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만년설 녹아 흘러내린 폭포… 천지개벽과도 같은 굉음
저지대에는 빛깔 고운 집들… 옹기종기 동화 속 마을

"겨울이 지나 봄은 가고, 또 여름날이 가면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사랑하는 님일세, 내 마음을 다하여 늘 기다리노라."

헨리크 입센의 희곡에 에드바르 그리그가 곡을 붙인 '솔베이그의 노래'는 구슬프고도 감미롭다. 애절한 사랑을 담고 있는 이 곡이 탄생한 노르웨이는 극작가 입센과 음악가 그리그의 고향이다. 이 노래의 음률만큼이나 노르웨이의 자연은 경이롭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는 피오르(fjord)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여정은 '노르웨이 인 어 넛셸(Norway in a Nutshell)'이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오슬로(Oslo)와 베르겐(Bergen) 사이의 철도, 산악열차, 크루즈 등을 모두 포함하는 코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녹음이 짙어가는 유월에 찾아간 노르웨이는 이제 겨우 봄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서쪽 항구도시 베르겐에서 '노르웨이 인 어 넛셸' 투어를 시작하기 위해 오후 1시쯤 중앙역에서 내륙의 보스(Voss)로 떠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시내를 빠져나간 열차는 어느새 바다가 내륙 깊숙이 파고 들면서 만들어낸 믿기 어려운 광경으로 안내했다. 피오르는 해수면을 뚫고 거의 수직으로 솟은 봉우리가 굽이치고, 만년설을 뒤집어쓴 거대한 산들이 이어졌다.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눈부신 협만의 봉우리는 하늘과 바다를 절묘하게 연결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폭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204㎞) 깊은(1309m) 노르웨이 송네 피오르를 돌아보는 여정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코발트빛 바닷물과 양 옆의 거대한 산, 그리고 산정의 눈 녹은 물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피오르 주변 낮은 계곡에 들어선 작은 마을도 그림처럼 아름답다.

열차는 두 시간쯤 뒤에 보스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구드방엔(Gudvangen)으로 향했다. 몇 차례 관광객을 갈아 싣는 버스는 구불구불한 능선과 계곡을 휘돌아 빠져나갔다. 거대한 협곡은 조금도 곁눈을 팔 수가 없도록 만들었다. 숲과 호수, 강물과 폭포가 끊임없이 신기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버스는 100m가 넘는 높이에서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 앞에서 멈췄다. 어디에서 이처럼 큰 물줄기가 흘러내릴까? 신(神)이 손으로 긁어 내린 듯 촘촘한 고랑으로 이어진 협곡이 겹겹이 펼쳐지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산꼭대기 만년설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폭포는 천지개벽과도 같은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빙하 계곡은 한 줌의 언어로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녹색으로 덮인 저지대에는 빛깔 고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화 속 마을이 나타났다. 버스는 한 시간여를 달린 뒤 구드방엔 선착장에서 페리에 관광객을 인계했다.

페리는 느릿느릿 피오르의 최고봉이라는 송네(Sogne) 협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더 깊고 험한 협곡으로 빠져들어 가자 피오르는 원시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길게 이어진 절벽 사이를 가까스로 통과하며 피오르를 감상하는 느낌은 황홀경이다. 수만년 전 만들어진 빙하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흘러내린 피오르를 통과한 페리는 두 시간여 만에 플롬(Flam)에서 멈췄다. 에울란(Aurland) 피오르 안쪽에 위치한 플롬은 선착장과 기차역, 우체국 등이 거의 전부일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다. 주민은 450여 명에 불과한 이곳을 노르웨이 사람들은 '피오르의 심장' 또는 '노르웨이의 진주'라고 불렀다. 1870년 문을 연 유서 깊은 프레테임 호텔(Fretheim Hotel)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호텔 방 창문을 열면 협곡을 따라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와 산에서 직하하는 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른 아침 해발 867m 지점에 위치한 뮈르달(Myrdal)행 산악열차에 올랐다. 송네피오르는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뉜다. 그중 플롬에서 구드방엔 구간인 에울란과 네뢰위(Nærøy) 피오르가 가장 아름다워 200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길이 204㎞에 최고 수심도 1309m에 이른다. 산악열차는 20개의 터널을 지나 지그재그 절벽길을 시속 40㎞ 속도로 50분가량 달린다. 협곡 세 개와 강 한 개를 건너며 8개 역을 잇는 이 열차의 절정은 쇼스포센(Kjosfossen)역 전망대에서 느낄 수 있다. 5분 정도 머물면서 93m 높이에서 쏟아지는 폭포의 물방울을 온몸으로 맛보게 하는 곳이다. 높은 계곡 사이에서는 관광객을 위해 공연을 펼치는 님프(요정)의 춤이 매혹적이다. 1923년 착공해 20여 년 만에 완공된 단선궤도로 최대 기울기가 55° 이상인 가파른 협곡을 나선형으로 가로지른다. 철로 주변에 아름다운 산악마을과 목장, 웅장한 폭포가 자리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골짜기 사이를 가로지르는 교량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산악열차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다. 뮈르달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린 여행객은 오슬로와 베르겐으로 서로에게 아쉬운 이별을 하고 있었다.


