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 '꽃보다 청춘-라오스' 편 첫 회의 반향은 실로 뜨거웠다. 여행 좀 할 줄 아는 세심한 남자 유연석, 해외여행이라고는 처음 가는 해맑은 청년 손호준 그리고 두 형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막내둥이 바로까지. 세 청년들의 흐뭇한 조합이 시종일관 '엄마 미소'를 짓게 했다. 그리고 청춘들의 열정을 맘껏 불태울 수 있는 배낭여행객의 천국, 라오스가 잠자고 있던 심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밤늦은 시간, 수도 비엔티엔에 도착해 여행자 복장으로 변신한 청춘들이 젊은 혈기를 불사른 방비엥.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그들은 라오스 여행객이라면 꼭 들르는 루앙프라방을 택했다. 방비엥의 추억을 오롯이 간직하고 싶다는 바로의 바람이 이뤄졌다면 그냥 패스할 뻔한 보석 같은 곳, 루앙프라방.
모처럼 루앙프라방의 사진 파일을 열었다. 여행 초보 손호준이 유일하게 가고 싶은 곳으로 꼽은 '폭포'며, 바로가 엄지를 추켜세웠던 맛있는 먹을거리 가득한 야시장까지. '꽃청춘'의 끝을 아쉬워하는 독자들을 위해 루앙프라방의 그림 같은 바로 그 곳을 콕콕 집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1 루앙프라방 국립왕궁박물관

라오스 국립관광청에서 펴낸 관광책자에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은 'The Sleeping Beauty'라고 소개돼 있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보석 같은 곳인 루앙프라방은 '큰 황금불상'이라는 의미로, 1904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시사방봉 왕을 위해 건설된 왕궁이었던 국립왕궁박물관에 그 큰 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어느 가이드북이라도 박물관에 대한 설명은 빼놓지 않는 법. 하루만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우리의 유연석이 꼼꼼하게 둘러봤을 곳이었을 텐데.

2 메콩강 따라 찾아가는 팍우 동굴


시내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25km 남짓 상류로 거슬러 가면 팍우(Pak Ou) 동굴이 나온다. 신년이면 주민들이 불상을 들고 와 제를 지냈던 곳이다. 무려 4천여 개가 넘는 불상이 조용히 메콩강을 굽어보고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태국 여행을 다녀왔던 유연석에게는 더욱 특별했을 곳.

3 도자기 굽는 마을, 반상하이


반상하이는 도자기를 굽는 마을이라는 뜻인데, 현재는 술 빚는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술병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가까이 다가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뱀술을 좋아하는 한국 아저씨들이라면 눈독을 들일 법하지만, 우리의 청춘 3인방이 이곳에 들렀다면 그저 깔깔깔 웃음을 터트리며 사진만 찍고 돌아설 듯하다. 이 마을에서는 부지런히 베틀을 놀리며 옷감을 짜는 아낙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한 올 한 올 짰을 정성에 비하면 정말 미안할 정도의 가격에 전통 의상이나 스카프 종류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4 상의 탈의는 기본! 쾅시폭포

욕심 없는 손호준이 유일하게 욕심낸 곳! 비행시간에 아랑곳 하지 않는 듯 여유로운 다이빙을 즐기는 청년들 덕분에 성격 급한 시청자들이 내내 마음을 졸이게 했던 곳! 건기에도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천연 석회암지형 폭포인 쾅시(Kuang-si) 폭포도 빼놓지 말아야 할 관광지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듯 이어지는 거대한 물길을 따라 울창한 우림을 걷는 기분이 무척이나 청명하다. 건기에는 옥빛 물색을 유지하는 폭포 하류에서는 다이빙을 즐기는 청년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5 루앙프라방을 한 눈에 보는 푸시 언덕

해질 무렵 루앙프라방의 모든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푸시 언덕(Mount Phousi)이다. '꽃할배'들이라면 '헉' 할 만하지만, 우리 청춘들에게는 3백28개의 계단은 식은 죽 먹기였을 터. 무엇보다 그만 한 공을 들여도 좋을 만큼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끝내준다. 메콩강의 지류인 남칸강 너머 그림 같은 도시 전경이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메콩강의 일몰이 장관을 이룬다. 셀카봉을 들고 360도를 도는 촬영을 하기에 이만 한 포인트가 없을 듯. 청춘들은 오르지 못한 이 언덕은 루앙프라방 전경 샷을 담아낸 헬리캠이 담아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6 라오스의 밤 문화, 몽족 야시장


라오스의 49개 부족(2011년 공식 등록된 부족 수) 중 소수민족에 속하는 몽족이 운영하는 시장은 그림, 스카프, 전등갓, 지갑, 의류 등 현지색이 짙은 공예품을 주로 판매한다. 호객행위를 하는 법도 없고, 흥정을 하자고 들면 '아유, 왜 이러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못이기는 척 받아준다. 지금도 요긴하게 잘 쓰고 있는 라오스 승려가 그려진 종이 전등갓이 고작 2달러였다.
야시장 구경이 지칠 무렵, 청년들의 왕성한 먹성을 채워주었던 먹자골목 방문은 필수! 각종 육류부터 생선을 구워내는 바비큐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한쪽에는 볶은 채소, 면 요리, 샐러드 등이 한 상 차려져 있다. 1만 낍(1달러=8천 낍 수준)이면 한 접시 가득 먹고 싶은 양 만큼 골라서 담아갈 수 있다. 부지런히 낮 시간을 보냈을 여행객들은 좁은 골목에 놓인 테이블에 엉덩이 바짝 붙이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맥주잔을 기울이기에 여념이 없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마셨던 최고의 맥주인 '라오 맥주', 과연 청춘들은 몇 병씩이나 마시고 돌아왔을까?

7 루앙프라방의 백미, 탁발 행렬


예고편에서부터 엄청나게 등장했던 바로 그 탁발. 이 지역의 상징이자 현지인들의 삶을 피부로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광경이다.
라오스 국민의 90% 이상이 불교를 믿는다. 탁발은 출가 수행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 중 하나다. 새벽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시엥통 사원 경내에 발우(바리때)를 손에 든 승려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 승려들의 행렬이 사원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서면 이미 늘어서서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이 발우 속에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담는다. 무릎을 꿇은 채 공양하는 소녀, 정성껏 찹쌀밥을 손으로 뭉쳐서 건네는 중년 여성, 대열에 합류한 푸른 눈의 관광객들까지, 누구 하나 진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세 청년의 진지한 공양 체험 장면을 기대해본다. 마추픽추에서 쏟아진 40대 청춘들의 뜨거운 눈물 못지않은, 이 세 청년들의 짐짓 진심어린 감흥이 브라운관 너머로도 진하게 전해왔다.

8 생생한 삶의 흔적, 아침 시장

탁발 체험을 마친 이들이 자연스럽게 발길을 옮기는 곳이 바로 이곳 아침 시장이다. 막 담아내는 듯해도 국물 맛이 그만인 쌀국수 한 그릇이면 새벽같이 숙소에서 나와서 탁발 행렬을 따라 걸어야 했던 고된 일정을 이겨낼 수 있었을 텐데.
매일 오전 6시부터 열리는 아침 장터에는 형형색색 채소와 과일, 메콩강에서 잡아 올린 생선부터 사원에 바칠 꽃, 전통 의상, 생활용품까지 없는 것이 없다. 때로 지네, 자라 등 상상을 초월하는 먹을거리 판매상을 만나기도 하지만, 찹쌀도넛 같은 것을 튀기는 할머니부터 쌀국수를 말아내는 아주머니까지, 우리의 재래시장과 참 많이도 닮았다.
평소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만, 급작스럽게 떠나게 된 여행이라 카메라를 챙기지 못한 유연석이 못내 아쉬워했을 장소가 바로 이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루앙프라방은…

1975년 라오스 인민 민주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 성립되기 전까지 라오스 왕국의 수도였으며, 지금은 제1의 관광도시로 알려져 있다. 연간 4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유럽풍의 카페 문화도 잘 발달돼 있다. 관광도시답게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도 잘 구비돼 있는 편. 우기가 끝나는 10월부터 4월까지 둘러보기 좋은 날씨가 이어진다.
루앙프라방은 마냥 정적인 도시는 아니다. 메콩강 크루즈와 팍우 동굴, 반상하이 마을을 돌아보는 투어 패키지 외에 정글 트래킹, 래프팅, 코끼리 타기 등의 체험을 엮은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현지 여행사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2011년 현재 교민은 약 30명 정도. 한국영사관 대외협력원을 겸임하는 빅트리카페·갤러리(www.bigtreecafe.com) 대표 손미자씨를 찾으면 루앙프라방에 대한 생생한 정보는 물론 맛깔스런 한식을 맛볼 수 있다.
인접 국가인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과 연계한 여행 계획을 짜는 이들도 많다. 라오스의 시간은 우리보다 2시간이 늦으며, 8천 낍이 1달러 정도에 통용된다. 푸시 언덕 등 주요 관광지 입장료는 2만 낍 내외. 디너 크루즈는 식사와 공연 관람비 포함 35~40달러 남짓이다.


