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나 한국 출신의 여행객들은 현금을 많이 소지하고 있고 조금만 협박해도 가진 돈을 순순히 내놓는다는 소문 때문에 범죄자들의 표적이 됐다. 당연히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루지야를 여행할 때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장미혁명이 일어난 지 일년 반이 지나면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됐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그루지야를 향했다.

터키의 북쪽에서 그루지야 국경을 향해 버스를 타고 갔다. 터키에서 그루지야로 넘어오는 길은 거칠고 험한 산길, 구불구불한 고갯길이 아니라 산 사이의 큰 계곡으로 난 길이었다. 길 옆으로는 강이 흐르고 거대한 산이 솟아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내 평생에 그렇게 아름다운 산악지대를 본 적은 없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미도 넘칠 것”이란 상상을 하면서 그루지야에 가까워졌다. 같이 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여행객은 비자가 없어서 국경검문소에서 터키로 되돌아가야 했다. 나는 문제없이 그루지야로 들어왔는데… 모험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국경검문소를 통과하자마자 대여섯명의 운전사가 중고 승용차를 대기해놓고 국경을 넘어오는 외국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터무니없이 높은 요금을 불렀기 때문에 마을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잡아타기로 했다. 그런데 승용차 하나가 나의 뒤를 따르다가 갑자기 내 앞에 서더니 나에게 타라고 강요했다. 내가 강하게 거절하자 운전사는 되돌아갔다. 그러나 다른 승용차가 다시 나를 따랐다. 승용차의 운전사는 무지막지하게 생겨먹은 사내였다. 나를 향해 타라고 손짓했지만 나는 다시 거절했다. 그는 계속 내가 걷는 길 옆으로 승용차를 운전하면서 승차할 것을 강요했다. 나는 그에게 취재증을 보여주면서 물러서지 않으면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그는 도리어 경찰관 신분증을 내보이면서 자신이 경찰이니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트빌리시에 가면 정부에 가서 당신 얘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랜 외국여행을 했지만 이런 나라는 처음이었다. 비자 문제로 터키로 되돌아간 오스트레일리아 여행객이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나는 “계속 뒤따라오면 터키로 되돌아갈 것”이라며 방향을 돌려 터키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는 한참 동안 차를 세우고 있다가 국경검문소로 되돌아갔다.

거의 반시간 동안 길을 걷다가 유조차를 세워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로 갔다. 나를 태워준 60대의 유조차 운전사는 깡마른 얼굴에 백발을 휘날리는 인자한 인상의 소유자로 조금 전의 범죄자들과는 극단적으로 대조적이었다. 짧은 시간에 악마와 천사를 모두 만난 느낌이었다.

아침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던 어느 날, 수도 트빌리시의 큰 상가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거리에서 동양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었고 또 내가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갑자기 검은색 BMW 승용차 한대가 급하게 내 앞에 멈추었다. 나는 그 승용차가 나 때문에 멈춘 것을 알아챘고 그 자리를 피할 궁리를 했다. 승용차에서는 검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은 두 ‘맨 인 블랙’ 청년이 급하게 내렸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보는 장면처럼 이들은 나를 향해 자신들의 신분증을 내보였다. “경찰이다, 경찰!” “신분증! 여권!”나는 이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길 차량들이 질주하는 도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나를 따라왔다. 그는 계속 신분증을 달라며 큰소리를 쳤지만 나는 호텔에 신분증이 있다면서 호텔로 따라오라고 큰소리를 쳤다. 뒤를 쫓아오던 사람이 나의 팔을 잡았지만 뿌리치고 계속 도로를 건넜다. 나의 완강한 저항에 굴복한 듯 나를 따라오던 사람은 포기하고 돌아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검은색 복장을 한 사람들은 모두 마피아 단원이며 검은 복장은 마피아 유니폼이었다. 트빌리시 거리 모퉁이 어디서나 검은 복장에 검은 선글라스 차림의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무법천지의 상황에서도 나는 트빌리시에 두주 동안 머물렀고 취재해 기사까지 송고할 수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위기의 순간 천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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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 '흑해의 신비' 간직한 그루지야에 가다
카프카스산맥 해발 2,200m 산꼭대기에 세워진 츠민다 사메바 교회.
옛 소련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그루지야는 흑해의 신비를 간직한 땅이다. EBS '세계테마기행'이 주변국과의 분쟁과 내전에도 불구하고 천혜의 자연과 독특한 문화를 지켜오고 있는 나라, 그루지야를 소개한다.

