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나 백화점에만 원 플러스 원 상품이 있는 게 아니다. 여행에도 있다. 여행 고수들만 즐긴다는  경유 여행이다. 경유 코스 잘만 잡으면, 보너스로 한 국가를 더 찍을 수 있다. 끝내주는 원플러스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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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별한 보너스 여행편입니다. 이름하여 '스톱오버(경유) 여행지'. 비행기로 여행하는 자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게 바로 '스톱오버'입니다. 

경유 하니깐 벌써 갈아타기 귀찮으시다고요? 천만에요. 아예 경유 시간을 늘려 놓으면 볼거리 많고 가볼 만한 그 경유지 도시를, 제대로 둘러보는 원플러스 원 여행이 될 수 있는데요. 끌리시죠? 그럼, 출발합니다.


'스톱오버'
개념부터 알고 가자


스톱오버(Stopover) 개념부터 알고 가실게요. 

특정 도시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하여 최종 목적지에 가기 전, 경유지에서 24시간 이상을 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인천 출발, 홍콩을 경유하여 호주를 가는 스톱오버 항공편을 이용한다면, 호주뿐 아니라 홍콩도 여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꿀이득'이 되는 셈입니다.

아, 물론 헷갈리는 게 있습니다. 일반적인 환승·경유는 경유지에서 1~23시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스톱오버와 차이가 있답니다. 

또한 스톱오버의 경우 짐을 중간에 찾아야 하고, 환승은 최종목적지에서 찾는다는 점도 다르답니다. 스톱오버는 항공사별로 조건이 다릅니다. 

당연히 출발 전 주요사항 체크는 필수. 대체로 무료지만 따로 비용을 내거나 비자가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잊을 뻔했네요. 반드시 항공권 발권 전에 신청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스톱오버가 가능한 도시들을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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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톱오버 8대 
'공짜 포인트'
베이징 자금성 [사진출처=픽사베이] 

① 베이징: 화려하고 거대한 도시

스톱오버로 즐기는 첫 번째 여행지는 베이징입니다.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의 경우, 중국 항공사를 이용할 때 훨씬 더 저렴한 거 아시죠. 

게 말해 인천-파리 왕복 항공권  200만원대라면, 중국 베이징이나 상하이 출발로만 바꿔도, 100만원대로 다녀올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까지는 저가항공을 타고 가야겠죠? 

스톱오버로 베이징도 구경하고, 여행경비도 아껴 볼 수 있으니 일거양득. 화려함의 극치, 자금성과 만리장성, 로맨틱한 스차하이까지. 

게다가 스톱오버 땐 72시간 무비자 여행도 가능합니다. 무비자로 중국 찍고, 72시간 안에 제3국으로 떠나면 끝입니다.

홍콩 빅토리아 항구 [사진출처=픽사베이]

② 홍콩 : 홍콩의 야경도 스톱오버로

가볍게 떠날 수 있는 홍콩! 꼭 홍콩행 티켓을 끊지 않더라도 스톱오버로 홍콩의 야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홍콩을 거점으로 하는 캐세이퍼시픽(CATHAY PACIPIC), 홍콩 익스프레스를 이용할 땐 잊지 말고 스톱오버. 이게 여행고수들의 여행 공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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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사진출처=픽사베이]

③ 하노이: 쌀국수 왕창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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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호주지역으로 여행할 땐 베트남항공이 아주 유용합니다. 베트남의 경우 특별히 수도인 하노이, 호찌민 두 도시에서 스톱오버가 가능하니 이 역시 외워두면 좋겠죠? 

사고자 하는 항공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딜 가도 맛난 음식과 저렴한 물가가 기다리고 있는 도시가 바로 하노이랍니다. 잊지 말고 베트남까지 구경하자고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사진출처=픽사베이] 

④ 쿠알라룸푸르: 에어아시아와 크는 도시

이름도 낯선 쿠알라룸푸르. 발음도 어렵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이곳은 저가항공사인 에어아시아와 말레이항공의 인기에 힘입어 관광도시로 쑥쑥 크고 있답니다. 

다민족 국가인 만큼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가 공존하고 있어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독특한 볼거리들이 가득합니다. 야경까지 멋진 도시라니 말 다한 거 아니겠어요. 스톱오버로 공짜니, 더할 나위 없겠죠?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전경

⑤ 싱가포르 :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곳

불안합니다. 어딜가나 안전한 곳이 없지요. 이럴 때 해외여행, 싱가포르만 한 곳이 없지요. 치안 좋고 깨끗하기로 유명한 나라 싱가포르. 스톱오버 여행지로도 인기만점입니다.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데다가 유니버셜 스튜디오, 멀라이언 파크 등 볼거리도 많고 칠리크랩, 카야토스트와 같이 맛난 음식까지. 

여성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여행지 싱가포르. 같이 갈 친구들 다 소환하시면 됩니다. 아, 스톱오버 노하우 공개하시면 "야, 너 여행 도사다"칭찬도 덤으로 따라옵니다.

두바이 전경

⑥ 두바이: 사막 위에 세워진 꿈의 도시

두바이가 모래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것과 7성급 호텔이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계시다고요? 하지만 이건 모르셨을 겁니다. '스톱오버 여행지'로도 유명하다는 것. 

