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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벨기에 브뤼셀 그랑플라스 옆 쇼핑 아케이드 '갤러리 루아얄 생 위베르(Galeries Royales St Hubert)'에 있는 최초의 노이하우스 매장. 1857년 문을 열었다.

벨기에의 수도, 유럽의 수도, 브뤼셀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도시다. 꼭 100년 전인 1912년 장 노이하우스가 '프랄린(praline)'을 처음 만든 이래 벨기에는 초콜릿 천국이, 브뤼셀은 초콜릿의 수도가 됐다. 주택가 골목골목마다 초콜릿 가게가 있고 '인구 2000명당 쇼콜라티에가 1명'이라는 통계가 나올 수 있는 도시가 브뤼셀 말고 또 있을까. 뉴욕과 파리가 백화점과 명품 매장의 화려한 쇼윈도로 도시의 밤을 밝히는 이맘때, 브뤼셀은 초콜릿 가게에서 나오는 환상적이고 황홀한 불빛으로 동화의 도시가 된다.

브뤼셀=글·사진 홍주희 기자 < honghong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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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콜릿으로 만든 오줌싸개 동상. 벨기에에서 초콜릿은 단순한 기호식품 이상이다. 초콜릿이 피로 해소에 도움을 주고 에너지를 충전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더니, 실제 벨기에에선 초콜릿이 국가의 동력이다.

 연간 17만t 넘는 초콜릿을 생산해 30억 유로(약 4조2200억원)가 넘는 매출을 올린다. 식품산업 매출의 10%, 고용의 10%를 넘는다. 그런데 매년 만드는 초콜릿 17만t 중 40%는 벨기에 안에서 소비된다. 대체 얼마나 먹길래 전 세계로 수출하는 양만큼을 이 작은 국가가 소비하는 걸까. 벨기에는 경상도만 한 면적에 인구 약 1000만 명이 산다. 그 안에 초콜릿 가게가 2000개를 넘는다. 한 사람이 1년에 먹는 초콜릿 양도 11㎏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디저트 문화가 훨씬 발달한 일본인들이 1년에 2.2㎏을, 미국인들이 5.6㎏을 먹는다니 벨기에인들이 얼마나 초콜릿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관광지에서는 사방팔방 초콜릿 가게가 눈에 띈다. 브뤼셀의 그랑플라스는 그야말로 '초콜릿 초집중 지역'이다. 어느 블로거가 발품을 팔아 조사를 했더니 그랑플라스를 중심으로 반경 1㎞도 채 안 되는 공간에 40개의 초콜릿 가게가 있다고 한다. 과연 초콜릿 왕국답다.

 당연히 초콜릿에 관한 한 자존심도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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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체리를 넣은 초콜릿. [사진 노이하우스] 브뤼셀 왕궁 근처엔 사블롱 광장이 있다. 고디바·노이하우스 등 대형 브랜드는 물론 피에르 마르콜리니, 비타메르 등 최고급 초콜릿 매장이 모여 있는 또 하나의 초콜릿 밀집 지역이다. 이 중엔 프랑스인 쇼콜라티에 파트리크 로제의 매장도 있다. 그런데 브뤼셀 관광사무소가 제작한 가이드북은 사블롱 광장을 소개하면서 파트리크 로제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브뤼셀에서 창업할 만큼 용감한 유일한 프랑스인 쇼콜라티에.(The only French artisan chocolatier brave enough to set up in Brussels.)'

 초콜릿에서 한 수 아래인 프랑스인이 브뤼셀에서 초콜릿을 만들어 파는 게 가상하다는 뉘앙스다. 초콜릿만큼은 미식(美食) 대국 프랑스도 우습다는 자신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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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초콜릿, 화이트초콜릿, 다크초콜릿(왼쪽부터). [사진 zaabar]

1인당 한 해 초콜릿 11㎏ 먹는 나라

최고급 초콜릿의 대명사로 불리는 '고 디바'도 이곳 사람들은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다. 고디바는 192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탄생했지만 1960년대 미국 기업인 캠벨스프로, 다시 2007년 터키 기업으로 팔려나갔다. 벨기에 사람들 눈엔 더 이상은 벨기에 초콜릿이 아닌 셈이다.

