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방랑자가 뽑은 내 생애 최고의 길 '헨로미치'

ⓒ 김남희
별 준비 없이 가볍게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일본에 빠져 2년 사이 아홉 차례나 드나들었다. 그렇게 북쪽의 홋카이도에서 남쪽의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일본 최고의 걷기 여행 코스들을 찾아 헤맸고, 그중 시코쿠 섬의 불교 성지순례길 1200km를 추천한다. 

‘물집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잠시 부처님께 간구하고 돌아선다. ⓒ 김남희
레플 걷기 여행의 묘미, 무엇이 당신을 걷게 만들었나요?

김남희 삶을 장악하고 있는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으로 느리게 걸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매력 아닐까? 관찰자가 아닌 풍경의 일부가 되어 만나는 모든 것들과 소통도 가능해진다. 또 걷는 동작을 반복하다보면 관계도 생각도 단순 간결해진다는 점. 무엇보다 돈이 안 들고 특별한 기술이나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여행법 아닌가.

1 밤새 내린 가을비로 82번 절 마당이 낙엽에 덮혀 있다. 2 1200km를 걸어 다시 1번 절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본당에서 참배중이다. 2 바다로 이어지는 마을의 강에서 카누 연습 중인 학생들 4 참배 중인 순례자들 ⓒ 김남희
레플 이제껏 걸어본 코스 중 최고를 꼽는다면?

김남희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은 많다. 네팔의 히말라야, 부탄, 카미노데산티아고를 비롯한 스페인, 파키스탄의 훈자, 남미의 파타고니아, 아일랜드·스코틀랜드·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일본의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이란·시리아·요르단·레바논 등 중동 등. 모두 저마다의 매력과 장점을 갖춘 곳이라 딱 하나만 꼽는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꼭 소개하고 싶은 곳은 있다. 바로 일본 시코쿠 섬의 불교 성지순례길이다.

홍법대사가 입적한 고야산의 대참배길 ⓒ 김남희
레플 시코쿠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 혹은 당신이 걸었던 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요?

김남희 시코쿠 섬의 불교 성지순례길은 ‘헨로미치’라 불리는데 8세기의 홍법대사 발자취를 좇아가는 1200km의 길이다. 1번부터 88번까지 절마다 매긴 번호를 따라 보통은 시계 방향으로 돌아 다시 1번 절로 오게 되어 있다. 순례를 마치면 오사카 근교의 고야산으로 넘어가 홍법대사께 감사 참배를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끝까지 걸으면 45일에서 60일 정도 걸린다.

홍법대사가 입적한 고야산의 대참배길
레플 시코쿠에서 꼭 즐겨야 할 것과 느껴야 할 것, 그리고 가져와야 할 것이 있다면? 당신은 그곳에서 무엇을 즐기고, 느끼고, 가져왔나요?

김남희 시코쿠 헨로미치의 가장 큰 보물은 주민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전통이다. 그 섬의 주민들은 순례자들을 보면 ‘오셋타이’라 불리는 공양물을 바쳐왔다. 보통 음료수나 과자, 빵, 약간의 돈 등을 주는데 감사히 받으면 된다. 공양물은 절대로 거절하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다. 친절한 주민들의 정을 듬뿍 느끼며 소통하고, 느리게 걸으며 마음을 비우는 것. 시코쿠에서 가져와야 할 것이 있다면 비어서 더 넉넉해진 마음이 아닐까?

(위에서부터) 1 작고 단정한 일본의 바닷가 마을 2 모래사장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쓰고 명복을 비는 요코상과 츠즈미상 ⓒ 김남희

레플 시코쿠 섬의 불교 성지순례길에서 주의해야 할 유의사항을 귀띔한다면?

김남희 시코쿠 헨로미치는 도로를 걸어야 하는 구간이 많다. 그때 자동차를 주의해야 한다는 것쯤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또 어두워진 후에는 걷지 않는 편이 좋겠다. 장기간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짐이 가벼워야만 하는데, 최대한 가볍게 짐을 꾸려 배낭의 무게가 자신의 몸무게의 10%가 넘지 않게 한다.

가을 산사의 풍경 ⓒ 김남희
김남희 이렇게 죽을 수도 이렇게 살 수도 없는 나이, 서른넷에 방 빼고 적금 깨서 배낭을 꾸렸다.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모진 꿈을 꾸며 버리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찬 배낭을 짊어지고 오늘도 끙끙거리며 길 위에 서 있다. ‘진심으로 지극한 것들은 다른 길을 걷더라도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되는 법’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인연에 매이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시리즈와 <유럽의 걷고 싶은 길> <일본의 걷고 싶은 길> <외로움이 외로움에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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