그 자체만으로도 유럽 최고의 관광지임을 자랑한다.

뮌헨에서 빌린 소형차 ‘폴로’가 아우토반을 달린다.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넘어서면, 얼마 가지 않아 ‘잘츠부르크’라고 쓴 표지판이 나타난다. 오스트리아 A1 고속도로에서 폴로는 웨스트 잘츠부르크 인터체인지로 바로 진입한다. 인터체인지를 나서자마자 반갑게 나타나는 커다란 소문자 ‘i’, 즉 안내소의 간판이 낯선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그런데 가는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안내소 문밖까지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들은 모두 이 엄청난 시즌의 잘츠부르크에서 하룻밤 묵을 방을 배정받기 위해서(안내라기보다는 거의 배정에 가깝다) 기다리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모두들 즐거워야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줄 서서 기다리는 그들 대부분의 표정은 긴장되어 있다.

세계 각지에서 산속의 이 작은 도시까지 찾아온, 나를 비롯한 사람들 모두는 처음부터 잘츠부르크의 거대한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부푼 꿈을 안고 여기까지 왔건만, 오늘 내 몸 하나 누일 방을 구하는 일조차 녹록하지 않은 것이다.

잘츠부르크는 도시 그 자체만으로도 유럽 최고의 관광지임을 자랑한다. 얼마 전 일본에서 있었던 여론 조사에서도 가장 여행하고 싶은 유럽 도시 1위로 잘츠부르크가 선정되었다. 차갑고 맑은 공기, 만년설의 높은 명산들과 푸른 숲, 동화 속 나라처럼 산 위에 늘어선 성채와 첨탑들, 그 가운데로 그림같이 흐르는 강이 있는 소도시……. 그 모습은 어려서부터 우리 머릿속에 있던 유럽 고도古都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과 모차르트의 출생지라는 점은 이곳을 세계 관광객들이 당연히 들러야 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동화적인 일탈을 꿈꾸며 너도나도 몰려드는 것이다.

잘츠부르크는 평소에도 이런 곳인 만큼, 그 유명한 여름 페스티벌이 열릴 때의 혼잡은 당연히 각오해야 한다. 게다가 그해 여름에는 중부 유럽에 닥친 최악의 홍수로 잘츠부르크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아우토반이 침수되었다. 그 바람에 수많은 이탈리아 자동차 탑승자들이 그렇지 않아도 숙박 난으로 악명 높은 잘츠부르크에서 그날 밤을 묵어야 했던 것이다. 안내소를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은 관광객이 아니라 배급을 받으러 온 유랑민들 같았다. 나 역시 데스크의 위대해 보이는 오스트리아 아줌마가 거의 지정해 주다시피 한 호텔 이름을 신주처럼 받아 들고 안도와 감사의 표정으로 안내소를 나섰다.

잘차흐 강가에서 바라보는 잘츠부르크 시내의 아침은 기대로 늘 설렌다.

산 위로 그림 같은 호엔잘츠부르크 성이 보인다.

나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열차로 도착한 사람들의 신세는 더욱 가련했다. 역이 침수되어 열차가 아예 역에 진입하지 못하고 들판 한가운데에 서 있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되고 있었다. 트렁크를 든 할머니들이 열차에서 내려 철도 회사에서 보낸 버스로 힘들게 옮겨 타고 있었다. 자, 오늘 하루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그러나 내일부터는 또다시 티켓과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세계 최고의 페스티벌이 시작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리는 모차르트 하우스의 외관. 현대 음악가들을 조명하는 광고 배너가 눈길을 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리는 모차르트 하우스의 외관. 현대 음악가들을 조명하는 광고 배너가 눈길을 끈다.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매년 여름마다 발행되는 무크지 [페스트슈필레(Festspiele, 페스티벌)]에서는 세계의 많은 음악 페스티벌 중에서 1위의 자리에 단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선정했다. 여기에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명실공히 세계 정상의 종합 음악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이제 100년의 역사를 향해 가고 있다. 그 기원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0년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의 완전한 악보가 발견된 해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잘츠부르크에서 국제 모차르테움 협회가 발족했고, 1877년부터는 모차르트 음악제가 8회에 걸쳐 열렸다. 이것을 모태로 하여 당시 중부 유럽 예술계의 무서운 젊은이들이었던 ‘젊은 빈’ 그룹의 유대인 예술가 리더들, 즉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과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가 함께 ‘매년 여름마다 상설로 열리는 예술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는 이들에게 새로운 페스티벌의 전권을 위임했다. 여기에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가세하여 3명 체제가 되었다.1920년, 드디어 나중에 세계 최고가 될 음악제이자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말처럼 “오스트리아의 새로운 영광”이 된 무대의 첫 막이 올랐던 것이다.