반세기 세월 동안 프랑스 식민지로
건축뿐 아니라 음식·문화까지 영향
루앙프라방에만 사원 30개가 넘어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출입할 수 없어

가을이다. 작열했던 열기도 수그러드는 시기. 그래서 여행 좀 한다는 사람들은 아껴둔 휴가를 이때 꺼내 든다. 동네 거닐듯 느긋하게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노을지는 강변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생각에 잠기는 여행이 가을엔 제격이다. 유네스코가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라오스의 북부 도시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이 바로 그런 곳이다.

루앙프라방 거리에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이 공존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라오스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나라는 아니다. 1975년 공산화한 뒤 우리와 외교관계가 끊어졌다가 20년 만에 복원했다. 한반도 크기의 면적(23만6800㎢)에 인구는 600만에 불과하다. 그만큼 조용하고 자연환경을 잘 간직하고 있다.

루앙프라방: 전통과 유럽문화가 만난 세계문화유산

비행기에서 내리면 허름한 단층 건물이 눈앞에 보인다. 시골 간이역 같은 이 건물이 바로 루앙프라방 공항 청사다. 한쪽 담벼락에는 코흘리개 아이들이 달라붙어 먼발치의 비행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공항에 들어서자 제복을 입은 경찰이 까만 머리를 보고 대뜸 "꼬리아 꼬리아"라고 외친다. '비행기에서 내린 유일한 한국인을 어떻게 알아본 것인가' 궁금해하는데, 경찰이 가리키는 손끝에 '비자 면제 창구'가 있다. 라오스는 3년 전부터 한국 국민에게 단기비자를 면제해주고 있다.

공항 한쪽 벽면엔 '몸을 가려달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상의를 벗은 남성과 비키니 톱을 입은 여성 그림 위에 붉은색 X표가 그려져 있다. 국민의 95%가 불교를 믿는 이 나라는 여성이 승려의 몸은 물론 옷을 만지는 것조차 금기시하고 있다.

루앙프라방 시내는 단순하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시사방봉(Sisavangvong) 거리에 모든 숙소와 음식점, 여행 안내소가 오밀조밀 몰려 있다. 아침에는 이 거리에서 승려들의 '탁밧(Tak Bat·탁발)' 행렬이 이어지고, 저녁엔 차의 통행을 막은 채 화려한 야시장이 벌어진다.

매일 아침 승려들이 공양을 받는 ‘탁밧’
마을은 그다지 크지 않다. 걸어 다녀도 좋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도 좋다. 거리엔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물과 금빛의 고대 사원이 혼재(混在)한다. 유네스코는 1995년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전통 건축양식과 19~20세기 식민지 시절 유럽의 건축문화가 조화롭게 섞여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Vientiane) 한복판에는 마치 파리의 그것과 같은 큼지막한 개선문이 서 있다. 개선문을 마주 보고 쭉 뻗은 도로 역시 샹젤리제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50년 넘는 프랑스 식민기(1893~1949)는 건축뿐 아니라 이들의 삶에도 깊숙한 흔적을 남겼다. 길가엔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인 바게트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시내 곳곳에 유난히 베이커리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일종의 향수(鄕愁)일까. 2009년 라오스를 찾은 유럽 관광객(6만1000명) 중 절반은 프랑스인이었다.

승려들의 탁밧에서 화려한 야시장까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매일 아침 시사방봉 거리에서 이뤄지는 탁밧이다. 오전 6시가 되면 황색 승복을 걸친 승려들이 바구니를 들고 맨발로 사원을 나선다. 거리엔 음식을 마련해온 주민들이 이들을 기다린다. 수백명이 한 줄로 서서 공양을 받는 모습은 엄숙하다. 관광객들도 길가에서 파는 찹쌀밥이나 바나나 등을 사서 직접 공양할 수 있다. 승려들은 길가에서 구걸하는 어린이에게 공양받은 음식을 다시 보시(布施)하기도 한다. 탁밧을 마친 승려들은 각자 사원으로 돌아가 불공을 드리고 음식을 나눠 먹는다.

루앙프라방에만 30개가 넘는 사원이 있다. 지붕이 하늘을 찌를 듯 솟은 화려한 사원은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못하게 만든다. 사원 내부의 금빛 장식도 황홀하다. 사원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한다. 짧은 반바지나 민소매 차림으로는 출입할 수 없다. 입구에서 빌려주는 천을 걸쳐 몸을 가려야만 들어갈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왓 씨엥 통(Wat Xieng Thong). 라오스 최초의 통일왕국 란쌍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의 전통 건축양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힌다. 빡우동굴과 꽝시폭포에서는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다.

해질녘이 되면 시사방봉 거리는 다시 분주해진다. 줄지은 백열등 불빛 아래 벌어진 수백여개 좌판의 행렬이 화려하다. 한땀 한땀 수공예로 만든 전통 문양의 지갑, 스카프, 인형, 액세서리가 관광객을 바닥에 쪼그려앉게 만든다. 시내 중심의 푸시산에 오르거나 메콩강변을 거니는 것도 좋다. 메콩강변에서 붉게 물든 강물을 보며 맥주 한 잔으로 마른 목을 적시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라오스의 대표 맥주 '비어라오'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기 맥주다.

여·행·수·첩

◆환율: 라오스의 통화는 킵(Kip). 8000킵이 우리 돈1000원 정도다. 한국에선 직접 환전할 수 없고, 미국 달러나 태국 바트를 준비해 현지에서 환전해야 한다.

◆교통: 인천-루앙프라방 직항편은 없다. 태국 방콕이나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해야 한다.


■ 스카이스캐너 베스트 여행지 3…나미비아·아이슬란드·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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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비에에서 즐길 수 있는 사파리 투어.

나미비아, 아이슬란드, 라오스. '꽃보다 청춘'을 보고 설렌 청춘들이 검색 창을 두드리고 있다. 남아프리카 북서쪽에 위치한 나라라고 설명해야 했던 나미비아. 이제는 대세 배낭 여행지다. '꽃청춘' 방송 이후 스카이스캐너 항공예약 서비스를 통한 항공권 검색수치가 9배 이상 증가했다. 아이슬란드 역시 7배 이상 검색량이 늘었다. 

뜨거운 관심을 받는 '꽃청춘' 촬영지 세 곳을 소개한다. 먼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나미비아 사막. 다음으로 영롱한 오로라의 나라 아이슬란드. 마지막으로 도시가 하나의 커다란 테마파크인 라오스다. 혈기 넘기는 청춘들이 배낭 하나 들쳐 메고 떠날 만하다. 여행정보업체 스카이스캐너 자료를 참고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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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는 사막과 사파리가 매력적인 나미비아 

나미비아는 아프리카 남서쪽에 있다. 한반도보다 땅덩이가 4배 더 넓지만 인구는 겨우 200만명에 불과하다. 나미비아는 올해 2월 19일 '꽃청춘 아프리카편'이 방송을 타기 전까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북서쪽에 위치한 생소한 나라였다. 이젠 위상이 달라졌다. 대세 배낭여행지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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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비아의 대표 여행상품은 사파리 투어다. 그중에 에토샤 국립공원이 압권이다. 공원 규모만 해도 스위스 국토의 2배에 달한다. 세계 최대 아프리카 야생 동물 사파리 중 하나다. 에토샤 국립공원에서는 사람보다 야생 동물과 마주치는 일이 더 흔하다. '꽃청춘'에 출연한 안재홍이 "한국에서 길냥이를 보듯이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원 없이 야생동물을 봤다"며 너스레를 떨 정도였다. 흰빛의 커다란 물웅덩이를 둘러싸고 있는 약 2만3000㎢의 동물보호구역에서는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대부분의 포유류와 파충류, 조류 등을 손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다. 