 자부심과 자존심은 엄격한 품질관리에서 비롯된다. '벨기에 초콜릿(Belgian Chocolate)'이라고 라벨을 부착하는 기준도 까다로워 재료 혼합과 정제·정련 등 전 과정 중 한 가지라도 벨기에 밖에서 이뤄졌다면 '메이드 인 벨기에'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 벨기에 국기나 오줌싸개 동상 등 벨기에를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를 사용해 소비자를 혼란케 하는 것도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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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몰드 안에 크림 등 필링을 채워 넣은 프랄린. [사진 노이하우스]유럽연합(EU) 본부가 브뤼셀에 있어 EU를 상징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초콜릿 관련 법만큼은 2003년 EU가 만든 법안을 거부했다. 자체 '초콜릿법'을 적용하고 있다. EU는 초콜릿에 100% 코코아 버터를 사용하지 않고 5% 이하의 식물성 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 시중에서 파는 많은 초콜릿은 대량 생산을 위해 식물성 유지를 사용한다. 하지만 벨기에는 카카오 열매에서 추출한 코코아 버터를 100% 사용한 것만 초콜릿으로 인정한다. 법이다.

 이처럼 강한 자부심은 곧 '프랄린'에 대한 자부심이다. 세계적인 초콜릿 브랜드인 노이하우스(Neuhaus)의 설립자 장 노이하우스는 1857년 브뤼셀에 첫 번째 매장을 열었다. 그는 약사였고 주로 기침이나 위장 질환을 위한 약용 사탕을 팔았다. 하지만 그의 손자인 장 노이하우스(이름이 같다)가 1912년 '프랄린'을 만들면서 노이하우스는 물론, 벨기에 초콜릿의 역사가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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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쇼콜라티에 크리스티앙 반데르케르켄. 그가 들고 있는 5㎏ 초콜릿판을 녹여 프랄린을 만든다.속에 견과류 넣는 프랄린 '100년 자부심'

'프랄린'은 얇은 초콜릿 몰드(mold) 안에 견과류·크림·누가· 헤이즐넛 등 다양한 '필링'을 채워넣은 한입 크기의 초콜릿이다. 초콜릿 자체의 달콤쌉쌀한 맛뿐 아니라 입안에서 터지는 필링의 다채로운 맛으로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노이하우스·고디바·레오니다스(Leonidas) 등 벨기에의 대표적인 초콜릿 브랜드들은 프랄린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브뤼셀의 초콜릿박물관(www.mucc.be)과 몇몇 초콜릿 숍에선 '프랄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3대째 '마농(Manon)'이라는 초콜릿 숍을 이어오고 있는 쇼콜라티에 크리스티앙 반데르케르켄도 자신의 공장에서 '프랄린' 시연을 선보인다. '마농'은 주택가에 있는 작은 초콜릿 가게지만 미국 뉴욕과 일본에 수출하는 '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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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열린 `브뤼셀 초콜릿위크` 중에 브뤼셀 미디역에 전시된대형 초콜릿 기차.[사진 브뤼셀 관광사무소] 시작은 5㎏짜리 커다란 초콜릿 판이다. '칼리바우트(Callebaut)'라는 초콜릿 기업이 카카오 열매를 초콜릿으로 만들어 마농 같은 작은 쇼콜라티에와 노이하우스 같은 거대 초콜릿 공장에 판매한다. 벨기에에서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초콜릿은 '칼리바우트'의 초콜릿판을 사용한다.

 커다란 초콜릿 판일뿐이지만 코코아 함량에 따라 종류는 700가지가 넘는다. 반데르케르켄은 시연에서 네 가지 초콜릿을 보여줬다. '다크' '약간 밀크' '밀크' '화이트' 초콜릿이다.

 초콜릿 판은 '프랄린'을 만들기 위해 고온에서 녹인다. 걸죽한 액체 상태가 되면 넓은 대리석 테이블 위에 붓고 철판구이 하듯이 버무리고 뒤척이는데 이를 '크리스탈라이제이션(Crystallization)' 과정이라 부른다. 초콜릿의 풍미를 더하고 빨리 굳게 해서 제품화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완벽한 크리스탈라이제이션 온도는 섭씨 32도. 쇼콜라티에들은 입술을 사용해 이를 정확하게 맞춘다. 체온보다 낮은 입술의 온도가 32도라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친 초콜릿으로 몰드를 만든다. 우리네 떡살처럼 생긴 틀에 초콜릿을 부어 굳힌 뒤 각종 필링을 채워넣고는 다시 초콜릿으로 덮는다. 필링은 한 가지를 넣을 수도, 두세 가지를 한꺼번에 넣을 수도 있다. 반데르케르켄은 밤톨보다 작은 초콜릿 몰드 안에 세 가지 필링을 넣어 프랄린을 만드는데 "최소 10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시연한 것처럼 전 과정을 직접 손으로 하지 않고서는 여러 가지 필링을 집어넣을 수 없다.