이 페스티벌의 첫 공연은 1920년 8월에 올라갔는데, 오페라가 아니라 호프만슈탈의 연극 〈예더만〉이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 광장인 돔플라츠(Domplatz)에 거대한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무대에 대성당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오후 5시경에 연극 〈예더만〉의 야외 공연을 시작하면서 페스티벌의 막을 올린다. 현재는 세계 음악축제의 대명사가 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지만, 원래는 연극으로 시작된 셈이며, 여전히 호프만슈탈 등의 연극 공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 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4년과 1944년의 두 해를 제외하고는 거른 적이 없이 여름마다 열렸고, 세계 예술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 왔다. 갈수록 페스티벌의 인기가 높아져서 결국 ‘겨울 음악제’와 ‘부활절 음악제’, ‘성령강림절 음악제’에, 심지어 ‘성모승천절 음악제’까지 창설되었다. 게다가 요즘에는 주변에서 ‘록 음악 페스티벌’까지 열리는 형편이니, 이제 잘츠부르크는 그야말로 페스티벌의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라면 당연히 최고 무대인 여름 페스티벌을 일컫는다.

불멸의 두 공로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카라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세계 최고라고 인정받기까지는 불멸의 두 공로자가 있었다. 한 공로자는 사람이 아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 필’)이며, 다른 공로자는 카라얀이다.

유럽의 많은 페스티벌들이 여름에 임시로 편성되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럴 경우 바이로이트나 루체른처럼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조직될 수도 있지만, 팀워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으며 때로는 수준 이하의 오케스트라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거의 한 세기 동안이나 빈 필이 호스트 오케스트라로 참여하여, 이 축제의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해 왔다. 그러므로 빈 필과 함께했던 여러 지휘자들, 즉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부터 클레멘스 크라우스, 브루노 발터, 한스 크나퍼츠부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카를 뵘 등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이끌었던 것이다.

카라얀이 27년을 지낸 그의 생가에는 이제 그의 동상만 홀로 남아 있다.

또 한 명의 공로자는 이곳 잘츠부르크가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 ~1989)이었다.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잘차흐 강변에는 카라얀의 생가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지휘봉을 든 그의 동상이 생가의 작은 마당을 지키고 있다. 카라얀은 1956년부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가장 중요한 주역이었다. 1960년에 그는 이곳에서 축제극장(Festspielhaus)을 열었으며, 그 후 33년간 고향의 음악제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을 이곳에 불러 모은 이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베를린 필’)를 페스티벌에 참여시킨 이도 그였고, 부활절 음악제도 그가 만들었다. 그가 설립했던 축제극장 앞의 광장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플라츠’로 명명되어 영원히 그를 기리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지은 축제극장의 주소는 자랑스럽게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플라츠 1번지다.

호화스러운 오페라의 성찬

지금도 잘츠부르크에는 세계 최고의 음악가들이 모두 모인다. 잘츠부르크 여름 페스티벌은 대략 7월 말에서 시작하여 8월 말까지, 보통 5~6주 정도 계속된다. 한곳에서 한 달 정도의 단기간에 수준 높은 공연들과 대가들을 이렇게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점은 잘츠부르크만의 자랑이다. 곧 다가올 2012년의 경우를 보자.

페스티벌은 역시 연극 〈예더만〉으로 개막 테이프를 끊는다. 아니, 이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오버추어(overture)’라는 콘서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모두 11번의 공연을 하게 되는데, 그 중 첫 번째 것이 하이든의 《천지창조》다. 존 엘리엇 가디너의 지휘에,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와 몬테베르디 합창단의 연주로 개막 전야前夜에 공연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가장 자랑하는 오페라 공연으로는 무려 9개의 작품들이 무대에 오른다. 그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역시 사이먼 래틀 경이 빈 필을 지휘하여 올리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정말 오랜만에 올라가는 《카르멘》에서는 래틀의 오랜 연인이자 예술적 동반자인 메조소프라노 마그달레나 코제나가 주역을 맡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또한 실력과 인기에서 현역 최고의 테너라고 할 수 있는 요나스 카우프만이 호세 역을 맡는다. 푸치니의 《라 보엠》은 대중적인 오페라이지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도리어 잘 상연되지 않는 작품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라 보엠》이 올라가는데, 최고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즉 이 작품에 나오는 두 소프라노의 역할을 현재 최고 인기를 누리는 두 소프라노가 나누어 맡으니, 안나 네트렙코가 미미를, 니노 마차이제가 무제타를 부르는 것이다.

