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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페인

스페인 만레사 : 劍 대신 순례지팡이 든 이냐시오 '回心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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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만레사

전쟁영웅 꿈꾸던 청년 이냐시오, 만레사 동굴에서 1년동안 수행… '예수회' 창립해 가톨릭 새바람
프란치스코 교황도 예수회 소속

스페인 동부 작은 도시 만레사의 한 바위산 동굴. 그 위에 지은 성당 밖을 나서자 맞은편으로 평지돌출로 우뚝 솟은 몬세라트 산이 보인다. 스페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동굴의 하나이지만 이곳은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를 창립한 로욜라의 이냐시오(1491~1556) 영성(靈性)이 탄생한 곳이다.

1522년 3월 25일 이 동굴에 거적을 걸친 걸인 행색의 청년 이냐시오가 다리를 절며 들어섰다. 스페인 북서부 로욜라의 영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 영웅을 꿈꿨다. 그러나 1521년 팜플로나에서 벌어진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두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수차례 뼈를 깎는 수술을 받았지만 완치되지 않았다. 이때 입은 부상은 '귀부인의 기사'를 꿈꾸던 이냐시오를 '성모의 기사'로 변모시켰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인들의 삶이 영웅담보다 더 가슴 뛰게 하는 것을 알고 회심(回心)한 후 이냐시오는 집을 떠나 몬세라트에 도착해 자신이 기사(騎士) 시절 보물보다 아꼈던 검(劍)을 이곳 성모상에 바치고 대신 순례 지팡이를 짚었다.

몬세라트 산속의 수도원(위). 예수회를 설립한 이냐시오 성인(아래 가운데)은 이 수도원을 찾아와 성모상 앞에 기사의 옷과 칼을 바치고 수도자로 거듭나게 된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올리브나무를 깎아 만든 탁발통.
몬세라트 산속의 수도원(위). 예수회를 설립한 이냐시오 성인(아래 가운데)은 이 수도원을 찾아와 성모상 앞에 기사의 옷과 칼을 바치고 수도자로 거듭나게 된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올리브나무를 깎아 만든 탁발통. /주교회의 제공·김한수 기자
지난 1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순례단이 찾은 이 동굴에선 한 여인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500년 전 이냐시오는 이곳에서 1년 가까이 손발톱과 머리카락을 깎지 않고 단식하며 기도했다. 동굴 성당 앞 진열장에 전시된 탁발통은 이냐시오가 500년 전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 탁발통을 들고 마을에 내려가 구걸하다가 동굴로 돌아올 때마다 몬세라트 산을 바라보며 회심의 순간을 잊지 않고 되새겼을 것이다. 이냐시오는 왜 골짜기, 봉우리마다 은수자(隱修者)들이 수도하고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는 몬세라트 산을 떠나 이 동굴로 왔을까.

동굴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동굴 바로 오른편으로는 약 500m 거리에 대성당, 그 아래로는 마을이 보인다. 동굴에서 속세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이냐시오는 세상을 등지고 혼자 수행하거나 수도원 울타리 안에 갇히는 영성을 바라지 않았다. 훗날 '영성수련'(1548)이란 제목의 책으로 정리된 이냐시오의 영성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하기', '활동 중에 관상(觀想)하기', 그리고 가난과 겸손 등이 대표적 특징. 그것은 속세로 뛰어드는 현실적·적응적 영성이었다. 르네상스와 과학 발전에 대한 대응도 능동적이었다. 이를 위해 예수회는 그때까지 수도회의 격식도 걷어버렸다. 수도회를 특징짓는 복장과 수도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시간도 없앴다. 격식 차릴 시간에 한 걸음 더 뛰자는 것. 그래서 예수회원들은 "우리는 항상 한 발을 들고 산다"고 한다. 일반적인 수도회의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3대 서원(誓願)에 더해 '교황에 대한 순명'을 서원하는 예수회는 언제든 교황의 명이 떨어지면 달려나갈 준비가 돼 있다는 것. 중세 가톨릭 수도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로 무장해 가톨릭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한 이냐시오 영성은 16세기 종교개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던 가톨릭 입장에서 프로테스탄트 파도를 막는 방파제였고,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선교엔 개척자였다.

10일 오전 방문한 스페인 북부 로욜라의 이냐시오 생가(生家) 옆에 세워진 예수회 수도원 식당 입구벽엔 중국 관복(官服)을 입은 마테오 리치를 비롯해 터번을 두르는 등 각 지역 복색을 한 초기 선교사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모두 '현지의 풍습과 전통을 존중하라'는 예수회의 선교방식을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스페인의 한 작은 동굴에서 작은 샘물처럼 시작된 이냐시오의 영성은 500년 동안 전 세계로 흘러 지난 2013년 마침내 첫 예수회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의 전통답게 세상의 눈높이에 맞춰 바티칸을 개혁하며 정체상태였던 가톨릭교회에 쇄신의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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