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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체코

체코 프라하 : 야경만 있는 게 아니야.. 문학의 도시..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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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소설가 등 문인들과 단단하게 이어져 있는 '이야기의 도시'
프라하에 스민 문학의 숨결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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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광장 시계탑에서 바라본 프라하 전경

프라하는 끝없는 이야기의 도시다. 곳곳에 신화와 전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프라하는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같은 도시다. 보기에도 아름다운 프라하의 명소들은 수많은 예술가들, 특히 시인이나 소설가 같은 문인들과 단단히 이어져 있다. 

아무리 수수한 곳이라도 보이지 않는 사연들을 알고 나면 마음에 남기 마련이다. 하물며 그곳이 프라하의 어디라면… 그 장소는 아름다움 이상의 의미로 기억될 것이다. 프라하에 스민 문학의 숨결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연금술사의 거리, 황금소로와 카프카 뮤지엄

블타바 강변에 있는 카프카 뮤지엄 / 프라하 성 입구
블타바 강변에 있는 카프카 뮤지엄 / 프라하 성 입구
프라하 성이 처음 세워진 시기는 무려 서기 8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프라하 성은 로마시대부터 고딕, 르네상스 등 천년에 걸친 유럽 건축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70,000㎡에 달하는 넓이 덕에 세계에서 가장 큰 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기도 하다.

프라하 성의 정문을 통과해 비투스 성당을 지나 동쪽 출구로 가다보면 황금소로(Golden Lane)라는 이름의 골목을 찾을 수 있다. 작은 집들이 옥수수알처럼 옹기종기 늘어선 이곳이 관광객으로 붐비는 주된 이유는 프란츠 카프카가 머물던 집이 있기 때문이다. 중세 때 연금술사들의 작업실이었다는 그곳에서 카프카 또한 언어를 가지고 20세기를 매혹시킨 연금술을 펼쳤던 셈이다.

'슈퍼맨'의 주인공 클라크 켄트처럼 카프카는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침이면 그는 슈트를 말쑥하게 차려입고는 서류가방을 들고 프라하 비즈니스의 중심지인 바츨라프 광장에 있는 보험조사국으로 출근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소설가로 변신했다. 홀로 방에 틀어박혀서는 새벽이 올 때까지 집필에 몰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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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스트라나
프라하 성을 나와 인근 말라스트라나 지구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그림엽서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골목과 거리를 지나 카를교로 향하는 길에서는 미스터리로 둘러싸인 카프카와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카프카 뮤지엄이다.

이곳에서는 카프카의 육필 원고와 소설의 초판본, 편지, 사진 그리고 그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프라하의 여러 장소들의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귀중한 자료들과 더불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의 예술관과 정신세계까지 체험하게 할 의도로 기획된 전시는 전 세계 카프카 팬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도 좋다. 카프카 뮤지엄에서 젊은 예술가가 겪었던 고뇌와 방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생 동안 사랑했던 도시 프라하의 이미지를 접하고 나면 지금까지 당신이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른 프라하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뮤즈가 머무는 자리, 카페 슬라비아

구시가지 방향으로 카를교를 건너 블타바 강을 따라 남쪽으로 걷다보면 당당히 서 있는 국립극장이 보인다. 극장 맞은편에 프라하를 대표하는 카페, 슬라비아(체코어 표기로는 Kavarna Slavia)가 있다. 1884년에 문을 연 이래 카페 슬라비아는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다. 친숙한 멜로디의 교향시 '나의 조국'을 작곡한 음악가 스메타나부터 198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사이페르트까지, 슬라비아의 단골 손님 리스트가 곧 유럽 예술사의 한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카페 슬라비아는 파리의 카페 마고,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처럼 한 도시를 대표하는 지성과 예술의 전당이다.

카를교 아경 / 까페 슬라비아
카를교 아경 / 까페 슬라비아
오리지널 토넷 체어, 짙은 갈색의 나무 테이블, 녹색의 대리석 벽과 그 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유명 인사들의 사진… 카페의 내부는 1920년대에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스타일로 한 번 리모델링한 이래 거의 변한 것이 없다고 한다. 벽 한가운데 걸려 있는 가로 2m, 세로 1.8m 크기의 유화, 빅토르 올리바의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이 1985년에 새로 걸린 것을 제외하곤 말이다.

카페 슬라비아를 즐겨 찾던 문인 중에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있다. 프라하에서 나고 자란 릴케는 대학을 마치자마자 이 도시를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시인의 마음 속에 프라하는 영원한 고향이었다. 훗날 그는 아름다운 과거의 장소, 카페 슬라비아를 무대로 한 산문집 '프라하의 두 이야기'를 썼다. 

