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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벨기에

벨기에 브뤼셀 : 기이한 유머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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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을 실망시켜도 꿋꿋하게, 오줌싸개 동상

브뤼셀 시민들의 유머감각은 브뤼셀에서 가장 유명한 동상, 마네캥-피스(Manneken-Pis)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수많은 관광객들을 실망시켜온 이 55cm짜리 자그마한 동상은 온갖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옷장. 그랑플라스의 메종 뒤 루아 시립박물관에 있는 옷장에는 이 벌거벗은 소년의 옷이 한복을 포함하여 600벌 넘게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외국의 정상들이 방문할 때마다 소년의 옷을 선물로 챙겨왔다고 하니, 브뤼셀의 유머감각은 전염성이 강한 듯.


브뤼셀의 최장수 시민으로 사랑받는, '쥴리앙(Julian)'이라는 애칭도 있는 이 동상은 1619년 조각가 제롬 뒤케누아(Jerome Duquenenoy)가 만들었는데, 1745년 영국에 약탈되는 것을 시작으로 갖은 고초를 겪어왔다. 1817년에 도난당했을 때는 심지어 조각 나기까지 했는데, 그것을 이어붙여 만든 것이 현재의 동상이다. 이 동상은 몇 개의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유명한 것이 프랑스군이 브뤼셀에 불을 질렀는데, 한 소년이 오줌으로 불을 껐던 사건이 이 동상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오줌싸개 소년의 동상이 오줌을 누는 한 브뤼셀은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쥴리앙의 빈약한 몸매에 실망한 사람을 위해서 오줌 싸는 소녀의 동상도 마련되어 있다. 그녀의 옷장에는 몇 벌의 옷이 있을지 궁금하다.

 

 

모험소년의 전설, 땡땡(Tintin)

벨기에의 만화는 유명하다. 세계에서 일본인 다음가는 만화광으로 유명한 이들은 만화를 아이들의 장르로 제쳐두지 않는다. 이곳에서 그려져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만화들이 적지 않은데, 그중에서 첫손 꼽을 만한 작품으로 [땡땡, Tintin]이 있다.

 

용감한 소년기자 땡땡과 그의 애견 밀루의 모험을 그린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1929년에 만화가 에르제(Herge)가 그리기 시작하여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현재 세계 60여 개국에 50개 언어로 소개되어 3억 부가 넘게 팔린 이 시리즈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굉장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60년에는 [땡땡과 트와존도르 호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1982년에는 작가 에르제의 75세 생일을 축하해, 벨기에 항공우주국이 당시 발견된 화성과 목성 사이의 혹성에 그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유명인들이 땡땡에 보낸 찬사의 목록도 두툼하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땡땡은 세계에서 나의 유일한 라이벌”이라고 하였으며, 조지 루카스는 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땡땡의 모험]을 모델로 한 것임을 공언했다. 앤디워홀은 “땡땡은 나의 작품 세계에 디즈니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다”며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했다.


현재 브뤼셀의 지하철 스토켈 역에는 땡땡의 모험에 나오는 140개 캐릭터를 소재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137미터에 걸쳐 있는 이 대작의 스케치는 작가 에르제가 죽기 직전인 1983년에 그린 것이다. 1988년 8월 31일 역사 개장에 맞춰서 완성된 이 프레스코화는 땡땡의 팬들뿐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땡땡의 벽화로 가득 채워져있는 지하철 역.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마그리트 뮤지움은 그 자체로 마그리트의 그림이다.


황토색 배경에 파이프 하나가 그려져 있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파이프다. 그 아래에 한 문장이 써 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벨기에 화가로 일컬어지는 르네 마그리트의 이 작품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온갖 해석이 분분하여, 심지어 이 그림에서 촉발된 사유로 책 한 권이 나올 지경이다. 초현실주의, 데페이즈망 기법 등 다양한 해석이 시도된다. 이에 대해, 혹자는 한 마디로 명쾌하게 해석한다. “황당한 벨기에식 발상”이라고.


