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이 되고 싶었던 차르, 도시를 창작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 피터의 도시. 그 이름은 도시의 수호자인 성 베드로(Peter)에서 따왔다지만, 동시에 이 도시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바이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표트르 1세(피터대제, Peter I the Great)는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에 불타올랐다. 그리하여 도읍을 정한 곳이 발틱 해를 향해 있는 연안의 늪지대. 네바 강 하구의 음침한 섬들 위에 도시를 건설하자고 했을 때 사람들은 조소했다. 그러나 대제는 거침이 없었다. 스스로 오두막에 기거하며 관리들과 노동자들을 독려했다. 전 러시아에 석조 건축을 금지시키고, 모든 자재를 네바 강 하구로 실어오게 했다. 그리하여 100개의 섬이 365개의 다리로 이어진 북쪽의 베니스가 탄생했다.


도시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수십 년간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제 다시 피터의 것으로 돌아갔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상징물인 '청동 기마상(Bronze Horseman)'은 대제의 위엄을 기린 조각상이다. 말을 탄 대제가 서 있는 돌은 전설의 '번개 맞은 돌(Thunder Stone)'로 무려 1500톤에 이르는데, 이것을 오직 인력만으로 6Km나 끌어 핀란드 만에 가져온 뒤 배에 실어 지금의 위치에 옮겨놓았다.

백조, 죽어가면서 태어나다.

1890년의 어느 날, 비쩍 마른 소녀 하나가 엄마의 손을 잡고 회청록색의 마린스키 극장(Mariinsky Theatre)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그때는 알렉산드로 골로빈이 만든 황금의 커튼 장식이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프티파(마리우스 페티파)의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그녀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소녀는 엄마를 보채 바로 그 극장에 있는 제국 발레학교(현재의 바가노바 아카데미)를 찾아갔다. 처음엔 너무 어리고 아파 보인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나 11살이 되어서는 기필코 입학 허가를 얻어냈고, 혹독한 훈련을 거친 소녀는 러시아의 백조가 되었다.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na Pavlova)는 남성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와 더불어 러시아 발레의 전설을 만들어낸 대표적 인물이다. 특히 1905년, 마린스키 발레단의 정식 단원이 된 직후 발표한 소품 [빈사의 백조(The Dying Swan)]는 그녀의 이니셜 같은 작품이 되었다. 밝고 경쾌한 백조가 아니라 죽음 직전에 가냘픈 몸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백조의 모습은 이전의 발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먼 나라를 떠돌아다녀야 했지만, 파블로바는 고향의 백조들을 잊지 않았다. 1923년 러시아에 극심한 기근이 닥쳐오자 그녀는 기꺼이 구호물품을 보냈고, 마린스키 극장 앞에는 물품을 받으려는 무용수들이 긴 줄을 지었다고 한다.


'빈사의 백조' - 안나 파블로바는 죽는 순간까지 백조 의상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와 벌떼 같은 작곡자들

콘서바토리의 중흥을 이끈 림스키-코르사코프.


림스키-코르사코프, 차이콥스키(차이코프스키), 프로코피예프,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러시아와 세계를 대표하는 작곡자들, 상트페테르스부르크의 음악인들, 그리고 바로 마린스키 극장 건너편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서바토리(the Rimsky-Korsakov St. Petersburg state conservatory)에서 음악을 배운 사람들이다.


콘서바토리는 1862년 안톤 루빈스타인에 의해 설립되었지만, 오늘날의 영광을 이야기할 때 1871년부터 1906년까지 이 학교에 몸담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첫 강의를 맡았을 당시 그는 27살의 해군 장교였는데, 발라키예프, 무소르그스키 등과 함께 소위 '5인조(the Five)'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부 유럽 음악의 모방이 아닌 '러시아의 음악'을 하기 위해 애썼는데,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던 것이 새로운 음악을 위한 활력소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자,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자신의 음악적 기초가 너무나 취약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미 콘서바토리를 통해 충실히 공부해온 차이콥스키에 상담을 요청했고, 러시아의 독자적인 음악을 위해서도 유럽 음악의 기초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앞서 더 큰 공부를 자청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후 후진 양성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열정이 콘서바토리를 세계 최고의 음악학교로 만들어낸 것이다.

극작가 체호프, 사상 최악의 야유를 받다

18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Alexandrinsky Theatre)에서 [갈매기]가 초연된 후, 극작가 안톤 체호프(체홉)는 스태프들과 가족들에게 말했다. "다시는 극을 쓰지 않겠다." 그만큼 연극은 엉망이었다. 고독과 몽환의 이야기는 스타 연기자들을 동원해 지나치게 화려하게 만들어졌고, 멜로드라마를 거부한 실험적인 극은 관객들은 물론 제작진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상태였다. 2막이 시작되자 야유는 넘쳐났고, 주연 여배우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후에 모스크바에서 새롭게 상연되어 호평을 얻기는 했지만, 체호프는 그 공연도 만족하지 못했다.