나미비아에서 사막도 빼놓을 수 없다. 나미비아는 국토의 80% 이상이 사막이다. 사막의 대표 명소는 '나미브 사막'이다. 나미브의 본래 의미는 '텅 비어 있다'라는 뜻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 '사진작가가 가장 찾고 싶어하는 사막' 등 다양한 애칭이 붙었다. 나미브 사막의 소수스플라이 듄45 정상에 오르면 크고 작은 모래언덕으로 이뤄진 광활한 사막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모래언덕에서 바라보는 해맞이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 여행 Tip = 아쉽게도 아직 인천에서 나미비아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홍콩과 요하네스버그, 아부다비 등에서 경유해야 하며 프랑크푸르트에서 직항편이 있다. 인천공항에서 나미비아까지는 20시간 넘게 걸린다. 

 오로라에 홀리고 대자연을 느낄 수 있는 아이슬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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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오로라

아이슬란드 역시 지난해 12월 '꽃청춘 아이슬란드편' 방송을 탄 이후 대세로 떠올랐다. 드넓은 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오로라와 대규모 빙하와 화산, 온천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 온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실제로 아이슬란드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파도행성, '스타워즈'의 얼음행성 등 우주를 소재로 다룬 SF영화 촬영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아이슬란드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오로라다. 오로라는 북유럽, 캐나다 북부 부근에서만 볼 수 있는 신비한 자연현상이다. 희미한 초록색으로 시작해 점차 푸른 비단을 펼쳐놓은 것 같은 빛의 향연이다. 환상적인 오로라를 사진으로 담고 싶다면 준전문가급 이상의 카메라를 챙겨가야 한다. 11월부터 2월까지가 밤이 길어 오로라를 관찰하기 좋은 시기다. 

▷▷ 여행 Tip =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꽃보다 청춘'처럼 렌터카를 빌리거나 투어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다. 렌터카를 이용하면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도는 1번 국도 '링 로드'를 따라 여행할 때 편리하다. 운전면허가 없거나 서툰 경우에는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단, 폭설로 도로가 통제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인터넷을 통해 도로 상황을 수시로 파악해야 한다. 

 카약·짚라인 등 액티비티를 원한다면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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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온천풀 블루라군

짜릿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라오스가 정답이다. 천혜의 자연 속에서 스릴 넘치는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매혹적인 석회암 카르스트 지대와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쏭강, 곳곳에 위치한 동굴들이 관광객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꽃청춘 삼인방이 찾은 방비엥은 여행자를 위한 숙소와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쏭강을 따라 내려오는 카약과 튜빙, 그리고 숲 속 공중에서 줄에 매달린 채 내려오는 짚라인 등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꽃보다 청춘' 라오스 편에서는 온천풀 블루라군에 도착한 삼인방이 "블루라군에 도착하니 힘들었던 기억이 모두 사라졌다. 마치 요정이 나올 것 같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 여행 Tip = 방비엥에 가는 방법은 차량뿐이다. '꽃보다 청춘'팀은 버스를 이용했는데, 버스 티켓은 여행자 거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판매소에서 구입하면 된다. 미니밴을 이용할 수도 있다. 미니밴은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여행자 거리에 있는 여행사 등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비포장도로가 많아 멀미에 취약한 사람은 멀미약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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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라오스의 북쪽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라오스 중부의 타들로라는 곳을 여행할 때 우연히 만난 이태리 여행객 때문이다. 여행객들이 통상적으로 묻듯이 그에게 무엇 때문에 라오스에 왔고, 어디를 여행할꺼냐는 질문을 하자, 그는 대뜸, 말대신 포스트 카드 한장을 꺼내보였다. 그 포스트카드에는 여러 다른 소수부족들이 그들만의 전통 복장을 입은채 웃고 있는 조그만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군데 군데 사진이 오려져 있는 것도 보였다. 그는 나에게, 자기는 이 포스트카드의 주인공 절반을 이미 찾았다며, 찾은 주인공들에게는 그 포스트카드의 사진을 오려서 기념으로 주었다고 했다. 사진속의 주인공들을 만났다니 신기함에 어디서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냐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가르쳐줄수도 없고, 가르쳐줘서도 안된다고. 그건 나의 몫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이태리에서부터 이 라오스의 민족들에 대해 공부하고, 여기와서 이사람 저사람 사진 보여주면서 라오스말,사투리를 섞어가면서 수소문하고, 오토바이 택시를 며칠 혼자서 대절해가면서, 그렇게 찾은 사람들인데, 그런 노력과 모험도 없이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약간 샌님처럼 굴긴했지만, 그의 말에 백번 공감하며, 라오스 북부로 올라가면서 나 혼자서 한번 찾아보자고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베트남에서부터 그때까지 계속해서 오토바이로 여행을 하고 있었기에, 뭐 길이든 아니든 내 맘대로 수정하면 되니 어려울 건 없을 것 같았다.

그 뒤 약 2주후, 나는 어느새 라오스의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조그만 시장이 있는 교차로, 이곳에서부터 생필품을 사러나온 소수민족이 보이기 시작했다. ⓒ 이형수

라오스 북부의 어느 지점을 지나치니, 말 그대로 전통복장을 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였다. (그들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 앞으로 부족명칭과 구체적인 지명은 언급하지 않겠다.)

생필품을 팔려는 사람부터 해서, 돌로 때려죽인 큰 도마뱀을 팔려고 나온 사람, 사향고향이를 팔려고 나온 사람들도 길가에서 하나 둘 만났다.

길에서 만난 소수민족 여인들, 내게 무언가를 팔려고 했는데.필요가 없어서 정중히 사양했던 기억이 난다. ⓒ 이형수
머리를 맞아 죽은 왕도마뱀, 숲 속에서 잡은듯. ⓒ 이형수
길가에서 오토바이나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산짐승을 파는 여인, 처음에는 무슨 동물인 줄 몰랐는데, 사향고양이인 듯하다. 사지도 않으면서 사진을 찍는 나를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 이형수
마을도 여기저기 많이도 지나쳤었다. 한 마을이라도 내려서, 사람들과 얘기라도 하고 싶었으나, 라오스 말이라곤 인사말 몇 개와 숫자세는 것 밖에 할줄 몰랐던 낯선 이방인인 내가 그들의 소소한 평화를 깨뜨리며 친근하게 다가서긴 쉽지 않았다.

스치며 지나간 마을 중에는 이쁜 마을도 많았다. ⓒ 이형수
산골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특이한 맷돌 ⓒ 이형수
(좌) 어떤 마을은 마을 축제가 한창이었고, 마을축제 때문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인들도 볼수 있었다. (우) 며칠을 달린 산골에서 단 하나 있던 긴급 진료소, Hmong족 출신 의사인 Yaher가 혼자서 진료를 하고 있었다. Yaher도 정식 의사로서 병원에서 근무하기전 봉사의 일환으로 이곳에서 순환 근무를 하는듯했다. Yaher와는 하루만에 꽤 친해졌고, (사실 몇일간 유일하게 영어가 되는 사람을 첨으로 만난것이었다),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있다. 현재는 루앙프라방의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사진은 yaher가 자신의 Hmong족 전통의상을 입어서 소개해주는 모습. ⓒ 이형수

그렇게 조그만 교감을 나눌수 있는 마을을 찾아다니는 통에 하루는, 날이 금새 저물었고, 결국 산을 넘지 못한채, 이 산중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근처의 한 소수민족 마을의 평화는 오토바이를 타고 짐을 한가득 싫은 이상한 이방인에 의해 깨지게 되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 쯤에는 산중 마을이라 전기도 없었고, 말 그대로  암흑 그 자체였다.

