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당시 완전히 파괴된 도시 드레스덴과 2차 대전 이후 냉전의 상징이 된 도시 베를린. 전쟁으로 상처 입은 두 도시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오늘과 다를 내일을 살아간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지만 두 도시를 걸으며 행복했다.

작센주를 통치한 35명 군주가 행렬하는 '군주의 행렬' 벽화
젬퍼오퍼 앞에 자리한 작센 왕 요한Johann의 기마상
젬퍼오퍼 전경
츠빙거 궁전의 정원
브륄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아우구스투스 다리
아침 시간의 프라우엔 교회. 낮에는 이 일대가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Dresden

드레스덴 구시가를 걷다

이른 아침부터 카메라를 들고 호텔을 나섰다. 빗방울이 옷과 머리를 조용히 적신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처럼 화창하다가도 금세 비를 뿌려대던 어제의 하늘을 떠올리며 몇초간 망설이다 걸음을 뗀다. 우산도 없지만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인지 독일 사람들은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도 느긋하다.

아침부터 분주한 까닭은 베를린행 11시7분 기차를 타기 위해서다. 남은 몇 시간 동안 드레스덴 구시가를 한 바퀴 돈 다음 아침밥을 먹고 떠날 작정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속속들이 관람하지 않는다면 2~3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정도로 드레스덴 구시가는 아담하다.

호텔은 엘베 강변에 접한 마리팀Maritim이다. 와인과 담배를 저장하기 위해 1915년에 지은 창고는 2006년 마리팀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시멘트를 바른 외벽과 획일적인 작은 창을 지닌 건물의 외양은 무미건조하지만, 여행의 설렘을 품고 비즈니스의 성공을 꿈꾸는 이들이 머무는 호텔 안은 따뜻하다.

엘베 강변을 따른다. 밤새 정화된 상쾌한 공기가 강을 따라 떠돈다. 드레스덴 사람들은 자전거로 강변을 달리며 아침을 호흡한다.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느린 걸음으로 10~15분. 작센주 의회 건물을 지나 도심으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드레스덴 구시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젬퍼오퍼Semperoper.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가 초연된 곳이자 세계에서 알아주는 작센주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인 오페라 하우스다. 1838~1841년에 건립된 젬퍼오퍼는 2차 대전 당시 파괴됐다가 1985년에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 40년이 지나서야 원래 모습에 가까워졌지만 이는 그래도 양반이다.

드레스덴은 1945년 2월13일에 시작된 영국군과 미국군의 공습으로 도시의 80% 이상을 잃었다. 도시에 카펫을 깔 듯 폭탄을 퍼부은 공습은 융단폭격Carpet Bombing이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1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도시는 빠르게 회복됐지만 드레스덴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엘베 강변의 피렌체'라 불리며 아름다움을 뽐내던 드레스덴 건축물 중 상당수는 여전히 크레인 아래에 놓여 있다.

젬퍼오퍼 바로 옆에 자리한 츠빙거 궁전Zwinger Palace 또한 공사 중이다. 츠빙거 궁전은 현재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사용된다. 드레스덴에는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만 무려 12곳에 달한다. 예부터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인 드레스덴의 단면이다. 츠빙거 국립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은 라파엘로의 '성모상'. 작품 아래의 아기 천사들은 각종 기념품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궁전 입구 공사막이에도 아기 천사가 그려져 있다. 다만 박물관과 미술관을 제대로 즐기려면 월요일은 물론 이른 아침도 피해야 한다. 월요일은 휴무이며 나머지 요일은 오전 10시부터 문을 연다. 화요일, 베를린행 11시7분 기차를 타야 했던 이의 아쉬움이자 충고다.

츠빙거의 남동쪽 문에는 세계 3대 도자기로 손꼽히는 작센주의 전통 공예품인 마이센 자기로 빚은 카리용종이 달려 있다. 두 개의 칼이 교차한 작센주의 전통 문양도 보인다. 이 문을 통과해 좌회전하면 드레스덴 궁전과 대성당이 이어진다. 걸어서 1~2분 거리로 멀지 않은 거리다.

어제, 여행자들로 붐볐던 슈탈호프 성벽으로 접어든다. 거리의 마임 예술가에게 빼앗겼던 어제의 시선을 오늘은 오롯이 벽화에 둔다. 101m에 이르는 거대한 벽화에는 1127년부터 1910년까지 작센주를 통치한 35명의 군주가 행렬한다. 성벽은 그들의 위엄을 대신하듯 높디높다.

군주의 행렬Procession of Princes을 끝까지 따라가 우회전해 5분가량 걸으면 슈트리첼마르크트Striezelmarkt다. 슈트리첼마르크트는 1434년부터 시작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마스 마켓. 올해에는 11월26일부터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마켓이 열린다. 이 시기에는 오전 10시경부터 오후 9시경까지 상점들이 문을 열고 크리스마스 빵인 슈트리첼을 비롯해 크리스마스 관련 용품과 음식을 판다. 슈트리첼마르크트에서는 춥고 어두운 겨울도 크리스마스의 로망 속에 몸을 숨긴다.

시즌이 아닐 때는 오후 3~8시경에 상점이 문을 연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은 슈트리첼마르크트를 거닐자니 후회가 밀려든다. 어제 저녁, 2시간의 여유시간을 신시가에서 보내는 게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제품 가게'라는 말에 홀려 무작정 푼즈 몰케레이Pfunds Molkerei로 가는 게 아니었다. 오후 6시면 문을 닫는 푼즈의 쇼윈도만 허망하게 바라보느니 슈트리첼마르크트의 작은 상점에서 음식과 맥주를 즐기는 게 옳았다.

'교회 전망대에 올라 드레스덴을 한눈에 담았어야 했는데.' 드레스덴 최고의 볼거리인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에서도 아쉬움을 토했다. 일정에 쫓겨 예배당만 보고 떠난 지난 시간이 아쉽다.

강변으로 발길을 옮겨 브륄의 테라스Bruhl's Terrace에 오른다. 아침 햇살 아래의 구시가는 더욱 고색창연하고, 화가 베르나르도 벨로토가 사랑한 '아우구스트 다리 아래쪽 엘베강 우측 제방'은 푸르다. 여행자로 가득했던 어제와는 달리 아침의 거리는 일터로 향하는 분주한 발걸음이 채운다. 옛 건축물 사이를 헤집고 달린 트램이 다리 위를 지나고, 강변도로에는 교통체증이 시작됐다. 나름 한적하지만 한편으로 더욱 분주한 드레스덴의 아침. 여행자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드레스덴 구시가를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재건을 거듭하며 과거의 모습을 찾고 현재를 이루는 드레스덴의 속살을 엿보기에 좋은 시간이다.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자리. 글자 방향에 따라 위쪽은 동독, 아래쪽은 서독에 해당된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인 '형제의 키스'
동독의 국민차였던 트라반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많은 이들이 이 차를 타고 서독으로 넘어왔다
베를린 장벽

●Berlin

베를린의 과거를 만나다

"한국은 남과 북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동독과 서독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의 거리를 이야기하던 중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입을 다물었다. 답을 몰랐다. 분단국가에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베를린 장벽을 대하는 느낌은 특별하다. 정서적으로 일부 다르지만 또 유사하다.

갑작스런 질문을 던졌던 베를린 장벽 기념관의 가이드는 동독 출신이라고 했다. 20대에 통일을 맞은 그는 장벽을 넘고 싶어도 넘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게 전했다. 180개에 이르는 감시 타워 등 삼엄한 경비는 첫 번째 문제였다. 운 좋게 감시의 눈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어려움이 따랐다. 베를린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상대적으로 낮은 첫 번째 장벽을 넘는 데 성공해도 어른 키의 두 배나 되는 두 번째 장벽이 기다린다. 장벽을 넘으려면 최소 2인 1조로 움직여야 했다. 물리적인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중국의 서독 대사관을 거쳐 서독으로 망명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지척의 서독 땅을 두고 지구를 크게 돌아간 셈이다. 장벽을 쉽게 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 그는 가족을 말했다. 동독에 남겨져 억압받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한다.

과거, 동독 영토 내에 섬처럼 자리하며 강대국의 이해를 대변하던 도시 베를린. 베를린 장벽이 건재했던 과거로의 여정은 베를린 장벽 기념관이 자리한 노드반호프Nordbahnhof역에서 시작된다. 역사를 빠져나가기 전 발 아래에는 'Sperrmauer 1961-1989'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다. 'Berliner Mauer 1961-1989'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글자의 방향에 따라 윗부분은 동독, 아랫부분은 서독에 해당한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일대에는 장벽이 사라진 자리의 바닥이나 기둥에 이처럼 따로 표시를 해두었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여정은 관광안내소 2층에서 영상을 관람하며 시작된다. 10분여 펼쳐지는 베를린 장벽 관련 실제 영상들은, 아프다. 이쪽에서 살아야 했기에, 저쪽으로 가기 위해 죽음을 불사해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와 닮아, 아프다. 베를린 장벽이 생기기 전, 건물이 자리했던 국경의 경계선은 서독으로 넘어가기에 그나마 수월했다. 몇 층 높이의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이들의 모습을 영상은 그대로 전한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 이들이 날로 늘자 멀쩡한 건물이 철거되고 장벽이 건설된다.

60m에 이르는 베를린 장벽이 그대로 보존된 기념관의 야외 구역으로 나선다. 동베를린 구역, 철통같은 감시 속에 놓였던 공간이 펼쳐진다. 그나마 낮은 첫 번째 장벽에 서서 갈라진 틈 사이로 너머를 바라본다. 단체 견학을 온 독일의 학생들도 갈라진 틈에 눈을 대고 저 너머를 바라본다. 하지만 불행히도 벽 너머로 보이는 건 벽뿐이다. 더 높은 벽뿐이다. 과거, 아마도 운 좋게 첫 번째 장벽에 다가가 두 번째 장벽을 바라본 이가 있었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으리라. 장벽 옆 '기억의 창Window of Remembrance'에는 장벽을 넘으며 목숨을 잃은 130명의 사진을 전시하고 추모한다. 어린아이의 사진 앞에서는 누구나 걸음을 멈칫한다.

계단을 걸어 5층 높이의 전망대에 오른다. 높은 벽으로 양쪽을 막아 놓아 지상에서는 접근할 수 없는 장벽의 일부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관광객들로 붐볐던 저쪽 장벽과는 달리 아무도 없는 장벽. 삼엄한 감시의 눈길 외에 아무것도 없었을 그 옛날과 그대로라 어쩐지 더욱 쓸쓸하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외에 베를린 장벽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가 있다. 슈프레강과 면한 1.3km의 장벽은 1990년 벽화 가득한 갤러리로 거듭났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에서 안타까운 과거를 봤다면 이곳에서는 변화한 현실의 기쁨을 본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는 '형제의 키스.' 옛 소련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동독 공산당 에리히 호네커가 만나 나눈 독재자들의 키스를 해학적으로 그렸다. "게이인지는 잘 모르겠고…" 가이드의 농담에 한바탕 웃는다.

동서로 나뉘었던 베를린의 흔적은 국경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에도 남아 있다. 찰리는 통신 음어인 알파, 브라보, 찰리의 C에 해당하는 찰리. 베를린 장벽과 더불어 냉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곳 검문소는 현재 진짜 미군 대신 가짜 미군이 지킨다. 몇 유로를 내면 여권에 도장도 찍어 주고 기념촬영도 기꺼이 해준다. 체크포인트 찰리 인근의 더 월The Wall 박물관도 볼 만하다. 서베를린 쪽에서 찍은 베를린 장벽의 여러 사진을 합쳐 분단 당시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장벽의 틈 사이로 너머를 바라보는 학생들
베를리너 돔 전망대에서 바라본 슈프레강
박물관 섬의 보데 박물관 외관
베를리너 돔 내부

베를린의 오늘을 즐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도 벌써 26년이 지났다. 장벽에 가려져 각자의 이념에만 충실했던 도시 베를린은 이제 전 세계에서 온 이방인들이 한데 섞여 모여 사는 다국적 도시로 변모했다.통일 후 베를린에 이방인들이 몰려든 가장 큰 이유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도시의 요구 때문이었다. 당시 대거 이주한 터키인들은 도시에 정착해 터키 고유의 문화를 뿌리내리며 베를린의 일부가 됐다. 케밥과 같은 이국의 음식도 이제 베를린에서는 자연스러운 한 끼 식사가 됐다. 저렴한 등록금의 학교에는 다국적 학생들이 모여들고, 젊은이들이 모인 도시는 활기에 넘친다. 세계적인 수준의 펍과 클럽도 베를린에서 찾을 수 있다. 주말에 베를린을 찾는다면 24시간 운영되는 U반지하철을 타고 클러빙에 나서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베를린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쪽과 저쪽의 구분이 없어지며 이쪽과 저쪽의 모습을 동시에 품은 베를린은 즐길거리와 볼거리의 천국이 됐다. 슈프레섬Spreeinsel의 북쪽 끝을 지칭하는 '뮤제움스인젤Museumsinsel'은 시간 여유가 없는 여행자에게 효과적이다. 얼마나 많은 박물관이 있으면 '박물관 섬'이라는 뜻의 뮤제움스인젤이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인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을 비롯해 5개의 대형 박물관이 섬 안에 자리한다. 모든 박물관이 워낙 큰 규모라 정보를 미리 확인한 후 관심 있는 곳을 찾는 게 현명하다.

