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과수폭포
무슨 말이 필요할까. 대자연 앞에 서면 사실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다. 인생 별 거 없어! 마치 세월을 초탈한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도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그렇다.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를 촬영하겠다며 헬리콥터를 타고 아마존 줄기를 보고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엣지를 향해 렌즈를 당길 때 '젠장, 지금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회한이 가슴을 치면서 눈물 한 방울 찍 흘렀다.

거대한 말발굽, 지구는 네모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이과수 폭포는 한 마디로 말발굽 같았다. 그 옛날 거대한 말이 이 곳을 박차고 하늘로 올라갔을까? 그 발굽 모양의 폭포는 사실 화산 폭발의 결과물이다. 이곳의 우기는 11월에서 다음해 3월까지이다. 그때 폭포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물의 양은 1초에 275만 리터에 이른다. 이런 장면을 폭포 위에서 내려다 보기에 망정이지 그 아래에서 마주한다면 지구가 네모라고 해도 믿을 만큼 엄청난 장면이다.

미국의 32대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그의 아내는 일리노어 루즈벨트다. 그녀는 한번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엄청난 장관에 압도당한 나머지 "오, 불쌍한 나이아가라여(Oh, poor Niagara!)!"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나이아가라는 쨉이 안되는 것이다. 미국의 나이아가라, 아프리카의 빅토리아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꼽히는 이과수 폭포(Foz do Iguaca)는 인디오 말로 장대한(Aca) 물(Igu)이라는 뜻. 그리고 그 이름처럼 이과수 폭포의 물줄기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그리고 파라과이가 만나는 접점에서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를 완벽하게 무시한 채 흐르고 있다.

이과수 공항에서 아르헨티나로 갈라지는 교차로를 지나 20분쯤 신나게 달리니 '이과수 국립공원(Iguacu National Park)'이라 새겨진 표지판과 푸른 아가미를 떠억 벌린 공원의 입구가 보인다. 이곳이 관광 명소임을 알게 하는, 현대식으로 지어진 깨끗한 관리사무소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2층 버스. 우리는 익숙한 여행자의 발걸음으로 버스 뒷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이어 푸르르, 엔진 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몸을 털어준 버스가 출발한다. 울창한 정글 사이를 손바닥과 뺨으로 느끼며 달리는 그 기분이라니! 열대림과의 마라톤이 마음의 빗장을 제멋대로 풀어헤칠 때쯤 두둥, 두둥, 북소리 같은 울림이 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자, 오너라, 이과수 폭포여! 평균 60~80m의 낙차로 쏟아지는 수백 개의 물줄기가 땅을 진동 시키고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그야말로 미세스 루즈벨트가 내뱉은 감탄사가 절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어떤 수식어로 표현해도 그 감동에는 아마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눈을 감고 상상해보라. 1억2000만년 전 용암이 굳어 생긴 검은색 현무암 위로 세워진 수백 개의 선연한 흰 물기둥 또 기둥들. 신들을 위한 신전 같기도 하고, 우리의 영민한 리포터 현경이의 표현처럼 거대한 피아노 같기도 하다. 단지 우리는 이 장관에 감탄하고, 또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댈 뿐이었다.

악마의 아가리 속으로

감히 "마쿠꼬 사파리를 하지 않았다면 이과수 폭포를 절반 밖에 보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마쿠꼬의 경험은 특별한 것이었다. 우리는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제공하는 차를 타고 20분 정도 열대림을 가로질러 갔다.

드디어 마쿠꼬 사파리의 시간이 돌아왔다. 우선 선장의 지시에 따라 안전복을 입고, 꼼꼼하게 액체 모기약을 바른 다음 25인승 모터보트에 차례로 올라탄다. 유유히 강을 따라 관람하는 것은 잠깐. 그렇게나 순해 보이던 선장이 갑자기 해적처럼 돌변해 폭포수 아래로 돌진해 갔다. 폭포가 바로 당신의 눈 앞에 있는 것이다. 손만 쭉 뻗으면 이대로 껴안아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와아아아~! 눈도 뜰 수 없을 정도로 세찬 물세례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폭포의 소리도 다리 위에서 들었을 때와 사뭇 다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이과수

그리고 우리는 젖은 몸을 말릴 새도 없이 커다란 헬기에 올랐다. 특별히 우리는 촬영을 위해 가장 좋은 자리를 부탁했는데, 조종석 옆 자리가 상석 중에 상석이란다. 가장 안 좋은 좌석은 중간, 그 중에서도 가운데 열. 남은 좌석이 이 뿐이라면 차라리 느긋하게 마음먹고 다음 헬기를 기다리는 게 나을 거라고. 하늘에서 무지개의 끝과 악마의 목구멍이 피우는 물안개를 헤치는 느낌은 오늘의 대미를 장식할 만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이과수는 과연 수많은 전설을 낳을만한 위용을 갖고 있었다. 신들이 무슨 격파 대회라도 열었던 것일까? 평화롭게 흐르는 이과수 강 한 가운데에 어떻게 이런 구멍이 뻥 뚫릴 수 있었던 것일까? 덩치 큰 신이 사나운 주먹으로 힘껏 내리친듯한 이과수강과 폭포의 부조화는 헬기 위에서 봤을 때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행여 카메라에 녹음될까 터져 나오는 신음을 눌러가며 촬영을 하던 우리에게 홍 반장이 악마의 목구멍에 얽힌 전설을 들려줬다.

이곳이 아직 우리의 한강처럼 평온하기만 하던 그 옛날, 이과수강 옆에 뱀신인 음보이(M'Boy)를 섬기는 까이강게스(Caigangues)라는 인디언 부족이 살고 있었다. 이 부족은 신앙의 증거로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그에게 바쳐왔는데, 신의 여인이 되면 평생 결혼도 못 하고 음보이 신만을 섬겨야 했다. 마침 추장에게는 나이삐(Naipi)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 자태가 어찌나 고운지 그녀가 지나갈 때면 흐르던 강물도 경탄하며 멈출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에 그녀는 음보이 신에게 바쳐지기로 결정된다.

드디어 음보이 신의 결혼을 축하하는 예식을 치르는 날. 나이삐를 남몰래 사랑하던 마을 전사 따로바(Taroba)가 그 누구도 생각치 못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바로 신에게 바쳐질 나이삐를 카누에 싣고 도망가기로 한 것. 이를 알게 된 음보이 신은 당연히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이것들이 감히! 뱀의 형상을 한 음보이 신이 몸을 비틀며 포효하자 갑자기 땅이 흔들리며 이과수강 하류의 지면이 쩍 갈라지면서 거대한 골짜기가 됐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본 이과수 폭포. 결국 따로바와 나이삐는 폭포의 물살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음보이 신의 노여움은 죽음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나이삐를 폭포의 낙수를 고스란히 견뎌야 하는 큰 바위로, 따로바를 그 가장자리에 사는 빨메이라라는 나무로 만들어 평생 서로 그리워하도록 만들었다고. 흥미로운 건 실제로 악마의 목구멍의 물살이 떨어지는 그 자리에 전설처럼 커다란 암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의 가호가!

촬영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기념품 판매점에서 요상한 물건을 보았다. 이것은??? 이히힛 꼴보기 싫은 녀석에게 갖다 주면 표정이 어떨까?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손가락을 끼운 팔뚝 조각품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락없는 욕설인데, 이곳에서는 그것이 욕이 아니라 '신의 가호가!'를 표시하는 형상이라고 했다. 키키키 신의 가호? 해서, 나는 그것을 대여섯 개 사서 귀국, 평소 나를 괴롭혔던 선배 PD 세 사람에게 하나 씩 선물하고 나머지는 보관하기로 했다.

'어허허!! 선배님들!!! 이게, 그러니까…어허허!!!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라니깐요~~~신의 가호 몰라? 아!! 가오 말고, 가호라니깐요!!! 이런 니미럴 줘도 지랄들이야'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 선배들, 조각품으로 내 머리를 내려치겠다며 3박4일을 따라다니더라.

잉카 트레일
자연보존 위해 하루 200명만 입장… 4000m 高山을 꿈 꾸듯 걷다

남미 대륙 잉카 트레일(Trail) 시작 전날 밤의 일기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루 200명으로 인원을 제한하는 마추픽추 트레킹. 1000년 전부터 잉카 문명의 전사들이 밟아 다진 역사의 길이다. 3박 4일을 길에서 먹고 자며 잉카의 유적을 따라가다 보면, 세계적 불가사의 마추픽추(Machu Picchu)가 마지막 날 등장한다. 전 세계 트레커들의 꿈이자 잃어버린 공중도시를 찾아가는 길. 가슴 벅찬 일정이지만 고산병(高山病)이 걱정이다. 특히 2일 차에는 하루 1100m의 고도 차를 극복해야 한다. 내 심장이 버텨낼 수 있을까. 5년 동안 내 발에 꼭 맞게 길든 낡은 운동화 한 켤레에 의지해 볼밖에."


	구름에 둘러싸인 안데스가 저 아래 있다.
잉카 트레킹 3일째 되는 저녁. 야영지였던 해발 3600m의 푸유파타 마르카는 전에 없던 풍광을 잠시 허락했다. 구름에 둘러싸인 안데스가 저 아래 있다.

	머리 위까지 오는 배낭을 메고 돌계단을 오르는 포터들
푸유파타 마르카는 구름 위의 도시라는 뜻. 왼쪽 사진은 머리 위까지 오는 배낭을 메고 돌계단을 오르는 포터들.

최고 높이 4200m, 총 43㎞의 안데스 산맥을 3박 4일 동안 걷는 잉카 트레일을 다녀왔다. 산 밑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공중 도시.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수수께끼의 제국 잉카(약 1200~1533)의 하늘 신전. 그래서 더욱 태양의 도시였던 마추픽추로 향하는 길이다.

마추픽추는 전 세계 여행자의 꿈이었지만, 이 비밀의 공중 도시에 접근하는 통로는 세속화된 지 오래였다. 가장 인접한 도시인 아과스칼리엔테스(AguasCalientes)까지 기차를 타고 들어간 뒤, 전용 셔틀버스를 타고 30분쯤 올라가는 방법이다. '잉카 트레일'은 이 현대의 통로를 거부한다. 자신의 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잉카 시대로 돌아가, 그들이 건설한 하늘 도시의 유적을 만나며, 아찔한 높이와 경사의 안데스 산맥을 온몸으로 따라 걷는 것이다.


	마추픽추 전경
마추픽추 전경

	잉카 트레일 고도 변화
잉카 트레일 고도 변화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로 꼽히지만, 모두가 이 소망을 실현할 수는 없다. 페루 정부가 이 길의 보존과 유지를 위해 하루 입장객을 200명 이하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름 성수기 중 원하는 날짜에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6개월 이전에 신청하고 허락을 기다려야 한다. 또 개인적으로 갈 수도 없다. 히말라야 트레킹처럼, 정부 허가를 받은 현지 여행사에서 전문 가이드, 포터와 함께 팀을 꾸려 출발해야 한다. 현지 포터가 야영을 위한 텐트와 식사를 책임지고 여행자는 자신의 짐을 담은 배낭을 메고 출발하는 식이다. '잉카 트레일'이 국내 매체에 소개되는 일은 처음. 3박 4일 체험기를 싣는다.

1911년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하이럼 빙엄이 발굴해 세계에 소개했다. 산자락에서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비밀 도시다. 잉카 최전성기인 9대 파차쿠텍 왕의 궁전이라는 설, 여름 별장이라는 설, 신전이라는 설, 아마존 정벌을 위한 전초기지였다는 설 등 다양하다. 활자가 없었던 잉카이니만큼, 확인할 길은 없다. 가장 놀라운 것은 돌을 다루는 솜씨. 현세에도 불가능한 기술력으로 농경지와 제단, 신전, 집을 지었다. 크게는 361t의 돌들을 종이 한 장 들어가지 않게 아귀 맞췄다.


	본페루 고유의 전통의상을 입은 소년·소녀들.
본페루 고유의 전통의상을 입은 소년·소녀들.

	사야크 마르카의 돌계단
사야크 마르카의 돌계단

여행수첩

▲ 3박 4일 잉카 트레일 비용은 1인당 미화 560달러부터 시작한다. 최대 16명까지 한 팀에 참여할 수 있는데, 그 숫자에 미달하면 1인당 비용이 상승하는 식이다. 전문 가이드와 포터가 동반한다. 일반적으로 텐트와 침낭, 식사, 그리고 마추픽추 입장료·셔틀버스비(70달러)를 포함하고 있다. 하루 200명으로 트레킹 허용 인원 제한. 
www.incatrailperu.com에서 허가받은 여행사와 입장 가능한 날짜 등을 안내하고 있다. 현지화는 솔. 1달러에 대략 3솔 수준이다.

▲기자는 페루 여행사를 이용했지만, 현지에 도착해 보니 잉카 트레일 라이선스를 받은 한국인 여행사도 있었다. 길 여행사. 1인당 750달러에 저녁은 김치찌개 등 한식을 제공한다.
cafe.naver.com/cuscoperu 070-8253-9294

▲10~3월은 우기다. 특히 2월은 잉카 트레일 정비 기간으로 쉰다. 1년 내내 아름다운 풍광이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3월과 4월을 가장 추천하는 편이다.

▲방수 점퍼와 트레킹 운동화, 랜턴, 선글라스와 모자, 자외선 차단제는 필수다. 햇볕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산악 지형은 시도 때도 없이 비를 뿌린다. 마추픽추의 12월은 여름이지만 새벽에는 4~5도까지 떨어진다.

▲마추픽추의 진입 관문인 쿠스코까지는 여러 번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인천-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애틀랜타, 애틀랜타-리마, 리마-쿠스코가 이번 일정에 선택한 여정이다. 물론 운항 횟수는 적지만, LA나 마이애미에서 갈아타면 총 비행 횟수를 한 번 줄일 수 있다. 페루 관광청 한국사무소. 070-4323-2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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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여행기 

세계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도시 '페루 수도 리마'

다양한 역사·문화·음식·풍미를 느낄 수 있는 도시투어코리아 | 조성란 기자 | 입력 2014.11.1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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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코리아=조성란 기자] 세계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도시로 페루의 소도 '리마'가 꼽혔다.




페루관광청은 페루의 수도 리마가 미국의 리딩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오뜨 리빙 매거진(Haute Living Magazine) 선정 '세계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도시' 12곳 중 한 곳으로 선정 됐다고 11일 밝혔다.




리마는 가파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곳으로, 역사, 문화, 음식, 페스티벌 등 다양한 풍미가 한 데 모이는 곳이다. 특히, 스페인 정복 이전 시대의 고고학 유적지를 비롯해 수많은 역사 유물 등을 보유하고 있어 박물관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리마는 태평양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어 광활한 바다와 현대적 삶을 모두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또한, 페루는 해안, 정글, 고산지대 등에서 온 다양한 원재료와, 스페인이 잉카를 정복하면서 도입된 서구 요리법이 페루만의 독창적인 음식 문화를 만들어내 남미에서도 손꼽히는 미식강대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센트럴(Central)', '아스트리드 이 가스통(Astrid y Gaston)' 등 남미 최고의 레스토랑 50 어워즈에서 수상한 레스토랑들이 페루의 수도 리마에 대거 밀집해 있다.




한편, 페루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마추픽추는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가 뽑은 '세계 최고의 여행 명소'로 뽑힌 바 있다.





청춘,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이다.

처음 도쿄에 내렸던 1993년 봄부터 지난해까지의 내 여행은 그 청춘에 속했다. 어떤 날은 에든버러의 축제를 꼭대기에서 찍기 위해 성곽의 가장 가파른 곳까지 올라갔고, 어떤 날은 사륜구동 자동차를 끌고 한겨울 로키 산맥을 달렸으며, 어떤 날은 타는 듯이 뜨거웠던 한여름의 그리스 노천시장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이 모든 날과 시간 곳곳에 아찔함과 절망, 그리고 다음 행보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함이 숨어 있었다. 평생을 여행과 함께했던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가 그의 저서 <헤세의 여행>을 통해 말했던 “여행의 시작은 일상의 단조로움, 타인과 우연히 함께하고 낯선 풍경을 관찰하는 데 있다”는 여행의 근본적인 가치를 20대와 30대의 나는 결코 알지 못했다. 청춘은 그 한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결코 지각할 수 없다. 그것은 그리워할 때, 그것이 소중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다시 오지 않는 뜨거운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성의 시간 속에서만 가치를 갖는다.

나영석 PD의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는 이제 막 청춘을 잃어버린 40대 남자 세 명이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싱싱한 감각을 여행을 통해 되찾는다는 콘셉트의 ‘청춘물’이다. 할배들의 여행(<꽃보다 할배>)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미래성을 보여주었고, 누나들(<꽃보다 누나>)은 남에게 보여야 하는 삶을 사는 ‘나이 찬’ 여자들이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 없는 낯선 땅에서 담백하게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전해주었다. 반면 유희열과 이적, 윤상 이 세 남자는 시곗바늘을 청춘으로 되돌려놓고 철없고 순수했던 청년 시절로 돌아간다. 기다란 막대기에 카메라를 매달고 빙빙 돌리며 마치 주문처럼 “우리는 청춘이야!”라고 외치는데, 물론 어색하고 멋쩍은 분위기가 감돌긴 한다. 세 남자에게 청춘은 이미 ‘낯선 시대’가 됐다.


	페루

시청자는 안다. 그들의 물리학적 나이가 청춘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건 라오스로 떠난 진짜 ‘청춘팀’의 여행이 아니라(그들은 진짜 20대다), 여전히 청춘이고 싶은 40대 남자들의 달라진 여행법이다. 인생에서 걸어온 시간이 두 배 늘어난 만큼 대응은 유연해졌고 낯선 아이들과 쉽게 친해졌다. 어깨를 들썩이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여유를 보인다. 서로가 돋보이기 위해,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핏대를 세워야 했던 20대의 치기 어리고 날 선 감정이 없어서 보는 사람이 편안하다. 나이가 들면서 고마운 건, 불필요한 힘이 빠진다는 거다.

부유한 은행원으로 살다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타히티 섬의 마력을 예술로 승화시킨 폴 고갱은 40대 남자들의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 40대에 낯설고 이국적인 아시아에 머물렀던 헤르만 헤세의 여행이나, 유럽 도시를 전전하며 가난해도 자부심 있게 살았던 헤밍웨이의 삶은 떠나 있음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대한민국 40대 남자의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청춘을 찾겠다고 아내와 아이에게서 ‘윤허’를 받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지구 반대쪽에 있는 나라로 가서 잠깐만이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또는 20대의 나처럼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열망은 사무실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앞날이 위태로워지는 현실에 부딪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난다는 건 우리가 잠깐이라도 꿈꾸듯 청춘과 악수할 수 있는 기회다. 한 번쯤 내려놓고 떠나보길 권한다. 기왕이면 정말 잘 모르는 낯선 곳으로. 고요하고 단단한 내면을 지닌 파블로 네루다가 우연히 들른 마추픽추에 반해 <마추픽추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마흔한 살 때였다. 용기가 필요한 40대 청춘에게 이 책의 가슴 뛰는 문장을 권하고 싶다. 진흙 오븐에서 갓 구운 빵 냄새가 진동하는 쿠스코의 뒷거리를 걷거나, 외국인부터 아이까지 누구나 넋을 잃고 입을 벌리게 만드는 잉카인들의 마추픽추 꼭대기에 서거나, 아마존과 고산지대, 해안가의 미식 재료가 즐비한 미식의 수도 리마에서 기분 좋게 먹고 마시며 흥청대는 동안 청춘의 바늘은 돌아올 것이다.


	페루

정확히 첫 월급날부터 내 청춘은 봉인되었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있었다. 버킷리스트 첫 줄에 걸쳐놓은 마추픽추에 오르리라는 다짐은 지구 반대편보다 먼 달나라 이야기였다.

유명 PD의 영상 덕분에 먼지 쌓인 버킷리스트가 꿈틀거린다. 20년 동안 갇혀 있었던 청춘의 문이 다시 열린다. 여행의 꿈을 다시 꾼다. 떠날 수 있다면, 우리는 아직 모두 청춘이다.

최보순은  여행, 레저 전문 홍보회사인 GEOCM의 대표로 페루 관광청 한국사무소에서 소장을 맡고 있다. 여행잡지, 항공사, 관광청, 해외 리조트의 한국사무소 등 여행과 관련된 곳에서만 일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루어진 폭넓은 여행 경험으로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소개하고 있다.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최보순 페루관광청 한국사무소 소장

지구 반대편의 나라 페루. 태평양, 안데스 산맥, 마야 문명, 그리고 아마존 정글. 이 모든 아이콘들을 잠재우고 또 하나의 자연, 사막이 우리를 기다린다. 페루의 오아시스 도시 이카(이까, ica), 태평양과 마주한 거대한 사막은 질주본능을 일깨운다. 샌드보드(Sand Board)를 타고 무한 질주를 만끽한다.

샌드보드를 즐기는 여행자들, 하얀 눈 뒤덮인 스키장이 아닌, 지구 반대편 남미 페루의 거대한 모래언덕에서 스피드를 즐긴다.

샌드보드와 샌드지프의 쾌속 질주

그것은 죽음의 사막, 거대한 모래언덕이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태평양과 마주한 거대한 사막에서 바람을 가르며 사막을 질주하고, 모래언덕의 급경사를 내리질러 쾌감을 맛보는 샌드보드의 세계에 도전하는 곳이다. 페루 리마를 출발하여 해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려간다.

쿠스코로 향하는 도로는 산악의 난코스 이외에는 해안 코스트의 평탄하고 잘 정비된 최고의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를 자랑하고 있다. 이카 주변에는 지상그림의 나스카와 잉카 제국의 중심도시 쿠스코,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등 페루에서 반드시 찾아가 봐야 할 곳이 산적해 있으므로 이카에서의 지나친 체력 소모는 금물이다.

수도 리마를 출발, 판 아메리칸 하이웨이를 남하하여 300km 지점을 지나자 도시의 기운이 저 멀리 나타난다. 웅성거리는 도시를 빠져나오자 오아시스가 우리를 반긴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신비한 모래언덕, 신기루와 같은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카는 산악의 나라 페루에서도 유명한 오아시스 도시로 1563년 스페인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도시다.

