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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케언즈 - 바다와 하늘과 숲에 뛰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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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 위에 몸을 눕힌다. 발끝 사이에서 찰랑대는 파도에 훈풍이 실린다. 쏟아지는 햇살은 바람보다 강렬하다. 누군가 레드 와인 한잔을 건넨다. 갑판에 기댄 연인들의 얼굴은 벌써 발그레하다. 요트는 바다 위에 아련하게 떠 있고, 해 질 녘의 포구는 불빛에 은은하다.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호주) 케언즈(Cairns, 케언스) 북쪽, 포트 더글러스(Port Douglas)의 단상이다.

포트 더글러스 포구의 해 질 녘 풍경. 한낮의 포구와는 달리 그윽한 정취를 자아낸다.

케언즈만 해도 낯선데 포트 더글러스의 풍경은 더욱 이질적이다. 앞바다 어디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로 불리는 산호초 군락이 늘어서 있다. 2,000km 대산호가 세계 최대 자연유산으로 등재돼 있으며, 달에서도 보인다는 설명은 솔깃하면서도 달콤하다. 요트 위에, 와인 잔 속에 쏟아지는 사연들은 어느새 사랑 얘기다. 남태평양의 훈풍과 수천 종 바다생물이 사는 해저세계의 신기루는 청춘들의 어색했던 빗장을 슬며시 풀어낸다.

요트 투어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그 포구에 앉아 저녁을 맛본다. 메뉴의 대부분이 해산물이다. 노을이 지고, 가슴을 쓸어내렸던 배들이 가지런하게 떠있고, 나무 데크 아래는 물고기들의 세상이다. 골드 러시때 금맥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포구, 빌 클린턴 대통령이 휴가차 방문했던 곳. 사치스러운 수식어들은 보이는 포구의 아늑함을 넘어서지 못한다. 부호들의 휴식처, 포트 더글러스는 그 자체로 황금처럼 단아하고 눈부시다.

세계최대 산호초에서의 은밀한 휴식

아침이면 스쿠터 한 대를 빌린다. 작은 포구 마을을 구경하는 최적의 교통수단이다. 차들은 드문드문하고 갓길도 잘 마련돼 있다. 얼굴에 닿는 바람은 지난 저녁 요트 위에서 맞은 훈풍과는 또 다르다. 손목을 비틀어 기어를 올리면 탄성이, 함성이 저절로 쏟아져 나온다. 누군가 함께였다면 등 뒤에서 전해질 따뜻한 온기가 그립다.

강렬한 햇빛 아래, 배 위에서의 휴식은 은밀하고 달콤하다.

포트 더글러스에는 신혼여행객을 위한 일몰 요트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부호들의 별장과 고급 리조트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포트 더글러스의 번화가는 매크로슨(Macrossan) 거리다. 다운타운이지만 앙증맞은 바와 레스토랑들이 몇백 미터 가량 줄지어 있다. 마을의 명물인 철로 만들었다는 카페와 이방인 커플들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바닷가 교회도 스쳐 지난다. 브런치로 허기를 채우거나 커피 한잔 기울이며 여유를 부려본다. 아메리카노 커피? 이곳에는 그런 것 없다. 잘 알아듣지도 못한다. ‘롱 블랙’을 주문한 뒤 우유를 살짝 타면 비슷한 커피 맛이다. 포트 더글러스를 찾은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바쁜 투어보다는 이런 식의 휴식에 익숙하다.

고갯길을 올라 플래그스태프(Flagstaff) 언덕에 닿는다. 부호들의 별장이 담긴 해변의 정경과 마을의 보석인 포 마일 비치가 내려다보인다. 산호 바다와 맞닿은 모래사장은 비키니 차림에 강아지와 함께, 혹은 슈트에 백을 메고 고요한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야자수가 솟은 이국적인 해변의 풍경은 이름처럼 4마일가량 뻗어 있다.


