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동부 4개주, 애틀랜틱 캐나다를 가다
‘타이타닉’ 그리고 빨강머리 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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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을 건너는 긴 여정을 마치고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을 위해 길을 밝혀주던 페기스 코브 등대. 화강암 바위 언덕 위에 세워진 이 등대는 애틀랜틱 캐나다를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다. / 노바스코샤주 관광청

푸른 잔디와 작은 숲 사이 숨어 있는 주택들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 사람 흔적이 사라지고 잡초 드문드문 뒤섞인 평원이 차창 밖으로 펼쳐졌다. 그렇게 30분쯤 달렸을까, 시야가 뻥 뚫리면서 낮고 둥글둥글한 화강암 바위들이 겹쳐진 언덕 위로 우뚝 솟은 하얀 등대가 나타났다. 머리에 빨간 랜턴을 단 이 구조물 높이는 15m. 페기스 코브(Peggy's Cove) 등대다. 대서양을 건너 애틀랜틱 캐나다로 들어오던 초기 이주민들을 반겼을 그 등대 너머로 대서양의 푸른 수평선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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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영국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건물들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루넨버그. ②애틀랜틱해양박물관 입구에 18세기 해적을 처형하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한 조형물. / 신동흔 기자




대서양 바라보는 외로운 등대

페기스 코브는 옛 어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이다. 매년 관광객 수만명이 찾지만 60여명인 주민들은 과거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부둣가엔 바닷가재 덫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만선(滿船)으로 돌아온 작은 어선은 등이 반짝이는 고등어를 토해내고 있었다.

'페기'는 그 옛날 어느 난파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 아이였다. 어부들이 데려온 아이는 예쁘게 자라나 '코브의 페기'라고 불리다가 나중에는 마을 이름이 페기스 코브가 됐다는 전설. 노바스코샤에는 해안선을 따라 뭍으로 움푹 들어와 있는 크고 작은 만이 무수하다. 그곳마다 작은 마을이 들어서고 전설이 생겨났다. '페기'는 고향을 버리고 신대륙으로 건너온 이주민들 자신이 아니었을까. 애틀랜틱 캐나다 지역 곳곳에선 자신들이 떠나온 유럽을 뒤로하고 새로운 땅에서 삶을 시작한 이들의 이야기가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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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세계 바닷가재의 수도’로 불리는 작은 마을 쉐디악의 대형 바닷가재 조형물. ②아카디아인 후손들이 복구해 지금은 역사문화 공원이 된 그랑프레 유적지를 찾은 
학생들이 초원에서 점심을 먹는 모습. / 신동흔 기자


대서양 횡단 통신과 운송의 거점, 핼리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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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을 찾는 사람들의 입에 끊이지 않고 오르내리는 또 다른 난파선 이야기는 '타이태닉'이다. 핼리팩스는 당시 이 대형 침몰 사고의 주요 '현장'이었다. 1912년 4월 북대서양에서 빙산에 부딪혀 타이태닉이 침몰했을 때 핼리팩스에는 유럽과 북미 사이에 해저 케이블을 가설하던 선박들이 많았다. 이 배들이 침몰 현장에 나가 시신을 건져 올렸다. 대형 케이블을 설치하는 고된 해상 작업에 능숙한 승무원들은 당시 사망·실종자 1500명의 5분의 1 정도인 333구를 건졌다. 대부분 1등석 탑승자였다. 여기에는 남모르는 사연이 있다. 시간에 쫓기는 선원들이 잘 차려입은 시신을 먼저 건져 올리면서 승무원이나 3등 칸 승객의 상당수가 수장됐다는 것. 100여년 전 참사를 다룬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케이트 윈즐릿 주연의 1997년도 영화 '타이타닉'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 슬픈 이야기다. 이 도시는 짧은 역사에 비해 참사가 많았다. 1917년에는 폭탄 운송선이 부두 근처에서 충돌 사고를 일으키는 대폭발 사고로 2000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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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마다 16m 가까이 해수면의 높이가 차이가 날 정도로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한 캐나다 펀디만의 호프웰 록스. 시간에 따라 풍경이 바뀌는 펀디만 일대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 캐나다 관광청(kr-keepexploring.canada.travel)
언덕 위의 별, 핼리팩스 시타델