오는 18일부터 21일까지 매일 오후 8시50분 방송될 이번 다큐의 내레이션은 영화 '미스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이 맡았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독특한 재미를 끌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그녀가 들려주는 미지의 나라, 그루지야는 어떤 모습일까?

그루지야는 터키와 러시아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카프카스 지역을 품고 있다. 동쪽으로는 카스피해, 서쪽으로는 흑해를 끼고 있어 예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 번영을 누리던 곳이다. 또 그리스신화에서 신들이 살았던 곳으로 자주 등장하는 카프카스산맥은 아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여행지로 가득하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이곳은 여행자들이 쉽게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카프카스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달리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도로 '그루지야 군사도로'를 만난다. 이 도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던 실크로드의 일부로 1799년 러시아가 군용물자 수송을 위해 만들어낸 도로이다.

만년설과 아찔한 절벽이 만들어내는 풍광을 자랑하는 이 도로를 따라 카프카스산맥을 오르면 해발 2,200m의 산꼭대기에 세워진 츠민다 사메바 교회를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카즈베크 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 세워진 이 교회는 그루지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적이 일어나는 성스러운 곳이라 불린다. 신이 선택한 그루지야인들의 성지 카프카스를 찾아가 보자.


최근 그루지야에서 반정부 시위가 한달째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서방의 지원을 기대하고 시작한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경제상황마저 나빠지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 이처럼 주변국과의 분쟁과 내전으로 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했던 미지의 나라 그루지야를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찾았다. 평범한 일상을 독특한 이야기로 끌어내 주목받았던 영화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이 큐레이터로, 정국불안이 고조되기 이전의 그루지야 구석구석을 포착해냈다.


동쪽으로 카스피해, 서쪽으로 흑해를 끼고 있는 카프카스 지역은 예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 번영을 누렸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살았던 곳으로 자주 등장한 이곳은 아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여행지로 가득하다.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카프카스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달리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도로를 만난다. 실크로드의 일부이기도 한 '그루지야 군사도로'다. 1799년 러시아가 군용물자 수송을 위해 만들었던 이 도로는 카프카스산맥의 만년설과 아찔한 절벽이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도로를 따라 더 오르면 해발 2,200m의 산꼭대기에 세워진 '츠민다 사메바 교회'를 볼 수 있다. 카프카스 지역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카즈베크 산(5,047m)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그루지야 사람들은 이 교회가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믿는다.




그루지야는 일본, 불가리아, 파키스탄과 함께 장수의 나라로 꼽히기도 한다. 유쾌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그루지야 사람들의 장수 비밀은 다름 아닌 와인.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음료인 와인이 기원전 약 8000년에 이곳 카프카스 지방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루지야 와인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여타 유럽지역 와인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이미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최고로 인정받는다. 그만큼 그루지야 사람들은 건강한 땅에서 일궈낸 와인을 '성스러운 액체'라 부르며 중요한 음식으로 여긴다.


그루지야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호수 같은 바다 '흑해'다. 터키, 러시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등 여러 개의 나라가 둘러싸고 있는 흑해 연안은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다. 그중에서도 그루지야 아자르 자치공화국 수도인 '바투미'는 흑해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휴양지다. 흑해의 5대 미항 중 하나인 바투미는 그리스 신화 <이아손의 황금양털> 이야기가 유래한 곳이기도 하다.


