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에어드롭을 마친 뒤 탐험대 픽업을 위한 마지막 에어드롭까지는 약 20여 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썰매개들이 너무 지쳐 운행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느려졌기 때문이다. 2011년 7월 중순, 나는 촬영팀과 함께 탐험의 마지막 픽업 장소인 까낙으로 향했다.


자연 그 자체로 살아가는 까낙 사람들

사냥꾼들의 버려진 배 위에서 천진하게 놀고 있는 까낙의 꼬마들


지구 최북단의 마을인 까낙은 항공편도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고, 게다가 여름철에는 관광객과 극지 과학자들이 대거 몰려들기 때문에 티켓 구하기도 어려웠다. 에어그린란드 본부의 안느에게 사정을 해가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까낙 공항은 놀랍게도 활주로가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이었다. 사실 어찌 보면 인구 600여 명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에도 공항이 있다는 것 자체가 더 놀라웠다. 하지만 지구 북단의 땅 끝 마을이라는 상징성을 생각해보면 관광객들을 위한 공항 하나쯤은 있어줘야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지구 최북단 마을은 까낙에서 배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시오라팔루크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사람들의 표정은 순박하기 짝이 없고 차림새도 수수하다. 일루리사트 사람들도 굉장히 순박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예 투박한 자연 그 자체인 듯한 느낌을 준다.


까낙은 물이 귀하다. 마을 뒷산의 내륙빙하에서 녹아내리는 물을 저장할 상수도 시설이 없기 때문에 면사무소 격인 카운실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물탱크에 물을 채워준단다. 그래서 세탁이나 설거지는 물론 샤워조차도 남은 물의 양을 잘 계산해가며 사용해야 한다. (까낙의 숙소에 머리를 감다가 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샴푸를 수건으로만 닦아내기도 했다.) 수세식 화장실도 없다. 노란색 비닐봉투를 설치하여 변기로 사용하고, 다 채워진 봉투를 쓰레기 분리수거처럼 내놓으면 역시 월, 수, 금요일마다 카운실 차량이 다니며 수거를 해간다.


까낙 숙소를 빌려준 덴마크 출신의 지게차 기사 피터슨에게 ‘이런 곳에서 사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No Problem’ 하며 웃는다. 까낙에 사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런 것에는 불평을 하지 않는단다. 다만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와 그에 따른 사냥 환경의 변화를 가장 불편해 할 뿐이란다.

까낙 뒷산의 내륙빙하에서 녹아 흐르는 물

분뇨 봉투를 수거해가는 까낙 카운실 직원


까낙의 사냥꾼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우선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났던 마리우스부터 찾아갔다. 그는 까낙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이곳 사냥꾼들에 대해서 잘 안다며 거침없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올해 마흔다섯 살인 마리우스는 10년 전 이곳 까낙에 와서 처음에는 투어 가이드를 했지만 이듬해에 사비시비크(Savisivik)로 거처를 옮겨 본인도 사냥꾼이 되었다고 한다. (사비시비크는 약 20여 가구에 48명이 살고 있는 까낙 남쪽의 사냥꾼 마을이다.)


까낙을 포함하여 이곳 북단 마을의 사냥꾼들은 겨울에 곰과 물개, 바다코끼리를 잡고 여름에는 일각고래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직 그것만이 이 극지마을에서 살 수 있는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사냥이 몹시 힘들어졌다. 첫째는 더워진 날씨 때문이고 둘째는 정부의 쿼터제 때문이다. 북극 까낙 지역 전체 사냥꾼에게 정부가 허락한 북극곰 사냥 쿼터는 1년에 18마리뿐이고, 그나마도 얼음이 녹아서 방황하는 북극곰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한때 주 수입원이었던 물개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더 이상 내다 팔수가 없다. 예전에는 물개 가죽을 전 세계로 수출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린피스 같은 단체들의 압력으로 인해 어느 나라도 수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어디선가 행해지고 있는 상업성 사냥과 서방세계의 편협한 시각으로 인해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사냥하는’ 이누이트 사냥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북극의 눈물이란 얼음의 눈물이나 북극곰의 눈물이기도 하지만 척박한 극지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의 눈물이기도 하다.