리카르도 샤이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를 지휘하는데, 에밀리 마지, 엘레나 모수크가 나온다. 헨델의 바로크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에는 안드레아스 숄, 체칠리아 바르톨리, 안네소피 폰 오터 등 초호화 멤버가 출연한다. 마크 민코프스키는 이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인기 지휘자인데, 그는 플라시도 도밍고, 주빈 메타 등과 헨델의 《타메를라노》를 공연한다. 그 외에도 윌리엄 크리스티가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양치기 임금님》에는 롤란도 비야손과 에바 메이 등이 나온다.

13개의 오케스트라가 산속에 모이는 이유

이렇듯 화려한 오페라 외에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호스트 오케스트라인 빈 필의 연주가 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빈 필은 보통 5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5명의 지휘자가 각각 자신만의 개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꾸린다. 이번에는 마리스 얀손스가 브람스 교향곡 제1번 등을,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제5번을, 리카르도 무티는 베를리오즈의 《장엄 미사》를, 하인츠 홀리거는 모차르트의 작품 등을, 베르나르드 하이팅크는 브루크너 교향곡 제9번을 지휘한다.

빈 필의 5개 시리즈 외에도 많은 게스트 오케스트라들이 잘츠부르크를 방문하여, 한 달 남짓 동안에는 이 작은 도시가 음악가들로 들끓게 된다.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하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런던 심포니, 프란츠 벨저뫼스트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다니엘 바렌보임의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 리카르도 샤이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다니엘레 가티의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 등의 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이 이 작은 도시에 모인다. 그 외에도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뮤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모차르트 오케스트라, 서동시집(西東詩集) 오케스트라 등 모두 12개의 게스트 오케스트라가 저마다의 연주를 들려준다.

또한 잘츠부르크에서는 많은 리사이틀도 동시다발로 열리는데,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크리스티안 치머만, 머레이 페라이어, 안드라스 시프,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 등이 리사이틀을 열고 성악가로서는 엘리나 가랑차, 마그달레나 코제나, 토마스 크바스토프,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마티아스 괴르네,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호세 카레라스 등이 독창회를 한다.

그 외에도 클라우디오 아바도, 주빈 메타, 대니얼 하딩 등이 각각 지휘하는 ‘오버추어’ 음악회 11편, 낮에 열리는 ‘모차르트 마티네’ 콘서트, 현대 음악 시리즈 11편, 실내악 시리즈 6편 등이 있다. 연극도 많이 공연되며, 젊은 연출가들의 워크숍과 그들의 실제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이렇듯 열거하기에도 숨이 가쁠 정도이며,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수준과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여기저기서 공연이 열리니 일정표를 들고 쫓아다녀야 할 지경이다. 식당이나 호텔마다 입구에 페스티벌의 전체 일정이 포스터로 붙어 있어, 호텔 매니저나 도어맨, 식당 셰프, 웨이터, 심지어 택시 기사들까지 모두 이것을 확인하면서 손님을 모셔야 한다.

공연 예술의 메카, 축제극장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의 축제극장 앞은 관객과 구경꾼들 때문에 축제 분위기가 넘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이 작은 도시의 전역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장소는 역시 구도시 북쪽의 산 아래에 위치한 축제극장이다. 이 축제극장은 1960년대에 카라얀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이 안에 대축제극장, 모차르트 하우스, 펠젠라이트슐레 등 세 공연장이 들어 있고, 그 외에 전시장, 리셉션 룸, 기념품 가게, 페스티벌 본부, 몇 개의 로비까지 갖춰져 있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심장부다. 이 축제극장은 개관 당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현대 건축물이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대축제극장(Groβes Festspielhaus)은 당시 유럽 최고 건축가의 한 사람이었던 오스트리아 출신인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의 디자인이다. 대축제극장은 좌석이 2,200석 안팎으로 그 무대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무대의 좌우 길이가 거의 50미터에 달해 개관 이후부터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넓은 무대로 유명했다. 그리하여 아주 규모가 큰 오페라 공연이나 빈 필 등의 대형 콘서트가 주로 이곳에서 공연된다.

좁은 땅에 극장을 만들다 보니 대지가 부족하여 무대 뒤편은 바위산을 뚫고 그 안으로 들어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대축제극장을 흔히 ‘동굴 극장’이라고 부르지만, 이름처럼 완전히 동굴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규모와 건축적 가치에서 세계적인 수준인 이 극장은 개관 첫 작품으로 카라얀이 지휘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를 공연했다.