'꽃할배' 시리즈 기억나시죠? 그때도 로마로 향할 때 잠깐 찍은 곳이 두바이거든요. 아랍에미리트의 거대한 도시 두바이. 꽃보다 할배에서 할배들이 분수쇼를 보고, 이서진이 왕족을 만났던 바로 그곳이랍니다. 아, 글쓰다 보니 당장 비행기표를 끊고 싶네요.

터키 이스탄불 [사진출처=픽사베이]

⑦ 이스탄불: 유럽의 스톱오버는 여기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 터키도 있답니다. 이국적인 모스크와 다양한 액티비티가 기다리고 있는 터키. 예로부터 형제의 나라라 불리며 인기가 있었죠. 

요즘 테러 분위기에 휩쓸리면서 다소 불안하긴 합니다만 어떻습니까. 로맨틱한 동유럽의 정취가 가득한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스톱오버하여 재미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데. 터키, 누구에게나 한번쯤 가고 싶은 그런 도시거든요.

모스크바 크렘린 [사진출처=픽사베이]

⑧ 모스크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러시아. 신비로움을 간직한 러시아도 스톱오버를 통해 이용할 수 있답니다. 

항공권에 따라 추가 요금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지만, 붉은광장, 크렘린, 성 바실리 성당 등이 있는 모스크바를 그냥 지나치긴 아쉽겠죠. 이제는 공항을 벗어나 보자고요. 당당하게. 스톱오버로.


알록달록, 테트리스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바실리 성당의 별명은 일명 ‘테트리스 성당’ 이다. 유명한 게임 테트리스의 첫 화면에 나오면서 수많은 사람의 인상에 선명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중독 시켜 “KGB의 음모다”라는 말까지 들었던 테트리스의 알록달록함은 이제 모스크바의 한 면을 이루고 있다. 바실리 성당의 이미지뿐 아니라, 힘차게 다리를 내뻗는 러시아 민요춤의 이미지도 테트리스의 고향이 모스크바임을 확연히 보여준다.


다양한 색의 도형, “테트로미노”의 향연인 테트리스도 처음 만들었을 때는 색깔도 소리도 없었다. 테트리스를 만든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소비에트 과학원에서 음석인식과 컴퓨터 디자인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연구원으로 러시아의 퍼즐인 ‘펜토미노’에서 영감을 얻어 1984년에 처음 이 게임을 개발했다. 이후 동유럽, 헝가리를 거쳐 서방으로 넘어가면서 명실상부한 역대 최고의 게임으로 인정받았다. 1989년 미국 소프트웨어 배급협회에서 최초로 4개 부문을 석권하기도 한 이 게임은 아케이드 버전, 휴대용 게임, 콘솔 게임, 모바일 게임 등 무려 59개의 게임플랫폼에서 위용을 떨쳤다. 수많은 법정분쟁만큼이나 요란한 인기였다. 한 게임잡지는 이 게임에 대해 “믿지 못할 만큼 간단하고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중독적이다”라고 논평했다.


당시 개인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던 소련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게임의 인기와 상관없이 돈을 벌지 못했던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이후 미국으로 넘어가 96년경부터 마이크로소프트와 테트리스 컴퍼니에서 일하면서 게임개발자들의 영웅으로 [해트리스], [클락웍스] 등의 게임을 만들며 계속 활동하고 있다.



붉은, 광장

붉은 광장”은 모스크바의 붉은 심장일 테다. 크렘린의 전면에 펼쳐진, 레닌의 묘가 있는 광장. 예전부터 차르의 선언, 판결, 포고가 내려지던 곳. 지금도 메이데이와 같은 행사나 사열식이 이루어지는 곳. 그러나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이 광장은 붉지 않다. 바닥에 깔려있는 포석은 다갈색이며, 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 가장 넓은 부분이라고 해봐야 겨우 너비 100m, 길이 500m 가량에 지나지 않는다.


붉은 광장이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때는 17세기 말이다. 그 이전에는 상업광장, 화재광장 등으로 불렸다. “끄라스나야”는 고대 슬라브어로 ‘붉은’이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결혼식을 따르는 행렬을 ‘붉은 행렬’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붉은 아가씨’라 부르기도 한다.

붉은 광장에서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다.


붉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이미지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예술품”으로 불리는 바실리 성당,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굼 백화점, 역사박물관과 크렘린 성벽을 배경으로 한 레닌묘, 스빠스까야 탑이 붉은 광장을 중심으로 한곳에 모여 있다.


세라믹 타일로 화려하게 장식된 바실리 성당에는 이 성당을 너무나 사랑한 이반 대제가 또다시 이토록 아름다운 건물이 지어질까 두려워 건축가 두 명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후 1919년 8월 KGB가 성당의 성직자를 총살시키고 1929년에는 역사박물관에 넘겨지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1936년에는 철거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하였으나 간신히 위기를 넘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90년부터는 이 성당에서 예배가 다시 시작되었다.


