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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넙치잡이의 삶 - 배가 다니기엔 얼음이 너무 많고, 개썰매가 다니기에는 얼음이 너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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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아꼬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눈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앙아꼬끄는 잘 알고 있었다.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쉽게 얻을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이미 그 모든 꿈과 소망이 이루어진 세상이다. 그래서 두 세계를 다 볼 수 있는 앙아꼬끄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숨겨진 비밀, 즉 ‘원하는 것을 찾는 법’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린란드의 ‘앙아꼬끄’ 전설 中)

빙산 아래 수심 300미터에서 넙치를 낚아 올리는 그린란드 어부들

북극바다의 선물

탐험대와 연락이 닿았다. 북쪽으로 1,000km 지점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단다. 어느 정도 기온 상승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모양이다. 얼음 슬러지와 크레바스를 뚫고 나가느라 대원들도 개들도 지칠 대로 지친 것 같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썰매를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2차 에어드롭까지는 아직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한다. 대원들도 그렇지만 썰매개들이 정말 많이 지쳤을 것 같다. 녀석들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다가 넙치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2차 에어드롭 때 넙치를 배불리 먹여야겠다. 부둣가로 나갔더니 마침 40대 중반의 어부가 보였다.

“아저씨, 혹시 넙치 있어요?” “지금 낚싯줄을 걷으러 나가려는 참이오.”
“같이 가도 될까요?” “타쇼.”

대답 한번 시원하다. 이름은 이와츠, 강인한 어깨와 팔뚝을 지닌 넙치잡이 어부였다. 올해 45살인데 벌써 세 살짜리 손자가 있단다. 그는 빙산 사이로 능숙하게 배를 몰더니 억센 팔로 낚싯줄을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껴입었어도 빙산의 바다에서 평생 단련된 근육의 굴곡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잠시 후 기다란 낚싯줄에 1미터 간격으로 커다란 북극넙치들이 낚여 올라오기 시작했다. 낚싯줄 하나에 바늘만 700여 개라는데 이따금 홍어나 게 따위가 걸리기라도 하면 ‘에이, 잡것들’ 하며 그냥 바다에 내버린다. ‘아니 그걸 왜 버려요?’ 나는 펄쩍 뛰며 그 귀한 ‘잡것들’을 정성껏 챙겨두었다.

이와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넙치의 아가미 부분을 잘라내고 내장을 빼냈다. 지방이 풍부한 넙치는 추위를 이겨내는 데는 제격이다. 하지만 반대로 지방이 많아서 보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재빨리 가공해서 유통해야 한다. 이렇게 잡은 넙치의 가격은 1kg당 14kr(약 2,800원)정도. 어부들이 내는 세금은 수입의 25%에 육박하지만 고기가 풍부한 일루리사트에는 그래도 ‘먹고 사는 정도’를 넘어 ‘부자’ 어부들이 꽤 많다.

넙치 낚싯줄에 걸린 60cm 크기의 대구

넙치잡이 배 주변에 몰려든 갈매기 떼

멀리 빙산 위에서 쉬고 있던 갈매기 떼가 비린내를 맡고 일제히 날아오른다. 이와츠가 던져주는 넙치 내장 덕분에 갈매기들은 오늘 포식을 하게 될 것이다. 순식간에 몰려든 갈매기 떼들로 인해 잔잔하던 바다가 시끌벅적해졌다.


“오늘은 빙산이 별로 안 보이네요.” “더도 말고 오늘만 같았으면 참 좋겠구먼.”


빙산들이 점령하고 있던 자리를 지금은 고기잡이 배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와츠는 이웃 어부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당최 쉴 틈이 없다. 일루리사트 주민들은 거의 다 어부들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새우를 잡아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흥청망청 돈을 쓰는 바람에 오히려 망한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지금은 대형 어선을 앞세운 기업 형 새우잡이에 밀려 다들 소규모 넙치잡이로 살아가고 있다.