해가 지기전에 산을 넘지 못할거라는 것은 오토바이를 타던 내내 예감했던 일이지만, 이 마을에서 나를 재워줄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마을은 20가구도 채 되어 보이지 않았다. 산길을 5~6시간 운전한 탓에,몸도 지치고, 어쩔 도리가 없어 그마을의 유일한 가게에서 과자 한봉지를 사서 뜯어먹고 앉아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말도 없이 과자만 뜯어먹는 내가 누군가 싶어 모여들었다. 상점 안에 조그만 촛불 빛에 갖고 있던 라오스 사전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내가 누군가 부터해서, 왜 여기 이르렀고, 잠잘 곳이 필요하다는 말을 천천히 했다. 

문제는 여기 사람들 중 라오스말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계하는 이들도 몇 있었다. 보다 쉬운 대화로 손짓 발짓하며 최대한 미소를 지어보이니, 몇몇 알아듣기도 하고, 호응도 해준다. 그때 밖에 트럭이 서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수박을 한 가득 실은 트럭이 와있다. 조그만 마을들을 돌며 산지 수박을 파는 듯한데, 큰 수박 하나가 채 우리돈으로 500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돈이 없는 소수민족이라, 이것저것 재기만 하고, 도무지 사질 않는다.

내가 대뜸 수박 두어개를 사서 들고와서, 사람들 앞에서 깨어 나누어주니 이제는 분위기가 꽤나 반전이 되었다. 결국 수박을 먹으며 얘기가 통하여, 내가 앉아있던 상점의 작은 공간에 잘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잘자리를 펴고 잠깐 있으니, 이 잡화상 주인의 형 되는 사람이, 찾아와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손짓과 행동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데, 자신의 와이프가 무슨일이 있다고 하는듯하다. 여러 단어를 찾아 물어보니, “내 와이프가 아픈데, 와서 봐줄수 있냐”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의사가 아니라고 얘기해도, 막무가내로 좀 봐달라고 한다. 이 산길로 약 한나절 이상을 오토바이로 되돌아 가야 몽족 의사 yaher 가 하고 있는 조그만 간이 진료소라도 갈수 있는걸 생각하면, 이 사람들이 약을 받거나, 제대로 된 병원을 간다는 건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쩔수 없이 이 사내의 집으로 따라 들어가니, 전통 의상을 입은 그의 아내가 부엌에서 갓난애의 젖을 물리고 있는데, 언뜻 보기에도 사지를 덜덜 떨고, 이 쌀쌀한 저녁에 땀을 비오듯 흘린다.

상태가 예사롭지 않은데, 병원을 가봐야 된다고 얘기는 하지만, 이 사람들의 경제력이나, 가까운 병원이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도 하루가 넘게 걸리는 걸 감안하면 고개는 끄덕이지만,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안다. 

할 수 없이 내 가방에 들어있던 해열제와 종합 감기약 몇 알을 꺼내주며, 복용법을 설명했다.

말라리아 같은 큰 병이 아니길 기도하며, 이 사람들이 병원에 갈수 없는 현실을 속으로 개탄했다. 사내는 가게에서 자지 말고, 자신의 집에서 자라고 권유했고, 순식간에 아들의 방을 비워주곤, 잠자리를 펴줫다.

세상에는 많은 가난한 이들이 있지만, 이들의 삶 또한 거칠고 험했다. 그들의 잠자리라고 해봐야, 시멘트 바닥에 천 하나를 댄 것이고, 돈벌이 할 것은 거의 없고,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거나, 맹꽁이를 잡거나, 산짐승을 팔거나 하는 부수익으로 조금의 돈을 가지는 식이다.

먹을거리도, 매일 산속에 들어가 죽순이나 먹을만한 것을 손수 캐와야 하루끼니를 이어가는 식이다. 그날 저녁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상을 내왔는데, 손님이라고 대접받은 음식은 밥 한공기, 물 그리고 죽순과 소금만 넣은 국이 전부였다. 

그들이 낮에 산으로 일하러 갈 때 점심 바구니에 맨밥에 소금뿐이었던걸 보면, 그나마 나는 손님으로 대접을 후하게 받은 것이었다.

필시 사진의 저녀석(흑돼지)이었지 않을까? ⓒ 이형수
이 마을에 먹을게 없다는 걸 다시 볼수 있는 에피소드로, 그 다음날 아침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해 사람들이 안보이는 숲으로 들어가, 용변을 급히 보는데, 저쪽 옆에서 갑자기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사람인가 싶어 쳐다보니, 흑돼지 한마리가,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왜 저 돼지가 재수없게 쳐다보지 하면서, 돌을 던지는데, 돌을 정통으로 머리에 맞아도 물러나기는커녕, 슬슬 더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용변이고 뭐고, 놀라서, 급히 처리하고 걸어 나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리로 가서 맛있게, 그것을 먹어치웟다.

(좌) 손으로 실을 뽑는 여인의 모습 (우) 우는 아기를 달래는 엄마
전통 장을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제까지 이런 사람들을 볼수 있을까? 사진 속에 남자들이 없는 이유는 남자들은 날이 밝자마자, 숲으로 일하러 갔기 때문이다. ⓒ 이형수
Tom과 짐을 꾸려 함께 여행을 떠나는 첫날 아침, 자욱한 안개가 운치있다. ⓒ 이형수
그날 오전, 이 사람들의 험한 삶을 뒤로하고 나는 또 다른 마을로 떠나게 되었다. 그때즈음, 다음 마을을 가기 전에 나는 몽골에서 잠시 만났던 Canadian Tom을 재회하게 된다. 당시 방콕에 보금자리를 잡고 있던 Tom과는 몽골이후 종종 연락을 했었는데, 내가 오토바이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더니, 잠깐이라도 같이 여행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tom과는 내가 여행하고 있던 근처 큰 읍내에서 재회를 하고, tom이 탈만한 스쿠터도 하나 빌렸다. 렌트라는 개념이 없던 곳이라, 조금 비싸게 빌리긴 했지만, 같이 다니는 즐거움은 돈에 비할게 못되었다.



Tom과 같이 이동하는 동안에도, 심심치 않게 친근한 마을을 많이 지나쳤다. 지칠때는 마을에 멈춰서서, 노란머리 tom을 구경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 이형수
바구니 요람에 갓난 애를 재우고, 자신은 뜨개질을 하는 10대의 어린 엄마 ⓒ 이형수
Tom이 캠코더로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니, 아주 좋아했다. ⓒ 이형수
마침 우기에 접어드는 시기라, 비포장인 산길이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 이형수
Tom과 같이 며칠 같이 여행하는 동안 나는 제 2의 마을에서 묵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첫번째 마을에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두번째 마을에서는 마을 어른의 허락을 쉽게 얻어냈다. 잠자리도 첫 번째 잤던 곳보다 좀 더 편했다.

첫번째 마을은 물을 매일 길어오는 곳이라, 마실 물 부탁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 마을에는 공용 수도꼭지가 하나 있어, 깜깜한 밤에 발가벗고 가서 며칠 못한 샤워도 할 수 있었다.

키가 180이 넘는 TOM이 조그만 수도꼭지 앞에서 발가벗고 비누로 몸을 씻어대는걸 보니, 웃겼지만, 본인은 꽤 만족한 미소로 돌아오며, 비누를 넘겨주었다.

마을에 단 하나 있던 수도꼭지, 당연히 파이프로 전달되는 물이 아니라,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연결해놓은 듯하다. ⓒ 이형수
도착한 날은 마을의 애들과 사탕도 나눠주고 놀아주기도 하며 지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의료의 혜택을 못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발에 조그만 상처가 곪아 종아리가 땡땡 부은 소녀를 보았는데, 몇번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병원으로 가야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어른들을 설득해 소녀를 병원으로 옮겨줄 수도 없는 상황에 마음이 아팠다. 그저 갖고 있던 소독약과 솜만 전달하고 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긴급 진료소를 혼자 지키고 있던 몽족 의사인 yaher에게 소녀의 이야기를 전달하였다.

