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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크라쿠프 - 깊은 동유럽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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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크라쿠프는 ‘깊은 동유럽’의 도시다. 거리에 맴도는 언어는 무뚝뚝해도 통일감이 있다. 이방인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체코 프라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정서와는 질감이 다르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비스와 강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처럼 화려한 유람선이 다니지도 않는다. 흐린 날이면 도시가 지닌 사연처럼 구름이 낮게 드리우는 것도 크라쿠프의 매력이다.

500여 년간 폴란드 문화의 중심지였던 크라쿠프 시장광장. 유럽에 남아 있는 중세 광장 중 최대급 규모를 자랑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도시의 분위기는 차고 을씨년스럽다. 빨리 찾아든 크라쿠프의 겨울은 덜컹거리며 달리는 트램 만큼이나 더디게 흐른다.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질곡의 세월을 겪었지만 폴란드의 수도가 바르샤바로 옮겨지기 전까지 크라쿠프는 500여 년간 폴란드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다. 국왕이 살던 이 도시는 2000년 유럽 문화도시로 지정되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 일대는 중세 고성과 교회들이 2차 대전의 풍파를 벗어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나치 주둔지가 있었던 아픈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도시를 전쟁의 공습으로부터 지켜냈다. 유독 크라쿠프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옛 동유럽의 흔적을 만나게 되는 것도 도시의 과거 때문이다.

구시가 광장에 모여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관광객들.

동유럽 최대의 중세 광장을 품다

‘깊게 웅크린’ 크라쿠프는 사실 광장의 도시다. 예전 왕들이 대관식을 가지려고 걸었던 플로리안스카 거리(Floriańska Street)를 스쳐 지나면 시장 광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광장은 유럽에 남아 있는 중세 광장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바통을 잇는 4만㎡의 광활한 광장은 예전에는 귀족들의 사교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쇼팽의 선율에 취해 노천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관광객과 그들을 상대로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는 거리의 악사들로 광장이 채색된다. 깊은 동유럽 도시의 과거와 현재에는 화려했던 흔적이 서려 있다.

이방인들의 발길은 광장 옆 성 마리안 성당에서 오랫동안 멈춘다. 1220년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에서는 매시간 탑 꼭대기에 나팔수가 직접 나와 나팔을 분다. 사실 유럽의 여러 도시들이 성당, 시청사 시계탑 세레모니를 준비하고 있지만 직접 사람이 나와 나팔을 부는 경우는 드물다. 성당 안에는 폴란드 최고의 예술품으로 칭송받는 제단이 자리 잡고 있다.

크라쿠프 구시가의 상징인 성 마리안 성당. 나팔수가 직접 나팔을 부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장 광장 앞 거리에는 고풍스러운 마차가 오가며 운치를 더한다.

광장 중앙에는 ‘폴란드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동상이 서 있고 그 앞은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비보이들의 아지트다. 동상 뒤편의 직물회관 수키엔니체에서는 침대보 등 서민들의 용품을 판매한다. 1층 기념품점은 양쪽으로 100m가량 늘어서 있다. 시장 2층은 폴란드의 조각과 회화를 전시하는 국립박물관이다. 동유럽의 오래된 직물시장과 박물관이 공존하는 크라쿠프의 낯선 풍경들이다.

왕들이 거닐던 성과 거리

드넓은 광장 외에도 왕들의 자취는 도시의 중후함을 덧칠한다. 비스와 강변의 언덕 위에 위치한 바벨성은 11세기에 지어지기 시작해 16세기에 완성된 왕궁이자 성곽이다. 대성당과 폴란드 최대의 종이 걸려 있는 지그문트 탑 등 부속물들은 500년 역사 속 다양한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바벨성은 폴란드 국왕들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었고 수도가 17세기 바르샤바로 옮겨진 뒤에도 대관식만은 이곳 대성당에서 거행됐다.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과 르네상스풍의 지그문트 탑은 작고 소박하지만 예술미가 뛰어나다. 바벨성은 폴란드 주민들에게는 아직도 성스러운 터로 여겨지는 공간이다.

폴란드 왕들의 흔적이 서려 있는 바벨성 전경.

크라쿠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동유럽 최고의 대학인 야기엘론스키 대학이다.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와 2004년 타계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대학 출신이다. 1364년 카지미에즈 비엘르키 왕이 설립하고 왕비가 보석을 팔아 세웠다는 야기엘론스키 대학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이방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구시가에서 크라코브스카 거리로 나서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골목들을 만난다. 크라쿠프의 아픈 과거가 담긴 길목이다. 이곳에는 예전 유대인들을 위한 벼룩시장이 아직도 들어서고 있으며 영화 촬영지를 둘러보는 투어 역시 인기 높다.

코페르니쿠스 등을 배출한 야기엘론스키 대학.

전형적인 폴란드 음식을 맛보는 것 역시 ‘깊은 동유럽’ 나들이를 즐겁게 한다. 폴란드의 대표적인 음식은 ‘비고스(bigos)’로 딱딱한 빵 안에 고기와 양배추 절임이 들어 있다. 만두를 닮은 피에로기(Pierogi)는 오히려 한국인들 입맛에 맞는 편이다.


가는 길
폴란드 바르샤바나 체코 프라하에서 열차를 이용해 크라쿠프로 가는 루트가 일반적이다. 폴란드 입국에는 별도의 비자는 필요 없다. 크라쿠프에서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이나 아우슈비츠와 연계해 투어 일정을 꾸릴 수 있다. 이곳 트램에서는 불시에 표검사를 하니 반드시 티켓을 구입해 개찰구에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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