 브뤼셀엔 대대로 전통방식을 고집해 소박하게 '프랄린'을 만드는 반데르케르켄 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새로운 초콜릿 문화를 만들어내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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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왼쪽) 브뤼셀의 크고 작은 초콜릿 브랜드들은 시연을 선보이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zaabar](오른쪽) 섭씨 50도에서 녹은 초콜릿을 대리석판 위에서 뒤척여 32도까지 온도를 낮추는 '크리스털라이제이션'. [사진 zaabar]

초콜릿 공장 투어 관광상품 인기몰이

피에르 마르콜리니는 최고급화를 지향해 초콜릿의 '오트 쿠튀르'(프랑스의 고급 맞춤복)라 불리는 쇼콜라티에다. 그는 멕시코·마다가스카르 등의 코코아 농장을 직접 다니면서 코코아 열매를 선별하고 자신의 아틀리에로 들여온다. 코코아 열매에서 초콜릿 제품까지 전 과정이 피에르 마르콜리니의 관리·감독하에 이뤄진다. 브뤼셀에서 이렇게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는 그가 유일하다. 사블롱 광장에 있는 2층짜리 그의 매장은 부티크에 가깝다. 검은색을 사용한 실내 인테리어와 초콜릿 포장은 웬만한 명품 패션브랜드 못지않게 세련됐다. 제품 설명에 사용하는 용어도 '그랑 크뤼(grand cru)' '도멘(domain)'처럼 소믈리에에게서 들을 법한 것들이다. "너무 비싸다"는 불만도 있지만 그의 초콜릿이야 말로 '검은 황금'인 셈이다.

 요즘엔 아주 새로운 시도도 등장한다. 아주 새로운 원료를 사용해 전에 없던 초콜릿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바(Zaabar)'는 향신료 초콜릿이 주요 제품이다. 인도 커리에 들어가는 카다몬, 텍사스의 칠리 페퍼, 라오스의 코리앤더, 인도의 생강 등 초콜릿과의 궁합을 상상할 수 없는 재료가 사용된다.

 이런 신개념 초콜릿의 등장은 최근 들어 네덜란드·독일 등의 초콜릿 수출이 늘어나는 것과 맞물린다. 유럽 초콜릿 산업이 변화하면서 벨기에의 쇼콜라티에들이 '초콜릿 왕좌'를 지키기 위해 실험과 혁신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브뤼셀엔 관광객을 위한 초콜릿과 현지인을 위한 초콜릿이 있다고들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브랜드들의 경우 시내 곳곳에 매장이 많고 다양한 선물 세트를 구비하고 있어 관광객들을 쉽게 유인한다. 물론 이들의 초콜릿은 상당히 훌륭하다.

 하지만 진정 벨기에의 초콜릿을 맛보고자 한다면, 난생처음 들어본 우연히 마주친 초콜릿 가게가 훨씬 적합한 장소다. 공장 초콜릿이 아닌 수제 초콜릿을, 집적 만든 쇼콜라티에의 설명과 추천을 받으면서 구입하는 과정 전부가 '초콜릿 천국' 벨기에의 초콜릿을 맛보는 재미이니 말이다.

만인을 실망시켜도 꿋꿋하게, 오줌싸개 동상

브뤼셀 시민들의 유머감각은 브뤼셀에서 가장 유명한 동상, 마네캥-피스(Manneken-Pis)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수많은 관광객들을 실망시켜온 이 55cm짜리 자그마한 동상은 온갖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옷장. 그랑플라스의 메종 뒤 루아 시립박물관에 있는 옷장에는 이 벌거벗은 소년의 옷이 한복을 포함하여 600벌 넘게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외국의 정상들이 방문할 때마다 소년의 옷을 선물로 챙겨왔다고 하니, 브뤼셀의 유머감각은 전염성이 강한 듯.