그의 작품들은 농담하면서 웃지 않는 표정처럼 진지하지만, 그가 시도하는 넌센스는 사람들에게 지적인 충격을 주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1898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1916년 브뤼셀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하면서 1927년 이 도시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연 르네 마그리트. 이 도시의 벽지회사에서 일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점령하에서도 브뤼셀에 남아 있기를 고집하다가 결국 1967년 자기 침대에서 죽어 브뤼셀 샤비크 묘지에 묻힌 그.

 

뼛속까지 브뤼셀의 시민이었던 그의 작품들 속에서 기이한 유머감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연일까? 2009년 5월, 브뤼셀에 마그리트 뮤지움이 문을 열었다. 200여 점의 마그리트의 회화, 드로잉, 조각 등을 소장한 5층짜리 미술관은 외양도 마그리트의 그림 같다. 그가 살았던 집도 작은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으므로 마그리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 군데 다 놓치면 안 될 듯.

 

 

어른들의 유머, 인형극장 투네(Toone)

TV가 없던 시절, 브뤼셀 시민들의 엄청난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웃음을 주었던 것이 바로 인형극장이다. 공식명칭은 왕립투네극장이지만, 브뤼셀 사람들은 메종 드 투네, 즉 투네의 집이라고 부른다.


투네란 인형조종사를 뜻하는 말. 대를 물려 전승되는 ‘투네’의 1대 시조는 1830년대부터 활동했는데, 당시 왕궁에서 코미디언들을 인형으로 대체시키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투네는 8세. 2003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인형극장의 존속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4세 투네가 활동하던 1950년대에 메종 드 투네는 문을 닫을 위기를 겪게 된다. 텔레비전이나 축구와 같은 대중적인 오락이 번성하게 되면서 구닥다리 인형극은 외면받게 된 것이다. 결국 1963년, 문을 닫기로 결정되었으나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들이 ‘투네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투네 인형 보호하기를 호소한다. 결국 공식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으면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인형극 자체도 볼 만한 구경거리지만 무대에서 은퇴한 인형들을 전시해놓은 것이 흥미롭다. 현재 꼭두각시 인형을 1,200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고. 원래 전통적인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지만, 요즘은 현대적인 이야기도 레퍼토리에 올리고 있다고 한다. 한가지 주의할 것은 아이들과 같이 보는 것. ‘인형극은 어린이용’이라고 맘 놓고 데려갔다가, 어른들끼리만 낄낄거리다 돌아오는 수가 있다고.


각 세대의 투네들은 자신의 포스터를 가지고 있다.

 

 

심각한 사회에 조크를 날리다, 스머프(Smurfs)

폭격 당한 스머프 마을에서 울고 있는 스머프들.


평화로운 스머프 마을, 실제로는 어디에 있을까? 실제의 장소를 찾을 수는 없지만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있다. 벨기에 만화가 페요(Peyo, 본명 피에르 컬리포드 Pierre Culliford)의 펜끝이 바로 그곳.


크기는 쥐만 하고, 몸 색깔은 푸른색, 똑같이 하얀 바지와 모자를 갖추고, 사이좋게 같이 살아가는 이 상상 속의 부족에게 가장 큰 적은 사악한 마법사 가가멜과 그의 고양이 아즈라엘이다. 1958년에 첫선을 보인 이 만화는 1981년 미국에서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들어진 이래, 전 세계에 푸른 웃음을 선사해왔다.


스머프가 더 유명해진 것은 이 만화가 마르크스주의를 전파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늘 붉은 옷을 입고 있는 파파 스머프는 칼 마르크스를 상징한다고. 스머프 마을 자체가 공동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이다.

