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프리카/세이셸

세이셸 : 마라톤?…달리다 힘들면 바로 옆 바다에 `풍덩`

반응형
■ 세이셸, 인도양 섬나라서 마라톤 해봤니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세계적인 초미니 수도 빅토리아와 센트안 해상공원을 한눈에 품을 수 있는 전망대.

'마라톤'을 떠올리면 두 명의 남자가 동시에 떠올랐다. 한 남자는 무라카미 하루키.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마라톤 마니아다. 하와이나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해 직접 달리는 모습을 봤다는 지인의 증언이 있을 정도다. 

또 한 명의 남자는 내 첫사랑. 달리기 중독자였던 그 남자 때문에 옆에 있던 친구에게 운동화를 '빌려' 신고 교내 마라톤 경기에 당일 참여했었다. 주최 측이 참가자 중에 예술대 여학우도 있다며, 마라톤 경기를 취재 온 교내방송 기자에게 나를 들이민 덕분에 나는 졸지에 인터뷰까지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준비 없이 뛰다가 땡볕에서 스타일 구기게 쓰러져(라기보다 앞으로 헤딩했다는 말이 더 정확) 보건실까지 실려가긴 했지만. 

아프리카 대륙, 인도양의 작은 섬 세이셸은 여러 모로 낯선 나라였다. 인구 9만명인 나라에서 국제 육상경기연맹이 공식 인증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는 것도 신기했다. 내국인 2000명, 51개국에서 온 1200명을 포함하여 총 3200여 명이 이 마라톤에 참가하는데, 내게 취재 요청이 들어왔다. 그 얘길 듣자마자 악몽 같은 내 추억이 떠올랐지만, 직접 마라톤을 뛰어보기로 했다. 20여 년 만이었다. 

세이셸로 가는 직항은 예상대로 없었다. '에티하드' 항공을 타고 '아부다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쾌적한 비행 환경에도 불구하고 갈아타고, 기다리고, 도착하는 데 거의 20시간 가까이 걸렸다. 세이셸에 도착했을 때, 우기가 시작된 섬나라 특유의 열기와 습기 때문에 몸이 늘어졌다. 마라톤은 다음날 오전 7시였다. 시차 부적응 상태에서 먼 아프리카까지 날아와 달리다가 졸도해 실려 간다면? 말을 말자. 사전 정보도 얻을 겸, 마중을 나온 관광청 직원에게 마라톤에 참가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노노!'라는 말을 단호하게 반복해 나를 더 공포에 몰아넣었다. 

마라톤 당일, 호텔에서 경기가 열리는 마헤 섬의 보발롱 해변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미 내 등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몸을 풀며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내겐 그것이 꼭 춤처럼 보였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CNN 선정 세계 최고의 해변 으로 꼽힌 라디그 섬 그랑앙스. 화강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마라톤 하면 인간 한계, 의지 극복 같은 말부터 떠올라 엄숙해졌다. 황영조, 이봉주의 빼빼 마른 근육질 몸을 떠올리면 '극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며 마라톤은 딴 세상 얘기처럼 들렸던 거다. 하지만 기록을 경신하거나, 금메달을 따겠다는 마라토너 특유의 집념과 의지는 그곳에 도드라지지 않았다. '세이셸 에코 마라톤 대회'는 꼭 동네 축제처럼 보였다. 세이셸에 사는 동네 아이들이 전부 선물처럼 이곳에 도착해 있는 것 같았다. 원주민과 유럽계의 혼혈인 '크레올' 아이들은 유난히 머리가 동그랗고, 바글거리고, 반짝여서 하루 종일 그 아이들 얼굴만 보고 있어도 지루할 것 같지 않았다. 

마라톤은 4개 경기로 진행됐다. 풀코스·하프 마라톤도 있지만, 5㎞와 10㎞ 마라톤도 있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나는 5㎞를 뛰었다. '질주본능'이 장착된 듯 쭉쭉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거북이를 지킵시다' 같은 문구를 단 티셔츠를 입고 달리는 환경단체 남자도 있었고, 유모차를 밀며 아이와 함께 달리다 걷다 하는 엄마, 몸이 불편한 아이와 함께 달리는 '휠체어 맨'도 있었다. 운동화를 신지 않고도 캥거루처럼 폴짝폴짝 잘만 뛰는 크레올 아이들의 발바닥이 유난히 하얗고 예뻤다. 

기록 갱신이란 말을 머리에서 지워버리자, 눈에 들어오는 게 많아졌다. 마라톤 코스 곳곳에서 열대과일 주스를 팔고 있는 여자들과 부지런히 코를 파고 있는 경찰관이 보였다. 007 시리즈로 유명해진 '이언 플레밍'이 마라톤 코스인 보발롱 해변이 보이는 호텔에 머물며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이곳엔 스프링클러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완주자든 포기자든 더우면 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게 대회 콘셉트란 얘기도 기억났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세이셸의 모제스 무부구아(Moses Mbugua)가 3시간31분18초로 남자 마라톤 1위를 했다. 나와 함께 뛴 한 기자는 5㎞ '아시아 여성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나는 뛰다 걷다를 반복하다가, 해변에 뛰어 들어가는 기행을 저질러 결국 (내 생각에는) 꼴등으로 들어왔다. 휠체어를 탄 남자아이가 나를 앞선 게 기뻤는지, 웃으며 혀를 쏙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완주했다. 금메달도 받고, 마라톤 공식 티셔츠도 받았다. 땀 때문에 젖은 미역줄기처럼 늘어진 머리를 드러낸 채 기념사진도 찍었다. 누구도 이기진 못했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은 기분이었다. 행복은 결국 '다행'이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세상에서 가장 잘 보이고 싶었던 남자 앞에서 졸도하지 않은 게 어디인가. 마라톤과 관련된 내 트라우마는 세이셸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해변과 파도소리에 씻겨 사라져 버렸다. 

▶ 세이셸 여행 100배 즐기는 Tip 

1. 가려면〓두바이나 아부다비, 홍콩을 경유한다. 에미레이트항공이 두바이~세이셸을 주 14회, 에티하드항공은 아부다비~세이셸을 주 14회 운항한다. 세이셸로 갈 때는 13~14시간, 올 때는 12시간 정도 걸린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인도양의 레위니옹이나 모리셔스, 케냐와 에티오피아 등 다른 지역을 한꺼번에 여행하는 것도 좋다(비행기로 2~3시간 내외). 

2. 숙박은〓초특급 프라이빗 리조트부터 게스트하우스까지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비용으로 따지자면 50~6500유로까지, 그야말로 극과 극. 

3. 먹거리〓대표적인 음식은 '크레올식 카레'. 호텔에서의 아침은 대부분 인터내셔널식이다. 커피가 우리 입맛과 다르다. 믹스커피가 요긴할 수 있으니 꼭 준비할 것. 

※취재협조〓세이셸관관청(www.visitseychelles.kr·(02)737-3235) 

[세이셸 = 백영옥 소설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