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하늘 위… 美食 천국

1 일식 퓨전 레스토랑 마이도의 ‘라바 세비체’. 라임즙을 냉동건조한 뒤 부숴 옥수수 가루와 섞었다. 

2 스시에 생선 대신 소고기를 얹은 마이도의 ‘스시 어스’. 밥 위에 등심과 메추리알을 얹거나 소 편도선을 바싹 구워 얹었다. 3 페루의 대표적인 서민음식 안티쿠초. 

4 아보카도를 태운 가루로 만든 빵과 당근 요리인 센트럴 식당의 ‘나무 계곡’. 

5 꽃잎인 줄 알고 먹었는데 회가 씹힌다. 아마존 민물생선 돈세야 살은 꽃처럼 붉은색이다.

6 대형 석쇠에 돼지를 통째로 구운 ‘찬초 알 팔로’. 미스투라 축제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사간 요리다.



이반 키시치(IVAN KISIC)와 마이도(MAIDO), 센트럴(CENTRAL)은 국제적인 미식(美食) 도시로 뜨고 있는 리마에서도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3대 레스토랑으로 꼽힌다. 세 곳 모두 리마의 고급 주택가인 미라플로레스에서 미식의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2013년 문을 연 이반 키시치는 여행 정보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가 리마 레스토랑 중 꼭 가봐야 할 곳 1위로 꼽은 신흥 강자. 마이도는 페루의 식재료를 써서 만든 일식을 뜻하는 닛케이(NIKKEI) 레스토랑의 대표 주자로 올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순위 44위에 올랐다.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4위에 오른 센트럴은 리마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의 자존심과도 같은 곳. 이곳에서 식사하려면 적어도 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리마를 떠나 마추픽추로 향했다. 리마가 고급 요리로 식도락가의 입맛을 사로잡은 반면, 마추픽추에선 페루인들이 일상에서 먹는 요리를 접할 수 있었다. 

◇이반 키시치에서의 3시간 점심 식사

"오늘 준비한 점심 코스요리를 다 드시는 데 대략 3시간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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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로 가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역 주변 식당에서 우연히 맛본 빵. 주문을 하니 화덕에서 직접 구워냈다. 씹을수록 고소하다.

퓨전 레스토랑 이반 키시치(IVAN KISIC)의 셰프 헤수스 알바노가 경고인지 축복인지 모를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전식을 먹기 위한 입가심(아무즈 부시). 소스를 끼얹은 안티쿠초(anticucho·소 심장 구이)를 올린 감자칩과, 흰살생선에 문어 타르트를 놓고 그 위에 고수를 곁들인 고구마칩이 식탁에 올랐다. 메뉴판을 아무리 봐도 이런 요리가 없기에 물어보니 "애피타이저 전 단계로 먹는 아브레라 보카('입을 열게 하다'라는 뜻)"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브레라 보카의 주문(呪文)에 걸린 걸까. 이후 요리가 나올 때마다 빈자리가 줄어드는 위는 음식을 거부하고 달콤함에 홀린 입은 벌어지는 난감한 사태가 반복됐다.

전채는 4개가 나왔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마존 세비체'. 세비체는 생선이나 오징어·새우 등을 라임이나 레몬즙에 재워 잘게 다진 채소와 함께 먹는 찬 음식. 그런데 아마존 세비체는 따뜻했다. 몸길이가 최대 3미터에 이른다는 아마존 민물고기 파이체(paiche)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살을 중국식 프라이팬인 웍(wok)에 넣어 불에 그을린 뒤 바카오 나뭇잎으로 싸서 냈다. 곁들여 나온 말린 바나나를 손으로 비벼서 가루를 내 얹어 먹으니 바나나 가루의 바삭함과 파이체의 부드러운 생선살이 대조되며 씹는 재미를 선사했다.

메인코스는 더욱 진기한 요리의 연속이었다. "저 예쁜 걸 어떻게 먹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오는 귀여운 기니피그가 이곳에선 쿠이(cuy)라는 요리로 불린다. 쿠이는 세 가지 형태로 식탁에 올랐다. 내장을 갈아 무스처럼 반죽해 낸 파테(pate)는 한없이 부드럽다. 얇게 포를 떠서 구운 껍질은 애저구이보다 더 바삭해 입에 넣자마자 감자칩처럼 혀 위에서 녹아 없어졌다. 고기 육질을 씹고 싶은 욕망은 알바노 셰프가 개발한 팥향 나는 양념장에 재운 넓적다리 졸임이 해결해줬다. 쫄깃하고 짭짤해 자꾸 손이 갔다.