페루 특산물인 '피스코'라는 무색의 포도주 생산지로도 유명한 도시이고 이름 역시 이 도시를 흐르는 '이카' 라는 강에서 유래 되었다. 이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후아카치나(와카치나, Huacachina)' 라는 오아시스가 있다. 페루 중남부에서도 이름난 관광지로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쿠스코의 '마추픽추'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샌드보드를 타기 위해 전 세계에서 젊은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페루 이카의 거대한 모래사막, 여행자를 태운 샌드지프는 속도제한 없이 사막을 질주한다.

난생처음 타보는 샌드지프, 사막의 모래 둔덕을 비스듬히 내리 달리는 쾌속의 전율을 선사한다. 60도의 모래 경사를 직속 하강하는 샌드보드의 무한 쾌감은 무아지경이다. 샌드지프의 쾌속질주와 더불어 급경사의 모래언덕에서 즐기는 샌드보드의 짜릿함은 겨울 스키의 그것에 비해 두 배는 족히 더하다. 이 쾌속의 즐거움이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준다.

후아카치나 오아시스에 당도해야 그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이카는 샌드보드 이외에 샌드지프도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도무지 잉카 제국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모래사막과 모래언덕(sand dunes)이 사방 천지를 뒤덮고 있다. 오아시스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샌드지프가 선사하는 최고의 모험과 짜릿한 전율에 비길 바 아니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그 거대한 무인지경의 모래사막, 신비한 장관이 파도처럼 펼쳐진다.

모래언덕에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다

한대의 오프로드(sand buggy) 차량에 여섯 명이 탑승한다. 각자 샌드보드를 챙겨 들고 오아시스를 떠나 모래사막의 중심으로 향한다. 모래언덕에 힘겹게 올라서자, 사방 천지가 온통 광활한 사막이다. 갑자기 공포감이 몰려든다. 무인지경의 뜨거운 사막. 30 도의 따가운 태양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어책은 오직 고글뿐이다. 더위를 막기보다 자외선을 차단해야 한다.

얼굴이 새카맣게 타버린 운전사는 겁도 없다. 그 장막처럼 보이던 높고 험한 모래사막의 정상을 향해 끝없는 무한 질주를 시작한다. 긴장된 순간이다. 첫 출발, 경사 60도의 모래언덕 위를 미친 듯이 질주한다. 상하 좌우,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천지를 가르듯 쾌속으로 질주한다. 20여 분을 미친 듯이 달렸을까, 한두 사람씩 구토 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아예 모랫바닥에 팽개쳐진 듯 누워 일어서지 못한다. 짜릿함의 카타르시스와 동시에 오장 육부의 고통도 느껴야 한다. 난생처음 시도해보는 모래펄의 질주, 무인지경의 뜨거운 사막 위에서 느껴본 끝없는 광기다.

다시 언덕 위 가장 높은 정상에 다다르더니 곧 출발 신호를 보낸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기절해 병원에 실려간 사람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책임은 스스로의 몫이다. ‘샌드버기’라 불리는 4륜 차는 한국에서 즐기는 웬만한 놀이기구 이상이다. 벨트를 안 하면 정말 몸이 공중으로 날아갈 정도로 그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코너링과 스피드의 짜릿함을 즐기는 게임이다.

모래펄을 달린 샌드지프가 저 멀리 오아시스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타이어 공기압을 뺀 샌드지프가 모래 언덕 위를 곡예질주하고 있다.

갈증을 달래고 드디어 모래 위에서의 샌드보드가 시작된다. 과연 이 모래 위로 이 보드가 미끄러질 것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샌드보드는 쾌속질주 한다. 모래언덕을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온 사람들은 그 짜릿함에 놀라고 취해서 샌드버기를 타고 다시 모래 고지를 향해 오르기를 반복한다. 바람을 가르고 사막을 질주하며, 모래언덕의 경사를 내리질러 쾌감을 맛보는 이카의 샌드보드, 인기 만점이다.

잉카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문명의 땅 페루, 한적한 사막 위의 작은 오아시스 너머로 이처럼 환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익스트림 레포츠가 존재한다니 경이로울 따름이다. 페루와 인근 칠레북부 사람들, 볼리비아는 물론, 저 멀리 유럽과 미국에서도 찾아온다는 사막 위의 질주, 모래언덕의 샌드보드는 잉카의 땅에서 체험하는 상상치 못한 모험이며, 거친 사막의 낭만이 함께하는 스릴만점 카타르시스인 것이다.

여행정보

가는 길
리마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 페루로 가는 직항편은 없으며,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하여 리마로 가는 방법이 있다. 수도 리마에서 이카까지의 교통은 리마에서 Ormeno, Tepsa, Roggero 사의 버스와 콜렉티보(Collectivo, 승합차 등으로 운행하는 택시)가 운행 중이다. 약 4시간 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US5$ 정도, 또한 나스카 ~ 이카 사이의 버스와 콜렉티보도 매일 운행되고 있다. 리마에서 버스가 거의 매일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고 자가용으로도 3~4시간이 걸리는 곳이니 페루가 워낙 큰 나라라는 걸 생각한다면 그리 먼 곳은 아니다.

주변 볼거리
시내의 아르마스 광장에 면해있는 대성당 라 메르세 교회를 비롯한 식민지풍 거리 모습이 볼만하며, 이곳에서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고고학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10여 구에 이르는 미이라와 고대 파라카스, 나스카, 와리 문화 시대의 두개골 5,000여 개가 전시되어 있다. 두개골은 모두 변형되어 있고, 뇌의 외과 수술이 시술된 흔적을 볼 수 있다.

날씨
이카의 날씨는 영상 10도에서 30도까지 변화무쌍하기에 아침과 오후 그리고 저녁의 일교차가 크다. 아침과 점심에는 여름옷 그리고 저녁을 위해서는 얇은 가을 점퍼나 가디간 정도를 준비하면 좋을 듯 하다. 전통음식인 '세비체(Cebiche)' 라는 레몬과 고추 양념으로 만드는 생선 요리가 먹을만 하다 페루의 수돗물에는 석회질이 많기에 물은 반드시 끓여 마셔야 하고 처음 2~3일 동안은 생수를 마시는 것이 좋다.

브라질의 이미지가 축구와 삼바로 점철되는 ‘노란색’이라면, 상파울루에 처음 도착해 느낀 색깔은 ‘회색’이었다. 극심한 교통체증과 길가에서 쉽게 보게 되는 부랑자들, 그리고 잿빛 하늘은 그동안 매체를 통해 접한 ‘범죄율이 높은 도시’라는 인식을 배가시켜주는 듯했다.

루즈 역은 상파울루 최초의 기차역으로, 고풍스러운 건물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상파울루라는 도시를 단지 ‘회색 빛깔’로 치부한다면, 수도인 브라질리아보다 실제적인 경제‧문화의 도시라고 알려진 상파울루를 너무 기만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왜냐하면 고물차들과 거지들 사이로 최고급 승용차들이 지나가고, 초라한 아파트 반대편에는 호화저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기 때문이었다. 극과 극이 공존하는 이곳, 상파울루를 천천히 돌아보기로 했다.



인간미 넘치는 도시, 상파울루

상파울루의 주민들은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각각 뚜렷한 거주 구역을 형성하고 있다. 비록 인종은 다양하지만, 서로를 하나의 개체로 인정하고, 각자의 존재를 공유하는 도시 분위기는 상파울루가 가진 특색이다. 앞서 말했듯, 일면만을 보고 규정지을 수 없으며, 브라질을 포함한 전 세계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인간 중심의 도시라고 볼 수 있다.

브라질의 남동지역에 위치한 상파울루는 해발 800m가 넘는 고원에 위치하며, 도시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 남미 최대의 도시이다. 1554년 한 예수회 수도사가 전도를 목적으로 촌락을 세운 것이 도시의 기원이 됐으며, 19세기 후반 커피재배가 활발해지며 오늘날 대도시로 발전하게 됐다.

상파울루 어디에서나 쉽게 한국인들을 볼 수 있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봉헤치로(Bom Retiro)는 대표적인 한인 밀집지역으로, 2010년 공식적으로 코리아타운이 지정되기도 했다. 근처에 있는 루즈 역(Estação da Luz)에서도 쉽게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또한 루즈역 앞 공원에서는 한가로운 산책과 함께 야외에 전시된 여러 조각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역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주립 회화관(Pinacoteca do Estado)이 나온다. 주립 회화관은 1905년 창설됐지만, 19세기와 20세기의 브라질 작품 전시를 위해 재건축 되었다고 한다. 4만 5천 점이 넘는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브라질의 회화 역사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다.

회화관에서 남서쪽으로 대로를 따라 죽 내려가다 보면 성벤또 수도원(Mosteiro de Sao Bento)을 만날 수 있다. 신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뾰족한 첨탑과 네모반듯한 건물이 모여 엄숙한 인상을 준다. 수도원 내에는 웅장한 그림과 조각들, 다양한 스테인드 글라스 벽화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성상들은 러시아 망명자들이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안녕을 위해 잠시 기도를 드리고 서둘러 수도원을 빠져 나왔다.

주립 회화관에 전시된 회화 작품. 회화관에서는 브라질 회화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성 벤또 수도원의 뾰족한 첨탑과 지붕들.



문화에 취한 후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다

수도원에서의 무거웠던 마음을 추스르고 이제 상파울루의 문화를 만나볼 차례다. 하지만 상파울루에는 박물관만해도 50여 개가 훌쩍 넘는다. 또한 각 박물관에서는 날마다 전시회, 강연회, 영화제 등이 열리고 있어, 박물관 구경만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파울리스타 대로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상파울루 미술관(Museu de arte de Sao Paulo : MASP)이다. 도심 한가운데 넓게 자리 잡고 있는 이 미술관은 세계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가 가장 먼 건물로도 알려져 있다.

남미 최대의 미술관 치고는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단 한 번도 침략전쟁을 일으키지 않아 노획물 전시품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것 또한 특색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이 박물관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라파엘로, 반 고흐, 세잔, 렘브란트, 피카소 등의 작품이 1,000점 넘게 전시되어 있다. 외양보다 속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삐랑가 공원(Parque da Ipiranga)을 찾았다. 1882년 만들어진 이 공원은 세 광장 남동쪽으로 약 4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공원 내에는 1922년 세워진 독립기념상이 있는데, 포르투갈 황태자 돈 페드루 1세가 말 위에서 칼을 빼 들고 ‘독립이냐, 죽음이냐’라고 부르짖으며 브라질 독립선언을 한 곳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충성스러운 병사들의 동상들이 서 있고, 그 밑에는 돈 페드루와 왕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역동적인 동상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며, 독립에 대한 그들의 확고한 신념이 느껴지는 듯했다. 또한, 공원 내에 있는 파울리스타 박물관(Museu Paulista)은 인디오들의 생활용품과 근대 상파울루의 역사적 유품들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브라질과 상파울루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상파울루의 0번지, 세 광장

상파울루가 브라질의 중심 도시라고 한다면, 세 광장(Praça da Sé)은 상파울루의 중심인 곳이다. 이 광장은 이른바 교황청 관구 광장으로 상파울루 가의 0번가로 알려져 있다. 군사 독재 시절 지하 저항운동의 본산지로 브라질 민주화운동을 위한 집회장소로 유명하며, 상파울루 최대 거리답게 30미터도 넘는 거리들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상파울루의 중심, 세 광장. 대성당 앞 광장에는 상파울루의 방위기점과 거리 원점이 기록되어 있다.

헤뿌블리까 광장. 전철로 헤뿌블리까 역에서 내리면 되며, 일요일엔 노천시장이 선다.

넓은 대로 한복판에 뾰족하게 솟아있는 건물이 바로 세 성당(Categral da Sé)이다. 현재 성당의 모습은 약 40년간의 건축 공사 끝에 1954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나, 1552년에 처음 건축되었다는 설도 있다. 성 벤또 수도원처럼 이 성당 또한 고딕양식으로 지어져, 오래된 역사의 흔적과 어우러진 멋을 자아낸다.

세 광장에서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헤뿌블리까 공원(Praça da República)이 나온다. 흡사 한국의 명동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노천 시장이 볼만하다. 토산물과 수공예품 등을 거래하는 시장들 사이사이에는 브라질의 향토요리를 파는 노점상들도 많아 시끌벅적한 상파울루 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인종들과 마주하며, 거리를 누비다 보니 어느새 상파울루에서 처음 느꼈던 ‘회색’이 사라져 버렸다. 상파울루는 극단이 공존하는 도시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열려 있는 도시였다. 이 도시에서 여행객들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어엿한 브라질인 중의 하나인 것이다. 새로움이 낯설지 않은 도시, 상파울루는 오늘 하루도 변신을 거듭하며 남미의 상업, 산업,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 발전해 나가고 있다.


는 길
대한항공에서 LA를 경유한 항공편을 월‧수‧금 운항한다. 출발시간은 20시 45분이며, 도착시간은 11시(현지 시간)로, 약 26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시차 적용시 14시간 30분). 시차는 우리나라가 상파울루 보다 12시간 빠르다.



▲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눈으로 덮인 파이네산.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신은 지상에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찾기 힘들게 숨겨두었다."

어느 책에서인가 읽은 이야기인데 가끔 여행을 하면서 그 느낌에 절대 공감하는 여행지가 있다. 네팔의 히말라야 설산과 북아프리카의 사하라사막이 그렇고 또 하나,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가 그런 곳이다.

세계10대 절경 중의 하나이며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여행지 목록에 언제나 빠지지 않는 곳이 칠레 파타고니아의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을 가진 곳이며 풀 한 포기, 돌 하나 그리고 바람 한 점까지 모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살토 그란데 폭포.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남미의 끝 부분에 위치한 파타고니아 지방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 칠레에서는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이고, 아르헨티나에서는 로스글레시아스 국립공원이다. 두 나라의 국경을 사이에 두고 파타고니아의 절경이 펼쳐져 있는데 칠레의 대표적인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이다.

공원은 칠레 파타고니아 여행의 거점 도시 푸에르토 나탈레스를 출발하여 승용차로 3시간 정도 달려서 도착할 수 있다. 가는 도중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파타고니아 평원의 모습은 원시의 자연 그대로 단백하고 깔끔하다. 가끔 과나코라고 부르는 야마와 비슷한 동물 무리들이 떼 지어 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빙하가 떠다니는 호수.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토레스델파이네의 토레스는 스페인어로 '탑'이고, 파이네는 '푸른색'을 의미하는 파타고니아 토착어라고 한다. 푸른 탑이라는 이름은 국립공원 북측에 우뚝 솟은 삼형제봉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세 개의 높은 봉우리가 중심에 서 있으며 그 주위로 오래 전 지각변동으로 생겼다는 피오르드 지형이 드라마틱하게 어우러졌다. 옥빛의 빙하 녹은 물이 넓은 호수에 신비로운 색깔을 보여주며 고여 있다.

파이네 국립공원을 다니면서 주변을 돌아보면 광활한 대지 위에 가득 차 있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만나게 된다. 조금은 스산하고 습기 많은 날씨와 함께 차가운 기운을 많이 느끼게 된다. 파타고니아 지방 특유의 습한 날씨가 갖는 분위기인데 좋게 생각하면 전혀 오염이 되지 않은 청정한 기운이 가득하다는 맑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옥빛 호수와 어우러진 설산.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남북으로 길이가 긴 칠레는 항상 사계절이 공존한다고 하는데 이곳 파타고니아의 토레스델파이네에서는 하루에도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다. 그만큼 변화무쌍한 날씨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정말로 맑은 날씨를 보이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차갑고 강한 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기도 한다.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의 중요한 볼거리로는 파이네산의 삼형제봉과 살토 그란데 폭포, 그레이 빙하 호수의 떠다니는 빙하들 그리고 밀로돈 동굴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파이네 산의 주변은 남미 최대의 자연 경관지역인데 자연이 조각한 거대한 바위덩어리와 호수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파란색의 빙하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높은 봉우리들은 주변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파이네 폭포.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산의 골짜기마다에는 초록빛의 호수와 폭포가 곳곳에 놓여 있고 푸른 삼림과 다양한 동식물군이 분포한다. 파이네 공원의 중심에는 화강암으로 빚어진 높은 봉우리들이 중세의 고성처럼 웅장하게 늘어서 있으며 특히 양의 뿔 모양으로 생긴 거대한 봉우리는 토레스델파이네 공원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다.



▲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관리사무소.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여행자 책에서 뽑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50곳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칠레 정부에 의해 195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78년 유네스코에 의하여 국제연합의 자연보호네트워크의 일부로서 자연보호지역으로 선포되었다.



▲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주변의 파타고니아 풍경. 2011년 6월 사진)




▲ 산크리스토발 언덕언덕 정산의 식민지시대의 성벽 유적.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산티아고의 산크리스토발 언덕에는 한국사람들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도 한국 교포들이 꽤 많이 살고 있는데 한국 교포들은 이 언덕을 서울의 남산으로 부르고 약속 장소로 많이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먼 고국 땅을 그리워하면서 주변의 지명에 한국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은 미국 교포들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언덕을 오르면서 주변을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서울의 남산과 꼭 같은 느낌이 드니 말이다.



▲ 산크리스토발 언덕산티아고 시내의 전경.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사방이 평평한 분지로 이루어진 곳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대구처럼 대기 중의 공기가 정체되는 경향이 많아서 스모그도 심하고 기온도 그리 쾌적하지는 않다. 이렇게 평평한 분지의 산티아고 중심에 낮게 솟아오른 지형이 있는 곳이 산크리스토발 언덕이다. 언덕 정상에는 산티아고의 수호 성모, 마리아상이 산티아고 시내를 내려다보며 우뚝 서있다.



▲ 산크리스토발 언덕언덕의 정상에 있는 성모마리아 상.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산티아고의 수호 성모로 불리는 언덕 정상의 성모마리아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1918년 프랑스 정부가 칠레에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 뉴욕 허드슨강 입구의 리버티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것이라고 하듯 프랑스는 다른 나라 독립 100주년에 선물을 많이 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 산크리스토발 언덕언덕을 올라가는 중간의 상점들.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산크리스토발 언덕의 정상에서는 산티아고 시내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다. 푸니쿨라 라는 언덕을 오르는 이동식 기차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언덕아래 주변은 메트로 폴리타노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산크리스토발 언덕의 정상까지는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갈 수 있지만 정상으로 오르는 동안에도 많은 볼 것들이 있기 때문에 산책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서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저녁에 어둠이 내린 후에는 산티아고의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도 있고 내려오면 길가의 노천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산티아고의 시민들도 만날 수 있다.

남미를 여행하는 배낭 여행족들은 도시나 명소별로 머무는 시간은 각각 다르지만 경유지는 대부분 같은 곳을 여행하게 되는 경향이 많아서 각 나라의 도시를 여행하다보면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산티아고도 그런 우연이 많은 도시이다. 기자의 경우에도 ? 주 전에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만났던 사람을 산크리스토발 언덕 아래 카페에서 다시 만났으니.

식민지 시대에 스페인의 요새가 있었던 언덕의 정상 부근에는 식민지 시대의 성벽 흔적과 당시에 사용하였던 오래된 대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스페인 원정대가 1536년 원주민 마푸체 족의 격렬한 저항 속에서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두자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따 산크리스토발 언덕이라고 명명하였다. 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정상 부근에 나무 십자가와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 산크리스토발 언덕언덕 공원에 전시해 놓은 식민지 시대의 대포.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낮은 산이지만 산 전체를 아우르는 넒은 공원 안에는 일본식 정원과 와인 박물관 등이 있으며 산의 정상에는 높이 22m의 그 유명한 산티아고의 수호성인인 마리아 상이 우뚝 서 있다. 이곳은 1987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칠레를 방문 하였을 때 미사를 집전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마리아상의 전망대 근처에는 교회가 있으며 구시가지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동물원과 어린이 공원이 있다.



▲ 산크리스토발 언덕산티아고의수호 성모 마리아 상


카니발의 광기, 삼바드로메

매년 2월, 브라질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히우지자네이루, Rio de Janeiro)는 지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파티장이 된다. 세계 곳곳으로부터 6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오직 그 행사를 위해 리우로 날아온다. 지구의 나머지 모든 축제의 참가자와 맞먹는 수치라고 한다. 환호와 불꽃, 음악과 춤, 지치지 않는 리듬이 그들의 심장을 가속시킨다.

리우는 삼바의 도시. 카니발의 핵심은 도시를 마법의 세계로 변신시키는 삼바 퍼레이드다. 삼바드로메(sambadrome)는 700미터 길이의 퍼레이드 전용 공간으로, 축제에 참가할 삼바 스쿨들의 공식 경연이 벌어지는 장소다. 리우 곳곳에 산재해 있는 삼바 학교들은 재의 수요일 직전에 벌어지는 4일 동안의 경연을 위해 혼신의 열정을 불태운다.

팀당 1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무대 장식과 기묘한 장치들, 화려한 의상과 그에 어울리는 댄스…. 주제는 아메리칸 인디언, 모세의 기적과 같은 고전적 테마에서부터 홀로코스트의 참상,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같은 시사적인 테마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12~13개 톱클래스 그룹의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7만 명의 좌석이 꽉 차고, 가장 좋은 자리의 입장료는 3백만 원까지에 이른다.


삼바드로메는 축제의 서장일 뿐이다. 코파카바나(Copacabana) 해변을 비롯한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는 야외 퍼레이드는 리우를 광기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삼바 스쿨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살린 무대차를 앞세우고 화려한 의상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온다. 그 학생들이 아니라도 좋다. 누구든 끊이지 않는 삼바 리듬에 맞춰 춤추고, 마시고, 내일이 없을 것처럼 논다.


카니발은 온갖 색채의 향연이다.




이파네마의 소녀는 지금 어디에?

리우는 코파카바나, 레블론, 파케타, 펭야 등 세계적인 해변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비키니 왁스보다 더 심한 브라질리안 왁스를 마친 여성들은 까무잡잡한 피부를 내보이며 그 바닷가를 돌아다닌다. '카리오카(Carioca)'는 리우의 사람들, 특히 이들 해변의 소녀들을 일컫는 말이다.