국내 시술비용 절반대로 머리카락 심고 관광까지

서울에 사는 김영구씨(29)는 지난 10월 9일간의 ‘특별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젊은 나이에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머리숱 때문에 고민하던 중 외국에서 모발이식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다.

김씨의 여행지는 지난 8월 러시아와 전쟁을 치른 그루지야. 그곳에 도착한 김씨는 모발이식전문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 15명이 참여한 가운데 모낭 3500개를 이식 받았다.

그 뒤 김씨는 그루지야 수도 티빌리시의 고급숙소에서 병원이 고용한 한국인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인근에 있는 고성(古城)과 와인공장 등을 관광했다. 우리나라로 돌아오기 전날엔 병원이 연 바비큐파티에도 참석했다.

김씨가 이 여행에 쓴 돈은 약 650만원. 모낭 당 1유로씩 현지병원에 내는 이식수술비와 항공료, 체류비, 여행비용 등을 포함한 비용이다.

우리나라에서 약 3500모낭을 이식 받을 경우 수술비만 약 1000만원쯤 든다. 머리카락도 심고 현지관광까지 하면서 쓴 돈이 국내 시술비의 절반 조금 넘을 만큼 싸게 한 셈이다.

김씨는 “그루지야는 모발이식술이 발전해 있으면서도 선진국이나 국내에서 드는 비용보다 무척 싸다”면서 “지금 머리가 조금씩 올라오는데 6개월 뒤 달라져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다”고 만족했다.
해외 모발이식 전문 병원을 찾은 한국인 탈모환자의 두피에 현지 의료팀이 식모자리를 내고 있다.

머리를 심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는 ‘해외원정 모발이식’이 늘고 있는 추세다.

세계적인 모발이식전문센터가 있는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아시아권으로도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모발업계 및 의료계에 따르면 비용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모발이식술 선진국인 미국과 캐나다 등지를 찾고 다소 싸게 머리를 심으려는 이들은 인도와 그루지야 등지를 찾고 있다.

국내 최대 탈모커뮤니티인 ‘대다모(대머리는 다모여라)’ 홈페이지와 인터넷카페 등에선 해외 모발이식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원정대’를 모집하는 글들이 여럿 올라오고 있다.

모발이식을 위해 외국을 찾는 한국인들이 늘자 캐나다 ‘라할’이나 ‘H&W’, 그루지야의 ‘TALIZI모발이식센터’ 등 국내 탈모인들의 주목을 받는 해외 주요 모발이식센터들은 한국인 전용 서비스도 만들었다.

이들 병원은 한국인을 채용, 수술상담은 물론 시술일정예약, 숙박, 식사, 여행가이드 등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비교적 비용이 덜 들고 부대서비스가 좋은 그루지야로 모발이식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 눈길을 끈다.
그루지야 모발이식 전문 병원의 의료진이 현미경을 보며 이식할 모낭을 분리하고 있다.

그루지야 원정 모발이식이 국내 탈모인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그루지야 모발이식수술을 여행상품으로 내놓은 여행사(새로모투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서울에 문을 연지 3년이 된 이 여행사는 특별한 홍보활동을 하지 않고도 150여명의 고객을 모아 현지로 ‘머리심기 나들이’를 다녀왔다.

관련여행문의도 꾸준히 늘어 내년 1월에만 3~4명이 팀을 이뤄 그루지야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송의섭 새로모투어 대표는 “그루지야에서의 모발이식은 시술료에 항공비, 체류비, 여행비를 다 합쳐도 국내 모발이식비용보다 싼데다 의료진 10여명이 달라붙어 수술하므로 생착률이 높은 게 장점”이라며 “국내 탈모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그루지야행 모발이식여행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흑해 연안의 신비를 간직한 땅, 그루지야. 옛 소련 남부의 땅이었던 그루지야는 그동안 주변국과의 분쟁과 내전으로 여행자들의 방문이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천혜의 자연과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18일부터 21일까지 오후 8시50분에 방송되는 EBS '세계테마기행-카프카스의 영혼, 그루지야' 편은 터키와 러시아 사이 카프카스 산맥에 드리워진 그루지야의 매력 속으로 시청자를 안내한다.