마지막으로 나온 '옥수수와 겨자 사이'는 이 집에만 있는 메뉴다. 돼지고기 삼겹살을 데리야키 소스에 재웠다가 익히고 옥수수와 생겨자를 곁들여 내놓는데, 육질이 하도 부드러워 동파육을 떠올리게 했다. 강한 중식의 영향이 엿보였다. 한 덩이 우물거리고 나니 머릿속에서 "고기는 인제 그만!"이란 비명이 터져나올 만큼 포만감이 덮쳤다.

◇마이도, 페루의 식재료로 만든 일식(日食)의 새 얼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2015'라는 문구가 가게 문패와 나란히 붙은 이 식당의 셰프 미쓰하라 쓰무라는 퓨전 요리의 강자다. 미국과 일본에서 유학하며 요리를 배운 그는 "아마존에서 나오는 식재료를 바탕으로 하되 일식 조리법으로 요리한다"고 설명했다. 페루 요리는 무난하기보다 자극적이어서 짜거나 시거나 맵다. 하지만 마이도의 요리는 일식에 익숙한 우리 입맛에 친숙하다. 여느 식당들처럼 이 식당도 식전주인 피스코사워로 식사를 시작한다. 피스코사워는 원래 신맛을 내는 술이지만 이곳은 오렌지보다 100배나 시다는 카무카무를 쓴다. 한모금 마시니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셨고 음식 외의 잡생각이 사라졌다. 자 이제 먹어볼까.

이날 셰프가 권한 점심 코스는 아마존 닛케이 체험(AMAZON NIKKEI EXPERIENCE). 1890년대 오키나와 주민이 이주하며 비교적 일찍 페루에 뿌리를 내린 일본인들이 페루 음식에 일본풍을 가미하면서 페루의 닛케이 음식이 시작됐다. 그 전통을 살린 16개 코스마다 '반주 소믈리에'가 등장해 샴페인과 화이트와인·레드와인·피스코샤워·맥주를 번갈아 냈다.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선정은 '창의성'에 방점을 둔다. 이 식당이 내놓은 '라바 세비체'는 재료를 해체해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쓰무라 셰프의 요리 세계를 웅변했다. 차갑게 얼린 돌판 위에 세비체 회가 나오는데 국물은 없고 노란 가루에 묻혀 있다. 알고 보니 옥수수 가루로 만든 옐로스파이시 소스에 신맛을 내기 위해 넣는 레몬을 질소로 차갑게 얼려 얼음가루로 만들었다. 노란 가루가 식탁에 떨어져 녹는 것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이 세비체 요리가 국물을 만들며 마지막으로 완성되는 곳은 접시 위가 아니라 사람의 입속이구나."

퓨전 요리의 대미는 고기 스시가 장식했다. 손으로 꼭 쥐어 만 밥 위에 얹은 것은 생선회가 아닌 고기. 두 개가 나왔는데 각기 모양이 달랐다. 하나는 등심 위에 메추리알을 얹어 살짝 구워냈다. 나머지 하나는 안심인가 싶어 "밥 위에 얹은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바싹 구운 소의 편도선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센트럴에서 페루의 고도(高度)를 맛보다

셰프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가 한국의 미식 탐험가에게 선보인 요리의 개념은 '해발고도'였다. 해저 20미터 바다와 해발 3900미터 안데스 고원 사이에서 나오는 페루의 식재료로 만든 요리다. 덕분에 미라플로레스의 식당에 앉아 프랑스와 스페인을 합한 광활한 자연을 탐험했다.

