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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베트남

베트남 :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면발… 또다시 떠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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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가지 넘는 베트남 국수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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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국숫집. / 진유정 제공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국수가 존재할까.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낯설고 신기한 국수를 만나보고 싶기도 하지만 욕심을 접는다. 이미 내게는 따뜻하고 소박하고 정겨운 베트남 국수가 있다. 베트남을 오랫동안 여러 번 여행하면서 사랑스러운 국수를 만났다. 베트남 말에는 '국수'라는 단어가 없다. 저마다 특별한 개성이 있는 면 음식을 '국수'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면발마다 다른 식감, 다양한 재료들의 변주

우리가 흔히 '베트남 쌀국수'로 알고 있는 퍼보(Pho Bo·소고기 쌀국수)부터 시작하자. '퍼'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프랑스 점령 시기에 시작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채소와 고기를 푹 곤 프랑스 음식 포토푀(pot au feu)의 '푀'가 '퍼'가 되었다는 것. 소고기로 육수를 만들고 그 고기를 먹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에 포커스를 둔 주장이다. 프랑스 점령 전까지 베트남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 당연히 소고기 육수에 쌀면을 말아내는 현재의 퍼보는 없었다. 하지만 포토푀에는 면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또 다른 설도 있다. 당시 방직산업이 활발했던, 하노이에서 100㎞ 떨어진 남딘 지역에서 프랑스인과 베트남인 모두를 위해 만든 음식이 퍼가 되었다고도 한다. 하노이의 유명한 퍼집 주인들은 남딘 출신이 많다는 데 연관이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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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엔(베트남 당면)을 잔뜩 싣고 하노이 거리를 달리는 오토바이.
 하지만 퍼는 베트남의 수많은 국수 중 하나이고 면발의 한 종류일 뿐 베트남 국수 전체를 이르는 말은 아니다. 퍼는 넓이 0.5㎝ 정도의 납작한 쌀면을 일컫는다. 퍼보다 가는 쌀면은 분이라고 부른다. 갈색의 쌀면 반다, 반건조 쌀면으로 한국의 중면 정도 굵기인 후띠에우도 있다. 쌀과 타피오카 가루를 섞어서 만든 바인까인, 두툼하고 거친 식감의 까오러우, 당면인 미엔, 달걀과 밀가루로 만든 미, 얇고 넓게 엉켜 붙어 있는 면에 다른 재료를 싸먹거나 그 자체로 소스에 찍어 먹는 반호이도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런 여러 가지 면발을 가지고 화려한 국수의 변주를 펼친다. 밤새 곤 국물에 말고, 볶고, 비비고, 소스에 찍어 먹는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거위, 생선, 실장어, 죽순, 토란대, 우렁이, 게살, 두부, 바나나, 고기를 다져서 만든 짜(Cha)까지 다양한 재료로 만드는 국수는 몇 날 며칠을 먹어도 지루해질 틈이 없다. 베트남 사람들은 면마다 각기 다른 식감과 그에 어울리는 식재료와의 조화, 그리고 그 맛을 잘 살리는 요리법으로 매일매일 국수와 함께하는 삶을 산다.

담백하고 심심한 매력, 베트남 북부의 국수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쌀 생산량, 국토를 관통해 흐르는 메콩강과 남북으로 뻗은 긴 해안선이 있어 수산물이 풍부하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의 음식은 전체적으로 담백하다. 덜 맵고 덜 달고 기름기도 상대적으로 덜하며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다. 소스로는 연하게 희석한 느억맘(생선액젓)과 새우를 오래 삭힌 젓갈 맘똠을 많이 사용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향신료 사용도 적은 편이다.

북부의 국수로는 퍼보와 닭고기를 얹은 퍼가, 돼지고기 완자를 구워 소스를 붓고 여기에 면을 적시면서 먹는 분짜, 면보를 씌운 찜기에 묽은 반죽을 보들보들하게 익혀 소스에 찍어 먹는 바인꾸온농, 맑은 닭고기 육수에 가늘게 찢은 닭고기·지단·표고버섯을 얹어 먹는 분탕, 게살을 넣어 만드는 바인다꾸어, 우렁이와 푸른 바나나, 두부와 토마토의 조화가 기가 막힌 분옥쭈오이더우, 튀긴 두부와 함께 먹는 분더우맘똠, 계피향 나는 베트남식 소시지를 얹어 먹는 분목, 작은 게를 껍질째 갈아서 넣는 분지에우꾸어, 볶은 소고기와 숙주와 땅콩을 듬뿍 넣어 비벼 먹는 분보남보, 거위 고기를 얹은 분응안, 튀긴 실장어를 얹은 당면 국수 미엔르언, 게살을 넣어 비벼 먹는 미엔꾸어쫀, 생선살을 튀겨서 면과 함께 먹는 짜까 등이 있다.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북쪽에는 백 년이 넘은 건물들이 남아 있는, 36개의 거리가 미로처럼 연결된 매혹적인 구역이 있다. 국수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이 거리는 베트남의 거의 모든 국수를 만날 수 있는 보물 창고와도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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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종각 뒤 젊음의거리에 있는 베트남식당 ‘에머이’ 요리사 권영황씨가 갓 뽑은 쌀국수에 뜨거운 소고기 육수를 붓고 있다. 에머이에서는 매일 쌀국수를 매장에서 직접 만든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매콤함이 특징인 중부, 화려한 맛 남부의 국수

중부지방은 전반적으로 매운맛을 좋아한다. 후에, 다낭 등이 중부에 속하는데 특히 베트남 옛 수도인 후에는 궁중 음식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어 호화롭고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경험할 수 있다.