이번 기행의 안내자는 영화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그가 보여주는 그루지야의 첫 장면은 18일 방송되는 1부 '신들의 산, 카프카스를 가다'에 담긴 카프카스 산맥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 번영을 누리던 지역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살았던 곳으로 자주 등장하는 카프카스 산맥은 아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여행지로 가득하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카프카스 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달리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도로인 그루지야 군사도로를 만난다. 

만년설과 아찔한 절벽이 만들어내는 풍광을 거느린 이 도로를 따라 오르면 해발 2,200m에 세워진 츠민다 사메바 교회를 볼 수 있다. 그루지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교회로 그루지야인들은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라 믿는다.

19일 '카프카스의 영혼, 그루지야' 에선 그루지야인들의 장수 비밀인 와인을 만난다. 와인은 기원전 약 8,000년 전 카프카스 지방에서 만들어져 전세계로 전파됐다.

그루지야 와인은 프랑스이탈리아 등의 와인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선 최고로 인정받는다. 건강한 땅에서 일궈낸 와인과 그루지야 전통방식의 빵, 그리고 그루지야인들의 친절함이 더할 나위 없이 맛있는 식탁으로 차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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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나는 유럽 지도를 펼쳐 놓고 고민 중이었다. 
단 한 나라를 가야 한다면 어디를 가고 싶은가. 
지난 슬로바키아 여행 후 유럽에 대한 나의 관심은 동진東進 중이었다. 유럽과 아시아와 중동, 흑해와 카스피해, 3개의 문화와 2개의 바다에 끼인 작은 나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낯선 이름은 조지아였다.

도심에는 아직 손을 대지 못한 낡은 주택들이 많다. 폐가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이 살고 있다

‘재즈’ 같은 도시 트빌리아는 유럽의 문화, 아시아의 정신을 담고 있다

벼룩시장 옆 그림시장의 한가한 오후

조지아라고 불러 주세요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한 번도 조지아Georgia를 여행했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루지야라고 불렸던 나라.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신생국. 8,000년 넘게 전통 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 나라. 180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 땅. 터키항공을 타고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손에 쥔 것은 몇 개의 파편적인 지식과 엉성한 추측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조지아의 첫인상은 무척 엉뚱했다. 도착한 첫날 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훤한 현대식 유리 건물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좀 전에 첫인사를 나눈 가이드 마야가 ‘뭐하는 곳일까요?’라고 물었다. ‘혹시 경찰서인가요?’라고 되물으니 그러하단다. 비행기 안에서 급하게 넘겨 본 책에 따르면 조지아 어디를 가도 환하게 빛나는 유리 건물은 모두 경찰서라더니 정말 그랬다. 

현대화된 경찰서의 화려한 불빛은 역설적이게도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제 고작 29살이라는 마야는 “여렸을 때만 해도 집 밖을 나서면 살아 돌아올 확률이 반반이었다”고 회상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이후 1991년에 조지아는 독립을 쟁취했지만 뿌리 깊은 부정부패로 경제는 피폐했고 치안도 불안했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조지아의 경찰은 그 어떤 나라의 경찰 조직보다 깨끗하단다. 2003년 장미혁명* 이후 새 정부가 기존의 경찰 조직을 하루아침에 해체해 버리고 수천명의 경찰 전원을 다시 선발하고 교육한 결과다.* 

