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즈비카와 이스라엘

단신으로 골란고원 사수한 즈비카 "본능으로 싸워서 나라를 지켰다"
기독교… 유대 역사… 서구 문명의 뿌리
역사 속에 세속적 욕망의 흔적들
사해(死海)에는 관광객들이 둥둥… '힘이 받쳐주는 평화'를 느끼기도

박종인의 땅의 歷史
기독교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해 승천했다. 예루살렘에 있는 골고다 언덕에서 2000년 전 벌어진 사건이다. 그 자리에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서 있다. 교회는 서기 4세기에 건립됐다가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이 파괴와 재건을 반복했다. 오른쪽 사진이 그 입구 광장 풍경이다.

사진에는 불가사의한 사실이 숨어 있다.

가운데 건물 2층 오른쪽 창문 아래 있는 사다리가 그 첫째다. 사다리 이름은 '부동(不動)의 사다리(Immovable Ladder)'다. 1852년 이후 163년째 그 누구도 이 나무 사다리를 건드리거나 감히 치우려 하지 않는다.

가운데 있는 교회 현관문이 둘째 비밀이다. 서기 637년 이래 이 문의 열쇠는 조우더(Joudeh)와 누세이베(Nusseibeh) 가문이 가지고 있다. 1400년 가까이 교회 문을 여닫는 이 두 가문은 놀랍게도 기독교도가 아니라 무슬림이다. 움직이지 않는 사다리와 무슬림이 지키는 교회가 있는 이스라엘, 그 땅과 하늘에 대한 이야기다.

▶▶유령 부대 즈비카

이스라엘 전쟁 영웅, 즈비카 그린골드.
이스라엘 전쟁 영웅, 즈비카 그린골드.
예순세 살 된 사내 즈비카 그린골드(Zvika Greengold)는 이스라엘 북서쪽 도시 하이파에서 태어났다. 즈비카가 장교로 입대한 1973년 전쟁이 터졌다. 10월 6일 오후 2시 시리아 탱크 부대가 북동쪽 골란 고원으로 진격했다. 골란 고원은 이스라엘 북동부 전선의 절대적 전략지다. 골란 고원에서 대포를 쏘면 갈릴리 호수 지역까지 포탄이 떨어진다. 전쟁은 유대교 휴일인 욤 키푸르에 터졌다.

휴가 중이던 즈비카는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타고 부대로 복귀했다. 이미 이스라엘 탱크들은 파괴된 상태였다. 즈비카는 두 대를 긴급 수리하고 병사를 태워 골란 고원으로 달려갔다. 무전으로 소속을 묻는 사령부에 즈비카는 "즈비카 부대 부대장"이라고 대답했다. 감청을 우려해 단독이 아님을 위장한 대답이었다. 사령부도 즈비카 부대가 무엇인지 몰랐다.

시리아 탱크는 모두 1500대였다. 밤 9시 첫 교전에서 즈비카는 여섯 대를 격파했다. 동료 탱크와 교신이 끊긴 즈비카는 포탄을 쏴대며 전속력으로 전선을 누볐다. 어둠 속 사방에서 포탄이 쏟아지자 시리아군은 대병력이 있는 줄로 착각했다. 타고 있던 탱크가 파괴되면 또 다른 탱크를 잡아타길 반복하며 20시간을 쉬지 않고 싸운 결과 시리아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지원군이 도착하자 즈비카는 사령부로 복귀해 또 전투를 벌였다. 전투가 끝날 무렵 해치를 열고 얼굴과 두 팔이 불에 탄 즈비카가 땅으로 쓰러지며 중얼거렸다. "더 못 해(I can't anymore)."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즈비카는 20대를 격파했다고 했고, 목격자들은 40대가 넘는다고 증언했다. 즈비카는 "그때는 본능으로 부대에 복귀했고, 싸웠다"고 했다. 스물한 살 청년의 본능 덕분에 착한 사람들, 악당들 그리고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 하나가 구원됐다.