보사노바는 물론 재즈의 스탠더드가 된 '이파네마의 소녀', 오리지널 앨범.


1962년 겨울, 보사노바 뮤지션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은 작사가 비니시우스 데 모라에스와 함께 이파네마 해변에서 뮤지컬에 쓰일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해안에 자주 놀러오던 아름다운 15살의 소녀, 엘로이사(Heloísa Pinheiro)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전설의 명곡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Garota de Ipanema)'가 태어났다. 모라에스는 그 곡이 태어나던 때를 떠올리며 말한다.

"젊은 카리오카의 패러다임. 소녀는 황금빛 십대, 꽃과 인어의 혼합물, 빛과 우아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또한 슬픈 모습이다. 소녀는 스스로를 바다로 향한 길로 데리고 간다. 사라져가는 젊음의 감각, 절대 소유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것은 끝없는 조수 속에서, 아름다움과 우울함을 함께 품고 있는 삶의 선물이다."


이파네마의 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엘로이사는 모델로 인기를 모았고, 1987년 브라질판 <플레이보이> 잡지에 등장했다. 2003년에는 딸과 함께 다시 그 잡지에서 몸매를 뽐내기도 했다. 그녀는 이파네마 해안에 노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의류 부티크 숍을 오픈해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티셔츠를 팔았다. 조빔과 모라에스는 이를 금지하기 위해 소송을 걸었지만 지고 말았다.




금요일은 라파의 삼바 클럽

리우의 밤은 언제나 뜨겁다. 그러나 라파(Lapa)의 금요일 밤에 견줄 만한 곳을 찾기란 어렵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수도교(Arcos da Lapa, 水道橋)와 공원(Passeio Público)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라파는 리우에서도 매우 고풍스러운 지역이다. 하지만 어느 해변보다 뜨거운 동네이기도 한다.

1950년대부터 이 동네에 스스로를 '몽마르트르 카리오카(Montmartre Carioca)'라 부르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리우의 일반 시민 특히 지식인층과 거리를 두며 자유분방하고 원초적인 삶을 추구했다. 다운타운의 중심이 남쪽 해안으로 옮겨가고, 브라질의 수도가 브라질리아로 옮겨간 것도 큰 이유가 되었다. 새로운 탄생을 위해 시들고 썩는 시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행히 삼바 음악과 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사람들은 궁핍 속에서도 삼바를 통해 기쁨을 얻었고, 관광객들의 홍수 속에서 진짜 리우를 지켜냈다.


20세기가 되면서 라파 곳곳에 산뜻한 클럽들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현지인들조차 위험하다며 꺼리기도 했지만, 클럽의 명성은 커졌고 골동품 가게와 노천 시장이 거리를 풍미를 더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진짜 삼바를 만나려면 라파로 가라. 거기에 스릴과 드라마와 땀이 있다."


라파의 상징인 아르코스, 18세기 때의 모습이다.




축구, 축구, 축구, 심심하니 올림픽

삼바가 아닌데도 이 도시 사람들 모두를 미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놀랍게도 존재한다. 축구! 리우는 브라질에서 가장 뜨거운 열정의 도시, 그리고 리우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는 코파카바나 해변이 아니라 마라카나 스타디움(Maracanã Stadium)이다.

마라카나 스타디움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축구 경기를 관람한 장소다.


1950년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만든 이 축구 경기장은 리우 시민, 브라질 국민, 그리고 전 세계의 축구 팬들에게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 당시 브라질 팀은 월등한 실력으로 대회를 압도해갔다. 지금과 같은 토너먼트 방식이 아니라 결승 리그전이 펼쳐졌는데, 브라질은 우루과이와의 최종전을 앞두고 승리를 기정사실화했다. 그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고, 이전의 경기들은 압도적인 스코어로 지배했다. 그리고 최종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스타디움은 공식적으로 82,000석 규모였지만 유료입장객만 17만 3천여 명이 들어왔다. 실제로는 20만 명 가까이 들어와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관람객을 동원한 경기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관중들 모두가 브라질의 우승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브라질은 자국대표 팀원들의 이름을 새긴 22개의 금메달을 미리 만들었고, 피파 의장인 줄 리메는 포르투갈어로 된 브라질 우승 축하 연설문만 준비해왔다. 그러나 경기는 거짓말처럼 우루과이의 2-1 승리로 돌아갔다. 이 전설적인 패배는 '마라카나조(Maracanazo)'라는 이름으로 남아, 아직까지 브라질 국가대표 팀을 꼬리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마라카나 스타디움은 2010년에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에 들어갔다. 브라질이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을 연이어 개최하게 되면서, 새로운 역사의 장으로 탈바꿈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과연 21세기의 스타디움은 마라카나조의 치욕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인가?




할리우드를 꼬이는 슬럼가

영화 [엘리트 스쿼드]. 교황의 방문 전에 리우 

빈민가의 범죄단을 소탕하라.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를 본 사람이라면 에드워드 노튼이 미친 듯이 도망가는 판자촌의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얼기설기 덧댄 집들이 초등학생이 맞춘 레고 장난감처럼 불규칙하게 포개져 있던 모습. 그럼에도 그 형형색색의 조화는 규격화된 도시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 무대는 바로 리우의 대표적인 슬럼가인 타바레스 바스토스(Tavares Bastos). 지긋지긋한 가난과 흉악무도한 범죄가 판을 치던 이곳이 지난 10년간의 대대적인 치안회복 운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 독특하고 매력적인 풍광 덕분에 영화 [엘리트 스쿼드], 스눕 독의 뮤직비디오 등의 촬영지로 각광받게 되었다.


룰라 대통령의 브라질은 월드컵과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리우데자네이루(히우지자네이루, Rio de Janeiro)를 새로운 도시로 변신시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리우는 높은 범죄율 때문에 많은 기업체들이 떠나갔고 그로 인해 실업의 문제가 심각하다. 대외적으로는 관광 엽서 속의 해안가 도시의 이미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우디 앨런과 같은 감독들을 초청하며 리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그들에겐 변신의 중요한 열쇠다.




리우의 언덕을 오르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남미의 대국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영광의 시대가 사라진 뒤, 리우의 시민들은 매우 엄혹한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다. 도시의 곳곳은 오랫동안 무질서 속에 방치되었다.

기업체가 빠져나간 건물들은 흉물스럽게 썩어갔다. 그러나 덕분에 얻은 기쁨도 있었다. 리우는 가난한 아티스트들의 화폭이 되었고, 놀라운 원색의 벽화 등 거리 예술이 꿈틀대는 곳이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예술품은 세라론의 계단(Escadaria Selarón)이다.


칠레에서 태어나 이 도시에 터전을 마련한 예술가 세라론은 자기가 사랑하는 이 거리의 계단을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215개의 계단을 초록, 노랑, 파랑의 색으로 덮으며 브라질 국민들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거울들로 빛의 향연을 만들어냈다. 세라론은 최근 자신의 작업을 라파의 아르코스에까지 이어가고 있다.


세라론의 계단. 언제나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해 계단만을 찍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출처 : Donmatas at en.wikipedia.com>




과일과 춤과 무술이 뒤섞이는 시장

이 시장은 브라질 전통의 무술 퍼포먼스인 

카포에이라를 보기에도 좋은 장소이다.


흥청망청 온갖 사람들이 뒤섞이는 것이 당연한 리우. 이 도시의 시장 역시 흥겨운 축제의 현장과도 같다. 특히 북동시장(Feira Nordestina)은 자자한 명성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수백 개의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대한 시장은 명성 높은 바이안(Bahian) 음식을 먹기에도 아주 좋은 장소다.

사탕수수로 만든 술과 맥주를 들이켜고 길을 걸으면, 아코디언과 기타를 메고 나온 연주자들의 리듬에 취하게 된다. 삼바를 비롯한 여러 전통 음악은 물론, 브라질 전래의 무술 퍼포먼스인 카포에이라도 감상할 수 있다. 이 놀라운 광경은 금요일 저녁 8시부터 일요일 밤까지 이어지기도 한다고. 물론 현지인들과 심야에 뒤섞이는 일은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스릴과 드라마와 땀'은 좋은 것이다. 단 건강하게 돌아왔을 때에만.


※ 지명, 인명 등 외국어 표기는 국립국어원에서 제정한 표준외래어표기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여행블로그를 제대로 시작한지 한달된 신참 오리궁둥이입니다. 

욕심이 앞선 나머지 불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진짜 여행블로거로서의 길을 시작해볼까합니다. 


불펌하는데 도와주신 조선트레블 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앞으로 관련 글을 포스팅 할 때 상도덕을 준수하는 착한 오리궁둥이가 되겠습니다.


오늘 제가 포스팅할 글은 

칠레 여행하기 전에 반드시 봐야하는 영화 3가지입니다.


멋진 경치나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보다도 칠레의 역사적 아픔과 소시민의 생활이 잘 담겨있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직접 보기 위해서 왓차 등을 확인해보았지만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파일 구하게 되면 댓글로 공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대신 Trailer를 공유해놨으니 눈팅 하고 가시길 바라며

보다 성실히 포스팅하는 오리궁둥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Firm 1. The Maid(2009)


. 


좋은 리뷰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office_id=140&article_id=0000016974







Firm 2. Violeta Went to Heaven(2012)









Firm 3. Mi Mejor Enemigo(2005)







이 글은 제가 자발적으로 작성한 내용이며

영화 감독이나 영화사와 관계가 없음을 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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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6.06.12 02:01 신고

    https://drive.google.com/open?id=1CiV0uYV6ovcXTgf9rNK5C66bRHU&usp=sharing

    칠레에서 반드시 가야하는 10곳 구글 맵입니다.

태양의 도시, 공중 도시, 그리고 잃어버린 도시. 장구한 세월 동안 세속과 격리되어 유유자적함을 고이 간직한 곳. 그래서 더욱 신비하고 풀리지 않는 영원의 수수께끼가 가슴마저 벅차게 하는 그곳, 바로 남미의 얼굴 마추픽추다.

페루의 상징과도 같은 마추픽추와 안데스의 귀여운 동물 알파카가 잉카의 신비 속으로 어서 오라 손짓한다.



안데스의 신비, 마추픽추 그 설렘의 여정.

발견될 때까지 수풀에 갇힌 채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고 공중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여 우주적 차원의 문명 작품으로까지 불리는 곳. 그러나 분명 잉카의 땅이며, 과거 잉카의 고도인 곳. 제국의 마지막 성전이 벌어지고 그 숨통이 끊어지는 순간을 함께한 곳. 잉카 최후의 요새 마추픽추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어떻게 안데스의 그 험난함을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굽이치는 길 따라 이어지는 하얀 눈이 있는 산맥들, 바로 그 안데스의 정상을 거침없이 달린다. 10여 년 전엔 비포장 길이었으나 지금은 잘 포장된 신작로길이다. 6,000미터 급의 만년설도 고산지대의 호수와 함께 이방인들을 환영하고 있다. 그 높은 곳의 호수에서 플라밍고라마, 산 오리들이 유유히 노니는 장면은 경외감과 함께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세계인들의 꿈의 방문지가 된, 잉카의 얼굴 마추픽추.

안데스의 또 다른 얼굴 알파카는 여행자들의 친구이다.


산맥으로 이어진 길들은 다시 산허리를 돌아 강으로 이어지고 있고, 강물은 여름에 내린 폭우로 황허(黃河)의 물처럼 진한 흙탕물을 머금은 채 안데스의 계곡을 내달리고 있다. 리오밤바, 우루밤바, 코차밤바. 밤바라 일컫는 무수한 계곡들이 안데스쿠스코를 이어간다. 안데스의 험로를 지나면 드디어 포근한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로의 입성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원시의 초원, 4,000m급 안데스 고산의 만년설, 이어지는 농가의 한가로움, 풀 뜯는 소들과 목동들의 평화로움은 이곳 자연이 가져다주는 경이로움의 선물이다. 눈길을 뗄 수가 없다. 맑고 고운 햇살이 전해 주는 따사로운 행복감은 가장 큰 선물이 된다. 쿠스코에서 출발한 기차는 스위치백을 거듭하며 고지를 오르더니 이어지는 강과 산길을 굽이치며 마추픽추로 향하고 있다.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정상이다. 주위를 빙 둘러 높이 솟아있는 기암절벽들과 열대 우림의 무성한 정글들이 공중 도시의 외로움과 신비함을 동시에 대변하고 있다.



잉카의 전설, 마추픽추 정상에 서다.

드디어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정상에 당도했다. 주위를 빙 둘러 높이 솟아있는 기암절벽들과 천 길 낭떠러지 우루밤바 강의 힘찬 물줄기, 그리고 열대 우림의 무성한 정글들이 공중 도시의 외로움과 신비함을 동시에 대변하고 있다.


1만 명이나 되는 잉카인들이 살던 요새도시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인 하이럼 빙엄에 의해 발견되었고, 발견 당시 마추픽추는 세월의 풀에 묻혀 있던 폐허의 도시였다. 잉카인들이 더욱 깊숙이 숨기 위해 처녀들과 노인들을 마추픽추의 한쪽 묘지에 묻어버리고 제2의 잉카 제국을 찾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마추픽추는 세계인들의 뇌리 속에 영원한 수수께끼 도시로 남게 된 것이다.


잉카인이 돌을 다룬 기술은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그들은 20톤이나 나가는 돌을 바위산에서 잘라내 수십 ㎞ 떨어진 산 위로 날라서 신전과 집을 지었는데, 면도날도 드나들 틈 없이 정교하게 돌을 쌓은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며, 가장 큰 돌은 높이 8.53m 무게 361톤에 달했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잃어버린 세월, 공중도시 잉카문명의 역사를 회상한다.

마추픽추의 정상에 서면 경사면으로 이루어진 잉카인들의 옛 농경지와 제단, 생활 터전들을 볼 수 있다.


마추픽추에는 평야가 적었지만, 잉카인들은 산비탈을 계단처럼 깎아 옥수수를 경작하여 오랜 세월 동안 넉넉히 먹고 살았다. 구리를 쇠만큼 단단하게 제련해 썼으며 그 고대의 방법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이렇듯 강성했던 잉카 제국은 겨우 100여 년 만에 스페인 군대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의 역사 속 문명과 패망, 저항에 얽힌 수많은 사연을 집약해 보여 주는 잉카 최대 유적이 바로 안데스 산맥 밀림 속, 해발 2,400m 바위산 꼭대기에 남아 있는 공중 도시 마추픽추이다.


이 도시는 1911년 발견되기 전까지 수풀에 묻힌 채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기에 "잃어버린 도시" 혹은 산과 절벽, 밀림에 가려 밑에선 전혀 볼 수 없고 오직 공중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하여 "공중 도시"라고 불린다. 페루는 수도 리마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도시가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에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마추픽추는 산꼭대기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구름이 산허리에 걸려 있을 때가 많아 산 아래에선 이 도시 존재를 확인할 길이 없다.


[El Condor pasa(철새는 날아가고)], 천상의 음률이 공중 도시의 신비를 감싸고 돈다. 운무(雲霧)에 휩싸여 더욱 신비롭다. 잉카인들의 한이 서린 페루 전통민요가 원주민 악기 삼포냐의 음률로 울려 퍼지는 순간, 오랜 역사의 추억을 가슴에 간직한채 공중도시를 뒤로하고 쿠스코로 향하게 된다. 잉카 문명의 영원한 수수께끼 마추픽추는 왕조의 슬픔과 인디오 문명의 전설을 남긴 채 우리의 뇌리 속에 영원한 수수께끼로 잠들고 있다.

쿠스코를 출발한 페루 레일은 안데스 지역을 굽이치며 마추픽추로 향한다.



고산증 대치법
마추픽추로 가는 출발점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위치했다. 쿠스코에 도착한 대부분의 여행자는 고소증을 겪는다. 현지인들이 즐겨 마시는 코카 차를 따라 마시는 것도 고소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가급적 천천히 움직이는 게 좋다.



가는 길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는 기차로 4시간 정도 소요되고 기차역에서 버스로 굽이진 산길을 40분 정도 간 다음 걸어서 다시 30분 정도 올라가야 하는 힘겨운 여정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페루의 수도 리마를 거쳐 다시 국내선을 타고 쿠스코까지 가야 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리마까지 약 8시간, 남미 항공사들은 시간변경이 잦고 지연 운항이 많아 골탕먹기 일쑤이므로 시간 안배에 신경 써야 한다. 20시간 넘게 걸려 쿠스코에 와서도 마추픽추까지는 열차를 타고 더 가야만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추픽추로 가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쿠스코에서 오얀타이 탐보까지 버스 또는 택시를 이용하고, 오얀타이 탐보에서 아구아 칼리엔테(Agua Caliente)까지 기차로 가는 것이다. 오얀타이 탐보까지 가는 길에 많은 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다. 성수기에는 기차표 예약을 빨리 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숙소
쿠스코에서는 중앙광장 주변 뒷골목에 숙소를 잡는 게 좋다. 대성당 오른쪽 산타 카타리나 박물관이 있는 골목에 저렴한 숙소가 많다. 산 아구스틴 골목에는 중급 이상의 고급 호텔이 많다. 고산병을 겪는다면 좀 더 편안한 숙소를 잡는 게 이롭다.


스페인어로 ‘뜨거운 물’이란 뜻을 가진 마을 아구아 칼리엔테에도 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가 있다. 마추픽추 베이스캠프인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을 올라가면 공중도시 마추픽추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모든 여행자들은 탄성을 지른다. 잉카 전설의 도시 마추픽추의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이다. 마추픽추 정상에도 비싸지만 숙소가 있으니 염려 말자.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3.08.12 23:59 신고

    오마이 갓 !!! 잉카... 뷰티퓰

물질은 넘쳐나지만 마음은 가난한 시대, 국가를 막론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윤택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저마다 처한 환경이나 생활 방식은 다르겠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만큼은 어디든 같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는 세계 곳곳의 행복한 삶들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그 속에서 행복을 대하는 자세와 노력을 배울 수 있겠지요. 이제부터 매달 함께 행복의 나라로 떠나는 겁니다.



6月 행복의 나라: 브라질
Eu Estou Feliz!


총면적 8,514,877㎢. 칠레, 에콰도르를 제외한 남아메리카 모든 나라의 국경과 맞닿아 있는 길이만 자그마치 4,353㎞인 나라.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국가인 브라질은 국토의 절반 이상이 정글 혹은 산림으로 뒤덮여 있어 임산 자원은 말할 것도 없고 커피, 사탕수수 등 농산물 생산량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북부 아마존강유역의 열대우림 기후부터 남부의 온대에 이르기까지 기후도 다양하다. 여기에 철광석, 석면, 망간 등 막대한 양의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남미 지역에서 가장 산업화를 안정적으로 이뤄내 경제개발 잠재력도 높은 편이다. 풍족함이 만들어낸 자유로움일까. 포르투갈어로 "나는 행복합니다"를 뜻하는 "Eu Estou Feliz!"를 자주 외치곤 하는 브라질 사람들은 도심의 바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온 종일 축구를 하는 등 주로 소소한 일상을 통해 행복을 즐긴다.

브라질 사람들의 행복감은 국민 인식도 조사를 통해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브라질의 유력 여론조사 기관인 '다타폴랴' 조사에 따르면 브라질 국민의 91%가 현재의 삶이 행복하다고 응답했다. 반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 이들은 5%에 그쳤다. 기혼자들보다는 미혼자들이, 흑인보다는 백인이, 남성보다는 여성이 행복감을 더욱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브라질 사람들이 중요시 여기는 행복의 요건에는 안정된 가정과 자유로움, 다양한 여가생활 등이 필수 조건으로 꼽혔다. 금전적인 여유나 건강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됐다. 실제로 브라질 사람들의 60% 이상이 경기 침체로 어려운 시기여도 비용 부담이 적은 곳을 택해 휴가를 떠나겠다고 답했다. 또 수입원이 없는 거리의 악사들이나 서커스 단원들, 홈리스들도 표정이 밝은 편이다. 브라질의 행복은 내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세계 20개국의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어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는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리우데자네이루가 지목됐다. 각종 축제를 통해 항상 여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의 브라질 사람들이 아마도 이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분석이다.

간혹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어기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악의가 있는 행동이 아닌 타고난 국민성 때문이다. 대신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습관 덕분인지 브라질 사람들은 처음 보는 이들과도 거리를 두지 않고 친절함을 베푼다. 현지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서로를 끌어안거나 볼을 부비는 인사가 매우 일반적인 행동인데, 이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나타낸다. 또 운전을 하다가 끼어들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엄지를 치켜세우는 행동은 상대방의 양보에 감사하는 표시라고 한다.



1·2 휴머니즘을 상징하는 'H'자 모양의 쌍둥이 건물로 지어진 국회의사당. 왼쪽의 접시를 엎어놓은 모양의 건물이 상원, 오른쪽의 접시를 바로 놓은 모양의 건물이 하원 건물이다.


