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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선 여름 속으로 - 어제는 재이고, 오늘은 장작이다. 밝게 불타는 건 오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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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리사트의 여름 항구를 뒤로 하고 서쪽으로 이어진 언덕길을 걸으면 꼭대기에 이르러 북극 호텔(Arctic Hotel)을 만나게 된다. 일루리사트에서 가장 크고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최고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여행 경비가 두둑하다면 하루 이틀 묵으며 신비로운 북극 경치를 잔뜩 누릴 수 있겠지만, 식사만큼은 다른 데서 해결하라고 권하고 싶다. 값비싼 호텔 요리보다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북극 밥집이 훨씬 맛있고 정겹다. 사실 이 호텔의 메인요리는 밥이 아니라 경치다. 여기서는 세상의 그 어떤 호텔에서도 볼 수 없는 빙산의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바다로 향한 북극 호텔 언덕에서

일루리사트 북극호텔(Arctic Hotel)의 이글루 스위트룸

바위산으로 이어지는 호텔의 산책로에서 통통한 강아지 두 마리를 만났다. 갓 태어난 녀석들이라 아직 줄에 묶이지 않을 만큼 작고 귀엽지만 썰매개의 후손답게 발이 아주 두툼하고 건강하다. 이 녀석들도 일루리사트의 여느 강아지들처럼 몇 개월 지나면 혹한의 환경에서 굵은 쇠줄에 묶인 채 썰매개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바위산 옆으로 현대식 이글루가 보인다. 하루 숙박료 삼사십만 원에 이르는 고급 객실답게 빙산이 떠 있는 북극의 바다와 저 멀리 설산까지 바라보며 잠들 수 있다. 이곳이 좀 더 알려진다면 아마 새로운 신혼여행 명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북극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호텔에서 만난 강아지들

호텔 뒤쪽 공항으로 이어진 길, 하얀 공동묘지가 한눈에 보인다. 한 달여 전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눈에 덮여 있었지만 지금은 다 녹았다. 그래도 하얀 비석과 하얀 십자가 때문에 여전히 하얀 공동묘지다. 하얀 무덤마다 색색가지 꽃들과 고인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놓여있다. 그린란드에도 꽃이 피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모두 조화들이다. 또 어느 작은 비석 앞에는 공갈젖꼭지가 하나 놓여있다. 이 물건의 주인은 북극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머물다 간 모양이다.

인간의 시간이 끝난 곳, 그 뒤로 빙산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다시 해안을 끼고 산길을 걷는다. 이따금 머리를 땅으로 향하게 하고 다리 사이로 보면 태양 위로 바다와 빙산이 떠있다. 멀리 빙산 사이로 햇살을 헤치며 고깃배들이 구름처럼 떠다닌다. 그 자세로 뒤돌아서면 이번에는 아름다운 돌산이 보인다. 여름이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눈 녹은 물들이 모여 연못까지 생겼다. 하늘빛과 닮은 연못가에는 이끼 낀 바위와 이름 모를 북극의 꽃들도 피어있다. 여름에만 잠시 번성하는 ‘한철 연못’, 그 한정된 시간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존재하는 이 작은 피조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저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 계절이 끝나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연못과 이끼와 작은 꽃들도 다시 눈에 덮여 사라질 것이다. 그린란드에서 2011년의 여름 한철만을 잠시 살다 간다는 점에서 우리는 피차일반의 존재들인 셈이다.

돌산에 잠시 머물며 선물로 가져갈 작은 돌멩이들을 골랐다. 만년 빙하 밑에서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나와 만난 돌들이었다.

그린란드 축구 리그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 멀리 총천연색 일루리사트 마을이 보였다. 일 년 내내 눈과 얼음으로 덮인 곳이지만 이곳의 집들은 마치 크레파스를 흩뿌려놓은 것처럼 컬러풀하기만 하다. 빨강, 파랑, 노랑…… 모든 색깔이 원색 그대로 빛난다. 왜 그럴까? 언젠가 정기화 대원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색깔이 너무 그리웠을 거야.” 그 말에 100% 동감이다.