레닌묘가 있는 크렘린 성벽 아래는 일종의 공동묘지이다. 현재 230여 개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데, 트로츠키, 스탈린, 흐루시초프, 막심 고리키 등의 흉상을 그들의 무덤 앞에서 볼 수 있다. 레닌묘는 현재 붉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그 안에는 검은 양복을 입고 반듯하게 누워있는 레닌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검은, 크렘린

냉전 시대, 널리 알려졌던 소련의 이미지는 ‘크렘린’과 ‘검은’을 찰떡처럼 붙여놓았다. 그들의 음험함,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함, 비열한 계산속 등을 몽땅 ‘검다’는 표현 속에 우겨 넣어 크렘린 위에 발라버린 것이다. 그러나 사실 크렘린은 검지 않다. 온갖 아름다운 성당과 건물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현재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다채로운 색으로 다가간다. 원래 크렘린의 의미는 고대 러시아에서 쓰이던 보통명사로, ‘도시 내부의 요새, 성벽’이다.

러시아 내의 오래된 도시들은 다 크렘린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모스크바의 크렘린이 가장 유명하며, 러시아어 대문자로 시작할 경우 보통 모스크바의 크렘린을 말한다. 1156년 모스크바를 만들었다고 알려진 유리 돌고루키 공이 처음 만들었다고 하는 이곳은 러시아의 역사의 증언자다. 귀족들의 결혼식, 짜르의 대관식, 온갖 출정식 등의 공식 행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독특하게도, 크렘린 내부에는 성당이 많다. 3대 성당인 성모승천교회와 성수태고지교회, 대천사교회 이외에도 많은 교회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모스크바의 정중앙이라고 알려진 곳에 있는 높이 100m의 이반대제종탑은 한때 모스크바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레닌이 기거하기도 했던 노란색의 화려한 대통령 궁에서는 지금도 대통령이 집무를 보고 있어 관광객의 출입을 막고 있다. 현대식 디자인의 크렘린 대극장도 어깨 겯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구상에서 실전용으로 만든 것 중에는 가장 크다고 알려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거대한 포와 한번도 울리지 못한 거대한 종도 볼 수 있다. 너무 커서 종탑에 설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전시용으로만 놓여 있다고 한다.


크렘린의 아름다운 건물들은 제각각의 매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푸른 막대기가 숨겨진, 야스나야폴랴나

모스크바의 쿠르스카야 역에는 야스나야폴랴나로 가는 특급열차가 있다. [안나 카레리나]에서 브론스키는 전쟁터로 떠나기 위해 이 역에서 이별을 한다. 야스나야폴랴나는 톨스토이의 생가와 묘지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 가면 대문호 톨스토이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검은 소파와 톨스토이의 무덤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이곳에는 푸른 막대기의 전설이 내려온다. 톨스토이의 맏형 니꼴라이는 “이 숲에는 푸른 막대기가 숨겨져 있는데, 그 막대기를 찾은 사람은 전 세계 인류를 이해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늘 말해왔다. 어린 톨스토이와 그의 형제들은 그 막대기를 찾아 영지의 숲 속을 돌아다니곤 했다고 한다. 나이 들어서도 그 막대기를 잊지 못하던 톨스토이는 가장 사랑하던 셋째 딸에게 바로 그 숲의 계곡에 무덤을 만들어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비석도 없이 조촐한 그의 무덤은 그 유언에 따른 것이다.

덜 알려진 사실이지만 톨스토이는 꽤 심각한 노름꾼이었는데, 한번은 노름 끝에 야스나야폴랴나 저택을 잃고 말았다. 그에게 있어 자기가 나고 자란 이곳을 잃는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태어난 영지인 야스나야폴랴나를 특별히 사랑했다.


그는 일기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야스나야폴랴나 저택-나는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나 자신에게 구역질이 나서, 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이다.”라고 쓰며 괴로워했다.

그는 결국 백방으로 수소문하다 소설 한 편을 급히 써주기로 하고 계약금으로 영지를 되찾았다. 농노가 해방되고 지주들의 토지가 그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꽤 넓은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준 그였지만, 그가 이 땅에 가졌던 애착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가 이 에피소드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구의 정신적인 자오선은 야스나야폴랴나를 지나간다”고 한 러시아의 시인의 말은, 톨스토이에 대한 존경의 뜻이자 그가 뿌리를 내렸던 이 땅에 대한 경의의 뜻이라 봐야 할 것이다.


몇 차례 모스크바에서 야스나야폴랴나까지 도보여행을 하기도 했던 그는 결국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82세의 나이로 영지를 떠난 그는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아스타포보라는 작은 역의 역장 관사에서 눈을 감았다.



별빛 속을 날던 기억, 모스크바 우주박물관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는 유리 가가린이다. 그는 1961년 4월 12일 우주선 바스똑-1호를 타고 1시간 29분 만에 지구 상공을 일주하고 귀환하였다. 냉전상황 속에서 미국과 우주를 향한 치열한 경쟁을 하던 소련에서 그는 일약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 그는 아쉽게도 1968년 비행훈련 중 추락사하였는데, 그 뒤 유명한 혁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크렘린 벽에 묻혔다. 모스크바 시내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별빛 속을 가르는 우주에의 꿈은 2차대전 이후의 소련에게 절박한 것이었다. 미국과의 자존심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총력을 다하던 그들은 1957년 세계 최초로 지구궤도에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했다.