까낙에서 맞는 백야의 첫날 밤, 마리우스와 긴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마리우스, 지금은 여름이라 밤이 환하지만 겨울엔 어떤가요? 하루 종일 캄캄한 밤만 계속되는 그 시기엔 도대체 뭘 하면서 지내죠?”


그러자 마리우스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데, 그리고 하얀 눈이 있는데 어째서 캄캄한 밤이지?”

북 그린란드는 12월에서 2월까지 태양이 거의 뜨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그 시기에 끝없는 밤이 계속될 거라 상상한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별과 달, 그리고 북극광과 눈이 있어 결코 캄캄하지 않다고 한다.




내추럴 본 헌터

다음 날 아침 마리우스가 두 명의 친구를 데리고 왔다. 사냥꾼 마마우트와 기디언이었다. 다들 MBC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뿐만 아니라 BBC 등 세계적인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 단골로 출연할 만큼 까낙의 전통 사냥꾼들이다.


“저희 집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기디언이 약간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초대받은 것도 고마운데 운 좋게도 나는 그의 집 근처에서 썰매개들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까지 촬영할 수 있었다.


물개 고기를 잘라 던져줄 때마다 16마리 정도의 개들이 순서대로 받아먹는 모습은 놀랍기만 했다. 먹이를 놓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일루리사트의 썰매개들에 비해 까낙의 개들은 뭐랄까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정예요원’ 같았다. 그리고 일루리사트의 개들에 비해 몸집은 조금 작았지만 머리는 더 컸으며, 짙은 갈색 눈에 아주 거칠고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일루리사트 개들과는 느낌이 다른 까낙 썰매개

새끼 썰매개를 들고 있는 까낙 소녀


잠시 후 기디언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여기저기 곰 이빨과 일각고래 뿔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저 곰 이빨은 어디서 난 겁니까?”


그러자 기디언은 아무렇지도 않게 냉장고 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기절할 뻔했다. 냉장고 안에는 곰 머리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지난 봄 사냥에서 갓 잡아온 북극곰이란다. 껍질이 벗겨진 채로 냉동 보관되고 있는 곰 머리! 그제야 나는 여기가 북극 끝 마을 까낙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기디언은 우리 일행을 위해 그린란드 감자와 고래 스테이크를 내놓았다. (그레이비소스가 뿌려진 고래 스테이크, 정말 특별한 맛이다! 안심일까, 등심일까?) 식사가 끝난 뒤에는 다시 마마우트의 집으로 옮겨서 다함께 맥주를 마시며 그들이 출연했던 다큐멘터리를 감상했다. 기디언과 마마우트는 다큐에 출연했던 당시의 일들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50대 초반의 마마우트는 ‘노벨 사냥꾼 상’이라도 수여해야 할 만큼 전형적인 북극 사냥꾼이다. 예전에 개썰매 사고로 발목을 다친 뒤 몸집이 많이 불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 사냥꾼들의 맏형답게 몸에서는 여전히 헌터의 포스가 진하게 뿜어져 나온다. 사냥꾼으로서 그의 이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일각고래다. 그는 일찍이 86년, 88년, 2000년 무려 세 차례에 걸쳐 뿔이 두 개인 일각고래를 잡은 적이 있다. 바다의 유니콘이라 불리는 일각고래는 세계적으로 이곳 까낙 등지에서만 서식하는데 뿔이 두 개인 경우는 여기 사람들에게조차 희귀하다. 사냥꾼에게 반드시 필요한 담력과 용기, 지혜뿐만 아니라 행운까지 갖췄으니 그는 진짜 ‘Natural Born Hunter’인 셈이다.