조지아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을 적극 개방하고 주변국과 평화롭게 공존하며 자생력을 키워 가고 있다. 트빌리시 혁명의 광장에 느닷없이 들어서서 논란의 대상이 됐던 래디슨 블루 호텔 이후 도심에서는 메리어트 계열, 홀리데이인 계열의 국제적인 체인 호텔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과 다르게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도 많고 카지노 옆에는 24시간 문을 여는 은행도 있다. 도시마다 자국민의 민원을 처리하는 관공서 건물House of Justice을 최신식으로 건축하며 편의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그루지야는 그만 잊어 달라고. “그루지야는 러시아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에요. 뚱뚱한 사람, 무뚝뚝한 사람이라는 뜻이죠.” 비하의 뜻이 있었던 것이다. 조지아는 1918년 러시아 제국이 망한 뒤 잠시 조지아 민주 공화국으로 독립했었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1922년 소비에트 연방에 합병됐다. 다시 독립하여 이름을 되찾기까지 70년이 걸렸다. 

조지아는 그루지야의 영어식 이름*이고, 사실 조지아인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은 따로 있다.‘사카르트벨로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다.  어렵지만 외워 둔다면 조지아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 마법의 단어다. ‘코리안’ 대신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는 외국인을 만난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기특할지.

*장미혁명Revolution of Roses | 2003년 11월 조지아에서 일어난 무혈혁명. 1995년부터 통치하던 에두아르트 세바르드나제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시의회 의장이었던 미하일 샤카슈빌리가 조지아의 새로운 지도자가 됐다.

*조지아 경찰 개혁 | 장미혁명으로 집권한 샤카슈빌리 정부는 부패의 대명사였던 경찰 조직을 하루아침에 해체해 버리고, 수천명의 경찰관 전원을 새로 선발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부정행위에 눈을 돌릴 필요가 없을 만큼 월급도 파격적으로 인상했다. 덕분에 경찰은 조지아 처녀들에게 1등 신랑후보감이다. 

*조지아 | 그리스어로 ‘농부’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 ‘게오르기오스’나 기독교 성인 게오르기우스(조지)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성 조지와 성 니노는 조지아의 수호성인이다.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긴 바흐탕 고르가살리왕의 기마상과 메테키 교회

밤마다 수천개의 LED 전구가 켜지는 평화의 다리

37번이나 공격을 받았던 도심에는 상흔이 역력하다

하맘(터키식 목욕탕) 스타일 유황온천장들의 볼록한 지붕들

조지아 전통 양식의 목조 주택들이 나리칼라 요새 아래 계곡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Tbilisi 트빌리시  
유럽과 페르시아의 크로스오버

트빌리시는 ‘재즈’다. 러시아 고전주의, 아르누보, 소비에트 양식, 현대 건축물이 공존하며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 도시가 보여 줄 수 있는 ‘다양함’의 극단적인 사례이자모던과 클래식의 과격한 조화를 보여 준다. 

경이로운 공존의 도시

“트빌리시는 37번 공격을 당했고 37번 재건된 도시랍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곧 쓰러질 듯 낡은 주택과 그 안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노인들의 얼굴을 연민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야의 한마디는 그 감정을 순간 경외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마야는 굳이 숨겨야 할 초라함이 아니라 조지아의 맨얼굴이라고 했다. 수많은 외침과 전쟁을 겪은 1,500년 역사의 고도古都 트빌리시에는 역사의 단층들이 생생했다. 중세시대 카라반사라이*가 남아 있는가 하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한 여인들이 기도에 열중해 있던 교회에서 5분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유럽풍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거리가 있다. 강변에는 이탈리아 건축가 미켈레 데 루치가 디자인한 평화의 다리가 밤마다 1,200여 개의 LED 전구를 빛내며 당당한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넓은 화각으로 볼 수 있는 곳이 메테키 교회Metekhi Church 앞 언덕이다. 메테키 교회는 소비에트 시절 감옥, 극장 등으로 사용되었다가 1980년에 이르러서야 교회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병자를 낫게 해 준다는 이야기 때문에 지금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언덕에 서서 가만히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기마상의 주인공이 1,500년 전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긴 바흐탕 고르가살리왕King Vakhtang Gorgasali이다. 어느날 그의 사냥매가 꿩을 잡았으나 두 새가 함께 온천수에 빠져죽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왕은 이 사건으로 트빌리시 천도를 결심했다고.