섬에 자리한 베를린 대성당, 베를리너 돔Berliner Dom은 화려하고 웅장하다. 2차 대전 당시 폭격을 받아 바뀐 모습이라니 원래 모습은 감히 상상하기가 힘들다. 성당의 1층은 예배당이다. 고개를 젖혀 화려한 모자이크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치장한 창을 감상한다.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을 지체하진 말 일이다. 성당의 꼭대기 전망대에 보석 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야외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꼭대기로 갈수록 좁아진다. 빙글빙글 좁은 계단을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오른다. 다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어지는 작은 문들. '야외 전망대가 있긴 할까?' 의심이 들 무렵 밖으로 향하는 문이 나온다. 그리고 "아!" 두 갈래로 갈라진 슈프레 강에 놓인 박물관 섬이 한눈에 펼쳐진다. 강물 위로는 유람선이 유유히 떠다니고, 강 너머로는 시청과 성 니콜라스 교회, 티브이 타워 등 이름 있는 건물과 이름 없는 건물이 한데 섞여 이어진다. 베를린 최고의 전망대라 불리는 티브이 타워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티브이 타워를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는 베를린 대성당이 틀림없다. 전망대를 둥글게 돌며 베를린을 천천히 눈에 담는다.

베를린 대성당은 시간 여유가 없는 여행자에게도 자비를 베풀며 베를린의 많은 풍경을 보여 준다. 자비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성당 바로 앞에는 베를린 시민들은 물론 여행자들이 한숨 돌려 쉬어갈 수 있는 루스트가르텐Lustgarten이 자리했다. 환한 햇살과 푸른 잔디. 베를린의 오늘은 이처럼 평화롭다.

▶travel info

AIRLINE루프트한자가 인천-프랑크푸르트, 인천-뮌헨 구간 직항편을 운항한다. 드레스덴이나 베를린은 프랑크푸르트나 뮌헨에서 국내선을 이용하면 된다. 루프트한자는 기내 습도와 방음에 특히 신경을 써 비행기를 제작한다. 덕분에 긴 비행에도 피로도가 낮아 여행과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 이코노미가 조금 힘들다면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을 선택하자. 합리적인 가격으로 조금 더 넓고 쾌적한 좌석을 얻을 수 있다. 전 세계를 잇는 모든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가 동일한 것도 루프트한자의 자랑이다. www.lufthansa.com

▶드레스덴

ATTRACTION필니츠 궁전Pillnitz Palace강건왕 아우구스트가 자신의 부인을 위해 지은 여름 별궁이다. 드레스덴 근교의 엘베 강변에 자리해 로맨틱한 풍경을 연출한다. 궁전과 강, 정원의 조화가 아름다운 곳으로 강변에 붙어 자리한 궁전은 물의 궁전, 정원 쪽에 자리한 궁전은 산의 궁전이라 불린다.필니츠 궁전에 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브륄의 테라스 앞에서 유람선을 타는 것. 증기선인 유람선을 타고 강변 풍경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시간이 없는 여행자들은 드레스덴 여정에서 필니츠는 빼는 게 낫다.www.schlosspillnitz.de

▶베를린

HOTEL마리팀Maritim독일 외에 모리셔스, 이집트, 터키, 몰타, 스페인, 중국 등 해외 6개국에 호텔을 보유한 호텔 그룹. 독일 내에 36개의 호텔이 자리하며 드레스덴과 베를린에도 지점이 있다. 드레스덴은 넓은 객실, 베를린은 아담하고 깨끗한 객실이 좋다. 두 호텔 모두 대형 컨벤션 센터를 보유했다.www.maritim.de

SHOPPING파스벤더 & 라우쉬Fassbender & Rausch세계에서 가장 큰 초콜릿 가게. 명성답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1층의 초콜릿 판매장에서는 티브이 타워, 소니센터 등 베를린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초콜릿으로 만들어 전시한다. 2층에는 초콜릿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3층에는 치과, 4층에는 다이어트 상담소가 있다나.www.fassbender-rausch.de

몰 오브 베를린Mall of Berlin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신도시의 심장부로 부상한 포츠다머 플라츠에 자리한 쇼핑센터. 베를린 최대 규모의 쇼핑센터로 300개 이상의 숍을 보유했다. 자라, H&M 등 유럽의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매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꼭대기 층에 해당하는 2층에는 다양한 레스토랑이 몰려 있다.www.mallofberlin.de

하케쉐 마르크트Hackescher Markt에스반역 인근에 자리한 쇼핑 구역이다. 야외에 테이블을 마련해 놓은 레스토랑은 물론 독일 로컬 브랜드의 편집 숍들이 몰려 있다.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자리한 하케쉐 호프는 8개의 뜰로 이어진 공간. 호프와 호프는 이어져 있어 산책 겸 쇼핑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대형 쇼핑센터에서 구하기 힘든 독특한 아이템이 많지만 가격은 전반적으로 비싸다.www.hackeschermarktberlin.de

RESTAURANT코놉케스 임비스Konnopke's Imbiß에버스발더 스트라세역 인근에 자리한 커리부어스트 전문점. 굽거나 튀긴 소시지를 케첩에 버무려 커리 가루를 뿌려 먹는 커리부어스트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요리다. 커리36과 같은 체인점도 유명하지만 베를린 사람들이 꼽는 일등 맛집은 바로 이곳. 커리부어스트에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 세트 메뉴가 3.5유로로 매우 저렴하다.www.konnopke-imbiss.de

카페 암 노이엔 지Cafe am Neuen See도심 속 거대 정원인 티어가르텐 내 노이엔 지 호수 옆에 자리한 카페이자 레스토랑. 호수가 바라보이는 야외는 물론 실내에 좌석이 마련돼 있다. 저녁시간에 실내 좌석을 원한다면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인기다. 촛불 모양의 조명을 밝힌 은은한 분위기가 좋다. 샐러드와 스테이크 등 메뉴가 다양하며 5~6종류의 생맥주를 선보인다. www.cafeamneuensee.de

BAR몽키 바Monkey Bar베를린 동물원 인근에 자리한 바.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바 중 하나로 명성이 높다. 남녀노소는 물론 개까지 바를 드나들 정도로 출입에 제한은 없다. 실내는 그리 넓은 편이 아니라 좁은 테이블이나 계단 등에 앉아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500CC 생맥주가 5유로가량으로 저렴하다.www.25hours-hotels.com/en/bikini/restaurant/monkey-bar.html

뉴튼Newton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바이자 레스토랑 중 하나. 낮에는 한가하지만 늦은 저녁 시간에는 예약 없이 입장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다. 패션 사진의 거장이자 베를린 출신 사진작가인 헬무트 뉴튼의 작품을 모티브로 했으며, 그의 작품인 하이힐 신은 나체 여성들이 한쪽 벽면을 장식한다.www.newton-bar.de

장벽 기념관. 갈라진 장벽 틈 사이로 또 다른 장벽이 막아선다



그림책 만드는 아티스트 정화, 베를린을 읽어내다
베를린이 우연히 내게로 걸어오다

내가 베를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8할이 우연이다. 베를린행을 결심할 당시 나에겐 전환점이 필요했다. 타인이 가르쳐주는 정형화된 디자인을 배우기보다, 내 안으로 끝까지 파고들어 새로운 디자인을 실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학을 빙자했지만 나의 베를린 생활을 긴 여행이라 정의하고 싶다. 예쁜 것만 찾아보는 짧은 여행보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호흡법을 배우고 적응해가는 나를 체험하는 진정한 여행을 하고 있다고. 난 이곳에서 베를린만의 독특한 환경을 체험하고 직접 경험하면서 열정을 되찾게 된 것이 더없이 기쁘다.

내게 흑백 영화 속의 이미지로 기억되던 베를린은 예술과 여유, 자유, 다양성 등 여러 가지 빛깔을 띠며 나의 삼십 대를 무지갯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NO.1 베를린 매거진 리스트

요즘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독일 잡지는 <FT>다. 이 잡지는 매 회 다른 주제로,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타이포그래피와 드로잉, 사진과 아트 디렉팅, 그리고 레이아웃을 선보인다. 매 호 새로운 잡지가 창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Vier5라는 작은 팀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 잡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고, 그 중간쯤의 미학을 보여준다. 컴퓨터 세대가 만들어내는 날카롭고 매끈한 그래픽 이미지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핸드메이드 감성을 지닌 예술가들이 만들어냈다. 이 잡지는 작은 글씨체, 여백, 낙서, 실수로 보이는 흔적까지 모두 그대로 보여주면서 날카로운 내 감성을 자극한다. 물론 이들이 만들어내는 건조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는 철저히 계산되어 생산된 것이기에 더 가치가 크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컬처 매거진 <032c>도 소장 가치가 높은 잡지이다. 건축과 예술, 디자인, 패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 전반을 보여준다. 고전적인 스타일의 빨간 표지 속에는 매 호 현대문화를 <032c>만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다룬 기사가 가득하다. 너무나 대중적인 주제를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또 깊이 있게 다룬 내용을 읽으면, 잡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대중매체가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책임감 있게 지켜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홈페이지www.032c.com/kim/hedislimane에 들어가면 2007년 에디 슬리만과 함께한 파티 사진도 구경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잡지는 <Slanted>이다. 타이포그래피 전문 잡지인 <Slanted>는 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갈수록 기대를 품게 되는, 강단 있는 잡지다. 타이포그래피의 세계를 보다 넓은 영역으로 펼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로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그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수십 가지의 길을 제공한다. 

식물과 더 가까이, 더 오래 공생하고자 하는 베를리너의 마음을 담은 공간을 소개한다.

베를린 식물원
베를린 식물원
베를린 식물원
베를린 식물원
베를린 식물원
베를린 식물원Botanischer Garten Berlin에는 세계 최대 온실인 그레이트 파빌리온Great Pavilion이 있다. 43만 제곱미터 넓이에 2만 2000여 종의 식물을 기르고 있으며 광범위한 식물군 덕에 언제나 풍부한 삼림욕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봄을 알리는 첫 야외 행사로 베를리너 슈타우덴마르크트Berliner Staudenmarkt가 열린다(4월 1~2일).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서 참여한 식물 및 허브 전문 가드너, 원예 전공자들이 1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에 80개 이상의 판매 부스를 연다. 올해의 테마는 ‘클래식한 별장 정원’으로, 캐머마일, 백일홍, 수선화, 양귀비 씨앗 등을 볼 수 있으며 정원 가구와 소품, 핸드메이드 액세서리도 풍성하게 준비된다. 허브 수프, 유기농 그릴 메뉴, 디저트 등을 맛보며 전문가로부터 무료 가드닝 상담도 받을 수 있다.
LOCATION Königin-Luise-Straβe 6, 14195 Berlin
WEB www.botanischer-garten-berlin.de

로머스
로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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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머스Roamers는 2014년 1월 노이쾰른 지역에 문을 연 식물 카페다. 소셜 미디어 매니저, 온라인 에디터로 일했던 오너 플로러 슈미트Flore Schmidt는 캘리포니아와 포틀랜드를 여행하고 얻은 영감으로 식물을 이용해 인테리어를 꾸몄다. 간결하고 정돈된 느낌의 여타 베를린 카페와 달리 친구 집에 온 듯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낸다. 식물 카페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신선한 재료,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든 다양한 스무디와 샐러드가 준비되어 있다. 아침에는 뮈슬리, 점심에는 수프와 샌드위치, 오후에는 커피와 케이크를 찾는 베를리너로 종일 카페가 붐빈다. “로머스를 찾는 이들의 온기로 선인장이 유난히 빨리 자라는 것 같아요.” 오너 플로러는 음식 위에 다육식물, 허브 등을 큼지막하게 곁들여 보는 재미를 더한다.
LOCATION Pannierstraβe 64, 12043 Berlin
인팜
인팜
인팜
인팜Infarm은 2013년 베를린 최초로 인도어 파밍indoor farming을 시작한 곳으로, 높은 효율성을 지닌 새로운 농장 모델을 지향한다. 인도어 파밍은 일반 농업보다 에너지와 물을 적게 사용하여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실내 재배 식물은 야외 정원보다 90퍼센트 정도 물을 절약할 수 있으며 60퍼센트 정도 빠른 속도로 자란다. 한 도시 농작물의 10퍼센트가 실내에서 재배된다면 그 도시의 영토 90만 제곱미터가 경작지에서 숲으로 전환될 수 있고 이를 통해 탄소가 줄어들어 대기가 건강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뿐만 아니라 살충제 등 유해 약품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기후 변화,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피해 걱정이 없으며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가 더욱 쉬워진다. 인팜은 식물 연구가, 로봇 전문가, IT 전문가, 미래 학자 등 다양한 팀원으로 꾸려져 도시와 농업의 미래 설계를 돕고 있다.
LOCATION Glogauer Straβe 6, 10999 Berlin


지상과 지하가 만나다 - 훔볼트하인의 방공호

베를리너 운터벨텐은 ‘베를린의 지하세계’라는 뜻을 가진 단체이다. 1998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 단체의 목적은 베를린의 지하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공개하여 사람들이 직접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도시가 동서로 분단되면서 수많은 시설들이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잃어버린 지하 시설들이 통일된 베를린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새롭게 발굴된 교통용 터널, 전철역, 수송로, 방공호, 공기송출 우편시설 같은 지하시설들이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베를린 훔볼트하인 공원 언덕 위에 자리한 방공호 또한 그렇게 해서 공개된 시설의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5만 명의 시민들이 공습을 피했던 방공호는 중세시대의 요새와 같은 위용을 자랑한다. 당시 대공포가 설치되어있던 85m 높이의 방공호 탑에서는 베를린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현재 이곳은 4월부터 10월까지만 공개되어 있는데, 겨울에는 동면하는 박쥐를 보호하기 위해 입장이 금지된다고 한다.