맑은 눈으로 예술가들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였을 릴케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면 붐비는 낮 시간을 피하는 편이 현명하다. 에스프레소 향기가 맴도는 아침과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지는 밤이야말로 카페 슬라비아에 뮤즈가 찾아오는 시간이다.

황금호랑이에서 피어난 이야기의 꽃

맥주를 빼고 프라하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842년, 프라하에서 서쪽으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플젠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라거, 필스너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맥주는 체코인들에게 황금의 물이었다. 맥주 제조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체코 전역에는 수많은 술집, 즉 펍이 생겨났다. 특히 맥주의 본고장 플젠과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는 유서 깊은 펍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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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젠의 맥주박물관 전경
그중에서도 카를교에서 구시가지 광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펍 황금호랑이(U Zlateho Tygra)는 고작 10개의 테이블이 있는 작은 가게지만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프라하 최고의 맥주 맛과 카페 슬라비아 못지않은 쟁쟁한 단골 리스트 덕분이다. 

황금호랑이의 단골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체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1914~1997)이다. 체코 현대 문학을 알기 위해서는 '엄밀히 감시받는 열차(1965)'를 비롯한 그의 작품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로 체코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작가다. 

황금호랑이는 흐라발에게 맥주뿐만이 아니라 무한한 소재가 떠오르는 이야기의 샘이었다. 심지어 ‘술집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콜라주하는 작가’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이에 흐라발은 농담 삼아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이제 볼장 다 봤어요.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말이지요, 내가 자기들의 이야기를 듣고 써서 푼돈이나 끌어모았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내가 술집에 들어갈 때마다 ‘야 저기 위대한 작가가 오신다’ 이러면서 쥐 죽은 듯이 맥주만 핥는답니다.”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던 흐라발은 종종 이곳에서 독자들과 만나거나 낭독회를 열곤 했다. 황금호랑이에서 흐라발과 맥주잔을 부딪히던 손님 중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바츨라프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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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츨라프 광장
 
맥주와 이야기에 훈훈해진 마음을 안고 구시가지 광장에서 고딕 양식의 틴 성당과 시계탑까지 구경했다면 이제 신시가지로 장소를 옮겨보자. 신시가지에 있는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 문화와 비즈니스의 중심지다. 그리고 바츨라프 광장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극작가이자 반체제 운동가요, 정치인이었던 바츨라프 하벨이다.

1968년 프라하, 자유와 인권을 호소하는 하벨의 연설에 바츨라프 광장에 모인 수많은 프라하 시민들이 열쇠와 작은 종을 흔들며 환호한다. 1960년대 말 일어난 공산주의 독재에 대한 저항 운동, 이른바 ‘프라하의 봄’의 한 장면이다. 잠시 꽃피던 ‘프라하의 봄’은 소련의 탱크 아래 좌절되었지만 하벨은 포기하지 않고 반체제 운동을 통해 불씨를 이어간다. 어디까지나 글과 말이라는 비폭력적 수단을 통해서였다.

1989년 11월 그는 다시 수십만 군중이 운집한 바츨라프 광장에 선다. 40년 이상 지속된 철의 장막이 거센 변화의 바람에 일거에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피를 흘리지 않고 벨벳처럼 부드럽게 이루어진 정권 교체라는 의미에서 하벨은 이 역사적 사건을 ‘벨벳 혁명’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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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앤 선즈 서점
그해 대통령에 당선된 하벨은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될 때까지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으로, 이후 2003년까지는 체코 대통령으로 봉직했다. 대통령 시절에도 그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잊은 적이 없었다. 변함없이 글을 썼고 청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걸어 다녔으며 펍에서 사람들과 어울렸다. 

2011년 12월, 프라하 시민들은 또 한번 바츨라프 광장에 모여들었다. 75세를 일기로 타계한 하벨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이듬해, 프라하 국제공항은 그의 이름을 따서 바츨라프 하벨 공항으로 불리게 된다. 여행의 자유 또한 체코에서는 하벨과 국민들이 독재와의 긴 투쟁 끝에 얻어낸 값진 성과였기 때문이다.

프라하의 문학 사랑은 지금도 여전히 뜨겁다. 체코 작가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들이 이곳에서 독자들과 만난다. 작가들의 도시인 동시에 독자들의 도시이기도 한 것이다. 여행지의 서점에 들르는 취미를 가진 여행자라면 말라스트라나의 셰익스피어 서점을 비롯한 독립 서점들을 탐방해보자. 매년 열리는 프라하 작가 페스티벌 기간에 맞춰 여행하는 것도 좋겠다. 

책은 우리를 프라하로 부르는 초대장이다. 그리고 프라하는 우리를 시의 세계로 들이는 문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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