이곳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큰 극장 중 하나이지만, 음향은 대단히 뛰어나다. 뒷자리에 앉아도 작은 소리까지 섬세하게 잘 들리며, 앞에 앉아도 전체 균형이 깨지지 않는 훌륭한 곳이다. 황금색 금판(金版) 모양의 막이 이 극장의 상징이다.

대축제극장이 개관하기 전에 사용하던 곳은 소축제극장(Kleines Festspielhaus)이었다. 이곳은 1,300여 석 규모로서, 너무 좁고 열악해서 카라얀이 대축제극장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한동안 대축제극장과 함께 이용되던 소축제극장은 무대 크기에 비해서 무대에서 객석 맨 뒤까지의 길이가 너무 길고 시야도 좋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곳을 부수고 새로운 극장을 건축했으니, 그것이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2006년에 개관한 모차르트 하우스(Haus fur Mozart)다. 이곳은 비록 객석 규모는 작지만 최신 시설에 뛰어난 음향을 구현할 수 있어서, 모차르트나 몬테베르디의 작품같이 상대적으로 음향이 작은 오페라 공연이나 리사이틀 등의 용도로 사용된다. 이곳 로비에서는 세계적인 크리스털 브랜드인 슈바르츠코프 사에서 제공한 수만 개의 크리스털로 만든 모차르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초현대식
시설로 신축한
모차르트 음악원

모차르트 하우스가 개관한 직후에 나는 이곳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보았다. 아르농쿠르가 지휘한 이 공연은 현재 DVD로도 나와 있다. 안나 네트렙코, 도로테아 뢰슈만, 크리스티네 셰퍼,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보 스코브후스 등 세계적인 실력파 성악가들이 함께 노래를 했는데,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때야 비로소 ‘앙상블 오페라’의 매력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실내악이었으며, 그들의 음절 하나 숨소리 하나가 모두 모차르트 하우스를 정갈하게 울려서 모든 관객이 숨도 쉬지 못하고 넋을 잃었다. 내 옆자리에는 70대 오스트리아 비평가가 앉아 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나를 보고는 “이런 《피가로의 결혼》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겁니다”라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참가한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장소는 ‘펠젠라이트슐레(Felsenreitschule)’다. 바위산을 뚫고 만들어진 이곳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노래 경연 장소로 쓰였던 바로 그곳이다. 펠젠라이트슐레는 원래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여름 승마학교로 만들어진 곳으로, 암벽을 파고 만든 60여 개의 아치로 둘러싸여 있으며 말을 타던 가운데 바닥은 노천이다. 1926년 라인하르트가 이곳에서 처음 연극을 올린 뒤부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정례적인 공연장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약 1,500석의 객석이 있는 이곳은 매년 페스티벌 때는 임시로 플라스틱 지붕을 설치하여 공연을 열었다가,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는 지붕을 철거한다.

펠젠라이트슐레의 무대 뒤편은 모두 암벽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의 음향 효과는 뛰어나다. 하지만 일반 극장처럼 잦은 무대 변경이나 다양한 무대 장치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기에 올리는 무대는 단순한 연출을 할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같은 이유로 무대 장치를 자주 변경할 수 없어서, 이곳에서는 한 시즌에 보통 두 개 정도의 공연만 소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그 독특함 때문에 가장 인기 있는 장소다.

지금까지 소개한 세 개의 축제극장들은 모두 같은 건물에 있어 로비를 통해서 이어진다. 특히 펠젠라이트슐레 옆의 직사각형 로비는 명지휘자 이름을 빌려 ‘카를 뵘 잘(Karl Bohm Saal)’이라고 불리며, 대주교의 겨울 승마학교로 쓰였던 유서 깊은 장소다. 뒤쪽에 그대로 드러난 암벽과 천장화, 오래된 인테리어 등은 역사적 가치가 높다. 페스티벌 기간에는 세 축제극장들에서 극장 가이드 투어가 매일 실시되어 극장의 모습과 세트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미리 예약하면 된다.

그 외에도 잘츠부르크 주립극장(Landestheater), 대성당(Dom), 모차르트 음악원 강당, 성 페터 성당, 대주교의 궁전이었던 레지덴츠(Residenz) 등에서도 페스티벌 때 공연이 열린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대성당 앞 광장인 돔플라츠에서는 야외 연극이 공연되는데, 이때 나무로 만든 임시 객석이 설치된다.

잘츠부르크에서는 사냥꾼이 된다

잘츠부르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유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티켓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유명한 공연의 좋은 자리는 대부분 아주 비싸다. 하지만 최근에는 저렴한 자리도 생겼고, 게다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아닌가? 호텔에서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면 결연한 마음으로 시내로 나간다.

