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벨기에

벨기에 브뤼셀 :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도시, 브뤼셀

반응형

general_image

1 벨기에 브뤼셀 그랑플라스 옆 쇼핑 아케이드 '갤러리 루아얄 생 위베르(Galeries Royales St Hubert)'에 있는 최초의 노이하우스 매장. 1857년 문을 열었다.

벨기에의 수도, 유럽의 수도, 브뤼셀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도시다. 꼭 100년 전인 1912년 장 노이하우스가 '프랄린(praline)'을 처음 만든 이래 벨기에는 초콜릿 천국이, 브뤼셀은 초콜릿의 수도가 됐다. 주택가 골목골목마다 초콜릿 가게가 있고 '인구 2000명당 쇼콜라티에가 1명'이라는 통계가 나올 수 있는 도시가 브뤼셀 말고 또 있을까. 뉴욕과 파리가 백화점과 명품 매장의 화려한 쇼윈도로 도시의 밤을 밝히는 이맘때, 브뤼셀은 초콜릿 가게에서 나오는 환상적이고 황홀한 불빛으로 동화의 도시가 된다.

브뤼셀=글·사진 홍주희 기자 < honghongjoongang.co.kr >

general_image

2 초콜릿으로 만든 오줌싸개 동상. 벨기에에서 초콜릿은 단순한 기호식품 이상이다. 초콜릿이 피로 해소에 도움을 주고 에너지를 충전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더니, 실제 벨기에에선 초콜릿이 국가의 동력이다.

 연간 17만t 넘는 초콜릿을 생산해 30억 유로(약 4조2200억원)가 넘는 매출을 올린다. 식품산업 매출의 10%, 고용의 10%를 넘는다. 그런데 매년 만드는 초콜릿 17만t 중 40%는 벨기에 안에서 소비된다. 대체 얼마나 먹길래 전 세계로 수출하는 양만큼을 이 작은 국가가 소비하는 걸까. 벨기에는 경상도만 한 면적에 인구 약 1000만 명이 산다. 그 안에 초콜릿 가게가 2000개를 넘는다. 한 사람이 1년에 먹는 초콜릿 양도 11㎏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디저트 문화가 훨씬 발달한 일본인들이 1년에 2.2㎏을, 미국인들이 5.6㎏을 먹는다니 벨기에인들이 얼마나 초콜릿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관광지에서는 사방팔방 초콜릿 가게가 눈에 띈다. 브뤼셀의 그랑플라스는 그야말로 '초콜릿 초집중 지역'이다. 어느 블로거가 발품을 팔아 조사를 했더니 그랑플라스를 중심으로 반경 1㎞도 채 안 되는 공간에 40개의 초콜릿 가게가 있다고 한다. 과연 초콜릿 왕국답다.

 당연히 초콜릿에 관한 한 자존심도 대단하다.

general_image

3 체리를 넣은 초콜릿. [사진 노이하우스] 브뤼셀 왕궁 근처엔 사블롱 광장이 있다. 고디바·노이하우스 등 대형 브랜드는 물론 피에르 마르콜리니, 비타메르 등 최고급 초콜릿 매장이 모여 있는 또 하나의 초콜릿 밀집 지역이다. 이 중엔 프랑스인 쇼콜라티에 파트리크 로제의 매장도 있다. 그런데 브뤼셀 관광사무소가 제작한 가이드북은 사블롱 광장을 소개하면서 파트리크 로제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브뤼셀에서 창업할 만큼 용감한 유일한 프랑스인 쇼콜라티에.(The only French artisan chocolatier brave enough to set up in Brussels.)'

 초콜릿에서 한 수 아래인 프랑스인이 브뤼셀에서 초콜릿을 만들어 파는 게 가상하다는 뉘앙스다. 초콜릿만큼은 미식(美食) 대국 프랑스도 우습다는 자신감이랄까.

general_image

밀크초콜릿, 화이트초콜릿, 다크초콜릿(왼쪽부터). [사진 zaabar]

1인당 한 해 초콜릿 11㎏ 먹는 나라

최고급 초콜릿의 대명사로 불리는 '고 디바'도 이곳 사람들은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다. 고디바는 192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탄생했지만 1960년대 미국 기업인 캠벨스프로, 다시 2007년 터키 기업으로 팔려나갔다. 벨기에 사람들 눈엔 더 이상은 벨기에 초콜릿이 아닌 셈이다.