스푸트니크 2호는 한발 더 나아가 최초로 생명체를 태운 우주선으로 계획되었고, 거리의 개인 ‘라이카’가 우주를 여행하는 최초의 지구생물체로 선발되었다. 라이카 덕분에 사람들은 무중력 상태에서도 지구 생물이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라이카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애초에 돌아올 수 있도록 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우주선이기도 했지만 우주선의 문제로 발사 후 실내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 다섯시간 만에 죽고 만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라이카가 독극물이 든 먹이를 먹고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모스크바 우주박물관은 세계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우주정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64년에 세운 100m 높이의 거대한 ‘스페이스 오벨리스크’ 하단부에 자리잡고 있다. 기념비의 정상에는 우주선 모형이 위풍당당하게 올라서 있다. 우주박물관에는 유리 가가린의 초상화와 인류 최초의 여자 우주비행사 발렌찌나 테레슈꼬바의 흉상, 최초의 자동월면차 루나호트-1호, 라이카를 기념하는 조형물, 우주선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주정복에 대한 소련의 집념은 인류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을 낳았다.



노랑 자켓의 사나이, 마야코프스키

마야코프스키는 아방가르드한 포스터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러시아의 혁명시인 마야코프스키는 모든 것이 강렬했다. 시가 강렬했고, 인상이 강렬했고, 사랑이 강렬했고, 혁명적 태도가 강렬했고, 서른여섯의 나이에 권총으로 마감된 죽음이 강렬했다. 미래파 운동을 주도하고 독특한 실험 시를 쉬지 않고 발표했던 그는 이미 열다섯 살에 노동당원이 되었고 어린 나이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모스크바 미술학교에서 열 살 많은 친구인 미래파 화가 다비드 브를류크를 만난 그는 1912년 브를류크가 작성한 미래주의 선언문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에 서명하고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1914년 그는 밝은 노란색 블라우스를 입고 등장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시인인 스테판 쿠즈바이트는 “마야코프스키의 노란색 셔츠”라는 시를 써 그 놀라움을 표현했다. 이는 미래주의 시운동을 위한 해프닝으로, 그의 동료는 뺨에 새 그림을 그리고 등장하기도 했다. 그 사건에 대해 마야코프스키는 말했다.

“나는 양복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꾀죄죄한 셔츠가 두벌 있었을 뿐이다. 경험에 비추어 넥타이로 가리면 좀 나을 것 같았다. 돈이 없었다. 누나한테 노란색 천을 얻어 몸에 감았다. 성공. 이는 즉, 인간에게서 가장 눈에 띄고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넥타이라는 뜻. 따라서 넥타이를 확대하면 성공도 확대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넥타이의 크기란 한정되어 있으므로 나는 꾀를 부렸다. 즉, 넥타이 같은 재킷, 혹은 재킷 같은 넥타이를 만들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결국 그의 노란색 블라우스, 혹은 셔츠, 혹은 튜닉이라 기억된 그의 옷은 넥타이의 확대판이었던 셈이다. 시뿐 아니라 미술에까지 걸쳤던 그의 작품들은 마야코프스키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형형색색, 빅토르 최 골목

대학로나 명동에 비교되곤 하는 모스크바의 번화가 아르바트 거리에는 빅토르 최의 이름이 붙은 작은 골목이 있다. 그가 무명시절에 노래를 불렀다는 골목이다. 길이는 채 100m가 안 되지만 빅토르 최를 잃은 슬픔은 깊다. 매년 8월 15일은 그가 28세의 나이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은 날로,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은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젊은이들로 늘 북적북적하다. 그를 추모하는 벽, 스찌나 쏘야는 그에게 바치는 낙서가 형형색색 아로새겨져 있다. 아직도 꽃다발이 바쳐지고, 아직도 담뱃불을 향처럼 피워놓는 곳. 그의 팬들은 관광객의 호기심에 찬 카메라를 거부한다.


빅토르 로베르토비치 최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록그룹 키노의 리더로, 유명한 록가수다. 러시아 록 음악의 최고참인 유리 솁축도 “러시아 록 음악의 시초”라고 인정하는 이다. 소련 역사를 움직인 13명 중의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빅토르 최는 러시아 록의 전설이자 영웅이다.

고려인 2세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미지인 그의 노래 몇 곡은 한대수, 윤도현 등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정치적인 메시지로 가득 찬 반항적인 가사의 곡으로 젊은이들을 흔들었던 그는 영화를 찍기도 했으며, 영화 홍보를 위해 미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굉장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아파트 빌딩의 보일러실에서 화부로 일하며 살았는데, 그것은 그가 소련정부의 환영을 받지 못했던 데도 그 이유가 있다. 소련의 잡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그의 사후 그에 대해서 “그를 믿지 않을 수 없다. 대중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 삶의 모습이 다름없는 유일한 록커가 빅토르 최이다. 그는 그가 노래 부른 대로 살았다. 그는 록의 마지막 영웅이다."라고 평했다.

 

삶의 끝자락서 안나가 묻는다… 당신은 바른가

"너희들. 인간이 왜 나쁜 사랑에 그렇게 매혹되는 줄 알아? 절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지. 카슨 매컬러스의 말이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비텝스키(Vitebsky) 기차역.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비텝스키(Vitebsky) 기차역. 19세기 러시아 고관의 아내인 안나는 기차역에서 젊은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안나는 불륜이라는 비난에도 남편과 자녀를 버리고 사랑을 좇았지만, 브론스키마저 자기를 떠나려 하자 스스로 기차에 몸을 던진다. / Corbis·토픽이미지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을 읽던 밤, 나는 별수 없이 불륜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나쁜 사랑의 대표 격으로 기껏 불륜, 외도 같은 말만 떠올리는 내 빈약한 상상력이 한심하긴 했지만. 그리고 "불륜이란 다른 생에 대한 갈망" 이라고 말하던 광고인 박웅현을 떠올렸다. 그가 '안나 카레니나 프로젝트'를 가지고 한국신경정신과 협회가 주관하는 박람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나는 좀 의아했다. 그래서 "왜 광고 회사가 신경정신박람회에 부스를 만들어요?" 하고 되물었다.