매년 이곳 돔플라츠에서 야외 연극 <에더만>이 공연되면서 페스티벌의 막이 오른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도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온라인 판매도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형식적일 뿐이다. 부킹 사이트의 주요 공연은 페스티벌이 열리기 몇 달 전에 이미 ‘매진’으로 나오거나 아예 접속이 되지 않는다. 아주 인기 없는 공연이 아니라면 봄 이후에는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원하는 티켓이 보이지 않거나 보이더라도 클릭이 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온라인 판매는 보통 전해의 11월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꼭 원하는 공연의 티켓을 구해 페스티벌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11월부터 거의 매일, 적어도 3~4일에 한 번은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야 한다. 인기 있는 공연은 12~1월 정도에 매진되는 경우가 많으며, 어지간한 공연도 3~4월이면 거의 다 팔린다.

이런 현상은 바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가진, 아니 오스트리아가 가진 하나의 문화를 보여 준다. 그들은 마지못해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지만, 결국 좋은 자리는 그들 그룹끼리 나누어 갖는 폐쇄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 내부의 주요 회원이나 후원자가 아니라면 좋은 공연의 좋은 자리에는 접근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비판만 할 수는 없다. 그들이 90여 년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이끌어 왔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의 사정이 이러하므로, 온라인 예매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 현지에서 티켓을 구하는 방법을 재미로 알아보자. 일단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플라츠에 있는 매표소를 찾아간다. 거기서는 티켓 판매 상황을 친절하게 안내 받을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은 매진이라고 말하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구할 수 없었던 많은 티켓들을 의외로 그곳에서 구할 수 있어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그동안에 반환된 표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공식 매표소에서 전체 스케줄을 보고 원하는 티켓 리스트를 정리하고 나면, 다음에는 거리로 나선다. 이때부터 진정한 마니아의 준엄한 사냥 행로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냥개와 같은 촉각을 세우고 일단 길 건너 축제극장으로 간다.

거기로 가면 전 세계에서 몰려온 우리의 선배들이 이미 ‘티켓 구함(Suche Karte)’이라고 독일어로 쓴 팻말을 들고 서 있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미국 부인은 아침부터 드레스를 입고 나와 있는데(언제 표가 생길지 모르니), ‘티켓 구함’이라는 글자를 아예 드레스 앞뒤에 꿰매 붙이고 있다. 일단 그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그날의 티켓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한다. 그들과 안면을 트는 것은 누가 나의 편이 되거나 방해꾼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날이 요나스 카우프만이나 안나 네트렙코가 나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분위기가 좀 험악하다.

극장 앞에서는 공연 직전에 티켓을 구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하루 중 언제 티켓이 나올지 모르므로, 시내 관광 같은 것은 애당초 포기한 채 종일 그곳을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공연을 보지 못하는 잘츠부르크란 그들에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노 티켓, 노 투어!” 여기는 잘츠부르크다.

그 다음 방법은 시내의 거리로 가는 것이다. 잘 관찰하면서 다녀 보면 생각보다 많은 곳에 ‘티켓 있음’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이런 곳들은 소위 허가를 낸 암표상들이 있는 곳이다. 만일 가격에 구애 받지 않고 특정 공연을 꼭 원한다면 이런 곳에서 승전가를 부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런 가게들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미리 인기 공연의 티켓을 사 두거나, 반환된 티켓을 모아 웃돈을 붙이고 판다. 웃돈은 가게와 공연에 따라 다른데, 15퍼센트, 20퍼센트, 또는 30퍼센트 등 다양하다. 이런 가게들은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잘츠부르크 시에 정식으로 세금까지 내는 등 암묵적으로 합법화되었다.

이 점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잘츠부르크만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게들은 백발머리 할머니가 혼자서 40년 넘게 운영해 온 작은 곳부터, ‘폴처’처럼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추고 컴퓨터 시스템으로 빈은 물론 이탈리아의 베로나 페스티벌 표까지 구해 주는 기업형까지 다양하다. 원하는 티켓이 없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반환된 티켓이 언제 어느 가게에 나올지 모르므로, 공연 당일까지 매일, 심지어 내 경우처럼 주치의가 병동 회진을 돌듯이 두 시간마다 가게들을 순례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 방법은, 암표상들이 양성화된 뒤로는 드물어졌지만 일류 호텔들을 순회하는 것이다. 호텔에서 티켓을 구할 수 있다고? 그렇다. 호텔에서 보유하고 있는 티켓은 보통 도어맨들이 가지고 있는데 그 경로는 세 가지다. 첫째, 자허 호텔 같은 유명 호텔에서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이나 음악가들이 묵고 있는데, 그 음악가들에게서 티켓이 나오는 것이다. 둘째, 이런 고급 호텔에서 묵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연로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 여기까지 왔지만 긴 여행이나 더운 여름 날씨 때문에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서 콘서트를 포기하는 일이 생긴다. 이때 도어맨들에게 티켓을 처분해 달라고 맡기는 것이다. 셋째는 도어맨들이 부수입을 위해 아르바이트로 미리 티켓을 구해 놓는 것이다. 그러니 꼭 티켓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안내원이나 도어맨에게 미리 부탁을 해 놓거나 자신의 명함이나 연락처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 이렇게 해서도 아직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면, 일단 숙소로 돌아가자. 아직 낙담하기는 이르다. 좀 쉬었다가 비장한 마음으로 정장을 갈아입고 개막 1시간 전까지 축제극장으로 향한다. 형편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더 일찍 가도 좋다. 그리고 역시 ‘티켓 구함’이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는 것이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서……. 지난 10년간 나의 잘츠부르크 전적은 백전무패(百戰無敗)였다.