중부의 국수로는 매콤하게 먹는 소고기 국수 분보후에, 달콤하게 양념해서 구운 소고기를 넣어 먹는 분팃느엉, 쫄깃한 면발에 게살을 넣고 끓이는 바인까인꾸어, 재첩을 넣고 비벼 먹는 분헨, 생선을 넣고 걸쭉하게 끓인 바인까인까록, 다낭의 대표 국수로 노란색 쌀면을 사용하는 비빔 국수 미꽝, 툭툭 끊어지는 매력의 호이안 지역 명물 까오러우 등이 있다.

남부 지방은 메콩 삼각주에서 나오는 열대 과일과 코코넛, 풍부한 쌀을 다양하게 활용한 음식이 많다. 중국, 캄보디아, 태국, 인도 등 여러 나라의 영향을 받아 남부만의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또한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소스인 느억맘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 모두 남부에 있다. 무이네와 푸꾸옥의 느억맘이 유명하다.

남부 음식은 단맛이 강한 편이고 코코넛밀크를 기본으로 한 음식이 많다. 남부의 국수로는 진한 소고기 스튜에 후띠에우 면을 말아 먹는 후띠에우보코, 돼지고기와 새우 고명의 대표적인 남부 국수 후띠에우남방, 코코넛 커리에 분을 적셔 먹는 분까리, 스프링롤을 툭툭 잘라 넣고 채소와 함께 비벼 먹는 분짜조, 우동과 비슷한 면에 돼지의 정강이 부위를 넣어 먹는 바인까인저해오, 생선 살을 넣는 분까, 생선 살과 해파리를 함께 사용하는 냐짱 지역의 국수 분까쓰어, 양념한 고기를 구워 면에 싸 먹는 바인호이팃느엉 등이 있다.

 ◇저마다의 국수와 어울리는 찰떡궁합의 향채들

베트남 음식은 기본적으로 찬 성질의 재료를 요리할 때는 맵고 뜨거운 양념으로 부족한 기운을 메워주고, 몸에 열을 일으키는 음식에는 차가운 성질의 채소를 함께 먹는 등 음양(陰陽)의 조화를 추구한다. 게다가 그 조화로 맛까지 상승시키니 더 놀랍다.

국수마다 곁들여 나오는 채소와 향채도 마찬가지다. 어떤 국수에만 유독 곁들여지는 향채가 있다면 그 향채를 빼놓지 말아야 한다. 함께 먹을 때 맛이 더 특별해지는,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찾아낸 찰떡궁합의 향채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티라(딜)는 짜까에서 빠질 수 없고, 띠아또(차조기) 없는 분옥쭈오이더우의 맛은 왠지 밋밋하고, 낀저이(베트남 밤) 없는 분더우맘�은 뭔가 허전하다. 독특한 향과 질감의 매력적인 향채들에 과감하게 도전해 보자. 생으로 먹기 부담스럽다면 살짝 데쳐달라고 하면 된다. 여기에 초록색 라임을 짜 넣고, 테이블에 놓인 고추 소스나 마늘 식초 소스 등을 가미하고, 또 한 번 국물 맛을 변화시키는 쥐똥고추 하나를 더하면 이제 국수를 즐길 준비가 제대로 된 것이다.

여기 소개한 국수들이 베트남 국수의 전부가 아니다.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2월의 끝자락, 그래서 또 한 번 베트남으로 국수 여행을 떠나려 한다.

 베트남 음식 사전

◇면 종류
퍼: 너비 0.5㎝ 정도의 쌀면
분: 퍼보다 가는 쌀면. 중면과 소면이 있음
바인까인: 쌀과 타피오카 가루를 섞어 만든 면
바인다: 갈색 또는 진한 자주색 쌀면
바인호이: 가장 얇은 면
바인짱: 라이스페이퍼
까오러우: 호이안 국수의 하나이자 그 국수에 들어가는 두툼하고 거친 면
후띠에우: 중면 정도 굵기의 말린 쌀면
미: 달걀과 밀가루로 만든 면
미엔: 당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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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DB
 ◇주재료
팃보: 소고기
팃가: 닭고기
팃해오: 돼지고기(남부)
팃런: 돼지고기(북부)
똠: 새우
까: 생선
짜인: 라임, 레몬

◇조리법
찌엔: 볶다(볶음밥, 튀김)
꾸온: 말다(싸 먹는 음식)
헙: 찌다
코: 마른(비빔국수)
루옥: 삶다
느엉: 굽다
란: 튀기다
랑: 볶다
소이: 끓이다
쫀: 섞다
쭝: 데치다
싸오: 볶다

진유정씨는

 2001년부터 2년 동안 베트남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며 베트남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국수 문화에 반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베트남 국수를 잊지 못해 2007년 베트남에 돌아가 1년을 살며 음식을 배우기도 했다. 지금도 국수를 먹기 위해 매년 네댓 번 베트남을 찾는다. 그는 “수십 가지가 넘는 다양한 국수 중에서 퍼만 국내에 알려진 게 안타깝다”며 “베트남 국수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썼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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