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한 집 살림’, 룽산쓰

타이베이는 사찰도 ‘오픈마인드’다. 타이베이의 사원에는 부처뿐 아니라, 도교, 민간신앙의 신을 비롯한 다른 신들도 같이 모셔져 있다. 여러 종교가 한 집 살림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되도록 많은 신에게 빌면 어디서든 들어주겠지, 라는 욕심 때문일까? 아니면 모든 종교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치는 ‘관대함’이 이곳 사찰에 독특한 방식으로 통용되는 것일까?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하며 가장 전형적인 대만의 사원인 룽산쓰에 가면, 그 관대함을 목격할 수 있다. 관음보살이 나무에 앉았다는 전설에 따라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나 관음, 문수, 보현보살과 함께 공자, 관우, 바다의 여신 마쭈 등의 신도 함께 모셔져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여전히 늘어나는 중이다. 경건한 종교적 분위기를 이곳에서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신이 많다 보니 제각각의 신을 참배하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대고 시끌시끌하다. 평소에도 진한 향 냄새로 가득 차 있는데다, 명절에는 이곳에서 피우는 향불이 기둥처럼 거대한 연기로 솟아올라 멀리서 보면 큰 불이 난 듯 보인다고 한다.

1740년에 건립된 룽산쓰는 온갖 재해로 몇 차례 파괴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하다가, 1957년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중국 고유의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돌기둥의 섬세한 용 조각과 그 뒤에 새겨진 역사적 인물들이 춤추는 모습은 눈여겨볼 만하다. 신심이 없더라도 한번 방문해볼 것. 우연찮게, 수많은 잡다한 신들 중에서 믿고 싶은 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음식들의 만국박람회, 화시지에 야시장

타이베이 시민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음식의 면면을 살펴봐도 그들의 ‘오픈마인드’는 확연하다. 온갖 진귀하고 희귀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을 거부감 없이 즐기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법들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특히 이곳은 세계 최고 수준의 중국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중국 본토로 이주해온 중국인들은 광둥, 베이징, 상하이, 쓰촨 등 중국 4대 요리의 요리법들을 고스란히 이곳으로 가지고 왔다. 그 모든 음식들을 고급 음식점에서만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대만에는 “야시장”이 있다. 그냥 ‘시장’이 아니라 한밤중에 성황을 이루는 “야시장”이 발달한 이유는 덥고 습한 기후 때문. 해가 지고 숨 쉴 만해지면 온 가족이 놀러나와 야외의 포장마차에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다. 대부분의 부부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식사를 외식으로 해결하는 이들의 습관도 야시장의 수많은 포장마차들을 번성하게 한 이유다.


‘화시지에 야시장’은 특히 음식노점이 많다.

타이베이의 야시장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대만에서 가장 크다는 스린 야시장이지만, 희귀한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화시지에 야시장’을 방문하는 것도 좋겠다. 입구가 중국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있는 이 야시장에서 다루는 품목은 주로 음식이다. 온갖 재료의 음식들을 만날 수 있으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뱀, 자라 등의 강장음식. 먹는 것 외에도 보너스로 뱀을 잡는 장면, 뱀싸움을 보여주는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비위가 약하다면 다른 야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괜찮겠다. 한국인의 식성에 맞는 음식들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야시장들이다.

물 건너온 보물들로 채웠다, 국립고궁박물관

자금성의 많은 보물들이 바로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몇몇 나라들은 다른 나라를 약탈하여 얻은 전리품으로 자신들의 박물관을 장식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프랑스의 루브르. 영국의 대영박물관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그와 더불어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라 불리면서, 제 땅에서 난 것이 아닌 물 건너온 유품들만 자랑스레 소장하고 있는 이곳을 뭐라 해야 할까?

