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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이탈리아 나폴리 : 영국 '격식'과 나폴리 '개성'의 절묘한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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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手가 말한다… '패션 디렉터' 남훈의 나폴리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어보는 건 정보와 인격 모두를 나눌 소중한 기회다. 특히 누군가 제안하는 식당을 보면 그의 취향이 많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간 이탈리아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터득한 결론. 특히 우리와 음식이 잘 맞는 이탈리아에는 여러 좋은 식당들이 많은데, 한 가지 유용한 팁이라면 스테이크는 피렌체 사는 이들의 추천이 믿음직하고, 해산물 식당이라면 남부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알리지 않으면서 몰래 가는 곳이 최선이라는 점. 그리고 그들은 대개 나폴리 출신일 것이다.

남부 이탈리아의 보석 같은 도시 나폴리. 2015년 봄. 오랜만에 다시 나폴리를 찾았다.

나폴리의 고급 슈트 매장 내부. 이탈리아답게 해를 품은 듯한 다채로운 색깔이 상징이다.
나폴리의 고급 슈트 매장 내부. 이탈리아답게 해를 품은 듯한 다채로운 색깔이 상징이다. / 남훈 제공 
아름다운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나폴리는 원래 가난한 동네였다. 그 나폴리의 뒷골목을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
아름다운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나폴리는 원래 가난한 동네였다. 그 나폴리의 뒷골목을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
하지만 이런 환상적인 광경이 나폴리의 전부는 아니다. 직항이 없어 파리를 거치는, 총 열다섯 시간이 소요된 비행길. 하지만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에서 편히 앉아 쉬기는 틀렸다. F1 레이서를 '찜 쪄 먹을' 정도로 도시를 폭주하는 나폴리 택시 운전사의 위용을 몸으로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남부나 근교 국가에서 흘러들어오는 인구 때문에 빈민, 사회 문제도 상당히 안고 있다.

이 도시에 관해선, 강도나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고, 절대 물건을 놔두고서 한눈팔면 안되며, 거리 곳곳이 쓰레기와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 가득하니 잘 모르는 곳을 다니지 말란 이야기를 먼저 듣게 된다. 나 역시 오래도록 이탈리아 남부의 흉흉한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정작 물건 한번 잃어버린 적이 없고, 일주일 내내 그 지방 음식을 먹어도 전혀 질리지 않으니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물론 슈트(suit)라는 주제로 들어가서 이 도시를 생각해 보면 나폴리는 뭔가 엉뚱한 구석이 좀 있긴 하다. 역사적으로 고급 문화들이 융성했던 곳도 아니고, 슈트라는 복장을 만들어 전 세계로 전파시킨 도시는 나폴리가 아니라 영국 런던인데, 정작 최고급 정장들은 나폴리산이 더 유명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국가이고, 세계적으로 출중한 패션 브랜드들을 많이 배출한 국가답게 이탈리아인들의 문화적 영역에 대한 자부심은 매우 센 편이다. 특히 슈트에 관한 나폴리 장인들의 자존심은 지구의 다른 그 어느 도시보다 하늘을 찌른다. 로마 제국의 후예가 로마가 아니라 바로 피렌체라고 굳건히 믿는 피렌체 사람들처럼, 나폴리인들은 정장이라는 문화를 발명하지도 않았으면서 그것의 적통 계승자로 스스로 여기는 것이다. 물론 1351년에 이미 재봉 장인 길드를 위한 기술 시험을 시행하였다고 할 만큼, 이 도시에는 장인들의 존재감이 강했다. 하지만 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작은 도시일 뿐이고 유럽의 무역 허브로서 기능할 만한 규모나 비즈니스가 없었다.

아름다운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나폴리는 원래 가난한 동네였다. 그 나폴리의 뒷골목을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
아름다운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나폴리는 원래 가난한 동네였다. 그 나폴리의 뒷골목을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
최고의 미항을 보여주는 나폴리의 항구.
최고의 미항을 보여주는 나폴리의 항구.
나폴리 위치도

 다만 청출어람이란 말처럼 나폴리는 영국으로부터 이어진 남성복 유산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새로운 가치를 생성해낸 것이다. 역사적으로 영국 귀족들의 로마 제국이나 르네상스 사랑은 유별났다. 그래서 늘 피렌체와 로마에서 역사를 견학하고 나폴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탈리아 여행이 그들에겐 필수적인 교양 과정 같은 것이었다. 건물과 음식도 좋고 와인도 훌륭했지만 단 하나, 날씨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소재가 두껍고 속이 꽉 찬 영국식 복장은 나폴리 같은 휴양지에선 문제였던 것이다. 나폴리 장인들은 어렵지 않게 그 문제를 해결했다. 영국식 복장의 외견은 그대로 유지한 채, 슈트 안에 덧대는 안감이나 패드를 제거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가벼워진 뼈대에 지중해 빛 컬러를 반영하는 소재들을 결합한 것이 말하자면 지금 전 세계에 군림하는 나폴리 슈트인 것이다.

특히 나폴리는 보수적인 풍으로 탄생한 남성 정장을 어느 정도 개성적으로 입는 테크닉을 발휘하도록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패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나폴리 슈트는 로봇 팔처럼 직선이 아닌, 어깨에서부터 손목으로 내려오는 소매 라인이 점점 좁아지는 입체적인 형태를 통해서 슈트에도 매력적인 선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소매에는 버튼끼리 포개지면서 실제로 열리는 버튼 홀을 시도하여 많은 남자가 자신의 개성에 따라 버튼을 열고 잠그게 하여주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나폴리는 아름다움과 추함, 전통과 카피(copy), 장인과 장사꾼이 동시에 존재하는 역설의 도시이고, 모든 역사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서 진전된다는 변증법의 증명이다. 도시 전체가 가난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집집마다 삯바느질이 발달하게 됐다. 가슴이 철렁할 가격의 수제 슈트를 입는 신사가 거리로 나갈 땐 원래 하던 롤렉스를 놔두고 이름 없는 시계로 바꿔 차는 곳. 스페인, 프랑스, 그리고 영국이라는 열강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은 불행한 역사를 가졌지만, 각각의 나라에 전승되어 온 복식 전통과 그들만의 장인이 만나 독특한 나폴리 스타일을 만들어낸 곳. 이곳에도 이제 여름이 다가온다. 잔잔한 바람과 햇살 좋은 바다 그리고 푸른 하늘. 나폴리에 갈 땐 정말 나폴리에서 만든 가볍고 부드러운 옷을 입고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갑은 놔두고서. 나폴리는 그런 곳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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