바다와 하늘과 숲에 뛰어들다

포트 더글러스에서 케언즈까지는 승용차로 1시간 거리다. 케언즈는 온갖 액티비티의 아지트다. 포트 더글러스에서의 음률이 재즈풍이었다면 이곳에서는 16비트의 빠른 템포가 어울린다. 하늘을 날고 바닷속에서 다이빙을 즐기는 본격적인 체험에 가슴은 콩닥거린다.

산소 헬멧이 달린 오토바이인 ‘스쿠비드’ 체험.
초보자도 산호초 바다를 누빌 수 있다.

케언즈 해변에 인공으로 조성된 에스플러네이드 라군. 바다를 보며 무료로 수영을 즐길 수 있다.

해양 레포츠의 출발점은 말린 제티(Marlin Jetty)다. 탑승객들은 평범한 여행자의 모습이지만 모두들 거대 산호초에서 다이빙을 탐하려는 사람들이다. 쾌속 보트는 그린 아일랜드를 넘어서 아우터 리프(outer reef) 지역까지 달린다. 바다 위에는 액티비티용 정거장이 둥둥 떠 있다. 산호의 훼손을 막기 위해 다이빙 포인트는 시즌에 따라 달라진다. 그 덕에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아이들 몸통만한 물고기도 오간다. 스노클링과 스쿠버 다이빙 외에도 산소 헬멧이 달린 오토바이인 ‘스쿠비드’를 타는 체험은 이색적이다.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산호초를 가로지르는 순간은 일상의 삶에서 지우지 못할 추억이다.

벌루닝은 동트기 전부터 그 감동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열기구를 타고 오르면 케언즈 일대의 식생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하루가 바뀌면 이번에는 하늘 높이 오른다. 케언즈가 속한 퀸즐랜드는 인기 연예인 커플의 열기구에서의 프러포즈로 화제를 모은 곳이기도 하다. 케언즈에서의 벌루닝(열기구)은 멀리 열대우림까지 내다볼 수 있어 한층 더 깊고 푸르다. 새벽녘 도착한 열기구 탑승장은 케언즈 서쪽 평야인 마리바 지역. 별이 채 지기 전에 풍선에 더운 공기가 채워진다. 기다리던 가슴은 부푼 풍선만큼이나 먹먹해진다. 구름을 뚫고 벌룬이 솟으면 오스트레일리아의 평원이 언뜻언뜻 열린다. 캥거루 사촌격인 왈라비가 뛰노는 모습도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케언즈 인근의 쿠란다 지역은 깊은 숲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동북부의 열대 습윤 지역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그 숲을 100년 넘은 세월의 열차가 가로지른다. 다리를 지나면 폭포가 열리고 터널을 벗어나면 아득한 숲이 펼쳐진다. 쿠란다 인근에는 이곳 원주민의 삶을 엿보고 캥거루, 코알라를 구경할 수 있는 공간들이 함께 공존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전통 악기인 디제리두
연주하는 차푸카이족.

쿠란다 일대에는 수륙양용차를 타고 열대우림 숲을 구경하는 체험이 가능하다.

예전 케언즈 일대의 원주민인 차푸카이(Tjapukai)족은 바다의 토템과 육지의 토템을 믿는 부족들이 서로 엇갈려 혼인을 했다. 그들의 현명한 선택처럼 산호초도, 열대우림도 도시인과 여행자의 삶을 보듬고 있다. 차푸카이족의 캥거루 춤이나 케언즈 해변에 인공 조성된 라군에서의 휴식은 평화로운 풍경이 서로 닮아 있다.

가는 길
케언즈는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주 북동부 해변에 위치했으며 겨울에도 온난하다. 1년 내내 래프팅, 스카이다이빙 등의 액티비티가 가능하다. 케언즈까지 직항편은 없으며 대한항공 등을 이용해 브리즈번을 경유해 갈 수 있다. 인천~브리즈번 9시간 소요. 브리즈번~케언즈 2시간 소요. 케언즈 시내에서 포트 더글러스까지 셔틀버스가 수시로 오간다. 스쿠터는 한국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현지에서 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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