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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러시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 러시아 문화 수도, 예술의 꽃 피워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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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올해 개관 250주년을 맞은 에르미타주박물관. 눈 덮인 궁전 광장 가운데 알렉산드르 1세를 기리는 탑이 장엄하다.
올해 개관 250주년을 맞은 에르미타주박물관. 눈 덮인 궁전 광장 가운데 알렉산드르 1세를 기리는 탑이 장엄하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시 관광개발위원회 제공

겨울, 도시는 인위로 가득하다. 전력을 다해 화려하다. 운하와 네바강을 건너는 500여개의 다리, 도열한 그리스·로마·비잔틴·고딕·로코코의 건물은 단 한 번의 동어반복 없이 쓰인 한 권의 책이다. 유럽식 유행이 러시아산 청동과 화강암에 들어와 일으키는 우아한 발작, 이곳을 사랑했던 도스토옙스키는 선언한다. "이곳은 모든 것이 카오스다…. 모든 것이 삶이요, 움직임이다." 지난 10일 저녁, 늪 위에 세워진 계획도시에 닿았다. 북방의 수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다.

◇도시의 동맥, 네프스키 대로

도로변, 가로등이 켜진다. 이 예술의 시가지는 전장에서 태어났다. 표트르 대제가 1703년 스웨덴의 침공을 막으려 도시를 세웠고, 전쟁 후인 1712년 아예 수도를 이리로 옮겼다. 시인 푸시킨이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라 읊었듯, 도시는 유럽의 최고급 문물을 한껏 받아들여 치장했다.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정권 탄생지였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900일간 포위돼 40만명이 아사(餓死)한 주검의 땅이었으며, 그럼에도 끝내 미(美)를 포기하지 않은 곳. 도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 연대기의 중심에 네프스키 대로가 있다. 도시의 방문자는 모두 이 거리를 걸어야 한다. 길이 4.5㎞, 폭 30m가 넘는 이 도시의 동맥.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집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속 모든 어리석고 황망한 주인공이 활보하던 이 거리에, 웬만한 명물은 다 있다. 공사 기간 40년, 공사 중 10만명이 죽어나갔고, 돔에만 100㎏의 황금을 칠한 이 도시의 랜드마크 성 이삭 성당, 사탕 같은 양파 지붕을 한 피의 사원, 반원형의 회랑에 9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늘어선 카잔 대성당 등 이 동네의 경복궁이자 숭례문인 굵직한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나른한 땅거미 끝에 밤의 위력이 닥친다. 겨울엔 해가 오전 10시쯤 떠 오후 4시면 진다. 차라리 밤의 거리라 해도 좋다. 소비에트 시절 방공호 같은 지하철 역을 벗어나면, 도로 전선 위에 걸린 램프가 트리 장식처럼 반짝인다. 연애의 기분처럼 몽롱하다. 푸시킨이 연적과 권총 결투를 치르던 날 아침 레모네이드를 마셨다는 '문학 카페'를 찾는다. 1816년 문을 열어 당대 러시아 최고의 문인들이 죄다 다녀간 곳이다. 푸시킨은 졌고, 죽었고, 이후 레모네이드는 판매되지 않는다. 그가 앉았다 갔다는 창가 쪽 세 번째 자리에 다객이 앉아 130루블쯤 하는 커피를 홀짝인다. 붉은 벽지 옆, 창밖에 얼지 않은 운하가 흐른다.

저녁 무렵의 네프스키 대로.
저녁 무렵의 네프스키 대로. / 상트페테르부르크시 관광개발위원회 제공
◇건축과 그림과 음악의 향연

간헐적으로 눈이 날린다. 바람은 살을 엔다. 박물관은 이럴 때 가는 것. 세계 3대 박물관 에르미타주로 간다. 올해 개관 250주년을 맞았다. 네프스키 대로의 끝에 다다라 무게 600t, 높이 74m짜리 알렉산드르 1세 탑이 시력을 압도한다. 그 앞 에메랄드색 건물, 98개의 바로크 양식 조각상으로 지붕을 꾸민 겨울궁전이 에르미타주의 본관이다. 3층, 400개의 방에 고대 시베리아부터 20세기 프랑스 미술까지 총 300만 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대리석 기둥, 천금석과 공작석의 세공이 끝없다. 한국어 음성안내기를 든 채 거장의 화폭에 정신이 혼미할 때쯤, 창밖을 내다본다. 어김없이 네바강이 흐르고 있다. 멀리 바실리 섬에 있는 피터 폴 요새도 반짝인다.

러시아의 색을 보고 싶다면, 러시아 박물관으로 가면 된다. 11~21세기 러시아 미술의 진수가 총망라돼 있다. 드미트리 레비츠키, 일리야 레핀 같은 러시아 거장의 그림을 만날 절호의 기회. 러시아 박물관 앞 예술광장 가운데 푸시킨 동상이 팔을 벌리고 있다. 19세기 극장 마린스키에 가 발레 '지젤'을 보다 잠이 들어도 좋다. 2시간여의 환각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에서도 빛나는 도시

13일 오전, 도시 외곽으로 간다. 볼이 얼얼할 정도로 눈이 날린다.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푸시킨 시(市)로 가는 길, 스탈린 시대의 튼튼한 주택들을 지나 모스크바광장에서 잠시 차를 세운다. 레닌 동상의 코트 깃에 강철의 서리가 피어 있다. 젊은이들이 눈싸움을 한다. 지난밤,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을 찾아가다 골목에서 먹던 블린(Blin·러시아 팬케이크)처럼, 눈밭이 가로등 불빛에 노릇노릇하다. 그 위에 누가 손가락으로 '페테르부르크 2015'라 써놨다.

눈길을 더 달리면 예카테리나 궁전이다. 눈 내리는 여름궁전, 예카테리나 1세 여제가 세운 러시아에서 가장 호화로운 이 공간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호박방. 방 전체가 5.6t의 호박으로 장식돼 있다. 입에 넣고 싶을 정도로 달콤한 색이다. 각 방의 문이 일직선상에 있는 '안필라다' 양식으로, 금박 된 보리수 장식과 도자기 벽난로 등 이곳에서 저곳까지 한눈에 이어진다. 응접실에선 어린이를 위한 신년맞이 콘서트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 예술의 총아에서, 꼬마들은 새로운 눈을 뜨게 될지 모른다. 점심 무렵, 쇄빙선처럼 해가 건너온다. 도스토옙스키의 '페테르부르크 연대기'를 다시 펼친다. "도시의 미래는 아직도 이데아 속에 있다."

인포메이션
여행수첩 

에르미타주 400루블. 월요일 휴관. 수요일 오전 10시~오후 9시. 나머지 오전 10시 30분~오후 6시. 사진 촬영 허용. hermitagemuseum.org

러시아 박물관 350루블. 화요일 휴관. 목요일 오후 1~9시. 나머지 오전 10시~오후 6시. 사진 촬영 허용. rusmuseum.ru

문학카페 레스토랑 겸 카페. 매일 저녁 피아노 연주. litcafe.su

마린스키 극장 작품과 좌석에 따라 500~5000루블 이상. 인터넷 예매 가능. mariinsky.ru

예카테리나 궁전 400루블. 화요일·마지막 월요일 휴관. 오전 10시~오후 4시 45분. 월요일은 오전 10시~오후 7시 45분. 호박방은 촬영 금지. eng.tzar.ru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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