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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프랑스

프랑스 파리 : 위고, 희곡 쓰다 총성 듣고 현장으로… '6월 봉기'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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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혁명'이란 언제 일어난 무슨 사건이었을까? 일부에선 '프랑스 대혁명'(1789)이나 '7월 혁명'(1830)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1832년 6월에 파리 시내에서 일어난 '6월 봉기' 또는 '파리 봉기'를 말한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수립된 공화정이 무너진 뒤 나폴레옹의 제정(帝政)과 왕정 복고가 이어졌고, 7월 혁명의 결과 루이 필리프의 입헌군주제 왕정이 들어섰다. 공화주의자들은 '피는 우리가 흘려 놓고 혁명의 열매를 빼앗겼다'는 불만을 지니고 있었다. 1832년 4월 콜레라가 일어난 데다 경제 위기가 겹쳐 민심이 흔들렸고, 6월 1일에는 공화주의자의 존경을 받던 자유주의 정치가 라마르크가 사망했다. 공화주의자들은 6월 5일 라마르크의 시민장 도중 장례 행렬을 바스티유 광장으로 이끌면서 '거사'를 일으켰다. 봉기 참가자의 3분의 2는 노동자 계층이었다. 이들은 하룻밤 만에 파리 동쪽 지구를 장악했으나 투입된 정규군 2만5000명과 맞서게 됐고, 군인 73명과 시위대 93명이 사망하면서 봉기는 진압됐다.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이 '6월 봉기'를 재조명한 사람이 바로 빅토르 위고였다. 위고는 사건 당시 튈르리 정원에서 희곡을 쓰던 중 총성을 듣고 현장으로 가다가 바리케이드에 둘러싸여 오도 가도 못하게 됐고, 기둥 사이로 간신히 몸을 피했다. 이후 '레미제라블'을 통해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1833년에 이르는 많은 인물의 장대한 이야기를 썼다. 소설 속 가상의 결사체 'ABC의 친구들'과 그 지도자 앙졸라는 문학이 형상화한 혁명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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