브뤼셀의 최장수 시민으로 사랑받는, '쥴리앙(Julian)'이라는 애칭도 있는 이 동상은 1619년 조각가 제롬 뒤케누아(Jerome Duquenenoy)가 만들었는데, 1745년 영국에 약탈되는 것을 시작으로 갖은 고초를 겪어왔다. 1817년에 도난당했을 때는 심지어 조각 나기까지 했는데, 그것을 이어붙여 만든 것이 현재의 동상이다. 이 동상은 몇 개의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유명한 것이 프랑스군이 브뤼셀에 불을 질렀는데, 한 소년이 오줌으로 불을 껐던 사건이 이 동상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오줌싸개 소년의 동상이 오줌을 누는 한 브뤼셀은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쥴리앙의 빈약한 몸매에 실망한 사람을 위해서 오줌 싸는 소녀의 동상도 마련되어 있다. 그녀의 옷장에는 몇 벌의 옷이 있을지 궁금하다.

 

 

모험소년의 전설, 땡땡(Tintin)

벨기에의 만화는 유명하다. 세계에서 일본인 다음가는 만화광으로 유명한 이들은 만화를 아이들의 장르로 제쳐두지 않는다. 이곳에서 그려져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만화들이 적지 않은데, 그중에서 첫손 꼽을 만한 작품으로 [땡땡, Tintin]이 있다.

 

용감한 소년기자 땡땡과 그의 애견 밀루의 모험을 그린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1929년에 만화가 에르제(Herge)가 그리기 시작하여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현재 세계 60여 개국에 50개 언어로 소개되어 3억 부가 넘게 팔린 이 시리즈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굉장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60년에는 [땡땡과 트와존도르 호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1982년에는 작가 에르제의 75세 생일을 축하해, 벨기에 항공우주국이 당시 발견된 화성과 목성 사이의 혹성에 그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유명인들이 땡땡에 보낸 찬사의 목록도 두툼하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땡땡은 세계에서 나의 유일한 라이벌”이라고 하였으며, 조지 루카스는 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땡땡의 모험]을 모델로 한 것임을 공언했다. 앤디워홀은 “땡땡은 나의 작품 세계에 디즈니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다”며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했다.


현재 브뤼셀의 지하철 스토켈 역에는 땡땡의 모험에 나오는 140개 캐릭터를 소재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137미터에 걸쳐 있는 이 대작의 스케치는 작가 에르제가 죽기 직전인 1983년에 그린 것이다. 1988년 8월 31일 역사 개장에 맞춰서 완성된 이 프레스코화는 땡땡의 팬들뿐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땡땡의 벽화로 가득 채워져있는 지하철 역.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마그리트 뮤지움은 그 자체로 마그리트의 그림이다.


황토색 배경에 파이프 하나가 그려져 있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파이프다. 그 아래에 한 문장이 써 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벨기에 화가로 일컬어지는 르네 마그리트의 이 작품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온갖 해석이 분분하여, 심지어 이 그림에서 촉발된 사유로 책 한 권이 나올 지경이다. 초현실주의, 데페이즈망 기법 등 다양한 해석이 시도된다. 이에 대해, 혹자는 한 마디로 명쾌하게 해석한다. “황당한 벨기에식 발상”이라고.


그의 작품들은 농담하면서 웃지 않는 표정처럼 진지하지만, 그가 시도하는 넌센스는 사람들에게 지적인 충격을 주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1898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1916년 브뤼셀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하면서 1927년 이 도시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연 르네 마그리트. 이 도시의 벽지회사에서 일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점령하에서도 브뤼셀에 남아 있기를 고집하다가 결국 1967년 자기 침대에서 죽어 브뤼셀 샤비크 묘지에 묻힌 그.

 

뼛속까지 브뤼셀의 시민이었던 그의 작품들 속에서 기이한 유머감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연일까? 2009년 5월, 브뤼셀에 마그리트 뮤지움이 문을 열었다. 200여 점의 마그리트의 회화, 드로잉, 조각 등을 소장한 5층짜리 미술관은 외양도 마그리트의 그림 같다. 그가 살았던 집도 작은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으므로 마그리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 군데 다 놓치면 안 될 듯.

 

 

어른들의 유머, 인형극장 투네(Toone)

TV가 없던 시절, 브뤼셀 시민들의 엄청난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웃음을 주었던 것이 바로 인형극장이다. 공식명칭은 왕립투네극장이지만, 브뤼셀 사람들은 메종 드 투네, 즉 투네의 집이라고 부른다.


