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그곳, 하얀 세상과의 만남.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맑은 하늘과 태양빛이 따사로운 안달루시아. 세상의 수많은 경이로움이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자연 위에 포근히 자리 잡은 하얀 마을 카사레스의 차분한 경관은 숨죽여 그 도시를 음미하게 한다. 가장 스페인다우면서도 가장 독특한 매력으로 이방인을 사로잡는 도시 카사레스. 카사레스의 매력은 자연이며 동시에 예술이고, 논리와 이성을 자극하는 작은 도시의 문화와 건축양식이다.

태양빛을 받아 순백의 하얀색이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 안달루시아의 백미, 화이트 빌리지.

블루 & 화이트, 안달루시아의 상징성

따갑던 태양이 고개를 숙일 즈음 지친 바다를 등지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안달루시아의 바다는 유혹과 낭만으로 넘실거렸다. 소박한 산골 시골 마을의 한가로움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곳에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언덕 위로 하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을 포근한 마을들. 마음의 평화가 그리울 땐 고요한 시골 마을이 먼저 떠오른다. 여행은 때론 고요함 속에 머물며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방랑인지도 모른다.

스페인을 상징하는 수많은 아이콘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투우와 플라멩코. 거기에 하나를 더하면 풍차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일반적 이미지들을 불식시키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다다르면 또 하나의 전형이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하얀 마을 카사레스, 바로 화이트 빌리지의 출현이다. 백색 마을은 경이로움이며 안달루시아의 전형처럼 나타난다.

지루한듯한 벽체를 이루는 하얀색에 포인트를 주는 기와지붕의 베이지색이 친근하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 최남부에 위치한다.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에 가까운 탓에 예로부터 아프리카 북부를 지배해온 이슬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왔던 곳이다. 이슬람의 오랜 지배로 인해 안달루시아는 유럽의 여느 도시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고 그것은 태양을 즐기는 건축양식과 단조로운 하얀색의 마을 분위기가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 이국적인 마을 풍경을 창조해 냈다.

단조로운 백색의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룬 수직과 수평의 단순하게 반복되는 건축양식은 구릉의 유연한 곡선과 어울려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스페인의 많은 지방 마을들이 아름답지만, 안달루시아인들은 그중에서도 백색 마을 다섯 군데를 낭만의 여행지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몬테프리오(Montefrío), 아르코스 데 라 프론테라, 베헤르 데 라 프론테라(Vejer de la Frontera), 세테닐(Setenil de las Bodegas), 그리고 카사레스. 바로 그 다섯 마을이다. 특히 높은 구릉에 자리 잡은 마을 형세와 탁 트인 시야는 물론, 극적인 모양새와 순도 높은 백색을 자랑하는 백색마을 카사레스는 단연 으뜸이다.

마을 할머니도 집 앞 화단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마을 골목길에는 수많은 추억의 향기가 넘쳐난다.

파란 하늘 아래 하얀 마을, 안달루시아 순백의 추억

카사레스에 서면 색은 두 가지로만 다가온다. 거의 모든 집의 벽체를 이루는 흰색과 이 마을의 포인트를 이루는 기와지붕의 베이지색. 짙푸른 하늘은 백색마을을 돋보이게 하는 캔버스 역할을 하고 마을 곳곳에 피어 있는 빨간색의 야생화는 혹시 지루해지기 쉬운 우리의 눈에 강한 자극으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카사레스를 찾아가기 위해 지중해의 코스타 델 솔(스페인 남부의 지중해 해안)을 뒤로하고 20km 정도 내륙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야 한다. 산길을 굽이치며 돌고 돌아 들어간 곳은 높은 구릉 아래 펼쳐진 신기한 마을이다.