더 전위적으로, 더 근본적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가장 비중이 큰 장르는 오페라다. 물론 빈 필을 중심으로 하는 콘서트나 세계적인 솔리스트들의 리사이틀도 훌륭하다. 하지만 오페라가 페스티벌의 중심에 있는 것은 잘츠부르크 초기부터의 전통이었으며, 그것은 카라얀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카라얀은 잘츠부르크 무대에서 세계적인 오페라 스타들을 모아서 항상 최선의 드림팀을 구성했으며, 그중 수많은 실황 녹음들이 지금도 명반의 반열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잘츠부르크의 오페라 무대는 세계 각지의 젊은 성악가들이 세계무대에 선을 보이는 회심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 동안 아그네스 발차, 안나 토모바 신토브, 체칠리아 바르톨리, 안나 네트렙코, 니노 마차이제 등 많은 신인들이 이 무대를 통해 세계의 팬들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다. 그래서 지금도 해마다 세계 음반사들의 스카우터들이 모두 이곳에 몰려들어 신진 음악가들에게 눈과 귀를 집중하고 있다.

2002년에 공연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는 지금도 회자된다. 잘츠부르크에서는 거의 매년 《돈 조반니》를 주 공연으로 올리고 있는데, 근년에 새뮤얼 래미, 브린 터펠,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등이 연이어 주인공을 맡아 관심이 고조되었다. 2002년에는 그 중에서도 최고의 관심을 끌었던 토머스 햄슨이 돈 조반니 역을 맡았다.

그 해의 《돈 조반니》는 유명 란제리 회사인 팔머스의 협찬을 받아 미리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연출가 마르틴 쿠세이는 의상을 맡은 하이데 카스틀러와 함께 오페라 내내 거의 모든 여성 출연자들이 팔머스 스타킹, 특히 팬티 스타킹만 입고 연기하게끔 했다. 그야말로 란제리 쇼를 방불케 해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어쨌든 마르틴 체헤드그루버의 미니멀리즘적인 무대는 완전히 새롭고 뛰어났다. 그는 대축제극장의 거대한 무대를 커다란 회전목마 장치와 흡사한 원형 무대로 만들었다. 주인공 돈 조반니는 원통이 회전하는 것에 맞춰서 여러 방을 옮겨 다니면서 다양한 엽색 행각을 펼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충격적인 장면은 돈 조반니가 버렸던 과거의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는 부분이었다. 나이 든 여성 합창 단원들이 모두 스타킹만 신은 반라 상태로 돈 조반니를 둘러싸는 장면인데, 야하다기보다는 숙연할 정도였다. 햄슨의 열창에 관객들은 열광했으며, 다음 공연에서는 돈 조반니 역을 예약했지만 여기서는 레포렐로를 맡은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역시 햄슨에 못지않은 멋진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 외에도 돈나 안나 역에 연약하고 귀여운 새 캐릭터를 부여한 러시아의 신진 소프라노인 안나 네트렙코(이것이 그녀의 잘츠부르크 데뷔 무대였다), 체를리나 역을 맡은 체코의 메조소프라노 마그달레나 코제나 등이 큰 박수를 받았다.

음악적으로 더욱 관심이 높았던 공연은 푸치니의 《투란도트》였다. 사실 푸치니는 《투란도트》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사망했고, 나머지 부분을 그의 후배인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시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동안 아무런 이의 없이 푸치니의 작품이라며 이 오페라를 들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탈리아의 현대 음악 작곡가인 루치아노 베리오가 새로운 《투란도트》를 완성했다. 푸치니가 미완성한 부분을 완전히 새롭게 작곡한 것인데, 암스테르담 등 몇 곳에서 이미 시연한 바 있었다. 그런데 2002년에 잘츠부르크는 과감하게 이 새 악보를 선택했던 것이다. 언론들은 이 악보를 “피아니시모로 끝나는 《투란도트》”라며 대서특필했다.