▶▶사다리와 교회의 문, 그리고 본능


역사에 기록된 본능은 즈비카의 본능과 일치하지만은 않았다. 서기 313년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래 이스라엘 전역에는 수많은 교회가 건립됐다. 순례자가 아니어도 그 건축미를 즐기는 것만으로 이스라엘 여행은 충분히 가치 있다.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 광장이다.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 광장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묻히고, 부활한 장소다. 만국에서 온 순례자와 관광객으로 광장은 늘 붐빈다. 렌즈=삼양옵틱스14㎜ F2.8 ED AS IF UMC, 조리개=f16, 셔터스피드=1/60초. /박종인 기자
세월이 흐르며 다양한 종파가 생겨났다. 성지는 비좁아졌다. 관할권을 두고 갈등이 빈발했다. 성직자끼리 십자가를 휘두르며 싸우는 해프닝이 잦았다. 신앙이 세속적 본능과 욕심으로 경도됐다. 성묘 교회는 그리스정교, 아르메니아정교, 로마 가톨릭, 이집트 콥틱, 에티오피아와 시리아 정교가 권리를 다퉜다. 7세기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장악하고도 분쟁은 계속됐다. 결국 해답이 나왔다. '현상 유지(Status Quo)' 즉 "현재의 관할권을 인정하고 더 이상 변경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상 유지 정책은 1853년 당시 지배자 오스만 튀르크 황제 칙령으로 공식 확립됐다.

그리하여 성묘 교회의 모든 제단은 칼로 자른 듯 관할권이 정해졌다. 예수의 무덤을 에워싼 작은 건물은 1947년 철골 구조물로 보강했지만 이후 그 누구도 보수 작업에 합의하지 않아 68년째 임시 구조물이 씌워져 있다. 2008년 여름에는 교회 지붕에서 한 종파가 의자를 그늘 쪽으로 20㎝ 옮겼다가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칙령 전해인 1852년 어느 날 아침 성분묘 교회 창문 아래에서 사다리 하나가 발견됐다. 누가 두고 갔는지 알 수 없었으니 누가 관할하는지도 몰랐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무슨 일이 날지 몰랐다. 지금까지 여섯 종파 그 어디도 사다리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163년째 치울 엄두를 못 내는 '부동의 사다리'가 되었다.

사해 풍경. 건너편은 요르단 땅이다.
사해 풍경. 건너편은 요르단 땅이다.
교회 열쇠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종파도 다른 종파에 열쇠를 맡기려 들지 않았다. 골머리를 앓은 7세기 이슬람 정권은 제3자인 무슬림 가문에 열쇠를 주는 방안을 내놨다. 모든 종파가 찬성했다. 성지에 충만한 믿음과 평화의 향기 속에, 세속 욕망의 흔적이 보인다.

▶▶흔적에 열광하는 관광객들


로마에 멸망하면서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유대인들은 로마인, 기독교 세력, 이슬람 세력과 근대 영국에 이르기까지 온갖 지배와 억압을 받으며 흔적을 쌓아갔다. 19세기 민족주의 흐름 속에 건국 운동이 벌어지면서 떠났던 유대인들이 속속 복귀했다. 언어학자들은 현대 히브리어를 창안했고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역사를 복구했다. 1948년 영국이 군대를 철수하면서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했다. 이슬람 국가들은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했고, 이스라엘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차곡차곡 준비해왔던 나라"라고 했다.

어느 쪽이 되었든 관광객은 즐겁다. 1인당 GDP 3만달러가 넘는 선진국에서 서구 정신문명의 뿌리를 대면할 수 있으니까. 관광부 장관 야리브 레빈이 고백했다. "거짓말 못 하겠다. 그래, 이스라엘에서 볼거리는 대부분 종교 관광지다. 그래서 뭐."

솔로몬의 성전터에 세워진 이슬람 성지 황금사원.
솔로몬의 성전터에 세워진 이슬람 성지 황금사원.
기독교를 제외하고 서구 문명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기독교를 논할 수 있을까. 그 서구 문명의 원천을 눈앞에서 느끼는 관광지가 이스라엘이다. 레빈 장관의 대답은 고백이면서 자신감이다.

무엇보다 예루살렘 그 자체다. 수십 겹 지층이 이 고성(古城)에서 발굴됐다. 다윗 시대 성터를 비롯해 솔로몬이 세웠던 성전 터와 헤롯왕이 세운 성벽(남아 있는 서쪽 벽은 유대인의 성지다), 사라진 성전 터에 세운 이슬람의 황금 사원, 예수가 "나에게 주어진 잔을 거둬 달라"며 고뇌했던 겟세마네 동산(예수 시대로 추정되는 올리브 나무 여덟 그루가 살아 있다!),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예수 탄생 교회 지하에 있는 예수 탄생 표지 은판이 행방불명되자 관할 공방을 벌이던 러시아가 이를 핑계로 크림전쟁을 일으켰다)이 그 예다.

