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는 어릴 적(11살 경) 오스만 제국에 동생(4살)과 함께 볼모로 보내졌다. 드라큘라는 오스만 제국의 황태자인 메흐메트(훗날 메흐메트 2세가 된다)와 그의 아버지 무라드 2세에게 잔혹한 일을 많이 당했다. 그는 오스만 제국을 탈출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다른 종족에 의해 암살(1447년, 16살경)되었고 형은 뜨거운 인두로 눈을 잃고 생매장을 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루마니아 골목 샵 풍경

드라큘라는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이 된다. 아버지 블라드 드라큘이라는 이름을 물려 받았고 왈라키아 타르고비스테(Targoviste)를 수도로 삼는다.

하지만 사회는 불안정했고 공작의 자리는 늘 위태로웠다. 툭하면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공작을 죽여 버리는 하극상은 끊이질 않았다. 드라큘라는 당대최고의 왕궁을 만들었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고 나서 ‘피의 숙청’이 시작되었다. 정적인 보야르(boyar, 당시 최상층의 귀족) 계급을 제거하는 게 우선이었다.

부활절 날(1457년), 그들을 왕궁으로 초대했고 “지난 50년간 몇 명의 군주를 모셨냐”고 질문했지만 그들은 너무 많이 갈아치워 답변을 못하자 전부 다 죽였다. 대략 500명 정도가 말뚝에 박혀 처형되었다. 그의 처형 방법이 하도 잔혹해 체페시(Tepes, 가시, 또는 꼬챙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이후 사형수들을 다른 방법으로 이용했다. 브란성 근처 산정에 포에나리 요새를 축조할 때 보야르 계급에서 살아남은 귀족들을 인부로 이용했다. 이 포에나리 요새는 아주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었다. 이어 드라큘라는 색슨족에게 전면전을 통보한다.

이 길을 상업로로 이용하려면 자신의 지시에 따르라고 명한다. 하지만 색슨족은 자신의 이권을 위해 블라드의 정적들을 지원했다. 드라큘라는 군대를 이끌고 색슨족의 거점도시였던 브라쇼브(Brasov)로 진격했다. 수천 명을 포로로 잡았다. 그 많은 포로들을 다 꼬챙이에 꽂아 죽였고 그대로 방치했다. 너무 많은 숫자였기에 드라큘라는 그곳에서 식사를 해야 할 정도였다.

브란성의 고문도구들

아직 끝나지 않은 피의 장막

드라큘라의 피의 장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호시탐탐 서방의 진출을 꾀하고 있는 오스만 제국과도 항쟁을 결심한다. 오스만 제국의 사절단이 왔을 때, 터번을 벗지 않는 것은 군주에 대한 모욕이라 했지만 사절단은 관습상 벗지 못한다 하니 그 자리에서 터번 쓴 머리에 못을 박아 죽였다. 1461년, 오스만과 왈라카이는 전면전에 들어갔다. 선전했고 주변국에게 지원군을 요청해 이듬해(1462년)에 2000명이 넘는 포로를 잡았다. 그 포로들 전부 코를 잘라버렸다.

그러자 투르크의 술탄 메흐메트 2세(드라큘라 포로때 같은 나이)는 3배 이상의 군대를 데리고 쳐들어 왔고 드라큘라는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전세는 밀리기 시작한다. 포에나리 성으로 숨어 들어갔으나 장기적인 전투에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부인은 성벽에서 떨어져 자살했고 수많은 수하 장군을 잃었다. 드라큘라는 편자(말발굽형의 쇠붙이)를 역 방향으로 이용해 겨우 탈출한다. 하지만 오스만 군과 맞서 싸우다 예니체리들의 총칼에 무릎을 꿇고 목이 잘렸다. 향년 45세. 서기 1476년의 일이었다.

시기쇼아라 드라큘라 출생

Travel Data

유럽 발칸 반도에서도 동유럽 쪽에 위치한 루마니아는 여전히 여행지로는 낯선 곳이다. 루마니아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독재를 반대하는 1989년 시민혁명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 공산국가라는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지만 실제로 수도 부쿠레슈티(Bucuresti)는 기대 이상 볼거리가 많다.

‘루마니아의 작은 파리’라 칭하던 개선문,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로 알려진 국회의사당(1984년) 등. 공산당 정권 때 만들어진 유명 건축물들. 그것 말고도 도심 속에 남아있는 옛 모습은 여행객들을 충분히 매료시킨다. 부쿠레슈티 시내는 넓지 않아서 걸어서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또 시나이아(Sinaia), 브라쇼브(Brasov)와 시기쇼아라(Sighisoara) 구경하는 재미를 놓치면 안될 것이다. 시나이아(Sinaia)는 ‘카르파티아(Carpathian)의 진주’라 불린다. 왕가의 여름 별궁인 펠레쉬(Peles, 루마니아 국보 1호), 펠리쇼르 성이 인기다. 또 시기쇼아라에는 드라큘라가 태어나 4살까지 살았던 생가가 있다.

그뿐 아니라 이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시계탑 등, 올드타운은 마치 중세를 옮겨 온 듯하다. 이 도시의 역사지구는 19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좀 더 사실적으로 알고 싶다면 다큐멘터리 《루마니아의 영웅, 드라큘라》를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알면 알수록 진국이다라는 말이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이 바로 그렇습니다

나폴레옹의 웅대한 꿈이 이 곳에서 보입니다

파리의 자랑

에펠탑에 비해서 모자라지않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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