비행기를 본뜬 수도, 브라질리아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브라질 사람들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건축물이다. 반듯한 거실을 중심에 두고 방과 부엌 등으로 정형화된 우리나라의 아파트와는 대조적으로 비좁은 거실과 넓은 부엌, 평수에 어울리지 않는 거창한 와인바 등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비실용적으로도 보일 수 있는 내부 구조를 갖고 있는 온갖 모양의 집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브라질 아파트는 집의 뼈대까지만 만들어놓고 분양을 한다고 한다. 집주인이 이후 개성에 따라 배치도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

수도인 브라질리아는 이런 창의성을 가장 잘 반영한 도시다. 건축가인 오스카 니마이어가 설계한 이곳에는 마치 영화 '스타워즈'에서나 봤을 법한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피라미드 모양의 국립극장, 16개의 기둥으로 세워진 브라질리아 대성당 등이 도심의 중앙 대로를 따라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혹자는 "미래 달나라에나 건설될 듯한 공상의 도시"라고 표현했는데, 특색 있는 디자인의 건물들 덕분에 브라질리아는 지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브라질리아가 처음부터 브라질의 수도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1960년 주셀리노 쿠비체크 대통령은 국가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해안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국가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수도 이전을 단행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수도가 브라질만의 멋이 묻어 있는 현대화된 도시이기를 희망했던 그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을 초빙해 도시 설계를 맡겼다. 각고의 노력 끝에 브라질리아 도시 전체는 비행기 모양의 독특한 형태로 디자인됐고 동체 중간 부분에 정부기관과 오피스 빌딩이, 남북의 날개 부분에 저층의 주택가가 배치됐다. 날개와 동체가 만나는 중앙 부분에는 대중교통 환승 센터를 비롯한 은행, 호텔, 쇼핑센터 등의 편의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브라질리아 지역은 해발 1,100m의 고원인데다 사바나성 기후 지역이라 건기에는 주변 지역이 붉게 타는 악조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용수 공급을 위한 호수를 만드는 등 열악한 자연 환경을 인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결과적으로 부족한 자금을 외채로 충당하면서 1970, 80년대 브라질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떠안기도 했다. 그럼에도 브라질리아는 브라질 사람들의 대국적인 기질과 창의성을 추구하는 성격, 미래에 대한 도전 정신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척박한 기후와 환경 속에서 곡물을 재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크리스마스




1 자유로움과 삶의 여유를 즐기는 브라질 사람들. 2 브라데스코 은행의 크리스마스 장식.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은 이웃 나라인 미국이나 여느 기독교 문화 국가들에 비해 크리스마스 시즌이 요란한 편이다. 파라나주(州)에서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 장식 경연대회를 개최해 화려한 장식을 유도한다. 최우수 기업에게는 기업의 가옥세를 면제해주는 혜택을 준다고 한다.

상파울루의 파울리스타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유명하다. 비교적 재정 상태가 좋은 기업들이 독특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지난 2011년 브라데스코 은행은 푸른 정글을 연상시키는 나무와 정글의 길게 늘어진 풀, 동물 장식 등으로 20여 층의 건물 전체를 꾸며 눈길을 끌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에는 10차선 파울리스타 대로의 교통이 완전히 차단되는데, 이때는 상파울루 외곽에서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새벽까지 붐비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브라질은 대중적인 행사뿐 아니라 개인이 주관하는 파티 문화도 발달했다. 약혼이나 결혼 등 행사에는 언제나 파티가 이어진다. 항상 새로운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참석하는 것이 호스트에 대한 예의라 여기기 때문에 세심하게 드레스 코드에 신경 써야 한다.

한편 브라질의 음식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하다. 대다수의 브라질 사람들은 전문가 수준의 요리 실력을 뽐내기도 하는데, 이들은 주로 수요일이나 토요일 점심으로 페이조아다를 먹는다. 이는 검은 콩과 돼지나 소의 코, 귀, 혀, 발 그리고 소시지 등을 잘게 썰어 넣고 끓여 만든 음식이다. 지역별로 발달한 음식들도 많다. 바이아주에서 시작된 아카라제는 완두콩가루로 만든 빵을 야자열매에서 추출한 팜 오일에 튀긴 것이다. 아카라제를 먹은 뒤에는 우리나라의 민물 생선 매운탕과 비슷한 무케카(생선 등의 해물과 코코넛 우유, 토마토 및 향신료를 넣고 끓인 음식)로 배를 채운다. 또 미나스 제라이스 식의 음식들도 많은데 독특한 매운맛이 특징이다.



정열의 삼바 카니발


매년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 4일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삼바 카니발. 이 시기에는 토요일 밤부터 수요일 새벽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축제가 열린다. 과거 포르투갈에서 브라질로 건너온 사람들의 사순절 축제와 아프리카 노예들의 전통 타악기 연주, 춤이 합쳐지면서 시작된 삼바 카니발은 20세기 초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았는데, 삼바 스쿨들의 퍼레이드가 더해지면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게 됐다.

5천여 명으로 구성된 각 팀은 700m의 경연장에서 1시간에 걸쳐 퍼레이드를 펼친다. 가장 독특하면서도 멋진 의상과 장식, 대형을 연출한 행렬은 일사분란하게 자신의 역할에 맞춰 춤을 추며 지나간다. 특히 퍼레이드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삼삼오오 엉켜서 춤을 추게 하는 유쾌한 분위기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한 팀 한 팀의 퍼레이드가 끝날 때마다 잠깐씩 휴식을 취하기는 하지만 다음 팀이 모습을 드러내는 동시에 모두가 일어서서 함성을 지르고 춤을 춘다고 하니 명장면임에는 틀림이 없다. 삼바 카니발에서 우승한 팀에게는 포상금은 물론 앙코르 공연과 해외 순회공연의 혜택이 주어진다.

삼바 스쿨은 단순히 춤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닌 카니발을 이끌어가는 핵심 조직으로, 주로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에 위치해 있는데 이 지역 주민들 역시 자신들의 자랑인 삼바 스쿨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카니발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도 적지 않기 때문. 리우데자네이루 관광청의 발표에 따르면 2011년 축제 기간 중 행사에 참여한 1백만 명 중 절반은 외국인이었으며 이들이 소비한 돈은 5억 달러가 넘는다. 또 이 해에 카니발 입장권의 평균 가격이 1백50달러였는데 이 역시 전화 판매를 시작한 지 32분 만에 매진됐다.



브라질에는 삼바 축제 외에도 대형 페스티벌이 많다. 신년 전야 축제(Reveillon)도 매우 유명한데,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에서는 꽃을 바다에 띄우면서 복을 비는 행사가 진행된다. 상파울루의 파울리스타 거리에도 매년 마지막 날엔 신년 카운트다운과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2백만 명이 모인다.

하지만 특이한 축제를 꼽으라면 황소의 환생이라는 전설을 주제로 2개 팀이 춤과 노래를 경쟁하는 페스티벌, 보이붐바도 빠질 수 없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1년간 갈고 닦은 솜씨를 선보이는데, 풍성한 볼거리를 즐기기 위해 축제를 찾는 사람들로 이미 숙박시설이 가득 차 선상 위에서 자거나 밤을 새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단합의 심벌, 축구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브라질의 중앙은행은 각 은행들이 월드컵 경기 중에 점포를 폐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는 축구를 좋아하는 국민들의 일면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브라질의 기업들은 브라질 팀의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 파티를 열곤 한다. 푸짐한 음식을 제공하고 경기를 함께 응원함으로써 단합력을 키우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만약 이런 배려가 없는 회사라 할지라도 경기 시간 동안 무단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징계나 질책을 받지 않는다.

브라질은 세계유일의 월드컵 전 대회 출전국이자 최다 우승국으로 전 세계가 인정하는 축구 강국이다. 브라질이 낳은 축구 황제 펠레는 2011년 CNN 인터내셔널과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는 바로 나 자신이다"라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4년 열릴 브라질 월드컵 대회가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쏟아지고 있다. 브라질은 경기장 건설, 도로와 공항 등의 인프라 개선을 위해 월드컵 개최에 총 2백6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사람들의 축구 사랑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축구팬들의 열광 역시 상상 그 이상이다. 브라질에서 축구 관련 이야기를 할 때는 주의해야 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 구단이 있고, 그 애정이 높아 자칫 언쟁을 하다가는 감정싸움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미의 북서쪽 페루에서 일어난 잉카(Inca)는 '문명'이자 '제국'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그리 길지 못했다. 시기는 조선 초,

기간은 고작 95년(1438∼1533). 그럼에도 의미는 남다르다. 잉카는 몰락 자체로 '인디오문명'에 마침표를 찍었다.

4000년간 쉼 없이 일어나 사라지며 통합발전해온 안데스문명의 최고봉이자 하이라이트이며 완성판이다.

그 잉카의 중심은 '세상의

중심'이란 의미의 쿠스코(해발 3399m). 그리고 그 진수는 지구 가장 높은 곳의 고대도시 마추픽추(해발 2430m)다. 그러면

그 잉카는 어디서 왔을까. 그걸 찾아 떠난 페루여행. 나는 해발 3810m 티티카카 호수부터 그 자취를 더듬었다. 지구상 호수 중

가장 높은 이 호수. 잉카 건국신화의 무대이자 동시에 잉카인의 발원지다. 게다가 호반의 갈대로 만든 인공섬에서 태어나 물 위에서

평생을 보내는 우로스(Uros)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런 티티카카 호수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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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두배 높이로 지구상 가장 고지대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해발 3810m)의 새벽 5시 반 동틀 무렵 모습. 하늘 빛은 물론 그걸 담은 물빛, 그리고 구름까지 모두가 평소에 본 적 없는 신비로운 색깔과 모습이었는데 그런 판이하고 기이한 분위기로 인해 마치 다른 혹성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호안 바위의 초록빛은 긴 실타래처럼 자란 이끼다. 푸노(페루)=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mga.com

리마 국제공항을 이륙한 란(Lan) 항공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췄다. 창 밖엔 황량한 고원의 산악뿐. 초록빛 고원 쿠스코와는 딴판이다. 드디어 바퀴가 닿았다. 이륙 1시간 반 만이다.

이곳은 훌리아카 공항. 티티카카 호수의 페루 쪽 관문으로 해발 고도는 3825m. 고산도시 쿠스코보다도 426m가 더 높다. 그러니 지레 겁이 난다. 고산증 때문인데 트랩을 내려서자마자 어찔하다. 인디오 가이드 훌리오 세자르(28)가 요령부터 알려준다. 물과 코카(coca)차를 많이 마시라고. 공기 중 산소용량이 리마(해발 0m)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과 더불어.

티티카카 호수는 안데스 고원 해발 3810m(수면 고도)의 거대한 웅덩이(길이 165km, 폭 60∼65km)다. 한때는 250km였던 게 지구온난화로 인한 증발, 우기 축소(6개월에서 3개월)에 따른 수위 저하(매년 3m)로 줄고 있단다. 수심은 최고284m. 호수 서편엔 거대한 갈대밭이 두 곳(총 3만6000ha) 있다. 여기가 갈대로 엮은 인공 섬에 사는 우로스 부족의 터전. 호수는 볼리비아(동편 40%)와 페루(서편 60%)로 나뉘었다.

버스가 공항을 나와 훌리아카 시내로 들어섰다. 사막처럼 메마른 고원의 대평원에 들어선 이 도시. 서부 개척기의 무법천지처럼 무질서로 점철된 혼돈 그 자체다. 도로는 먼지투성이로 트라이시클로(택시로 개조한 세 바퀴 오토바이나 자전거)와 삼륜차의 물결로 뒤덮였다. 거기에 대형 트럭까지 가세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듯 희한한 풍경 일색인데 더 놀라운 건 트럭의 화물이 몽땅 밀수품이란 것이다. 북쪽 4시간 반 거리의 볼리비아 국경도시에서 온 것이라는데 길가에 형성된 해적시장이 그 거래처다.

풍경은 시내를 빠져나오자 돌변했다. 대평원이 지평선까지 펼쳐진 평화로운 모습이다. 거기선 인디오 농부가 양을 치고 꽃 핀 감자밭을 돌보고 있었다. 세상의 감자는 7500종이고 이 중 3000종이 자연종인데 그 10%(300종)는 이곳 티티카카 고원이 원산이란다. 30분쯤 달렸을까.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덕 아래로 호반도시와 함께. 푸노(Puno)다. 숙소는 여기서 30km 남쪽 호반의 티티라카 호텔. 어둠에 휩싸인 호수 위 하늘로 남반구의 뭇별이 쏟아질 듯 반짝였다. 3800m 고도라서일까. 별은 가까워 보였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이튿날 오전 5시. 아침 해를 호젓한 호반호텔의 테라스에서 홀로 맞았다. 구름이 걷힌 동북방, 호수 뒤 볼리비아 쪽 멀리로 안데스의 설산이 보였다. 빙하를 이고 있는 6462m의 일리마니 산이다. 티티카카 호수는 잉카인의 고향이다. 민족 발원 신화의 무대이자 실제 탄생지다. 여기서 쿠스코로 이주해 거기에 이룬 촌락이 제국의 모태다. 잉카의 창조신은 비라코차, 잉카의 선조는 그의 두 아들 망코 카팍과 마마 오코인데 잉카인은 이들이 모두 이 호수에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티아후아나카(비라코차 탄생지)와 호수의 두 섬(해와 달 섬)이다. 모두 볼리비아 땅에 있어 이번 취재 중엔 가볼 수 없었다.

그래서 대신 타키예 섬(5.7km²)을 찾았다. 제주도의 우도(6.3km²)만 한 이 섬은 지상 최고도의 섬(정상 4050m)이다. 섬의 산기슭은 가파르지도 않은데 오르기가 힘겹다. 산소 부족 탓이다. 그걸 본 가이드가 손바닥에 유칼리나무 수액을 쏟아준다. 그 상큼한 향을 거푸 흡입하자 어지럼증이 가라앉았다. 이런 고소증은 30분쯤 지나면 대체로 회복된다. 물론 심한 경우엔 병원 신세도 지지만 거기서도 처치 수단은 산소 흡입이나 혈관 확장제뿐이다. '타키예'는 스페인 왕으로부터 이 섬을 하사받은 스페인 왕족의 성. 원래 이름은 인디오의 케추아어로 '해뜨는 섬'이라는 '인티카'다.

섬 주민(2500명)은 모두 인디오. 여섯 마을이 공동체를 이뤘는데 지금도 잉카시대의 '공동생산 공동소비' 체제를 유지하는 화석 같은 곳이다. 농사(감자)와 가축사육을 각각 세 마을이 나눠 맡아 매년 교대하고 가구당 소(암수 한 쌍)와 양(30마리)의 사육 마릿수를 제한해 부의 편차를 없앤다. 그리고 수확물은 공동 관리한다. 섬의 산기슭은 '테라스'라 불리는 잉카식 계단밭 투성인데 대부분 15세기 잉카제국 당시 조성된 것들. 2200년 동안 살아온 섬으로 스페인 정복기(1532∼1572)에 가장 마지막까지 투항을 거부한 곳이기도 하다. 한 마을에 가니 방문객에게 일상을 소개하고 보여주는 마당이 있었다. 거기선 손뜨개와 직조기로 짠 모자와 허리띠 등 직물도 파는데 정교함이 페루 최고로 알려졌다.

아름다운 이 호수도 수중에선 참변이 일었다. 56종이던 토종물고기가 5종밖에 남지 않은 것인데 인간의 분별없는 행동이 화근이었다. 그것도 두 차례나. 첫 번째는 82년 전 캐나다인의 분별없는 송어 이식(5종). 이 중 호수에 적응한 3종이 토종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최고중량 송어 기네스 기록(8kg)'에 열중한 푸노 시장도 참화를 거들었다. 두 번째는 그 송어를 퇴치한다며 부근 포포 호수에 들여와 시험하던 페헤레이(일명 킹피시)가 강을 역류해 티티카카 호수로 침입한 것. 이번엔 페헤레이가 호수의 송어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결국 송어는 사라졌지만 페헤레이도 먹잇감이 없어지자 자멸했다. 그 결과 이 거대한 호수에 남은 물고기는 토종 5종뿐.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성체가 45cm나 되는 자이언트개구리도 한때 번성했지만 식용 남획으로 줄어들어 지금은 보호를 받고 있다.

:: Travel Info ::

티티카카 호수

△평균기온: 12∼3월(우기) 4도, 6∼7월(건기) 영하 6도 △액티비티: 카약 타기, 트레킹 등 다양 △보트투어: 타키예 섬+우로스 갈대섬 가이드투어(점심도시락 포함).

티티라카 호텔

티티카카 호수 남동쪽 호반에 외따로 있는 풀보드(숙박비에 음료 주류 식사 포함) 방식의 럭셔리 리조트. 테라스에선

밤하늘 별자리 관측도 하고 해넘이와 해맞이도 두루 즐긴다. 와이파이 제공. 자체 선착장에서 타키예 섬과 우로스 갈대섬 관광보트

출발. www.titilaka.com

페루

△관광청: www.peru.travel △항공로:

인천∼로스앤젤레스(9∼11시간), 로스앤젤레스∼리마(9시간). 미주 직항로 대신 도쿄(나리타 공항) 경유 시 6시간 추가.

△언어: 스페인어 △화폐: 단위는 누에보솔. 1누에보솔=440원가량, 1달러=2.5누에보솔 △쇼핑 아이템: 알파카(고산지대 낙타과

동물)와 양털 실로 짠 머플러, 스웨터 등 의류, 장갑, 모자.

▼ 원주민 우로스人, 척박한 수상 섬에서 일생 보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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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호수의 선상부족 우로스의 갈대섬. 섬은 '토토로'라는 호수토종 갈대뿌리를 캐어 짓는데 친족 대여섯 가족이 한 섬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티티카카 호수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1968년. 당시 볼리비아 쪽에서 잉카 유적을 수중 탐사한 프랑스인 자크이브

쿠스토(1910∼1997)를 통해서다. 그는 스쿠버(SCUBA)라는 '수중 자가 호흡 장치'를 세계 최초로 개발(1943년)한

생태학자이자 탐험가. 그의 수중사진을 통해 호수는 세상의 관심을 모았다. 더불어 갈대로 지은 인공 섬에서 평생을 보내는 호수

원주민 우로스(Uros)도 세계적 관심사로 등극했다.

인공 섬이 있는 곳은 호수 서편의 거대한 갈대밭 두 곳.

카티예 섬에서 보트로 한 시간쯤 갔을까. 드디어 갈대섬 하나가 나타났다. 배를 거기 대고 뛰어내렸다. 섬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튼튼했다. 살펴보니 교실 두개만 한데 '우타'라는 갈대집이 여섯 채 있었다. 그중 둘은 부엌과 창고, 나머진 거주

공간이다. 들여다보니 매트리스와 담요 외에 어떤 가구도 없다. 두 아이를 둔 자비에르, 지나 씨 부부 등 여섯 가구가 사는데 모두

친족이란다. 섬에선 전통적으로 '푸토'라는 돌바닥 도기(陶器) 화로에 갈대로 불을 때 요리를 한다. 하지만 이 섬 부엌의 푸토

자리엔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캄캄한 방 안엔 낡은 TV도 보였다. 전기 공급원은 지붕에 설치한 태양전지판. 1996년 알베르토

후지모리 당시 대통령이 우로스 방문 후 보내준 선물이라고 했다. 섬에는 애완동물도 있는데 그물 속의 물닭 두 마리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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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호수의 여러 섬 중 하나인 타키예 섬의 주민. 여섯마을의 2500명 주민은 아직도 잉카시대의 공동생산 공동소비 체제로 살아가는데 이 복장은 16세기 스페인 식민지가 된 후 전래된 무어인(북아프리카의 흑인 이슬람교도) 복식이 인디오스타일과 접목된 것.

우로스는 잉카제국 이전 이곳 부족의 언어이기도 하다. 이곳이 잉카제국에 흡수돼 케추아어를 쓰게 되면서 500년 전

사멸했다. 이들은 볼리비아 쪽 호반의 육지에서 호수를 터전으로 수천 년간 새 사냥과 고기잡이로 살아온 원주민. 갈대숲에 인공

섬을 짓고 물 위로 옮겨온 건 1100년경으로 아이마라어를 쓰는 코야스 부족의 침략이 계기였다.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극단의 선택이었다. 그 갈대섬은 현재 73개. 800가구 2900명이 여기서 태어나 평생을 여기서 살다 죽는다. 이들은 죽어서야

비로소 땅으로 돌아가는데 호반엔 이들만을 위한 특별묘지가 있다. 학교(유치원 2, 초등학교 5, 고교 1개) 역시 갈대섬에

있다.

갈대로 섬 짓기는 의외로 쉬워 보였다. 재료는 호수 밑바닥에 서로 엉겨 붙은 갈대 뿌리다. 이걸 블록 형태로

잘라낸 뒤 줄로 동여매 바지선처럼 만드는데 그게 물에 뜨는 것은 빨대처럼 생긴 갈대 뿌리가 머금은 공기 덕분. 섬은 그 위에

건조한 갈대를 잘라 덮으면 된다. 간단하긴 해도 대여섯 가구가 살 만한 섬 하나를 짓는 데 걸리는 기간은 꼬박 1년. 수명은

30년이라고 한다. 이 갈대를 우로스 주민은 '토토라'라고 부르는데 호수 동편 볼리비아 호반에선 나지 않는다. 그래서 볼리비아

수상부족은 나무기둥을 박아 그 위에 지은 수상가옥에서 산다.

물 위는 춥다. 특히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건기(6, 7월)에 난방시설도 없는 갈대섬에서 지내기란 고역일 터. 그러나 이들에겐 문제되지 않는다. 스스로 '검은 피'라 부르는

추위 극복 체질로 수천 년 호수를 터전으로 산 극한의 삶에서 체득한 초능력이다. 자비에르 씨 노모의 건강한 치아도 비슷하다.

평생 치과에 간 적이 없다 자랑할 만큼 튼튼한 이는 평소 간식처럼 씹어 먹는 갈대(하얀 아랫부분) 덕분. 거기엔 칼슘과 불소,

요오드가 풍부하단다. 이들의 생계수단은 사냥과 고기잡이. 갈매기와 물닭, 오리, 플라밍고는 총으로, 물고기는 그물로 잡는다.

곡식(감자, 옥수수)은 육지에서 사냥감을 팔아 얻는다.

파라카스 국립공원의 사막. 켜켜이 주름이 진 보드라운 땅에 발자국을 내기가 황송할 정도다.

부드러운 살결과 풍만한 곡선을 가진, 포근한 미인이었다. 굳이 닮은 이를 찾자면, 르누아르(19세기 말 프랑스 화가)의 그림에나 나올 법한 그런 여인이다. 페루 파라카스 국립공원 내에 있는 사막엔 식생(植生) 하나 없었지만, 을씨년스럽긴커녕 관능적이었다. 여인의 가슴과 둔부를 닮은 모래 언덕이 끊임없이 펼쳐졌고, 사구(沙丘)와 사구가 이어져 움푹 들어간 부분은 잘록한 허리를 연상케 했다. 쨍하게 빛난 하늘 덕분에 곱고 가는 모래로 이뤄진 그 몸엔 깊고 극적인 음영(陰影)이 드리워졌다.