오토바이 주변으로 모여든 마을 사람들 ⓒ 이형수
밤에는 이 산골의 적막과 군불때는 냄새를 맡으며 마을 어른들과 그리고 Tom과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Tom이 자기도 여행을 많이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내게 고맙다고 했다. 내게 고마워할게 아니라, 이렇게 이방인을 의심없이 환대 해준 이 산골사람들에게 고마워 해야할 일이었다.

다음날 Tom과 나는 몇 마을을 같이 지나치다, Tom은 스쿠터를 반납하고 도시로 가는 버스에 올랐고, 나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왔던 길에 첫번째 머물렀던 마을에 들러 무엇보다 먼저, 아팠던 그 여인집으로 찾아가 보았다, 사내는 숲에 일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여인 혼자 갓난애를 데리고 집에 있는데, 몸이 많이 호전되어, 이제는 밝게 웃어준다. 몇십분 기다리니, 땀이 범벅이 된 사내가 밝게 웃으며 반긴다. 아내가 이제 괜찮냐고 물으니, 손짓으로 많이 좋아졌다는 표현을 한다.

속으로 다행이다. 큰병이 아니라서 다행이다라고 몇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그날밤 나는 반 수화로 얘기하긴 하지만, 이 사내와 이런저런 얘기도 하며, 또 이집에서 하루밤을 신세지게 되었다.

계속되는 피로와 시멘트 바닥에 익숙치 않은 내게는 아침이 되어도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친절했던 사내와 마지막 작별 사진은 그래도 남겨야지… ⓒ 이형수

아침을 먹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나서 제일 가까운 읍내까지 왔는데, 게스트하우스에 밤에 짐을 푸는 순간 “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밤에 혹시 모르니까, 아내가 또 열이나고 아프면 쓰라고 해열제를 꺼냈는데, 내가 들고 다니던 전체 약통을 통째로 두고 온 것이었다. 꼬박 6시간을 산길을 내려왔는데, 어쩔수 없었다. 약통에 있는 약을 모르고 먹으면 안될터. 날이 밝자마자 다시 6시간을 달려 그 마을에 다다랐다.마을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내가 마치 옆 마을 정도에 갔다온 줄 생각하는 모양이다. 

숲에 일 나간 사내를 한 시간여 기다리니, 사내가 내가 무었 때문에 왔는지 벌써 알고 있었다.집에 가니 내가 잃어버린 약통을 누가 손댈까, 천정에 소중하게 모셔놓았었다.
혹시나 약이 귀한 곳이라, 무슨약인지 잘 모르면서, 약을 몇 개 빼거나 먹지는 않았을까, 하나하나확인을 해보는데, 다행히도, 그런 의심을 한 내 자신이 초라할 만큼 약은 그대로 있었다.

날이 저물고 있어 간단한 인사로 고맙다는 표시를 한 후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오는 길은 너무나 피곤했다. 비포장 산길을 몇 시간씩 충격흡수도 안되는 구식 오토바이를 타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알 것이다. 그날 이후로 며칠간 엄청난 몸살로 게스트하우스 밖을 못나가고 약만먹고 방에 누워있었다. 하지만, 몸살을 앓고도, 흐뭇한건 내가 그동안 접해지 못했던 또다른 세상을 길에서 만났다는 것, 그 세상에는 우리가 가진 문명의 혜택이란걸 받지 못하면서도, 누구를 시기하거나, 욕심부리지 않고, 그들만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오히려 내게 스승이 되어 가르치고 있었다.

ⓒ 이형수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반세기 세월 동안 프랑스 식민지로 
건축뿐 아니라 음식·문화까지 영향
루앙프라방에만 사원 30개가 넘어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출입할 수 없어

가을이다. 작열했던 열기도 수그러드는 시기. 그래서 여행 좀 한다는 사람들은 아껴둔 휴가를 이때 꺼내 든다. 동네 거닐듯 느긋하게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노을지는 강변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생각에 잠기는 여행이 가을엔 제격이다. 유네스코가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라오스의 북부 도시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이 바로 그런 곳이다.

루앙프라방 거리에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이 공존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라오스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나라는 아니다. 1975년 공산화한 뒤 우리와 외교관계가 끊어졌다가 20년 만에 복원했다. 한반도 크기의 면적(23만6800㎢)에 인구는 600만에 불과하다. 그만큼 조용하고 자연환경을 잘 간직하고 있다.

루앙프라방: 전통과 유럽문화가 만난 세계문화유산

비행기에서 내리면 허름한 단층 건물이 눈앞에 보인다. 시골 간이역 같은 이 건물이 바로 루앙프라방 공항 청사다. 한쪽 담벼락에는 코흘리개 아이들이 달라붙어 먼발치의 비행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공항에 들어서자 제복을 입은 경찰이 까만 머리를 보고 대뜸 "꼬리아 꼬리아"라고 외친다. '비행기에서 내린 유일한 한국인을 어떻게 알아본 것인가' 궁금해하는데, 경찰이 가리키는 손끝에 '비자 면제 창구'가 있다. 라오스는 3년 전부터 한국 국민에게 단기비자를 면제해주고 있다.

공항 한쪽 벽면엔 '몸을 가려달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상의를 벗은 남성과 비키니 톱을 입은 여성 그림 위에 붉은색 X표가 그려져 있다. 국민의 95%가 불교를 믿는 이 나라는 여성이 승려의 몸은 물론 옷을 만지는 것조차 금기시하고 있다.

루앙프라방 시내는 단순하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시사방봉(Sisavangvong) 거리에 모든 숙소와 음식점, 여행 안내소가 오밀조밀 몰려 있다. 아침에는 이 거리에서 승려들의 '탁밧(Tak Bat·탁발)' 행렬이 이어지고, 저녁엔 차의 통행을 막은 채 화려한 야시장이 벌어진다.

매일 아침 승려들이 공양을 받는 ‘탁밧’
마을은 그다지 크지 않다. 걸어 다녀도 좋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도 좋다. 거리엔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물과 금빛의 고대 사원이 혼재(混在)한다. 유네스코는 1995년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전통 건축양식과 19~20세기 식민지 시절 유럽의 건축문화가 조화롭게 섞여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Vientiane) 한복판에는 마치 파리의 그것과 같은 큼지막한 개선문이 서 있다. 개선문을 마주 보고 쭉 뻗은 도로 역시 샹젤리제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50년 넘는 프랑스 식민기(1893~1949)는 건축뿐 아니라 이들의 삶에도 깊숙한 흔적을 남겼다. 길가엔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인 바게트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시내 곳곳에 유난히 베이커리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일종의 향수(鄕愁)일까. 2009년 라오스를 찾은 유럽 관광객(6만1000명) 중 절반은 프랑스인이었다.

승려들의 탁밧에서 화려한 야시장까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매일 아침 시사방봉 거리에서 이뤄지는 탁밧이다. 오전 6시가 되면 황색 승복을 걸친 승려들이 바구니를 들고 맨발로 사원을 나선다. 거리엔 음식을 마련해온 주민들이 이들을 기다린다. 수백명이 한 줄로 서서 공양을 받는 모습은 엄숙하다. 관광객들도 길가에서 파는 찹쌀밥이나 바나나 등을 사서 직접 공양할 수 있다. 승려들은 길가에서 구걸하는 어린이에게 공양받은 음식을 다시 보시(布施)하기도 한다. 탁밧을 마친 승려들은 각자 사원으로 돌아가 불공을 드리고 음식을 나눠 먹는다.

루앙프라방에만 30개가 넘는 사원이 있다. 지붕이 하늘을 찌를 듯 솟은 화려한 사원은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못하게 만든다. 사원 내부의 금빛 장식도 황홀하다. 사원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한다. 짧은 반바지나 민소매 차림으로는 출입할 수 없다. 입구에서 빌려주는 천을 걸쳐 몸을 가려야만 들어갈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왓 씨엥 통(Wat Xieng Thong). 라오스 최초의 통일왕국 란쌍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의 전통 건축양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힌다. 빡우동굴과 꽝시폭포에서는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다.