"안나가 불륜 끝에 자살하잖아요. 안나의 얘기에 우리 생활 속 우울증의 이유가 거의 다 나와요. 그걸 현실에 적용해 본 거예요. 예를 들어 안나랑 브론스키의 만남을 어떻게 했느냐면, 나는 지금 결혼해서 한 5년차쯤 되고 아들과 남편이 있고 잘 살고 있다 쳐요. 그런데 어느 날 청담동 파티에 갔는데 정우성이 와서 나한테 호감을 표하네? 어떡할 겁니까. 화장실에 갔다 오면서 또 마주쳤는데, 잠깐 시간 있느냐고 하는데 어떡할 거야? 정우성 같은 그 남자랑 얘기를 해봤더니 어라, 잘 통하네? 어떡할 겁니까! 이게 지금 다 안나예요. 수많은 안나와 브론스키가 있죠. 청담동 압구정동에도 있고, 미아리 광화문에도 있고."

그의 얘길 듣다가 한참을 웃었다.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 부르는 것들을 읽고 보는 건 무엇 때문일까. 고전이 전화번호부만 한 그 악랄한 두께로 보통 사람을 질리게 하는 건 세계 공통인데도 말이다. 고전에 대한 엄숙함을 잠시 접어두고, 다소 불량스럽게 얘길 하자면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과 전쟁'의 19세기 러시아판이다. 그것은 남들이 보기에 부족할 것 없는 고관대작의 부인 안나가 젊은 장교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자기와 이혼해 주지 않는 남편과 어린 자식들 사이에서 지독한 불행을 견디지 못한 그녀가 달리는 기차에 스스로 몸을 날려버린다는 내용이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마침표를 찍은 건 마흔아홉. 톨스토이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세계관이 크게 바뀌는데,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통렬한 심정으로 참회록을 쓰기에 이른다. 참회록 집필 후,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전 인류에게 훈계하는 계몽주의적 스승으로 극적인 변환점을 맞는다. 굳이 톨스토이가 안나를 비극적 죽음으로 내몬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그녀의 사랑이 불륜이었기 때문일까. 아마도 교과서적 답이라면, 비극적 죽음을 통해 당시 러시아 귀족 사회의 연애와 결혼 제도, 생활 방식과 가치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는 답이 아니라 자기만의 질문을 끝없이 재발명하기 때문이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를 본 건 우연한 일이었다. 여의도에 생긴 몰(mall)에서 회의 중 발생한 심각한 문제 때문에 좀 많이 늦어진다는 친구의 문자를 받던 날, 나는 커피를 마시는 대신 영화를 보았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안나로 등장하는 이 영화가 소설을 얼마만큼 반영했느냐가 아니라, 나는 그녀가 안나의 비극을 얼마나 훔쳐냈는지를 보고 싶었다. 안나를 유혹하는 브론스키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안나의 남편 카레닌 쪽에 훨씬 더 관심이 갔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름다운 남자의 대표 격인 '주드 로'가 브론스키가 아닌 '카레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속 그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세월이 주드 로에게 그럴 듯한 주름살을 만들어주는 동안, 내 편견과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을 말이다. 삼십대의 마지막에 보는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사는 게 나쁘다!'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가?'라는 선뜻 대답하기 힘든 질문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읽을 때마다 예전에 그은 밑줄이 달라지면 달라질수록, 좋은 소설이란 편견을 꽤 오랫동안 유지해온 나 같은 사람은 안나 카레니나를 좋은 소설이라 권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역시 좋은 소설이다. 왜냐하면 마침내 나는 십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 테레사가 자기 '충견' 이름을 왜 '카레닌'이라고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레닌은 테레사가 보기에 타고난 희생양이었고, 그녀는 자신을 이 19세기 러시아 남자와 동일화한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는 순간까지 친구는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은 안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기차에서 시작된 사랑이 기차와 함께 끝나는 그토록 수미일관한 풍경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기차에서 시작된 사랑이 기차에서 끝날 리 없다. 삶이란 우연과 플롯을 분별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의 사랑이나 이별이란 인과관계와 하등 상관없는 '돌연' 혹은 '불현듯'이란 말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 포스터