타이베이의 국립고궁박물관은 고대중국의 보물과 미술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기로 유명하다. 고대중국 황실 소장품들 중 최고만 모아놓은 컬렉션은, 이곳을 프랑스 루브르,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송나라 초인 1000여 년 이전부터 수집된 65만 점에 달한 소장품. 모두 공개할 수 없어 3개월에 한 번씩 교체전시를 하고 있는데, 모두 다 보려면 8년 이상이 걸린다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 모든 보물들은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의 ‘고궁’이 지칭하는 바는 자금성. 중국황제가 자금성에 수집했던 방대한 유물들은 만주사변, 청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의 전쟁을 거치면서 여기저기 나뉘며 옮겨졌는데, 어렵게 다시 난징으로 모아들였으나 국민당과 공산당의 싸움이 격렬해지면서 국민당에 의해 소장품의 4분의 1이 대만으로 이송되었다. 규모는 중국에 남은 것보다 적지만 선별과정을 거친 터라, 이곳의 소장품들은 베이징 고궁박물원의 소장품보다 훌륭한 것으로 공인받는다. 대만으로 도망치는 장제스의 배를 공격하려던 마오쩌둥이 소중한 유물까지 수장될까봐 마음을 접었다는 일화는, 이 보물들의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1965년부터 일반공개된 이 소장품들은 송, 원, 명, 청의 유물들뿐 아니라 기원전 2000년의 하나라, 기원전 1500년경의 은나라 출토품까지 망라되어 있다. 중국의 지난한 역사를 통틀어 가장 멋진 것들을 보려면 중국으로 가지 말고 대만으로 가라는 말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타이베이의 이태원, 티엔무

타이베이는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다. 일본의 식민지로 살았던 그들의 역사를 마찬가지로 일본 식민지였던 우리의 경험에 대입하여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특히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호감을 드러낸다.

타이페이의 북쪽지역인 티엔무는 서울로 치자면 이태원이나 한남동에 비교할 만하다.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고급주택가로, 외국의 독특한 식재료들을 파는 식료품점이나 골동품가게, 작은 찻집, 여러 나라의 정통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모여 있다. 이곳이 외국인 거주지역이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 학교(Taipei American School), 일본인 학교 등 외국인 학교가 몰려 있기 때문. 미국학교 앞 광장인 티엔무스퀘어에서는 주말에 벼룩시장이 벌어지기도 한다.


많은 인기를 끌었던 [유성화원]은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평소에도 주말이면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곤 했으나, 최근 들어 일본만화 [꽃보다 남자]를 원작으로 한 대만판 드라마 [유성화원] 팬들이 즐겨 찾는 코스가 되면서 명실상부한 관광지로 떠올랐다. [P.S bubu]는 빈티지 차를 인테리어 컨셉으로 삼은 독특한 퓨전레스토랑인데, 드라마의 등장인물인 산차이와 따오밍스가 데이트를 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들이 앉았던 핑크색 차에 앉으려면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니, 그 인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일본식 료칸문화를 다시 본다, 베이터우 온천박물관

타이베이는 온천마니아에게도 인기가 많다.


타이베이가 일본 식민지 시절을 지나온 흔적은 온천에도 깊게 남아 있다. 대만은 환태평양조산대에 위치하여 전국적으로 수많은 온천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유명한 곳은 타이베이 시내에서 북쪽에 있는 양밍산 근처의 베이터우 온천.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온천지대인 이곳은 특히 유황성분이 함유된 온천수가 나오기로 유명하다. 양밍산 중턱의 노천온천에서는 지하에서 온천수가 수증기와 함께 세차게 뿜어나오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겪어서인지, 이곳은 일본 료칸스타일의 온천장들이 많다. 스타일뿐 아니라 ‘교토(京都)’ 같은 일본 지명을 이름으로 내세운 곳들도 있다. 이곳에 미친 일본 목욕문화의 영향은 ‘혼탕’에서도 볼 수 있다. 수영복을 입어야만 입장할 수 있기는 하지만. 모르는 남녀가 얼굴을 마주 보고 같이 목욕하는 것은 흔치않은 경험이다.

