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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네덜란드

네덜란드 : 聖杯를 들자… 전통을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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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피스트 수도원 맥주

벨기에 남단에 있는 오르발 수도원. 맥주 마니아들이 성지로 여기는 트라피스트 수도원 맥주 양조장 중 하나다.
벨기에 남단에 있는 오르발 수도원. 맥주 마니아들이 성지로 여기는 트라피스트 수도원 맥주 양조장 중 하나다.

'가톨릭 수도원에서 맥주를 만들어 마신다'라고 하면 놀랄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도원의 맥주 양조는 중세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길다. 과거 유럽은 물이 깨끗하지 않아 마시면 배가 아프거나 심지어 전염병에 감염돼 사망할 정도로 위생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편이 더 안전했다. 그리하여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스스로 마실 맥주와 와인을 직접 만들게 됐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벨기에에 있는 성(聖)식스투스 수도원(Saint Sixtus Abbey)에서 생산하는 '베스트펠레테렌(Westveleteren) XII(12)'는 맥주 평가 사이트 레이트비어(ratebeer.com)에서 전 세계 맥주 수천 종 중에서 1위 자리를 몇 년째 지킬 정도로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으며 '세계 최고의 맥주'로 불리기도 한다.

◇전통 엄격히 지켜 만드는 세계 최고 맥주

트라피스트 맥주는 성배(聖杯)처럼 생긴 샬리스(chalice) 잔에 마셔야 제맛을 음미할 수 있다.
트라피스트 맥주는 성배(聖杯)처럼 생긴 샬리스(chalice) 잔에 마셔야 제맛을 음미할 수 있다. / 김성윤 기자 
성식스투스 베스트펠레테렌 맥주는 '트라피스트 맥주(Trappist Beer)' 중 하나다. 1664년 생겨난 트라피스트회(Trappist)는 좀 더 엄격한 기독교 초기 수도회 회칙을 엄수하고자 하는 가톨릭 개혁수도회. 트라피스트 맥주는 '트라피스트회 소속 수도원에서 만드는 맥주'란 뜻이다. 엄격한 규율을 중시하다 보니 맥주도 전통을 고스란히 지켜 생산한다. 현재 벨기에·네덜란드·이탈리아·미국·오스트리아 4개국에 공인 트라피스트 맥주양조장 11곳이 있는데, 이 중 벨기에 6곳과 네덜란드 2곳이 가장 유명하다〈지도 참조〉.

트라피스트 맥주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전통과 원칙을 철저히 지켜 만드는 에일(ale) 맥주라는 공통점 말고는 수도원마다 맛도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맥주는 보리와 물을 섞어 만든 물에 효모와 호프를 넣어 만드는데, 효모가 위에 뜨는 '상면발효' 방식으로 만들어지면 에일이고 바닥에 가라앉는 '하면발효' 방식으로 만들어지면 라거(lager)이다. 국내 생산되는 대부분 맥주는 맑고 투명하고 황금빛을 띠는 라거이다. 라거는 19세기 만들어진 비교적 현대적 제조 방법이다. 옛날에는 모든 맥주가 에일 방식으로만 만들어졌다. 효모를 바닥에 가라앉히려면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며 장기 숙성해야 하는데, 이러한 기술이 과거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에일은 라거에 비해 맛과 향이 풍부하다.

가장 일반적인 트라피스트 맥주는 '두벨(Dubbel·더블)'과 '트리펠(Tripel·트리플)'이다. 두벨은 알코올 도수가 약 6~7.5도 정도로 약간 센 편이며 붉은 구릿빛을 띤다. 캐러멜과 구운 빵 같은 구수한 맛이다. 트리펠은 알코올 도수 7.5~9.5도 정도로 두벨보다 높지만 빛깔은 오히려 더 밝은 오렌지색이나 금색을 띤다. '콰드루플(Quadrupel)'이란 맥주도 있다. '벨기에식 다크 스트롱 에일(Belgian Dark Strong Ale)'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수가 8~11도로 꽤 높다. 색깔은 적갈색이다. 맛과 향이 깊고 풍부하고 복잡하다. 구운 빵과 캐러멜, 과일 향에 때로는 건포도나 건자두 맛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베스트펠레테른XII가 벨기에식 다크 스트롱 에일에 해당한다. 인기는 높은데 공급량은 충분하지 않아서, 수도원에 찾아가더라도 하루 구매할 수 있는 양이 제한돼 있기도 하다.

트라피스트 맥주는 성배(聖杯) 모양의 샬리스(chalice) 잔에 마셔야 한다. 단지 수도원에서 만든 맥주라서가 아니라, 트라피스트 맥주 특유의 향과 풍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윗부분이 크고 넓은 샬리스 잔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트라피스트 수도원 맥주
◇자전거 타고 숲길 달려 마시는 맥주 맛

아헬(Achel) 수도원은 경내에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테라스 바가 있다. 베스트말러(Westmalle)나 오르발(Orval)처럼 수도원 길 건너편에 멋진 테이스팅룸(시음실)이 있는 경우도 있고, 로슈포르(Rochefort)나 순데르트(Zundert)처럼 수도원 주변에서는 마실 수 없고, 인근 마을까지 가야만 그 수도원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대부분 벨기에·프랑스 국경 혹은 벨기에·네덜란드 국경 근처 작은 마을이나 숲속에 있다. 한국으로 치면 속세를 벗어나 산 깊이 지어진 불교 사찰과 비슷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트라피스트 수도원까지 가는 대중교통편은 없다. 렌터카를 운전해서 가거나 기차로 인근 도시까지 이동한 뒤 자전거로 가야 한다. 유럽의 기차는 별도 요금을 내면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 맥주를 너무 마시면 돌아오는 길에 운전을 할 수 없으니 최대한 수도원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는 것이 좋다. 몇몇 수도원은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기도 하니, 홈페이지를 꼼꼼히 찾아보도록 한다. 교통이 좋지 못해 불편하지만, 플랑드르(벨기에와 네덜란드 북부 지역)와 프랑스의 아름다운 전원(田園)을 만끽할 수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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