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나스(Kaunas)는 인구 약 40만 명 정도가 거주하는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이다. 어느 나라나 그러하지만, 제2의 도시에 사는 시민들은 언제나 수도의 그늘에 가려 올바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그득하다. 카우나스 사람들은 특히 그러하다.

예수부활성당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카우나스 풍경 <사진: 카우나스 관광청>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카우나스가 정식으로 도시로 인정받게 된 것은 1408년으로, 600년이 넘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이다. 리투아니아를 흐르는 양대 젖줄인 네무나스(Nemunas)강과 네리스(Neris)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카우나스는, 이런 입지적 조건으로 리투아니아 초기부터 사람들이 터전을 잡기 시작했다.

러시아, 폴란드, 독일 등 주요 거점 지역으로 통하고 있어 군사적, 경제적 중요성 역시 대단했다. 15세기 당시 독일기사단이 유럽 전체로의 팽창을 위해 동방진출을 꾀했을 때는 리투아니아의 고대 수도인 트라카이빌뉴스를 호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리투아니아는 최초로 독립을 이루었으나 폴란드에게 수도 빌뉴스를 불법 점령당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까지 카우나스가 리투아니아의 임시수도가 되어서 현대사의 서곡을 알리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기도 했다.

빌뉴스 이전 트라카이가 수도였을 당시 독일기사단들의 침공으로부터 수도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한 카우나스성. 현재는 복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진: 카우나스 관광청>

현재 카우나스는 리투아니아는 물론이거니와, 전 유럽에서 감히 최강이라 불러 마지않을 리투아니아 국가대표 농구팀 잘기리스(Žalgiris)의 거점지역으로 유명하다. 몇 년 전부터는 아일랜드의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의 동유럽 허브로 지정되면서 유럽 전역에서 관광객들을 불러들여 카우나스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지만, 그와 동시에 한때 유러피안 드림을 쫓아 유럽으로 떠났던 젊은이들이 눈물을 머금고 고국 땅을 밟게 되는 우울한 장소로 변화되기도 했다. 작지만 복잡 다난한 도시, 카우나스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구시청사 위에서 바라보는 카우나스 풍경. (일반인의 출입은 제한되어 있다.) <사진: 카우나스 관광청>

자유와 혁명이 도시 카우나스

과거 소련 도시들에는 전부 하나같이 레닌대로, 스탈린대로, 가가린대로 같은 소련 영웅들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곤 했다. 하지만 그런 서슬 퍼렇던 시절에도 카우나스 한가운데 자리 잡은 중심거리의 이름은 바로 라이스볘스 알례야(Laisvės alėja), 우리말로 하자면 ‘자유로’였다. 한때 이 도시는 금연도로로 지정된 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 미덕을 해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공식적으로 금지된 것은 없는, 거의 완벽한 자유가 보장된 거리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자유로는 언제나 거리의 악사들로 넘쳐난다. <사진: 카우나스 관광청>

카우나스에서 자유와 혁명의 분위기는 아주 유별나다. 1972년 5월 14일, 바로 이 자유로 한가운데에서 당시 20살이던 카우나스의 청년이 휘발유를 몸에 들이붓고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가 분신한 곳 근처에는 “나의 죽음에 대한 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치체제 뿐이다”라는 유서가 한 장 남아 있었고, 그 이후 이틀 동안 카우나스는 소련의 붉은 군대도 경찰들도 통제할 수 없는 혁명의 도시로 변화하였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약 20년 후 소련 전체가 붕괴되는 시발점이 되어준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전에도 소련의 지배를 반대하는 분신자살은 리투아니아의 다른 지역과 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서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그 어떠한 것도 카우나스처럼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당시 소련에서는 금지되어 있었던 장발문화와 비틀즈(비틀스), 록음악도 카우나스에서는 아무 어려움 없이 감상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전 소련 내 히피문화의 메카로 부상하기도 했을 만큼 카우나스의 자유로는 구소련 내에 불고 있는 자유화에 대한 갈망 그 자체를 보여주었다. 이런 배경 덕에 리투아니아는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같은 인근 국가나 중앙아시아 등과 비교했을 때 소련화가 가장 적게 진행될 수 있었다.