카사레스는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움 그 자체로 다가온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다가 눈앞에 불현듯 나타나는 그 백색의 향연은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도 남음이 있다. 카사레스는 작지만 조용한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에서 호텔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숙소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관광지가 아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을에는 호텔이 한 군데밖에 없으며 광장 근처의 조그만 여관은 그나마 문을 닫는 날이 많다고 한다. 그저 마을 사람들끼리 한가롭게 그들의 삶을 영위하는 산골 마을이다. 소란스러울 것도 없다. 돈벌이에 나서지도 않는다. 그저 한가로이 평화로운 그들만의 행복과 여유로운 풍요를 누리고 사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카사레스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묘지. 하얀 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마을의 중심인 조그만 광장으로 들어서면 한가로운 마을 분위기가 첫인상으로 와 닿는다. 동네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다 서로 눈인사를 나누고 있다. 광장 한가운데에선 제복을 입은 경관이 그 좁은 골목을 드나드는 차들에 수신호를 보내며 우리의 골목에서라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은 교통정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


마을 산 정상에 올랐다. 가장 높은 구릉 위에서 아파트 식으로 층층이 만들어진 묘지를 발견하게 된다. 역시 백색의 묘지로 이곳이 묘지란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명패들 사이로 가지런히 꽃들이 놓여 있어 더욱 숙연해지는 곳. 마을의 공동묘지가 가장 높은 산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선조들이 마을을 지켜주고, 언제나 한결같이 이 마을을 가까운 발치에서 바라보기를 소망하는 마을 사람들의 염원 때문이라고 한다.

카사레스에는 다른 도시처럼 특별한 명소가 없다. 역사에도 등장하지 않는, 그저 백색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나타난 조그만 시골마을. 그냥 그렇게 평화롭고 한가로운 그 마을이 있기에 어쩌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고 봐야 할 것 투성이인 우리 식의 여행이 한가로이 숨 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을이 내려다보고 있는 드넓은 지평선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훈훈한 바람과 그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과 야생화들의 하늘거림. 통일된 색채와 텅 빈 공간이 가져다주는 여유로움으로 백색마을 카사레스는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로워지라고, 하지만 하나의 주제를 가지라고, 그것은 평화였고 일관성을 바라던 카사레스의 하얀 메시지였을 것이다.

블루와 화이트의 대조가 강렬한 마을 정상에서의 전망. 저 멀리 지중해도 보인다.

가는 길

카사레스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마드리드를 경유해야 한다. 마드리드행 직항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대개는 파리와 로마,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유럽에 온 이후에 유럽 항공을 타고 경유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에서 마드리드까지의 비행 소요시간은 경유시간 포함하여 15시간 정도. 카사레스는 그 경이로움만큼이나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접근하기 좋은 방법이라면 단연 렌터카. 휴식이 필요한 여행자라면 여유롭게 드라이브하면서 접근해 보자. 해안도시 말라가에서 그리 멀지 않다. 버스로 간다면 말라가 아래 에스테포나 마을에서 하루 두 편의 버스가 출발한다. 1시와 저녁 7시경에 출발. 소요시간은 45분 정도.

레스토랑 카사레스
광장에 면해 있는 레스토랑 카사레스는 예쁜 테라스를 지닌 꽤 괜찮은 레스토랑이다. 카사레스를 찾는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테라스에 앉아 백색 마을의 전경을 감상하곤 한다. 안달루시아 사람들은 생선을 즐겨 먹는다. 비록 높은 산중에 위치해 있지만 카사레스의 레스토랑에는 바닷가에서 매일 직송한 맛있는 생선요리가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카사레스의 상징 탑, 카테드랄

마을의 중심에서 벗어나 언덕 꼭대기에 오르면 폐허가 되어버린 옛 카테드랄(성당)과 성벽이 아름다운 야생화와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수 세기 전에 지어진 카테드랄은 언제부터인가 마을 아래의 조그만 성당들에 그 역할을 내어주고, 이제는 주위의 야생화와 함께 대지의 일부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성벽에 서면 카사레스와 주위의 골짜기, 구릉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카테드랄 옆으로는 마을 묘지가 있으니 한가롭게 산책해도 그만인 곳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