해질녘이 되면 시사방봉 거리는 다시 분주해진다. 줄지은 백열등 불빛 아래 벌어진 수백여개 좌판의 행렬이 화려하다. 한땀 한땀 수공예로 만든 전통 문양의 지갑, 스카프, 인형, 액세서리가 관광객을 바닥에 쪼그려앉게 만든다. 시내 중심의 푸시산에 오르거나 메콩강변을 거니는 것도 좋다. 메콩강변에서 붉게 물든 강물을 보며 맥주 한 잔으로 마른 목을 적시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라오스의 대표 맥주 '비어라오'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기 맥주다.

여·행·수·첩

◆환율: 라오스의 통화는 킵(Kip). 8000킵이 우리 돈1000원 정도다. 한국에선 직접 환전할 수 없고, 미국 달러나 태국 바트를 준비해 현지에서 환전해야 한다.

◆교통: 인천-루앙프라방 직항편은 없다. 태국 방콕이나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느긋하고 평화로운 도시. 태국의 화려함도, 베트남의 열정도 아닌, 느리고 고요한 삶의 방식으로 은근하게 번져오는 라오스의 유혹. 사원의 도시가 잠 깨어나는 모습을 보며 맨발로 거니는 골목길들.

느리게 걸으며 시간을 흘려 보내는 곳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에서 생태환경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국토의 75퍼센트가 푸른 숲으로 덮여 있고, 북부의 산과 남부의 평원을 넉넉히 적시며 메콩강이 흘러간다. 특히 라오스 북부지역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다양한 소수부족들의 삶이 매력적인 곳이다. 그 중에서도 루앙프라방은 여행자들에게 ‘영혼의 강장제’로 불린다. 칸강과 메콩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걸터앉은 루앙프라방은 황금 지붕을 인 오래된 사원들과 프랑스풍의 저택들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는 옛 도시다. 서늘한 그늘을 드리운 프랜지파니 나무 아래서 아열대의 더위를 식히노라면 짙은 꽃 향내가 도시를 휘감고, 골목마다 들어선 식당들에서는 프랑스와 아시아의 풍미가 뒤섞인 요리를 선보인다. 저녁마다 도시의 중심가에 들어서는 노천시장에서는 산에서 내려온 소수부족들이 펼쳐놓은 수공예품들이 여행자의 지갑을 얄팍하게 만든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여행자들이 몰려드는데도 이 도시는 아직 고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중심지에는 버스가 다니지 못하고 통금으로 인해 떠들썩한 밤 문화가 없기 때문일까. 루앙프라방의 가장 큰 매력을 꼽는다면 이곳 사람들의 순박한 품성과 느긋하고 평화로운 삶의 방식일 것이다. 급한 발걸음의 여행자들마저 이곳에서는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에 금세 동화되고 만다.

'조용하고 소박하고 느긋하고 평화로운'도시 루앙프라방.

동서양의 조화 속을 거닐다

루앙프라방을 걷는 일은 동양과 서양의 조화 속으로 걸어가는 일이다. 라오스 최초의 통일 왕국 란상(Lan Xang) 왕조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은 도시 곳곳에 서른 개도 넘는 불교사원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프랑스식 건물들도 어긋나지 않는 얼굴로 살아있다. 태양이 달아오르기 전인 이른 아침에 탈랏 달라(Talat Dala) 시장에서 걷기를 시작하자. 루앙프라방의 상업적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아침 시장의 활기를 온몸으로 들이마시며 오감을 자극하는 냄새와 풍경에 몸을 맡기고 걷자. 시장을 나와 동남쪽으로 뻗은 타논 세타틸랏(Thanon Setthathilat) 거리를 따라간다. 첫 번째 큰 사거리에서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어 150미터쯤 가면 왓 위수나랏(Wat Wisynalat) 사원이다. 루앙프라방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된 사원 중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1531년에 지어졌다. 바로 옆 근사하게 늙은 두 그루의 반얀 나무가 있는 왓 아함(Wat Aham) 사원까지 함께 둘러본 후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오른쪽으로는 칸(Nam Khan)강이, 왼쪽으로는 푸 시(Phu Si) 언덕이 펼쳐진다.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스님들의 탁발 행렬과 함께 시작된다.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신성한 사원인 왓 시엥 통

강변의 노점상들을 기웃거리며 계속 북동쪽으로 강을 따라 올라가면 칸강이 메콩강과 합류하는 지점. 강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지는 강변길을 걸어도 좋고, 중간의 골목으로 들어와 왓 시엥 통(Wat Xieng Thong) 사원을 비롯해 빼곡히 들어찬 사원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소요해도 좋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황금색 지붕이 찬란한 왓 시엥 통 사원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훌륭한 사원으로 꼽히는 곳으로 1560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사원이다. 마지막으로 들를 곳은 북서쪽 강변의 켐콩 거리의 왕궁 박물관(Haw Kham). 시사방 봉 왕의 궁전이었던 이곳은 전통적인 라오스 양식과 프랑스 스타일이 조화를 이룬 건물이다. 지역 주민들은 이곳을 쫓겨난 왕족들의 원한 서린 영혼이 머물고 있는 ‘헌티드 하우스’로 믿고 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면 도시의 외곽을 한 바퀴 돈 셈이 된다. 2킬로 남짓 되는 짧은 거리지만 곳곳의 사원들을 둘러보노라면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만 간다.

여유롭게 어슬렁거리는 재미

더위에 지친 몸을 쉬며 오수를 즐긴 후 늦은 오후가 되면 다시 거리로 나오자. 여행사며 레스토랑, 인터넷 카페 등이 몰려있는 중심지 시사방봉 거리(TH Sisavangvong)거리가 오후 걷기의 출발점이다. 제법 세련된 카페며 빵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루앙프라방 최고의 번화가지만 그리 번잡한 느낌은 들지 않는 거리다. 이 거리에는 오후 5시가 되면 바리케이트를 치고 차량 출입을 막은 후 노천 시장이 들어선다.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은 여행객을 채근하는 호객행위가 없어 여유롭게 어슬렁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노점을 기웃거리며 주전부리를 하거나 해찰을 피우다가 햇살이 설핏해질 무렵이면 발길을 돌려 푸 시 언덕으로 향하자. 100미터 밖에 되지 않는 높이지만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루앙프라방의 랜드마크다. 계단을 수놓은 프랜지파니 꽃잎을 즈려 밟으며 언덕을 오르면 이제 남은 일은 한 가지. 이 도시로 노을이 내려앉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오랜 세월 이곳 주민들의 젖줄이 되어준 메콩강과 칸강, 그 너머 낮은 산들의 어깨를 붉게 물들이며 노을이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이 느긋한 도시를 떠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음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루앙프라방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푸시 언덕으로 가는 길

골목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루앙프라방의 아이들

코스 소개
북부 라오스의 중심에 위치한 루앙프라방은 인구 63,000명의 작은 도시다. 인간이 살기에 가장 좋다는 해발고도 700미터로 앞으로는 메콩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황금색 지붕을 인 사원들과 친절하고 소박한 품성의 주민들, 저렴하면서도 쾌적한 숙소와 값싸고 맛있는 음식이 여행자들의 발목을 잡는 곳이다. 작은 도시라 걸어서 둘러보기에 부담이 없는 곳이다.

찾아가는 길
라오스까지 직항은 없다. 보통 태국의 방콕을 경유하는데 수도인 비엔티엔이나 루앙프라방으로 갈 수 있다. 비엔티엔에서 루앙프라방까지는 비행기(40분 소요)나 버스(420킬로미터. 7-8시간)로 이동한다. 태국의 치앙마이, 베트남의 하노이, 캄보디아의 시엠리엡에서도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다.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서 비엔티엔까지 가는 장거리 버스도 있다.

여행하기 좋은 때
평균 기온이 30도를 넘지 않는 11월부터 1월까지가 가장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5월과 6월은 우기다.