새 무대의 지휘는 마린스키 극장의 감독인 발레리 게르기예프, 연출은 현대적인 해석을 대표하는 연출가 데이비드 파운트니가 맡았다. 파운트니의 연출은 베리오의 악보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1막부터 작동하는 기계들이 난무하는 무대는 인간성을 상실하고 기계화된 현대 사회를 반영했다. 천상에서 군림하는 투란도트 공주는 사랑과 연민과는 거리가 먼 냉혈인이다. 하지만 류가 연인 칼라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가슴을 가위로 찌르자, 공주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그녀의 두꺼운 비단옷이 벗겨진다. 공주는 류가 서 있는 맨땅 위에서 류와 같은 평상복을 입고 선다. 류의 죽음으로 사랑의 위대함을 체험한 공주는 종로나 명동 같은 거리에서 필부필부匹夫匹婦들 사이에 섞여 칼라프를 찾는다. 공주와 칼라프뿐 아니라 무대 위 백여 명의 출연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짝을 찾고 다함께 조용히 포옹한다. 알파노가 썼던 작위적인 2중창이나 거대한 피날레 같은 것은 없다. 모두들 자신의 사랑을 찾고 고요한 안식을 얻을 뿐이다. 모든 이들이 ‘피아니시모’로 사랑의 품에서 인간성을 찾을 때, 역사적인 새 오페라의 막은 조용히 내려왔다.

모차르트를 기념했던 특별한 그 해 여름

잘츠부르크가 대중적으로 더 유명해진 시기는 2006년 시즌을 거치면서다. 2006년은 이 도시 출신의 위대한 음악가로, 흔히 잘츠부르크와 동격으로 생각되는 모차르트의 탄생 25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에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최고이자 최대 프로그램이 공연되었다. 즉, 모차르트가 무대를 위해 작곡한 음악 22곡을 모두 한 시즌에 상연하는 대대적인 프로젝트가 거행된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세계 정상급의 모차르트 지휘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리하여 주요 오페라의 경우에는 지휘자가 각각 달라져서 마치 모차르트 오페라 올림픽을 방불케 했다. 연출 역시 유럽에서 가장 각광받는 전위적인 연출가들이 각각의 작품들을 맡아서, 잘츠부르크를 찾는 전 세계 모차르트 팬들을 새로운 감흥에 휩싸이게 했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으며, 22개의 작품 모두가 DVD로 만들어져서 기록으로 남았다. 그 후로 모차르트 오페라 전곡을 ‘M22’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것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그렇게 정리했기 때문이다. 5주 동안 잘츠부르크의 도시 전역, 10여 개의 장소에서 모차르트 오페라들이 동시에 공연되었으며, 이 공연을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주역급 가수들만 무려 170명에 이르는 축제 중의 축제가 펼쳐졌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길을 가다가 부딪치는 사람이 다 성악가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피가로의 결혼》, 《마술 피리》, 《폰토 왕 미트리다테》, 《후궁 탈출》 등은 그해 잘츠부르크가 탄생시킨 역사적인 명연으로 남아 있다.

카페의 도시 잘츠부르크

카라얀이 자주 들렸던 카페 토마젤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넘쳐난다.

잘츠부르크도 오스트리아의 도시인 만큼, 카페의 도시 빈처럼 좋은 카페들이 많다. 그곳에서는 공연과 공연 사이의 한낮에 편히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향기로운 커피와 빈풍의 케이크를 즐기면서 한때를 보낼 수도 있다.

잘츠부르크의 카페를 순방하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유서 깊은 카페 네 곳을 소개한다. 잘츠부르크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는 여러분만의 시간을 가져 보기를….

가장 유명한 카페는 ‘토마젤리’다. 카라얀도 자주 들러서 페스티벌 관계자들과 의논을 하곤 했던 곳인데, 지금도 운이 좋으면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바로 옆에서 만날 수 있다. 토마젤리는 크리스털로 된 샹들리에와 대리석 테이블, 가죽 소파, 나무 봉으로 철한 신문 등 빈 카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건너편 정원에 있는 야외 테이블들도 이곳 토마젤리에서 함께 운영하고 있다. 흰색에 초록색 줄무늬의 차양이 토마젤리의 상징이다.