투네란 인형조종사를 뜻하는 말. 대를 물려 전승되는 ‘투네’의 1대 시조는 1830년대부터 활동했는데, 당시 왕궁에서 코미디언들을 인형으로 대체시키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투네는 8세. 2003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인형극장의 존속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4세 투네가 활동하던 1950년대에 메종 드 투네는 문을 닫을 위기를 겪게 된다. 텔레비전이나 축구와 같은 대중적인 오락이 번성하게 되면서 구닥다리 인형극은 외면받게 된 것이다. 결국 1963년, 문을 닫기로 결정되었으나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들이 ‘투네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투네 인형 보호하기를 호소한다. 결국 공식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으면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인형극 자체도 볼 만한 구경거리지만 무대에서 은퇴한 인형들을 전시해놓은 것이 흥미롭다. 현재 꼭두각시 인형을 1,200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고. 원래 전통적인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지만, 요즘은 현대적인 이야기도 레퍼토리에 올리고 있다고 한다. 한가지 주의할 것은 아이들과 같이 보는 것. ‘인형극은 어린이용’이라고 맘 놓고 데려갔다가, 어른들끼리만 낄낄거리다 돌아오는 수가 있다고.


각 세대의 투네들은 자신의 포스터를 가지고 있다.

 

 

심각한 사회에 조크를 날리다, 스머프(Smurfs)

폭격 당한 스머프 마을에서 울고 있는 스머프들.


평화로운 스머프 마을, 실제로는 어디에 있을까? 실제의 장소를 찾을 수는 없지만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있다. 벨기에 만화가 페요(Peyo, 본명 피에르 컬리포드 Pierre Culliford)의 펜끝이 바로 그곳.


크기는 쥐만 하고, 몸 색깔은 푸른색, 똑같이 하얀 바지와 모자를 갖추고, 사이좋게 같이 살아가는 이 상상 속의 부족에게 가장 큰 적은 사악한 마법사 가가멜과 그의 고양이 아즈라엘이다. 1958년에 첫선을 보인 이 만화는 1981년 미국에서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들어진 이래, 전 세계에 푸른 웃음을 선사해왔다.


스머프가 더 유명해진 것은 이 만화가 마르크스주의를 전파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늘 붉은 옷을 입고 있는 파파 스머프는 칼 마르크스를 상징한다고. 스머프 마을 자체가 공동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이다.

 

농부 스머프, 편리 스머프 등 역할도 잘 분배되어 있으며, 모두가 평등하다. 같은 노동복을 입고 있는 그들에게는 종교도 없다. 결정적으로, 모든 캐릭터들의 뒤에 공통적으로 붙는 ‘스머프’라는 호칭은 ‘동무’를 연상하게 한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스머프가 사회문제에 무관심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2005년 벨기에 텔레비전에 방영된 25초짜리 애니메이션이 그들의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유니세프가 부룬디의 소년병사 희생자들을 위한 7만 파운드의 펀드를 모으기 위해 방영한 이 캠페인은 스머프 마을이 폭격을 받아 불타고 스머프들이 학살당하는 짧은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봐 밤 9시 이후에만 방송하게 했음에도, 우연히 이 장면을 본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고. 원래 계획했던 대로 스머프들이 팔과 머리를 잃은 피가 낭자한 장면이 나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정도는 되어야 북카페, [cook & book]

브뤼셀 시민들의 유머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평범한 북카페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그들은 ‘cook & book’ 안에 책과 음식점을 통합시켰다. 여행, 만화, 문학, 아동, 컨템포러리 아트, 클래식 음악과 재즈 등 아홉 개의 섹션으로 된 서점과 각각의 섹션에 마련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은 하나의 큰 세계를 이룬다.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책과 요리만이 아니다. 각 방마다 독특하게 꾸며진 인테리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프랑스어로 된 책을 모아놓은 코너에서는 천정에 책들이 잔뜩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구역에는 안에 작은 사이즈의 자동차가 통째로 들어 앉아있기도.


각각의 인테리어는 그 코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영어책 코너는 영국의 유니언잭 깃발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돋보이고, 클래식과 재즈 코너에는 악기를 진열해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천정에 난해한 재즈풍의 낙서를 잔뜩 그려넣었다. 여행코너의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알루미늄 캐러밴.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캐러밴의 한가운데에는 식탁이 마련되어 있어, 그 안에서 여행기분을 만끽하며 식사를 할 수 있다. 그곳의 램프 등은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통을 이용한 것.


