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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베트남

베트남 하노이 : 쌀국수처럼 부드러운 젊음이 나를 맞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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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

하노이 중심에 있는 호안끼엠 호수. 남북으로 길게 이어졌는데, 녹음이 짙어 피서에 좋다. ‘환검’(還劍·검을 돌려주다)이란 뜻을 지녔다.
하노이 중심에 있는 호안끼엠 호수. 남북으로 길게 이어졌는데, 녹음이 짙어 피서에 좋다. ‘환검’(還劍·검을 돌려주다)이란 뜻을 지녔다. / 주한 베트남대사관 제공

예상대로 연휴 직전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승객 절반은 연휴를 맞아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연휴를 맞아 고향을 찾는 베트남 노동자였다. 여행지로 향하는 한국인인 내 옆에 고향으로 향하는 베트남 청년이 앉았다. 기내 음료 서비스가 끝났을 즈음 그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베트남에 도착할 때까지 청년은 나를 계속 '루나'라고 불렀다. '누나'라고 발음을 바로잡아 주었지만, 유난히 살가운 태도에 루나면 어떠냐 싶었다.

누나보다 훨씬 발음이 어려운 그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그가 스물다섯 살이라는 것, 안산의 가구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2년 만에 고향에 다녀오게 되었다는 것, 연휴 보너스로 가족 선물을 많이 샀다는 것, 고향은 비행기에서 내려 다시 몇 시간쯤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작은 시골 마을이라는 것, 그가 번 돈으로 그의 남동생이 하노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것, 여동생들도 모두 대학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 그런데 한국의 겨울은 너무 춥다는 것 등등, 그가 어눌한 한국어로 했던 얘기들은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공항에 도착해 외국인과 내국인으로 나뉘는 입국 심사대 앞에서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하노이 시내까지는 영국 아가씨 두 명과 택시를 합승했다. 택시는 곡예 운전을 했다. 하노이가 가까워질수록 도로 가득 셀 수 없이 늘어난 오토바이들은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그 이상 곡예 운전을 했다. 나는 고향 마을로 향하고 있을 베트남 청년을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했다. 내가 처음 알게 된 베트남은 월남전 파병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오래된 흑백사진을 통해서였다. 사진 속 아버지는 군복 차림에 선글라스를 끼고 야자수에 기대 서 있었다. 한껏 웃음을 짓고 있어 어쩐지 전쟁터가 아닌 유원지에서 찍은 사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물론 청년이었다.

하노이 구시가 '여행자의 거리'라고 하는 '항박'의 어느 골목 어귀에 숙소를 정한 뒤 이내 거리로 나섰다. 삼시 세 끼를 쌀국수로 먹고 싶을 만큼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거리의 모든 식당을 차례로 섭렵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여행 후반에는 쌀국수보다 덮밥과 볶음밥에 매료되었고, 단골 식당도 생겼다.

1 하노이 야시장. 주민들의 유연한 몸짓이 활기를 만들어낸다. 2 소설가 이신조.
1 하노이 야시장. 주민들의 유연한 몸짓이 활기를 만들어낸다. / 이신조씨 제공 2 소설가 이신조.
하노이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난 것은 카메라를 들고 찾은 야시장에서였다. 항박은 동남아시아의 여느 휴양 도시와 닮은 듯하면서도, '이방인의 해방구'라는 느낌까진 들지 않는다. 젊은 상인, 젊은 연인, 젊은 부부, 그들의 어린 아이, 수많은 외국인이 섞여 있지만 그곳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엄연히 그들이었다. 그들이 유난해서도 배타적이어서도 아니었다. 군살 없이 가는 팔다리가 무심한 듯 유연하고 재바르게 움직이는 거리. 중국도 프랑스도 미국도 끝끝내 차지하지 못한 나라. 나는 사탕수수로 즉석에서 만든 주스를 마시며, 9300만 명이 넘는 베트남 국민의 평균 나이가 26세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하노이는 그 자체로 청년인 도시였다.

하노이역 맞은편에 있는 '문묘'는 1076년 세워진 베트남 최초의 유교 사원이다. 이후 유교 대학으로 변모해 매년 경쟁률 높은 과거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문묘가 세워진 지 천년쯤 지난 그날 오후, 고풍스러운 정원 이곳저곳에 미술 대학 학생들이 스케치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몇몇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스케치하는 자세를 잡아주기도 했고, V자를 그리며 장난스러운 단체 사진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들 역시 비행기에서 만난 청년처럼 밝게 웃으며 살가운 호의를 보였다. 이내 한류 스타인 가수와 배우의 이름들이 내 귓전을 메웠다. 패기나 의욕, 도전 정신 같은 것이 맨 첫 줄을 장식하지 않는 젊음, 천진하고 무구한 젊음, 갓 데쳐낸 흰 쌀국수 다발같이 양순하고 부드러운 젊음….

서울로 돌아가는 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어두운 도로를 달려 공항으로 향했다. 젊은 운전기사는 빗길을 과속했다. 나는 다시 아버지를 생각했다. 젊은 아버지는 월남전 당시 부대 내 지휘관의 지프를 모는 운전병이었다. 세상을 떠났기에 베트남은 아버지가 가본 유일한 외국이다.

[그래픽] 베트남 하노이 명소
[여행 정보]

하노이에는 여러 호수가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호안끼엠 호수’는 하노이 시민들의 대표적 휴식처이자, 하노이를 찾는 외국인들이 여행 출발지로 삼는 곳이다. 15세기 왕이 이 호수에서 신비의 검을 낚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주소: Dinh Tien Hoang, Hoan Kiem). 호안끼엠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항박’ 거리는 호텔 식당 상점 등 여행객들을 위한 각종 편의 시설이 밀집한 여행자의 거리이다. 이곳에 있는 여행사들을 통해 하롱베이, 사파, 박하 등 베트남 북부의 다른 여행지를 둘러볼 수 있는 투어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베트남 관광청 www.travelvietnam.co.kr).

베트남의 국민 영웅 ‘호찌민’의 묘역도 하노이의 명소다. 특수 방부 처리되어 유리관에 보존된 호찌민의 시신을 직접 볼 수 있다(주소: 2 Ong Ich Khiem, 관람 시간은 오전 8~11시이며, 시신 관리와 보존을 위해 9~12월에는 관람이 금지된다). 묘역 부근의 혁명 박물관, 역사 박물관, 호아로 수용소 등을 함께 둘러보면 베트남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베트남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퍼(pho·국수), 껌(com·밥), 반짱((Banh Trang·라이스페이퍼), 짜조(Cha Gio·스프링롤), 고이꾸온(Goi Cuon·월남쌈), 반미(Banh Mi·쌀바게트) 등의 기본 용어를 알아두면 편리하다. 보(Bo)와 가(Ga)가 각각 소고기와 닭고기를 가리킨다.

베트남이 쌀국수만큼이나 커피로도 유명하다는 사실은 이제 제법 알려져 있다. 베트남은 브라질에 버금가는 커피 생산 대국이다. 식민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의 영향으로 커피 문화는 일찍이 베트남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노점의 낮은 의자에 앉아 진한 아이스커피에 달콤한 연유를 넣은 베트남식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베트남의 스타벅스라는 ‘하이랜드 커피(Highlands Coffee)’는 맛과 서비스 모두 외국의 프랜차이즈 카페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주소: 1 Dinh Tien Hoang, 여러 체인점을 두고 있지만, 항박 거리 시티뷰 건물 3층에 있는 카페가 가장 유명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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