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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페인

스페인 아빌라 : 죽어서도 못 나오는 봉쇄수도원 室內엔 첼로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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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빌라

大데레사 성녀 "초심 되찾자", '맨발 가르멜 수도회' 창립
16세기 수도원 개혁운동 産室… 수녀, 연주하며 수도생활 달래

'태양의 나라'라는 스페인이지만 봉쇄수도원으로 쓰였던 공간은 서늘했다. 지난 8일 찾은 스페인 북서부 고성(古城) 아빌라의 엔카르나시온 수도원.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50㎝ 두께는 되어 보이는 돌벽 안의 공간엔 작은 창문 몇 개 외에는 빛도 들지 않았다. 심지어 나무로 만든 출입문도 두툼했다. 한 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나오지 못한다는 봉쇄의 의미가 가슴에 꽂혔다.

스페인의 아빌라 성벽 밖에 서 있는 대 데레사 성녀의 석상. 맨발 차림에 하느님을 바라보며 펜을 들고 영성 서적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스페인의 아빌라 성벽 밖에 서 있는 대 데레사 성녀의 석상. 맨발 차림에 하느님을 바라보며 펜을 들고 영성 서적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김한수 기자
실내엔 각종 냄비와 프라이팬 등이 보인다. 주교와 사제들의 제의도 여러 벌 걸려 있다. 수백 년 전 수녀들이 만들어 봉헌하거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것들. 그런데 뜻밖의 물건이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돼 있다. 기타, 북, 피리 심지어 하프도 있다. 작은 실내악단을 구성할 만한 악기들이다. 봉쇄수도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비감함 혹은 '숨죽이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엄격할 때는 엄격하되 그 안에서 바깥세상과 똑같이 밥도 먹고, 음악도 연주하며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느님과 만나는 곳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제·수도자들에게 "얼굴 찌푸리지 말라"고 하는 '복음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 정신이 아닌가 싶었다. 박물관 마당 건너엔 지금도 수녀 10여명이 봉쇄 수도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엔카르나시온 수도원은 아빌라의 대(大) 데레사(1515~1582) 성녀가 지금도 봉쇄수도원의 대명사로 불리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창립한 곳, 16세기 수도원 개혁운동의 요람이다. 예수회의 이냐시오 성인보다 한 세대 후에 태어난 데레사 수녀는 '펜'과 '맨발'이 트레이드 마크다. 맨발은 수도원 개혁을, 펜은 그의 영성을 상징한다.

주방용품과 더블베이스가 함께 전시된 엔카르나시온 수도원 박물관 내부.
아빌라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의 꿈은 '하느님 만나기'였다. 7세 때 순교자가 되겠다며 오빠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출을 감행한 당돌한 소녀였다. 12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수녀원에서 자란 그는 기도 중 예수님이 매질당하는 환영을 보게 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으며 큰 신심(信心)을 얻는다. "그때까지 나의 생활은 나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후부터 나의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생활이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이라고 한 순간을 연상시킨다.

그런 열정의 성녀에게 당시 수도회들은 초심(初心)을 잃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것으로 보였다. 자신이 몸담은 가르멜회도 그랬다. 이스라엘 가르멜산(山) 은수자(隱修者)로부터 시작돼 13세기 서유럽으로 이주한 가르멜회는 14세기 전성기를 맞았다가 점차 초기 정신이 희미해졌다. 흑사병과 온갖 전쟁 그리고 종교개혁 등 당시의 뒤숭숭한 시대 상황이 수도원 담까지 넘어 수행 분위기를 흐린 것. 데레사 성녀는 청빈, 기도 생활, 침묵과 고독, 공동체 정신의 회복을 외치며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열었다. 맨발은 초심 회복의 상징이었다. 1562년 성녀의 나이 40대 후반의 일이다.

아빌라 위치 지도
이후 성녀는 스페인 전역을 당나귀 타고 다니며 봉쇄수도원을 세웠다. 모두 17곳에 이른다. 그의 삶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집필하고, 수도원을 여는 것이었다. 마지막도 길 위에서였다. 유언도 "주여 나는 성 교회의 딸입니다"였다. 그의 유해가 모셔진 살라망카 외곽 알바 데 토로메스 수도원 성당. 제대 옆 성녀의 상(像)은 보자기가 아닌 박사모(帽)를 쓰고 있다. 1970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교회학자로 선포된 성녀의 영성을 기리고 있는 것.

엔카르나시온 수도원 마당 바닥, 십자가를 중심으로 새겨진 동심원 7개는 신앙의 열정을 보여준다. 넷째 동심원까지는 자발적인 노력으로 다가갈 수 있지만 다섯~일곱째 동심원은 하느님이 이끌어주셔야 닿을 수 있는 경지다. 그가 남긴 '천주 자비의 길'(자서전) '하느님 사랑에 관한 명상' '개혁 가르멜 창립사' '완덕의 길' '영혼의 성' '영적 보고' '하느님께 외침' '수도원 시찰방법' 등의 저술은 일곱째 동심원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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