예술가와 정부, 타협하다 - 타헬레스(Tacheles)

1990년 2월, 일군의 예술가들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벌이며 방치된 백화점에 입성했다. 무단점거운동, 스쾃(squat)의 대표적인 이름이 된 '타헬레스'의 탄생이었다. 타헬레스란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명확하게 말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유대어다. 이 명랑한 스콰터(squatter)들은 명확하게 “너희는 건물을 가졌지만 쓰지 않고 있고, 우리는 돈이 없지만 작업실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자리 잡았다.


원래 그 건물은 1907년 백화점으로 지어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폐허가 된 건물이었다. 이곳은 철거될 운명에 놓여있었는데, 예술가들이 이곳을 다시 살려냈다. 하지만 정부의 관점은 예술가들과는 달랐다. 그 후 10년간 강제퇴거의 협박과 버티기의 지난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정부가 “문화공간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라고 판단을 바꾸면서 타헬레스의 위상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1999년, 정부 보조금까지 받는 예술단지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50여 명의 전세계 예술가들은 관리비에 해당하는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작업실을 합법적으로 대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불법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골든홀과 블루살롱, 영화관 겸 카페 Highend 54 등의 공동 공간에서 수시로 전시회, 공연, 콘서트, 영화상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피티로 가득 찬 타헬레스 전경.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합법적인 지위와 실험성을 바꿨다.”는 통렬한 비난과 정부의 간섭이 타헬레스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았지만, 2009년 이 건물을 소유한 투자펀드 푼두스 그룹에서 10년의 임대계약이 끝났다며 예술가들에게 강제퇴거를 통보해 또 다른 지난한 싸움을 맞이하게 되었다. 베를린 반문화(Counterculture)운동의 상징이었던 타헬레스는 이에 “우리는 과거에도 무단점거자였고, 이제 다시 무단점거자로 돌아왔을 뿐”이라며 당당한 한판 싸움을 다시 벌이고 있다.



천사와 인간, 손을 잡다 - 전승기념탑(Siegessaule)

전승기념탑 꼭대기의 '황금의 엘제'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통해
그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


천사 다미엘은 황금빛 여신의 동상 어깨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독일어로 속삭이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Der Himmel ueber Berlin]는 1987년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하고 페터한트케가 공동으로 각본을 쓴 작품이다. 서커스단에서 공중그네를 타는 아름다운 마리온을 사랑하게 된 천사 다미엘은 고뇌 끝에 인간이 된다. 영화적 완성도로도 격찬을 받았던 이 영화는 베를린 전승기념탑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도 한몫했다.


다미엘이 앉아있는 황금빛 여신을 베를린 사람들은 ‘황금의 엘제’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원래는 승리의 여신인 ‘빅토리아’다. 키가 무려 8.3m에 달하는 이 조각상은 무게만도 무려 35톤. 프리드리히 드라케(Friedrich Drake)가 조각한 것이다.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그로쎄 티어가르텐(GroBe Tiergarten)공원에 자리 잡고 있는 전승기념탑은 1873년에 하인리히 슈트라크스(Heinrich Stracks)의 설계로 완성되었다. 덴마크(1864년), 오스트리아(1866년), 프랑스(1870년~71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탑이었다. 탑 내부에 있는 285개의 계단을 오르면 베를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다미엘처럼 황금의 엘제 어깨에 앉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67m 높이까지는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 있으니, 다미엘의 기분을 비슷하게 느껴볼 법도 하다.



동독과 서독, 마주보다 - 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선에 자리하고 있어, 한때는 독일의 분단을 상징했고 이제는 독일통일의 상징이 되었다. 1788년부터 91년까지 3년여에 걸쳐 지어진 이 문을 설계한 이는 칼 고트하르트 랑한스(Carl Gotthard Langhans). 처음에는 도시 성문으로 만들어졌으나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시내 중심에 자리잡게 되었다. 브란덴부르크 문 위의 동상 크바트리가(Quadriga)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에 올라타고 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2009년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지 20년째 된 날이었다. 포츠다머 플라츠에서 시작하여 브란덴부르크 문을 거쳐 국회의사당까지, 1.5km에 걸쳐 베를린 장벽이 서 있던 선을 따라 1,000여 개의 도미노 벽이 세워졌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재연하기 위해서였다. 각국의 예술가들이 하나씩 맡아 자유의 메시지를 형상화한 이 도미노 벽은 10만 명이 참여한 대대적인 ‘자유의 축제’ 끝에 장엄하게 쓰러졌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나누었던 베를린장벽은 통일 이후 부서진 조각들조차 기념품으로 부지런히 실려나가 지금은 보기 힘들다. 오스트반호프(Ostbahnhof)역 부근에 남은 장벽만이 세계 각국의 118명의 작가들이 그림을 그린 이스트사이드갤러리(East Side Gallery)가 되었다.


동서분단시절 브란덴부르크문을 낀 장벽을 통과하는 방법을 설명한 안내문.



음악, 모두의 손을 잡다 - 러브퍼레이드

여러 도시에서 계속되고 있는 러브퍼레이드 포스터.


독일은 음악과 아주 밀접한 나라이다. 바흐, 헨델, 베토벤, 바그너,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말러 등의 대가 이름만 떠올려도 그 관계가 어렵지 않게 짐작되리라. 베를린 필하모니, 드레스덴 오페라, 라이프치히 오케스트라는 또 어떤가. 현대음악에서도 독일의 활동은 대단하다. 그런 곳이기에 ‘러브 퍼레이드’가 열리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사랑과 평화의 테크노 축제 ‘러브 퍼레이드’ (Love Parade)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넉 달 전, 생활 예술가이자 DJ이며, 미장이였던 ‘모테 박사’(Dr. Motte)의 주창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을 쓸쓸히 보내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로 퍼레이드를 개최한다. 그가 집회 허가 신청을 낼 때 내세웠던 모토는 ‘평화, 기쁨 그리고 팬케이크’ 였다. 그것은 군비 축소와 음악을 통한 화해, 그리고 공정한 분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날, 한 대의 트럭과 약 150명의 사람들이 당시 서베를린의 소비의 중심지였던 쿠담(Kurf rstendamm)거리를 행진했다. 그것이 말 많고 탈도 많으면서 기쁨으로 가득찬 러브 퍼레이드의 시작이었다.


참가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1996년부터 에른스트 로이터 광장, 6월 17일의 거리, 브란덴부르크 문, 전승기념탑까지 펼쳐지게 된 러브 퍼레이드는 매년 7월 첫째 토요일에 열린다. 행사로 인한 소음과 환경파괴, 엄청난 쓰레기 처리문제, 마약의 남용과 폭리, 무단방뇨 등등의 문제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러브 퍼레이드의 정신은 세계 각지로 퍼져 다양한 나라에서 같은 이름의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학살자, 죽인자를 추모하다 - 유태인 박물관(Judisches Museum)

히틀러 정권에 의해 학살된 유태인은 600만 명.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비극의 가해자로서, 독일은 반성을 아끼지 않는다. 위령탑을 건설하고 광장을 만드는 한편, 유태인들의 끔찍했던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하게 만드는 유태인 박물관 건설에도 발벗고 나섰다.

2001년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이곳은 소장품이 아니라 건물 자체로 유명해진 드문 케이스의 박물관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로크풍의 구 박물관을 지나 지하통로를 거쳐야 한다. 입구에서부터 가스실과 수용소에서 대량학살된 유태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다윗별을 참고한 건물의 전체적 모양, 칼로 난도질한 듯한 가늘고 길고 불규칙한 창문들, 49개의 기둥에 심어놓은 49그루의 올리브나무로 이루어진 ‘Garden of Exile(추방의 정원)’, 메나슈 카디쉬만(Menache Kadishman)의 작품 [낙엽]을 설치하여 절규하는 사람얼굴 모양의 철 조각들을 깔아놓아 밟아야만 지나갈 수 있게 만든 [memory void, 공백의 기억], 아무것도 없는 거대하고 높은 밀실인 홀로코스트 타워 등의 요소들은 풍부한 상징을 담고 있다. 빈 전시실조차도 사라진 유대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원래 지금과 같이 따로 지을 계획이 아니라, 베를린 박물관의 부속건물인 유대인관으로 계획되었던 이곳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이 확장되었다.


유태인 박물관 내부전시실 풍경.



동성끼리 팔짱을 끼다 - 놀렌도르프 광장

20세기 초의 놀렌도르프 주변.이때부터 게이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베를린의 다른 이름은 동성애자들의 천국이다. 전체 주민의 약 10%, 35만 명 가량이 동성애자라는 수치는 이곳이 다른 도시에 비해 동성애자들에게 비교적 관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분단시절 서베를린으로의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 군대 면제 등의 혜택을 내밀자 이를 받아들인 동성애자들의 이주가 급격히 늘면서, 베를린은 명실상부한 유럽 최대 동성애 도시로 떠올랐다.


‘놀렌도르프 광장(Nollendorfplatz)’은 동성애자들이 즐겨 찾는 식당과 술집, 바, 카바레들이 모여 있는 카페거리로 유명하다. ‘놀렌도르프 광장’ 역 건물에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죽어간 동성애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있다. 나치가 학살한 것은 유태인만이 아니었다. 게르만 민족의 피를 더럽히는 불순한 자들로 규정된 동성애자들은 가슴에 핑크색 역삼각형(Rosa Winkel)을 붙이고 강제수용소에 감금되어야 했는데, 더군다나 유태인이라면 노란색 정삼각형을 겹쳐 달아야 했다. 그들에 대한 대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했다고 한다. 1933년에는 놀렌도르프 광장 주변의 동성애자 카페들이 대부분 강제로 폐쇄당하는 역사적 아픔을 겪기도 했다.

25년이 지난 후 베를린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수많은 가능성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독일 각지에서 몰려온 프로파간다들은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꿈을 키워나갔고 지금의 베를린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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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를 기록하다

크리스 켈러&앙케 페젤

뮤지션이었던 크리스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앙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베를린을 탈환한 아티스트들의 작업실로 대표되는 타헬레스에서 활동하며 격동의 시기를 지켜봤다. 그 이야기를 <베를린 원더랜드> 한 권에 몽땅 담아냈다.

↑ 호평을 받은 책

예술 및 라이프스타일 전문 출판사인 게슈탈텐과 함께 만든 책. 얼마 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베를린에 얼마나 별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들로 가득하다.



↑ 1992년 풍경

현재는 세련된 갤러리들로 가득 차 있는 오라니언부르거 거리의 1992년 풍경.



포토그래퍼이자 뮤지션이다. 독일 중부 도시인 다름슈타트Darmstadt 출신이며 1990년 베를린에 왔다. 현재 앙케와 함께 봅스에어포트Bobsairport(www.bobsairport.de)라는 포토 에이전시를 운영 중이다. (앙케)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로 유명한 북부 도시 브레멘Bremen 출신이다. 1990년 베를린자유대학에 입학하면서 베를린에 왔다. 현재 그래픽 디자이너로 카파Capa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내가 속해 있던 밴드와 공연 리허설 중이었다. 공연은 취소됐고 밴드도 해체됐다. 다들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버렸으니까. (앙케) 고등학생으로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TV로 보곤 베를린으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혀 다른 세상,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고 있음을 느꼈다.



혼돈의 세상이었다. 정부가 재정비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는 '자유'를 선사했다. 독일은 물론 전 세계의 예술가, 펑크족, 무정부주의자, 몽상가, 괴짜가 베를린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빈집을 점거해 예술, 콘서트, 불법 파티 등을 여느라 바빴다. 앙케는 라이브 뮤직 클럽인 쇼콜라덴Schokoladen, '무단 점거'의 대표 아이콘이 된 타헬레스Tacheles에서 새로운 개념의 콘서트, 음악 이벤트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타헬레스가 들어선 건물은 1907년에 지은 백화점이었는데 제2차세계대전 후 폐허가 되었다. 1990년 2월 여러 명의 예술가들이 방치된 백화점으로 향해 화려한 그래피티로 건물을 무장시켰다. 이러한 무단 점거 운동을 스Squat이라고 한다. 철거될 운명의 건물은 예술가들로 인해 베를린의 명소로 거듭났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달랐고, 강제 퇴거의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끝까지 버텼고 결국 정부는 베를린 역사의 한편을 장식할 반문화 운동의 상징이자 문화 공간으로 인정했다. 안타깝게도 건물 소유주의 압력에 의해 2012년에 문을 닫은 상태다.



<베를린 원더랜드>를 펴냈다. 사진과 내용이 굉장하다. (크리스&앙케)오랫동안 기획한 것이었다. 7명의 사진가가 1990년부터 1996년까지 베를린의 '야생의 시기'를 담아냈다. 사진 촬영을 할 당시의 상황과 자세한 이야기를 곁들였다. 그 시대를 함께 겪은 사람으로서 가슴을 다시 쿵쾅거리게 하는 훌륭한 사진이 많다.