어린이책과 만화 코너에는 스파이더맨 동상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여러모로, 책 속의 세계에서 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놀이동산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cook & book을 돌아보려면 지도가 필요하다.

 

 

브뤼셀식 유머는 벨기에를 넘는다. 아스테릭스

아스테릭스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브뤼셀에서는 곳곳에서 만화를 주제로 한 벽화를 만날 수 있다.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광임을 자부하는 이들은 만화 또한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개발해낸 것이다. 관광안내소에 가면 받을 수 있는 지도를 들고 각각의 벽화를 찾아다니다 보면, 지형지물을 이용하거나 장소의 성격을 활용한 기발한 장면들에서 만화가 가지는 유머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아스테릭스의 모험]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벽화가 그려진 곳은 축구와 야구경기장 근처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신나게 공을 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왜 프랑스작가 르네 고시니와 알베르 우데르조의 만화인 아스테릭스가 브뤼셀 벽화의 명단에 올랐을까?


유럽의 만화강국이라 할 수 있는 벨기에의 만화들은 실제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거두고 있다. 만화라는 자체가 만국공용어인데다 프랑스어를 쓰는 벨기에의 특성상 벨기에 만화는 프랑스까지도 큰 독자층으로 넣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만화와 벨기에 만화를 따로 나누지 않고 프랑코 벨쥐 만화(BD franco-belge)라는 이름 아래 같이 지칭하기도 하는데, 프랑스의 이름이 앞선 것이 무색하게도, 200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만화의 75%가 벨기에 출신의 만화가나 출판사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아스테릭스의 작가들도 벨기에 출판사에서 만화를 발간해왔으므로 그들에게 있어 프랑스와 벨기에를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만화를 좋아하고 실리감각이 발달한 벨기에인들은 나치가 미국만화를 금지시키거나 프랑스의 검열이 만화를 탄압하는 와중에도 예술로서의 만화의 가치를 믿고 열린 마인드를 유지해왔다.

 

그 결과, 이곳의 만화는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를 넘나든다. 아스테릭스는 브뤼셀의 만화일까? 그렇다. 브뤼셀 시민들이라면,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벨기에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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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가 자주 들렀던 카페 ‘라 플뢰르 앙 파피에 도레’. 벽에 마그리트(오른쪽에서 둘째)와 동료 작가들 사진이 걸려 있다. / 브뤼셀=최수현 기자

벨기에는 경상도 크기만 한 작은 나라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자랑거리가 여럿 있다. 한입 크기 초콜릿 ‘프랄린’을 만들어낸 ‘디저트 왕국’이고, 만화 주인공 땡땡·스머프 등이 탄생한 애니메이션 선진국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불리는 그랑플라스를 품었다. 또 하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고향이다.

20세기 초현실주의 거장 마그리트는 브뤼셀에서 거의 평생을 지냈다. 작은 도시 브뤼셀에는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마그리트는 이곳의 '대표 상품'이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파이프와 중절모, 사과를 활용한 기념품을 판다. 2009년 문을 연 마그리트 왕립미술관은 관광 명소로 손꼽힌다.

지하철 파르크(Parc) 역에서 내려 공원을 가로지르면 왕궁 맞은편에 미술관이 있다. 3층에서 출발해 1층까지 연대순으로 정리된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니 마그리트의 생애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그리트 그림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로 가득했다. '예술의 개념을 바꾼 예술가'로 평가받는 마그리트는 익숙한 사물을 낯선 맥락 속에 배치해 상식과 선입견에 도전했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은 혼란과 충격에 빠지면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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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 왕립 미술관은 창문을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중절모 쓴 남성 실루엣으로 꾸몄다. / 고디바 제공

대표작 '빛의 제국'은 마지막 전시관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같은 제목의 작품을 여러 점 남겼는데 그중 1954년과 1961년작이 걸려 있다. 대낮의 하늘과 가로등불 켜진 밤거리가 공존하면서 마그리트 특유의 신비스럽고도 불안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지하에는 마그리트 일대기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양복 재단사 아버지와 모자를 만드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4세 때 어머니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그의 작품 세계가 어머니를 잃고 방황해온 내면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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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가 1930년부터 24년간 살았던 집.

미술관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벨지카(Belgica) 역에서 내렸다. 마그리트가 아내와 함께 1930년부터 24년간 살았던 집으로 가는 길이다. 'MAGRITTE'라는 문패가 달린 붉은 벽돌 건물 앞에 '빛의 제국'에 등장하는 것과 똑같이 생긴 가로등이 서 있었다.