 자부심과 자존심은 엄격한 품질관리에서 비롯된다. '벨기에 초콜릿(Belgian Chocolate)'이라고 라벨을 부착하는 기준도 까다로워 재료 혼합과 정제·정련 등 전 과정 중 한 가지라도 벨기에 밖에서 이뤄졌다면 '메이드 인 벨기에'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 벨기에 국기나 오줌싸개 동상 등 벨기에를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를 사용해 소비자를 혼란케 하는 것도 금지한다.

 

general_image

초콜릿 몰드 안에 크림 등 필링을 채워 넣은 프랄린. [사진 노이하우스]유럽연합(EU) 본부가 브뤼셀에 있어 EU를 상징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초콜릿 관련 법만큼은 2003년 EU가 만든 법안을 거부했다. 자체 '초콜릿법'을 적용하고 있다. EU는 초콜릿에 100% 코코아 버터를 사용하지 않고 5% 이하의 식물성 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 시중에서 파는 많은 초콜릿은 대량 생산을 위해 식물성 유지를 사용한다. 하지만 벨기에는 카카오 열매에서 추출한 코코아 버터를 100% 사용한 것만 초콜릿으로 인정한다. 법이다.

 이처럼 강한 자부심은 곧 '프랄린'에 대한 자부심이다. 세계적인 초콜릿 브랜드인 노이하우스(Neuhaus)의 설립자 장 노이하우스는 1857년 브뤼셀에 첫 번째 매장을 열었다. 그는 약사였고 주로 기침이나 위장 질환을 위한 약용 사탕을 팔았다. 하지만 그의 손자인 장 노이하우스(이름이 같다)가 1912년 '프랄린'을 만들면서 노이하우스는 물론, 벨기에 초콜릿의 역사가 다시 시작됐다.

general_image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쇼콜라티에 크리스티앙 반데르케르켄. 그가 들고 있는 5㎏ 초콜릿판을 녹여 프랄린을 만든다.속에 견과류 넣는 프랄린 '100년 자부심'

'프랄린'은 얇은 초콜릿 몰드(mold) 안에 견과류·크림·누가· 헤이즐넛 등 다양한 '필링'을 채워넣은 한입 크기의 초콜릿이다. 초콜릿 자체의 달콤쌉쌀한 맛뿐 아니라 입안에서 터지는 필링의 다채로운 맛으로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노이하우스·고디바·레오니다스(Leonidas) 등 벨기에의 대표적인 초콜릿 브랜드들은 프랄린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브뤼셀의 초콜릿박물관(www.mucc.be)과 몇몇 초콜릿 숍에선 '프랄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3대째 '마농(Manon)'이라는 초콜릿 숍을 이어오고 있는 쇼콜라티에 크리스티앙 반데르케르켄도 자신의 공장에서 '프랄린' 시연을 선보인다. '마농'은 주택가에 있는 작은 초콜릿 가게지만 미국 뉴욕과 일본에 수출하는 '명장'이다.

general_image

지난달 말 열린 `브뤼셀 초콜릿위크` 중에 브뤼셀 미디역에 전시된대형 초콜릿 기차.[사진 브뤼셀 관광사무소] 시작은 5㎏짜리 커다란 초콜릿 판이다. '칼리바우트(Callebaut)'라는 초콜릿 기업이 카카오 열매를 초콜릿으로 만들어 마농 같은 작은 쇼콜라티에와 노이하우스 같은 거대 초콜릿 공장에 판매한다. 벨기에에서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초콜릿은 '칼리바우트'의 초콜릿판을 사용한다.

 커다란 초콜릿 판일뿐이지만 코코아 함량에 따라 종류는 700가지가 넘는다. 반데르케르켄은 시연에서 네 가지 초콜릿을 보여줬다. '다크' '약간 밀크' '밀크' '화이트' 초콜릿이다.

