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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프랑스

프랑스 보르도 : 보르도에서 귀족의 유산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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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한때 단골 소주방이 한 달 새 와인바로 바뀔 만큼 국내에 와인 열풍이 불던 시기, 보르도 와인은 늘 상한가를 쳤다. 어처구니없는 이윤을 남기고 팔아도 사람들은 보르도 와인을 찾았고 신대륙의 와인이 아무리 드잡이를 놓아도 늘 와인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었다. 덩달아 보르도라는 고유명사는 상류층 문화를 은연중 표현하기도 했는데, 알다시피 한 회사에서 생산한 고급 텔레비전의 브랜드가 보르도였다.

그럴 만하다. 보르도라면 그럴 자격이 있다. 파리가 '파리적인' 곳이라면 보르도는 프랑스적인 곳. 좀 더 세분하자면, 왕정시대 귀족과 부르주아의 프랑스라고 하자. 이곳은 파리에서 테제베(TGV)를 타고 3시간 거리. 규모로 따지면 프랑스에서 여섯 번째다. 1세기께부터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해서 이제 와인으로 먹고사는 세계 와인의 수도가 되었다. 생테밀리옹, 메도크, 마고 등 지롱드 강 유역의 도도한 와인을 맛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와인 애호가의 열정적 투어가 오늘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와인 향에 취하기 전에, 보르도 도심에 첫발을 들여놓는 이방인은 도시 가득 펼쳐진 우아한 광경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유서 깊은 고딕성당의 종탑이 도심을 굽어보고, 구시가의 골목에 걸린 명품 브랜드 간판이 신용카드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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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니플래닛매거진코리아 제공 구시가 중심가인 테아트르 광장. 유서 깊은 건물이 즐비하다.

보르도의 진정한 황금기는 프랑스혁명 직전까지, 특히 17~18세기다. 아키텐 지역을 소유하고 있던 엘레오노르 왕비가 1152년 영국 왕 헨리 2세와 재혼한 후, 보르도는 영국과 북유럽에 엄청난 양의 와인을 마음껏 수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와인 생산업과 무역업을 꽉 잡고 있던 귀족은 금고에 돈을 차곡차곡 쌓았고, 무역과 금융에 종사하는 부르주아도 등장하게 됐다. 그들의 돈은 와인잔을 돌고 돌아 문화 예술계로 흘러들었는데, 그래서 보르도는 이내 파리만큼 우아해졌다. 몽테뉴(그는 보르도 시장도 지냈다)와 몽테스키외 같은 명문가 출신 사상가는 이곳 사교계의 스타였다. 파리 오페라 극장에 영향을 준 그랑 테아트르나 콩코드 광장의 전신 격인 플라스 드 라 부스(Place de la Bourse)는 18세기 보르도의 장식품이었다.

20세기 장식미술까지 컬렉션 확장

이런 유산 중 일부가 아직도 우아하게 자태를 뽐내는 곳이 있으니, 바로 보르도 장식미술관(Muse′e des Arts De′coratifs)이다. 구시가 북쪽에 자리한 이 미술관은 프랑스혁명 직전인 1779년 지은 오텔 드 라랑드(Ho^tel de Lalande)를 그대로 활용한 곳이다. 말 그대로 라랑드의 집, 즉 보르도 의회 의원이던 레이몽 라랑드의 집이 1923년부터 미술관으로 변신한 것이다. 보르도에서 활약하던 건축가 에티엔 라클로트가 당시 완성한 원래 모습에 지금까지 별다른 손질을 하지 않았고, 전시실 또한 저택의 방과 거실을 그대로 살렸다. 프랑스의 자국 문화에 대한 자존심은 종종 이런 식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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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니플래닛매거진코리아 제공 보르도 장식미술관의 외관.