18세 때 브뤼셀 왕립미술학교에 들어간 그는 어느 날 이탈리아 초현실주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1888~1978)의 작품을 보고 '그림이 그림 이외의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1927년 첫 개인전이 혹평을 받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화랑의 경제적 지원이 끊기면서 3년 만에 돌아와 이곳에 정착했다.

마그리트 부부는 3층 건물 중 1층을 썼는데 현재 미술관으로 복원돼 있다. 비좁은 집안에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창문, 계단, 벽난로 등 일상의 소박한 사물들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 작업실은 부엌에 붙어 있는 작은 다이닝룸이었다. 마당 한편에 스튜디오가 있었으나 거기선 생계를 위한 광고 디자인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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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 1928년작 ‘공간의 문제’. 전쟁 당시 사라졌던 작품을 복원해 그가 살았던 집에서 전시했다. /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 제공

마그리트가 동료 작가들과 함께 자주 갔다는 카페에 들렀다. 그랑플라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라 플뢰르 앙 파피에 도레(La Fleur en Papier Doré·금빛 종이로 만든 꽃)'는 그가 전시회를 열기도 했던 곳이다. 예술 작품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카페에 앉아 벨기에 맥주를 마셨다. 마그리트가 동료들과 함께 찍은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카페를 나오니 입구에 붙어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를 패러디한 것 같았다. '이곳은 미술관이 아니다: (음료를) 마시는 곳이다(Ceci n'est pas un musée: on consomme).'

한국에서 벨기에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대한항공, 영국항공 등 경유편을 이용해야 한다. 마그리트 왕립 미술관(www.musee-magritte-museum.be) 입장료는 8유로. 월요일 휴관. 마그리트가 살았던 집(www.magrittemuseum.be)은 지하철 Belgica역에서 51번 트램 타고 두 정거장. 입장료는 7.5유로. 월·화 휴관. 카페 위치는 알렉시엥길(Rue des Alexiens) 55번지. 홈페이지 참조(www.lafleurenpapierdore.be)



벨기에 - 부드럽지만 시큼한 '람빅' 맥주 맞아? 숙성될수록 달아
체코 - 황금빛 석양을 안주 삼아 황금빛 '필스너'를 마시다

벨기에 브뤼셀의 맥주 카페 ‘라 베카세’ 종업원이 맥주를 따르고 있다. 맥주의 종류 만큼 잔 모양도 다양하다. / 채민기 기자

맥주의 나라? 많은 사람들이 독일을 떠올린다. 하지만 독일을 사이에 둔 유럽의 두 나라, 벨기에체코에서는 어림없는 소리다. 벨기에에서는 과일부터 장미, 난초 같은 꽃까지 갖가지 재료가 들어간 맥주가 향기를 뽐낸다. 체코는 1842년 황금빛 라거(효모가 양조통 바닥에서 작용해 발효된 맥주)의 효시로 불리는 ‘필스너’ 맥주가 탄생한 곳이다. 이들 나라를 여행할 때 맥주는 갈증 날 때 홀짝이는 음료가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의 테마가 된다.

천연 효모로 발효시킨 람빅

대표적인 벨기에 맥주는 람빅(Lambic)이다. 효모를 인공적으로 첨가하지 않고 공중에 떠다니는 천연 효모로 발효시킨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있는 칸티용(Cantillon) 양조장은 박물관을 겸한 곳으로 "브뤼셀에서 유일하게 전통 방식으로 람빅을 만드는 곳"임을 자부한다. 곡식 저장고나 대형 맥주통 같은 양조 기구들을 둘러볼 수 있다. 대부분 실제로 양조에 사용하는 기구들이다.

입장료 6유로(약 1만원)에는 맥주 시음도 포함돼 있다. 람빅은 한국에서 많이 팔리는 라거 맥주와 전혀 다른 시큼한 맛이 난다. 이게 맥주인가 싶은 첫인상이다. 통 속에서 해를 거듭하며 숙성되면 단맛이 강해진다. 이렇게 묵은 람빅을 갓 만든 람빅과 섞어 달콤한 괴즈(Gueuze) 맥주를 만든다. 시음용 맥주를 따라주던 직원은 "람빅이 와인이라면 괴즈는 샴페인"이라고 했다.