깊은 북극의 바다 밑에서 넙치들이 계속해서 낚싯줄에 걸려 올라온다. 녀석들이 바다에서 올라와 일루리사트 주민들의 생계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와츠는 지금 바다에서 냉장고와 TV, 자동차, 기름, 옷, 신발…… 모든 것을 끌어 올리고 있는 셈이다. 오늘 하루 4시간가량 걷어 올린 넙치가 300~400kg이니까 한국 돈으로 80~100만 원쯤 될 것이다. 작은 어선을 가진 어부지만 그래도 참 부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날 저녁 나는 숙소에서 넙치 튀김과 대구매운탕, 조림을 요리했다. 이렇게 크고 신선한 자연산 물고기를 회로 먹지 않고 튀김이나 조림으로 해먹을 수 있다니! 그린란드니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세 명의 어부들이 빙산을 헤치며 생계의 원천인 넙치를 걷어 올리고 있다.

하나의 항구, 두 개의 어판장

이와츠와 함께 항구로 돌아오자 때마침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탐험대의 현지 파트너로 통역을 해주며 물심양면으로 우릴 도와준 스물한 살 청년 아까룽누아끄였다.

“마침 잘 됐네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거든요. 내일이면 나는 누크로 떠납니다.”


아까룽누아끄가 말했다. “떠난다고? 왜?” “누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로열 그린란드에서 일할 겁니다.”

로열 그린란드는 덴마크 기업으로 그린란드 전역에 걸쳐 수산물 판매와 가공, 유통 등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온 회사다. 이곳 젊은이들에게 있어 로열 그린란드라는 대기업에 고용된다는 것은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까룽누아끄의 표정이 썩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외삼촌은 내가 거기서 일하는 게 싫대요.”

이곳 어부들 대부분은 로열 그린란드를 못마땅해 한다. 자기들을 착취하는 덴마크 식민지기업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린란드를 덮은 눈만큼 순박한 원주민들은 초기 덴마크 이주민들을 반갑게 맞이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이주민들은 정복자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랫동안 그린란드에서는 모든 돈이 덴마크어와 덴마크 문화와 결부되어 왔다. 덴마크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돈이 되는 자리를 얻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생선 가공 공장이나 실업자 수당을 기다리는 줄에 서야만 했던 것이다. 이후 1979년,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치지역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덴마크의 재정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만큼 근본적인 갈등 요소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넙치잡이 미끼를 손질하는 어부

로열그린란드. 덴마크 자본의 수산물 유통회사

이러한 역사, 문화적인 배경 위에서 최근 일루리사트에는 그린란드 순수 자본으로 ‘할리부트 그린란드’라는 회사가 세워졌다. 항구를 배경으로 두 회사가 서로 마주보며 서있는 모습은 꽤 상징적이다. 빙산 사이로 배를 몰고 나가 할리부트(북극넙치)를 잡는 어부들은 이제 양쪽 회사를 번갈아보며 자신의 수확물을 어디로 가져갈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두 회사 모두 공판장과 가공 공장을 모두 갖추고 있어 그 자리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가공 처리되어 일본과 유럽 등지로 실려 간다. 갈수록 할리부트 그린란드 쪽으로 납품하는 어부들이 점점 늘어감에 따라 덴마크 기업이 받는 타격도 그에 비례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방법

“잘 가, 누크에 가서 열심히 해. 꼭 성공할 거야.” “고마워요. 탐험대를 위해서 기도할게요.”


나는 아까룽누아끄와 헤어지면서 힘차게 악수를 했다. 이방인인 주제에 이젠 누군가를 떠나보내기까지 하는구나,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아까룽누아끄를 보내고 다시 이와츠를 찾았다. 그는 해변의 벤치에 앉아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내미는 커피를 받아들고 곁에 앉았다. (옆에 싱싱한 횟감을 가득 쌓아놓고 소주 대신 커피를 마시다니 정말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이와츠가 손을 들어 언덕 위를 가리켰다.

“예전에는 여자들이 저기 모여서 바다를 향해 손수건을 흔들곤 했지.”

일루리사트의 어부들이 바다에서 넙치를 잡을 때 어부의 아내들은 언덕 위로 올라가 손수건이나 깃발을 흔들며 위험을 알렸다는 것이다. 빙산으로 가득 찬 바다에서 간혹 집채만 한 얼음 덩어리가 뒤집어지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쓰나미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일루리사트 사람들은 그렇게 가족을 잃은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부의 아내들이 깃발로 ‘낙빙주의’를 알렸던 것이다. 지금은 라디오나 휴대폰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개썰매로 얼음낚시를 할 때는 없었던 풍경일세.” 이와츠가 말했다.