여행 TIP
루앙프라방의 한낮은 무섭도록 달아오른다.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이른 오전과 늦은 오후로 나누어 도시를 걷는 일을 권장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근교의 팍 우(Pak Ou) 동굴과 쾅시(Kuang Si) 폭포도 다녀오자. 4월 중순에 여행한다면 송칸(Songkan)이라 불리는 라오스의 새해맞이 물 축제를 즐길 수 있다. 루앙프라방 외에도 라오스에는 북부 폰사반의 항아리 평원, 메콩강 투어, 중부의 방 비엥, 남부의 시판돈 등 둘러볼 곳이 많으므로 일정을 넉넉하게 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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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북쪽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라오스 중부의 타들로라는 곳을 여행할 때 우연히 만난 이태리 여행객 때문이다. 여행객들이 통상적으로 묻듯이 그에게 무엇 때문에 라오스에 왔고, 어디를 여행할꺼냐는 질문을 하자, 그는 대뜸, 말대신 포스트 카드 한장을 꺼내보였다. 그 포스트카드에는 여러 다른 소수부족들이 그들만의 전통 복장을 입은채 웃고 있는 조그만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군데 군데 사진이 오려져 있는 것도 보였다. 그는 나에게, 자기는 이 포스트카드의 주인공 절반을 이미 찾았다며, 찾은 주인공들에게는 그 포스트카드의 사진을 오려서 기념으로 주었다고 했다. 사진속의 주인공들을 만났다니 신기함에 어디서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냐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가르쳐줄수도 없고, 가르쳐줘서도 안된다고. 그건 나의 몫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이태리에서부터 이 라오스의 민족들에 대해 공부하고, 여기와서 이사람 저사람 사진 보여주면서 라오스말,사투리를 섞어가면서 수소문하고, 오토바이 택시를 며칠 혼자서 대절해가면서, 그렇게 찾은 사람들인데, 그런 노력과 모험도 없이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약간 샌님처럼 굴긴했지만, 그의 말에 백번 공감하며, 라오스 북부로 올라가면서 나 혼자서 한번 찾아보자고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베트남에서부터 그때까지 계속해서 오토바이로 여행을 하고 있었기에, 뭐 길이든 아니든 내 맘대로 수정하면 되니 어려울 건 없을 것 같았다.

그 뒤 약 2주후, 나는 어느새 라오스의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조그만 시장이 있는 교차로, 이곳에서부터 생필품을 사러나온 소수민족이 보이기 시작했다. ⓒ 이형수

라오스 북부의 어느 지점을 지나치니, 말 그대로 전통복장을 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였다. (그들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 앞으로 부족명칭과 구체적인 지명은 언급하지 않겠다.)

생필품을 팔려는 사람부터 해서, 돌로 때려죽인 큰 도마뱀을 팔려고 나온 사람, 사향고향이를 팔려고 나온 사람들도 길가에서 하나 둘 만났다.

길에서 만난 소수민족 여인들, 내게 무언가를 팔려고 했는데.필요가 없어서 정중히 사양했던 기억이 난다. ⓒ 이형수
머리를 맞아 죽은 왕도마뱀, 숲 속에서 잡은듯. ⓒ 이형수
길가에서 오토바이나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산짐승을 파는 여인, 처음에는 무슨 동물인 줄 몰랐는데, 사향고양이인 듯하다. 사지도 않으면서 사진을 찍는 나를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 이형수
마을도 여기저기 많이도 지나쳤었다. 한 마을이라도 내려서, 사람들과 얘기라도 하고 싶었으나, 라오스 말이라곤 인사말 몇 개와 숫자세는 것 밖에 할줄 몰랐던 낯선 이방인인 내가 그들의 소소한 평화를 깨뜨리며 친근하게 다가서긴 쉽지 않았다.

스치며 지나간 마을 중에는 이쁜 마을도 많았다. ⓒ 이형수
산골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특이한 맷돌 ⓒ 이형수
(좌) 어떤 마을은 마을 축제가 한창이었고, 마을축제 때문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인들도 볼수 있었다. (우) 며칠을 달린 산골에서 단 하나 있던 긴급 진료소, Hmong족 출신 의사인 Yaher가 혼자서 진료를 하고 있었다. Yaher도 정식 의사로서 병원에서 근무하기전 봉사의 일환으로 이곳에서 순환 근무를 하는듯했다. Yaher와는 하루만에 꽤 친해졌고, (사실 몇일간 유일하게 영어가 되는 사람을 첨으로 만난것이었다),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있다. 현재는 루앙프라방의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사진은 yaher가 자신의 Hmong족 전통의상을 입어서 소개해주는 모습. ⓒ 이형수

그렇게 조그만 교감을 나눌수 있는 마을을 찾아다니는 통에 하루는, 날이 금새 저물었고, 결국 산을 넘지 못한채, 이 산중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근처의 한 소수민족 마을의 평화는 오토바이를 타고 짐을 한가득 싫은 이상한 이방인에 의해 깨지게 되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 쯤에는 산중 마을이라 전기도 없었고, 말 그대로  암흑 그 자체였다.

해가 지기전에 산을 넘지 못할거라는 것은 오토바이를 타던 내내 예감했던 일이지만, 이 마을에서 나를 재워줄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마을은 20가구도 채 되어 보이지 않았다. 산길을 5~6시간 운전한 탓에,몸도 지치고, 어쩔 도리가 없어 그마을의 유일한 가게에서 과자 한봉지를 사서 뜯어먹고 앉아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말도 없이 과자만 뜯어먹는 내가 누군가 싶어 모여들었다. 상점 안에 조그만 촛불 빛에 갖고 있던 라오스 사전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내가 누군가 부터해서, 왜 여기 이르렀고, 잠잘 곳이 필요하다는 말을 천천히 했다.

문제는 여기 사람들 중 라오스말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계하는 이들도 몇 있었다. 보다 쉬운 대화로 손짓 발짓하며 최대한 미소를 지어보이니, 몇몇 알아듣기도 하고, 호응도 해준다. 그때 밖에 트럭이 서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수박을 한 가득 실은 트럭이 와있다. 조그만 마을들을 돌며 산지 수박을 파는 듯한데, 큰 수박 하나가 채 우리돈으로 500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돈이 없는 소수민족이라, 이것저것 재기만 하고, 도무지 사질 않는다.

내가 대뜸 수박 두어개를 사서 들고와서, 사람들 앞에서 깨어 나누어주니 이제는 분위기가 꽤나 반전이 되었다. 결국 수박을 먹으며 얘기가 통하여, 내가 앉아있던 상점의 작은 공간에 잘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잘자리를 펴고 잠깐 있으니, 이 잡화상 주인의 형 되는 사람이, 찾아와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손짓과 행동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데, 자신의 와이프가 무슨일이 있다고 하는듯하다. 여러 단어를 찾아 물어보니, “내 와이프가 아픈데, 와서 봐줄수 있냐”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의사가 아니라고 얘기해도, 막무가내로 좀 봐달라고 한다. 이 산길로 약 한나절 이상을 오토바이로 되돌아 가야 몽족 의사 yaher 가 하고 있는 조그만 간이 진료소라도 갈수 있는걸 생각하면, 이 사람들이 약을 받거나, 제대로 된 병원을 간다는 건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쩔수 없이 이 사내의 집으로 따라 들어가니, 전통 의상을 입은 그의 아내가 부엌에서 갓난애의 젖을 물리고 있는데, 언뜻 보기에도 사지를 덜덜 떨고, 이 쌀쌀한 저녁에 땀을 비오듯 흘린다.

상태가 예사롭지 않은데, 병원을 가봐야 된다고 얘기는 하지만, 이 사람들의 경제력이나, 가까운 병원이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도 하루가 넘게 걸리는 걸 감안하면 고개는 끄덕이지만,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안다.

할 수 없이 내 가방에 들어있던 해열제와 종합 감기약 몇 알을 꺼내주며, 복용법을 설명했다.

말라리아 같은 큰 병이 아니길 기도하며, 이 사람들이 병원에 갈수 없는 현실을 속으로 개탄했다. 사내는 가게에서 자지 말고, 자신의 집에서 자라고 권유했고, 순식간에 아들의 방을 비워주곤, 잠자리를 펴줫다.