표지에 올린 1990년의 킨칙 거리Kinzig Str. 풍경이다.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퍼 벤 드 빌Ben de Biel이 촬영한 것으로 베를린 동쪽 프리드리히스하인 지역의 무단 점거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초를 휩쓸었던 다채로운 서브컬처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베를린 미테 지역. 하지만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이 자리를 옮겨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여전히 베를린은 '한번 해볼 만한' 도시다. 우리는 사진과 디자인을 통해 베를린을 기록하는 일을 할 것이다.



↑ 마크 볼라베

자게 클럽Sage Club 앞에서 만난 클럽 커미션의 창립자 마크 볼라베.

크리스 켈러&앙케 페젤

마크는 베를린에서 태어나고 자란 진짜 베를리너다. 그는 130여 개 클럽을 거느리는 클럽 커미션Club Commission의 대부답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날 밤 클러빙을 즐기고 있었다.

↑ 베를린의 클럽

실험적인 예술의 무대가 되고 있는 베를린의 클럽.



서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에 위치한 유명한 록 클럽이었다. 그날 새벽 4시쯤 클럽을 나서다 거리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녀가 대뜸 "브란덴부르크 문이 개방됐대!"라고 말하며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택시 기사 또한 베를린 장벽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하더라. 당장 브란덴부르크로 가자고 했다.



동, 서 양쪽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브란덴부르크 문 앞으로 운집했다. 사람들은 장벽 위로 올라섰고 반대편 지역으로 뛰어내렸다. 예전 같았다면 군인이 탄압하거나 총을 쏘았을 텐데 군인들은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장벽을 넘었고, 동베를린에 발을 디딘 후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해 다시 서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축제 같은 분위기였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조금 긴장했다. 1953년도에 일어난 동베를린의 폭동 때처럼 무장한 소련군이 몰려올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민들도 정부도 평화를 지켰다. 기적과도 같았다.



1980년대에 이미 독일은 영국과 함께 테크노 음악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베를린 미테 지역을 중심으로 무료 지하 테크노 파티와 레이브 신이 생겨났다. 베를린엔 주인이 없는 '빈 공간'들이 넘쳐났다. 특히 장벽이나 양쪽의 정부 기관이 들어서 있던 곳이 그랬다. 포츠다머플라츠Potsdamerplatz, 빌헬름 거리Wilhelm Str.에 에-베르크E-Werk, 데어 벙커Der Bunker, 트레조Tresor와 같은 전설적인 클럽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베를린에 불어닥친 개발 계획으로 인해 클럽들은 문을 닫거나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야 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뒤 클럽 신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2000년에 클럽 커미션을 창설하게 됐다.



트렌스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동독 출신 DJ 폴 반 다이크Paul van Dyk는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벌어졌던 테크노 파티와 레이브 신이 동서독의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베를린에서 클럽은 단순히 하룻밤 유흥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베를린에는 미술, 영화, 음악, 패션, 디자인 업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클럽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는다. 클럽엔 음악, 음향, 건축, 미술, 그래픽, 조명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적 장치들이 어우러진다. 훌륭한 클럽은 예술적인 생각, 실험 정신을 가져야 한다. 클럽 커미션은 이러한 클럽을 발굴하도록 돕는다. 처음엔 20여 개 클럽이 모여 시작했는데 현재 130개 클럽이 가입되어 있다.



베를린 클럽 신의 산증인과도 같은 트레조. 규모나 음악, 음향 시설, 레지던스 아티스트 등 여러모로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베르그하인Berghain.



기도의 '물 관리'는 클럽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겉치장과는 상관없다. 이미 술에 취했다면-특히 남성 무리-입장이 어렵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지니며 감각을 열고 자유롭게 클러빙을 즐길 이들을 감별해내도록 교육받는다. 너무 어렵나?



↑ 톰 미헬베르거&이현지

미헬베르거 호텔의 아늑한 안마당에에서 만난 톰과 이현지.

오래된 공장의 창조적 변신

톰 미헬베르거&이현지

진짜 베를린을 만나고 싶다면 미헬베르거 호텔에서 머무르기를 추천한다.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에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지닌 이들이 모여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 카페

편안하면서도 멋스러운 카페.




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 출신이다. 2003년 베를린을 처음 찾았다. 장벽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다. 베를린 동쪽의 경우 3개 건물 중 하나는 레노베이션이 필요해 보였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째 날, 이곳이 나의 새로운 터전이 될 것이라 직감했다. 나는 국제 비즈니스를 공부했지만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나만의 독자적인 일을 꾸리고 싶었다. 베를린은 최적의 도시였다. 이곳엔 한층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존재했다. 저렴한 물가 덕분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커리어를 쌓기 위해 쫓기지 않아도 됐다. 독일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전혀 다른 사람들, 도시가 지닌 놀라운 역사, 그래피티, 음악 등 곳곳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감독이나 프로듀서를 꿈꿨지만 특출한 재능을 지닌 것 같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공동 창업자인 나딘과 오랜 고민 끝에 호텔을 열자고 의견을 모았다. 호텔이라는 공간에서는 두 사람 모두 잘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일들을 벌여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호텔 학교에서 유학 중이었다. 취업을 알아보다 베를린에 새로운 호텔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까지 면접을 보러 갔다. 호텔리어답게 블랙&화이트 슈트를 차려입고 호텔에 도착했는데 캐주얼한 차림새의 톰과 나딘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대형 호텔들에서 느낄 수 없는 열정, 가족적인 분위기에 반해 미헬베르거 호텔에 합류했다.



2004년부터 호텔 오픈을 준비했다. 각종 계획을 짜고 호텔 건물을 알아보는 데 총 4년의 시간이 걸렸다. 딱 맞는 호텔 건물을 찾는 것이 관건 이었다. 베를린 내 100여 채가 넘는 건물을 보러 다녔고 결국 2008년 계약에 성공했다. 호텔 빌딩은 19세기에 지어진 공장이었다. 국가적으로 보존되고 있어 외관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 내부만 레노베이션했다. 우리는 호텔의 콘셉트와 디자인을 정할 때 다른 호텔들을 참고하지 않았다. 미헬베르거의 스태프와 참여한 건축가, 디자이너 등의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완성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오픈한 지 1년 만이었다. 런던에서 주최하는 어워드로 '카페, 바, 나이트클럽 혹은 라운지'의 카테고리에서 수상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아자르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런던과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호텔에 합류해 아이덴티티 구축과 디자인 등을 전체적으로 담당했다. 호텔 로고는 물론이고 브로슈어, 벽화, 홈페이지의 일러스트와 디자인 등 아자르 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잘 어우러졌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한다. 베를린에 '코코넛 워터'라니.

코코넛 워터는 물론 미헬베르거 크래프트 비어, 리큐어도 출시했다. 그중 리큐어는 미국에서도 판매될 예정이다. 뉴욕이나 런던과 같은 도시였다면 이러한 도전이 마냥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베를린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일에 더욱 쉽게 도전할 수 있고 수많은 아이디어, 열정을 가진 이들을 만나 이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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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에서 싹튼 서브컬처

톰 뵈셔만

플래툰은 베를린과 서울을 본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아트 커뮤니케이션 그룹이다. 이들이 각 도시에 들여놓은 컨테이너 '쿤스트할레'에선 서브컬처가 꿈틀댄다. 플래툰의 대표인 톰 뵈셔만은 최근 평양 여행을 다녀왔다.



↑ 쿤스트할레 베를린

서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쿤스트할레 베를린. 크리에이터들의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 톰이 촬영한 평양 시내의 모습

톰이 촬영한 평양 시내의 모습. 놀랍다.



↑ 쿤스트할레 서울

쿤스트할레 서울. 컨테이너를 이용한 건축과 디자인으로 독일의 레드 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니. 중부 하노버 근교의 데트몰트Detmold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97년 베를린으로 옮겼다.

16세 때. 서베를린에 할머니가 사셨다. 할머니는 베를린에 온갖 '크레이지'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했다. 당시 서베를린엔 젊은 청년들과 예술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예술가들은 체질적으로 도발적인 환경을 좋아한다지만 청년들은 왜냐고? 베를린에 거주하는 남자는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됐거든.

하노버에서 서베를린에 이르는 아우토반이 하나 있었다. 모두 그 길을 이용했다. 서베를린까지는 2시간 30분쯤 걸렸다. 베를린에 도착하기에 앞서 동독의 관문 도시인 막데부르크Magdeburg를 지나쳤는데, 와, 깜짝 놀랐다. 그렇게 가난할 줄 몰랐다. 얼마 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도 그때가 훨씬 충격적이었다.

독일문화원과 평양국제영화제를 다녀왔다.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에 입성, 4박 5일간 있었다. 영화제 공식 일정과 평양 시내 투어를 했는데 북한 가이드가 내내 동행했다. 평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놀랄 것이다. 서울의 타워팰리스와 같은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값비싼 독일 차들이 도로를 달리며, 규모가 작긴 하지만 고급 백화점도 있다. 빼어난 레스토랑도 많다. 최근 오픈한 일식집에서 8코스 디너를 먹었는데 식재료며 요리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6년간 쿤스트할레 서울을 운영하며 한국 음식을 많이 먹어봤지만, 솔직히 말해 밥과 김치 등 기본적인 음식은 북한의 것이 더 맛있다. 그리고 술! 대동강 맥주! 감히 아시아 맥주 중 최고다.

소련의 신고전주의 양식 건축물과 거대한 동상들, 군인들의 시가 행진에 필요한 전시용 대로 등을 보며 베를린의 카를 마르크스 알레를 떠올렸다. 무엇보다도 평양과 베를린의 닮은 점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도시라는 것이다. 평양에 사는 이들은 북한의 지도층이나 엘리트들이다. 동베를린도 마찬가지였다. 정치가나 군인, 교사, 예술가들이 기회를 얻었다.

당시 데트몰트의 한 마케팅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휴가를 내고 친구들과 함께 베를린으로 향했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장벽을 허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장비를 챙겨 장벽을 무너뜨렸다. 불도저와 크레인도 동원됐다. 지난여름 브라질 월드컵 우승 후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축하 파티가 벌어진 것을 보았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내 인생 최대의 축제를 경험했다.

1997년 베를린에 왔고 2년 후 동업자인 크리스토프를 만났다. 나의 마케팅 경력과 크리스토프의 디자인 실력을 합쳐 새로운 것을 창조해보자고 결의했다. 4~5개월간의 브레인스토밍으로 찾아낸 답은 '문화 마케팅'이었다. 1990년대 말은 신문, 방송, 잡지, 빌보드 등 매스커뮤니케이션이 급속도로 발달했던 시기였다. 우리는 새로운 문화를 통해 브랜드와 대중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래서 비디오 아트, 그래픽 디자인, 스트리트 아트, 클럽 음악 등 서브컬처에 주목했다.

파드핀더라이Pfadfinderei는 모션 디자인과 비주얼 아트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떨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이들은 일렉트로닉 음악과 비주얼 아트를 접목하며 VJ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슈퍼스타가 된 모데셀렉터Modeselektor. 일렉트로닉 듀오로 또 다른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아파라트Apparat와 함께 모던 테크노 그룹인 모데라트Moderat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2009년 쿤스트할레 서울에서 공연을 한 바 있다.

플래툰은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 포진하고 있는 3500여 개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이뤄 문화 활동을 기획, 지원하고 있다. 베를린을 시작으로 서울에 아시아 본부를 열었고, 내년에는 멕시코시티로 향한다. 그다음엔, 평양도 기대해본다.

베를린 분단 중 사용됐던 감시 초소, 동독 비밀경찰의 아지트, 통일 후 전설적인 클럽으로 거듭난
히틀러의 벙커 등을 방문했다. 베를린의 굴곡진 역사가 만든 현재의 삶도 만났다.


↑ 베를린 장벽 유적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베를린 장벽 유적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 체크포인트 찰리 마우어뮤지엄 입구

체크포인트 찰리 마우어 뮤지엄 입구.

↑ 냉전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는 전시관 '블랙박스 콜드 워' 앞

냉전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는 전시관 '블랙박스 콜드 워' 앞.

↑ 베를린이 4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을 당했을 때의 지도.

베를린이 4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을 당했을 때의 지도.

↑ 러시아탱크를 볼 수 있는 소비에트 전쟁 기념관.

러시아 탱크를 볼 수 있는 소비에트 전쟁 기념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인물은 휴가 중 바뀐 정책을 잘 몰라 말실수를 한 동독의 대변인이 아니에요. 독일어가 서툴렀던 이탈리아의 기자였죠. '여행 제한 조치를 완화했다'고 했을 뿐인데 '국경이 개방됐다'를 거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로 오역을 했어요. 대형 사고죠! 그가 전송한 기사는 세계 외신을 통해 일파만파 전해져 서독 TV에도 나오게 됐어요. 이를 본 시민들은 바로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갔고 벽을 허물었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어요. 한국도 그렇게 갑자기 통일이 될지도 몰라요. 어느 날 국민들이 국경을 허물지도요."

베를린의 개선문으로 불리는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앞. 가이드인 샤샤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틀렸어. 우리의 국경 사이엔 지뢰밭이 있거든'이라는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한국의 통일을 기원해주는 그에게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베를린을 처음 찾는 여행자라면 가이드 북을 들고 다음의 장소를 찾게 된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간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 동, 서독간 마지막 출입문이었던 브란덴부르크 문, 분단과 냉전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올해는 더 많은 이들이 베를린의 역사적 장소들을 둘러보게 될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25주년이 되는 해로 베를린 시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배우며 자란 한국인이라면 베를린의 옛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펼쳐질 일을 독일은 미리 겪은 게 아닌가.