도로에 인접한 철제 정문을 지나 'ㅁ'형 안뜰을 가로지르면, 장식미술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현관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유럽 내 저택을 활용한 소규모 미술관답게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입구를 찾느라 헤맬 수 있다. 건물 외관이 기대치보다 밋밋하다고 해서 실망은 금물이다. 로비를 지나 들어선 전시실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귀족풍이니 말이다. 정교하고 세심하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컬렉션이 온 저택을 찬란하게 휘두르고 있다. 벨벳 소파와 실크를 두른 사주식 침대, 정밀하게 세공한 하프시코드, 그보다 더 정밀한 금도금 자기와 크리스털, 내 연봉의 몇 배는 될 듯한 책상과 의자, 온갖 자태의 인체 조각상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고 다채로운 공예품들. 한마디로 보르도 황금시대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복도와 계단을 지날 때마다 장식의 향연이 이어지는 사이, 혹시라도 부딪칠까 신중하게 걷고 있는 자신을 깨닫는다. 300년 전에는 이곳에서 먹고 자고 마시며 실내 장식품 몇 개를 깨트리기도 했겠지만.

장식미술관에 가득한 로코코풍 과도한 장식품들은 부유한 귀족과 부르주아의 과시와 유흥을 위해 탄생한 시대의 예술이다. 이후로도 시대를 반영하며 등장한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혹은 아르누보와 아르데코는 변증법적으로 차곡차곡 예술의 역사를 쌓아갔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도, 세기가 지나면 또 다른 앙투아네트가 등장하듯이 예술도 돌고 돈다. 2010년부터 이 미술관은 20세기 장식 미술까지 컬렉션을 확장했다. 알다시피 현대의 장식 미술은 디자인 제품이다. 그 때문에 컬렉션의 대상도 보르도 지역 위주에서 전 세계로 확대해 이제는 필립 스타크와 론 아라드의 디자인 제품도 만날 수 있다. 프랑스혁명 후 200년이 지난 지금, 오늘날의 장식 미술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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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니플래닛매거진코리아 제공 보르도 장식미술관 3층 전시실에 화려한 색상의 도자기 작품이 전시돼 있다.

✚ 보르도 장식미술관(Musee des Arts Decoratifs)

신고전주의 양식의 미술관 건물 안에 화려한 장식품이 가득한 곳으로, 보르도의 영광스러운 한때를 경험할 수 있다. 1978년 보르도 시가 건물을 사들여 지금까지 장식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상설 전시와 20세기 프랑스 디자이너 위주의 특별전을 함께 연다.

무료 입장, 수요일과 공휴일 휴관, 오후 2~6시, +33 05 56 10 14 05, 39 rue Bouffard, 33000 Bordeaux

✚ 머물 곳
그랑 오텔 드 보르도(Grand Hotel de Bordeaux)


보르도 유일의 특급 호텔이다. 18세기에 지은 저택을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 자크 가르시아가 리노베이션했다. 150개의 방과 명품 쇼핑 아케이드, 스파 등을 갖추고 있다. 시내 중심부인 코미디 광장에 접해 있다. 252유로부터, +33 05 57 30 44 44. www.ghbordeaux.com

✚ 볼 곳
생탕드레 대성당(Cathedrale St. Andre)


생탕드레 대성당은 보르도 시내를 한눈에 담기에 좋은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종탑 투르 페이 베를랑(Tour Pey Berland)이 있기 때문. 232개의 좁은 계단을 올라 50m 높이의 종탑 꼭대기에 이르면 환상적인 시내 전경이 펼쳐진다. 5.5유로, 6~9월 오전 10시~오후 1시, 오후 3~7시30분, 10~5월 오전 10시~낮 12시, 오후 2~6시, +33 05 56 52 68 10, cathedrale-bordeaux.fr

✚ 먹을 곳
라 투피나(La Tupina)


제철 식자재를 활용해 지역 특선요리를 선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투피나'는 바스크어로 난로 위에 놓는 오래된 솥을 뜻하는 말. 수프와 푸아그라, 양고기 요리, 거위 날개 요리 등을 추천한다. 메인 요리 18~40유로, +33 05 56 91 56 37, 6 rue Porte de la Monnaie

✚ 마실 곳
바 아 뱅(Bar a Vin)


와인 시음 프로그램과 와인 강좌 등을 운영하는 보르도 와인 센터 1층에 자리한 와인 바. 보르도의 새로운 와인을 접하거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추천받기에 좋은 곳이다. 1잔에 2유로부터, 오전 11시~오후 10시, 일요일 휴무, +33 05 56 00 43 47, baravin.bordeau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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