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은 일은 시작이 단호해야 한다. 일단 시작하면 없던 용기도 샘물처럼 차츰차츰 솟아난다. 하지만 누구라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는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 막상 내일부터 110킬로미터 트레킹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까, 배낭을 싸는 내내 걱정이 파도처럼 출렁인다.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산을 어떻게 넘지? 사방이 나무로 뒤덮인 천연 원시삼림도 통과해야 한다던데. 그 컴컴한 숲에서 굶주린 곰이나 여우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면? 우리나라는 겨울인데 여긴 아직도 여름처럼 더운 게 뱀이 겨울잠 자기는 좀 이른 것 같은데. 앞만 보고 걷다가 스르르 뱀이 나타나서 내 발을 덜컥 물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아줌마와 나, 여자 단 둘이 걷다가 산적이라도 만난다면? 어머나!'

아무래도 여자 단 둘은 위험하지 싶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여행은 안전이 우선이다. 짐 실을 말 한 필과 건장한 남성이 안내자로 동행하는 게 좋겠다. 저녁 먹고 한가해진 틈을 타서 목씨 부부에게로 갔다. 내 생각을 주섬주섬 이야기했다. 그러자 목씨 부부가 나를 바라보고 웃는다. 목씨 아저씨는 '위험하면 집사람을 보내겠느냐?' 하는 표정이고, 아줌마는 '그 길은 눈 감고도 갈 수 있어요.' 하는 자신만만한 얼굴이다.

아저씨 말이, 일행이 단출할 때는 짐 싣는 말이 오히려 짐이 된다고 했다. 태자관 너머에서 시집 온 아줌마가 트레킹 루트에 대해서라면 일가견이 있단다. 지금도 친정 갈 때 차를 타고가 아닌, 두 발로 걸어서 산을 넘어간다고 했다. 이제껏 그 길에서 산적은커녕 좀도둑도 만난 적 없단다. 인적이 좀 드물긴 해도, 순수한 산간 마을 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고 염소나 양을 방목하는 안전지대란다. 대신에 트레킹 기간을 여유 있게 잡기로 했다. 해가 완전히 뜬 후 출발해서 해 지기 전 다음 숙소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말이다. 대다수의 여행자들이 3박 4일에 걸쳐 걷는 길을, 우리는 4박 5일에 걸쳐 걷기로 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지난밤에 챙겨둔 배낭을 어깨에 멨다. 제법 묵직한 게 10킬로그램쯤 되려나. 전날 물 때문에 고생했던 터라 1.5리터짜리 생수를 따로 두 병이나 챙겼다. 아줌마는 우리가 점심으로 먹을 바바를 넉넉하게 부쳤다. 아저씨는 트레킹 중 갈증해소는 물보다 귤이라며, 광에서 비닐봉지에 귤을 넉넉히 담아 와 건넸다.

오늘 최대 난코스는 해발 3천5백 미터의 태자관. 물이 아주 귀해서 사람이 살지 못하는 무인지대로, 사막 같은 산이란다. 산세가 얼마나 험한지, '원숭이는 엉엉 울면서 넘고, 새는 날아서 18일, 사람은 걸어서 3개월이 걸린다.' 는 살벌한 전설이 전해진다.

쨍한 햇살의 환영을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대문을 나섰다. 아줌마가 앞서고 내가 뒤를 따른다. 진정한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던가. 아줌마 등에 매달린 가방을 보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줌마가 초등학생용 책가방을 메고 길을 나선 것이다. 파란색 바탕에 오색찬란하게 그려진 대형 미키마우스가 압권이다.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들이 1학년 때 사용하던 것이란다. 아줌마는 신발도 등산화가 아닌 바닥 얇은 단화를 신었다. 차림새만 보면 장거리 트레킹이 아니라 약수터에 물 뜨러 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까 우린 아직 서로의 이름도 모른다. 내가 스토우청에 머문 이틀 동안 아줌마는 온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들고나는 손님 뒤치다꺼리하랴, 아이들 돌보랴, 늙은 노모 돌보며 살림하랴, 한가하게 앉아서 손님들과 대화 나눌 시간이 없다.

"시엔 쯔 워 지에샤오 이샤(먼저 제 소개를 할게요). 제 이름은 고승희예요. 아줌마 이름은 뭐예요?"
"워 씽 허(나는 화(和) 씨랍니다)."

한사코 성만 부르면 된다며 아줌마가 활짝 웃어 보인다. 아줌마는 올해 결혼한 지 14년째로 나이는 마흔네 살이라고 했다. 스토우청에서 태어난 목씨 아저씨와 산 너머 마을에서 태어난 아줌마는 국경보다 높은, '해발을 초월한 사랑'을 했다. 해발 3천5백 미터의 태자관을 무시로 넘나들며 뜨겁게 연애 했단다. 물론, 주로 산을 탄 쪽은 목씨 아저씨. 수줍고 과묵한 줄로만 알았던 목씨 아저씨, 은근히 낭만적이다.

사실, 아줌마와의 대화가 처음부터 원활했던 건 아니다. 내가 사투리 억양과 발음이 심하게 섞인 아줌마의 표준어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두세 번씩 되묻곤 했다. 아줌마가 발음하는 '춥다(冷)'의 표준어 발음 l?ng과 '피곤하다(累)'의 lèi는 내내 헷갈렸을 정도다.

시야에서 차츰 멀어져 가는 스토우청과 계단식 논밭이 투명한 햇살을 받아 봄처럼 싱그럽다. 30분쯤 걸어 작은 마을을 지나자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듬성듬성 나무가 자라고 있는 황토 언덕이 나타났다. 사막처럼 황량하고 매우 건조하다. 저만치 발 아래로 한줄기 진사강이 혁대처럼 길게 흐른다. 햇살을 머금은 강줄기가 근사하다. 여기가 바로 호도협에 이은 진사강의 두 번째 깊은 협곡, 태자협이다. 이 언덕 너머에 우뚝 솟은 회색빛 높다란 절벽산은 사나이처럼 용맹스럽다. 머리에 눌러쓴 모자처럼 산 정상에 새하얀 양떼구름이 걸려 있다. 높은 해발고도가 실감난다.