그래서 베를린은 더없이 흥미로운 도시다. 나는 오랫동안 베를린이 동서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베를린이 동독 지역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줄은 몰랐다. 서 베를린은 동독 지역 한가운데 떠 있는 외로운 섬과도 같았다. 베를린이 동과 서로 나뉘었던 세월은 45년이다. 두 지역 모두 각자의 노선대로 발전을 거듭했고 서로 다른모습을 지니게 됐다.

베를린의 동쪽과 서쪽을 깊숙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자전거 투어의 가이드인 샤샤는 자신을 '리얼 베를리너'라고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요? 집에 있던 가장 큰 해머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뛰어갔죠! 그땐 어려서 다음 날 학교를 땡땡이칠수 있단 사실에 신이 났었죠. 역사적인 현장인데 교실에 앉아 있을 수 있나요?" 그는 먼저 프렌츨라우어베르크로 안내했다. 이 지역은 베를린의 중심인 미테에서 북동쪽을 차지한다. 여기엔 베를린 장벽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베를린 장벽 기념관Gedenkstatte Berliner Mauer이 있다. 장벽이 어떻게 세워졌는지에서부터 베를린 장벽의 모습, 이를 지키던 군인들의 임무, 탈출하다 희생당한 동독인 등 몇 시간을 꼬박 머물게 하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서독인들은 장벽 근처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어요. 하지만 동독의 장벽 안에는 무인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어요. 가까이 접근해 탈출을 시도하지 못하게 한 거죠." 야외에 전시된 사진 중 장벽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가로등에 매달려 동베를린 쪽을 향해 손 흔드는 아이의 사진을 보니 가슴 한편이 아릿해졌다.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Ich Bin ein Berliner"라고 운을 떼며 큰 호응을 얻었던 미국 캐네디 대통령의 연설이 떠올랐다. 그는 가족, 남편과 아내, 형제와 자매를 갈라놓고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을 못 만나게 하는 것은 역사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했다.

↑ 중앙에 이삭과 망치, 컴퍼스를 그려 넣은 옛 동독 국기.

중앙에 이삭과 망치, 컴퍼스를 그려 넣은 옛 동독 국기.

↑ DDR 뮤지엄에서 본 옛 동독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있는 캐비닛.

DDR 뮤지엄에서 본 옛 동독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있는 캐비닛.

↑ 과거 비밀경찰의 사무실 모습.

과거 비밀경찰의 사무실 모습.

↑ 영화 <타인의 삶>에서처럼 누군가의 사생활을 감청하던 방

영화 <타인의 삶>에서처럼 누군가의 사생활을 감청하던 방.

↑ 동독 비밀경찰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를 볼 수 있는 슈타지 뮤지엄.

동독 비밀경찰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를 볼 수 있는 슈타지 뮤지엄.

↑ 템펠호프 공항 지하의 비밀 벙커.

템펠호프 공항 지하의 비밀 벙커.

과거 프렌츨라우어베르크는 동쪽에 속했다. 이 지역은 통일 후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이다. "동독 노동자 출신들이 지냈던 곳이에요. 어떤 방은 1명이 썼지만 또 어떤 방은 12명씩 머물렀죠. 놀라운 것은 난방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거예요.1990년까지 벽난로에 석탄을 넣어 난방을 했더라니까요. 아직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어요."

통일이 된 후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주인 없이 버려진 집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빈집에 들어가 '내 집이오' 하고 자물쇠를 채운 후 결국 주인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대로 자신의 명의로 남기도 했단다. 실제로 오더베르그 거리Oderberger Str.의 플랫을 거저 얻었다는 친구가 있다. 젊은이들은 이곳에 모여 콘서트를 열고 파티를 벌였다. "그래서 처음 이 지역엔 바와 클럽들이 가득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주방 용품이나 유아 용품 숍이 넘쳐나죠. 한때 마리화나를 피우며 게릴라 파티를 벌였던 이들이 25년이 지난 지금은 어엿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거든요. 나이가 비슷하니 결혼도, 임신도 비슷하게 했을 거고, 그래서 한때 이곳은 프란츨라우어베르크(베르크는 '언덕'이라는 뜻)가 아니라 '임신부의 동산'이라고까지 불렸죠." 프렌츨라우어베르크를 떠나 자전거를 타고 찾은 곳은 '카를 마르크스 알레Karl MarxAllee'였다. '프렌츨라우어베르크가 노동자들의 땅이었다면 이곳은 상류층, 실적 좋은 공산주의자들이 사는 곳이었어요. 이러한 형태의 건물을 '러시아 사회주의적 고전주의'라고 하고 '웨딩 케이크 스타일'의 빌딩이라고 하죠." 영화 <타인의 삶>을 본이들은 알 것이다. 정치가며 군인, 유명한 예술가들은 이렇게 화려한 아파트에 살았다. 조금만 뒤로 가면 '플라텐바우plattenbau'라고 불리는 칙칙한 박스형 아파트가 있다. 겉모습은 우울하지만 당시로는 신식 주거 형태로 이곳에 사는 이들은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프리드리히스하인 지역을 거쳐 슈프레 강변을 지나면, 그때부터 베를린의 서쪽이 시작된다. 왠지 서쪽이라고 하면 우아하고 깨끗한 거리만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미 1970년대부터 서브컬처가 발달하기 시작했다고요.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그래피티가 성행했어요."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은 젊고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다 옛날 이야기예요. 지금 크로이츠베르크는 베를린에 살러 온 주머니 두둑한 외국인들로 가득해요. 젊고 가난하며 재능있는 아티스트들은 이제 노이쾰른으로 향하죠."

최근에는 베를린의 서쪽이 뜨고 있다. 한동안 동쪽에만 집중되었던 관심과 투자가 다시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서쪽에서도 샤를로텐부르크 지역은 베를린 역사 대대로 왕이며 귀족, 부호, 지식인, 예술인이 살던 곳이다. 이곳이야말로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 운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40대 부인들을 위한 고급 부티크 등이 늘어서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의 콘셉트 몰이라는 '비키니 베를린'이 들어서 힙스터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베를린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 중 하나다. 아픔과 혼란의 역사를 겪었지만 이로 인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도시로 거듭났다. 어쩐지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졌다.

↑ 오래된 공장 앞의 공터로 푸드 트럭들이 몰려든다

오래된 공장 앞의 공터로 푸드 트럭들이 몰려든다.

↑ 자빙니플라츠 역 아래에 위치한 서점.

자빙니플라츠 역 아래에 위치한 서점.

↑ 히틀러의 벙커가 결국 최고의 갤러리인 '잠룽 보로스'로 거듭났다.

히틀러의 벙커가 결국 최고의 갤러리인 '잠룽 보로스'로 거듭났다.

↑ 프렌츨라우어베르크의 맥주 공장은 맥주가 아닌 다채로운 문화를 생산해낸다.

프렌츨라우어베르크의 맥주 공장은 맥주가 아닌 다채로운 문화를 생산해낸다.

↑ 서베를린의 우아한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다스 스튜에 호텔.

서베를린의 우아한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다스 스튜에 호텔.

↑ 슈프레 강변 너머로 바라다보이는 베를린 돔.

슈프레 강변 너머로 바라다보이는 베를린 돔.


베를린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





1 슈타지 뮤지엄Stasi Museum

옛 동독 비밀경찰의 역사와 활약상은 물론 이들이 도청을 했던 방, 첩보에 쓰였던 기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OPEN

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토,일요일, 공휴일 낮 12시~오후 6시

LOCATION

Rusche Str. 103, Haus 1


TEL

+49-30-553-68-54

WEB

2 옛 동독 박물관DDR Museum

옛 동독의 역사와 당시의 삶을 첨단 기술력와 멀티미디어, 위트 있는 장치로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게 했다.


OPEN

월~금요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8시,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10시

LOCATION

Karl-Liebknecht Str. 1


TEL

+49-30-847123731

WEB

3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Museum Hausam Checkpoint Charlie


분단 당시 검문소를 재현해놓은 곳. 근처의 마우어 박물관에선 독일의 분단과 통일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다.


OPEN

오전 9시~오후 10시

LOCATION

Friedrich Str. 43-45, 10969, Berlin


TEL

+49-30-2537250

WEB

www.mauermuseum.de


4 베를린 장벽 기념관The Berlin Wall Memorial & Documentation Centre


베를린 장벽의 역사와 이에 얽힌 사연이 가장 꼼꼼히 기록되어 있는 곳.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OPEN

화~일요일 오전 9시 30분~오후 7시(4~10월), 화~일요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LOCATION

Bernauer Str. 111


TEL

+49-30-467986666

WEB

www.visitberlin.de/en/spot/the-berlinwall-memorial-and-documentation-centre


5 쿨투어브라우어라이Kulturbrauerei


'베를린 온 바이크' 투어의 본부가 위치해 있다. 박물관에서 <DDR 시대의 일상>이란 타이틀로 전시 중.


LOCATION

Schonhauser Allee 36


TEL

+49-3- 44352614

WEB

kulturbrauerei.de



2차 대전 당시 완전히 파괴된 도시 드레스덴과 2차 대전 이후 냉전의 상징이 된 도시 베를린. 전쟁으로 상처 입은 두 도시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오늘과 다를 내일을 살아간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지만 두 도시를 걸으며 행복했다.

작센주를 통치한 35명 군주가 행렬하는 '군주의 행렬' 벽화
젬퍼오퍼 앞에 자리한 작센 왕 요한Johann의 기마상
젬퍼오퍼 전경
츠빙거 궁전의 정원
브륄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아우구스투스 다리
아침 시간의 프라우엔 교회. 낮에는 이 일대가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Dresden

드레스덴 구시가를 걷다

이른 아침부터 카메라를 들고 호텔을 나섰다. 빗방울이 옷과 머리를 조용히 적신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처럼 화창하다가도 금세 비를 뿌려대던 어제의 하늘을 떠올리며 몇초간 망설이다 걸음을 뗀다. 우산도 없지만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인지 독일 사람들은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도 느긋하다.

아침부터 분주한 까닭은 베를린행 11시7분 기차를 타기 위해서다. 남은 몇 시간 동안 드레스덴 구시가를 한 바퀴 돈 다음 아침밥을 먹고 떠날 작정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속속들이 관람하지 않는다면 2~3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정도로 드레스덴 구시가는 아담하다.

호텔은 엘베 강변에 접한 마리팀Maritim이다. 와인과 담배를 저장하기 위해 1915년에 지은 창고는 2006년 마리팀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시멘트를 바른 외벽과 획일적인 작은 창을 지닌 건물의 외양은 무미건조하지만, 여행의 설렘을 품고 비즈니스의 성공을 꿈꾸는 이들이 머무는 호텔 안은 따뜻하다.

엘베 강변을 따른다. 밤새 정화된 상쾌한 공기가 강을 따라 떠돈다. 드레스덴 사람들은 자전거로 강변을 달리며 아침을 호흡한다.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느린 걸음으로 10~15분. 작센주 의회 건물을 지나 도심으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드레스덴 구시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젬퍼오퍼Semperoper.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가 초연된 곳이자 세계에서 알아주는 작센주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인 오페라 하우스다. 1838~1841년에 건립된 젬퍼오퍼는 2차 대전 당시 파괴됐다가 1985년에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 40년이 지나서야 원래 모습에 가까워졌지만 이는 그래도 양반이다.

드레스덴은 1945년 2월13일에 시작된 영국군과 미국군의 공습으로 도시의 80% 이상을 잃었다. 도시에 카펫을 깔 듯 폭탄을 퍼부은 공습은 융단폭격Carpet Bombing이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1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도시는 빠르게 회복됐지만 드레스덴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엘베 강변의 피렌체'라 불리며 아름다움을 뽐내던 드레스덴 건축물 중 상당수는 여전히 크레인 아래에 놓여 있다.

젬퍼오퍼 바로 옆에 자리한 츠빙거 궁전Zwinger Palace 또한 공사 중이다. 츠빙거 궁전은 현재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사용된다. 드레스덴에는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만 무려 12곳에 달한다. 예부터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인 드레스덴의 단면이다. 츠빙거 국립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은 라파엘로의 '성모상'. 작품 아래의 아기 천사들은 각종 기념품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궁전 입구 공사막이에도 아기 천사가 그려져 있다. 다만 박물관과 미술관을 제대로 즐기려면 월요일은 물론 이른 아침도 피해야 한다. 월요일은 휴무이며 나머지 요일은 오전 10시부터 문을 연다. 화요일, 베를린행 11시7분 기차를 타야 했던 이의 아쉬움이자 충고다.

츠빙거의 남동쪽 문에는 세계 3대 도자기로 손꼽히는 작센주의 전통 공예품인 마이센 자기로 빚은 카리용종이 달려 있다. 두 개의 칼이 교차한 작센주의 전통 문양도 보인다. 이 문을 통과해 좌회전하면 드레스덴 궁전과 대성당이 이어진다. 걸어서 1~2분 거리로 멀지 않은 거리다.

어제, 여행자들로 붐볐던 슈탈호프 성벽으로 접어든다. 거리의 마임 예술가에게 빼앗겼던 어제의 시선을 오늘은 오롯이 벽화에 둔다. 101m에 이르는 거대한 벽화에는 1127년부터 1910년까지 작센주를 통치한 35명의 군주가 행렬한다. 성벽은 그들의 위엄을 대신하듯 높디높다.