미국 독립전쟁에서 패한 영국은 뉴욕이나 보스턴을 대신해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를 항구가 필요했다. ‘새로운 스코틀랜드’라는 뜻의 노바스코샤는 원래 프랑스인들이 개척했던 곳. 두 나라 사이 전쟁은 불가피했다. 핼리팩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지어진 별 모양의 아름다운 성채 ‘핼리팩스 시타델’은 1749년 핼리팩스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프랑스군과 맞서기 위해 지었다.

지금도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군복을 입은 ‘아르바이트’ 병사들이 당시와 똑같은 일정에 따라 훈련을 하고, 포 사격을 연습한다. 매일 정오에는 공포도 발사된다. 성문 초병인 스티브(27)는 “우리는 대부분 부업으로 일하는 대학생들이지만 하루 3교대로 한 번에 세 시간씩 성문 보초를 선다”고 말했다. 1820년에 설립된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 중 하나인 알렉산더 키스 맥주 공장은 지금도 19세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 의상을 입은 펍 종업원들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풍 치마를 입은 남자 종업원들은 이해가 됐지만, 여자 종업원들의 짧은 치마는 역사적 고증과 무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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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핼리팩스 도심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별 모양으로 지어진 핼리팩스 시타델 성채. ②1820년에 만들어져 지금도 전통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알렉산더 키스 양조장. ③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샬럿타운의 바닷가재 요리 맛집 ‘워터프린스 코너숍’. ④현지인들이 바닷가재를 잡을 때 사용하는 통발. / 신동흔 기자·캐나다관광청
아카디아의 슬픈 역사가 담긴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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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팩스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나오는 펀디만 연안의 드넓은 초지 ‘그랑 플레’는 아카디아인들의 성지다. 17세기부터 이 지역에 살던 프랑스 이주민의 후손인 아카디아 사람들을 쫓아낸 ‘대축출(Great Expulsion·1755~1763)’ 이후 자손들이 돌아와 돈을 모아 재(再)조성했기 때문이다. 미국 시인 헨리 워드워즈 롱펠로는 대축출 과정에서 약혼자와 헤어져 노바스코샤 일대를 헤매다 정혼자의 죽음이 임박해서야 해후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서사시 ‘에반젤린’을 써서 큰 인기를 얻었다. 아카디아인들은 자신들이 ‘되찾은’ 그랑 플레에 이 작품 속에 나오는 교회와 에반젤린의 동상을 세워 이를 기념하고 있다. 아카디아인 들은 지금도 이곳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지난 4일 오후에는 스쿨버스를 타고 관람을 온 학생들이 프랑스어를 쓰는 박물관 지도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스스로를 프랑스인이 아닌 ‘아카디아인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역시 구대륙이 아닌 새 대륙에서의 정체성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시간 속으로 떠나는 여행, 루넨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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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절 어촌 마을의 표본으로 꼽히는 루넨버그는 화려한 색상의 목조 건축물들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준다. 부두에는 1921년 이곳에서 건조돼 1946년 아이티 연안에서 좌초할 때까지 역사상 가장 빠른 범선으로 불렸던 ‘블루 노즈’를 그대로 재현한 ‘블루 노즈Ⅱ’의 수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배는 캐나다의 우수한 선박 건조 기술의 상징으로 10센트짜리 동전에도 그려져 있다. 젊은 청년들이 옛 방식 그대로 돛대를 수리하고, 닻에 붙은 녹을 털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은 도시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에 탄 느낌이 든다. 어른 20달러, 어린이 10달러(5세 이하 무료)만 내면 이륜마차를 타고 도시 곳곳을 돌아볼 수 있는 35분짜리 투어의 이름도 ‘마차로 시간여행(Trot in Time)’이었다. 핼리팩스에서 루넨버그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포구 마혼 베이는 물결이 잔잔하고 따듯해 카약이나 패들보딩 등 수상 액티비티를 즐기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살기 전인 18세기 초반 이전에는 해적들의 아지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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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빨강 머리 앤’의 실제 무대인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주 그린 게이블의 옛집. / 신동흔 기자
빨강 머리 앤을 찾아서