벨기에엔 맥주 전문 카페도 많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낮에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인다. '라 베카세'는 람빅을 신선한 생맥주로 맛볼 수 있는 곳. 고풍스러운 도기 그릇에 맥주를 담아 준다. '라 모르트 수비테'에서는 트라피스트(벨기에 전역의 수도원 6곳에서 만드는 맥주)의 하나인 '베스트말레'를 생맥주로 판다.

브뤼셀 그랑 플라스 바로 뒤에 있는 '오 브라서'에서는 트라피스트 '베스트블레테렌 12'를 마시는 행운을 경험했다. 이 맥주는 생산량이 적어 예약을 하고 직접 수도원에 가야 살 수 있다. 소매점에 나오기도 하지만 수도원에서는 원칙적으로 이익을 위해 되팔지 않는 조건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벨기에의 유명 카페 몇 곳을 제외하면 구경하기 어렵다. 쌉싸래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에 이런 희소성까지 더해져 애호가들 사이에서 '세계 최고'로 자주 꼽히는 맥주다.

브뤼셀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 가면 운하도시 브뤼헤(Bruges)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유명한 도시지만, 맥주 애호가에게는 색다른 면모로 다가온다. 6대에 걸쳐 가족이 운영하는 할베 만(Halve Maan) 양조장에는 프랑스어와 영어로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가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현대까지 양조 기구가 변해온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드는 '브뤼헤 조트' 생맥주 1잔을 포함해 6유로를 받는다.

브뤼헤에서 맥주 마시기 좋은 곳은 '브룩스 비르트예'다. 300여가지 맥주를 취급하고, 5∼6종의 생맥주는 주기적으로 바뀐다. 전 세계 맥주광이 몰려드는 유명 카페지만 단골들이 바에 모여 앉아 주인과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사랑방 같은 분위기도 난다.

황금빛 라거의 효시, 필스너

필스너라는 이름은 체코 제2의 도시 플젠(Plzen)에서 왔다. 프라하에서 기차로 1시간50분쯤 걸리는 이곳 플젠이 필스너의 고향인 셈이다. 플젠역에 내려 5분쯤 걸으면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 공장의 고풍스러운 정문이 나타난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필스너 우르켈 맥주를 만드는 곳이다.

체코 플젠에 있는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 공장의 지하 맥주 저장고에서 안내원이 맥주 제조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안내원 뒤의 대형 나무통에 맥주가 들어 있다. / 채민기 기자
이곳에도 가이드가 안내하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버스로 공장 경내를 돌며 맥주를 나르던 옛 짐마차부터 하루 12만병을 생산하는 최신 포장 공장까지 둘러본다. 투어의 백미는 지하의 맥주 저장고. 땅굴 같은 통로 안에 사람 키보다 높은 나무 맥주통들이 쌓여 있다. 여기에 달린 꼭지를 열어 바로 따라주는 생맥주는 고소한 맛과 목을 타고 넘어가는 청량감이 일품이다. 저장고 안은 섭씨 7도 정도로 한여름에도 약간의 한기(寒氣)가 느껴진다.

프라하로 돌아와 골목길을 걷다 맥주 한 잔 생각이 난다면 '우 즐라테호 티그라'가 제격이다. '황금 호랑이'라는 뜻의 이 집은 카렐 교 근처의 후소바 골목에 있다. 관광객과 단골이 뒤섞여 금세 테이블이 꽉 찬다.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바 주변에 둘러서서 맥주를 마신다. 이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골목길까지 들려온다. 허름해 보이지만 1994년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이 체코를 방문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데려갔을 만큼 프라하 펍의 '원조'로 불리는 곳이다.

체코 프라하 리에그로비 사디 비어가든의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저녁 무렵이면 공원의 나무그늘 아래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산책 나온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 채민기 기자
좁은 실내와 떠들썩한 분위기가 힘들다면 비어 가든도 있다. 푸드코트처럼 야외 테이블 주변의 가게에서 맥주를 가져다 먹는다. '리에그로비 사디'는 리에그로비 공원 안의 비어가든이다. 필스너 우르켈과 감브리누스 같은 체코산 생맥주를 팔고, 대형 TV로 운동경기를 중계해 준다. 맥주 한 잔을 사서 들고 공원을 산책해도 좋다. 저녁때쯤 이곳을 찾으면 넓은 잔디밭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멀리 프라하 성 쪽으로 드리우는 멋진 석양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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