"여기가 물 없다는 태자관이에요?"
"저 앞에 회색빛 절벽으로 이뤄진 산 보이죠? 그게 태자관에요. 스토우청에서 태자관 입구까지는 10킬로미터로 우린 이제 겨우 반쯤 지나왔어요."

날씨 때문인지 해발고도 때문인지 영 속도가 나질 않는다. 도저히 11월 중순 같지 않다. 7,8월의 열기가 온 땅을 휘감았다. 땡볕도 이런 땡볕이 없다. 내 가슴에도 진사강이 흐른다. 가슴 사이로 땀이 강줄기처럼 줄줄 흘러내린다. 진즉에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쓴 아줌마가 부럽다. 한국에 두고 온 모자와 선글라스가 자꾸 떠오른다. 현지인이랑 똑같은 모습으로 트레킹 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부러 챙겨오지 않았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발상이었다. 땀 닦던 노란 손수건을 성냥팔이 소녀처럼 얼굴에 묵었다. 작은 차양이 만들어졌다. 한결 시원해진 기분이다.

숨을 헐떡이며 아줌마 그림자를 따라 한 시간쯤 더 걸었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지고 멀리서 나직이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귀똥과 말똥도 등장했다. 마을이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아줌마가 산에서는 말똥이든, 나귀똥이든 가축의 흔적을 따라가면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안슈와롱이라는 마을에서 잠시 휴식 후, 다리를 건너자 낯선 풍경으로 접어든다.

"자, 이제부터 태자관이 시작됩니다."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며 아줌마는 물 없는 산에 들어선 것을 반긴다. 크고 작은 회색빛 바위가 뒤덮인 비탈길이다. 6,70도에 가까운 급경사가 이어진다. 그 위 돌무더기를 두 발로 걷기란 불가능하다. 두 손도 발이 된다.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바닥이 건조해서 흙과 돌이 흘러내리기도 한다. 바위와 돌밭을 기어오르느라 손바닥은 벌써 만신창이. 온몸에 힘을 주고 오르자니 항문이 튀어나올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변이 나온 것 같아 깜짝 놀라곤 했다. 지금까지 흘린 땀이 진사강의 잔잔한 한줄기라면, 태자관 넘느라 쏟은 땀은 강에 홍수가 나서 범람한 수준이다. 댐 수문을 연 것처럼 땀이 콸콸 쏟아졌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험한 산길. 점점 높아지는 고도 때문에 질식할 것처럼 숨이 차다. 사람은 걸어서 3개월, 새는 날아서 18일 걸린다는 전설이 실감난다. 산등성이가 깎아지듯 험해서 나는 새도 오르기 어려워 보인다. 걷다가 한 뼘 옆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면 그대로 즉사할 판. 온 정신을 걷는 데 집중했다. 해발 2천4백 미터쯤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웅장한 자연이 눈에 들어온다. 검푸른 산맥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바다처럼 넘실거린다. 태자협이 그 사이를 비집고 깊고 그윽하게 흐른다.

기진맥진 힘들어도 입맛은 그대로. 아무런 밑반찬도 없이 심심한 바바 두 장을 뚝딱 해치웠다. 아줌마가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을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마실 때 나는 귤을 까먹고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4시간 만에 1.5리터 생수 한 병이 동났다. 그렇게 먹고 마셔댔는데도 전혀 화장실 생각이 없다. 땀으로 빠져나간 수분을 보충하는데 다 소모된 모양이다.

해발 2천4백6십 미터 지점에 이르자 60미터 길이의 인공터널이 나타났다. 터널을 통과하자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본 풍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정의 장관이 펼쳐진다. 푸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 검푸른 산맥. 가파른 협곡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진사강이 발밑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처음으로 '이 여행을 떠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우러나는 순간. 거대한 자연 앞에서 점보다 작은 나를 발견하는 순간. 그리고 힘든 첫날을 잘 견뎌준 내가 기특해지는 순간이다.

한 시간쯤 더 걷자 두 번째 터널이 나왔다. 이번에는 90미터 터널이다.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했다. 두 터널을 뚫는데 무려 60년의 세월이 걸렸다니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버지와 아들에 이어진 '대를 잇는 투혼'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덕분에 나는 '새는 날아서 18일, 사람은 걸어서 3개월' 걸린다는 태자관을 4시간 만에 무사통과!

지금까지와는 완연히 다른 풍경이다. 푸른 소나무 숲이 이어진다. 숲의 향기에 머릿속이 맑아지고, 완만하고 그늘진 오솔길을 걷자니 발걸음도 상쾌하다. 쨍한 햇살도 자취를 감추고, 한여름 같던 불볕더위도 물러갔다. 한들한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헉헉거리던 숨소리도 어느새 잦아들었다. 아무 말 없이, 온몸으로 느끼는 이 자연이 참 좋다.

등산이든 장거리 트레킹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처음, 첫날, 첫걸음이 가장 힘든 법이다. 지나온 길이 벌써 까마득할 정도로. 자연을 음미하고 스스로를 가슴 깊이 들여다보겠다던 다짐 따위는 이 길에서 무용지물이었다. 호사였다. 그저 내 한 걸음 한 걸음의 힘을 믿고 한 발 한 발을 내디뎠던 하루. 먼 길을 갈 때는 아득히 멀리 있는 목적지를 바라보고 걷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내 한 걸음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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