계곡의 입구에는 베이터우 온천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1913년 일본인이 만든 공동목욕탕을 개조한 이 박물관은 당시의 공중목욕탕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 극동 최대의 목욕탕이었던 이곳은 현재에는 입욕손님을 받고 있지 않지만, 베이터우 온천의 역사를 3개국어 무료 서비스로 설명해주고 있다. 베이터우 온천박물관 뒤로는 계곡을 따라 백여 개의 온천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한류가 머물다, 원산대반점 The Grand Hotel

대만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은 호감보다는 반감에 더 가깝지만, 열린 마음을 가진 그들은 한류 바람에도 너그러웠다. 한국의 가수와 한국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배우들은 타이베이에 와서 그 인기를 몸으로 체감하곤 했다.

대만의 랜드마크로, 외국의 귀빈들이 선호하는 그랜드호텔인 원산대반점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일제점령기에 일본신사가 있던 곳이다. 1949년 중국 국민당의 장개석이 대만으로 오면서 이곳에 머물렀는데, 당시 비상시에 대피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파놓았던 지하의 굴은 현재에도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은 1952년에 장개석 총통의 부인 송미령이 영빈관으로 세웠다. 송미령이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국가에 헌납한 이 건물은 지금은 국가소유의 호텔이 되었다. 자금성을 본떠 지은 이 건물은 호화롭기 그지없다. 이곳은 드라마 [온에어]의 촬영지가 되면서 그 웅장한 면모가 한국에 소개된 바 있다.


화려한 외양은 숙박객이 아닌 관광객도 환영이다.

원산대반점은 한국과의 인연이 없지 않다. 영화홍보차 대만에 왔던 배용준이 묵었던 방은 12층 총통방인데, 무려 280평 규모의 이 방은 배용준의 팬이었던 당시 원산대반점 회장 부인이 선뜻 제공했다고. 욘사마를 보기 위해 몰려온 일본팬들로 숙박비가 만만치않은 호텔 전체가 만원이었다고 하니, 그의 인기를 짐작해볼 수 있겠다. 가수 비 또한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하여 한류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 호텔은 전망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매년 타이베이101 빌딩에서 하는 신년 불꽃놀이가 잘 보이는 명당자리로 꼽혀, 신년마다 불꽃놀이를 보러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기도 하다.

타이베이101-타이베이 국제금융센터

타이베이를 한눈에 보려면 역시 이곳 전망대가 최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의 경쟁 속에서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타이베이101도 2위로 내려섰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부르즈 칼리파, 일명 버즈 두바이로 512m. 타이베이101의 높이는 508m이다. 하지만 높이경쟁이나, 세계에서 제일 빠른 엘리베이터 등의 세계기록으로만 이 건물을 바라보아서는 곤란하다. 돈과 기술만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이 건물을 이루고 있다.

일단 외양은 당(唐)나라 때의 불탑 형태를 띠고 있다. 대만의 건축가 리쭈웬이 설계했는데, 멀리서 보면 만개한 꽃잎들이 겹쳐진 모습이나, 죽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8층씩 묶어 8개씩 올렸는데, 굳이 8이라는 숫자를 지킨 이유는 그것이 중화권 문화에서 길하다고 사랑받는 숫자이기 때문. 설계는 대만 사람이 했지만 짓기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우리나라의 삼성물산에서 지었다.

재미있는 것은 건물을 지진과 강풍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설치해놓은 진동완충장치를 관광객들에게 구경거리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윗부분의 진동을 흡수하기 위해 87층과 92층 사이에 매달아 놓은 이 공의 무게는 무려 680톤이다. 벽에 부딪치지 않도록 달아놓은 유압실린더만도 여덟 개. 건물로서는 나름대로 안전을 위해 고심한 결과 나온 구조물이지만, 그것을 관광포인트로 만든 발상이 재미있다. 그러나 70만 톤에 달하는 무게로 주변의 지형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지진을 유발한다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하는 둥, 바라보는 시선이 뿌듯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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