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던 1950~60년대, 우리에게도 ‘목욕’은 연례 행사였다. 추석이나 설날을 앞두고 동네의 대중목욕탕을 찾아가 묶은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조상들에게 정성어린 제물을 받치곤 했다. 목욕은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리수족 아낙네들이 윈난성 누장 대협곡의 노천 온천에서 열리는 전통 축제인 자오탕후이에 참여해 집단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
중국 대륙의 남서쪽 윈난(雲南)성. ‘동방의 대협곡’, ‘신비의 대협곡’이라 불리는 누장(怒江) 대협곡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 리수(傈僳)족에게도 수백년 전부터 시작된 그들만의 목욕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일주일여 동안 류쉐이(瀘水) 주변 열여섯개 온천에서 부녀자와 아이들이 ‘자오탕후이(澡塘會)’라 불리는 집단 온천욕을 즐긴다. 평균 해발 3,000m 이상의 깊은 고산 협곡에 흩어져 살던 리수족들은 담요나 이불은 물론이고 취사도구까지 챙겨서 노천 온천으로 몰려 나온다.

절벽 아래쪽이나, 동굴에 마른 풀을 깔고 이불을 펼쳐 임시 거처를 만든다. 돌 화덕을 이용해 쌀과 고기로 요리를 만들고, 술 자리를 마련해 야외 잔치를 벌인다.

배불리 먹고, 취기가 오르면 온천탕에 몸을 담가 온갖 세속의 때를 씻어낸다. 무병(無病)을 기원하고, 가족과 부족의 안녕을 소원한다.


강변 절벽 아래쪽에 마련한 리수족의 임시 거처
리수족의 자오탕후이는 단순히 온천욕만 즐기는 연례 행사가 아니다. 춤과 노래와 전통 놀이가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 마당이다.

남녀노소가 서로 담소하면서 심신의 피로를 풀고 편한 휴식을 즐긴다. 삼삼오오 온천욕을 끝낸 뒤 춤과 노래로 소통한다. 한껏 가벼워진 몸으로 선남선녀들은 마음껏 재주를 발산한다. 전통 칼로 만든 사다리에 오르고, 불놀이를 하고, 활쏘기를 하면서 새해를 맞는다.

리수족들은 음력 섣달 초닷새부터 다음해 정월 초열흘까지 전통적으로 ‘후오스제(闊時節)’이란 축제를 펼쳤다. 한족의 ‘춘제(春節)’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이 축제 중 가장 성대하게 거행되는 것이 바로 집단 온천욕이다.


전통 복장을 입고 자오탕후이에 참여한 리수족 여인들
자오탕후이에 참여하는 남녀는 서로를 존중하며, 예의를 소중하게 여긴다. 이들은 성스러운 온천수로 액운을 씻어내면서 길상을 염원한다.

자오탕후이는 여러 곳에서 열린다. 그러나 누장 유역의 자오탕후이가 더 자연적이고, 더 민족적이고, 더 전통적이다. 그 중에서도 덩겅허(登埂河)와 마푸허(瑪布河)의 자오탕후이가 널리 알려져 이젠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을 정도다. 

이 곳에는 은폐물이 없고, 남녀 혼탕이다. 온천욕을 함께 즐기지만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들을 배려하면서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목욕하는 여인들은 불쑥불쑥 사진을 찍는 외지인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덩겅허의 ‘자오탕후이’ 개막식
자오탕후이는 리수족의 독특한 전통을 보여주는 문화 유산이자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민속 축제다.

먼 옛날부터 리수족은 누장 주변의 협곡 속에서 힘겹게 살아왔다. 열악한 자연 환경 속에선 친구나 친척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런 탓에 새해가 오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다. 깊은 산 속에 흩어져 사느라 사람과 사람의 왕래조차 불가능하자 일년에 한번이라도 만나자며 잔치를 만들었다.


집단 온천욕을 즐기는 리수족 아낙네들과 아이들
누장 자치구의 리우쿠(六庫)는 ‘위에진차오(躍進橋) 온천’에서 열리는 자오탕후이로 유명하다. 동으로 비뤄슈에(碧羅雪)산, 서쪽으로 까오리공(高黎貢)산으로 둘러싸인 리수족 자치주의 중심 도시다.

바이족(白族)의 전설에 따르면 새해를 맞이할 때 이 곳은 진귀한 동물들의 보금자리였고, 부족의 제사장은 늘 이 곳에서 사슴을 잡아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루커우(鹿扣)’란 이름을 얻었다. ‘루커우’는 ‘리우쿠’와 독음이 비슷해 같은 어원이란 설까지 생겨났다.

한족들은 이 곳 주변에 여섯 개의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마다 진기한 보물이 있어 ‘여섯 개의 보물 창고’란 뜻으로 ‘리우쿠’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리수족들은 ‘협곡의 물이 항상 거세고, 땅 속에는 용담이 있다’고 믿어 이 곳을 ‘롱퉁(龍洞)’이라 불렀다. 리수족 말로 '루쿠(lut ku)’라 불리는 것을 한어로 음역을 하다보니 ‘리우쿠’가 됐다는 것이다.


집단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리수족과 축제에 참여해 사진을 찍고 있는 외지인들
새해를 맞는 모든 이의 바람은 한결 같다. 피부색이나 인종, 부와 관계없이 무엇보다 먼저 건강을 염원한다. 소수 민족 리수족의 ‘집단 온천욕’이 바로 건강의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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