거대한 빙산 근처에서의 조업은 언제나 낙빙과 쓰나미의 위험을 동반한다.

세대 차이란 자연을 누리던 기억이나 날씨에 얽힌 기억으로도 구분된다. 우리 어른들이 가끔 회상에 잠겨 젊을 때 헤엄쳐서 한강을 건넜다는 둥,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한강에서 얼음낚시를 하고 썰매를 탔다는 둥 옛날 얘기를 들려주곤 하듯이 이곳 역시 얼음에 대한 기억이 세대마다 다르다. 오늘날 그린란드의 달라진 환경은 이 한 마디로 표현한 수 있다. 즉 ‘배가 다니기엔 얼음이 너무 많고, 개썰매가 다니기에는 얼음이 너무 적다.’

지금보다 훨씬 추웠던 옛날, 일루리사트의 어부들은 누구나 개썰매를 끌고 얼음벌판으로 달려갔다. 얼음 위에 먼저 구멍을 뚫고 미끼를 꿴 낚싯줄을 납작한 판때기에 묶어 물속에 넣는다. 그럼 판때기는 수심 300~500미터 바닥에 닿은 뒤 해류에 쓸려 멀리 이동한다. 그렇게 4~8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낚싯줄을 걷어 올리면 대형 북극넙치들이 잡혀 올라온다. 이누이트들은 오랜 옛날부터 이런 방식으로 넙치를 잡았다. 그러나 얼음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은 아주 추운 겨울 일부 지역에서만 가능할 뿐, 이제 대부분의 넙치잡이 어부들은 개썰매를 타고 피오르드로 가는 대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나는 전에 니콜라이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가 떠올라 이와츠에게 물었다.

“피오르드 지역에서 잡는 넙치가 훨씬 크다면서요?” “거긴 먹을 게 더 많으니까.”

빙하와 바다가 만나는 아이스피오르드(Ice Fjord)는 내륙에서부터 땅을 훑으며 흘러온 만년빙 속에 온갖 영양분이 들어있다. 이 먹이를 찾아 바다 속 플랑크톤이 몰려오고, 플랑크톤은 새우를, 그리고 새우는 납치와 물개와 고래를 불러온다. 먹이사슬이 형성되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아이스피오르드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들이 일루리사트의 바다를 누비며 천혜의 어장을 만든다.

“여긴 넙치가 많지만 작아. 개썰매를 타고 피오르드에 가야지만 1미터가 넘는 녀석들을 잡을 수 있지.”

먹이가 가장 풍부한 아이스피오르드에서 생존경쟁을 해가며 살아남은 넙치들이 그만큼 덩치가 더 크다는 얘기였다. 나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거의 전통적인 넙치잡이 풍경을 그려보았다.

바다 위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빙판이 펼쳐져 있다. 그 아래 심해의 바닥 어딘가에는 커다란 넙치들이 떼 지어 살고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린란드의 넙치잡이 어부라면 그 광활한 얼음 벌판 어디쯤에 구멍을 뚫어 낚싯줄을 내릴 것인가? 막막하고 난감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심해의 어느 한 지점을 정확히 겨냥하여 넙치 떼를 낚아 올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요행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현자가 있어 구멍 뚫을 위치를 정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소망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앙아꼬끄 전설이다.

평생을 일루리사트 바다에서 살아온 넙치잡이 어부 이와츠

앙아꼬끄는 그린란드 전설에 등장하는 샤먼으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눈’을 이용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게 가르치곤 했다. 먼 옛날 일루리사트 앞바다를 지나던 앙아꼬끄는 갑자기 빙산이 무너지는 소리에 놀라 쓰러졌다. 다시 깨어난 뒤 그는 함께 사냥을 떠났던 사람들에게 ‘여기서 고기를 잡아라!’하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가 가리킨 곳에 얼음 구멍을 뚫고 낚싯줄을 내려 수많은 넙치들을 낚아 올렸다. 이것이 훗날 그린란드의 넙치잡이 전통이 되었다.

오늘날 그린란드 어부들에게 ‘내일’은 ‘보이지 않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기후와 그에 따른 자연환경의 변화 속에서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넙치를 잡아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 넙치를 잡았던 전통이 남아있는 한 그린란드 어부들은 얼마든지 적응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낚아 올린 북극넙치는 여전히 이들에게 생존과 건강의 원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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