베르겐, 12∼13세기 무렵 수도… 문화예술의 중심지
도심 중세풍 목조건물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노르웨이는 8세기부터 시작된 바이킹 시대에 남쪽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도시는 오슬로지만, 낭만적인 여행지를 찾는다면 서해 항구도시 베르겐으로 가야 한다. 12∼13세기 무렵 노르웨이의 수도로,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의 고향이자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베르겐은 도심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북유럽의 매력적인 여행은 시작된다.

# 한자동맹의 도시, 유네스코 세계유산

베르겐의 중심은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구획인 '부둣가'라는 뜻의 브뤼겐(Bryggen)이다. 삼각 지붕을 한 14∼16세기 중세풍 목조건물이 모여 있는 지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중세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 무역상들이 확대되면서 베르겐은 1360년 북유럽 무역의 거점이 될 한자동맹 도시가 됐다. 사무 공간과 거주 공간이 혼재하고 여러 채의 집이 뒤쪽으로 계속 연결되어 커다란 유닛을 이루는 특이한 가옥 구조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

이 목조건물들은 베르겐을 휩쓴 몇 차례의 대형 화재에서도 용케도 살아남은 것들이다. 1702년 전 도시가 화재로 불탔고, 1944년엔 부두에 정박한 배에 실려 있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해 대형 화재를 겪었다. 당시 배는 브뤼겐 쪽 부두에 있었으나, 그쪽 일부 건물이 불탄 뒤 바람이 반대편으로 불면서 부두 건너 쪽 도심이 완전히 소실됐다. 이때 그리그의 생가 등도 불탔다. 브뤼겐 동쪽 도로변의 건물들은 이때 불타 새로 지은 것들이다. 화재를 피해 살아남은 건물들이 중심으로 복구작업을 벌여 오늘에 이른다. 브뤼겐은 여행객들의 시내 관광 기점으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된다.





노르웨이 베르겐은 문화와 예술이 살아있는 도시로 불린다. 바닷가 '브뤼겐' 지역에는 독일 상인들이 거주했던 삼각 지붕을 한 14∼16세기 중세풍 목조건물이 모여 있다.

# 관광열차를 타면 시내가 보인다


'베르겐 익스프레센' 관광열차를 이용하면 시내를 구석구석까지 둘러볼 수 있다. 브뤼겐 구역에서 출발해 베르겐 항구, 수산시장, 플뢰위엔(Fløien·해발 320m) 등지를 훑고 지나간다. 시내 동쪽 플뢰위엔 전망대는 빠뜨려서는 안 되는 여행 포인트. 이 전망대에 오르려면 레일과 케이블카를 이용하는데 구불구불한 산악지역을 연결하는 '푸니쿨라르(Funicular)'를 타면 7분 만에 그림 같은 항구도시 베르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스카이-스크라페렌(마천루)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있다. 이곳 레스토랑에서는 등산객들을 위한 샤워시설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노르웨이만의 특이한 이벤트로 대낮처럼 밝은 야간에 벌어지는 등반대회를 들 수가 있다. 초여름, 자정을 전후한 몇 시간을 제외하고 밤이 대낮처럼 밝은 계절이 되면 시민들은 울리켄(Ulriken)에서 시작해 플뢰위엔으로 내려가는 5시간 야간 산행을 즐기곤 한다. 베르겐에서 가장 높은 해발 643m의 울리켄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도 연결돼 있다.

부둣가 안쪽에선 상설 어시장이 열린다. 대형가판시설에는 중세부터 이름을 떨친 대구와 연어·새우·게·바닷가재 등 싱싱한 해산물을 사려는 인파로 늘 붐빈다. 소시지·캐비아 등의 샌드위치를 즉석에서 사먹을 수도 있다.





산악기차 '푸니쿨라르'를 타고 풀뢰우엔 전망대에 오르면 그림 같은 베르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문화와 예술이 살아숨쉬는 도시


노르웨이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국립극장을 비롯한 노르웨이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 등이 베르겐에 있어 문화도시임을 입증해 준다. 또 해양박물관, 자연사박물관, 어업박물관, 역사박물관, 공예박물관, 식물원, 미술관, 수족관 등이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곳 출신 음악가의 이름을 따 '그리그홀'로 불리는 콘서트홀은 베르겐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한층 높여주는 명소라 할 수 있다.

남쪽 바닷가에 자리잡은 그리그 박물관은 베르겐 여행자에겐 필수 방문 코스로 꼽힌다. 숲이 우거진 길을 잠시 걸으면 요정이 사는 언덕이라는 뜻의 '트롤헤우엔(Troldhaugen)'이라 이름 붙은 박물관이 나온다. 그리그가 1885년부터 소프라노 가수였던 부인 니나와 말년 22년간을 머물렀던 집이다. 그가 작곡하고 명상에 잠기던 바닷가 작업실로 내려가는 길에는 실제 몸집 크기로 만들었다는 높이 152㎝의 동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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