리투아니아 군사력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군사박물관. 박물관 앞으로는 리투아니아 현대사를 이끌어간 위인들의 흉상들과 이름 없는 영웅들을 위해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이 위치한 통일광장이 위치해 있다. <사진: 카우나스 관광청>

카우나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야깃거리는 또 있다. 카우나스가 임시수도였을 당시 일본영사직을 맡아 일했던 스기하라 치우네(센포 스기하라, Chiune Sugihara)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서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 6천 명을 구한 인물로 유명하다. 소련이 점령하고 있는 리투아니아가 독일의 손아귀로 넘어가는 것이 분명해지던 시기, 유대인들은 남미에 있는 섬들(네덜란드, 덴마크령)로 이주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으로 이주하기 위해 통과해야하는 소련에서는 어이 없게도 일본의 통과허가를 받을 것을 요구했고, 수 천명의 유대인들은 일본 통과비자를 받기 위해 당시 스기하라가 일하던 일본 영사관 앞에 장사진을 이루었다. 독일과 돈독한 관계에 있던 일본 정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유대인들의 통과비자 발급을 불허했으나, 스기하라는 정부의 불허방침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으로 통과비자를 발행해서 6천 명의 유대인들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2차 대전 당시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구한 스기하라 영사가 근무한 일본영사관 건물, 현재는 스기하라 기념관과 아시아 지역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사진: 서진석>

과거 스기하라의 행적을 기념하는 ‘희망의 문, 생명의 비자’라는 문구가 리투아니아어와 일본어로 병기되어 있다. <사진: 서진석>

현재 그가 일하던 영사관은 카우나스 최대 대학교인 비타우타스 마그누스(Vytautas Magnus) 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소속의 아시아 지역연구소와 스기하라 박물관이 들어서 있고, 아시아 지역연구소에서는 몇 년 전 한국학 강의도 시작했다. 하지만 2013년경 이 건물 전체에 일본을 홍보하는 일본문화원이 들어설 계획이다.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구시가지

유럽은 일반적으로 구시가지가 그 도시의 행정중심지역인 경우가 많지만, 카우나스의 경우 자유로가 그 기능을 맡아서 하고 있고, 구시가지는 도시의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카우나스의 영원한 경쟁상대인 빌뉴스의 구시가지는 1997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복원과 홍보에 대한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카우나스의 구시가지는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그래서 수도에 비해 개발이나 보존 상태가 열악하지만 빌뉴스의 구시가지와 견주어서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곳으로서 일 년 내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7km의 자유로를 따라 쭉 걷다 보면 바로 이어지는 빌뉴스 거리(Vilniaus gatvė)가 바로 구시가지의 시작이다. 그 거리에 들어서면 나그네를 맞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자갈길과 예스러운 모습의 공중전화가 카우나스의 역사를 실감하게 해준다.

구시가지의 입구인 빌뉴스 거리. 리투아니아의 도시들은 가장 번화한 대로를 수도의 이름을 따 ‘빌뉴스 거리’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사진: 카우나스 관광청>

마이로니스는 리투아니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카우나스 구시청사광장에 위치한 마이로니스 석상 주변 풍경 <사진: 카우나스 관광청>

카우나스 구시가지의 주요 볼거리들도 역시 성당이다. 빌뉴스처럼 대부분의 성당들은 소련 시절 다른 기능으로 변환되어 학교, 강당, 심지어 운동장, 사우나로 사용되기도 했다. 카우나스에 있는 성당 중 가장 훌륭한 곳은 빌뉴스 거리와 시청광장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베드로 바울 성당 (Šv. apaštalų Petro ir Povilo bažnyčia) 이다. 전쟁과 화재를 겪으면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확장 증축되어 리투아니아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가 된 이 성당의 외부 벽에는 19세기 말 바로 이 성당에서 주교로 일하며 리투아니아 민족의식 부흥에 중심적인 위치에 서 있었던 신부이자 시인인 마이로니스(Maironis)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카우나스의 대표적인 성당인 베드로 바울 대성당의 모습. <사진: 카우나스 관광청>

시청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구시청사(Rotušė)는 그 도도한 백색 이미지 때문에 ‘흰 백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1542년 최초로 그 자리에 들어선 이래 성당, 감옥 등 여러 가지 기능으로 바뀌어 내려오다가 18세기 말에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되었다. 현재는 아주 특별하게도 결혼식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주말에는 백색의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신혼부부들과 들러리들로 주변 광장이 가득 찬다. 건물 한쪽에는 도자기 박물관도 위치해 있다.

