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카드와 지상에서 가장 긴 아트 갤러리

"스웨덴에서 가장 좋은 게 무엇이었나요?" 많은 여행자들이 이렇게 답한다. "스톡홀름 카드요." 지하철과 버스, 섬들을 오가는 페리, 자전거 투어는 물론 80군데 주요 관광지의 할인 혜택까지 하나의 카드로 해결할 수 있다. 물론 무척이나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다. 그러나 여행의 수단에 불과한 교통 카드를 '가장 좋았다'는 목적으로 탈바꿈시키다니. 그야말로 '스톡홀름답다'.


이 카드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긴 아트 갤러리'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해준다. 스톡홀름에 있는 90개의 지하철 역사들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처럼 치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벽과 천장 자체를 동굴처럼 불규칙하고 자연스럽게 마감한 뒤에 페인팅, 모자이크, 조명, 조각 기둥들을 덧붙여 놓았다. 대학(Universitetet) 역에는 생물 분류학으로 유명한 칼 폰 린네의 업적을 기리는 장식물을 새겨두는 등 지역적 특성도 잘 살리고 있다. 갤러리답게 중앙역(T-Centralen station)에서 출발하는 가이드 투어도 있다. 화요일은 블루, 목요일은 그린, 토요일은 레드라인을 따라간다.


스톡홀름 지하철 역사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아트 갤러리'라 불린다.

항해사의 대 망신을 큰 자랑으로 만들다 - 바사 호 박물관

전함 바사 호, 17세기 선박의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다.


1625년 구스타프 2세 치하의 스웨덴 왕국은 해양 강국의 면모를 뽐내기 위해 전함 바사(Vasa) 호를 건조한다. 당대 최고의 과학과 예술의 집합체로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출항한 배, 그러나 처녀항해를 떠난 선박은 2Km도 못 가서 균형을 잃고 침몰하고 만다. 과시용으로 너무 많은 포를 실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서라고도 하고, 구스타프 국왕이 정치적 이유로 너무 급히 배를 완성시키라고 지시한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세계 해양사에 길이 남을 대망신을 당한 셈이다.


그로부터 300년이 흘렀다. 해양 고고학자들은 1956년 스웨덴 항구 바로 바깥에서 바사 호를 발견해 5년에 걸친 작업 끝에 인양한다. 놀랍게도 선체는 17세기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스톡홀름 사람들은 선조들의 부끄러운 실패를 끌고 와 멋진 박물관으로 변모시켰다. 커다란 돛대를 달고 있는 해안의 박물관 안에는 바사호의 본 모습이 생생히 재현되고 있다.

거대한 선박의 본체, 아름다운 선미의 조각, 선원들의 옷가지와 물품 등과 더불어 당시 선박의 구조와 선원들의 활동을 볼 수 있는 미니어처까지 세심하게 진열되어 있다. '30년 전쟁' 때 발틱 해를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함 바사 호는 당시에는 적들을 하나도 죽이지 못했지만, 수백 년 뒤에는 세계의 여행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노벨상 시상식의 수상자는 어떤 기분일까 - 콘서트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써라.' 이 격언을 스웨덴 사람처럼 충실히 따르는 경우가 있을까? 냉전 시대 스웨덴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를 오가며 짭짤한 수익을 얻었다. 그래서 박쥐고 욕을 먹기도 했지만, '사회적 환원'이라는 가치를 앞장서 추구해 왔기에 결국 착한 박쥐로 사랑받을 수 있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떼돈을 벌어들이고, 잘못 나온 부고 기사에서 '더러운 상인'이라 불린 노벨 의 변신 역시 그러했다. 그는 유산의 94%를 '노벨상' 설립에 남기고, 인류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들에게 영광의 메달을 건네주도록 했다.

매년 12월 10일 스톡홀름의 콘서트홀에서는 노벨상 시상식이 벌어져 전 세계인의 시선을 한 군데로 모으는데, 그 밖에도 노벨상의 꿈을 대리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도시 곳곳에 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전망 좋은 시청 건물에서 공식 연회가 벌어지는데, 평소에도 이곳 레스토랑(Stadshuskällaren)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의 디너 메뉴를 맛볼 수 있다. 구시가에 있는 스웨덴 아카데미 소유의 레스토랑(Den Gyldene Freden)은 노벨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노벨상의 실물을 보려면 구시가인 감라 스탄(Gamla Stan)에 있는 노벨 박물관을 찾아가면 된다.


1918년의 노벨상 증서. 노벨상에 쏟아진 초기의 관심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상금액 때문이기도 했다.

말괄량이 삐삐의 친구가 되고 싶다면 - 주니바켄

[삐삐 롱스타킹]은 잉거 닐슨 주연의 TV 시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노벨 할아버지가 세상에 유용한 사람을 뽑아 추켜세운다면, 세상에 절대 무용한 일들을 벌여놓고 으스대는 소녀가 있다. 바로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이 1945년에 선보인 [삐삐 롱 스타킹]이다.

