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륙에서 라트비아로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만나는 다우가우필스(Daugavpils)는 라트비아 제2의 도시이다(‘다우가프필스’로 불리기도 하지만, v자가 자음 앞에 왔을 때 묵음이 되는 라트비아어의 특성상 ‘다우가우필스’로 부르는 것이 맞다). 러시아 국경에서의 복잡한 여권심사를 마치고 다우가우필스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누구나 러시아를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는다. 간판이나 표지판, 안내문들이 모두 러시아어와는 상당히 다른 라트비아어로 적혀 있어 국경을 넘어 새로운 문화권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다우가우필스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라트비아어 간판이 달린 서점에 들어가도 내부에 진열된 책들은 90% 이상이 러시아어로 된 책들이며, 라트비아어로 된 메뉴판을 가져다주는 식당에서도 종업원과 손님들은 모두 러시아어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심지어 영화관에 가도 최신 할리우드 영화가 러시아어로 더빙되어 상영될 정도다.

다우가우필스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보행자 전용거리인 리가 거리. <사진: 다우가우필스 관광청>

라트비아는 소련 시절 발트3국에서 가장 러시아화가 많이 진행된 지역이기도 하지만. 다우가우필스가 있는 동부 지역은 특히 더하다. 다우가우필스 주민들 중 60% 이상이 러시아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라트비아 안의 작은 러시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우가우필스는 한국인뿐 아니라 발트3국을 자주 다니는 외국인들에게조차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인구 규모 역시 10만여 명에 불과해 90만 명 정도가 사는 수도 리가와 비교해 봤을 때 그 차이가 엄청나다. 변변한 구시가지도 없고, 크게 내세울 만한 유적지도 없는 곳이라서 관광객도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도시에 대해서는 명성에 비해 크게 볼 것이 없다는 선입견도 많다.

하지만 러시아인 이외에도 라트비아인,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벨라루스인 등 다양한 민족들이 어우러져 만든, 발트3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색다른 풍경들도 많고, 과거 무역 거점으로서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우가우필스 요새를 휘감고 있는 해자. <사진: 다우가우필스 관광청>

다우가바 강변에 위치한 다우가우필스

다우가우필스라는 이름에는 ‘다우가바 강변의 도시’라는 의미가 있을 만큼, 이 도시는 다우가바강(서드비나강)과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수심이 깊으면서도 물결이 잔잔해서 중세 시절부터 대표적인 무역로로 사용되어 왔고 스웨덴 고틀란드섬의 사람들이 다우가바강을 통해 그리스로 갈 수 있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을 만큼 명성이 높다.

리가를 정복한 리보니아 기사단들(검우기사 수도회)이 이 지역에 성을 건설한 1275년을 도시 역사의 시작으로 삼고 있으며, 당시에는 뒤나부르그(Dünaburg)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때부터 무역 거점으로 발전했지만, 16세기 중엽부터 라트비아 동부의 라트갈레(Latgalė) 지역이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리투아니아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다우가우필스가 속한 라트갈레 지역은 독일 루터교의 영향이 비교적 컸던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로마 가톨릭이 번성했고 서부의 표준 라트비아어와 많이 다른, 리투아니아어와 라트비아어의 성격을 모두 보이는 라트갈레어라는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보다 로마 가톨릭 성당이 더 많은, 약간은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리가 거리 한가운데 자리잡은 웅장한 로마 가톨릭 성당인 성 베드로 성당. 러시아 인구가 많은 다우가우필스이지만 로마 가톨릭 성당이 더 많다. <사진: 서진석>

1차대전 이후 라트비아가 최초로 독립했을 당시, 라트갈레 지역은 언어적으로 라트비아어에 조금 더 가깝다는 이유로 라트비아와 한배를 타게 되었다. 한때 라트갈레어는 라트비아어의 사투리로 취급되어 많은 관심을 얻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독립적인 언어로 인식되어 라트갈레의 중심도시인 레제크네를 중심으로 하여 라트갈레어 방송, 교육, 편찬사업 등 라트갈레어 부활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우가우필스는 2차 대전을 겪으면서 큰 손실을 입었으나, 교통과 무역의 요충지답게 철강, 섬유, 식품가공업, 경공업 등 소련 내부의 원자재를 가공하는 공업단지가 집중적으로 건설되면서 소련 내부의 고학력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이주해왔다. 그 결과 한때 러시아인의 수가 이 도시 전체 인구 중 80%에 육박하기도 했다.

소련이 붕괴된 후, 러시아 내륙에서 생산되는 원자재에 의존하는 현지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실업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러시아 유민들의 시민권 취득이나 교육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로 여러 주변 국가들의 투자가 늘어났고, 다우가우필스가 가진 다문화적 특성을 십분 활용한 축제와 문화행사들이 열려 외지인들의 방문이 늘어나자 과거에 가지고 있던 조금은 어두웠던 고정관념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다우가우필스가 자랑하는 볼거리, 다우가우필스 요새 (Daugavpils Cietoksnis)

다우가우필스 요새는 19세기 초 건설 당시 모습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역사적, 건축학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1577년 이반 대제의 명령에 의해서 성곽이 최초로 세워진 이후 여러 차례 증축을 거듭하였으나, 현재의 모습이 완성된 것은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9세기 초이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정벌 야욕에 불타오르던 1810년 알렉산데르 1세가 ‘러시아 제국의 서부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건설을 명한 요새는, 1812년 나폴레옹 군대가 다우가우필스를 실지로 장악하면서 나폴레옹 군대의 진격을 막고자 했던 초기의 계획을 완전히 실현시키지는 못했지만, 1833년 니콜라스 1세 시절에 완공되었다.