우리는 마마우트의 안내로 바닷가에 있는 사냥꾼들의 클럽 하우스로 갔다. 거기서 마마우트는 새 카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곳 사냥꾼들의 삶은 단순하다. 일 년의 반은 사냥 준비로, 그리고 나머지 반은 사냥을 하며 보낸다. 마마우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카약을 만드는 동안 그의 어린 딸은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리고 그의 아내 뚜꾸믹은 저만치 떨어져 담배를 피우며 남편이 일하는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까낙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일각고래와 물개, 바다쇠오리 사냥을 떠난다. 물론 학교에서 여러 과목을 공부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초 지식일 뿐 그들의 삶과 미래는 거의 대부분 북극 바다 위에 무한정 펼쳐져 있다.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가족이었다.

마마우트의 집 벽에 걸린 뿔이 두 개 달린 일각고래 사진(1986년)



어느 원로 사냥꾼의 슬픈 회상

사냥꾼들과 헤어진 뒤 숙소까지 걷다가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났다. 왠지 낯이 익다 싶어 유심히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북극의 눈물>에 출연했던 ‘우사깍’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온 탐험대라고 소개하자 그는 두 팔을 벌려 반갑게 포옹을 하더니 기어이 집까지 초대했다. 우사깍과 그의 아내 잉까는 내게 빵과 커피를 대접하며 시종일관 아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50년 이상 살아온 우사깍 노인의 집

우사깍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필자


우사깍은 거의 평생을 사냥만 하며 살아온 진정한 북극 사냥꾼이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경험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지식과 연륜이 묻어나는 지혜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 나는 이곳 출신이 아닐세. 원래는 피투픽에서 태어나 거기서 쭉 살았었지.”


그런데 1953년 어느 날 갑자기 덴마크 정부로부터 난데없이 강제이주 명령이 떨어졌단다. 이유 불문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그곳을 떠나라는 것이었다.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을 버리고 무조건 떠나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3일이었다.


“왜 내쫓은 거죠?” “거기다 미군 기지를 짓기로 했거든. 그게 이유일세.”


결국 오늘날의 까낙은 미군 기지에 쫓겨난 사람들의 또 다른 정착촌이었던 것이다. 우사깍은 그렇게 이곳 까낙으로 왔고, 억울하게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던 그 사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1968년에 핵무기를 싣고 가던 것으로 추정되는 미군 비행기가 까낙 부근의 바다에 추락한 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로 이 지역은 심각한 생태계 혼란에 직면하여 기형의 물고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에게도 이상한 질병이 생겼다. 그러나 미군 당국과 덴마크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사깍은 그동안 모아온 수많은 근거 자료를 가지고 덴마크 대법정까지 갔지만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두 사건 모두 국제 법정에 제소한 상태라네. 나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싸울 걸세.” 우사깍의 눈빛이 갑자기 청년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는 또 이미 오래 전부터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를 예견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인공위성 사진이나 여러 가지 데이터로 그것을 알지만 자기는 사냥꾼의 직감으로 이미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북극의 얼음 속에서 사냥만 하며 살아온 사람이니 만큼 그의 몸과 머리에 저장된 환경변화의 데이터는 어떤 컴퓨터보다 훨씬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대화 도중에도 그는 계속 땀을 흘리며 힘들어했다. “나는 얼음 한복판에서 태어나 평생을 얼음 위에서 살았지. 그래서 내 몸은 이렇게 더운 날씨에 익숙하지 않아.”

인구 600여 명이 살고 있는 지구 최북단 마을 가낙 전경


지구 최북단 마을 까낙, 이곳은 혹독한 환경과 싸우며 거칠게 살아가는 사냥꾼들의 마을인 만큼 그린란드의 전통이 가장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누이트식 풍습이나 식습관 혹은 사냥방식만을 보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까낙이 간직한 진정한 전통은, 자연을 대하듯 숨김없이 가슴을 열어 생생하게 사람을 만나고 껴안아주는 이들 특유의 ‘만남의 방식’이리라.


백야의 늦은 밤, 나를 마치 아들처럼 대해주는 우사깍 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은 뒤, 우리는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나의 아버지와 같은 해, 1944년에 태어난 이누이트 원로 사냥꾼의 손길은 더없이 따뜻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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