무려 180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트빌리시는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그 중심을 므츠바리Mtkvari강(쿠라Kura강이라고도 부른다)이 흐르며 도시를 가르고 있다. 

빠른 유속의 강물 때문인지 도시의 느낌도 정적이지 않았다. 항상 교통체증과 주차를 걱정해야 할 만큼 북적였다. 라벤더가 가득 핀 리케 공원Rike Park도 좋지만 2라리만 지불하면 케이블카를 타고 나리칼라 요새Narikala Fortress에 올라가 더 넓게 도시를 조망할 수도 있다. 트빌리시는 소비에트에서 독립한 국가 중 처음으로 지하철을 구축했고 지금도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교통 체증을 생각하면 여행자에게 가장 좋은 숙소의 위치는 구도심의 호텔이지만, 목 좋은 숙소들은 대부분 러시아 여행객들의 몫이다. 연방 시절의 향수를 곁들인 러시아 여행자들이 코카서스를 넘어 끊임없이 찾아오는 것과 반대로 조지아인들의 러시아 여행은 흔한 일이 아니란다. 비자 발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가파른 길을 따라 요새에서 내려오면 국립 보태니컬 가든과 폭포수가 흐르는 계곡 그리고 온천지대가 펼쳐진다. 트빌리시는 역대 지배자와 푸시킨* 등 러시아의 저명인사들이 편애한 온천휴양지였다. 원천지역인 아바노투바니Abanotubani 지역에는 지금도 하맘 양식의 온천욕탕들이 성업 중이다. 터키탕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운데 입욕료는 1만~1만2,000원 사이고, 전세탕으로 빌려도 1시간에 4만원 정도로 저렴하다. 저렴한 트빌리시의 물가를 다시 실감했다. 사실 조지아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300달러 수준이다. 넉넉하지 않지만 초라하거나 편협하지 않다. 

마지막 밤에 푸니쿨라를 타고 TV 통신타워가 있는 므타츠민다 공원Mtatsminda Park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소비에트 시절부터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푸니쿨라 컴플렉스는 트빌리시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조망 장소다. 3층짜리 이 건물에는 레스토랑과 카페, 바 등이 입점해 있다. 조지아를 내어주기 싫었던 러시아인들의 입장이 이해될 만큼 트빌리시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카라반사라이 | 실크로드를 지나던 대상들의 숙박시설이다.
*푸시킨 | 그는 조지아의 온천을 ‘생애 최고의 온천’이라고 말했다. 생전에 캅카스코카서스의 러시아식 표현를 두 번 여행했고 ‘캅카스의 포로’, ‘카즈베크의 수도원’ 등 관련된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트빌리시 구도심을 걷다가 가브리아제 극장 앞에서 그 주인공인 레바즈 가브리아제Revaz Gabriadze 선생을 조우했다. 극장가, 무대연출가, 화가, 조각가이자 조지아 최초의 인형극장을 오픈한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여든1936년생의 아티스트는 사진 촬영에 흔쾌히 응해 주었지만 인터뷰를 할 만큼의 기력은 없었다. 뒤에 있는 시계탑도 그의 작품이다.

비에트 시절 감옥, 극장 등으로 사용됐던 메테키 교회

●슬픈 기도는 힘이 세다 

조지아 정교회는 슬픔의 교회다. 그래서인지 교회에 들어설 때마다 애잔함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역사를 알수록, 사람들을 알아 갈수록 더 그랬다. 6세기에 건립된 안치스하티 성당Anchiskhati Church은 마치 시간이 멈춘 장소 같았다.