이렇게 체호프에게 연극사에 길이 남을 좌절을 가져다준 극장이지만, 알렉산드린스키는 러시아 공연 예술의 메카로 오늘날까지 그 영광을 이어오고 있다. 이 도시 곳곳을 빛내온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카를로 로시(Carlo Rossi)가 디자인한 건물로, 안팎으로 19세기의 우아함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극장 앞의 작은 광장은 크리스마스 즈음에 열리는 축제로 많은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체호프를 좌절시킨 제국 시대의 극장, 알렉산드린스키.

도스토옙스키의 다락방에 숨어들다

도스토옙스키,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에게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심장이다. 그런데 그 심장은 살짝 얼어 있다. 마치 북쪽 바다처럼 말이다. 이 도시는 톨스토이, 고골리, 고리키 등 러시아 문학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도스토옙스키만큼 이 도시의 정신을 반영한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제국의 영광은 영광이지만, 19세기 러시아인의 삶은 곤궁하기 그지없었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검은 빵 한 조각을 먹지 못한 채 이상을 향해 버둥거리는 청춘들이 넘실거렸다. 도스토옙스키(도스토예프스키)는 1860년대 이 도시의 작은 쪽방에 기거하며 거의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창밖으로 인간 군상들을 바라보며 소설을 써나갔다. 서유럽의 합리주의를 쫓지만 러시아의 종교적 영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 정신의 풍요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물질적 빈곤으로 고통 받는 인간들….


이 도시에는 도스토옙스키가 기거하며 글을 썼던 두 장소가 남아 있다. 센나야(Kaznacheyskaya ul 7, Sennaya)의 좁은 골목에서 그는 세 개의 방을 옮겨 다녔는데, 바로 [죄와 벌]을 썼고 그 무대가 되는 곳이다. 블라디미르스카야(Vladimirskaya) 지하철 역 근처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이 박물관(Dostoevsky Museum)의 형태로 공개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썼다고 한다.

일리야 레핀의 리스트를 훔쳐보다

19세기부터 혁명 이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았던 예술가들의 리스트는 정말로 화려하다. 문학, 음악, 연극, 발레 등 수많은 분야에서 교과서 레벨의 이름들이 줄을 잇고 있다. 21세기의 우리가 그 사람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조악한 기술로 찍은 흐릿한 흑백 사진은 젖혀 두자. 그들에게는 국민 초상화가가 있었다. 바로 일리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 차르와 톨스토이멘델레예프까지, 그의 리스트에 들지 않았다면 러시아의 유명인이라고 할 수 없다.


레핀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초기에는 고국에 있는 코사크 족의 호쾌한 일상과 풍습을 그려냈다. 이어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과 같은 작품을 통해 방대한 스케일과 섬세한 시선으로 민초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그려내면서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의 시대를 만들어간다. 완숙기에 접어들어서는 러시아 여러 국민 영웅들의 초상, 국가적 행사들을 기록하는 데 집중해 역사적 기록자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도 했다. 러시안 뮤지엄(Russian Museum)은 '사드코(Sadko)' 등 그의 걸작들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러시아 사실주의 대가, 레핀의 '사드코'.

‘21세기의 푸시킨들’을 만나자

비주얼 아티스트 바비 바다로프는 푸슈킨스카야-10의 시인 콘테스트에서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정말로 많은 예술가들의 리스트를 읊었지만, 그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하나를 뽑으라면 그 답은 명료하다. 시인 푸슈킨(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유진 오네진) 등 러시아 문학의 원형이 되는 위대한 작품들을 줄줄이 낳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내를 유혹한 남자와의 결투 끝에 죽었다는 로맨틱한 최후가 더욱 큰 애정을 불러일으켜 왔다.


우리는 이 도시 곳곳에서 푸슈킨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푸슈킨스카야-10(Pushkinskaya-10) 아트센터'는 21세기의 푸슈킨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989년에 문을 연 이곳은 "박물관이 아닌 박물관"을 지향하는 갤러리, 스튜디오, 공연장, 그리고 가게들의 집합체다. 온갖 아방가르드한 예술 행위들이 벌어지는 장소이며, 독특한 나이트클럽 피시 패브릭(Fish Fabrique)으로도 유명하다.

더 쉽게 다가가는 러시아의 양대 보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는 러시아 최대 도시다. 도시의 이름은 모스크바강의 이름을 따라 명명됐다. 1147년 러시아 정교 수도사들이 기록한 연대기에 처음 그 이름이 등장한 모스크바는 당시만 해도 키예프 공국의 한 촌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 초부터 1918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수도를 대신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14세기부터 지금까지 러시아의 수도로서 그 지위를 공고히 해왔다.

