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러시아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 앞 호수. 차이콥스 키는 이곳에서 발레음악‘백조의 호수’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북위 55도에 위치한 모스크바는 1년 중 100일 넘게 비가 오고 70일 넘게 눈이 내린다. 하지만 두 세기 전만 해도 이 잿빛 도시는 푸시킨, 톨스토이, 차이콥스키, 도스토옙스키 등 예술 거장(巨匠)들을 낳았다. 독일 프로이센까지 진출하던 제국의 중심이기도 했다. 공산주의 시기를 거친 오늘날엔 전 세계에서 가장 부자가 많은 도시라 불린다. 지난 3월 미(美) 포브스지(誌불)는 전 세계 억만장자 1011명 중 가장 많은 79명이 모스크바에 산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방문한 모스크바에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다.

◇레닌이 깜짝 놀랄 민영 백화점

구소련에 공산주의를 심었던 레닌이 지금 살아 이 건물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굼(GUM)백화점. 모스크바의 중심지 붉은 광장, 레닌의 시신이 박제가 돼 누워있는 곳의 건너편에 있는 백화점이다.

원래 명칭은 국영백화점(Glavny Universalny Magazin). 단어의 첫 글자만 따서 '굼(GUM)'이라 불렀다. 소련 붕괴 후 1993년 민영화되었지만 명칭은 그대로 '굼백화점'이다. '화려하고 부유한 도시 모스크바'를 상징하는 곳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굼 백화점 내부. 200m가 넘는 통로를 따라 좌우로 세계의 각종 명품 브랜드숍이 늘어서 있다. 빈부 격차가 심한 모스크바에서 이곳은 부유층이 즐겨 찾는 곳이다./오현석 기자 socia@chosun.com
1893년에 지어진 건물은 아케이드 양식이다. 중앙의 분수대에서 좌우로 길이 뻗어 있고, 그 좌우로 3층에 걸쳐 상점이 입점해 있다. 길의 길이만 242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천장은 유리로 만들어 놓아 자연의 빛이 그대로 들어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백화점 내부는 쇼핑하기 적합하다. 수백개의 상점들은 하나하나가 구찌, 샤넬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들이다. 백만장자들이 즐겨 찾는 백화점이라서 그런지 길 한가운데 명품 자동차를 전시해놓기도 했다.

러시아의 현대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아르바트 거리다. 우리로 치면 대학로쯤 되는 젊은이의 거리다.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주고, 악사들이 악기를 연주한다. 최신식 레스토랑과 선물 가게도 즐비하다. 이곳 입구에는 푸시킨이 살던 집과 그의 동상이 있고, 좀더 들어가면 한국계 록 가수 고(故) 빅토르 최를 기리는 벽을 볼 수 있다. 알록달록한 그라피티가 뒤범벅되어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가 빅토르 최에 대한 글과 그림임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빅토르 최는 교통사고로 죽은 지 21년이 지나도 여전히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살아 있다.

아르바트 거리에서 조금 걸어 차이콥스키 국립음악원 근처로 가면 마치 뉴욕과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다. 예술 전공 학생들의 아지트인 이곳의 술집에선 담배를 문 노(老)피아니스트가 하는 즉흥 연주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동·서양 양식 혼합된 고(古) 건축물

러시아의 최첨단이 즐겁더라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옛 건축물들을 보지 않으면 어리석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접점(接點) 러시아에서만 있는 건축 양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크렘린과 붉은 광장에 모여 있는 러시아 정교회 사원들이 눈에 띈다.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던 우즈펜스키성당, 황실 예배당으로 쓰인 블라고베르첸스키사원들은 모두 지붕이 양파 모양으로 돼 있어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이다.

붉은 광장 남쪽의 상크트바실리대성당도 유명한 건축물이다. 알록달록한 색의 이 성당이 친숙하게 느껴진다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보면 된다. 누구나 한 번씩 밤을 지새웠던 PC게임 '테트리스'에 배경으로 나왔던 바로 그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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