군주의 행렬Procession of Princes을 끝까지 따라가 우회전해 5분가량 걸으면 슈트리첼마르크트Striezelmarkt다. 슈트리첼마르크트는 1434년부터 시작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마스 마켓. 올해에는 11월26일부터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마켓이 열린다. 이 시기에는 오전 10시경부터 오후 9시경까지 상점들이 문을 열고 크리스마스 빵인 슈트리첼을 비롯해 크리스마스 관련 용품과 음식을 판다. 슈트리첼마르크트에서는 춥고 어두운 겨울도 크리스마스의 로망 속에 몸을 숨긴다.

시즌이 아닐 때는 오후 3~8시경에 상점이 문을 연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은 슈트리첼마르크트를 거닐자니 후회가 밀려든다. 어제 저녁, 2시간의 여유시간을 신시가에서 보내는 게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제품 가게'라는 말에 홀려 무작정 푼즈 몰케레이Pfunds Molkerei로 가는 게 아니었다. 오후 6시면 문을 닫는 푼즈의 쇼윈도만 허망하게 바라보느니 슈트리첼마르크트의 작은 상점에서 음식과 맥주를 즐기는 게 옳았다.

'교회 전망대에 올라 드레스덴을 한눈에 담았어야 했는데.' 드레스덴 최고의 볼거리인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에서도 아쉬움을 토했다. 일정에 쫓겨 예배당만 보고 떠난 지난 시간이 아쉽다.

강변으로 발길을 옮겨 브륄의 테라스Bruhl's Terrace에 오른다. 아침 햇살 아래의 구시가는 더욱 고색창연하고, 화가 베르나르도 벨로토가 사랑한 '아우구스트 다리 아래쪽 엘베강 우측 제방'은 푸르다. 여행자로 가득했던 어제와는 달리 아침의 거리는 일터로 향하는 분주한 발걸음이 채운다. 옛 건축물 사이를 헤집고 달린 트램이 다리 위를 지나고, 강변도로에는 교통체증이 시작됐다. 나름 한적하지만 한편으로 더욱 분주한 드레스덴의 아침. 여행자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드레스덴 구시가를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재건을 거듭하며 과거의 모습을 찾고 현재를 이루는 드레스덴의 속살을 엿보기에 좋은 시간이다.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자리. 글자 방향에 따라 위쪽은 동독, 아래쪽은 서독에 해당된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인 '형제의 키스'
동독의 국민차였던 트라반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많은 이들이 이 차를 타고 서독으로 넘어왔다
베를린 장벽

●Berlin

베를린의 과거를 만나다

"한국은 남과 북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동독과 서독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의 거리를 이야기하던 중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입을 다물었다. 답을 몰랐다. 분단국가에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베를린 장벽을 대하는 느낌은 특별하다. 정서적으로 일부 다르지만 또 유사하다.

갑작스런 질문을 던졌던 베를린 장벽 기념관의 가이드는 동독 출신이라고 했다. 20대에 통일을 맞은 그는 장벽을 넘고 싶어도 넘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게 전했다. 180개에 이르는 감시 타워 등 삼엄한 경비는 첫 번째 문제였다. 운 좋게 감시의 눈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어려움이 따랐다. 베를린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상대적으로 낮은 첫 번째 장벽을 넘는 데 성공해도 어른 키의 두 배나 되는 두 번째 장벽이 기다린다. 장벽을 넘으려면 최소 2인 1조로 움직여야 했다. 물리적인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중국의 서독 대사관을 거쳐 서독으로 망명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지척의 서독 땅을 두고 지구를 크게 돌아간 셈이다. 장벽을 쉽게 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 그는 가족을 말했다. 동독에 남겨져 억압받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한다.

과거, 동독 영토 내에 섬처럼 자리하며 강대국의 이해를 대변하던 도시 베를린. 베를린 장벽이 건재했던 과거로의 여정은 베를린 장벽 기념관이 자리한 노드반호프Nordbahnhof역에서 시작된다. 역사를 빠져나가기 전 발 아래에는 'Sperrmauer 1961-1989'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다. 'Berliner Mauer 1961-1989'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글자의 방향에 따라 윗부분은 동독, 아랫부분은 서독에 해당한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일대에는 장벽이 사라진 자리의 바닥이나 기둥에 이처럼 따로 표시를 해두었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여정은 관광안내소 2층에서 영상을 관람하며 시작된다. 10분여 펼쳐지는 베를린 장벽 관련 실제 영상들은, 아프다. 이쪽에서 살아야 했기에, 저쪽으로 가기 위해 죽음을 불사해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와 닮아, 아프다. 베를린 장벽이 생기기 전, 건물이 자리했던 국경의 경계선은 서독으로 넘어가기에 그나마 수월했다. 몇 층 높이의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이들의 모습을 영상은 그대로 전한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 이들이 날로 늘자 멀쩡한 건물이 철거되고 장벽이 건설된다.

60m에 이르는 베를린 장벽이 그대로 보존된 기념관의 야외 구역으로 나선다. 동베를린 구역, 철통같은 감시 속에 놓였던 공간이 펼쳐진다. 그나마 낮은 첫 번째 장벽에 서서 갈라진 틈 사이로 너머를 바라본다. 단체 견학을 온 독일의 학생들도 갈라진 틈에 눈을 대고 저 너머를 바라본다. 하지만 불행히도 벽 너머로 보이는 건 벽뿐이다. 더 높은 벽뿐이다. 과거, 아마도 운 좋게 첫 번째 장벽에 다가가 두 번째 장벽을 바라본 이가 있었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으리라. 장벽 옆 '기억의 창Window of Remembrance'에는 장벽을 넘으며 목숨을 잃은 130명의 사진을 전시하고 추모한다. 어린아이의 사진 앞에서는 누구나 걸음을 멈칫한다.

계단을 걸어 5층 높이의 전망대에 오른다. 높은 벽으로 양쪽을 막아 놓아 지상에서는 접근할 수 없는 장벽의 일부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관광객들로 붐볐던 저쪽 장벽과는 달리 아무도 없는 장벽. 삼엄한 감시의 눈길 외에 아무것도 없었을 그 옛날과 그대로라 어쩐지 더욱 쓸쓸하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외에 베를린 장벽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가 있다. 슈프레강과 면한 1.3km의 장벽은 1990년 벽화 가득한 갤러리로 거듭났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에서 안타까운 과거를 봤다면 이곳에서는 변화한 현실의 기쁨을 본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는 '형제의 키스.' 옛 소련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동독 공산당 에리히 호네커가 만나 나눈 독재자들의 키스를 해학적으로 그렸다. "게이인지는 잘 모르겠고…" 가이드의 농담에 한바탕 웃는다.

동서로 나뉘었던 베를린의 흔적은 국경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에도 남아 있다. 찰리는 통신 음어인 알파, 브라보, 찰리의 C에 해당하는 찰리. 베를린 장벽과 더불어 냉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곳 검문소는 현재 진짜 미군 대신 가짜 미군이 지킨다. 몇 유로를 내면 여권에 도장도 찍어 주고 기념촬영도 기꺼이 해준다. 체크포인트 찰리 인근의 더 월The Wall 박물관도 볼 만하다. 서베를린 쪽에서 찍은 베를린 장벽의 여러 사진을 합쳐 분단 당시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장벽의 틈 사이로 너머를 바라보는 학생들
베를리너 돔 전망대에서 바라본 슈프레강
박물관 섬의 보데 박물관 외관
베를리너 돔 내부

베를린의 오늘을 즐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도 벌써 26년이 지났다. 장벽에 가려져 각자의 이념에만 충실했던 도시 베를린은 이제 전 세계에서 온 이방인들이 한데 섞여 모여 사는 다국적 도시로 변모했다.통일 후 베를린에 이방인들이 몰려든 가장 큰 이유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도시의 요구 때문이었다. 당시 대거 이주한 터키인들은 도시에 정착해 터키 고유의 문화를 뿌리내리며 베를린의 일부가 됐다. 케밥과 같은 이국의 음식도 이제 베를린에서는 자연스러운 한 끼 식사가 됐다. 저렴한 등록금의 학교에는 다국적 학생들이 모여들고, 젊은이들이 모인 도시는 활기에 넘친다. 세계적인 수준의 펍과 클럽도 베를린에서 찾을 수 있다. 주말에 베를린을 찾는다면 24시간 운영되는 U반지하철을 타고 클러빙에 나서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베를린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쪽과 저쪽의 구분이 없어지며 이쪽과 저쪽의 모습을 동시에 품은 베를린은 즐길거리와 볼거리의 천국이 됐다. 슈프레섬Spreeinsel의 북쪽 끝을 지칭하는 '뮤제움스인젤Museumsinsel'은 시간 여유가 없는 여행자에게 효과적이다. 얼마나 많은 박물관이 있으면 '박물관 섬'이라는 뜻의 뮤제움스인젤이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인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을 비롯해 5개의 대형 박물관이 섬 안에 자리한다. 모든 박물관이 워낙 큰 규모라 정보를 미리 확인한 후 관심 있는 곳을 찾는 게 현명하다.

섬에 자리한 베를린 대성당, 베를리너 돔Berliner Dom은 화려하고 웅장하다. 2차 대전 당시 폭격을 받아 바뀐 모습이라니 원래 모습은 감히 상상하기가 힘들다. 성당의 1층은 예배당이다. 고개를 젖혀 화려한 모자이크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치장한 창을 감상한다.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을 지체하진 말 일이다. 성당의 꼭대기 전망대에 보석 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야외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꼭대기로 갈수록 좁아진다. 빙글빙글 좁은 계단을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오른다. 다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어지는 작은 문들. '야외 전망대가 있긴 할까?' 의심이 들 무렵 밖으로 향하는 문이 나온다. 그리고 "아!" 두 갈래로 갈라진 슈프레 강에 놓인 박물관 섬이 한눈에 펼쳐진다. 강물 위로는 유람선이 유유히 떠다니고, 강 너머로는 시청과 성 니콜라스 교회, 티브이 타워 등 이름 있는 건물과 이름 없는 건물이 한데 섞여 이어진다. 베를린 최고의 전망대라 불리는 티브이 타워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티브이 타워를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는 베를린 대성당이 틀림없다. 전망대를 둥글게 돌며 베를린을 천천히 눈에 담는다.

베를린 대성당은 시간 여유가 없는 여행자에게도 자비를 베풀며 베를린의 많은 풍경을 보여 준다. 자비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성당 바로 앞에는 베를린 시민들은 물론 여행자들이 한숨 돌려 쉬어갈 수 있는 루스트가르텐Lustgarten이 자리했다. 환한 햇살과 푸른 잔디. 베를린의 오늘은 이처럼 평화롭다.

▶travel info

AIRLINE루프트한자가 인천-프랑크푸르트, 인천-뮌헨 구간 직항편을 운항한다. 드레스덴이나 베를린은 프랑크푸르트나 뮌헨에서 국내선을 이용하면 된다. 루프트한자는 기내 습도와 방음에 특히 신경을 써 비행기를 제작한다. 덕분에 긴 비행에도 피로도가 낮아 여행과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 이코노미가 조금 힘들다면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을 선택하자. 합리적인 가격으로 조금 더 넓고 쾌적한 좌석을 얻을 수 있다. 전 세계를 잇는 모든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가 동일한 것도 루프트한자의 자랑이다. www.lufthansa.com

▶드레스덴

ATTRACTION필니츠 궁전Pillnitz Palace강건왕 아우구스트가 자신의 부인을 위해 지은 여름 별궁이다. 드레스덴 근교의 엘베 강변에 자리해 로맨틱한 풍경을 연출한다. 궁전과 강, 정원의 조화가 아름다운 곳으로 강변에 붙어 자리한 궁전은 물의 궁전, 정원 쪽에 자리한 궁전은 산의 궁전이라 불린다.필니츠 궁전에 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브륄의 테라스 앞에서 유람선을 타는 것. 증기선인 유람선을 타고 강변 풍경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시간이 없는 여행자들은 드레스덴 여정에서 필니츠는 빼는 게 낫다.www.schlosspillnitz.de

▶베를린

HOTEL마리팀Maritim독일 외에 모리셔스, 이집트, 터키, 몰타, 스페인, 중국 등 해외 6개국에 호텔을 보유한 호텔 그룹. 독일 내에 36개의 호텔이 자리하며 드레스덴과 베를린에도 지점이 있다. 드레스덴은 넓은 객실, 베를린은 아담하고 깨끗한 객실이 좋다. 두 호텔 모두 대형 컨벤션 센터를 보유했다.www.maritim.de

SHOPPING파스벤더 & 라우쉬Fassbender & Rausch세계에서 가장 큰 초콜릿 가게. 명성답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1층의 초콜릿 판매장에서는 티브이 타워, 소니센터 등 베를린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초콜릿으로 만들어 전시한다. 2층에는 초콜릿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3층에는 치과, 4층에는 다이어트 상담소가 있다나.www.fassbender-rausch.de

몰 오브 베를린Mall of Berlin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신도시의 심장부로 부상한 포츠다머 플라츠에 자리한 쇼핑센터. 베를린 최대 규모의 쇼핑센터로 300개 이상의 숍을 보유했다. 자라, H&M 등 유럽의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매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꼭대기 층에 해당하는 2층에는 다양한 레스토랑이 몰려 있다.www.mallofberlin.de