극장에 붙어 있던 영화 포스터를 보다가 나는 안나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 세계의 여자들이 다른 삶에 대한 갈망을 안고 산다는 걸 불현듯 훔쳐본 사람의 눈빛으로 극장을 나오는 여자들을 세세히 바라봤다. 혹시 친구가 늦게 오는 건 회의 때문이 아니라 다른 것 때문은 아닐까? 멀리 친구 모습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장시간 회의에 찌든 그녀가 브론스키와 춤을 추던 안나처럼 아름다워 보였던 건 아마도 내 불온한 상상력 덕분이었겠지만.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부활'과 더불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이다. 농노제 붕괴에서 러시아혁명에 이르는 역사적 과도기에 놓인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의 풍속과 내면생활을 150명이 넘는 등장인물과 사실적인 묘사, 엄청난 깊이와 힘으로 반영해냄으로써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당대 작가들에게서 '완전무결한 예술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을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돼 역사적 시대에 예술적 공식을 이끌어낸 작품의 전범으로 후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안나 카레니나 1
국내도서
저자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 연진희역
출판 : 민음사 200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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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더 쉽게 다가가는 러시아의 양대 보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는 러시아 최대 도시다. 도시의 이름은 모스크바강의 이름을 따라 명명됐다. 1147년 러시아 정교 수도사들이 기록한 연대기에 처음 그 이름이 등장한 모스크바는 당시만 해도 키예프 공국의 한 촌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 초부터 1918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수도를 대신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14세기부터 지금까지 러시아의 수도로서 그 지위를 공고히 해왔다.

러시아 북서쪽에 자리한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수많은 섬 위에 세워진 도시로 ‘북방의 베니스’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예전에는 페트로그라드와 레닌그라드란 이름으로 불렸다. 도시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은 궁전과 성당, 여러 조각은 이 도시의 찬란했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2014년 1월부, 한국과 러시아 비자 면제 협정 발효로 보다 편리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문화·예술의 두 축을 이루는 이들 도시로 떠나보자.

[모스크바]

붉은 광장, 붉은 광장 아이스링크
붉은 광장, 붉은 광장 아이스링크
붉은 광장은 모스크바 여행의 기점이자 제1의 명소다. 주변에 크렘린, 성 바실리 성당, 레닌묘, 국립역사박물관 등 명소들이 즐비하다. 7만 3천 평방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광장은 구 소련 시절, 5월 1일 메이데이와 11월 7일 혁명기념일이 되면 웅장한 퍼레이드 행사가 펼쳐졌던 곳이다.

성 바실리 성당, 크렘린 등 역사적 건물 즐비

성 바실리 성당
성 바실리 성당
성 바실리 성당은 이반 대제가 몽골의 카잔 칸을 항복시킨 것을 기념하여 1555년에 건립을 시작, 1560년에 완성한 건축물이다. 러시아 정교회 건물 중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양파 모양을 한 47미터 높이의 중앙 지붕과 그 주위를 둘러싼 높이가 다른 8개의 지붕이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러시아어로 ‘성벽’을 의미하는 크렘린은 중세에는 각 지방에서 만들어졌다. 그중 모스크바 크렘린은 여러 측면에서 러시아의 중심을 표현한다. 모스크바 한가운데에 자리해 지리적인 중심이고, 대통령과 각료 집무실이 들어서 있기에 정치와 권력의 중심이다. 또한 러시아 문화와 역사의 중심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크렘린은 나폴레옹군의 모스크바 입성 때 발생한 대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이후 현재와 같이 20개의 탑을 가진 모습으로 재건됐다.

크렘린 궁전, 모스크바 구세주 성당
크렘린 궁전, 모스크바 구세주 성당
내부에는 대통령 집무실, 원로원, 12사도 사원, 이반 대제의 종루, 우스펜스키 대성당, 블라고베시첸스키 성당, 아르항겔리스키 성당, 그라노비타야 궁전, 대크렘린 궁전, 무기고 등 역사적인 건물이 즐비하다.

구세주 성당은 시내 중심부 모스크바강에 인접해 있다. 러시아가 1812년 12월 나폴레옹군의 침략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건립한 러시아 정교사원이다. 스탈린 통치 시절에 파괴되었지만 구 소련 붕괴 후 정부의 재정 지원 및 국민 성금을 통해 재건됐다. 성당은 비잔틴 양식 기초 위에 러시아 전통의 교회 건축 양식에 따라 지어졌다. 좌우 대칭의 외형을 지니고 있으며, 내부는 많은 성화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러시아 문화ㆍ예술의 정수, 모스크바

모스크바 여행의 또 다른 특별함은 곳곳에서 러시아 문화, 예술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인 볼쇼이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이뤄진다. 현 극장 건물은 1824년 건축된 것으로 전면의 그리스식 원기둥과 지붕 위의 로마식 전차 장식이 눈길을 끈다.

모스크바 전경
모스크바 전경
트레차코프 미술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더불어 러시아 2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19세기 공업 자본가였던 트레차코프가의 파벨르와 세르게이 두 형제가 수집한 미술품들을 근간으로 소장품이 5만여 점에 이른다. 안드레이 류블료프의 ‘삼위일체’를 비롯해 러시아 미술의 걸작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두고 ‘유럽을 향해 열린 러시아의 창’이라고 했던 푸시킨의 표현처럼, 이 도시는 서유럽의 여러 문화에 대해 열려 있었다. 이에 따라 건축을 비롯한 다양한 삶의 양식은 물론 자유주의 사상도 함께 유입됐고,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후에 제정 러시아의 근간을 뒤흔들고 결국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성공시킨 도시로 만들었다.

세계 3대 박물관, 에르미타주

여름 궁전
여름 궁전

이 역사적인 도시의 백미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이다. 역대 황제의 거처와 부속 건물로 이뤄진 미술관으로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현재 조각, 미술품, 발굴 물품 포함 약 250만점을 전시, 1점당 1분씩 감상하더라도 5년이 소요될 만큼 방대한 양의 전시품을 소장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후원으로 한국어 작품 안내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최초로 표트르 대제의 딸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가 미술품을 수집, 궁전에 전시한 이래 예카테리나 2세가 유럽에서 4천여 점에 달하는 최고 수준의 미술품을 구입했고, 이후 소장품은 계속해서 늘어갔다. 건물 자체도 굉장히 화려해 그 당시 황실의 권위를 한눈에 엿볼 수 있다.