페루에는 관광책자나 역사책에서 수차례 봐온 ‘공중 도시’ 마추픽추만 있는 줄 알았지, 이런 미인을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별난 페루의 자연환경 덕분에 여행 내내 이런 경이는 꽤나 빈번했다.

마추픽추에 오기까지 관광객들이 꽤나 고생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에 사는 알파카는 마추픽추를 굽어보며 한가로이 풀이나 뜯어먹는다.

파라카스 국립공원이 있는 이카 지역을 떠나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에 도착했다.전 세계의 배낭 여행객들이 모여드는 쿠스코의 중앙광장엔 스타벅스와 노스페이스, 그리고 한국 식당까지 있었다. 해발 3400m의 고도(古都)까지 온 이들은 마추픽추를 구경하거나 잉카트레일(잉카인들이 마추픽추까지 드나들었던 산길)에서 트레킹을 하기 위해 왔다. 마추픽추는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약 112㎞ 떨어져 있다.

마추픽추는 책이나 사진에서 봐왔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너무 똑같아선지 산에 올라 사진에서 나오는 그 각도로 전경을 내려다봤을 땐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왜 ‘마추픽추, 마추픽추’라고 하는지는 가까이서 봐야 알 수 있다. 20t이 족히 나가는 돌을 바위산에서 잘라내 신전과 집을 지었는데, 돌과 돌 사이엔 접착제를 쓰지 않았다. 돌을 마모시켜 서로 맞물리도록 쌓았다는 얘기다. 잉카제국이 정복한 부족민들을 노예로 삼아 지었기에 가능했다.

흔들림없이, 견고하게 쌓인 육중한 돌을 보자 오래전 이 땅을 디뎠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잉카 문명에선 바퀴도 쓰지 않았다고 하니 마추픽추를 만들다가 돌에 깔려 다친 이는 부지기수였을 것이고, 죽은 이도 그랬을 것이다. 스페인 군대가 이곳을 침략하자 많은 노예가 왕을 배신했단 얘기를 들었을 땐, 속으로 조용히 쾌재를 불렀다.

비가 그칠 무렵 마추픽추와 그 주변 골짜기에 큼지막하고 또렷한 무지개가 걸렸다. 잉카인들이 숭배했다는 태양의 신이 꽤나 영험한 듯하다.

이날은 비가 왔다 하늘이 개기를 서너 차례 반복했다. 이 골짜기의 날씨가 원래 그렇다고 한다. 마추픽추를 떠날 때쯤 비에 미끄러질까 봐 땅만 쳐다보며 걸었는데,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골짜기 한가운데에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다 보일 만큼 선명한 무지개가 걸렸다. 400여년 전 이곳에서 돌을 들어 올리고, 모서리를 깎아내던 이들도 고개를 들어 저 무지개를 봤으리라.

1 마추픽추 유적지에 오르면 작은 오두막처럼 생긴 쉼터 겸 전망대가 나온다. 변덕스러운 이곳 날씨에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쉼터에 모여들었다. / 2 사진을 찍겠다는 시늉을 하자, 천을 짜던 소녀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마추픽추를 다녀온 다음 날, 쿠스코에서 고산병에 시달렸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다’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요상한 고통이다. 이곳 선인(先人)들이 고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 흔적을 보니 기분이 더 요상해졌다. 이들은 ‘모라이’라 불린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어 온도 차이에 따른 작물들을 실험하고, 같은 작물이라도 시기에 따라 높이를 달리해 심어 경작하기도 했다. 소금물이 흘러나오는 암염계곡을 염전으로 만든 ‘살리네라스’도 다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소금은 미네랄까지 풍부했다고 하니 잉카인들에겐 하얀 황금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끈질긴 적응력과 생명력을 확인하니, 고산병 따위는 별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잉카인들의 ‘작물재배실험실’이었던 ‘모라이’. 계단의 층계마다 서 있는 작은점들이 사람임을 감안하면, ‘ 모라이’의 전체 크기가 가늠이 될 것이다. / 변희원 기자
쿠스코보다 해발고도가 400m나 더 높지만, 페루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 바로 푸노다.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곳이다. 안데스산맥 정상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이 북쪽으로 흐른 게 아마존이고, 다른 사면으로 내려온 물이 티티카카를 이루고 있다. 이 호수는 아주 높은 곳에 있기도 하지만 아주 넓기도(면적 약 8300㎢) 하다. 우리나라 전북보다 크다. 전체 면적의 40%는 페루가 아닌 볼리비아에 속해 있다.

‘티티카카’라는 마술 같은 이름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4시쯤 호숫가에 나갔다. 바다와 달리 조류가 없어 잔잔한 수면에 구름이 맞닿을 것만 같았다. 호수의 역할은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잉카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티티카카 호수에서 왔다고 믿었다. 수도를 ‘세계의 배꼽’(쿠스코)이라고 이름 지으며 위세를 떨치던 이들도 이곳에 경외를 느꼈을 것이다.

4000m 높이의 땅에선 구름이 머리 위에 닿을 것만 같다. 바람 한 점 없이 적요한 티티카카 호수는 하늘을 그대로 비춰낸다.
뭍에서 배를 타고 30여분 가면 타킬레섬이다. 호수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섬에 누가 살까 싶지만, 양떼를 키우는 목장과 집들이 곳곳에 있다. 가이드를 따라 한 집에 들어가니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서 수공예품을 늘어놓는다. 섬의 남자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는, 화려한 색상의 벨트다. “이 벨트는 결혼할 때 여자가 만듭니다. 남자가 했던 약속들, 예를 들면 집과 가축, 사랑 등을 여기에 새겨넣죠. 벨트 뒷면에 보이는 검은 실은 여자의 머리카락이에요.” 애절하고도 섬뜩하지 않은가. 결혼생활 중 행여 남자가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않으면 여자는 벨트를 내밀며 따질 것이다. “내 머리카락을 잘라 벨트까지 만들어줬건만!”

티티카카 호수보다 더 신기한 건 이곳에 떠 있는 인공섬 ‘우로스’다. 흙에 얽힌 갈대로 만드는 섬인데, 현재 이 호수에 70여개가 있다. 잉카제국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넓은 호수 한가운데 피난처를 만들었고, 잉카 군대도 더 이상 이들을 쫓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티티카카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섬 ‘우로스’. 학교 교실만 한 섬에 두 가구가 살고 있다.
지금은 그 후손들이 배로 섬과 섬, 섬과 육지 사이를 오가고 새와 물고기를 잡는다. 한 섬에 한두 가구가 살고, 어떤 섬은 학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모터보트도 있고, TV도 있어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지는 않는다는 것. “뭍에 나가서 살고 싶지 않냐”고 묻자 다들 고개를 저었다. 왜 싫은지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여행수첩

■한국에서 페루까지 직항편은 없으며, 로스앤젤레스나 도쿄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많이 이용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아르헨티나항공, 란칠레항공, 바리그브라질항공 등을 이용해 수도 리마에 도착할 수 있다.

지리 페루의 면적은 남한의 13배이며, 에콰도르, 콜롬비아, 브라질, 볼리비아,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페루의 지형은 크게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지, 아마존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태평양 연안에 펼쳐져 있는 해안 평야는 너비가 좁으며, 대부분이 사막지역으로 리마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도시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안데스 지역은 태평양에서 시작해 내륙 100㎞쯤 들어와 6000m의 고봉을 이룬다. 안데스 산맥의 동쪽 비탈면은 경사가 완만하며, 아마존 열대 우림지역이 형성돼 있다.

기후 10월에서 4월까지 우기, 5월에서 9월까지 건기로 구분.

환율 1누에보 솔(PEN)=0.39달러

고산병 마추픽추와 티티카카 호수. 페루에서 유명한 이 두 여행지는 각각 해발고도 2450m, 3860m에 있다.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쿠스코도 해발고도가 3300m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쿠스코에서 고산병을 호소하는 여행객이 많다. 이번 여행의 일행 중 절반 이상이 그랬다. 고산병은 낮은 지대에서 고도가 높은 해발 2000~3000m 이상의 고지대로 이동하였을 때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나타난다. 고산병에 걸린 경험이 있다면, 두 번째는 정말 피하고 싶을 것이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데 그 증상을 딱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술이나 담배를 삼가야 한다. 이곳 고산 지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코카잎을 씹는 것도 도움이 된다. 페루에선 고산병을 위한 약을 사려면 의사 처방이 있어야 하니 출발 전 한국에서 미리 마련하는 것이 좋다. 급할 경우엔 숙소나 차량에 비치된 산소호흡기를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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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로 꼽히고 있는 페루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과거에는 동남아시아, 유럽, 호주, 하와이 등이 주로 인기 휴가지로 꼽혔지만 최근에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권인 제3세계 국가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항로가 개발되고, 항공사의 취항지가 다양해지면서 이동시간이 대폭 짧아졌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선 곳이 바로 중남미의 유적의 메카인 페루다. 최근 윤상, 유희열, 이적이 출연하는 '꽃보다 청춘'의 여행지로 소개되며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친숙해진 페루는 누구나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에서 페루까지 가는데 경유지를 거쳐 40시간 이상 소요되는 먼 나라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18시간 내외로 시간이 대폭 단축됐다. 이에 따라 짧은 휴가기간에도 마음 속 버킷 리스트였던 페루 여행이 가능해져 직장인과 대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휴가지로 꼽히고 있는 페루
페루 여행의 첫 도착지는 남미의 관문이자 페루의 수도인 리마. 페루의 문화와 역사, 예술, 상업의 중심지인 리마는 현대와 과거 문명의 영광이 공존하는 도시로, 스페인 정복시대 이전의 고고학 유적지와 첨단 기술로 탄생한 마천루가 관광객들을 맞는다.

뭐니 뭐니 해도 페루 여행에서 핵심은 절대적으로 마추픽추다. 위대했던 잉카문명의 유적지답게 마추픽추에는 잉카인들이 살았던 주택과 계단식 경작지 등 신비로운 문명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안데스 산맥의 장엄한 경관과 우루밤바 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위치는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공중도시에 서 있는 듯 한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하나투어의 관계자는 "페루는 위대했던 잉카문명의 마추픽추, 신비한 대자연의 수수께끼인 나스카, 잉카제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중심이었던 쿠스코 등 우리에게 낯설지만 설레는 감동을 주는 곳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페루와의 이동시간이 단축되면서 짧은 휴가로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어 방학을 맞은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페루여행의 새로운 수요층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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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이렇게까지 페루여행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적은 드물었다. 최근 tvN '꽃보다 청춘-페루' 편이 방송되면서 페루에 대한 궁금증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에게 페루는 마추픽추의 나라, 태양의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었지만, 꽃보다 청춘을 통해 아름다운 관광지가 알려지면서 발 빠른 여행가들은 이미 여행 후기를 속속 작성하고 있다. 

이에 맞춰 여러 여행사들도 페루 여행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하나투어의 페루 지역 관련 상품은 여행객들을 위해 여러 유명한 지역이 포함된 다양한 인기 패키지 상품을 구비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페루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마추픽추, 잉카문명 등이 대부분이지만 이외에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관광지들이 많다. 특히 방송 2회분에 방영된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 이카에 위치한 와카치나 사막의 버기카와 샌드보드 체험은 젊은 층들에게 모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주인의 메시지 같은 나스카의 미스터리한 지상그림과 안데스 산맥의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산악 염전 살리네라스, 미스터리 서클과 같은 거대한 농경지 모라이는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트이게 한다. 세상의 중심지였던 황금의 도시 쿠스코, 말이 필요 없는 마추픽추까지 페루의 보석 같은 도시들은 각각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트립어드바이저(Trip Advisor)가 뽑은 페루의 10대 여행지도 각광을 받고 있다. 1위를 차지한 마추픽추와 함께 쿠스코에 위치한 잉카 시대의 신전 겸 요새인 삭사이와만과 쵸퀘키라오가 그 뒤를 이었다. 또한, 아레키파에 위치한 성 캐서린 수도원과 '살아있는 잉카 마을'이라 불리는 오얀따이땀보가 나란히 4·5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도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 피삭의 고대 관개 시스템 및 관측소 등이 그 뒤를 이어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신비롭고 호기심이 가득한 페루를 여행하려면 무엇보다도 정보가 중요하다. 페루까지의 비행시간은 환승 시간을 제외하고 20시간 정도로, 과거 40시간 이상 걸리던 것에 비해 소요시간이 많이 단축됐다. 

보통 페루는 미국을 경유해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는 미국 관광비자나 ESTA를 신청해야 한다. 페루는 무비자로 90일까지 여행이 가능하며 인접국인 볼리비아는 국내나 페루에서 비자 발급 후 입국할 수 있다. 시차는 -14시간 정도이며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고 스페인어만 사용한다.

물가는 국내보다 저렴하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페루 화폐 1sol은 한화로 약 400원 정도로 생수 한 병이 2.58sol이다. 환전은 원화를 sol로 환전하는 것보다 달러로 환전 후 페루 환전소에서 sol로 환전하는 것이 유리하다. 국내에 페루 화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 방법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여행 시 지역의 기온 차를 염두에 둬야 한다. 페루는 사계절의 옷이 모두 있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지역마다 기온의 차이가 크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의 경우 낮에는 더운 반면 밤에는 쌀쌀한 편이다. 고산지대인 쿠스코의 경우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다양하게 준비하는 편이 좋다.

페루 여행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마추픽추와 쿠스코에서의 고산증이다. 마추픽추는 해발 2,400m 높이, 쿠스코는 표고 3,457m에 달한다. 서울이 45m, 우리나라 최고 높이인 한라산이 1,950m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산증도 무리가 아니다. 고산증은 낮은 지대에서 고지대로 이동했을 때 산소결핍과 두통, 구토감, 피로감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갑작스럽게 고지대로 이동하는 것을 자제하고 술과 담배는 멀리해야 한다. 고산증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코카차나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더욱 편안하게 페루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페루여행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나투어의 경우 4성 이상 특급호텔 숙박, 전 일정 한국인 가이드가 동행하는 패키지 상품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나투어에서는 페루 여행을 준비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페루의 신비로운 자연 경관을 보다 알차게 관람할 수 있도록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마련하고 있다. 하나투어 페루 여행 상품을 이용하면 신비로운 여행지를 구석구석 여행 할 수 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페루의 관광 명소가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러한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하나투어에서는 다양한 맞춤형 패키지를 준비해 만족스러운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남미 페루지역 관련하여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http://bit.ly/1tBimri)와 하나투어(1577-1233)에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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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이다.

처음 도쿄에 내렸던 1993년 봄부터 지난해까지의 내 여행은 그 청춘에 속했다. 어떤 날은 에든버러의 축제를 꼭대기에서 찍기 위해 성곽의 가장 가파른 곳까지 올라갔고, 어떤 날은 사륜구동 자동차를 끌고 한겨울 로키 산맥을 달렸으며, 어떤 날은 타는 듯이 뜨거웠던 한여름의 그리스 노천시장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이 모든 날과 시간 곳곳에 아찔함과 절망, 그리고 다음 행보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함이 숨어 있었다. 평생을 여행과 함께했던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가 그의 저서 <헤세의 여행>을 통해 말했던 “여행의 시작은 일상의 단조로움, 타인과 우연히 함께하고 낯선 풍경을 관찰하는 데 있다”는 여행의 근본적인 가치를 20대와 30대의 나는 결코 알지 못했다. 청춘은 그 한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결코 지각할 수 없다. 그것은 그리워할 때, 그것이 소중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다시 오지 않는 뜨거운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성의 시간 속에서만 가치를 갖는다.

나영석 PD의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는 이제 막 청춘을 잃어버린 40대 남자 세 명이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싱싱한 감각을 여행을 통해 되찾는다는 콘셉트의 ‘청춘물’이다. 할배들의 여행(<꽃보다 할배>)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미래성을 보여주었고, 누나들(<꽃보다 누나>)은 남에게 보여야 하는 삶을 사는 ‘나이 찬’ 여자들이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 없는 낯선 땅에서 담백하게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전해주었다. 반면 유희열과 이적, 윤상 이 세 남자는 시곗바늘을 청춘으로 되돌려놓고 철없고 순수했던 청년 시절로 돌아간다. 기다란 막대기에 카메라를 매달고 빙빙 돌리며 마치 주문처럼 “우리는 청춘이야!”라고 외치는데, 물론 어색하고 멋쩍은 분위기가 감돌긴 한다. 세 남자에게 청춘은 이미 ‘낯선 시대’가 됐다.

페루
시청자는 안다. 그들의 물리학적 나이가 청춘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건 라오스로 떠난 진짜 ‘청춘팀’의 여행이 아니라(그들은 진짜 20대다), 여전히 청춘이고 싶은 40대 남자들의 달라진 여행법이다. 인생에서 걸어온 시간이 두 배 늘어난 만큼 대응은 유연해졌고 낯선 아이들과 쉽게 친해졌다. 어깨를 들썩이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여유를 보인다. 서로가 돋보이기 위해,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핏대를 세워야 했던 20대의 치기 어리고 날 선 감정이 없어서 보는 사람이 편안하다. 나이가 들면서 고마운 건, 불필요한 힘이 빠진다는 거다.

부유한 은행원으로 살다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타히티 섬의 마력을 예술로 승화시킨 폴 고갱은 40대 남자들의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 40대에 낯설고 이국적인 아시아에 머물렀던 헤르만 헤세의 여행이나, 유럽 도시를 전전하며 가난해도 자부심 있게 살았던 헤밍웨이의 삶은 떠나 있음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대한민국 40대 남자의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청춘을 찾겠다고 아내와 아이에게서 ‘윤허’를 받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지구 반대쪽에 있는 나라로 가서 잠깐만이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또는 20대의 나처럼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열망은 사무실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앞날이 위태로워지는 현실에 부딪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난다는 건 우리가 잠깐이라도 꿈꾸듯 청춘과 악수할 수 있는 기회다. 한 번쯤 내려놓고 떠나보길 권한다. 기왕이면 정말 잘 모르는 낯선 곳으로. 고요하고 단단한 내면을 지닌 파블로 네루다가 우연히 들른 마추픽추에 반해 <마추픽추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마흔한 살 때였다. 용기가 필요한 40대 청춘에게 이 책의 가슴 뛰는 문장을 권하고 싶다. 진흙 오븐에서 갓 구운 빵 냄새가 진동하는 쿠스코의 뒷거리를 걷거나, 외국인부터 아이까지 누구나 넋을 잃고 입을 벌리게 만드는 잉카인들의 마추픽추 꼭대기에 서거나, 아마존과 고산지대, 해안가의 미식 재료가 즐비한 미식의 수도 리마에서 기분 좋게 먹고 마시며 흥청대는 동안 청춘의 바늘은 돌아올 것이다.

페루
정확히 첫 월급날부터 내 청춘은 봉인되었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있었다. 버킷리스트 첫 줄에 걸쳐놓은 마추픽추에 오르리라는 다짐은 지구 반대편보다 먼 달나라 이야기였다.

유명 PD의 영상 덕분에 먼지 쌓인 버킷리스트가 꿈틀거린다. 20년 동안 갇혀 있었던 청춘의 문이 다시 열린다. 여행의 꿈을 다시 꾼다. 떠날 수 있다면, 우리는 아직 모두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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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트레일

Day 1. 성스러운 계곡에서…'천사의 트럼펫'을 따라

해발 2600m의 작은 마을 피사쿠초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이 마을의 다른 지명은 KM 82.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에서 철도로 82㎞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낭만이라고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실용적 작명. 승용차와 기차로 갈 수 있는 도로는 여기가 마지막이다.

첫날 예정한 12㎞는 고산(高山)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당신을 배려하는 초보자 코스. 해발고도는 500m가 상승해 3100m까지 올라갔지만, 이미 이틀 동안 머물렀던 쿠스코 도시의 해발고도가 3300m였다. 온순한 페루의 알파카처럼, 심장은 아직 통제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편안하고 순탄한 길이다. 정복과 극복에 의미를 두는 남성 클라이머가 흔히 놓치는 대목이 있다. 잉카 트레일의 길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빚어내는지. 사막으로 시작한 길은, 구름 속 숲(Cloud Forest)을 지나 마침내 아마존으로 들어가는 아열대 정글을 이끌어낸다. 북반구 아시아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꽃과 새를 안데스에서 만난다.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잉카 유적으로 꼽히는 사야크 마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잉카 유적으로 꼽히는 사야크 마르 카. 왼쪽으로 난 돌계단 98개를 오르면 봉우리 정상에 있다. 해발 3600m. 산 끝에 놓인 형상을 빗대‘닭 볏’으로도 불린다. 태양의 신전과 주거지, 그리고 돌로 만든 수로를 갖췄다. 캐논 EOS M2 18-55㎜ 렌즈.
전문 가이드 에드가(32)가 길을 멈추고 손을 뻗는다. 그는 '천사의 트럼펫'이라는 이름을 들려줬다. 천사 정도는 되어야 감히 손을 댈 수 있을 법한 트럼펫 모양의 종꽃. 'KM 82'와는 달리 지극히 낭만적 이름이지만 환각 성분이 강력하단다. 우리에게는 '에네켄'으로 익숙한 초대형 용설란도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반겼다. 1905년 가난을 피해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로 향한 한인 이민자들이 수없이 심고 뽑았던 난이다. 에드가는 '뚜나'라는 낯선 선인장을 소개하더니, 그 속에서 희고 작은 애벌레 하나를 두 손가락으로 집었다. 바닥에 내려놓고 살짝만 눌렀는데도 선홍빛 염료를 뿜어낸다. 샤넬 등 명품 화장품의 립스틱과, 캄파리 등 유명 브랜드 술의 재료로 수출되는 천연 물질이라고 했다. 연둣빛 벌새(Hummingbird)가 나뭇가지를 건너다니며 배경 음악을 연주한다.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남미의 등뼈로 불리는 안데스는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산악이 아니다. 완만하고 아기자기하게 오르는 한반도의 산이 아니라 느닷없이 솟아오른 거대한 벽. 게다가 순간적 힘으로 바벨을 들어 올린 운동선수의 힘줄과 핏줄을 보는 듯하다. 팽창한 모세혈관 같은 안데스의 발기. 우리가 첫날 걸은 길의 이름은 성스러운 계곡(Sacred Valley)이었다.

