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한 환상적인 섬, 팔라우. 해파리 떼와 만타가오리 등 바닷속에 감춰진 신비함을 찾아 떠나보자.

방송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선택하고 나서 가장 당황했던 촬영현장이 있는데, 그것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일이었다. 사실 난 수영을 못할뿐더러 바다를 정말 무서워한다. 어릴 적 보았던 <죠스>라는 영화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내가 내 의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대한 공포감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바다라는 곳은 멀리서 그냥 바라보는게 좋았는데, 팔라우에 대한 해외 다큐멘터리를 보고 ‘아 세상에 저런 곳이…. 낙원이 있다면 바로 저런 곳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ALAU ©하나투어
환상의 춤이 펼쳐지는 해파리 호수

세계적인 해양 전문가 단체인 CEDAM이 호주의 대보초를 뒤로하고 1위로 선정한 세계 최고의 해양지역 팔라우. 어느 나라의 작은 섬인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팔라우공화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나라이다. 8개의 큰 섬을 모아봤자 우리나라 거제도만 하지만 무인도까지 합하면 수천 개의 군도로 구성되어 있다.

비취색의 아름다운 바다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산호섬 군락들로 인해 ‘마지막 신들의 낙원’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그곳에 드디어 갈 기회가 생겼다. 운 좋게도 수중 전문 촬영 감독과 함께. 수영을 전혀 못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스쿠버 자격증을 지참하고 드디어 팔라우 촬영을 위해 떠났다. 팔라우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을 소개하는 모든 잡지와 하물며 공항에 내리자마자 떡하니 붙어 있는 팔라우 증명 사진을 찍기 위해 헬기에 올랐다.

“정말 팔라우는 최고입니다. 정말 아름답죠. 다채로운 색깔의 풍경들과 다양한 해양생물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독성이 없는 해파리라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다. ©함정민
전 세계의 촬영팀을 다 만나본 것일까? 헬기 조종 15년 경력을 자랑하는 맷은 한국에서 온 촬영팀이라는 것을 알려주자 이것저것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헬기 촬영을 위해 가져간 작은 카메라를 보더니 어디선가 강력 테이프를 가져와 헬기 다리에 꽁꽁 매어주고 모니터에 연결을 하더니 이내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인다.

‘드드드드’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헬기가 떠오르고 설렘과 기대감으로 카메라를 단단히 쥐었다. ‘설마 내가 본 사진처럼 예쁘지는 않겠지? 스틸 사진이야 포토샵으로 얼마든지 예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떠오르는 순간, 내가 본 사진보다 더 예쁘다. 비취색의 아름다운 바다와 그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 사람이 간신히 서있을 수 있는 섬까지 합하면 수천 개라는 섬들이 어떻게 저렇게 사이좋게, 예쁘게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을까?

갑자기 맷이 신나게 섬들 위로 낮게 저공비행을 시작한다. ‘이럴 수가, 듀공이다!’ 헬기 소리에 놀라 잽싸게 사라지긴 했지만 하늘 위에서 바다 인어 듀공을 보다니, 팔라우 촬영의 첫 출발이 너무나 좋다.

섬들 사이사이로 그리고 무인도 정글 사이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빠져 나오고 나니 하늘 위에서만 보는 것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사실 팔라우에서 촬영을 하는 것은 제작 피디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점이 많다. 그중 하나는 팔라우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것. 특히 수중 촬영을 위해 배를 빌리는 비용이 하루 800달러 정도는 기본이다.

거기에 공기통과 기본 장비는 별도다. 저절로 한숨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안할 수는 없는 일. 어쨌거나 배를 빌려 출발한다. 코로르 섬에서 남서쪽으로 시원하게 달리다 보니 동글동글하게 생긴 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팔라우 최고의 절경이라 불리우는 ‘록 아일랜드’다. 약 5000만 년 전 화산폭발로 생긴 팔라우 섬은 오랜 시간 동안 침강과 융기를 반복해 겪으면서 지금의 산호섬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조각가가 이런 작품을 빚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냥 바라만 보아도 기분 좋은 풍광이다.