세상에는 많은 가난한 이들이 있지만, 이들의 삶 또한 거칠고 험했다. 그들의 잠자리라고 해봐야, 시멘트 바닥에 천 하나를 댄 것이고, 돈벌이 할 것은 거의 없고,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거나, 맹꽁이를 잡거나, 산짐승을 팔거나 하는 부수익으로 조금의 돈을 가지는 식이다.

먹을거리도, 매일 산속에 들어가 죽순이나 먹을만한 것을 손수 캐와야 하루끼니를 이어가는 식이다. 그날 저녁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상을 내왔는데, 손님이라고 대접받은 음식은 밥 한공기, 물 그리고 죽순과 소금만 넣은 국이 전부였다.

그들이 낮에 산으로 일하러 갈 때 점심 바구니에 맨밥에 소금뿐이었던걸 보면, 그나마 나는 손님으로 대접을 후하게 받은 것이었다.

필시 사진의 저녀석(흑돼지)이었지 않을까? ⓒ 이형수
이 마을에 먹을게 없다는 걸 다시 볼수 있는 에피소드로, 그 다음날 아침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해 사람들이 안보이는 숲으로 들어가, 용변을 급히 보는데, 저쪽 옆에서 갑자기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사람인가 싶어 쳐다보니, 흑돼지 한마리가,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왜 저 돼지가 재수없게 쳐다보지 하면서, 돌을 던지는데, 돌을 정통으로 머리에 맞아도 물러나기는커녕, 슬슬 더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용변이고 뭐고, 놀라서, 급히 처리하고 걸어 나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리로 가서 맛있게, 그것을 먹어치웟다.

(좌) 손으로 실을 뽑는 여인의 모습 (우) 우는 아기를 달래는 엄마
전통 장을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제까지 이런 사람들을 볼수 있을까? 사진 속에 남자들이 없는 이유는 남자들은 날이 밝자마자, 숲으로 일하러 갔기 때문이다. ⓒ 이형수
Tom과 짐을 꾸려 함께 여행을 떠나는 첫날 아침, 자욱한 안개가 운치있다. ⓒ 이형수
그날 오전, 이 사람들의 험한 삶을 뒤로하고 나는 또 다른 마을로 떠나게 되었다. 그때즈음, 다음 마을을 가기 전에 나는 몽골에서 잠시 만났던 Canadian Tom을 재회하게 된다. 당시 방콕에 보금자리를 잡고 있던 Tom과는 몽골이후 종종 연락을 했었는데, 내가 오토바이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더니, 잠깐이라도 같이 여행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tom과는 내가 여행하고 있던 근처 큰 읍내에서 재회를 하고, tom이 탈만한 스쿠터도 하나 빌렸다. 렌트라는 개념이 없던 곳이라, 조금 비싸게 빌리긴 했지만, 같이 다니는 즐거움은 돈에 비할게 못되었다.



Tom과 같이 이동하는 동안에도, 심심치 않게 친근한 마을을 많이 지나쳤다. 지칠때는 마을에 멈춰서서, 노란머리 tom을 구경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 이형수
바구니 요람에 갓난 애를 재우고, 자신은 뜨개질을 하는 10대의 어린 엄마 ⓒ 이형수
Tom이 캠코더로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니, 아주 좋아했다. ⓒ 이형수
마침 우기에 접어드는 시기라, 비포장인 산길이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 이형수
Tom과 같이 며칠 같이 여행하는 동안 나는 제 2의 마을에서 묵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첫번째 마을에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두번째 마을에서는 마을 어른의 허락을 쉽게 얻어냈다. 잠자리도 첫 번째 잤던 곳보다 좀 더 편했다.

첫번째 마을은 물을 매일 길어오는 곳이라, 마실 물 부탁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 마을에는 공용 수도꼭지가 하나 있어, 깜깜한 밤에 발가벗고 가서 며칠 못한 샤워도 할 수 있었다.

키가 180이 넘는 TOM이 조그만 수도꼭지 앞에서 발가벗고 비누로 몸을 씻어대는걸 보니, 웃겼지만, 본인은 꽤 만족한 미소로 돌아오며, 비누를 넘겨주었다.

마을에 단 하나 있던 수도꼭지, 당연히 파이프로 전달되는 물이 아니라,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연결해놓은 듯하다. ⓒ 이형수
도착한 날은 마을의 애들과 사탕도 나눠주고 놀아주기도 하며 지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의료의 혜택을 못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발에 조그만 상처가 곪아 종아리가 땡땡 부은 소녀를 보았는데, 몇번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병원으로 가야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어른들을 설득해 소녀를 병원으로 옮겨줄 수도 없는 상황에 마음이 아팠다. 그저 갖고 있던 소독약과 솜만 전달하고 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긴급 진료소를 혼자 지키고 있던 몽족 의사인 yaher에게 소녀의 이야기를 전달하였다.

오토바이 주변으로 모여든 마을 사람들 ⓒ 이형수
밤에는 이 산골의 적막과 군불때는 냄새를 맡으며 마을 어른들과 그리고 Tom과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Tom이 자기도 여행을 많이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내게 고맙다고 했다. 내게 고마워할게 아니라, 이렇게 이방인을 의심없이 환대 해준 이 산골사람들에게 고마워 해야할 일이었다.

다음날 Tom과 나는 몇 마을을 같이 지나치다, Tom은 스쿠터를 반납하고 도시로 가는 버스에 올랐고, 나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왔던 길에 첫번째 머물렀던 마을에 들러 무엇보다 먼저, 아팠던 그 여인집으로 찾아가 보았다, 사내는 숲에 일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여인 혼자 갓난애를 데리고 집에 있는데, 몸이 많이 호전되어, 이제는 밝게 웃어준다. 몇십분 기다리니, 땀이 범벅이 된 사내가 밝게 웃으며 반긴다. 아내가 이제 괜찮냐고 물으니, 손짓으로 많이 좋아졌다는 표현을 한다.

속으로 다행이다. 큰병이 아니라서 다행이다라고 몇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그날밤 나는 반 수화로 얘기하긴 하지만, 이 사내와 이런저런 얘기도 하며, 또 이집에서 하루밤을 신세지게 되었다.

계속되는 피로와 시멘트 바닥에 익숙치 않은 내게는 아침이 되어도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친절했던 사내와 마지막 작별 사진은 그래도 남겨야지… ⓒ 이형수

아침을 먹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나서 제일 가까운 읍내까지 왔는데, 게스트하우스에 밤에 짐을 푸는 순간 “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밤에 혹시 모르니까, 아내가 또 열이나고 아프면 쓰라고 해열제를 꺼냈는데, 내가 들고 다니던 전체 약통을 통째로 두고 온 것이었다. 꼬박 6시간을 산길을 내려왔는데, 어쩔수 없었다. 약통에 있는 약을 모르고 먹으면 안될터. 날이 밝자마자 다시 6시간을 달려 그 마을에 다다랐다.마을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내가 마치 옆 마을 정도에 갔다온 줄 생각하는 모양이다.

숲에 일 나간 사내를 한 시간여 기다리니, 사내가 내가 무었 때문에 왔는지 벌써 알고 있었다.집에 가니 내가 잃어버린 약통을 누가 손댈까, 천정에 소중하게 모셔놓았었다.
혹시나 약이 귀한 곳이라, 무슨약인지 잘 모르면서, 약을 몇 개 빼거나 먹지는 않았을까, 하나하나확인을 해보는데, 다행히도, 그런 의심을 한 내 자신이 초라할 만큼 약은 그대로 있었다.

날이 저물고 있어 간단한 인사로 고맙다는 표시를 한 후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오는 길은 너무나 피곤했다. 비포장 산길을 몇 시간씩 충격흡수도 안되는 구식 오토바이를 타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알 것이다. 그날 이후로 며칠간 엄청난 몸살로 게스트하우스 밖을 못나가고 약만먹고 방에 누워있었다. 하지만, 몸살을 앓고도, 흐뭇한건 내가 그동안 접해지 못했던 또다른 세상을 길에서 만났다는 것, 그 세상에는 우리가 가진 문명의 혜택이란걸 받지 못하면서도, 누구를 시기하거나, 욕심부리지 않고, 그들만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오히려 내게 스승이 되어 가르치고 있었다.

ⓒ 이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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