층별로 보면 1층은 원시문화, 구소 동방민족의 문화·예술, 고대 세계문화·예술, 2층은 러시아 문화, 19세기 서유럽 예술(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등), 3층은 근대에서 현대까지 서유럽 예술, 동방문화, 고대화폐 등을 전시하고 있다.

성 이삭 대성당은 제정 러시아 시대의 최고 건물이다. 무려 40년에 걸쳐 지어진 성당은 길이 111미터, 폭 97미터, 높이 101미터로 1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 규모를 자랑한다. 성당 지붕의 원형 돔 건설에는 100킬로그램의 금이 사용되었다 한다. 내부장식에는 22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서 내용을 묘사한 그림 150점, 모자이크 62점, 성당 장식 동상 300여 점 등 뛰어난 예술품이 가득하다.

네바강 하구, 그리스도 부활성당
네바강 하구, 그리스도 부활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 핀란드만이 보이는 곳에는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이 있다. 표트르 대제의 여름 궁전으로 1714년 수많은 건축가, 조경기사, 조각가가 참여해 건설했다. ‘위 공원’과 ‘아래 공원’으로 구분되며, 위 공원에는 표트르 대제의 별궁이 있고, 아래 공원에는 조각상과 분수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네바강 하구에 자리한 토끼섬이라는 이름의 작은 섬에는 이 도시의 중추와도 같던 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요새가 남아 있다.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으로부터 러시아를 지키기 위해 건설했다. 요새를 둘러싼 두꺼운 벽은 높이 12미터, 폭 4미터로 5개의 문이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1706년부터 짓기 시작해 약 35년이 걸려 완성됐다. 6개의 성채 가운데 네바강을 향한 나리시킨스키 성채에서는 매일 정오를 알리는 공포를 쏜다.

1881년 5월 1일,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로 암살 당한 자리에 지어진 그리스도 부활성당은 16~17세기 러시아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 피의 사원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성당의 인테리어는 각기 다른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으며, 수천 개의 조각으로 구성된 모자이크로 처리되어 인상적이다. 외형은 흡사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있는 성 바실리 성당을 떠오르게 한다.

‘혁명 희생자의 광장’의 꺼지지 않는 불

마르스 광장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부에 위치한 공원이다. 오랜 세월 군사 행진과 훈련 장소로 쓰였기 때문에 마르스 광장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원래 이 장소는 ‘큰 풀밭’이라고 불렸으나 대북방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즐거운 풀밭’으로 이름이 변경됐고, 18세기 후반에는 다시 ‘차르의 풀밭’으로 명명됐다. 이후 볼셰비키가 1917년 2월 혁명 중 학살당한 많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꺼지지 않는 불을 설치했고, 이 광장에 ‘혁명 희생자의 광장’이란 이름을 붙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야경
상트페테르부르크 야경
모스크바에 볼쇼이 극장이 있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마린스키 극장이 있다. 역사적인 오페라, 발레 극장이다. 세월을 거치면서 ‘황실 마린스키 극장’, ‘국립 오페라와 발레 아카데미’, 그리고 세르게이 키로프의 이름을 따서 ‘키로프 오페라와 발레 아카데미 극장’(약칭 키로프 극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현재 이름은 알렉산드르 2세의 부인인 마리아 알렉산드로프나 황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은퇴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인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음악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 기사제공 : 대한항공 스카이뉴스(www.skynews.co.kr)
※ 자료 협조 : 러시아문화원(www.russiacenter.or.kr) / 메디오루스(www.mediorus.com)

서울/인천~모스크바
대한항공 주 5회 운항 (약 10시간 5분 소요)

서울/인천~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한항공 주 2회 운항 (약 9시간 50분 소요)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 참고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모스크바

러시아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 앞 호수. 차이콥스 키는 이곳에서 발레음악‘백조의 호수’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북위 55도에 위치한 모스크바는 1년 중 100일 넘게 비가 오고 70일 넘게 눈이 내린다. 하지만 두 세기 전만 해도 이 잿빛 도시는 푸시킨, 톨스토이, 차이콥스키, 도스토옙스키 등 예술 거장(巨匠)들을 낳았다. 독일 프로이센까지 진출하던 제국의 중심이기도 했다. 공산주의 시기를 거친 오늘날엔 전 세계에서 가장 부자가 많은 도시라 불린다. 지난 3월 미(美) 포브스지(誌불)는 전 세계 억만장자 1011명 중 가장 많은 79명이 모스크바에 산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방문한 모스크바에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다.

◇레닌이 깜짝 놀랄 민영 백화점

구소련에 공산주의를 심었던 레닌이 지금 살아 이 건물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굼(GUM)백화점. 모스크바의 중심지 붉은 광장, 레닌의 시신이 박제가 돼 누워있는 곳의 건너편에 있는 백화점이다.