 초콜릿 판은 '프랄린'을 만들기 위해 고온에서 녹인다. 걸죽한 액체 상태가 되면 넓은 대리석 테이블 위에 붓고 철판구이 하듯이 버무리고 뒤척이는데 이를 '크리스탈라이제이션(Crystallization)' 과정이라 부른다. 초콜릿의 풍미를 더하고 빨리 굳게 해서 제품화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완벽한 크리스탈라이제이션 온도는 섭씨 32도. 쇼콜라티에들은 입술을 사용해 이를 정확하게 맞춘다. 체온보다 낮은 입술의 온도가 32도라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친 초콜릿으로 몰드를 만든다. 우리네 떡살처럼 생긴 틀에 초콜릿을 부어 굳힌 뒤 각종 필링을 채워넣고는 다시 초콜릿으로 덮는다. 필링은 한 가지를 넣을 수도, 두세 가지를 한꺼번에 넣을 수도 있다. 반데르케르켄은 밤톨보다 작은 초콜릿 몰드 안에 세 가지 필링을 넣어 프랄린을 만드는데 "최소 10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시연한 것처럼 전 과정을 직접 손으로 하지 않고서는 여러 가지 필링을 집어넣을 수 없다.

 브뤼셀엔 대대로 전통방식을 고집해 소박하게 '프랄린'을 만드는 반데르케르켄 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새로운 초콜릿 문화를 만들어내는 이도 있다.

general_image

(사진왼쪽) 브뤼셀의 크고 작은 초콜릿 브랜드들은 시연을 선보이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zaabar](오른쪽) 섭씨 50도에서 녹은 초콜릿을 대리석판 위에서 뒤척여 32도까지 온도를 낮추는 '크리스털라이제이션'. [사진 zaabar]

초콜릿 공장 투어 관광상품 인기몰이

피에르 마르콜리니는 최고급화를 지향해 초콜릿의 '오트 쿠튀르'(프랑스의 고급 맞춤복)라 불리는 쇼콜라티에다. 그는 멕시코·마다가스카르 등의 코코아 농장을 직접 다니면서 코코아 열매를 선별하고 자신의 아틀리에로 들여온다. 코코아 열매에서 초콜릿 제품까지 전 과정이 피에르 마르콜리니의 관리·감독하에 이뤄진다. 브뤼셀에서 이렇게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는 그가 유일하다. 사블롱 광장에 있는 2층짜리 그의 매장은 부티크에 가깝다. 검은색을 사용한 실내 인테리어와 초콜릿 포장은 웬만한 명품 패션브랜드 못지않게 세련됐다. 제품 설명에 사용하는 용어도 '그랑 크뤼(grand cru)' '도멘(domain)'처럼 소믈리에에게서 들을 법한 것들이다. "너무 비싸다"는 불만도 있지만 그의 초콜릿이야 말로 '검은 황금'인 셈이다.

 요즘엔 아주 새로운 시도도 등장한다. 아주 새로운 원료를 사용해 전에 없던 초콜릿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바(Zaabar)'는 향신료 초콜릿이 주요 제품이다. 인도 커리에 들어가는 카다몬, 텍사스의 칠리 페퍼, 라오스의 코리앤더, 인도의 생강 등 초콜릿과의 궁합을 상상할 수 없는 재료가 사용된다.

 이런 신개념 초콜릿의 등장은 최근 들어 네덜란드·독일 등의 초콜릿 수출이 늘어나는 것과 맞물린다. 유럽 초콜릿 산업이 변화하면서 벨기에의 쇼콜라티에들이 '초콜릿 왕좌'를 지키기 위해 실험과 혁신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브뤼셀엔 관광객을 위한 초콜릿과 현지인을 위한 초콜릿이 있다고들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브랜드들의 경우 시내 곳곳에 매장이 많고 다양한 선물 세트를 구비하고 있어 관광객들을 쉽게 유인한다. 물론 이들의 초콜릿은 상당히 훌륭하다.

 하지만 진정 벨기에의 초콜릿을 맛보고자 한다면, 난생처음 들어본 우연히 마주친 초콜릿 가게가 훨씬 적합한 장소다. 공장 초콜릿이 아닌 수제 초콜릿을, 집적 만든 쇼콜라티에의 설명과 추천을 받으면서 구입하는 과정 전부가 '초콜릿 천국' 벨기에의 초콜릿을 맛보는 재미이니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