나폴레옹 피시의 모습 ©함정민
아~ 바다라는 곳이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좋은 줄 예전엔 몰랐네요. 바다는 바닷속에서만 좋은 줄 알았는데….”

같이 간 수중 촬영 감독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록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최대 5m가 넘는 고대 종유석을 볼 수 있는 샹들리에 동굴과 오랜 세월 침전된 산호가루가 만들어내는 신비한 바다 색깔을 자랑하는 ‘밀키웨이’.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큰 너비 1m가 넘는 대왕조개 서식지까지 어디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곳이 없지만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과 감동을 준 곳이 있다.

바로 엘마르크 섬 정상의 작은 소금호수에서 만난 해파리 떼들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해파리 호수라는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호기심이 발동한 것은 사실이다. ‘해파리 호수라….’ 쉽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엘마르크 섬 입구에서 내려 산을 조금 올라가야 하는데, 입구에서부터 입장료를 내야 한다. 팔라우는 물가가 비싸기도 하지만 스쿠버를 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나갈 때에도 환경세를 내야 하고 특히 촬영팀은 섬마다 있는 지역 정부에 따로 촬영료를 내야 한다.

비싸게 받는 곳은 하루에 100달러, 어떤 섬은 10달러에 협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엘마르크 섬은 환경세라는 명목하에 25달러라는 돈을 더 받는다. 로마에 왔으니 로마 법을 따르기는 하는데 가는 곳마다 돈이 드니 마음이 편치는 않다. 전날 비가 왔는지 꽤 미끄러운 산길을 5분 정도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자 눈앞에 시커먼 물이 가득 차 있는 작은 호수가 나타났다.

산호가루가 만들어낸 신비한 밀키웨이. ©하나투어
“해파리가 어디 있다는 거죠?”
“저기 호수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야 합니다.”
“네? 호수 속으로요?”

해파리가 다칠지도 모르니 공기통은 절대 불가란다. 수영을 못하는 내가 시커먼 호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니 두려움이 앞선다. 계속 머뭇거리는 나를 보다 못한 수중 촬영 감독이 먼저 호스만 입에 물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제나 저제나 나타날까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나타난 감독이 열심히 내 앞으로 헤엄쳐 온다.

“정말 아름다워요. 빨리 들어오세요. 여길 못 보고 가면 정말 후회할 거예요. 빨리요.”

왕성한 호기심이 또 두려움을 이긴다. 수영을 못하니 구명조끼를 입고 가이드의 손을 잡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들어가는 순간 몇 미터나 버둥거렸을까? 눈앞에 나타났지만 도저히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이 현실일까 착각에 빠지는 순간이다. 수백만 마리의 살굿빛 해파리들이 춤을 추는 광경.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생물이 이보다 아름답게 춤의 향연을 벌일 수 있을까? 입 벌리고 감탄하다 제대로 물을 먹었다.

그런데 물이 짜다. 소금 호수라더니 정말 짠 물이다. 생각해보니 해파리도 바다생물이다. 어떻게 이런 곳이 생기게 되었을까?

“이곳은 원래 산이었던 곳입니다. 산이 바다로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오면서 연못처럼 바닷물이 갇힌 거예요.”

긴 시간 동안 산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면서 그릇처럼 산 정상에 바닷물이 고인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구의 그 어떤 역사보다도 아름다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해파리 호수. 오랫동안 이곳에 갇혀 살아온 해파리들은 무서운 촉수도 독성도 사라지고 오히려 이곳에 살고 있는 카디널 피시라는 물고기의 밥이 되고 있다. 무서운 해파리가 아닌 순하고 착한 해파리들이 사는 아름다운 곳. 수백만 마리의 해파리들 속에서 함께 수영한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산호가루로 팩을 즐기고 그대로 뛰어들면 된다. ©하나투어
대형 만타가오리의 웅장함

해파리들과 춤을 춘 충격이 채 사라지기도 전인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가이드와 촬영 감독이 분주하다. 대형가오리 만타를 보기 위해서다. 팔라우의 바다를 보기 위해 왔는데 만타가오리를 보지 않고는 귀국할 수가 없다. 부랴부랴 장비를 챙기고 출발하는데 날씨가 꾸물꾸물하다.