1864년 캐나다 역사상 첫 의회가 열렸던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의 주도 샬럿타운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그린게이블스 헤리티지 플레이스는 루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강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의 배경이 된 집이다. 주인공 앤을 비롯해 소설에 나오는 마릴라, 매슈의 방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작가의 집은 아니고 먼 친척의 집. 몽고메리는 어린 시절 놀러 다니던 기억을 되살려 작품을 완성했다. 소설 속 ‘연인의 오솔길’ ‘도깨비 숲’ 산책로에는 전 세계에서 여성 독자들이 찾아와 소녀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산책을 즐긴다. 남자 관광객들이 아내나 여자 친구, 딸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도 있다.

길고 좁다란 형태 때문에 세계 최대 16m까지 조수 간만의 차이를 보이는 펀디만에 있는 호프웰 록스(Hopewell Rocks)는 밀물 때는 섬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물이 빠지면 기암괴석이 드러난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 바위까지 갈 수 있지만, 물이 차면 배를 타야 한다. ‘호프 웰’이라는 이름은 혹시 힘든 삶을 살아가던 초기 정착민들이 간절한 바람을 담아 붙인 이름이 아닐까. 간간이 비가 내리던 날 호프웰 록스를 들렀다 캐나다 최대의 바닷가재 산지(産地)인 쉐디악을 향해 떠나면서 객쩍은 상상을 해봤다.

☞애틀랜틱 캐나다: 캐나다 동부 대서양 지역에 위치한 노바스코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뉴브런스윅, 뉴펀들랜드&래브라도 4개 주를 말한다.
☞애틀랜틱 캐나다: 캐나다 동부 대서양 지역에 위치한 노바스코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뉴브런스윅, 뉴펀들랜드&래브라도 4개 주를 말한다.
■ 애틀랜틱캐나다는 가까운 곳이 아니다. 인천공항에서 밴쿠버를 거쳐 비행기를 세 번씩 갈아타기도 한다. 18일부터 에어캐나다(www.aircanada.co.kr)가 인천~토론토 직항을 운항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에어캐나다는 밴쿠버까지 주 7회, 토론토까지 주 7회 등 앞으로 총 14회 직항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인천발 토론토행은 매일 오후 6시 출발한다.

하나투어(1577-1233), 모두투어(1544-5252), 롯데관광(02-2075-3004), 노랑풍선(02-2022-7284), 참좋은여행(02-2188-4070) 등은 샬럿타운, 호프웰락스, 핼리팩스 등 애틀랜틱캐나다 지역과 캐나다 동부 퀘벡시티와 몬트리올, 나이아가라까지 둘러볼 수 있는 열흘짜리 여행 상품을 출시했다.

■ 애틀랜틱캐나다는 북미에서 랍스터가 가장 많이 나는 지역이다. 한번 들러볼 만한 곳으로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샬럿타운에 있는 ‘워터 프린스 코너숍’을 추천한다. 현지인들도 즐겨가는 맛집. 1인분 36캐나다달러 정도면 랍스터 한 마리를 즐길 수 있다.

■ 애틀랜틱캐나다 인구의 90% 이상이 영어를 쓰지만 아카디아인이 많은 뉴브런스윅주은 35% 이상이 프랑스어를 쓴다. 캐나다달러는 1달러와 2달러는 동전. 1달러는 ‘루니(Loonie)’, 2달러는 투니(Toonie)라고 부른다. 물건을 살 때 노바스코샤는 15%,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는 14%, 뉴브런스윅은 13%의 판매세를 부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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