장례식을 치르듯 비통한 표정의 여인들은 긴 시간 동안 서서 기도를 바치곤 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 고통 받았던 예수의 삶에 신앙의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보통 기쁘게 경축하는 부활절조차도 이들은 가장 경건하게 보내야 하는 날이다.

작은 촛불과 최소한의 조명으로 간신히 어둠을 물리치고 있는 교회 내부에는 그 흔한 성상 하나 없고, 쉬어 갈 의자 하나도 없다. 오로지 성화Icon, 아이콘만을 사용하고 서서 예배를 드린다. 작은 촛불 하나로 마음속에 불을 켜두는 사람들. 그들의 슬픈 기도는 그 어떤 기도보다 경건했고, 간절했다. 

●조지안 레스토랑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방앗간
찌스크빌리Tsiskvili 

찌스크빌리, 이름 그대로 트빌리시 최초의 물레방앗간으로 1988년 문을 열었다가 2002년부터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므츠바리 강변에 위치한 많은 고급 레스토랑 중에서도 분위기, 음식, 서비스, 전통 공연 등 모든 면에서 최고라는 찬사를 듣는 곳이다. 실제로 트빌리시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여러 경연대회에서 수상을 한 곳이다.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내장으로 속을 채운 소시지나 족발 요리 등도 입맛에 잘 맞는다. 찌스크빌리는 부지가 넓어서 야외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정원과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층 공간의 레스토랑, 그리고 대형 연회장과 8개의 독립된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경에 신경을 많이 쓴 정원과 강으로 흘러내리는 폭포수, 승강기를 대신하는 미니 푸니쿨라 등도 운영하고 있으며 방앗간 시절 사용했던 소품들도 전시하고 있다. 드레스 코드가 있으니 지나친 캐주얼 차림은 피하는 것이 좋다. 
Beliashvili St. Right Cots of River Mtkvari, Tbilisi, Georgia  +995 32 253 07 97   www.info-tbilisi.com/tsiskvili

조지아 전통 공연 | 찌스크빌리에서 처음 접한 조지아 전통 댄스는 힘이 넘쳤다. 토슈즈 없이도 여자들은 발레보다 우아한 동작을 선보였고, 남자들의 회전동작은 빠르면서도 정확했다. 고대부터 전해진 조지아 폴리포니Polyphony, 다성음악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조지아인들은 일할 때 뿐 아니라 질병을 치료할 때도 민요를 불렀다.  

19세기 요리법을 복원하는
바르바레스탄 레스토랑Barbarestan 
이 레스토랑은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요리책 한 권에서 시작됐다. 19세기에 바바레Barbare Jorjadze라는 귀족 가문의 여성이 작성한 이 책을 바탕으로 복원한 조지안 전통 요리들을 테이블에서 만날 수 있다. 요리법뿐 아니라 ‘끓인 버터’처럼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재료들까지 수소문해 어렵게 구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픈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통 조지안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이미 입소문이 났다. 이 어려운 작업을 해내고 있는 셰프 레빈Levan Kokiashvili씨는 지난 5월 조지아를 대표하는 요리사로 한국의 요리행사에 초청받기도 했다. 식사 공간으로도 사용되는 지하의 꺄브에는 소량만 생산되어 조지아 내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프리미엄 와인들이 전시되어 있고, 구입도 할 수 있다.  
D. Aghmashenebeli Ave. 132, Tbilisi 0112, Georgia   +995 322 94 37 79

조지아 음식의 탄탄한 기본기

브레드하우스Bread House Tbilisi 올드타운에서 므츠바리강 너머 메테키 교회를 바라보며 조지안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2층짜리 벽돌 건물 내부에는 격식 있는 모임을 위한 단체석이 있으며 저녁에는 야외 좌석에서 와인을 즐기기에도 좋다. 브레드하우스라는 이름답게 화덕에서 직접 빵을 구워 내는 과정도 볼 수 있다.  7 Gorgasali st. Tbilisi Georgia   +995 32 30 30 30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이승무취재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 조지아관광청 www.georgia.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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