원색을 그리는 그린란드의 집들

산길을 내려오자 축구장에서 한 무리의 소녀들이 공을 차고 있다. 나는 천연바위로 된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했다. 열세 살부터 스물여섯 살까지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팀인데 보통 실력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얼굴이 가무잡잡한 열세 살짜리 소녀 린다가 단연 돋보였다. 날렵한 몸매로 경기장을 누비며 아주 강인하고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어린 나이에도 승부욕과 카리스마가 그대로 느껴진다.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이 되자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13살부터 26살까지 소녀들 모두 바위에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여기선 담배가 정말 기호식품에 불과한 모양이다. 열세 살짜리 여자아이가 엄마, 할머니와 손을 잡고 걸어가며 나란히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3대 세습 흡연’ 장면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로부터 보름 뒤 일루리사트 청소년 축구 경기가 열리던 날, 나는 그린란드에 와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우페르나빅과 일루리사트의 청소년 대표팀이 펼치는 서머리그 경기였다. 여름 한철에만 열리는 리그지만 응원 열기가 어마어마했다. 나도 관중석에 앉아 ‘대~한민국!’ 대신 ‘일~루리삿!’을 목청껏 외치며 경기를 응원했다. 결과는 3:1, 일루리사트의 승리였다. 열심히 응원한 덕분에 나는 즉석에서 펼쳐진 승리 기념 축제에 끼어 맥주를 얻어 마실 수 있었다.

그린란드 여름리그가 한창인 일루리사트 유일의 축구 경기장

일루리사트의 카약 챔피언 패밀리

‘홍콩’이란 이름의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어느 젊은 친구가 곁을 지나가는데 팔뚝에 새겨진 문신이 눈에 띄었다. 꼭 비보이의 프리즈 동작처럼 보이는 문신이었다. 잔뜩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 친구에게 보여 달라고 했더니 역시 맞았다. 그는 그린란드 비보이였다. 내가 물었다.

“혹시 ‘라스트 포 원’이라고 아세요?” “라스트 포 원이요? 당연히 알죠! 비보이 챔피언이잖아요.” 나는 악수를 청하며 여기 오기 전까지 라스트 포 원의 매니저였다고 내 소개를 했다.

“정말요? 와우! 반가워요, 저는 까스빠악이라고 해요!” 우리는 금세 친구가 돼버렸다.

“오늘 저녁에 뭐 해요? 제 여자 친구하고 카약 연습을 할 건데 구경 오실래요?” “카약이요?” 그린란드 비보이를 만난 것도 반가운데 카약 팀까지 소개해준단다. 하루가 꽉 차겠다.

오늘날에는 스포츠와 레저의 용도로 쓰이지만 수천 년 전 에스키모들이 처음 카약을 탈 때는 주로 사냥용이었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들 역시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가 물개와 넙치, 그리고 고래를 사냥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썰매와 마찬가지로 카약도 대부분 레저 차원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린란드 비보이의 ‘빙산’ 프리즈 동작

그린란드 카약 챔피언 칸 마리아

까스빠악을 만나기 위해 해안가에 위치한 카약 클럽에 도착했을 때 바닷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빙산을 헤치며 카약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참 많네요!” “다음 달 중순쯤에 카약 대회가 열리거든요. 다들 그 대회를 준비하는 중이에요.” 대답한 사람은 까스빠악의 여자 친구인 피아였다. 예쁘고 귀여운 열일곱 살 소녀였다.


“그린란드에서는 해마다 도시를 바꿔가며 카약 대회가 열려요.”

피아 옆에 서있던 다른 아가씨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름은 칸 마리아, 피아의 언니였다. 마리아는 북극 호텔 주방에서 주방 보조로 일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직업은 따로 있었다.


“언니는 카약 챔피언이에요.” 피아가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어보였다.