북쪽으로 가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예리코(Jericho·여리고)가 나온다. 예수가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는 예리코 꼭대기 유혹의 산 절벽에는 그리스정교 교회가 있다. 그 남쪽 쿰란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 '사해의 서(書)'가 발굴됐다.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이 구약성경 필사본은 지금 이스라엘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 동쪽 바다는 사해(The Dead Sea)다. 해발 고도가 해수면 아래 400m에 염분 농도 33%로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다. 동시에 사람이 둥둥 떠다니는 관광지다. 신기하기도 하거니와 사해 바닷물과 진흙은 온갖 피부병에 특효라 해변에는 특급 리조트가 즐비하다. 사람들은 바다에 떠서 책을 읽고 이스라엘 와인을 만끽한다.

이스라엘
요르단 계곡을 따라 북상하면 갈릴리 호수가 나온다. 나사렛에서 청년기를 보낸 예수가 제자들을 이끌고 활동하던 곳이다. 첫 설교인 산상수훈을 행한 팔복산,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이로 오천 군중을 먹인 타브가,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한 바위(베드로 수위권 교회가 서 있다)가 호수 북쪽에 있다. 갈릴리 남서쪽 나사렛에는 수태고지 교회가 서 있다. 지하에는 성모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에게서 예수 수태를 통보받은 동굴이 남아 있다. 반드시 일요일 미사에 갈 일이다. 적요함 속에 울려 퍼지는 칸타타는 기독교와 무관한 사람도 평화를 느끼게 만든다.

한국 사람이라면 되도록 골란 고원에도 가봤으면 한다. 전쟁 영웅 즈비카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땅이기도 하고, 그래서 분단 현실 속에서 삶에 대해 잠깐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 고원에 서면 국경선 너머 내전으로 엉망이 된 시리아가 보인다. 전력 차이가 너무 커서 이스라엘 쪽으로는 권총 한 발 쏠 엄두를 못 내고 자기들끼리 포를 쏴대는 한심한 풍경이 펼쳐진다. 힘을 제외하고 평화를 논할 수 없다. 2년째 사륜구동 차를 몰고 관광객을 안내 중인 청년 에레츠(23)가 말했다. "이스라엘은 안전하다. 저건, 나라도 아니다."

*

여행은 골고다 언덕 성소(聖所)에서 시작해 골란 고원에서 끝났다. 서구 문명의 원류와 진귀한 자연에 흠뻑 취하고 현실로 복귀한 여행이었다.


[이스라엘 여행수첩]

1. 기본 정보:
 ①대한항공이 텔아비브까지 주 3회 운항. 낮 3시 출발해 현지 밤 9시 도착. ②관광비자: 필요 없음. ③화폐 단위는 셰켈(1달러=3셰켈 정도) ④시차: 이달 중순 이후 서머타임 해제되면 7시간 늦다. ⑤한국 여름보다 덥다. 갈릴리와 사해 등 해수면보다 낮은 요르단 강 주위는 몹시 덥고, 해발 700m 정도인 예루살렘은 밤에는 선선하다.

2. 주의 사항: ①통곡의 벽은 모자나 입구에서 빌려주는 일회용 유대인 전통 모자 키파를 써야 한다. 통곡의 벽 위 성전산(Temple Mount)은 무슬림 구역이다. 긴 바지 필수. ②유대인 휴일 사바스(안식일)인 토요일에는 상가, 관공서 모두 문을 닫는다.

성묘교회의 예수 무덤.
성묘교회의 예수 무덤.
3. 여행 상품: 많은 여행사가 성지순례 상품을 취급한다. '관광'이 목적이라면 베스트래블(www.bestravel.co.kr) 여행사 추천. 5성급 숙소와 현지인의 맛집, 한국 DMZ에 해당하는 시리아 국경 골란 고원 지프 투어, 사해를 비롯해 고대 유대인과 로마, 기독교, 오스만튀르크 역사 유적 탐방 상품. 이스라엘 최대 여행사 아시아투어(www.asiatours.co.il)가 안내를 맡는다. (02)397-6100

4. 기타 정보: 택시는 미터기가 있어도 쓰지 않는다. 호텔 데스크에서 예상 금액을 알아두고 흥정할 것.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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