 

농부 스머프, 편리 스머프 등 역할도 잘 분배되어 있으며, 모두가 평등하다. 같은 노동복을 입고 있는 그들에게는 종교도 없다. 결정적으로, 모든 캐릭터들의 뒤에 공통적으로 붙는 ‘스머프’라는 호칭은 ‘동무’를 연상하게 한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스머프가 사회문제에 무관심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2005년 벨기에 텔레비전에 방영된 25초짜리 애니메이션이 그들의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유니세프가 부룬디의 소년병사 희생자들을 위한 7만 파운드의 펀드를 모으기 위해 방영한 이 캠페인은 스머프 마을이 폭격을 받아 불타고 스머프들이 학살당하는 짧은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봐 밤 9시 이후에만 방송하게 했음에도, 우연히 이 장면을 본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고. 원래 계획했던 대로 스머프들이 팔과 머리를 잃은 피가 낭자한 장면이 나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정도는 되어야 북카페, [cook & book]

브뤼셀 시민들의 유머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평범한 북카페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그들은 ‘cook & book’ 안에 책과 음식점을 통합시켰다. 여행, 만화, 문학, 아동, 컨템포러리 아트, 클래식 음악과 재즈 등 아홉 개의 섹션으로 된 서점과 각각의 섹션에 마련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은 하나의 큰 세계를 이룬다.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책과 요리만이 아니다. 각 방마다 독특하게 꾸며진 인테리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프랑스어로 된 책을 모아놓은 코너에서는 천정에 책들이 잔뜩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구역에는 안에 작은 사이즈의 자동차가 통째로 들어 앉아있기도.


각각의 인테리어는 그 코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영어책 코너는 영국의 유니언잭 깃발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돋보이고, 클래식과 재즈 코너에는 악기를 진열해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천정에 난해한 재즈풍의 낙서를 잔뜩 그려넣었다. 여행코너의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알루미늄 캐러밴.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캐러밴의 한가운데에는 식탁이 마련되어 있어, 그 안에서 여행기분을 만끽하며 식사를 할 수 있다. 그곳의 램프 등은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통을 이용한 것.


어린이책과 만화 코너에는 스파이더맨 동상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여러모로, 책 속의 세계에서 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놀이동산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cook & book을 돌아보려면 지도가 필요하다.

 

 

브뤼셀식 유머는 벨기에를 넘는다. 아스테릭스

아스테릭스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브뤼셀에서는 곳곳에서 만화를 주제로 한 벽화를 만날 수 있다.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광임을 자부하는 이들은 만화 또한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개발해낸 것이다. 관광안내소에 가면 받을 수 있는 지도를 들고 각각의 벽화를 찾아다니다 보면, 지형지물을 이용하거나 장소의 성격을 활용한 기발한 장면들에서 만화가 가지는 유머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아스테릭스의 모험]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벽화가 그려진 곳은 축구와 야구경기장 근처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신나게 공을 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왜 프랑스작가 르네 고시니와 알베르 우데르조의 만화인 아스테릭스가 브뤼셀 벽화의 명단에 올랐을까?


유럽의 만화강국이라 할 수 있는 벨기에의 만화들은 실제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거두고 있다. 만화라는 자체가 만국공용어인데다 프랑스어를 쓰는 벨기에의 특성상 벨기에 만화는 프랑스까지도 큰 독자층으로 넣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만화와 벨기에 만화를 따로 나누지 않고 프랑코 벨쥐 만화(BD franco-belge)라는 이름 아래 같이 지칭하기도 하는데, 프랑스의 이름이 앞선 것이 무색하게도, 200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만화의 75%가 벨기에 출신의 만화가나 출판사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아스테릭스의 작가들도 벨기에 출판사에서 만화를 발간해왔으므로 그들에게 있어 프랑스와 벨기에를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만화를 좋아하고 실리감각이 발달한 벨기에인들은 나치가 미국만화를 금지시키거나 프랑스의 검열이 만화를 탄압하는 와중에도 예술로서의 만화의 가치를 믿고 열린 마인드를 유지해왔다.

 

그 결과, 이곳의 만화는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를 넘나든다. 아스테릭스는 브뤼셀의 만화일까? 그렇다. 브뤼셀 시민들이라면,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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