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여행을 만들다

1830년 9월 15일, 리버풀 사람들은 최초로 도시 간을 오가는 철도 여행의 승객이 되었다.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만들어내고도 한참 동안 기차는 그저 석탄이나 옮기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부정기적으로 실어 나르는 도구에 불과했다. 리버풀 앤 맨체스터 레일웨이(Liverpool and Manchester Railway)가 개통되고 나서야 정기적인 시간표를 가지고 운행되는 도시 간 철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처음 철로를 놓을 때는 리버풀 항구와 맨체스터 공장 사이의 물자 교역을 위한 목적이 컸지만, 열차의 편리함을 알게 된 승객들 덕분에 본격적인 기차 여행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역사적인 첫 운행의 승객들은 당시 영국과 리버풀을 대표하는 유명인사들이었는데, 그들은 또 다른 최초의 기록, 그러나 매우 비극적인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야만 했다. 처녀 운행을 하던 증기 기관차가 물을 공급받기 위해 중간 지점에 잠시 서 있을 때였다.

리버풀의 인기 높은 하원 의원이었던 윌리엄 허스키슨이 객차에서 잠시 내렸다가 수상 월링턴이 다른 객차에 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가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가던 그때, 기관차 '로켓'이 달려와 그의 다리를 깔아뭉개 그를 죽이고 만다. 이것은 철도 역사 초기의 가장 유명한 철도 사상 사고가 되었다.


불행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의 열차는 세계 최초의 철도 우편을 수송하는 등 활기차게 연기를 뿜으며 내달렸고, 1840년대 영국 철도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 된다. 개통 당시 크라운 스트리트에 있었던 리버풀의 종착역은 1836년에 라임 스트리트로 옮겨왔고, 현재 이곳에 대형 역사를 두고 있다.


리버풀 앤 맨체스터 레일웨이의 처녀 운행, 도시 간 철도여행의 시대를 열었다.




타이타닉과 대서양 횡단 여행을 만들다

허스키슨의 불행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타이타닉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스햄튼에서 출발해 뉴욕으로 항해하다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초대형 여객선이다. 대서양 횡단여행의 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건조된 이 배의 공식항구는 리버풀이었고, 승무원과 승객의 상당수도 리버풀 사람들이었다.

알버트 독은 1년에 4맥만 명이 찾아오는 리버풀의 최대 명소다.


비록 이 도전은 역사적인 실패로 끝났지만 리버풀은 오랫동안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항해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쳐왔다. 비틀즈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첫 장면은 리버풀 항구에서 주드라는 청년이 꿈을 찾아 뉴욕으로 가는 배를 타는 데서 시작한다.


한때 제국의 항구로 번성했던 리버풀은 영국 산업의 침체와 더불어 시들어갔다. 낡은 항구의 창구는 이제 알버트 독이라는 복합 건물로 변신해 이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 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건물 안에는 머시사이드 해양 박물관(Merseyside Maritime Museum), 비틀즈 스토리, 테이트 리버풀 등의 명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해양 박물관은 우리에게 리버풀이 바다를 지배하던 시대를 기억하게 해준다.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한 신대륙 이민사의 도전 정신과 더불어 이 항구가 주도했던 노예무역의 참상도 깨닫게 해준다.




움직이는 장난감을 만들다

기차들은 칙칙폭폭, 배들은 뿌우뿌우. 사방에서 새로운 기계들이 쏟아지던 산업혁명의 시대, 특히 리버풀은 온갖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현실로 변화시키는 엔지니어들의 땅이었다. 당연하게도 이곳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공작과 발명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리버풀 북쪽인 맥헐에 살고 있던 프랭크 혼비는 바로 그 공학 소년들의 꿈에 힌트를 얻어 놀라운 장난감들을 만들어냈다. 바로 메카노(Meccano). 여러 종류의 부속품과 실제 작동하는 기어를 가지고 기차, 자동차, 교량 등을 만드는 조립 완구로,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과학 소년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프랭크 혼비가 1908년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메카노는 1980년까지 리버풀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이밖에도 혼비 모형 철도, 딩키 토이즈 등 스스로 작동하는 장난감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맥헐(Maghull)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혼비 박물관 설립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의 첫 번째 철도 모형의 모델이 된 맥헐 기차역 주변이 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맥헐의 미도우즈 센터(Meadows Centre)의 공간을 빌려 그와 관련된 전시를 하고 있다.


탄생 100주년을 넘긴 메카노. BBC의 <제임스 메이의 토이 스토리(James May's Toy Stories)>는 메카노의 재료만으로 실물 크기의 다리를 만들어 리버풀의 운하에 세우는 과정을 방영하기도 했다.




비틀즈를 만들다

비틀즈의 영광이 시작된 캐번 클럽의 명예의 벽


뭐니뭐니해도 이 도시가 만들어낸 최고의 히트 상품은 비틀즈다. '리버풀의 비틀즈'가 아니라, '비틀즈의 리버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시 곳곳에서 이 전설적인 밴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존 레논의 이름을 딴 공항, 폴 매카트니가 살았던 집(20 Forthlin Road), 애비 로드와 스트로베리 필드 등 그들 노래에 영감을 준 장소들, '비틀즈 스토리'를 비롯한 여러 기념관들... 그리고 그들의 전설이 시작되는 매튜 스트리트의 캐번 클럽(The Cavern Club)까지.