하케쉐 마르크트Hackescher Markt에스반역 인근에 자리한 쇼핑 구역이다. 야외에 테이블을 마련해 놓은 레스토랑은 물론 독일 로컬 브랜드의 편집 숍들이 몰려 있다.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자리한 하케쉐 호프는 8개의 뜰로 이어진 공간. 호프와 호프는 이어져 있어 산책 겸 쇼핑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대형 쇼핑센터에서 구하기 힘든 독특한 아이템이 많지만 가격은 전반적으로 비싸다.www.hackeschermarktberlin.de

RESTAURANT코놉케스 임비스Konnopke's Imbiß에버스발더 스트라세역 인근에 자리한 커리부어스트 전문점. 굽거나 튀긴 소시지를 케첩에 버무려 커리 가루를 뿌려 먹는 커리부어스트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요리다. 커리36과 같은 체인점도 유명하지만 베를린 사람들이 꼽는 일등 맛집은 바로 이곳. 커리부어스트에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 세트 메뉴가 3.5유로로 매우 저렴하다.www.konnopke-imbiss.de

카페 암 노이엔 지Cafe am Neuen See도심 속 거대 정원인 티어가르텐 내 노이엔 지 호수 옆에 자리한 카페이자 레스토랑. 호수가 바라보이는 야외는 물론 실내에 좌석이 마련돼 있다. 저녁시간에 실내 좌석을 원한다면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인기다. 촛불 모양의 조명을 밝힌 은은한 분위기가 좋다. 샐러드와 스테이크 등 메뉴가 다양하며 5~6종류의 생맥주를 선보인다. www.cafeamneuensee.de

BAR몽키 바Monkey Bar베를린 동물원 인근에 자리한 바.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바 중 하나로 명성이 높다. 남녀노소는 물론 개까지 바를 드나들 정도로 출입에 제한은 없다. 실내는 그리 넓은 편이 아니라 좁은 테이블이나 계단 등에 앉아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500CC 생맥주가 5유로가량으로 저렴하다.www.25hours-hotels.com/en/bikini/restaurant/monkey-bar.html

뉴튼Newton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바이자 레스토랑 중 하나. 낮에는 한가하지만 늦은 저녁 시간에는 예약 없이 입장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다. 패션 사진의 거장이자 베를린 출신 사진작가인 헬무트 뉴튼의 작품을 모티브로 했으며, 그의 작품인 하이힐 신은 나체 여성들이 한쪽 벽면을 장식한다.www.newton-bar.de

장벽 기념관. 갈라진 장벽 틈 사이로 또 다른 장벽이 막아선다

에디터 김기남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취재협조 독일관광청 www.germany.travel/kr, 루프트한자독일항공 www.lufthan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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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아바 섹시arm, aber sexy,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베를린을 말하는 가장 유명한 수식이다. 하지만 틀렸다. 베를린은 섹시하지만 가난하지 않다. 베를린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그 어느 도시에서보다 몸과 마음이 풍요로웠다. 파리가 예쁘고, 뉴욕은 뜨거웠으며, 방콕이 편안했다면, 베를린은 멋진데다 정겹다. 이제 나는 베를린을 가장 편애한다. 이 세상 최고의 도시라고. 

베를린의 그래피티는 뉴욕이나 파리의 그래피티보다 다양하고 거대하다. 통독 후 어둡고 칙칙했던 베를린의 분위기는 거친 그래피티와 어우러지며 도시의 독특한 이미지를 탄생시켰다

●Berlin베를린 이 세상 최고의 도시

“내게 베를린은 이 세상 최고의 도시야.” 지난 3월, 뒤셀도르프에 사는 일본인 친구 유미가 말했다. 내가 베를린에 가게 됐다고. 베를린 어때? 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답했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독일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독일에 살지만 남편과는 독일어도 영어도 아닌 일본어를 쓰며 산다. 자연히 그녀의 영어나 독어는 신통치 않은데 독일에 사는 게 마냥 좋다고 한다. 그러나저러나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베를린이 최고라고? 베를린에 살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알아? 처음 유미 얘기를 들었을 때는 과장이 좀 심하네, 하고 건성으로 들어 넘겼었다. 

4월이 되었고, 베를린에서 열흘을 지낸 내게 이번에는 유미가 물었다. “베를린 어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당신 말이 맞았어. 내게도 베를린은 이 세상 최고의 도시야.”

베를린에서 단지 아홉 밤을 잤을 뿐이다. 겨우 아홉 밤 만에 나는 베를린을 이 세상 최고의 도시로 여기게 되었다.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내 말을 건성으로 들어 넘길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의아하다. 베를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나는 베를린에서 행복했다고. 사실 난 ‘행복’ 운운하는 말을 거의 쓰지 않기에 베를린에서 행복하다고 느낀 건 ‘별일’이다.

그렇다고 베를린에서 무슨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베를린 이곳저곳을 열심히 걸어 다녔을 뿐이다. 단, 관광지는 피했다. 관광객이 아닌 베를린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보고 싶었던 나는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도, 샤를로텐부르크 성Schloss Charlottenburg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란 368m 높이의 베를린 TV 타워도 안 갔다. 그저 거리를 걷기만 했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독일어 한마디 하지 못하지만 잘 돌아다녔고, 아는 사람 하나 없지만 외롭지 않았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빌린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지역의 4층 아파트에 짐을 풀고 계단을 걸어 내려와 그래페Graefe 거리로 들어서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흥분을 가라앉히느라 잠시 애를 써야 할 정도였다. 서울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어떤 기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거친 듯 순진한 거리의 공기가 나를 마구 찔러댄 탓이다. 나는 바로 알아챘다. 바로 그곳에 베를린이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상상해 온 베를린을 단박에 보고 말았다. 그건 바로 날것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자유였다. 의식보다 몸이 먼저 자유를 알아채더라.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베를린에 왔다.

나는 왜 베를린에 반했을까? 처음 베를린 거리를 걷는데 늘 이곳을 걸어 다닌 것만 같았다. 독일의 낯선 대도시가 아니라 우리 동네를 거니는 것처럼 편안했다. 약국 화장품 질이 좋다는 말을 듣고 얼굴에 바를 로션 하나를 사려 해도 글자를 읽을 수 없어 독어사전을 찾아야 했으나 그조차 불편한 줄 몰랐다. 길을 전혀 모르지만 한 달 동안 쓸 수 있는 9.99유로짜리 유심 칩을 스마트폰에 끼워 주니 구글맵으로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는 일은 매우 쉬웠다. 영어를 잘하거나 독일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훨씬 더 즐겁게, 편하게 지냈을 것 같다.   

베를린 사람들은 부드럽고 친절했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거리에서 지도를 펼쳐 들자마자 할아버지가 다가와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이런 일은 그 후에도 또 있었다. 누군가 베를린은 서울보다 1.5배 크다고 했다. 정말?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걸어 다닌 베를린은 메트로폴리탄이 아니라 작은 빌리지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나무 위 새소리를 들었다. 베를린 한복판의 티어가르텐 공원은 공원이 아니라 숲 같았다. 그만큼 베를린의 녹음은 넓고 짙다. 

한 번은 베를린 시내 중심가를 걷는데 스물 다섯쯤 되어 보이는 백인 남자가 묻는다. 

“저 알렉산더 플랏츠로 가는 길인데 어느 쪽인지 아세요?”

최소한 그에게 나는 베를린의 외국인이 아니라 베를린 주민으로 여겨졌다. 그만큼 베를린은 코스모폴리탄 시티다. 중국, 터키, 베트남, 캐나다, 스위스, 이스라엘, 폴란드, 스페인, 타지키스탄, 러시아, 일본 이민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페루에서 온 이민자들이 함께 산다. 자연히 각양각색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면 매혹적인 공기를 풀풀 뿜어낸다. 

2014년 퇴임한 클라우스 보베라이트Klaus Wowereit 시장은 게이였다. 2001년 마흔 여덟의 나이에 시장으로 당선된 후 2014년 예순 하나가 될 때까지 13년 동안 베를린 최장기 시장을 역임했다. 그는 선거 과정 중 TV 토론에서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이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베를린 시민들은 보베라이트 시장을 열렬히 지지했다. 하지만 그는 ‘게이 또는 성적 소수자LGBT의 아이콘’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독일 총리로 재직 중인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의 대항마로 거론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그는 2014년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를린의 인구 구성은 특별합니다. 인간적 도시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바로 시민들의 포용적 태도입니다. 베를린은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베를린에는 현재 3,500명 정도의 성소수자 난민이 있다고 한다. 복잡한 난민 문제 속에서도 성소수자를 위한 보호시설을 만들고,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이민자, 난민의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곳이 바로 베를린이다. 

2013년 베를린시 통계에 따르면 전체 베를린 인구의 10% 이상은 문화예술계 종사자이고 이들이 베를린 경제생산의 21%를 담당한다. 베를린시는 외국 예술가들에게 무상 의료보험 혜택을 주었다. 도시에도 DNA라는 게 있다면 베를린의 DNA는 문화고 예술이다. 이 세상에 도시의 키워드가 ‘섹시’인 도시가 베를린 말고 또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섹시는 각양각색의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다. 그렇다고 예술의 도시, 이런 식의 수사는 너무 식상하다. 베를린은 좀 더 특별한 이름을 가져야 한다. 베를린은 아직 그 이름을 찾지 못했다. 베를린은 전에 없던 ‘새로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베를린을 ‘1980년대의 뉴욕’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는 베를린이 특별하다고 인정하지만 결국 뉴욕의 하위인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뉴욕과 베를린은 다르다. 베를린에서 고작 열흘을 지냈을 뿐인 나는 아직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뭐가 다른지 알고 싶어 나는 다시 베를린에 가고 싶다. 

베를린은 서울보다 크지만 거리 곳곳의 녹음이 짙다

가운데 보이는 직선은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자리를 의미한다

통독, 구동독, 베를린 장벽의 정치적인 이슈들은 이제 베를린 관광산업의 중요한 모티브다

베를린 남쪽,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한 카페

베를린 야경 속의 TV 타워는 유럽에서 가장 높다

●Tempelhhofer Feld 템펠호프 공항 공원으로 변한 공항

활주로는 비행기가 뜨거나 내릴 때 달리는 길이다. 오늘은 비행기를 타지 않고 두 발로 활주로 앞에 섰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활주로 바닥의 부호가 거대하다. 비행기는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활주로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활주로의 끝이 저 멀리 보이긴 했지만 한참을 걸어도 그 끝에 도착하지 못했다.

사방이 탁 트인 활주로 주변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걸었다 해도 대략 2km를 걷는데 30~40분 정도 걸렸으니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이 길의 주인이 사람 아닌 비행기라고 생각하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 이곳의 주인은 비행기가 아니다. 공항이 공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템펠호프 공항Tempelhhofer Feld, 베를린 남쪽에 있는 공항이다.

1923년 문을 열었다가 2008년 문을 닫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템펠호프 공항은 베를린을 방어하는 독일 공군기지였으며 전후에는 소련에 맞서는 서방세계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동서독 분단 후 소련이 서베를린을 봉쇄했을 때는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서베를린 시민들의 식량과 연료를 실어 나른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한마디로 냉전 시절, 템펠호프 공항은 서베를린 시민들의 생명줄이었다. 

공항이 문을 열고 8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공항의 효용성이 점점 떨어지자 공항은 결국 문을 닫았고, 베를린시 당국은 공항 부지에 4,700호 규모의 주택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점차 심각해지는 베를린의 주택난을 조금이라도 풀겠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베를린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집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사람들은, 베를린이 예전 같지 않다는 푸념 섞인 말을 쏟아내던 상황이었다.

주택단지 건설은 베를린시에 꼭 필요한 정책인 것처럼 보였다. 실제 템펠호프 공항 면적은 어마어마하다. 뉴욕 센트럴파크와 비슷하고, 여의도공원의 16배에 달할 정도다. 개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베를린이란 도시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시의 야심찬 계획에 즉각 제동을 건 건 다름 아닌 베를린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공항의 주택단지화 대신 ‘공원화’를 요구했고 결국 시민 찬반투표에 의해 공항의 공원화가 결정되었다. 

베를린에 온 관광객이 빼먹지 않고 찾는 곳 중 하나는 아마 브란덴부르크 문일 것이다. 하지만 관광객이 베를린에서 꼭 방문해야 할 곳은 브란덴부르크 문이 아니라 바로 템펠호프 공항이다. 베를린에서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공원이라곤 하지만 본래 공항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거의 ‘개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주로가 놀이동산처럼 바뀌었지만 그게 전부다. 활주로를 따라 산책이나 달리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연을 날린다. 베를린에서 제일 큰 공원이다. 템펠호프 공항이 공원으로 바뀌기 전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했던 공원인 티어가르텐Tiergarten보다 더 크다. 베를린에서 가장 큰 공원이지만 그 안은 텅 비어 있다. 그래서 특별하다. 한때 어느 건축가는 베를린 지형이 평지인 점을 고려해 이곳에 1,000m 높이의 산을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이 역시 무위로 돌아갔다. 

지금은 봄이지만 눈 내리는 겨울날, 활주로를 따라 산책하는 공상을 펼쳐 본다. 흩날리는 눈발에 시선이 가리면 여기가 어디인가 싶을 것 같다. 여기는 바로 템펠호프 공항, 텅 비어 있어 넉넉한 그곳에 나를 내려놓을 자리는 충분하다. 

