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딕 요리' 주도하는코펜하겐 '노마' 레스토랑

'세계 50대 식당' 1위만 4회
발효 등 전통방식으로 조리… 메뉴도 제철 재료 따라 결정

"모든 요리의 중심은 맛… 오래 걸려 배송된 레몬보다 집앞 개미의 신맛이 더 나아"

코펜하겐(덴마크)=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코펜하겐(덴마크)=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적한 부둣가인 크리스티안하벤에는 과거 북해(北海)에서 잡아 소금에 절인 정어리며 말린 대구, 고래 기름·껍데기 따위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던 낡고 오래된 벽돌 건물이 있다. 최첨단 미식(美食)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건물에 전 세계 미식가들이 맛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레스토랑 '노마'가 있다. 테이블 고작 11개에 불과한 작은 식당이지만 미식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하다. '세계 50대 식당'에서 2010~2012년과 2014년, 1위로 선정됐다. 오너 셰프(주방장 겸 주인) 르네 레드제피(Redzepi·38)는 2012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됐다.

레드제피를 만나러 코펜하겐에 갔을 때, 그는 부둣가에 있는 '발효연구실(Fermentation Lab)'에 있었다. 컨테이너를 여럿 이어 붙여 만든 2층 건물에서 그는 다양한 발효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레드제피가 열어 보인 흰색 버킷 안엔 노르스름한 빛깔의 반죽이 들어 있었다. 구수하고도 쿰쿰한 냄새가 우리 된장과 비슷했지만, 맛은 덜 짜고 더 달았다. 버킷 바깥엔 'Peaso(피소)'라고 적혔다. 레드제피는 "일본의 미소(miso) 된장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완두콩(pea)을 이용해 장(醬)을 담갔다"고 했다. "누룩도 직접 배양합니다. 2년 전부터 매달 장을 담가 숙성시키며 어떻게 익어가는지 연구하는 중이죠. 된장·간장을 중심으로 한식도 공부하고 있어요. 지난해 서울 갔을 때 청국장을 먹어봤는데, 아주 좋았어요."

◇미식은 포식? 고정관념을 깨다

지난 100년간 현대(서양)요리에는 네 차례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20세기 초, 파리에서 일어났다. '요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Escoffier·1846~1935)가 프랑스 요리를 체계화했다. 그가 1903년 쓴 '요리 가이드'는 오늘날도 요리학교 교재로 사용된다.

저녁 영업 준비가 한창인 노마의 주방. 요리사들은 세계 최고의 식당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15시간을 기꺼이 일한다.
저녁 영업 준비가 한창인 노마의 주방. 요리사들은 세계 최고의 식당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15시간을 기꺼이 일한다.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두 번째 물결은 1970년대 밀려왔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미식=포식'으로 통했다. 풍요가 넘치면서 사람들은 맛있으면서 양이 적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요리를 요구했다. 이때 '누벨 퀴진'이 등장했다. 프랑스어로 '새로운 요리'란 뜻이다. 미셸 게라르, 알랭 상드랑 등 천재 요리사들이 겨자와 지방 함량 0%인 '소스 제로'를 활용한 '다이어트 요리'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단순히 양만 줄인 어설픈 요리를 누벨 퀴진으로 착각한 이류 요리사들이 대거 등장했고, 급격히 인기를 잃었다.

세 번째 파도는 스페인에서 시작됐다. 바르셀로나 인근 '엘 불리' 레스토랑이 진원지. 오너 셰프인 페란 아드리아는 요리에 덧입혀진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깨뜨리고 싶었다. 재료의 질감과 조직, 요리법을 철저하게 분석해 새로운 맛을 창조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분자요리(molecular cuisine)'라 불렀다. '음식을 분자 단위까지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한다'는 뜻이다. 알긴산이나 칼슘 용해액 같은 화학제품도 요리에 끌어들였다. 과일즙이나 꿀을 고체로 만들기도 하고, 고기의 맛 성분만을 뽑아내 거품으로 부풀리기도 했다. 아드리아의 시도는 세계 미식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엘 불리가 '세계 50대 식당'에서 2002년과 2006~2009년 1위에 올랐다.

◇"분자요리? 모든 요리는 과학"

일본 미소(된장)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완두콩을 이용해 담근‘피소’된장.
일본 미소(된장)에서 영감을 받아 덴마크 완두콩을 이용해 담근‘피소’된장. /사진가 천호정씨 제공
그러나 과유불급. 사람들은 더 이상 '놀라움의 요리'에 놀라지 않았다. 음식 같지 않은 음식에 질려갈 즈음, 혜성처럼 나타난 식당이 노마다. 2010년 세계 50대 식당에서 엘 불리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노마의 음식은 엘불리만큼이나 기발했다. 하지만 분자요리처럼 과학에 기댄 인공 음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레드제피는 수렵이나 채집 등 인류가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 활용한 재래 기법을 따른다. 발효나 훈제처럼 전통 보존·조리 방식도 부활시켰다.

레드제피는 "모든 요리는 과학적이다. 된장, 간장, 김치가 숙성되는 과정은 얼마나 과학적인가"라고 반문했다. "노마의 음식이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가 자연의 리듬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입니다. 엘 불리에서는 아스파라거스가 어디에서 났느냐는 따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희는 일 년 사계절에 따라서 음식을 만듭니다. 그때그때 제철인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요리가 결정됩니다."

레드제피는 틈날 때마다 코펜하겐 주변 산과 들로 나가 각종 풀과 버섯을 채집한다. 전문 수렵꾼을 고용해 식재료를 공급받기도 한다. "모든 행위의 중심 목표는 '맛'입니다. 우리가 덴마크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에서 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건 맛이 덜해서입니다. 샐러드에 레몬 대신 개미를 사용했던 건, 지중해에서 비행기로 오랜 시간이 걸려 배송된 레몬보다 코펜하겐 인근 흙에서 잡은 개미에서 더 좋은 신맛이 났기 때문이죠. 비행기로 3일 걸려 날아온 냉동 고기와 30분 전 도축한 순록 고기, 어떤 게 더 맛있겠어요?"

◇레몬 대신 개미! 메뚜기로 담근 액젓

개미를 얹은 새우 요리.
개미를 얹은 새우 요리. /Michael Edwards
레드제피는 맞은편 선반에서 또 다른 흰색 버킷을 꺼내 열어 보였다. 액젓 비슷한 액체가 들어 있다. 살짝 찍어 맛을 보니, 액젓보다 짙고 구수한 맛이 소고기·돼지고기 등 고기로 담그는 육장(肉醬)을 떠올리게 했다. "메뚜기로 만든 가룸(garum)"이란다. "고대 로마에서는 가룸이라고 하는 고등어나 참치로 만든 액젓으로 요리했습니다. 가룸을 똑같이 되살리면 너무 비리고 짜서 현대인 입맛에 맞지 않지요. 가룸의 전통 기법을 사용하되 메뚜기를 재료로 써서 실험하는 겁니다."

이런 노마의 노력은 전 세계 요리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줬다. 북유럽 사람들조차 "북유럽엔 음식다운 음식이 없다"고 자조했지만, 노마가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얻으면서 자신들의 음식 문화와 전통을 재창조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는 '노르딕(북유럽) 요리'라는 이름으로 확산하고 있다. 발효 음식에 대한 세계적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음식 평론가 강지영씨는 "요즘 한국 발효 음식이 각광받는 건 노마를 통해 발효가 재인식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미식의 변방 중에서도 변방'으로 무시당하던 나라, 덴마크. 지금은 노마로 인해 미식가들이 일부러 찾는 여행지로 발돋움 중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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