요새 내 텅빈 군사시설과 함께 서있는 아파트. <사진: 서진석>

한때 군사시설이었음을 말해주는 무기. 현재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사진: 서진석>

해자, 요새 전체를 휘감는 성벽, 웅장한 모습의 성채, 소방서, 보루 등 당시의 군사시설물과 함께, 요새 안에 살았던 이들을 위한 주거건물, 공공건물들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러시아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 서유럽의 침공에 대항하고자 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1940년 소련 붉은군대가 다우가우필스를 점령했을 때, 상트 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리나 궁전에 있던 호박실을 약탈한 독일군이 급하게 퇴각을 하면서 요새 어딘가에 그 보석들을 숨겨놓았다는 재미있는 전설도 남아 있다.

현재 요새는 다우가우필스 최고의 자랑거리로서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 지역이 방치되어 있거나 개발 중이다. 특히 소련 시절 밀려드는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부에 아파트까지 건설되어 일반 시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한때는 위용을 자랑했으나 주인이 사라진 텅 빈 요새 한가운데 서면 사라진 도시 안에서 길을 잃은 느낌마저 든다.

다우가우필스 시내 관광안내소에 미리 신청하면 가이드의 자세한 안내를 받아 관광할 수 있고, 요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으로도 재밋거리를 찾아볼 수 있다. 2005년부터 대단위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공사가 끝나면 라트비아 최대의 볼거리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보이는 지역이다. 시내에서 대략 3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전차나 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한다.

19세기 후반의 운치있는 건물들이 가득한 다우가우필스 시가지

다우가우필스에는 특별히 구시가지라고 부를 만한 지역이 따로 없지만, 요새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시에톡스냐(Cietokša) 거리와 다우가우필스 중앙역 앞에서 이어지는 보행자 전용도로인 리가 거리(Rigas iela), 사울레스 거리(Saules iela) 등을 중심으로 한 시가지에서는 19세기 후반기에 건설된 운치 있는 건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리가 거리 한가운데 광장에 자리 잡은 통일의 집(Vienibas nams)은 라트비아 공화국 1대 대통령 카를리스 울마니스가 1934년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 시민들의 요청에 화답하여 건설해 준 건물로 유명하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기능주의와 네오-고전주의를 혼합한 양식의 이 건물에는 현재 대규모 공연장, 문화센터, 시립도서관, 관광안내소 등이 입주해 있다.

다우가우필스를 방문하는 이들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곳은 다우가우필스 역사예술박물관이다. 1883년 아르누보 양식으로 건설된 건물에 1938년 입주한 이 박물관은, 라트갈레 전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다우가우필스 도시의 역사와 함께 중세, 근대 시절 이 도시에 살았던 시민들의 생활상, 도시가 낳은 대표적인 예술가인 레오니드 바울린스(Leonids Baulin), 다우가우필스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추상화가로 활동한 마크 로스코의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라트비아 동부에서 가장 아름답고 규모가 큰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다우가우필스 역사예술박물관 <사진: 서진석>

다우가우필스 역사예술박물관 내부 <사진: 서진석>

중앙역에서 시작되어 다우가바강에 이르는 대략 1km의 보행자 전용거리인 리가 거리는 다우가우필스에서 가장 활기차고 화려한 거리이다. 방문객들이 많은 여름이면 크고 작은 축제들이 열리며, 분위기 좋은 식당과 커피숍, 상점들이 즐비해 도시의 분위기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거리이다. 특히 보도블록 사이사이에 박힌 조명은 여름밤의 정취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다우가우필스는 라트비아 전체에서 가장 녹지가 많은 곳으로도 손꼽힌다. 다우가우필스가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마크 로스코, 한때는 사투리에 불과했던 라트갈레어의 위상을 높인 라트비아 최대의 문호 라이니스 , 라트비아 서사문학의 아버지 안드레이스 품푸르스 등 여러 위인들을 주제로 한 크고 작은 광장은 도시를 산책하는 이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


가는 길

다우가우필스에는 국제공항이 없으므로 수도 리가를 통해서 들어오는 방법이 가장 편하다. 2011년 현재 하루 네 차례 기차가 운행하고 있으며, 기차에 따라 2시간 50분에서 4시간까지 걸린다. 버스로 이동할 경우 리가에서 거의 매시간 버스가 출발하고, 경유 도시에 따라 3시간 반에서 4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러시아로 이동하는 국제철도노선은 없으나, 유로라인이나 에코라인 등의 버스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다. 리투아니아의 빌뉴스카우나스에서는 기차나 버스를 통해서 이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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