원래 명칭은 국영백화점(Glavny Universalny Magazin). 단어의 첫 글자만 따서 '굼(GUM)'이라 불렀다. 소련 붕괴 후 1993년 민영화되었지만 명칭은 그대로 '굼백화점'이다. '화려하고 부유한 도시 모스크바'를 상징하는 곳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굼 백화점 내부. 200m가 넘는 통로를 따라 좌우로 세계의 각종 명품 브랜드숍이 늘어서 있다. 빈부 격차가 심한 모스크바에서 이곳은 부유층이 즐겨 찾는 곳이다./오현석 기자 socia@chosun.com
1893년에 지어진 건물은 아케이드 양식이다. 중앙의 분수대에서 좌우로 길이 뻗어 있고, 그 좌우로 3층에 걸쳐 상점이 입점해 있다. 길의 길이만 242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천장은 유리로 만들어 놓아 자연의 빛이 그대로 들어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백화점 내부는 쇼핑하기 적합하다. 수백개의 상점들은 하나하나가 구찌, 샤넬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들이다. 백만장자들이 즐겨 찾는 백화점이라서 그런지 길 한가운데 명품 자동차를 전시해놓기도 했다.

러시아의 현대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아르바트 거리다. 우리로 치면 대학로쯤 되는 젊은이의 거리다.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주고, 악사들이 악기를 연주한다. 최신식 레스토랑과 선물 가게도 즐비하다. 이곳 입구에는 푸시킨이 살던 집과 그의 동상이 있고, 좀더 들어가면 한국계 록 가수 고(故) 빅토르 최를 기리는 벽을 볼 수 있다. 알록달록한 그라피티가 뒤범벅되어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가 빅토르 최에 대한 글과 그림임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빅토르 최는 교통사고로 죽은 지 21년이 지나도 여전히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살아 있다.

아르바트 거리에서 조금 걸어 차이콥스키 국립음악원 근처로 가면 마치 뉴욕과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다. 예술 전공 학생들의 아지트인 이곳의 술집에선 담배를 문 노(老)피아니스트가 하는 즉흥 연주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동·서양 양식 혼합된 고(古) 건축물

러시아의 최첨단이 즐겁더라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옛 건축물들을 보지 않으면 어리석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접점(接點) 러시아에서만 있는 건축 양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크렘린과 붉은 광장에 모여 있는 러시아 정교회 사원들이 눈에 띈다.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던 우즈펜스키성당, 황실 예배당으로 쓰인 블라고베르첸스키사원들은 모두 지붕이 양파 모양으로 돼 있어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이다.

붉은 광장 남쪽의 상크트바실리대성당도 유명한 건축물이다. 알록달록한 색의 이 성당이 친숙하게 느껴진다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보면 된다. 누구나 한 번씩 밤을 지새웠던 PC게임 '테트리스'에 배경으로 나왔던 바로 그 건축물이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럭셔리'한 장소는 어디일까. 거리에서 만난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니 귀에 익은 이름이 나왔다. '롯데호텔<사진>'. 우리나라의 고유 브랜드 호텔인 롯데호텔, 그것이다.

지난해 9월 오픈한 '롯데호텔 모스크바'는 '상위 1%만 공략한다'는 마케팅 전략으로 한국에서보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했다. 팝스타 에이브릴 라빈, 토니 브랙스톤, 샹송 가수 라라 파비안, FC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축구선수 사무엘 에투가 투숙료를 100% 내고 이곳에만 묵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호텔 2층에 오픈한 프랑스 레스토랑 '피에르 가르니에'의 인기가 대단하다. 이 식당은 지난 10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러시안 스탠더드뱅크가 함께 주최하는 시상식에서 '모스크바 최고의 식당'에 선정되기도 했다. 호텔 지하에 오픈한 뉴욕의 최고급 일식집 '메구(Megu)'도 외교관과 기업 CEO 등 러시아 최상류층이 즐겨찾는 명소라고 호텔 측은 설명했다.


굉장히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신혼여행으로 다들 아시는바와 같이 악명높은 러시아항공을 타고 프라하로 가는 길입니다.

지금 현재 러시아 공항Moscow Sheremetyevo(SVO) 게이트 F지역에 All Star Lounge인데요.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러시아공항 라운지는 동반1인 무료입니다.


인천공항 마티니 라운지는 동반 1인 26000원 결재했었는데

여기는 무료이네요


경유 대기시간이 4시간이라서 고민하다가 올라왔는데

러시아 공항은 동반인이 무료이네요.. 혹시 행여나 시간이 애매하거나

동반인 가격땜에 고민되시는 분들은

고민하지 말고 오세요. 


다만!?

라운지는 전체적으로 분위기나 느낌이 좋은데 정말

먹을 건 없네요.. ㅋㅋ 돈내고 들어왔으면 와이프한테 욕먹을 기세입니다.


PP어플 보시는바와 전혀 다를바 없고 괜찮네요... 다만 확실히 먹을 것은 없습니다.












본글과 무관하지만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은

항공권 티켓을 잘못 예매해서


인천-러시아-프라하    러시아항공 왕복 예매를

인천 러시아 프라하 / 파리 러시아 프라하 로 변경했는데

1인당 70만원 짜리 항공권에서 변경 수수료 160달러씩 물렸내요

그래도 바꿀수있음에 감사해하고 있씁니다. 


혹시 비슷한 경우 겪을 실 분이 있을까해서 참고차 올립니다


즐거운 허니문 보내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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