Tip 1 첫날 12㎞ 이동. 이날 야영지는 와이야밤바(Wayllabamba). 해발 3100m. 송이 볶음밥과 고산병에 좋다는 코카 차로 저녁 식사. 저녁 5시 30분 일몰. 무난한 코스.


Day 2. 내 이름은 알레한드로, 아들 넷을 뒀습니다

텐트를 두들기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다. 마추픽추의 11월은 우기, 여름 겨울 뒤바뀐 남미의 장마다. 고산의 아침은 빨리 온다. 새벽 5시면 모든 것이 환한 세상. 다행히 비가 멈췄다. 이번 등반을 책임진 가이드 에드가는 팀 전원을 불러 모았다. 11명의 현지 포터와 요리사도 전원 참석. 에드가는 "우리는 나흘 동안 한 가족"이라며 "가족은 서로 인사를 나눠야 한다"고 군인처럼 말했다.

산꼭대기의 소금 염전, 마라스.
산꼭대기의 소금 염전, 마라스.
현지인 중 대장 격인 '셰프'가 나섰다. 주름 깊게 팬 사내는 잉카 원주민 언어인 케추아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마르셀리노. 쉰네 살이오. 요 앞 동네 깔까에서 왔소. 아들 네 명을 낳았소. 평소에는 농사를 짓소." 흙먼지 냄새가 났다.

두 번째 사내가 나섰다. "내 이름은 윌프레드. 나이는 마흔이오. 이 일 한 지 10년 됐소. 같은 마을에서 왔소. 자식은 다섯 명을 낳았고, 농사를 짓소."

인사법은 한결같았다. 간결했고, 그래서 강력했다. 포터들은 과장 약간 보태서 거의 날아다녔다. 고무 대충 잘라 만들었다는 '깔까 슬리퍼'를 신고, 키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우리보다 훨씬 뒤에 출발해서, 늘 역전에 성공했다.

게다가 이날은 무려 1100m의 높이를 극복해야 하는 잉카 트레일 최대의 난코스. 정점인 해발 4200m 지점은 '죽은 여인의 통로'라는 악명을 지니고 있다. 산을 넘다가 여자가 죽었다는 뜻은 아니고, 돌아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고개를 돌렸던 잉카의 공주가 돌이 되고 길이 되어 안데스의 다리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다.

산소탱크 메고 등반하는 텍사스 여인.
산소탱크 메고 등반하는 텍사스 여인.
잉카의 배꼽으로 불리는 도시 쿠스코.
잉카의 배꼽으로 불리는 도시 쿠스코.
하지만 잉카 공주의 살신성인도 별무소용이었다. 해발 3800m를 통과할 즈음, 심장은 출고한 지 10년쯤 지난 고물 자동차 시동 걸 때처럼 쿵쾅거렸다. 돌계단을 세 개 오르면, 1분은 쉬어야 겨우 제 숨이 돌아왔다. 100m 전진하는 데 1시간이 걸리는 느낌. 그 순간, 두 개의 등산 스틱에 의지한 여인이 악전고투하고 있는 기자를 제쳤다. 놀랍게도 그녀는 내 허리만 한 허벅지를 가지고 있었다. 경멸이나 모욕을 위한 표현이 아니다. 잉카 트레일에 도전하겠다는 결심 자체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신체를 지닌 여성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혹은 서로를 의지하며 발자국을 떼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세히 보니 배낭에는 산소 탱크를, 가슴에는 호흡기 케이블과 밸브가 연결되어 있었다. "Good job(대단해)"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You, two"라는 대답이 잠시의 머뭇거림 없이 돌아왔다. 그렇다. 누가 누구를 내려다볼 것인가. 격려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남이 아니라 나인 것을. 텍사스에서 왔다는 40대의 그녀는 마추픽추 트레킹이 자신의 버킷 리스트라고 했다. 나 역시 나만의 속도로 당신에게, 마추픽추에게 갈 것이다.

Tip 2 둘째 날 12㎞ 이동. 이날 야영지는 파카이마유(Paqaymayu). 해발 3500m. 최고 4200m까지 올랐다가 다시 하산. 일정 중 최대 난코스. 고산병까지는 아니었지만 심장이 적응하기까지 힘들었음. 로모 살타도(소고기 찹스테이크와 볶음밥)와 코카차로 식사.


Day 3. 별은 어떻게 둥근 원을그리며 회전하는가

11월의 안데스를 깨우는 두 가지 소리가 있다. 하나는 텐트를 때리는 빗소리, 또 하나는 벌새(Hummingbird)의 노래. 새벽 4시 20분쯤이면 어김없이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새인지 나비인지 모를 소박한 체구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또 하나의 생명이 있다. 잉카의 말로 와캉키. 학계의 공식 명칭은 마르데발리아 메치아나(Masdevailia Vechiana). 다섯 번 들어도 절대 외울 수 없을 것 같은 이 학명보다, 에드가가 불러주는 이름이 더 눈부시다. 'You will cry'. 실제로 와캉키의 꽃잎에는 두 방울의 눈물이 맺혀 있다. 늘 머금고 있다는 이슬이다.

마추픽추, 잉카 트레일 지도
마추픽추, 잉카 트레일 지도
잉카 트레일의 3박 4일은 당연하게도 잉카의 유적을 확인하는 길이다. 위로는 콜롬비아, 에콰도르부터 아래는 칠레 파타고니아에 이르렀던 전성기의 잉카. 확장하면 6000㎞에 달했다는 잉카의 길은, 이 43㎞가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약타파타, 룽크라웨이, 사야크 마르카, 푸유파타 마르카, 위니아 와니아 등의 유적이 퍼즐 조각처럼, 수수께끼처럼 하늘 도시에서 나타난다. 거대한 돌의, 돌을 위한, 돌에 의한 유적들이다. 잉카 문명의 숭배 대상 동물은 하늘의 콘도르, 지상의 퓨마, 그리고 땅 아래의 뱀. 유적은 각각 그 동물의 문양을 자신의 돌 안에 숨겨 놓고 있다. 신전으로 제의를 지내고 때로는 군사기지로 사용하면서 평상시에는 잉카의 전령 차스키의 쉼터로도 사용했던 공간.

잉카의 전령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귀족의 아들, 그것도 18~22세의 장자(長子) 중에서 힘과 지략이 뛰어났던 이만 가능했던 것.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잉카의 왕께서 생선이 먹고 싶다고 하면 차스키는 멀리 바닷가에서 릴레이로 실어 날랐다. 한 사람이 몇 킬로미터 구간을 전속력으로 주파한 뒤 바통을 넘기는 식이다. 가장 가까운 바닷가에서 수도 쿠스코까지는 약 600㎞. 그런데도 만 하루면 신선한 생선이 왕의 밥상에 올랐다고 한다.

눈물 두 방울의 의미를 지닌 꽃 와캉키.
눈물 두 방울의 의미를 지닌 꽃 와캉키.
페루의 물회격인 세비체.
페루의 물회격인 세비체.
어제보다는 무난한 오늘이다. 오늘의 야영지는 퓨유파타 마르카. 해발 3600m의 고지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난 뒤 에드가가 내 손을 이끌었다. 텐트 뒤쪽으로 난 오르막길로 100여m를 올랐다. 구름과 설산이 빚어내는 숨 막히는 풍경 아래로 안데스의 산맥이 파노라마처럼 360도로 펼쳐진다. 구름이 아래에 있다. 저 앞에 있는 게 아니라 아래에 있다. 그리고 해가 졌다. 저녁 7시 불과한데도 완벽한 어둠. 남반구의 별이다. 남미의 별은 어떻게 둥근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Tip 3 셋째 날 10㎞ 이동. 이날 야영지는 퓨유파타 마르카(Phuyupata marca). 해발 3600m. 최고 3950m와 최고 3670m인 두 개의 고점을 통과해야 하는 난코스. 가장 잘 보존된 잉카 유적지로 꼽히는 사야크 마르카(Sayac marka)를 통과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쌓아올린 제단과 목욕탕, 전망대 등을 만날 수 있다. 알파카와 라마 무리도 조우가 가능하다. 자연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코스.


Day 4. 새벽 4시 기상., 폭우 속 마추픽추

마추픽추 유적
마추픽추 유적

잉카의 신은 오직 30분만의 별을 허락했다. 나머지 시간을 지배한 것은 비. 첫날부터 심상찮았던 우기의 안데스는 밤새 비를 퍼부었다. 극강의 방수를 자랑하는 'Waterproof' 텐트였지만, 10시간 내내 쏟아진 비를 이겨낼 힘은 없었다. 새벽 4시, 잠시 가늘어진 비를 그나마 감사히 여기며 일어났다. 이마의 LED 램프에 의지해 쪼그리고 앉아 컵라면을 먹는다. 마지막 날을 위해 아껴둔 특식이다. 문득 새벽 인력시장의 풍경이 포개졌다.

해발 4000m에서 굽어본 안데스.
해발 4000m에서 굽어본 안데스.
페루 고산지대에 사는 라마
페루 고산지대에 사는 라마

4시 30분, 여명 전에 출발했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넷째 날은 계속해서 내려가는 길. 잉카의 돌계단은 작은 시냇물로 변해 있었다. 판초 안으로 완벽하게 숨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이런 비에는 대책이 없다. 신발까지, 속옷까지 흠뻑 젖는다. 육체보다 걱정인 것은, 과연 마추픽추가 제 모습을 허락해줄지다. 세상은 구름의 바다. 핏줄 솟은 안데스도, 아마존의 정글도, 비와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섯 시간을 내리 걸어 인티 푼쿠에 도착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태양의 문. 현지에서는 '오 마이 갓(Oh my God)'이라 부르는 수직 50여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느닷없이 나타난다. 그 문 앞에서 숨을 멈췄다. 문 뒤편으로는 구름의 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계인데, 문 앞쪽으로는 비밀의 공중 도시가 단속적(斷續的)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해발 2400m의 수수께끼 하늘 도시. 구름은 잉카 최후의 요새를 품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맥과 다리가 함께 풀렸다. 케추아어 마추픽추를 우리말로 하면 오래된 봉우리. 기차와 버스로 이곳까지 올라왔다면, 지금 같은 마음이 과연 들 수 있을까. 몸은 천근만근 무거운데 마음은 믿을 수 없게도 봉우리 위로 솟구쳤다.

Tip 4 넷째 날 9㎞ 이동. 마추픽추는 해발 2400m. 1200m를 줄곧 내려가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잉카 트레일의 정수를 보여주는 돌계단 길. 하루 종일 지독하게 내렸던 비 때문에 이날은 마추픽추에 도착하자마자 아래 마을로 후퇴. 다음 날 다시 올랐다. 3박 4일 걸렸던 마추픽추를 셔틀버스 30분 만에 도착했다. 날씨는 전날 비, 이날은 쾌청. 하지만 마음은 반대였다. 작렬하는 안데스의 태양을 묵묵히 견디며 꼼꼼하게 마추픽추를 살폈다. 활자를 남기지 않은 잉카는 말이 없다. 정들었던 낡은 운동화를 신전에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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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트레일
자연보존 위해 하루 200명만 입장… 4000m 高山을 꿈 꾸듯 걷다

남미 대륙 잉카 트레일(Trail) 시작 전날 밤의 일기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루 200명으로 인원을 제한하는 마추픽추 트레킹. 1000년 전부터 잉카 문명의 전사들이 밟아 다진 역사의 길이다. 3박 4일을 길에서 먹고 자며 잉카의 유적을 따라가다 보면, 세계적 불가사의 마추픽추(Machu Picchu)가 마지막 날 등장한다. 전 세계 트레커들의 꿈이자 잃어버린 공중도시를 찾아가는 길. 가슴 벅찬 일정이지만 고산병(高山病)이 걱정이다. 특히 2일 차에는 하루 1100m의 고도 차를 극복해야 한다. 내 심장이 버텨낼 수 있을까. 5년 동안 내 발에 꼭 맞게 길든 낡은 운동화 한 켤레에 의지해 볼밖에."

구름에 둘러싸인 안데스가 저 아래 있다.
잉카 트레킹 3일째 되는 저녁. 야영지였던 해발 3600m의 푸유파타 마르카는 전에 없던 풍광을 잠시 허락했다. 구름에 둘러싸인 안데스가 저 아래 있다.
머리 위까지 오는 배낭을 메고 돌계단을 오르는 포터들
푸유파타 마르카는 구름 위의 도시라는 뜻. 왼쪽 사진은 머리 위까지 오는 배낭을 메고 돌계단을 오르는 포터들. 
최고 높이 4200m, 총 43㎞의 안데스 산맥을 3박 4일 동안 걷는 잉카 트레일을 다녀왔다. 산 밑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공중 도시.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수수께끼의 제국 잉카(약 1200~1533)의 하늘 신전. 그래서 더욱 태양의 도시였던 마추픽추로 향하는 길이다.

마추픽추는 전 세계 여행자의 꿈이었지만, 이 비밀의 공중 도시에 접근하는 통로는 세속화된 지 오래였다. 가장 인접한 도시인 아과스칼리엔테스(AguasCalientes)까지 기차를 타고 들어간 뒤, 전용 셔틀버스를 타고 30분쯤 올라가는 방법이다. '잉카 트레일'은 이 현대의 통로를 거부한다. 자신의 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잉카 시대로 돌아가, 그들이 건설한 하늘 도시의 유적을 만나며, 아찔한 높이와 경사의 안데스 산맥을 온몸으로 따라 걷는 것이다.

마추픽추 전경
마추픽추 전경
잉카 트레일 고도 변화
잉카 트레일 고도 변화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로 꼽히지만, 모두가 이 소망을 실현할 수는 없다. 페루 정부가 이 길의 보존과 유지를 위해 하루 입장객을 200명 이하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름 성수기 중 원하는 날짜에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6개월 이전에 신청하고 허락을 기다려야 한다. 또 개인적으로 갈 수도 없다. 히말라야 트레킹처럼, 정부 허가를 받은 현지 여행사에서 전문 가이드, 포터와 함께 팀을 꾸려 출발해야 한다. 현지 포터가 야영을 위한 텐트와 식사를 책임지고 여행자는 자신의 짐을 담은 배낭을 메고 출발하는 식이다. '잉카 트레일'이 국내 매체에 소개되는 일은 처음. 3박 4일 체험기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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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사람을 위한 인형극… 옛 카메라를 닮은 칠레의 '람베 람베 극장'
칠레 발파라이소 시청 앞 광장에서 '람베 람베 극장' 축제가 열렸다. 일종의 인형극 축제인데, 인형극이 펼쳐지는 장소는 천막이나 무대가 아니라 삼각 받침 위에 놓인 작은 박스 안이다. 이 박스는 오래전 거리 사진사들이 사용하던 카메라를 닮았다. 브라질에서 이 상자형 카메라를 '람베 람베'라고 불렀고, 그 이름이 인형극 이름이 되었다. 80년대에 브라질에서 시작했다는데 지금은 남미 특유의 인형극으로 유명하다. 박스를 사이에 놓고 관객과 공연자가 마주 앉는다. 천을 뒤집어쓰면 바로 어두운 극장 안이다. 관객의 헤드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조명이 켜지면서 인형극이 시작된다. 공연자는 한 사람의 관객을 위해 부지런히 손을 놀려 인형을 조종한다. 박스와 공연자에 따라, 어린이극은 물론 실험적인 내용에서 장대한 드라마까지 다양한 내용이 펼쳐졌다. 5분 내지 10분의 짧은 극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일어나 자신만을 위해 애써 준 공연자와 악수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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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승우의 세계 일주
사진가
남미 안데스 산맥 위 페루의 작은 도시 푸노의 성당 앞으로 악마의 춤 무리가 지나가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예수가 탄생한 후 40일째 되는 날인 2월 2일이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성촉절이다. 남미 여러 나라에서 성촉절 축제가 열리는데, 페루 푸노의 것이 크고 유명하다. 티티카카 호수 근처의 도시 푸노는 스페인 점령시절, 가톨릭 포교의 중심지였다. 지금 푸노의 수호성인은 '촛불의 성모'로, 남미의 여러 성모가 그렇듯 원주민 피부색과 같다. 성촉절이 낀 2주 동안 푸노에서 성모를 위한 축제가 열린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모인 1000여명의 공연팀이 민속경연대회를 열고 줄지어 거리를 행진한다. 성모에게 바치는 춤과 음악이 2주 동안 거리를 메우는데, 이 행진 중에 악마의 춤이 있다. 악마의 춤 역시 안데스 지역의 중요한 전통이다. 이 춤은 페루의 토속신앙과 스페인 식민지배 시절 받은 영향이 결합된 것으로, 주로 은광(銀鑛)에서 일하던 원주민과 안데스의 외진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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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가난과 범죄의 대명사였던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촌‘파벨라’. 산등성이에 지어진 데다 화려한 건물 색채 때문에 관광명소가 됐다. ②이파네마 해변에서 석양을 등지고 공놀이를 하는 소년·소녀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에 잔잔한 물결이 인다. 마치 보사노바를 듣는 것처럼. ③보사노바 앨범을 산다면 꼭 들러야 할‘토카도 비니시우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 국제공항에 발을 내딛자마자 리우 여행은 보사노바(Bossa Nova·포르투갈어로 '새로운 경향'이란 뜻으로, 브라질 삼바 음악의 일종)와 함께할 수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다른 대도시들은 'J.F 케네디 공항'(뉴욕) '샤를 드골 공항'(파리)처럼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을 따서 공항 이름을 지었는데 이곳의 공항 이름은 '톰 조빔 공항'이다. '톰 조빔'은 보사노바의 대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1927~1994)의 애칭이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일단 조빔의 '이파네마의 소녀'를 들으며 이파네마 해변으로 향했다.

◇보사노바와 함께하는 여행

택시 기사는 "예쁘고 잘생긴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고 해변의 번화가에서도 제일 가깝다"면서 이파네마의 '9번 해변(Posto 9)'에서 내려줬다. 이 도시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해변이다. '이파네마의 소녀' 가사처럼 '늘씬하고 까무잡잡하면서 어리고 사랑스러운 소녀'와 소년들이 바닷물과 모래사장의 경계면에 늘어서서 축구공을 갖고 놀고 있었다. 둥글게 서서 발과 머리로 축구공을 주고받는 이들 행렬 끝을 맨눈으로 가늠하긴 어려웠다. '위험한 물'이란 '이파네마'의 의미대로, 이곳의 파도는 거세기 때문에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사람이 더 적은 해변을 원한다면 이파네마 북서쪽의 르블론(Leblon)을 추천한다. 이파네마 동쪽의 코파카바나(Copacabana)는 모래가 이파네마보다 지저분한 편이다.

보사노바의 명작 '이파네마의 소녀'는 말 그대로 이파네마 해변에서 탄생했다. 1962년 톰 조빔과 외교관·시인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에스(1913~1980)는 여느 때처럼 이파네마 해변에서 5분 정도 떨어진 식당 '벨로소'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창밖을 지나가던 15세 소녀를 보고 영감을 얻은 조빔과 모라에스는 각각 피아노와 펜을 잡고 몇 주 동안이나 씨름했다고 한다. 이 노래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보사노바도 덩달아 알려지게 됐다.

6년이 지난 후, 식당 이름은 '이파네마의 소녀(Garota de Ipanema)'로 바뀌었고, 이 식당이 있는 큰길의 이름도 '비니시우스 지 모라에스(Rua Vinicius de Moraes)'가 됐다. 이 길은 이파네마의 9번 해변 바로 앞에 있는데,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이파네마의 소녀'는 관광객들로 붐벼 정작 이파네마 주민들은 더 이상 잘 안 가지만, 맥주 맛은 여전히 좋다. 이 식당 옆에는 동명(同名)의 수영복 가게가 있는데 싸고 예쁜 비키니와 해변용 드레스 등을 파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가게 주인이 바로 조빔과 모라에스에게 영감을 줬던 그 '이파네마의 소녀'이다. 지금은 65세의 노인으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지만, 이 가게엔 젊은 시절 그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파네마의 소녀'들로 북적인다.

◇연인들의 이파네마 해변

'이파네마의 소녀'에서 걸어서 3분도 안 떨어진 곳에는 보사노바 음반과 서적을 전문적으로 파는 '토카 도 비니시우스(Toca do Vinicius)'가 있다. 10여명밖에 못 들어갈 정도로 좁고, 허름해 보여도 리우에 있는 유명한 보사노바 연주자들이 헌정 공연을 펼치기도 하는 보사노바 명소다. 1950~60년대 리우의 정취를 간직한 곳으로 2층에는 보사노바와 관련된 소품을 모아놓은 작은 전시실도 있다. 주인인 카를로스 알베르토 아폰소에게 음반 5장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그는 "보사노바는 급하게 들으면 안 된다. 4장만 추천해 주겠다"고 했다. 아폰소는 어설픈 영어와 함께 손짓과 발짓으로 보사노바에 대해 30분 가까이 설명까지 해줬다.

리우 최고의 석양을 보기 위해서라면 이파네마 해변 끝에 있는 바위 '아르포아도(Ponta do Arpoado)'에 가야 한다. 리우의 석양 사진은 거의 다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낮에 가면 맨발로는 디딜 수 없을 정도로 바위가 뜨거운데 이파네마의 소년·소녀들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이곳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노닐고, 바닷물에 낚싯대를 늘어놓는다.

보사노바 팬들에겐 '경치 좋은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1991년 조빔은 이 바위에서 피아노를 올려놓고 기념사진을 찍었고,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선 "내가 죽으면 내 마음은 이곳에 묻히길 원한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곳에서 낚시를 하고 다이빙을 하며 뛰어놀았던 그는 보사노바를 리우의 바다에서 배웠는지도 모른다.