구시청사의 낮과 밤. 구시청사 광장은 주말이 되면 신혼부부들과 햇볕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 찬다. <사진: 카우나스 관광청>

광장 서편 강 쪽으로 위치한 알렉소토(Aleksoto) 거리에 위치한 페르쿠나스의 집(Perkūno namas)은 카우나스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고딕 양식 건물 중 하나로서, 리투아니아 중세 건물의 진면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로 손꼽힌다. 초기에는 길드 연합회, 그 후 예수이트 성회의 예배당, 드라마 극장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1818년 보수 공사 도중 벽 안에서 리투아니아 전통신앙의 최고신으로 천둥을 관장하는 신인 페르쿠나스(Perkūnas)의 형상으로 추정되는 조각이 발견되어, 그 이름을 따 ‘페르쿠나스의 집’이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다. 현재는 동유럽 최대의 문호 중 한 명인 폴란드 출신의 작가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의 행적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리투아니아 고딕 양식 건물의 진수를 보여주는 ‘페르쿠나스의 집’. <사진: 카우나스 관광청>

카우나스 시내 어디에서든 보이는 예수부활성당의 모습. 언덕 아래에서 교회 입구까지 푸니쿨러를 타고 올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진: 카우나스 관광청>

그 외 카우나스에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박물관들이 많이 위치해 있다. 안타나스 즈무이지나비츄스(Antanas Žmuidzinavičius)라는 조각가가 평생에 걸려 리투아니아와 유럽 전역에서 수집한 악마형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악마박물관, 20세기 초 음악과 회화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리투아니아 현대예술의 밑그림을 그려준 츄를료니스(Čiurlionis)의 작품이 전시된 국립츄를료니스 미술관, 입구에 서 있는 발가벗은 남자상으로 더 유명한 현대미술관인 질린스카스(Žilinskas) 예술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악마박물관에 가면 죽어서 악마가 되어버린 스탈린히틀러를 만날 수 있다. 2층 한가운데,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리투아니아 위에서 춤을 추는 스탈린과 히틀러의 모습을 악마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작품은, 가슴이 숙연해지게 한다. 악마박물관은 여전히 세계 여러 나라들의 '새로운 악마'들을 꾸준히 수집하고 있는데, 동남아,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각국의 악마들은 전시장에 진열되어 있지만, 아직 한국은 이곳에서 열외이다.

카우나스 시내에서는 어디에서도 보이는 언덕 위의 하얀 교회인 예수부활성당(Kristaus prisikėlimo bažnyčia)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카우나스 구시가지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또한 교회 아래쪽에서 언덕 위로 올라가는 푸니쿨라(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케이블카의 한 종류)를 타고 오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2011년 5월 19일부터 22일까지는 중세 한자 무역동맹 시절의 문화와 생활상을 재현하는 중세문화축제인 '한자축제'가 카우나스에서 열린다. 한자축제는 과거 한자무역의 동맹도시가 모두 참여하는 유럽 최대의 축제 중 하나로 중세시절 유럽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가는 길

카우나스 시내에서 약 17km 떨어진 카르멜라바(Karmėlava) 국제공항에 라이언에어의 저가항공이 많이 취항한다. 더블린, 파리, 런던, 프랑크푸르트, 밀라노, 오슬로, 탐페레, 바르셀로나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저가항공을 타고 편하고 저렴하게 입국을 할 수 있다.


수도 빌뉴스에서는 카우나스로 이동하는 버스와 기차가 수시로 출발하며 버스는 한 시간 40분, 급행열차의 경우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모스크바에서 기차로 들어오는 방법도 있으나, 현재 다른 서유럽 국가로 연결해주는 기차 노선은 전무하다. 유로라인이나 에코라인 같은 국제버스들을 통해서도 카우나스에 어렵지 않게 들어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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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호수위에 한 폭의 그림처럼 서있는 '트라카이 성' 전경

발트해를 껴안은 곳. 흔히 발트 3국으로 일컫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여행 좀 해봤다는 여행객들에게도 아직 낯선 곳이다. 직항편이 없어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닿기는 힘들지만 막상 마주하고 나면 그 어떤 유럽여행보다 더 큰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중 리투아니아는 고즈넉한 풍광이 여행객들을 매료시키는 곳. 마치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 낭만적인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 고즈넉한 풍광, 우아한 도심…빌뉴스 

러시아 북서부에 자리한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중 가장 면적이 크다. 또한 가장 낙후된 곳이기도 하나 그만큼 고즈넉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가장 먼저 찾을 곳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발트 3국의 수도 중 유일하게 바다와 면하지 않은 수도이기도 하다. 이곳의 옛 명칭은 빌나, 영어로 빌니우스라고도 불린다.12세기부터 역사가 시작된 이곳은 이후 다양한 민족이 모여 국제도시로 성장했으며 발트 3국 중 가장 중요한 금융도시로 번성했다. 