비틀즈는 1961년부터 63년까지 이 클럽에서 292회 동안 출연하며, 첫 번째 유명세를 만들어냈다. 후에 그들의 매니저가 되고 '다섯 번째 비틀즈'라 불리는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처음 만난 것도 여기에서였다. 현재 이 거리는 비틀즈를 기념하는 온갖 조형물들로 가득한데, 클럽 바깥에는 어린 존 레논이 벽에 기대어 있는 조각상이 있고, 명예의 벽에는 비틀즈의 멤버들은 물론 척 베리, 롤링스톤즈 등 이곳에서 연주한 록 스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올림픽을 만들다. 미친 축구에 빠지다

리버풀은 육체노동자의 도시다. 영국에서도 가장 스포츠를 사랑하고, 특히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1862년에서부터 67년까지 리버풀은 매년 그랜드 올림픽 페스티벌(Grand Olympic Festival)을 개최했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을 재현하고자 했던 움직임으로, 오직 아마추어들만이 모여 스포츠를 통해 이상에 도전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피에르 드 쿠베르탕은 이 행사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어 1896년 최초의 근대 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이른다.


또한 이 도시는 에버턴 F.C.와 리버풀 F.C.라는 걸출한 축구팀을 가진, 영국에서도 가장 뜨거운 축구 열기를 자랑하는 도시다. 특히 1970~80년대에 무적에 가까운 위용을 자랑한 리버풀 F.C.의 전설은 아직도 시민들에게 깊은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격렬한 사랑은 훌리건이 만들어낸 양대 참사를 경험하게 만들기도 했다.


리버풀 F.C.는 1892-93년 시즌에 에버튼 F.C.와 갈라져 발족하게 된다. 그해 랭커셔 리그에서 우승했다.

1985년 유러피언 컵 결승전이 열린 브뤼셀 보두앵 경기장에서 리버풀과 유벤투스의 서포터들이 난투극을 벌여 39명이 사망한 헤이젤 참사, 영국 셰필드의 힐즈브러 스타디움의 경기장이 무너져 FA컵 준결승전을 보러 간 리버풀 팬 96명이 압사한 힐즈브러 참사가 그것이다. 두 사건은 영국의 훌리건 문화에 대한 깊은 반성과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여러 사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안필드의 경기장에는 모인 4만의 관중은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다.




끝까지 저항하는 항구를 만들다.

첨바웜바는 '텁섬핑'이라는 신나는 댄스곡으로 리버풀 항만 노동자의 파업을 응원했다.


비틀즈의 백 비트와 축구의 박력, 그 밑바탕에는 리버풀 시민들의 땀에 대한 사랑과 투철한 반역 정신이 깔려 있었다. 2011년 새로운 박물관(The New Museum of Liverpool)으로 변신하게 될 '리버풀 생활 박물관(The Museum of Liverpool Life)'이 간판으로 내세운 전시는 '목소리를 요구한다(Demanding a Voice)'였다. 리버풀 극장 동맹, 여성 참정권 운동, 항만 노동자의 파업과 같은 역사적인 정치 투쟁의 모습이 바로 리버풀 시민들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짐 라킨도 리버풀에서 태어나 이곳 항만노조의 파업 운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한다.


1980년대 대처 정부가 광산 노조들을 거의 함락시키고 항만 노조를 차례대로 손들게 하였지만, 오직 리버풀의 항만 노조만이 끝까지 저항했다. 1990년대 중반 항만 노조의 파업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1998년 영국을 대표하는 대중음악상인 브릿 어워즈(BRIT Awards)의 시상식에서 첨바왐바(Chumbawamba)는 자신들의 히트곡 '텁섬핑(Tubthumping)'의 가사를 바꾸어 "새로운 노동당은 항구를 팔아먹었다. 마치 우리들 모두를 팔아먹은 것처럼"이라고 노래했다. 그리고 보컬 댄버트 노바콘은 당시 관중석에 있던 노조운동가 출신 부수상 존 프레스콧의 머리에 얼음물을 부어버렸다. "이건 리버풀 항만 노동자의 몫이다."라고 외치며. 파업은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의 배신으로 결국 깃발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짜 도시를 만들다

언제나 과격하고 박진감 넘쳤던 도시. 그러나 리버풀 항구가 퇴색하고 축구도 과거와 같은 영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지금, 시민들은 새로운 시대를 위해 도시를 단장하고 있다. 리버풀의 고전적인 모습을 내다 버리기보다는 깔끔하게 다듬으며 익숙한 듯 색다른 비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이 도시는 여러 영화에서 다른 유명 도시를 대신하는 역할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주드 로가 멋쟁이 뉴요커로 나오는 [알피]에서는 뉴욕이 되었고, [불의 전차]에서는 파리에 있는 영국 대사관 건물의 역할로 시청을 내주었다. [배트맨 리턴즈]에서는 고담 시의 운하, [셜록 홈즈]에서는 영국의 부두를 대신해서 이곳의 강과 스탠리독이 출연한다.


아마도 이 도시에서 가장 압도적이고 고전적인 건물은 세인트 조지 홀(St George's Hall)로 보인다. 최초의 네오클래식 건물로 일컬어지는데, 법정과 콘서트홀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목적을 위해 1854년에 지어졌다. 테러범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아일랜드 인들의 투쟁을 그린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런던의 여러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등장한다.


세인트 조지 홀은 리버풀이 누렸던 19세기의 영광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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