“파도도 꽤 세네.”

우가쿠라는 다이빙 포인트에 도착하자 다이빙할 준비에 다들 정신이 없다. 일명 클리닝 스테이션이라 불리는 우가쿠는 팔라우의 만타가오리를 볼 수 있는 포인트 중 하나인데 근래 들어 자주 출몰한단다. 조류가 끔찍할 정도로 세다. 수중경험이 많지 않은 내가 견디기에는 너무 세다. 결국 오랜 시간 견디질 못하고 먼저 올라와버렸다.

“에고, 물속에서 멀미 나요.”

잠시 다른 다이버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소리,

“카메라 준비해요.”

무슨 말인가 확인할 새도 없이 배가 거의 뒤집힐 듯 커브를 틀며 달리기 시작한다. 뭔 일이 나긴 났구나 싶어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손에 들고 난간을 잡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또하나의 광경, 바로 돌고래 떼들이다. 선장은 돌고래 떼들과 신나게 경주하며 나한테 촬영을 하라는데 이건 거의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난데없이 멋진 광경을 보다니, 어이없으면서도 기분이 업된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바닷속으로 입수. 서로 공생관계에 있는 청소 놀래기와 엔젤 피시들도 보고 곰치 입속을 청소해주는 놀래기들도 봤는데 만타가오리는 왜 안 나타나는 건지…. 사람 기척에 워낙 예민하다는 말에 다른 다이버들과 바닷속 바닥에 엎드려 숨도 크게 못 쉬고 기다리는데 귀하신 몸 절대 보여주질 않는다. 그렇게 실패하고 물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4번째.

나 같은 초보자들은 하루에 2~3번 다이빙이 적당하다는데 거대한 만타가오리를 보고 싶다는 욕심은 가끔 용감함으로 표출되는 거 같다. 점점 바닷속 조류가 강해진다. 이럴 때 센 조류에 휘말리면 그대로 바닷 속으로 날아가 버린다. 베테랑 가이드가 매준 줄에 의지해 만타가오리를 기다리는데 공기통 바닥이 드러나나 보다. 옆에서 서포트 해주던 가이드가 올라가야 한다고 동그라미를 그린다.

만타가오리 ©하나투어
 ‘만타가오리 때문에 목숨을 걸 수는 없지’ 그래 올라가자 하는 순간, 등을 돌리고 있던 수중 촬영 감독 뒤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가 있다. 절로 숨이 막힌다. 가오리 중의 왕이라 불리운다는 명칭답게 위풍당당하게 그리고 여유있게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다가온다. 가까이 가면 도망간다는 말에 멀리서 숨죽이며 바라보다 촬영 욕심에 다가가는데 웬일인지 우리 머리 위를 빙빙 돌며 자세를 잡아준다.

이런, 저 멀리 또 다른 만타가오리들이 나타난다. 이번엔 4마리다. 해파리들의 감동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팔라우의 바다는 또다른 감동을 선물해준다. 바다를 다스리는 제왕다운 기품과 우아함이 느껴지는 만타가오리들, 순식간에 내 마음과 눈을 사로잡아버렸다. 한눈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것일까? 어떤 문구로도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지금도 잠자리에 누우면 가끔씩 해파리들과 춤을 춘 영상과 함께 그모습을 감히 허락해준 만타가오리들이 떠오른다. 인간의 손길이 닿았지만 순수한 자연이 살아 있는 그곳. 그곳은 진정 신들의 낙원이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의 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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