항상 괴상한 패션에 장난기로 가득 차 있는 소녀,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소녀. 삐삐는 어쩌면 "인내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하는 스톡홀름 인들의 마음속에 감추어진 광기를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스톡홀름에서 삐삐를 만나려면 듀르가르덴(Djurgarden) 섬으로 달려가면 된다. 여기에 있는 어린이 박물관 주니바켄(Junibacken)은 우리를 [보물섬] [정글북]과 같은 동화 속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린드그렌의 작품 세계가 재현되고 있다. 건물 바깥에는 린드그렌의 동상이 서 있고, 그녀를 기념하는 영구 전시물이 갤러리에 가득하다. 아이들은 이야기책 기차를 타고 린드그렌 월드를 탐험해 볼 수 있다.

아바와 스웨디시 팝의 향연 - 그뢰나 룬트

듀르가르덴 섬은 마치 보물섬처럼 곳곳에 신나는 재미를 감춰두고 있다. 놀이공원인 티볼리 그뢰나 룬트(Tivoli Gröna Lund)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스톡홀름의 상징으로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 1883년에 세워진 이 공원은 특이하게도 당시의 거주지와 상업 건축물들을 부수지 않고 그것을 감싸 안은 채 여러 놀이기구들을 채워 넣었다. 19세기에 손으로 만든 회전 돼지가 아직도 아이들을 태운 채 돌고 있는데, 스톡홀름 사람들의 알뜰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놀이공원은 여름철의 콘서트로도 유명하다. 밥 말리, 비비 킹, 지미 헨드릭스에서부터 최근의 레이디 가가까지 멋진 리스트가 이어져왔다. 그중에서도 공원의 공식 홈페이지가 가장 위에 올려놓은 역사적 공연은 무엇일까? 바로 이 도시가 낳은 세계적인 팝 그룹 '아바(ABBA)'의 1975년 콘서트다. 아바는 1974년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를 통해 큰 주목을 받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유럽 투어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절치부심 끝에 시작한 이듬해의 스웨덴-핀란드 투어에서 본격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이곳 그뢰나 룬트의 공연에서 정점을 찍었다.


아바가 그뢰나 룬트에서 공연했던 1975년의 앨범 [ABBA]. 팬들은 '리무진 앨범'이라고도 부른다.

아바, 에이스 오브 베이스, 카디건스 등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스웨덴 팝 밴드는 하나둘이 아니다. 그 성공의 원인은 뭘까?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 흥겹고도 단순한 리듬, 복고풍의 아기자기한 정서 등 여러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그들이 영어로 노래한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그것도 매우 쉬운 영어로. 이것 역시 스웨덴식 실용주의라 할 수 있는데, 덕분에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고는 최대의 팝 수출국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최근 뮤지컬 [맘마미아] 등을 통해 아바가 새롭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곳 공원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아바 더 뮤지엄(ABBA the Museum)'이 건설되고 있다고 한다.

북유럽 디자인의 작은 보물들을 만난다 - 갤러리 파스칼

전후 스웨덴 디자인의 대표자인 스티그 린드버그(Stig Lindberg, 오른쪽). 세라믹, 유리, 텍스타일 등에서 탁월한 제품들을 만들어냈다.


꾸미지 않은 듯 꾸민다. 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만지게 한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식을 줄을 모른다. 이 도시는 스톡홀름 퍼니처 페어(가구), 노던 라이트 페어(조명), 스톡홀름 패션 위크(패션) 등은 북유럽 디자인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을 꾸준히 제공한다. '디자인하우스 스톡홀름', '이케아' 등 스웨덴 산 디자인 제품을 구경할 수 있는 숍들도 곳곳에 있다.


갤러리 파스칼(gallerypascale.com)은 스웨덴-프랑스 혈통의 여성인 파스칼 코타드-올슨(Pascal Cottard-Olsson)의 콜렉션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작은 갤러리 겸 숍이다. 가구, 패션, 조명, 일러스트레이션 등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전시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초록색이 가장 강하다 - 로얄 내셔널 시티 파크

디자인을 사랑하는 시민들인 만큼 도시는 온갖 색들로 반짝인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서 가장 빛나는 색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린. 최근 유로연합은 도시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자 매년 한 도시씩 유럽의 녹색 수도(European Green Capital)로 선정하기 시작했는데, 2010년 그 첫 번째 우승자가 바로 스톡홀름이다. 과감한 교통 정책으로 출근자의 80%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고, 지난 10년간 자전거 이용자는 130%나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나 획기적인 쓰레기 배출 프로세스 등을 통해 탄소 배출을 급속히 줄이고 있는데, 2050년에는 탄소 배출을 완전히 없앤다는 계획이다.


거주민의 95%가 300미터 이내에 '진짜' 녹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큰 자랑이다. 듀르가르덴의 동쪽 녹지대를 포함한 로열 내셔널 시티 파크(Royal National City Park)는 시 공원으로는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시 구역 안에 7개의 자연보호구역이 있고, 시내에서 30분만 나가면 무스와 순록을 볼 수 있는 사파리 투어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감라 스탄(Gamla Stan) 지구의 '건물 지붕 트레킹 투어' 등 도심 속에서 야생을 즐기고자 하는 상상력도 기발하다.


스톡홀름은 2010년 유로피언 그린 캐피털의 첫 번째 도시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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