이파네마 해변의 이글거리는 태양과 젊음에 숨이 막힌다면 해변과 떨어진 라고아(Lagoa) 호수에 가는 것도 좋다. 길이 7.2㎞에 달하는 이 호수변에는 조깅과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한 시간에 R$10(약 6000원)을 내면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물가인 데다가 나무가 울창해 시원하고 조용하다. 어린 연인들은 강변에 만들어진 작은 갑판을 하나씩 차지하고서 해가 질 때까지 애정 행각을 벌인다. 오후 7시쯤, 해가 떨어지고 나면 호숫가 '키오스크(Kiosk·매점)' 구역에 몰려 있는 레스토랑이나 바들이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보사노바 음악을 라이브로 들려주는 '드링크 바(Drink Bar)'를 추천한다.

“탱고는 시인들이 언어로 기술하고자 하는 것들, 그리고 투쟁은 곧 축제라는 믿음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 같은 남미의 대문호야 탱고를 시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사실 탱고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무용(無用)한 시도에 가깝다. 단조이면서 빠르고, 음울하면서도 격정적인 몸짓과 선율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기나 할까. 탱고를 알고 싶다면, 역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는 수밖에 없다.

부둣가 마을 보카의 건물들은 색색의 레고 블록을 쌓아 만든 것 같다. 이 발랄한 동네에선 탱고 댄서들이 춤추자며 먼저 손을 내민다.

◇우아하고도 애틋한 '밀롱가' 탱고

우선 탱고의 탄생지로 알려진 '보카'에 갔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와 스페인 이민자들이 몰려 살던 부둣가다. 삶의 애환을 달래려던 이민자들 사이에서 탱고가 유래했다는 설(說)이 있는데, 보르헤스에 따르면 이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찾아가던 사창가에서 나왔다고 한다. 탱고에 깃든 관능과 슬픔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듯하다.

이민자들이 가난과 향수에 몸부림쳤던 보카는 지금도 여전히 빈민가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몇 개 골목을 정해주곤 "다른 곳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했다. 큰길에는 관광버스가 여러 대 서 있었고, 골목마다 카메라를 든 관광객과 호객꾼이 몰려들었다.

보카의 중심가인 엘 카미니토에선 공연을 펼치던 탱고 댄서들이 함께 탱고 포즈를 취하며 같이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탱고가 유래한 동네라곤 하지만, 전형적인 관광지가 된 탓에 정작 탱고의 정취를 느끼긴 어려웠다. 대신 빨강·초록·노랑 등 색색으로 칠해진 원색의 건물들을 구경하며 길거리에서 파는 액세서리나 그림 등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날 밤 탱고 쇼를 볼 수 있는 극장 '카를로스 가르델'에 갔다. 스테이크에 와인을 곁들이며 2시간 넘게 이어지는 제대로 된 탱고쇼를 볼 수 있는 곳(1인당 AR$420)이다. 탱고 작곡가이자 가수인 가르델(1887~1935)은 '탱고 칸시온'(가사가 있는 탱고 음악)을 개척한 '탱고의 황제'로, 영화 '여인의 향기'로 유명해진 '포루 우나 카베사'를 작곡했다. 20대부터 60대로 보이는 10여 커플이 차례로 나와 다양한 곡에 맞춰 춤을 선보인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곡예에 가까운 춤을 추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탄성이 절로 나오지만, '쇼는 쇼'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결국 다음 날 오후 밀롱가(탱고를 즐기는 장소)를 찾았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밀롱가 '콘피테리아 아이디얼'은 1912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밀롱가로 유명하다. 탱고 교습도 해준다고 한다. 보통 밀롱가는 밤 12시부터 제대로 시작한다는데, 해지기 전 오후부터 여러 쌍이 춤을 추고 있었다. 대부분 40대 이상 중·장년이었고, 양복 주머니에 손수건을 꽂고 머리를 가지런히 정돈한 '멋쟁이' 할아버지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이들의 춤은 기교가 전혀 없이 소박한 편이었지만, 우아하고도 애틋했다.

탱고의 라틴어 어원인 '탕게레'(Tangere)는 '만지다' '가까이 다가서다' '마음을 움직이다'라는 뜻이다. 탱고를 추는 남녀는 상대방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가슴을 밀착한다. 아니, 서로에게 기댄다. 정해진 스텝은 없고 남자가 이끌면 여자가 반의반 박자 정도 늦게 따라간다. 남자는 여자의 등을 손으로 안고서 신호를 준다고도 하지만, 심장 고동 소리만으로도 서로 의중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리콜레타 공동묘지’에 가면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 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만 같아 설레기까지 한다. 발소리를 죽이고 걸으면 벽 안에서 사람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올 것만 같다.

◇시간이 멈춘 듯한 '망자(亡者)들의 마을'

탱고가 현세(現世)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촌(富村) 리콜레타에 있는 '리콜레타 공동묘지'는 내세(來世)에 대한 열망이 서려 있다. 잘 알려진 장소지만 묘지라는 이유 때문에 여행자들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오전 11시 영어 투어 가이드를 무료 제공한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삼나무가 보이고 큰길 양쪽으로 다시 작은 골목들이 나 있다. 얼핏 보기엔 유럽의 퇴색한 작은 마을 비슷하다. 무덤 하나하나가 작은 집이나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망자들의 마을'인 셈이다. 아르데코, 아르누보, 바로크, 네오 고딕 등 다양한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석재나 철문 중에는 밀라노에서 직접 공수해온 것도 있다.

무덤은 5000개에 이르는데, 한 가문의 무덤에 여러 구의 시신이 있기 때문에 몇 사람이 묻혔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한평생 호사스럽게 살아도 리콜레타에 묻히는 것보단 돈이 덜 든다"는 말이 있을 만큼 유명하고 부유한 가문 출신만 이곳에 묻힌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골목 사이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전해 온다. 한 무덤에는 서로 등을 지고 있는 남녀 두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들은 생전에 부부였다고 한다. 사치를 일삼는 아내에게 남편이 돈을 주지 않자, 아내가 "죽어서도 당신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란다.

공동묘지라곤 하지만 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질리지 않는다. 사람이 없는 골목이 많아 무덤가에서 뛰노는 고양이들을 벗 삼아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살아 있는 자들의 세상에선 찾기 어려운, 시간이 멈춘 듯한 곳이다.

아르헨티나 페리토 모레노 빙하…높이 60~80m 길이 35㎞
온난화·강설에 2m씩 이동하며 빌딩 크기 얼음덩어리 붕괴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탱고를 보고 있자면 한증막에라도 들어간 듯 숨이 턱턱 막힌다. 몸과 몸 사이에 한 치도 틈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가슴을 밀착시킨 남녀가 사지의 근육을 팽팽하게 내뻗은 채 몇 바퀴고 돌고 또 돈다. 10분 정도 지나면 마룻바닥에서는 아지랑이가 이는 것 같다. 저렇게 쉬이 정염에 휩싸이는 이들이 학교나 사무실에선 어떻게 온화하다 못해 무심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뿐만 아니라 페리토 모레노 빙하도 본다면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877년 프란시스코 파스카시오 모레노가 발견한 페리토 모레노 빙하. 굉음과 물보라를 만들어내며 무너지는 빙하에서 얼음의 시퍼런 열기가 느껴질 정도이다.
1877년 프란시스코 파스카시오 모레노가 발견한 페리토 모레노 빙하. 굉음과 물보라를 만들어내며 무너지는 빙하에서 얼음의 시퍼런 열기가 느껴질 정도이다. 빙하 트레킹을 마치면 빙하 얼음을 넣은 ‘위스키 온 더 락’을 마신다. 가슴에도 불덩이 하나를 품는 것이다. /롯데관광 제공

◇한없이 투명하고 눈부시게 푸른 장관, 페리토 모레노 빙하

남극과 가까운 아르헨티나 남쪽의 산타크루스 주. 칠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타고니아 대륙에는 빙하 국립공원(Parque Nacional Los Glaciares)이 있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파타고니아 빙원의 가장 남쪽에 있다. 폭이 5km에 높이가 60~80m이며 길이는 35km나 된다. 안데스 산속 칠레 국경까지 뻗어 있다. 빙하 국립공원에 있는 360여 빙하 중 가장 아름답고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빙하이다. 하지만 이 빙하가 특별한 건 비단 크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빙하는 지구온난화와 많은 강설량 때문에 하루에 중앙부 2m, 양쪽 끝은 40cm 정도 전진하고 있다. 그렇게 움직이다가 때로 천둥 같은 굉음을 내며 빌딩 한 채 크기의 얼음 덩어리를 붕괴시킨다. 사람들은 이 한없이 투명하고 눈부시게 푸른 붕락을 목격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전망대에서 빙하를 관람한 후, 아이젠을 차고 직접 빙하 위를 걸어 보는 트레킹 코스가 인기다.

◇'남미의 스위스' 바릴로체

부에노스아이레스 토박이들에게선 묘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남미의 파리'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 그리고 다른 남미 대도시 주민들보다 세련됐다는 것을 은근히 풍기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남미는 작은 유럽 같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서쪽으로 1720㎞, 칠레 국경과 가까운 바릴로체는 '남미의 스위스'라고 한다. 고요하게 너울거리는 파란 호수와 사방으로 둘러싼 빙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최초의 국립공원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둘러싸인 바릴로체는 해발 700m 에 위치한 삼림 휴양 도시이다. 바릴로체 근처 빅토리아 섬에서 페리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아라야네스 숲은 밤비의 숲으로 유명하다. 숲 가득 메운 은매화 나무 따라 가는 트레킹 코스를 즐길 수 있다. 월트디즈니의 고전 만화 '밤비'의 배경이 된 곳답게 주변의 울창한 숲에서 커다란 눈을 반짝거리며 아기 사슴이 뛰어나올 것만 같다.

19세기 스위스 사람들이 이주하여 정착한 바릴로체는 밀크초콜릿 최대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중심가인 모레노 거리를 걷다 보면 크고 작은 다양한 수제 초콜릿 상점이 즐비하다.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캄파나리오 언덕 1050m 지점까지 2인용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 호반 도시의 전경을 관람할 수 있다. 나우엘 우아피 호수, 페리토모레노 강, 바릴로체 최고급 호텔인 샤오샤오 호텔이 주변 빙하와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여행수첩 

페리토 모레노 빙하 위치도

롯데관광은 기존 '수박 겉핥기'식 중남미 여행을 벗어나 남미 지역, 특히 아르헨티나(바릴로체와 갈파테 빙하)를 집중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상품을 단독 출시했다. 대한항공 휴스턴 노선을 활용하여 단독 출시하였다. 남미 여행할 때 장거리 항공 이동이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대한항공 휴스턴과 상파울루 단일 노선을 활용하면 더 편안한 남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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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페루 요리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페루 요리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잇는 잉카레일 일등석은 달리는 레스토랑이다. 철길과 나란히 흐르는 빌카노타 강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식전주 피스코사워를 마시고 향긋한 송어 요리에 백포도주를 곁들이면 신선이 부럽지 않다. 강을 따라 1시간 30분간 북서쪽으로 달리면 하늘의 도시 마추픽추에 도착한다. / 잉카레일 제공
남미 겨울의 끝자락인 9월, 페루 수도 리마는 낮게 깔린 잿빛 구름 아래 잔뜩 웅크린 모습이었다. 페루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장편 '새엄마 찬양'에서 리마의 겨울을 이렇게 설명했다. '커튼을 걷자 축축하고 음산하며 희뿌연 리마의 9월 햇빛이 방 안을 덮쳤다. 겨울은 참으로 냉혹하고 모질다고 루크레시아 부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리마의 겨울에 짓눌린 이 귀부인을 위로하는 게 있었다. 바로 하녀가 쟁반 가득 담아다 그녀 앞에 펼친 요리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페루 요리
리마의 왼쪽, 태평양과 맞닿은 백사장에서 하필이면 9월에 남미 최대의 요리축제 미스투라(MISTURA)가 펼쳐진 이유도 겨울에 신물 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을까. 리마 최고의 고급 주택가 미라플로레스와 지척인 이곳에서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열린 미스투라 축제는 마음껏 먹고 마시며 우중충한 겨울 날씨와 한판 대결을 벌이는 이들로 붐볐다. 9월에 리마를 찾는 이들은 이제 잿빛 하늘보다 미스투라 180여개 요리 부스와 군침을 돌게 하는 '페루의 맛'을 떠올린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이 요리 축제엔 페루는 물론 남미 전역에서 해마다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행사를 주관하는 페루 요리협회(APEGA)는 올해 예상 방문객 수를 50만명으로 잡았다. 지난해에는 42만명이 이 행사를 찾았다.

페루 퀴진(Peruvian Cuisine)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요리다. 미 공영 라디오(npr)는 지난 4월 "최근 수년간 미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페루 레스토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레스토랑연합회는 2011년 이미 페루 요리를 '최고의 푸드 트렌드'로 꼽았다. 이런 결과는 절로 나온 것이 아니다. 페루 정부와 페루의 국민 셰프로 불리는 가스통 아쿠리오(Acurio) 같은 스타 셰프들이 손잡고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페루 요리 세계화에 나서고 있다. 7개의 서로 다른 고도와 기후대에서 생산되는 엄청나게 다양한 농수축산물 식재료는 이런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훌륭한 원자재 노릇을 했다. 미스투라 행사장에서 만난 셰프 아쿠리오는 "안데스산맥과 아마존, 태평양 연안 등 넓은 지역에 펼쳐진 다양한 기후대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풍성하고 다양한 식재료를 생산한다"고 자랑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매일 4개의 페루 음식점이 새로 생기고 있다는 통계도 제시했다.

페루는 지난 세기 말 정치투쟁과 테러로 얼룩졌던 국가 이미지 변신의 동력도 요리에서 찾고 있다. 한때 좌익 테러집단 '빛나는 길'의 폭파 참수 암살 등으로 악명 높았던 이 나라는 2000년대 들어 요리를 앞세워 이미지 탈바꿈에 성공했다. 미스투라 외에도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50'에 해마다 2~3개의 페루 레스토랑이 포함된다. 2013년 페루 정부 통계를 보면, 페루 관광의 40%가 음식을 맛보기 위한 것이었다. 미식 관광으로 그해 페루가 벌어들인 돈은 7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50에 포함된 곳 위주로 리마의 최고급 레스토랑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페루의 맛은 리마의 멋진 레스토랑에만 있지 않았다. 리마의 재래시장에선 아마존 민물고기로 만든 4000원짜리 회 샐러드 세비체가 코를 자극했다. 빌카노타강을 끼고 마추픽추로 가는 잉카 레일 열차에서의 한 시간 반 짧은 탑승 시간에도 어김없이 식전주(食前酒) 피스코사워가 식탁에 올랐고 향긋한 송어요리가 관광객의 배를 불렸다. '마추픽추도 식후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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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하늘 위… 美食 천국

1 일식 퓨전 레스토랑 마이도의 ‘라바 세비체’. 라임즙을 냉동건조한 뒤 부숴 옥수수 가루와 섞었다. 

2 스시에 생선 대신 소고기를 얹은 마이도의 ‘스시 어스’. 밥 위에 등심과 메추리알을 얹거나 소 편도선을 바싹 구워 얹었다. 3 페루의 대표적인 서민음식 안티쿠초. 

4 아보카도를 태운 가루로 만든 빵과 당근 요리인 센트럴 식당의 ‘나무 계곡’. 

5 꽃잎인 줄 알고 먹었는데 회가 씹힌다. 아마존 민물생선 돈세야 살은 꽃처럼 붉은색이다.

6 대형 석쇠에 돼지를 통째로 구운 ‘찬초 알 팔로’. 미스투라 축제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사간 요리다.



이반 키시치(IVAN KISIC)와 마이도(MAIDO), 센트럴(CENTRAL)은 국제적인 미식(美食) 도시로 뜨고 있는 리마에서도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3대 레스토랑으로 꼽힌다. 세 곳 모두 리마의 고급 주택가인 미라플로레스에서 미식의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2013년 문을 연 이반 키시치는 여행 정보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가 리마 레스토랑 중 꼭 가봐야 할 곳 1위로 꼽은 신흥 강자. 마이도는 페루의 식재료를 써서 만든 일식을 뜻하는 닛케이(NIKKEI) 레스토랑의 대표 주자로 올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순위 44위에 올랐다.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4위에 오른 센트럴은 리마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의 자존심과도 같은 곳. 이곳에서 식사하려면 적어도 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리마를 떠나 마추픽추로 향했다. 리마가 고급 요리로 식도락가의 입맛을 사로잡은 반면, 마추픽추에선 페루인들이 일상에서 먹는 요리를 접할 수 있었다. 

◇이반 키시치에서의 3시간 점심 식사

"오늘 준비한 점심 코스요리를 다 드시는 데 대략 3시간 걸립니다." 

여기, 하늘 위… 美食 천국
마추픽추로 가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역 주변 식당에서 우연히 맛본 빵. 주문을 하니 화덕에서 직접 구워냈다. 씹을수록 고소하다.

퓨전 레스토랑 이반 키시치(IVAN KISIC)의 셰프 헤수스 알바노가 경고인지 축복인지 모를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전식을 먹기 위한 입가심(아무즈 부시). 소스를 끼얹은 안티쿠초(anticucho·소 심장 구이)를 올린 감자칩과, 흰살생선에 문어 타르트를 놓고 그 위에 고수를 곁들인 고구마칩이 식탁에 올랐다. 메뉴판을 아무리 봐도 이런 요리가 없기에 물어보니 "애피타이저 전 단계로 먹는 아브레라 보카('입을 열게 하다'라는 뜻)"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브레라 보카의 주문(呪文)에 걸린 걸까. 이후 요리가 나올 때마다 빈자리가 줄어드는 위는 음식을 거부하고 달콤함에 홀린 입은 벌어지는 난감한 사태가 반복됐다.

전채는 4개가 나왔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마존 세비체'. 세비체는 생선이나 오징어·새우 등을 라임이나 레몬즙에 재워 잘게 다진 채소와 함께 먹는 찬 음식. 그런데 아마존 세비체는 따뜻했다. 몸길이가 최대 3미터에 이른다는 아마존 민물고기 파이체(paiche)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살을 중국식 프라이팬인 웍(wok)에 넣어 불에 그을린 뒤 바카오 나뭇잎으로 싸서 냈다. 곁들여 나온 말린 바나나를 손으로 비벼서 가루를 내 얹어 먹으니 바나나 가루의 바삭함과 파이체의 부드러운 생선살이 대조되며 씹는 재미를 선사했다.

메인코스는 더욱 진기한 요리의 연속이었다. "저 예쁜 걸 어떻게 먹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오는 귀여운 기니피그가 이곳에선 쿠이(cuy)라는 요리로 불린다. 쿠이는 세 가지 형태로 식탁에 올랐다. 내장을 갈아 무스처럼 반죽해 낸 파테(pate)는 한없이 부드럽다. 얇게 포를 떠서 구운 껍질은 애저구이보다 더 바삭해 입에 넣자마자 감자칩처럼 혀 위에서 녹아 없어졌다. 고기 육질을 씹고 싶은 욕망은 알바노 셰프가 개발한 팥향 나는 양념장에 재운 넓적다리 졸임이 해결해줬다. 쫄깃하고 짭짤해 자꾸 손이 갔다.

마지막으로 나온 '옥수수와 겨자 사이'는 이 집에만 있는 메뉴다. 돼지고기 삼겹살을 데리야키 소스에 재웠다가 익히고 옥수수와 생겨자를 곁들여 내놓는데, 육질이 하도 부드러워 동파육을 떠올리게 했다. 강한 중식의 영향이 엿보였다. 한 덩이 우물거리고 나니 머릿속에서 "고기는 인제 그만!"이란 비명이 터져나올 만큼 포만감이 덮쳤다.

◇마이도, 페루의 식재료로 만든 일식(日食)의 새 얼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2015'라는 문구가 가게 문패와 나란히 붙은 이 식당의 셰프 미쓰하라 쓰무라는 퓨전 요리의 강자다. 미국과 일본에서 유학하며 요리를 배운 그는 "아마존에서 나오는 식재료를 바탕으로 하되 일식 조리법으로 요리한다"고 설명했다. 페루 요리는 무난하기보다 자극적이어서 짜거나 시거나 맵다. 하지만 마이도의 요리는 일식에 익숙한 우리 입맛에 친숙하다. 여느 식당들처럼 이 식당도 식전주인 피스코사워로 식사를 시작한다. 피스코사워는 원래 신맛을 내는 술이지만 이곳은 오렌지보다 100배나 시다는 카무카무를 쓴다. 한모금 마시니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셨고 음식 외의 잡생각이 사라졌다. 자 이제 먹어볼까.

이날 셰프가 권한 점심 코스는 아마존 닛케이 체험(AMAZON NIKKEI EXPERIENCE). 1890년대 오키나와 주민이 이주하며 비교적 일찍 페루에 뿌리를 내린 일본인들이 페루 음식에 일본풍을 가미하면서 페루의 닛케이 음식이 시작됐다. 그 전통을 살린 16개 코스마다 '반주 소믈리에'가 등장해 샴페인과 화이트와인·레드와인·피스코샤워·맥주를 번갈아 냈다.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선정은 '창의성'에 방점을 둔다. 이 식당이 내놓은 '라바 세비체'는 재료를 해체해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쓰무라 셰프의 요리 세계를 웅변했다. 차갑게 얼린 돌판 위에 세비체 회가 나오는데 국물은 없고 노란 가루에 묻혀 있다. 알고 보니 옥수수 가루로 만든 옐로스파이시 소스에 신맛을 내기 위해 넣는 레몬을 질소로 차갑게 얼려 얼음가루로 만들었다. 노란 가루가 식탁에 떨어져 녹는 것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이 세비체 요리가 국물을 만들며 마지막으로 완성되는 곳은 접시 위가 아니라 사람의 입속이구나."

퓨전 요리의 대미는 고기 스시가 장식했다. 손으로 꼭 쥐어 만 밥 위에 얹은 것은 생선회가 아닌 고기. 두 개가 나왔는데 각기 모양이 달랐다. 하나는 등심 위에 메추리알을 얹어 살짝 구워냈다. 나머지 하나는 안심인가 싶어 "밥 위에 얹은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바싹 구운 소의 편도선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센트럴에서 페루의 고도(高度)를 맛보다

셰프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가 한국의 미식 탐험가에게 선보인 요리의 개념은 '해발고도'였다. 해저 20미터 바다와 해발 3900미터 안데스 고원 사이에서 나오는 페루의 식재료로 만든 요리다. 덕분에 미라플로레스의 식당에 앉아 프랑스와 스페인을 합한 광활한 자연을 탐험했다.