빌뉴스는 그야말로 중세도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빌뉴스 역사지구는 3.6㎢ 규모에 1500여 개의 건축물이 모여 있어 천천히 둘러보며 여행하기 좋다.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중세 건축물들과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힌 도심 풍광, 차분한 분위기가 한데 어우러져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곳에 위치한 대표적인 중세 건축물로는 700년간 리투아니아인들의 신앙적 중심지였던 빌뉴스 대성당, 1051년 지어진 최고의 고딕양식 건축물 성안나 교회, 14세기 지어진 대통령궁 등이 자리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빌뉴스 역사지구의 명물은 바로 빌뉴스 대학이다. 리투아니아 최초의 대학으로 1579년 설립됐다. 이후 수많은 문학가와 철학가들을 배출했다. 대학교 건물 전체가 유물이며 박물관이라 칭할 만하다. 

빌뉴스를 찾았다면 '트라카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빌뉴스에서 30㎞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해 꼭 한번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둘러보아야 할 명소는 트라카이 성이다. 호수 위의 성으로 불리는 이곳은 마치 동화 같은 풍광을 연출한다.  

◆ 리투아니아인의 성지…샤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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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개 십자가와 이야기를 품은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

샤울레이는 리투아니아 북부에 자리한 작은 도시. 리투아니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빌뉴스에서 220㎞ 정도 떨어져 있으며 차량으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샤울레이는 14세기부터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해 19세기 이후 급속도로 발전했다. 

리투아니아인의 성지로도 불리는 샤울레이의 명소는 단연 '십자가 언덕'이다. 수십만 개의 십자가가 모여 있는 이곳은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다녀간 이후 더욱 유명해졌다. 마을 외곽에 자리한 '도만타이'로 가면 십자가 언덕을 만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다시 20분 넘게 걸어야 할 만큼 교통이 불편하지만 빽빽이 꽂혀 있는 십자가가 특별한 경관을 연출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언덕으로 향하는 길.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가다 보면 기념품점도 만날 수 있다. 가지각색 다양한 십자가를 판매하고 있어 이곳의 특별한 분위기를 간직하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언제부터 이 언덕에 십자가가 꽂히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언덕 위에 십자가를 세웠다. 어지러웠던 시절 조국의 독립과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세워졌다고 알려진다. 이후 소련이 군대를 동원해 불도저로 밀어버렸지만 십자가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의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인지 이곳에 서면 왠지 숙연한 마음이 든다. 

VIP여행사(02-757-0040)에서 발트 3국을 포함한 '북유럽/발틱' 여행 상품을 선보인다. 오는 7월 6일 단 1회 출발하는 상품으로 핀에어 항공을 이용한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을 둘러보는 12일 일정이다. 왕복 항공료, 유류할증료 및 택스, 전 일정 4성급 호텔, 전용 버스, 식사, 관광지 입장료 등을 포함하며 노옵션 행사 상품으로 요금은 459만원이다. 

[한송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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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생각마저 마비시키는 땅… 동유럽의 서정적 공기를 호흡하다

리투아니아 남부 드루스키닌케이의 구르타스 공원.
리투아니아 남부 드루스키닌케이의 구르타스 공원. 과거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점령된 당시 설치된 유적을 모아 전시했다. 레닌·스탈린·칼 마르크스 등 공산주의 지도자와 사상가의 조각상도 있다. /사진 작가=한민국
최근 나는 동유럽의 리투아니아라는 나라에 다녀왔다. 인구가 200만이 안 되는 발트해의 작은 나라. 계기는 이 나라에서 매년 가을 열리는 '드루스키닌케이 시축제'에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드루스키닌케이(Druskininkai)는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Vilnius)에서 3시간 정도 버스를 이용해서 가야 하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이 시골마을은 우리나라의 제주도처럼 요양지나 휴양지의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은퇴하거나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노인들이 산책하기에 좋은 평온한 도시이다. 실제로 이곳엔 온천이나 스파(SPA)를 테마로 하는 공간들이 꽤 있다. 1·2차 세계대전의 적전지를 공원화한 '드루스키닌케이 구르타스 공원'은 이곳의 필수코스. 동유럽산 동물과 마르크스의 석상 등이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그곳의 가을은 고엽이 된 포플러나무들 이파리들이 우주공간에서 우수수 떨어진 것처럼 가득하다. 도무지 사건이라고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평온하고 온유한 공기의 질감은 여행자의 불안과 여독과 귀소본능을 잠시 마비시킬 정도이다.

