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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러시아

러시아 상테페테르부르크 : 유럽 도시를 닮으려고 노력한 '북방의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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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인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품이 300만점이고 다 돌아보려면 20㎞를 걸어야 한다. / 백야나라 이현희씨·노랑풍선 강영종씨 제공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은 볼셰비키 혁명 후 시베리아 폐광촌에 감금됐다. 혁명 군대는 백러시아군이 황제를 구하러 접근해오자 1918년 7월 16일 밤 황제 일가를 지하실로 끌고 내려갔다. 간수가 황제를 향해 "너를 총살하겠다"고 외쳤다. 놀란 황제가 "뭐라고?" 묻자 간수는 "이거다!"라며 권총을 쐈다. 황후, 5명의 아들 딸, 그리고 두 명의 시종도 죽임을 당한 후 땅에 묻혔다.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은 1998년 7월 DNA 검사를 거쳐 니콜라이 2세 일가로 확인된 유골들을 상트페테르부르크 페트로파블로프스키 성당 묘지에 안장했다.

지난주 가본 페트로파블로프스키 성당은 로마노프 왕조의 표트르 대제(大帝·1682~1725년 재위)가 세운 요새 안에 있다. 성당 지붕엔 금으로 도금된 높이 122m의 첨탑이 세워져 있다. 요새는 오랫동안 정치범 수용소로 쓰였는데 도스토옙스키는 1849년 이곳 교수대에 섰다가 사형 직전 황제 특사가 달려와 형 집행이 중단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사방이 모두 금칠로 장식된 예카테리나 궁전의 방. / 백야나라 이현희씨·노랑풍선 강영종씨 제공
며칠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돌아보면서 머릿속을 맴돈 의문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호사스러운 도시가 300년간 유지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수탈적(收奪的) 풍요'였을 것이다.

표트르 대제의 딸 엘리자베타는 황위에 오른 후 예카테리나 궁전을 지었다. 모두 55개의 방을 갖추고 있는데 846㎡의 가장 큰 홀을 들어가보니 사방 벽이 모두 금칠로 장식돼 있다. 서재로 썼다는 호박(琥珀·amber) 방은 세 벽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빈틈 하나 없이 호박으로 모자이크 돼 있다. 엘리자베타는 1만3000벌의 옷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35년 이상 매일 한 벌씩 갈아입을 수 있는 만큼이다. 황실과 귀족의 호사로움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과 농노들은 얼마나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페테르부르크의 최대 관광 포인트는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라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이다. 에르미타주를 완공한 예카테리나 2세(1762~1796년 재위)는 에르미타주의 방마다 한 명씩 82명의 남자 첩을 거느리고 살았다고 한다. 에르미타주엔 300만점의 미술·조각품이 전시돼 있다. 거기서 피카소의 '수녀와 창녀', 마티스의 '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 같은 작품을 구경할 수 있었다.

유혈 현장의 구세주 성당의 모습. 내부는 성서의 이야기들을 담은 308점의 모자이크 작품으로 벽면과 천장이 장식돼 있다. / 백야나라 이현희씨·노랑풍선 강영종씨 제공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가 300년 전 세운 계획도시다. 표트르는 페테르부르크 말고는 돌로 건물 짓는 것을 금지한 후 전국의 석공과 석재들을 모아들였다. 갯벌 위에 도시가 지어지는 동안 노역에 동원된 4만명의 포로와 농노가 죽었다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표 건축물인 이삭 성당은 프랑스 건축가 몽페랑이 1818년부터 40년 동안 지었다. 성당의 돌기둥들은 한 덩어리의 바위로 만들어졌는데 기둥 하나가 114t이나 된다. 돌덩어리들은 핀란드에서 배로 운반해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을 닮으려고 노력한 도시다. 곳곳에 성당, 궁전, 박물관, 미술관이 있고 네바강과 운하들을 따라선 유람선들이 오간다. ‘북방의 베네치아’로 불린다. 시가지의 5~8층 건물들은 귀족들 저택이었다. 공산혁명 후 정부가 저택들을 몰수한 뒤 칸막이를 치고 화장실을 설치해서 서민들에게 분배했다. 얼마 전 러시아의 천연가스회사 가스프롬이 시 외곽에 100층이 넘는 빌딩을 지으려다가 유네스코의 반대로 무산됐다. 페테르부르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1811년 지어졌다는 카잔 성당에서 들은 성가(聖歌)도 인상적이었다. 2층 벽면에 테라스처럼 튀어나온, 한 평도 안 돼 보이는 공간에서 5명의 성가대가 반주 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슴이 밑으로 푹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님도 대꾸하듯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구름 속에서 나오는 목소리 같았다. 모스크바가 볼쇼이라면 페테르부르크는 마린스키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라실피드’라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발레는 발이 아니라 팔로 하는 예술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여주인공이 팔과 손의 움직임으로 만들어내는 감정 표현이 그렇게 다양하고 감동적일 줄은 몰랐다.

대한항공이 12월 8일부터 동계시즌으론 처음으로 매주 화·토요일 두 차례 인천공항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직항 노선을 운항할 예정이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수·일요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1588-2001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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