시작은 해저 5미터에서 나온 요리 '스파이더스 온 어 록(SPIDERS ON A ROCK·바위 위의 거미들)'. 게와 바다달팽이, 모자반, 삿갓조개 애피타이저다. 도자기 파편 위에 아보카도와 당근, 캐럽 나무에서 채취한 허브를 배열한 '밸리 오브 어 트리'는 3400미터 고원도시 쿠스코에서 채취한 허브에서 낸 즙과 함께 차려냈다. 이날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온 식재료는 해저 20미터에 사는 맛조개를 오이와 라임에 버무린 '마린 소일(바다의 흙)'. 서빙돼 나온 접시의 오이와 크림을 살살 걷어내면 바다에 숨은 것처럼 조개요리가 나타난다. 라임에 절여 내온 맛조개를 씹을 때마다 배어 나오는 상큼하고 달콤한 라임향이 무한한 행복감을 선사한다. 최고 고도인 3900미터에서 채취한 허브와 옥수수, 코카로 만든 빵 '안데스 고원'은 첫맛은 밋밋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배가됐다.

'저고도 안데스 산맥'이란 이름의 요리는 우리나라에 머리가 좋아지는 곡물로 알려진 퀴노아에 송아지 갈빗살을 곁들였다. 안데스 산맥에서 키운 송아지 심장을 바짝 건조한 뒤 분말로 만들어 갈빗살 요리에 얹어 고기의 풍취를 한껏 끌어올렸다. 셰프 마르티네스는 "음식 이름이 정해지지 않아 아직은 고도와 채취한 지역 등으로 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차 타고 떠나는 마추픽추 미식 여행

리마를 떠난 비행기가 해발 3400미터 고원도시 쿠스코에 착륙하자 곧바로 고산증세가 찾아왔다. 가슴을 쥐어짜는 느낌에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 난 것처럼 심장이 두방망이질했다. 호텔에서 밤새도록 고산병 증세와 씨름하다가 이튿날 서둘러 미니밴을 타고 마추픽추행 기차가 출발하는 오얀타이탐보로 향했다. 마추픽추의 해발고도는 잉카제국의 도시 쿠스코보다 1000미터나 낮다는 설명을 가이드에게 듣고 나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오얀타이탐보에서 마추픽추가 있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 가는 철길은 환상적이다. 빌카노타 강을 따라 나란히 달리는 기차는 때로 빽빽한 숲이 터널처럼 우거진 계곡 사이를 헤치고 나가거나 문득 너른 평야와 한가로이 길을 걷는 사람들을 지나친다. 1시간 30분의 여행 시간에 입도 즐겁다. 일등석에 앉으니 피스코사워와 와인 케이크 송어요리가 잇달아 나왔다. 식사의 끝은 달콤한 초콜릿아이스크림과 셔벗으로 장식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하니 철길을 따라 기다랗게 식당가가 늘어서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찾아 들어가니 화덕에서 불을 피우고 있기에 빵을 구워달라고 했다. 20여분 만에 나온 빵은 피자를 닮았지만 토핑이 없었다. 그러나 한입 베어 물었을 때의 그 고소함이란!

마추픽추 아래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나와 동네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출피(CHULPI)라는 간판을 내건 허름해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여기 사람들이 먹는 요리를 먹고 싶다"고 부탁했더니 염소 고기 수프와 옥수수로 만든 샐러드, 퀴노아로 만든 볶음밥, 동그랗게 잘라 모양을 낸 닭고기 구이, 페루식 불고기인 로모 살타도가 나왔다. 화려하지 않지만 쌀밥처럼 부담없는 요리들이다. 며칠간 괴롭던 고산에도 익숙해졌는지 식욕이 돌아왔다. 식당 지배인 훌리오 가스트로씨는 "철길을 따라 식당 150여곳이 영업을 한다"며 "호텔이 아닌 이런 곳이어야 보통의 페루 사람들이 먹는 요리를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프 등 일부 요리에는 고수가 들어 있기 때문에 고수를 싫어한다면 빼달라고 미리 말해야 한다. 

가는 법

한국에서 페루까지 직항편은 없다. 로스앤젤레스나 댈러스, 도쿄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많이 이용한다. 로스앤젤레스와 댈러스에서 아르헨티나항공, 란칠레항공, 바리그브라질항공 등을 이용해 수도 리마에 도착할 수 있다. 리마에서 쿠스코는 페루 국내선을 이용한다. 비행시간은 약 한 시간.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는 미니밴과 기차를 타고 간다. 먼저 미니밴으로 오얀타이탐보까지 간 뒤 마추픽추가 있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는 잉카레일을 이용한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30분. 관광에 최적화된 잉카레일 기차는 위로도 창을 내 개방감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철길 옆으로 빌카노타 강과 계곡을 따라 비경이라 할 수밖에 없는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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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투라' 요리 축제

'미스투라' 요리 축제
9월 4일부터 13일까지 리마에서 열린 요리 축제 미스투라(MISTURA)는 온갖 요리가 섞여 새롭게 탄생하는 페루 요리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올해 모토는 '다양한 음식의 융합과 교류를 통한 새로운 요리의 추구'. 크고 너른 지역에서 나온 페루 고유의 농수축산물은 스페인과 잉카의 전통 방식으로 요리되고, 일식의 영향을 받은 닛케이, 중식과 유럽 음식의 퓨전인 치파(Chifa) 요리까지 선보이며 풍성한 먹거리를 선보였다. 미스투라라는 말 자체가 스페인어로 혼합(mixture)이란 뜻이다.

올해로 8회째인 미스투라는 식재료의 다양성과 요리의 창의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요리 부스는 총 188개. 페루 각지에서 참가한 레스토랑의 요리를 맛보거나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직접 구입할 수 있다. 미스투라에서 가장 인기 코너는 그랜드 마켓. 레스토랑과 푸드트럭, 노천식당 등에서 식사를 마친 뒤 디저트 부스에 가면 초콜릿으로 샤워한 막대사탕과 수제 맥주가 손님을 반긴다. 전통의상으로 단장한 농부들은 각종 과일을 펼쳐놓고 시식을 권하기도 한다.

먹자판이 흐드러지게 펼쳐진 광장을 천천히 가로지르는데 한쪽에서 불이 치솟고 불어오는 바람 속에 고소한 고기 굽는 내가 번졌다. 가까이 가보니 사람 여럿이 부지런히 자갈 무더기를 헤집으며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입장객들이 둘러서서 그 장면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 무슨 요리냐고 물어보니 파차 만카(pacha manca)라 했다. 파차는 땅이고, 만카는 화덕이란 뜻. 불을 피워 뜨겁게 달군 자갈 위에 돼지고기와 알파카 닭 감자 고구마를 쏟아붓고 다시 자갈을 얹어 2시간 동안 구워냈다.

그 옆에선 사람도 들어갈 만한 크기의 대형 석쇠에 통돼지를 끼워 굽고 있었다. 돼지의 뼈만 발라낸 뒤 두 개의 석쇠 사이에 통째로 넣어 직화(直火)로 구워내는 찬초 알 팔로(Chancho al Palo)다. 돼지 껍질과 살 사이에 낀 피하지방이 열에 녹으며 고소한 향기를 사방으로 흩뿌리는데 입에 침이 절로 고였다.

미스투라 입장권은 16~25솔(1솔은 약 350원). 입장권 판매대에서 가이드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엘파도, 엘콘다도 스위트 서비스, 루스벨트 호텔 앤드 스위트 등 리마 시내 호텔들은 투숙객을 대상으로 할인가로 축제에 입장해 요리를 즐길 수 있는 미식투어 상품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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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가 말하다. 탱고는 플라타 강의 아이다.

아르헨티나의 정신, 소설가 보르헤스는 말했다. “탱고는 플라타 강(Rio de la Plata)에 속해 있다. 아버지는 우루과이의 밀롱가, 할아버지는 쿠바의 하바네라다.” 플라타는 대서양이 남아메리카 대륙의 아랫도리를 찢고 들어오는 형상을 한 거대한 강이다. 음악이자 춤인 탱고는 이 흙탕물투성이의 강에서 태어났다. 탱고가 플라타 강의 아이라는 말의 다른 의미는 오직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이 녀석을 만들어낸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강의 건너편,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는 또 다른 탱고의 거점이며, 완고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받아들이지 못한 실험적 탱고의 산실이기도 했다.

파스텔 색의 거리에서 걸음마하다 - 보카의 카미니토

탱고의 탄생은 동시다발적이었지만, 19세기 후반의 보카(La Boca)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옛 항구였던 이 지역은 유럽의 이민자들,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 출신들이 향수에 젖어 시름하고 그것을 노래와 춤으로 풀어내던 동네였다.


보카의 카미니토(Caminito) 거리는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곳으로, 이탈리아계 항구 노동자들이 알루미늄 벽에 칠해놓은 파스텔 조의 건물들이 화사하게 빛나고 있다. 거친 환락가에서 태어난 탱고가 우아한 격식을 갖춘 예술로 변모했듯이, 카미니토도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탱고의 황금기에는 자유분방한 연주자들의 터전이 되었고, 군사 독재의 시기에는 어둡게 침잠했고, 지금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는 거의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찾는 번잡한 관광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길거리 연주자와 댄서, 오래된 밀롱가와 카페 등 탱고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매혹시킬 보석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탱고는 아름다운 카미니토의 밤거리에서 진정한 생명을 얻었다.

탱고의 왕 가르델, 체 게바라의 아버지에게 일격을 당하다 - 글라스 궁

가르델은 영화 [여인의 향기]를 통해 널리 알려진 '포르 우나 카베사
(Por una cabeza)'의 작곡자이기도 한다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 이 달콤한 바리톤 가수는 루돌프 발렌티노와 더불어 세계의 여성들은 탱고의 마수에 빠져들게 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세계 투어를 통해 항구의 밑바닥 문화에 불과했던 탱고를 아르헨티나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보물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카리브 해로 떠나던 도중 비행기 사고로 죽고 만다. 최전성기에 사라진 존재이니, 그로 인해 불멸의 삶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말한다. "가르델은 지금도 날마다 점점 더 노래를 잘한다." 당연하게도 이 도시에서 그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아바스토(Abasto) 시장에는 동상이 서 있고, 곳곳의 벽화에서 중절모를 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또한 흥미로운 장소는 글라스 궁(Palais de Glace). 원래 아이스하키 경기장으로 개장했다가 연주장 겸 댄스홀로 바뀐 곳인데, 가르델은 이 곳에서 일어난 난동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 부상을 입힌 장본인은 체 게바라의 아버지라고 한다.

코르토 말테제, 밀롱가의 마초들을 응징하다 - 콘피테리아 이데알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오랫동안 '남반구의 파리'로 불려왔다. 영감을 찾아 북반구에서 날아온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였던 것이다. 그중에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만화가 휴고 플라트(Hugo Platt)도 있었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와 유럽을 유랑해온 이 청년은 1940년대 이 도시로 건너와 만화가로서 눈을 떴고, 유럽으로 돌아간 뒤 방랑의 영웅 [코르토 말테제(Corto Maltese)] 시리즈를 시작했다.


그중 하나인 [탱고]는 이 음악이 태어나던 시대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특히 이 도시의 여자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1923년 6월, 코르토는 아름다운 여인 루이제를 찾아 보카의 항구로 들어온다. 그는 사창가의 범죄 조직 바르사비아의 뒤를 캐더니 친구의 복수를 위해 부패한 경찰을 쏘아 죽이고 이 도시를 떠난다. 그 시대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여자라고는 거의 없는 극심한 남초(男超)의 도시였고, 탱고는 마초(macho)들의 춤이었다.


코르토가 탱고를 춘 밀롱가를 지금은 찾지 못할 것 같다.그 정취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면 1912년에 문을 연'콘피테리아 이데일(Confiteria Ideal)'이 아닐까?

고된 일을 마친 부두의 하급 노동자들은 사창가로 향했고,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여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춤을 연마해 겨루었다. 길거리의 여자들을 춤추는 척 껴안기 위해 거칠고 빠르지만 또한 유연한 동작을 익혔고, 이는 탱고 특유의 악센트를 만들어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 이 도시와 멱살잡이하다

피아졸라는 남쪽 바닷가에서 상어 낚시를 즐겼다.명곡'상어(Escualo)'의
서스펜스도 거기서 만들어졌다.


"나는 마르 델 플라타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라났고 파리에서 내 길을 찾았다. 그러나 내가 무대에 오를 때, 사람들은 안다.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음악을 연주하리라는 걸." 우리가 '탱고'라면 가장 먼저 떠올릴 이름. 가장 유명한 작곡자이며 탁월한 반도네온 주자,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olla). 그러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그는 만날 때마다 멱살잡이를 하는 애증의 관계였다.


피아졸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 바닷가의 도시 마르 델 플라타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뉴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기에서 처음 '반도네온'을 손에 잡았고, 카를로스 가르델의 꼬마 통역 겸 반주자가 되어 그를 쫓아다니기도 했다. (가르델이 카리브 해 순회에 그를 데려가려던 걸 아버지가 막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피아졸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반도네온 연주자로 크게 주목받지만, 새로운 탱고 음악을 만들어내려는 그의 시도는 번번히 거부당했다. 축구팀 보카 주니어스의 팬클럽을 위한 카니발에 자신의 편곡을 선보였다가 "여기가 콜론 극장이냐"며 끌려 내려오기도 했다. 낙담한 그는 탱고를 떠나 클래식에 전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리에서 나디아 블랑제의 가르침을 받다, 자신의 진짜 음악은 클럽에서 반도네온으로 연주하던 그 '탱고'임을 깨닫는다.

이렇게 탄생시킨 새로운 탱고(Nuevo Tango)는 이 음악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꾸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여전히 반발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모든 것이 바뀌게 마련이다. 탱고를 빼놓고." 그는 맞섰다. “내 음악이 탱고가 아니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에는 그의 이름을 딴 극장식 식당 겸 갤러리가 있다(Piazolla Tango). 그가 클래식 음악에 빠져들었던 콜론 극장에도 그 숨결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의 홈베이스였다 사라진 클럽 '676' 근처를 배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 피아졸라는 부유하는 존재였고, 하나의 장소로 그를 기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그의 고향, 마르 델 플라타로 날아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거기에 아스토르 피아졸라 국제공항이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의 할아버지들 - 콜론 극장

'남반구의 파리'는 일 년에 몇 달씩 실제로 '북반구의 파리'를 대체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유럽 연주자들의 겨울 휴양지 역할을 해왔고, 덕분에 이 도시엔 고급스러운 공연 예술이 넘쳐흘렀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콜론 극장이다. 피아졸라는 일이 없는 낮 시간에 콜론 극장에서 연주되는 바르토크나 스트라빈스키에 매료되었고, 이는 탱고 음악을 변모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어 변신한 탱고는 콜론 극장의 당당한 주역이 되었다.


2007년, 이 극장에 백발과 주름을 훈장처럼 단 연주자와 가수들이 모여들었다.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카페(Café de los Maestros)]로 기록된 역사적인 공연을 위해서였다. [브로크백 마운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영화음악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는 1940~50년대 황금기의 탱고를 재현하기 위해 그 시절의 스타들을 불러모았고, 호라시오 살간, 레오폴도 페데리코 등의 마에스트로들이 열정의 공연을 보여주었다.


탱고의 마에스트로들이 남반구 공연 예술의 메카,콜론 극장에 모이다.

군사 독재를 이겨낸 스트리트 탱고 - 산 텔모

에드문도 리베로가 문을 연 '엘 비에요 알마센'은 탱고 르네상스의 산실이었다.


페론과 에비타의 시절은 탱고의 시대였다. 그러나 1955년 군사 쿠데타와 더불어 탱고의 황금기는 처절하게 끝난다. 30년간 이어진 군사 독재는 3명 이상의 모임조차 금지시켰고, 페론의 민족주의가 육성시킨 탱고는 더욱 엄격히 탄압되었다. 1983년 독재의 종식과 더불어 '탱고 르네상스'가 피어났다. 그러나 그 싹은 이미 자라나고 있었는데, 이 도시의 가장 오래된 동네 산 텔모(San Telmo)에서였다. 이 동네는 그 어두운 시절에도 독특한 보헤미안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1950년대 후반 문을 연 현대 미술관(Buenos Aires Museum of Modern Art)을 중심으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탱고 뮤지션들과 댄서들도 거점을 마련했다. 1969년 탱고 가수 에드문도 리베로는 식민지 시절의 식료품점을 개조한 뮤직홀 '엘 비에요 알마센(El Viejo Almacén)'을 열어 이 지역 탱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지금 산 텔모는 보카, 플로리다 스트리트와 더불어 길거리 탱고 댄서들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푸노와 헬싱키

긴 여행 뒤에 쌓인 사진들은 여행의 기억처럼 뒤죽박죽이다. 엉뚱한 사진들이 짝을 맺는다. 그 사이에 나만의 여행 이야기가 놓인다.

한껏 차려입고 음악에 맞춰 춤추며 노는 것이 성모(聖母)를 위한 숭배가 될 수 있을까? 페루 안데스 산맥 위의 작은 도시 푸노에서는 매년 '촛불의 성모 축제'가 열린다. 2월 2일 성촉절에 맞춰 2주간 열리는데 페루와 볼리비아의 여러 마을에서 100여개 팀이 모인다. 각 팀이 악대와 남자 무용수 여자 무용수들 100여명으로 구성되니 전체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축제 동안 매일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신나는 가락과 북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행진한다. 목표는 광장의 대성당이다.

공식 일정이 있지만, 일정과 상관없이 수시로 행진을 한다. 나와 아내는 광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얻었다고 좋아했는데, 너무 시끄럽다. 정말이지, 똑같은 음악과 똑같은 몸짓을 며칠씩 반복하는 것은 하는 사람들이나 보는 사람들이나 고행에 가깝다. 어쩌면 이 행진은 성모를 향한 고행이고 순례였다. 사람들은 점점 지쳐갔다. 맥주와 코카잎으로 힘을 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축제 마지막 날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성모에게 바치고 기진맥진해 쓰러졌다.

6월 12일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의 생일인 헬싱키 데이다.
6월 12일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의 생일인 헬싱키 데이다. 며칠간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귀족 복장을 입은 배우들이 거리를 누비며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채승우 사진가
페루의 푸노에서는 매년 2월 2일 성촉절 즈음에 ‘촛불의 성모 축제’가 열린다.
페루의 푸노에서는 매년 2월 2일 성촉절 즈음에 ‘촛불의 성모 축제’가 열린다. 참가한 팀들이 ‘민속경연대회’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 채승우 사진가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의 복장은 다양하다. 크게 두 가지 모양이 보이는데, 하나는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행진하는 안데스 원주민 복장이다. 또 하나는 현대판 그룹으로 양복을 입은 브라스 밴드와 미니스커트에 치어리더 차림이다. 악마와 천사 분장도 있는데 이는 '악마의 춤'이라는 유명한 안데스의 전통이다. 한데, 고릴라 마스크는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전통이라는 것은 어디서 와서 어떻게 변해가는 것일까? 축제 때가 아닌 평소의 안데스 원주민 여성들은 여러 겹으로 된 치마를 입고 중절모를 쓴다. 이 원주민 여성의 겹치마에 대해선 유럽 귀족 여성의 속치마에서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 남아메리카가 오랫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강력한 지배를 받았으니 그럴듯하다.

지금 유럽에서는 아무도 그런 옷, 풍선처럼 허리 아래를 부풀린 치마는 입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던 참에 우리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옛 귀족들의 행차를 만났다. 우리가 헬싱키에 도착한 때가 바로 헬싱키의 생일인 '헬싱키 데이(6월 12일)'였다. 다양한 행사가 시내 여기저기서 열렸다. 그중 하나로 옛 귀족 차림의 연극 배우들이 거리를 누비며 헬싱키의 역사를 연기와 해설로 설명하고 있던 것이다. 비가 내렸지만, 많은 사람이 그들의 뒤를 따르며 연극을 감상했다.

비 내리는 날씨는 정말 아쉬웠다. 헬싱키 데이의 명물인 '천명의 식탁' 행사를 못 했기 때문이다. '천명의 식탁'은 시청 앞 큰길에 천명이 앉을 수 있는 긴 식탁을 차려 놓고 미리 신청한 시민들이 저마다 음식을 들고 나와 함께 먹는 행사다.

아예 큰비가 왔으면 덜 안타까울 텐데, 행사 시간 직전에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대다수는 이미 참석을 포기한 상태였다. 열정적인 몇 그룹만 비옷을 입고 나와 텅 빈 긴 식탁에 앉았다. 뭘 싸왔는지 궁금해 기웃거리던 우리는 한 팀과 눈이 마주쳤고 바로 초대를 받았다. 나와 아내는 천명분의 빈자리 중 두 개를 차지했다.

헬싱키 데이 행사 중에는 '사우나'도 있었다. 사우나란 단어는 핀란드 말이다. 호수 근처에 임시 천막 사우나가 세워졌다. 사람들은 불에 달군 돌 주위에 둘러 앉아 땀을 낸 후 호수에 들어가 몸을 식혔다. 핀란드 사람들에게 사우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사우나 안에서 만난 한 아가씨가 설명을 해줬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우나를 하거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사우나를 하기도 한단다. 나는 수영복 차림에 수건 하나 두르고 땀 뻘뻘 흘리며 핀란드의 전통에 깊이 공감했다.

핀란드 헬싱키
항공표지

푸노는 안데스 산맥 위 티티카카 호숫가에 있다. 티티카카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배가 다니는 호수이다. 볼리비아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비행편은 미국을 거쳐 리마로 간 다음, 다시 푸노 근처의 줄리아카까지 갈 수 있다. 헬싱키는 인천공항에서 직항편이 있다. 헬싱키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을 잇는 유람선 노선은 피오르 해안의 멋진 경관을 따라 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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