하지만 이 드루스키닌케이가 세계에 알려진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드루스키닌케이 시축제'이다. 이 축제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독창적인 시 페스티벌로 알려진 축제 중 하나. 이 시축제는 며칠간 세계의 시인들을 초청하고 동유럽에서 휴양온 사람들이 어울려 24시간 내내 조그마한 카페에 모여 술을 마시며 자신이 써온 시를 돌아가며 낭독한다. 소박하면서도 정취가 있는 클래식한 느낌이다. 물론 드루스키닌케이의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이 사람들을 하나로 만든다. 동유럽이라는 국가에서 사람들에게 시의 존재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혹자들은 시가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은 여전히 동유럽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자본의 논리에 맞서 아직 시의 뜨거운 노래들과 정신이 사람들의 내면에 표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사회주의와 유혈혁명을 지나간 자리에 쓰러진 술병들과 수많은 형식의 시들이 민중의 삶 속에서 공존하며 '노래하는 혁명의 땅'으로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피스 공화국 광장.
우주피스 공화국 광장.
내가 이 드문 도시 축제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축제를 처음 기획하고 현재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작가와 시인들을 직접 초청한 코르넬류스라는 한 시인의 초청을 통해서였다. 그는 리투아니아에서 문화부장관을 역임했고 대내외적으로 리투아니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인정받는 시인이다. 나는 그를 소설가 하일지 선생으로부터 몇 년 전 처음 소개받았는데, 한국에 그의 작품을 소개하거나 한국방문 때 낭독회를 직접 연출했던 인연이 몇 번 있었다. 한국 문단은 동유럽작가들의 문학세계, 그중에서도 리투아니아의 문학에 대해서는 거의 전무라 할 만큼 생소하다. 때문에 나는 그의 깊이 있는 시적 성찰과 서정적인 작품들이 갖는 신화와 은유의 세계를 한국의 독자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자신의 고향으로 다시 초청한 것이다. 조금 색다른 동유럽의 가을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평온과 시의 뜨거운 노스탤지어가 남아 있는 리투아니아로 한 번 날아가 보는 게 어떠냐고 권하곤 한다.


여행수첩

많은 사람에게 리투아니아라는 나라는 생소하다. 어디 쪽에 붙어 있는 나라지? 하는 물음부터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도 생소하다. 농담삼아 '음악감독을 하는 박칼린씨 정도의 엄마가 리투아니아인이야'라고 하면 그땐 좀 호기심을 보인다. 소설가 하일지의 '우주피스 공화국'의 실제 모델인 도시가 빌뉴스이며 이문열의 소설 '리투아니아의 연인'에도 이 도시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곳으로 묘사된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경청하기 시작한다. 리투아니아는 90년대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국어가 있으며 모국어에 대한 자존감이 강하다. 하지만 리투아니아가 하나의 독립국가로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은 것은 90년대 초반이다. 흔히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자매들이라 비유되는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함께 이 세 나라는 발트3국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중에 리투아나아의 수도인 빌뉴스는 발트3국의 문화적 교육적 중심지로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이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동유럽의 파리라고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며 예술공동체 마을인 '우주피스 공화국'이 실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내 중심의 서점 'MINT VINETU' 카페 'CAFE DE PARI'는 리투아니아 지성의 산실이다. 빌뉴스 대학생들이 모여 토론과 춤과 문화를 즐기는 곳이다. 이 카페에는 발트해 연안에서 잡아올린 굴 요리가 주 메뉴이며 만원 정도의 가격이면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저녁을 먹은 후 '빌뉴스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동유럽 예술가들의 모던한 설치예술이나 회화들을 감상해 보는 것도 빼놓지 말 것.

그리고 빌뉴스에는 실제로 우주피스 공화국(무료 입장)이 있다. 우주피스 공화국은 리투아니아어로 강 건넛마을이라는 뜻인데 이곳은 유럽의 예술독립가들이 자급자족하면서 창작하며 사는 공동체 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그중에서도 마을 입구의 '우주피스'라는 카페는 꼭 한번 권하고 싶다. 이 카페에서는 매년 각종 전시, 공연이 가득하다. 리투아니아 정부에서는 이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독립기념일인 4월 1일에는 축하사절단을 보내기도 한다. 재밌는 것은 소설가 하일지씨가 주한 우주피스 공화국 대사로 임명받아 현재 활동 중이라는 점. 당신도 동유럽에 가서 한 번쯤 우주피스 공화국의 시민이 되어보길 기대한다.

시내 중심의 '콩그레스 호텔(CONGRESS HOTEL·하루 40달러 정도)'은 특유의 중세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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