시작은 해저 5미터에서 나온 요리 '스파이더스 온 어 록(SPIDERS ON A ROCK·바위 위의 거미들)'. 게와 바다달팽이, 모자반, 삿갓조개 애피타이저다. 도자기 파편 위에 아보카도와 당근, 캐럽 나무에서 채취한 허브를 배열한 '밸리 오브 어 트리'는 3400미터 고원도시 쿠스코에서 채취한 허브에서 낸 즙과 함께 차려냈다. 이날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온 식재료는 해저 20미터에 사는 맛조개를 오이와 라임에 버무린 '마린 소일(바다의 흙)'. 서빙돼 나온 접시의 오이와 크림을 살살 걷어내면 바다에 숨은 것처럼 조개요리가 나타난다. 라임에 절여 내온 맛조개를 씹을 때마다 배어 나오는 상큼하고 달콤한 라임향이 무한한 행복감을 선사한다. 최고 고도인 3900미터에서 채취한 허브와 옥수수, 코카로 만든 빵 '안데스 고원'은 첫맛은 밋밋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배가됐다.

'저고도 안데스 산맥'이란 이름의 요리는 우리나라에 머리가 좋아지는 곡물로 알려진 퀴노아에 송아지 갈빗살을 곁들였다. 안데스 산맥에서 키운 송아지 심장을 바짝 건조한 뒤 분말로 만들어 갈빗살 요리에 얹어 고기의 풍취를 한껏 끌어올렸다. 셰프 마르티네스는 "음식 이름이 정해지지 않아 아직은 고도와 채취한 지역 등으로 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차 타고 떠나는 마추픽추 미식 여행

리마를 떠난 비행기가 해발 3400미터 고원도시 쿠스코에 착륙하자 곧바로 고산증세가 찾아왔다. 가슴을 쥐어짜는 느낌에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 난 것처럼 심장이 두방망이질했다. 호텔에서 밤새도록 고산병 증세와 씨름하다가 이튿날 서둘러 미니밴을 타고 마추픽추행 기차가 출발하는 오얀타이탐보로 향했다. 마추픽추의 해발고도는 잉카제국의 도시 쿠스코보다 1000미터나 낮다는 설명을 가이드에게 듣고 나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오얀타이탐보에서 마추픽추가 있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 가는 철길은 환상적이다. 빌카노타 강을 따라 나란히 달리는 기차는 때로 빽빽한 숲이 터널처럼 우거진 계곡 사이를 헤치고 나가거나 문득 너른 평야와 한가로이 길을 걷는 사람들을 지나친다. 1시간 30분의 여행 시간에 입도 즐겁다. 일등석에 앉으니 피스코사워와 와인 케이크 송어요리가 잇달아 나왔다. 식사의 끝은 달콤한 초콜릿아이스크림과 셔벗으로 장식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하니 철길을 따라 기다랗게 식당가가 늘어서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찾아 들어가니 화덕에서 불을 피우고 있기에 빵을 구워달라고 했다. 20여분 만에 나온 빵은 피자를 닮았지만 토핑이 없었다. 그러나 한입 베어 물었을 때의 그 고소함이란!

마추픽추 아래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나와 동네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출피(CHULPI)라는 간판을 내건 허름해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여기 사람들이 먹는 요리를 먹고 싶다"고 부탁했더니 염소 고기 수프와 옥수수로 만든 샐러드, 퀴노아로 만든 볶음밥, 동그랗게 잘라 모양을 낸 닭고기 구이, 페루식 불고기인 로모 살타도가 나왔다. 화려하지 않지만 쌀밥처럼 부담없는 요리들이다. 며칠간 괴롭던 고산에도 익숙해졌는지 식욕이 돌아왔다. 식당 지배인 훌리오 가스트로씨는 "철길을 따라 식당 150여곳이 영업을 한다"며 "호텔이 아닌 이런 곳이어야 보통의 페루 사람들이 먹는 요리를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프 등 일부 요리에는 고수가 들어 있기 때문에 고수를 싫어한다면 빼달라고 미리 말해야 한다. 

가는 법

한국에서 페루까지 직항편은 없다. 로스앤젤레스나 댈러스, 도쿄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많이 이용한다. 로스앤젤레스와 댈러스에서 아르헨티나항공, 란칠레항공, 바리그브라질항공 등을 이용해 수도 리마에 도착할 수 있다. 리마에서 쿠스코는 페루 국내선을 이용한다. 비행시간은 약 한 시간.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는 미니밴과 기차를 타고 간다. 먼저 미니밴으로 오얀타이탐보까지 간 뒤 마추픽추가 있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는 잉카레일을 이용한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30분. 관광에 최적화된 잉카레일 기차는 위로도 창을 내 개방감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철길 옆으로 빌카노타 강과 계곡을 따라 비경이라 할 수밖에 없는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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