다음으로는 토마젤리 맞은편에 있는 카페 ‘퓌르스트’가 유명하다. 잘츠부르크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흔히 ‘모차르트 초콜릿’이라고 불리는 빨갛고 노란 포장지에 싼 과자를 마구 산다. 이것은 관광객을 겨냥한 관광용 상품으로, ‘모차르트 초콜릿’이라는 이름도 사실은 정체불명이다. 진짜 잘츠부르크 초콜릿은 바로 파란색과 은색 포장지의 것인데, 이름은 ‘모차르트쿠겔’이다. 퓌르스트는 모차르트쿠겔을 처음 만들어 낸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당시 특허를 내는 일을 미처 하지 못해, 모차르트쿠겔의 유사품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진짜 잘츠부르크 시민들은 퓌르스트를 찾아와서 한 잔의 커피와 과자의 여유를 즐긴다.

강 건너편에 있는 커다랗고 흰 건물이 유명한 자허 호텔이다. 이 호텔 1층에 있는 카페가 카페 자허로, 빈에 있는 동명 카페의 지점인 셈이다. 커피와 더불어 ‘자허 토르테’란 케이크가 널리 알려져 있다. 조용하고 우아한 장소다.

잘츠부르크 시내 한가운데를 흐르는 잘차흐 강가에는 자허 호텔 옆으로 신고전주의와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인상적인 건물이 서 있는데, 바로 카페 ‘바자르’다. 바자르는 잘츠부르크 최고의 카페로서, 그들의 고집과 우아함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강 건너의 토마젤리가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했다면, 바자르는 잘츠부르크 시민들의 휴식처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토마젤리를 가라고 권해 놓고는 혼자서 바자르로 향하기도 한다. 바자르에서 커피를 시켜 놓고 책을 읽는 것이 잘츠부르크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라고 생각한다. 아, 비밀을 말해 버렸다.

매일 아침 스타가 탄생하는 곳

해마다 거의 거르지 않고 잘츠부르크에 간 지 어언 10년, 이제 나는 비행기를 타고 바로 잘츠부르크로 들어가곤 한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갈아탄 오스트리아 항공 비행기는 저녁 늦게야 이름도 멋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공항에 안착한다.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니, 나를 기다리던 자동차가 보인다. 차에 오르니 기사가 인사를 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중요한 후원사인 한 자동차 회사에서는 시즌마다 자사의 최신형 자동차로 주요 손님들을 실어 나른다. 그리고 그 차들의 운전기사로는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뽑은 대학생들을 채용하는데, 학생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다. 그런데 이번에 나에게 배정된 기사는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다는 여학생이다. 그녀는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는 동안 FM 방송을 청취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바로 그날 공연되던 구노의 오페라 《로메오와 줄리에트》의 프레미어(각 작품의 시즌 첫날 공연)를 중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 인기 높았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테너 롤란도 비야손이 함께 출연한다고 해서 일찌감치 매진되었던 공연이다. 그런데 공연을 준비하던 도중 네트렙코가 임신을 해서, 공연 직전에 줄리에트 역의 가수가 바뀌고 말았다. 그녀를 보기 위해 이미 반년 전부터 티켓을 구입한 전 세계 팬들에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주최 측은 네트렙코를 판 것이 아니라 《로메오와 줄리에트》의 티켓을 판 것이니, 출연자가 바뀐다고 해서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이럴 경우 유럽 명문 극장에서는 대타를 내보내더라도 최소한 대등한 수준의 가수를 투입하는 것이 전통이다.

급히 투입된 소프라노는 당시 25세였던 조지아 출신의 신성新星 니노 마차이제였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잘 부를 수 있을지, 네트렙코의 대역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릴지 무척 궁금했다. 내가 차에 오르자 라디오를 듣던 여학생은 “비야손, 너무 잘 불렀어요!”라고 말한다. 비야손이야 잘 부르겠지. 하지만 나의 관심은 줄리에트다. 나는 “마차이제는 어땠어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오직 비야손의 팬인 듯한 소녀 기사는 우물쭈물하다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한다. 호텔로 가는 자동차 안에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 이어지는 박수 소리만 가득하다.

다음날은 어제에 이어 두 번째로 공연되는 《로메오와 줄리에트》를 보기로 계획한 날이다. 식당으로 내려온 나는 엊저녁에 있었던 《로메오와 줄리에트》 프레미어에 대한 비평을 읽기 위해 조간신문을 펼쳐 든다. 굳이 공연난을 펼칠 것도 없다. 1면에 커다랗게 실린 니노 마차이제의 얼굴, 그리고 그 위에 크게 적힌 기사 제목.

“오페라계의 안젤리나 졸리 탄생!”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이렇게 지금도 매일 아침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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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리궁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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