마리아와 피아는 아버지와 함께 올해 시시미우트에서 열리는 카약 대회에 함께 출전할 예정이며 목표는 종합 3위라고 했다. 속으로 ‘카약 집안이로구나.’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피아가 “우리 집에 가볼래요?”하고 말했다. 이렇게 붙임성 있는 사람들은 정말 처음이다.

도착한 곳은 언덕 위의 파란 집이었다.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아주 깔끔하고 무엇보다 ‘전망 좋은 방’들이 있었다. 창 밖으로 북극의 바다와 빙산들이 보이는 방이라면 더 바랄 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란 건 집안에 걸려있는 수많은 사진과 트로피, 메달 때문이었다. 한쪽 벽은 아예 금메달로 가득 찰 정도였다. 알고 보니 ‘피아’의 가족은 일루리사트에서 유명한 카약 챔피언 가족이었다.


“난 두 살 때부터 카약을 탔어요.” 피아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천장 끝 양쪽으로 두꺼운 줄이 두 갈래로 묶여 있었는데 실내에서 카약을 훈련하기 위한 장치라고 했다. 까스빠악이 시범을 보여준다며 줄을 잡고 한 바퀴 휙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올라와 앉았다. 카약을 타고 물속으로 들어가 회전하는 동작이었다. 피아도 질세라 비슷한 동작을 보여주었다. 놀랍고도 황홀한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롤링 기술은 카약 조종법의 핵심이다. 빙산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쓰나미로 배가 뒤집힐 때 다시 물 위로 솟아오르기 위해서는 이런 훈련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역시 챔피언 집안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잠시 후 다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는 여전히 ‘카약’이었다. 카약 대회는 일주일 동안 계속된다고 한다.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더 이상 카약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대회를 통해서 그린란드의 전통을 지키고 이어나가는 것이다. 마리아는 카약 대회에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었다고 한다.


“꿈이 뭐예요?” 내가 묻자 그녀는 ‘카약’이라고 대답했다.


“카약은 내 인생이에요.” 네 살 때부터 카약을 시작해서 이미 수백 개의 메달을 거머쥔 카약 챔피언의 대답이었다.

나노끄, 카약에 오르다

“어이, 나노끄!” 어느 날 바닷가에서 카약을 타고 있던 닉이 나를 불렀다. 나는 손을 들어 화답했다. “탐험대는 어때? 다들 무사히 잘 가고 있는 거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닉은 카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타볼래?” “정말?”

그렇게 해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카약에 올랐다. ‘아마우끄(북극늑대)’라는 이름의 빨간색 카약이었다. 다리를 쭉 펴고 앉자 엉덩이까지 수면 아래로 푹 내려간다. 그야말로 물속에 잠겨 배를 타는 기분이다. 노를 저을 때마다 상체가 좌우로 흔들리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카약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만일 이게 뒤집히면? 이곳 사람들처럼 몸을 돌려 회전하는 기술이 없으니 아마 물속에 거꾸로 처박힌 채 바동거리게 될 것이다. 끔찍하다.

“어이, 나노끄! 저기 저 빙산까지 갔다 올 수 있겠어?”

닉이 웃으며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닉을 한번 보고 다시 바다 위의 빙산을 보았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나 홀로 카약에 앉아서 바라보자니 정말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해볼까, 말까?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힘차게 노를 저었다. 그러자 카약은 바람을 가르며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빙산이 늘어선 북극의 바다에 내가 떠있다. 눈앞에는 빙산이 보이는데 등 뒤로는 땀이 줄줄 흐른다. 기록되지 않을 나의 비공식 스펙 중에 또 하나의 항목이 추가되는 순간이다. ‘빙산이 떠있는 북극 바다에서 카약을 타봤음.’

이런 체험까지 해봤으니 먼 훗날 내 추억 속 ‘회상의 채널’도 그만큼 다양해지지 않을까? 노의 양날에 흥분과 두려움을 매단 채 카약은 어느새 빙산을 돌고 있었다. 나의 그린란드 탐험 일정도 어느새 반환점을 지나고 있다.

카약 타고 빙산 한 바퀴, 이곳 그린란드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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