템펠호프 공항 Tempelhofer Damm 1-7, 12107 Berlinthf-berlin.de

공원으로 변한 공항 활주로에서 사람들은 연을 날린다

공항 활주로에서 자전거를 타며 봄날을 즐기는 사람들

공항 활주로는 광활한 조깅 코스로 변했다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에디터 천소현 기자

동·서독 통일의 잔재와 역사를 경험할 수 있어
오페라, 박물관 등 창의적인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

동독과 서독의 문화가 공존하는 베를린. 지난달 예술가 118명이 벽에 그림을 그려 유명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일대의 베를린 장벽을 철거한다는 소식에 베를린 시민의 대규모 반대 시위가 열렸다. 이렇듯 베를린은 독일의 역사와 전통이 숨 쉬고,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박물관·오페라 등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사랑하는 도시다. 현대적인 도시 느낌과 더불어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예술의 도시'로서 유럽의 심장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GNTB Kiedrowski, Rainer)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

브란덴부르크문은 베를린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축물이다. 1789~1791년에 베를린 심장부인 파리저 광장(Pariser Platz)에 세워졌으며, 베를린 장벽이 생긴 1961년 이후 28년간 통행할 수 없었다. 오늘날 독일 통일의 상징물이 되었고, 독일 수도의 과거와 미래를 대표한다. 

여섯 개 기둥 사이 다섯 개 통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보행자 길로 통한다. 상부에 4두 2륜 전차를 타고 있는 빅토리아 상은 승리의 여신을 상징하며, 1794년 설치되었다.

◆카이저-빌헬름 기념 교회(Kaiser Wilhelm Memorial Church)

베를린의 시내 중심인 쿠담(Kurfürstendamm) 거리에 파괴된 모습으로 여행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카이저-빌헬름 교회는 프로이센 빌헬름 1세를 기념하여 지어졌고, 고딕 양식의 네오 로마네스크 풍의 걸작이다. 유명 예술가들의 모자이크, 양각과 조각으로 만들어졌으며, 1943년 세계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포격을 맞아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탑은 오늘날 베를린 서부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남았다. 1961년 에곤 아이어만(Egon Eiermann)이 설계한 새 카이저-빌헬름 기념 교회가 봉헌되었으며, 파란 유리 외벽과 완벽한 음향효과로 널리 알려졌다.

베를린 성당 (Berliner Dom)./(ⓒGNTB Kiedrowski, Rainer)
◆베를린 성당 (Berliner Dom)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 강(Spree River) 중 슈프레 섬 북부에 있는 베를린 성당은 시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신교의 중심부 역할을 한다. 베를린 성당은 인종과 종교와 관계없이 전 세계 관광객의 발걸음을 이끄는 곳이다. 

율리우스 라쉬도르프(Julius Raschdorff)의 설계 하에 1894~1905년 동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성기와 바로크를 본 따 건축되었고,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성당 중 하나이다. 메인 입구는 성당 앞에 펼쳐진 작은 루스트정원(Lustgarten)을 가로질러 걸어가면 찾을 수 있다.

◆박물관 섬 (Museum Island)

베를린 중심부에 있는 '박물관 섬'은 199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여러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다양한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다. 

베를린 신 박물관(New Museum), 구 국립 갤러리(Old National Gallery), 보데 박물관(Bode Museum),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과 고대 박물관(Museum of the Ancient World) 등 5개의 건물로 구성되었으며, 메소포타미아부터 이집트까지, 고대 그리스와 로마·비잔티움·이슬람 문화·중세·19세기 낭만주의와 현대를 아우르는 예술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유대인 박물관 (Jewish Museum)

베를린의 뼈아픈 과거를 보여주는 곳이자, 여행객의 필수코스라 할 수 있는 유대인 박물관은 유대인들의 2천 년 역사를 담고 있다. 

1933년에 설립됐으나 나치에 의해 1948년 폐쇄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문을 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했고, 다양한 상설 전시는 유대인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13개 시대로 나뉘어 구성되었고, 미술·사진·서신 등이 전시되어 있다. 상설 전시 외 다양한 주제로 특별 전시가 열린다.

하케쉐마르크트 (Hackesche Höfe).(ⓒGNTB Lehnartz GbR Lehnartz, Klaus und Dirk)
◆하케쉐마르크트 (Hackesche Höfe)

하케쉐마르크트는 베를린 미테(Berlin-Mitte) 구역에 있으며, 독일에서 가장 큰 폐쇄 구조의 광장을 이룬다. 1977년부터 기념물로 보호 관리되고 있으며, 예술 갤러리·영화관·극장·레스토랑·카페·선술집과 작은 부티크 등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베를린 TV 타워 (Berlin's TV tower)

베를린 TV 타워는 368m 높이로 베를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1969년에 개방하였고, 200여 미터 높이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서면 베를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 (Berlinale film festival)

할리우드에 오스카 시상식이 있다면, 독일에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가 있다. 베를린에서 열리는 문화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인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27만여 명의 방문객, 4천 명의 기자가 참석하며, 세계적인 스타가 한자리에 모여 최소 400여 편의 영화가 공개된다. 최신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반제 호수(Wannsee)

반제 호수는 복잡한 도시와는 달리 너른 잔디와 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어 산책 코스로 유명하며, 여러 가지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수영·보트 타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거나 편히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배를 타고 호수 주변 아름다운 저택과 정원을 구경할 수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독일 철도청 & 베를린 관광청' 공동 워크숍 한국서 열려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독일 철도청과 베를린 관광청의 공동 워크숍이 지난 6일 종로구 나인트리 컨벤션에서 열렸다.

베를린 관광청 랄프 오스텐도르프 마케팅 이사
베를린 관광청 랄프 오스텐도르프 마케팅 이사가 베를린 여행의 매력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베를린관광청
이날 행사에는 국내 여행업계의 관계자 140여 명과 미디어 관계자 30여 명이 참석하였다. 독일 철도청과 베를린 관광청은 아시아를 순회하며 공동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중인데 한국의 경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기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11월 9일과 근접한 날짜인 11월 6일에 한국 워크숍을 진행하게 됐다.

1부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베를린 관광청 랄프 오스텐도르프 마케팅 이사는 "베를린은 여행자 숙박일수로 보면 유럽 3대 도시로 꼽히는 유명 관광지"라며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는 분단과 통일의 역사를 지닌 베를린이 유럽에서 가장 큰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도시일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번 워크숍을 통해 베를린 관광청은 국내 최초로 한국어 여행정보 책자와 한국어 공식홈페이지(www.visitberlin.de/ko)를 공개함으로써 앞으로 한국시장에 대해 큰 관심을 드러냈다.

독일철도청 요하임 존 해외영업 이사가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독일패스 프로모션을 소개하고 있다./사진=베를린관광청

2부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독일철도청 요하임 존 해외영업 이사는 독일철도청 스페셜 요금이 11월 14일부터 최저 29유로부터 시작된다는 최신 정보와 함께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프로모션이 진행 중인 독일패스에 대한 폭넓은 활용에 대해 강조했다. 

한편, 이번 행사에서는 독일패스 2인 일등석 5일권과 베를린 웰컴카드, 베를린 유명 호텔 숙박권, 유럽 산 와인 등 다양한 경품이 증정되었다. 독일 철도 이용 및 더 자세한 사항은 독일철도청 한국총판 유레이드코리아 홈페이지(www.railpackage.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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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만드는 아티스트 정화, 베를린을 읽어내다

씹을수록 맛있는 독일의 빵

프랑스의 바게트, 영국의 머핀, 덴마크의 페이스트리 같은 다른 유럽의 빵에 비해 독일 빵은 세계적으로 그리 유명하지 않다. 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독일 빵은 향기가 좋고 건강에도 좋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훌륭한 식단이 될 만큼 품질이 우수하다.

독일 빵을 처음 맛보는 사람들은 약간 신맛이 나고 씹기 힘든 딱딱한 질감 때문에 부담스러워하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독일 빵이 세계 최고다”라고 말하게 된다. 어쩐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나라, 독일. 그 자체와도 많이 닮아 있다. 빵의 종류도 다양하다. 건강에 좋은 발효빵인 검은 호밀빵을 비롯하여 약 350여 가지의 다양한 빵 종류가 있다.

Vollkornbrot 폴콘브로트
다양한 곡물이 들어가는 건강빵. 빵 위에 해바라기씨, 호박씨 등의 건과류가 가득 붙어 있는 폴콘브로트는 한눈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호밀이 주재료인데, 맛은 약간 시큼하고 식감은 뻑뻑하다. 독일 사람들은 이 빵을 잘라 샐러드, 토마토, 치즈, 살라미, 슁켄 등을 토핑하여 먹는데, 한국 사람들은 입안 가득 씹히는 곡물과 특유의 강한 신맛, 거친 질감 때문에 처음에는 먹기 힘들다. 하지만 한번 맛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는 빵이 바로 이 폴콘브로트이기도 하다. 나 역시 이 거친 맛에 중독돼서 지금은 샌드위치를 만들 때, 이 빵만 쓴다. 한 끼를 먹어도 든든하게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영양 만점의 빵이다.

Turkisches Brot 터키빵
부드럽고 쫄깃한 터키빵. 베를린에는 터키인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도 큰 축을 이루고 있다. 독일빵보다 훨씬 연하고 올리브오일이 많이 함유된 터키빵은 소화가 잘되어 먹고 나서도 속이 편안하다. 치즈나 샐러드, 고기 등이 들어 있는 것도 있는데 되너Doner, 케밥Kebap, 뒤름Durum, 터키식 피자Turkische Pizza 같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올리브나 터키식 치즈, 콩으로 만든 소스 등을 곁들여 먹으면 훨씬 맛있다. 베를린에서는 터키인들의 디저트도 꽤 대중적으로 잘 팔리는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단맛이 인상적이며 값도 비싼 편이다.

Brezel 브레첼
독일의 대표 빵.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리본으로 묶어 구운 독특한 모양으로, 독일빵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독일 남부 지방에서 유래된 빵으로 소금이 박혀 있어 조금 짜지만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이 모양으로 된 과자도 맥주 안주로 유명하다. 독일인들은 음식을 짜게 먹는 편이라 어린아이들도 브레첼 을 잘 먹지만, 한국인의 입맛에는 다소 짜다. 소금을 털어내고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시루떡처럼 쫄깃한 식감에 짭짤한 맛이 배어 있어, 입맛이 없을 때는 한 끼 식사 대용으로도 든든하다.

12월에 즐기는 크리스마스 빵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독일 사람들은 가족들끼리 쿠키나 달콤한 빵을 구워서 나눠 먹는다. 크리스마스에 즐겨 먹는다고 해서 ‘크리스마스 빵’이라고 부른다.

Berlinerbrot 베를리너브로트
초콜릿과 갈색 설탕, 밀가루, 하젤 땅콩이 들어간 케이크의 일종. 주로 따뜻한 차나 따뜻하게 데운 레드 와인과 함께 먹는다.

Weihnachten Platzchen 크리스마스 플랫첸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구운 버터 쿠키. 초콜릿이나 견과류 등을 넣은 과자로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모양을 만들고 굽는다.


그림책 만드는 아티스트 정화, 베를린을 읽어내다

거리의 언어 예술, 그라피티 

베를린에 처음 온 사람들은 누구나 길거리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에 놀라곤 한다. ‘누가 다 그렸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그라피티는 정교한 힙합 스타일의 그림에서부터 동화책의 한 페이지 같은 귀여운 이미지까지, 그 종류가 실로 다양하고 방대하다. 지하철역이나 광장 등의 공공 미술로 완성된 예술가의 그라피티도 있지만, 이름 없는 길거리 예술가들의 불법 그라피티도 볼 수 있다. 정부에서 불법 그라피티를 지우느라 엄청난 정부 예산을 쓸 정도다. 불법 그라피티를 그리다가 적발되면 1제곱미터당 100유로가 넘는 벌금을 부과하지만, 베를린의 스프레이숍은 여전히 높은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경찰의 감시를 피해 스프레이 통을 들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힘을, 감각을 표현하는 거리 예술가들의 파워가 힘차게 베를린을 누빈다. 크로이츠베르크의 한 그라피티에는 “이것도 예술이다”라고 당당히 쓰여 있다. 그 말처럼 이곳 독일에서 그라피티는 벽에 그려진 단순한 낙서가 아닌 하나의 거리 예술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신도시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 지어지고 있는 자비니플라츠Savignyplatz 역 안의 그라피티는 베를린에서 멋진 그라피티로 손꼽힌다. 원래 홍등가였던 이곳을 철거하고 문화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해 새롭게 꾸미는 이곳은 역 이름을 벨트바움 갤러리라고 지었을 만큼 수준 높은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아직도 일부 남아 있는 동베를린의 기다란 장벽 위에도 그라피티가 가득 채워져 있다. 하늘을 나는 새들, 어린이들이 맞잡은 손, 울고 있는 인간들의 얼굴들 위에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독일 사람, 그리고 관광객들의 메지지가 덧붙여져 마치 통일 박물관 같다. 거리의 소박한 예술에서 출발한 그라피티가 역사적 의미를 가진 아트로 거듭난 것이다.


독일의 언더그라운드 그라피티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사이트
www.km4042.de
독일 그라피티의 역사와 관련 프로젝트들을 볼 수 있고, 그라피티 방식으로 만든 가방과 문구, 아트북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 직접 개발한 컴퓨터용 그라피티 폰트도 다운 받을 수 있다.
streetfiles.org 
베를린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그라피티를 두루 살펴볼수 있는 갤러리 형식의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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