러시아 북서쪽에 자리한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수많은 섬 위에 세워진 도시로 ‘북방의 베니스’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예전에는 페트로그라드와 레닌그라드란 이름으로 불렸다. 도시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은 궁전과 성당, 여러 조각은 이 도시의 찬란했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2014년 1월부, 한국과 러시아 비자 면제 협정 발효로 보다 편리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문화·예술의 두 축을 이루는 이들 도시로 떠나보자.

[모스크바]

붉은 광장, 붉은 광장 아이스링크
붉은 광장, 붉은 광장 아이스링크
붉은 광장은 모스크바 여행의 기점이자 제1의 명소다. 주변에 크렘린, 성 바실리 성당, 레닌묘, 국립역사박물관 등 명소들이 즐비하다. 7만 3천 평방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광장은 구 소련 시절, 5월 1일 메이데이와 11월 7일 혁명기념일이 되면 웅장한 퍼레이드 행사가 펼쳐졌던 곳이다.

성 바실리 성당, 크렘린 등 역사적 건물 즐비

성 바실리 성당
성 바실리 성당
성 바실리 성당은 이반 대제가 몽골의 카잔 칸을 항복시킨 것을 기념하여 1555년에 건립을 시작, 1560년에 완성한 건축물이다. 러시아 정교회 건물 중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양파 모양을 한 47미터 높이의 중앙 지붕과 그 주위를 둘러싼 높이가 다른 8개의 지붕이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러시아어로 ‘성벽’을 의미하는 크렘린은 중세에는 각 지방에서 만들어졌다. 그중 모스크바 크렘린은 여러 측면에서 러시아의 중심을 표현한다. 모스크바 한가운데에 자리해 지리적인 중심이고, 대통령과 각료 집무실이 들어서 있기에 정치와 권력의 중심이다. 또한 러시아 문화와 역사의 중심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크렘린은 나폴레옹군의 모스크바 입성 때 발생한 대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이후 현재와 같이 20개의 탑을 가진 모습으로 재건됐다.

크렘린 궁전, 모스크바 구세주 성당
크렘린 궁전, 모스크바 구세주 성당
내부에는 대통령 집무실, 원로원, 12사도 사원, 이반 대제의 종루, 우스펜스키 대성당, 블라고베시첸스키 성당, 아르항겔리스키 성당, 그라노비타야 궁전, 대크렘린 궁전, 무기고 등 역사적인 건물이 즐비하다.

구세주 성당은 시내 중심부 모스크바강에 인접해 있다. 러시아가 1812년 12월 나폴레옹군의 침략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건립한 러시아 정교사원이다. 스탈린 통치 시절에 파괴되었지만 구 소련 붕괴 후 정부의 재정 지원 및 국민 성금을 통해 재건됐다. 성당은 비잔틴 양식 기초 위에 러시아 전통의 교회 건축 양식에 따라 지어졌다. 좌우 대칭의 외형을 지니고 있으며, 내부는 많은 성화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러시아 문화ㆍ예술의 정수, 모스크바

모스크바 여행의 또 다른 특별함은 곳곳에서 러시아 문화, 예술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인 볼쇼이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이뤄진다. 현 극장 건물은 1824년 건축된 것으로 전면의 그리스식 원기둥과 지붕 위의 로마식 전차 장식이 눈길을 끈다.

모스크바 전경
모스크바 전경
트레차코프 미술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더불어 러시아 2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19세기 공업 자본가였던 트레차코프가의 파벨르와 세르게이 두 형제가 수집한 미술품들을 근간으로 소장품이 5만여 점에 이른다. 안드레이 류블료프의 ‘삼위일체’를 비롯해 러시아 미술의 걸작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두고 ‘유럽을 향해 열린 러시아의 창’이라고 했던 푸시킨의 표현처럼, 이 도시는 서유럽의 여러 문화에 대해 열려 있었다. 이에 따라 건축을 비롯한 다양한 삶의 양식은 물론 자유주의 사상도 함께 유입됐고,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후에 제정 러시아의 근간을 뒤흔들고 결국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성공시킨 도시로 만들었다.

세계 3대 박물관, 에르미타주

여름 궁전
여름 궁전

이 역사적인 도시의 백미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이다. 역대 황제의 거처와 부속 건물로 이뤄진 미술관으로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현재 조각, 미술품, 발굴 물품 포함 약 250만점을 전시, 1점당 1분씩 감상하더라도 5년이 소요될 만큼 방대한 양의 전시품을 소장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후원으로 한국어 작품 안내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최초로 표트르 대제의 딸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가 미술품을 수집, 궁전에 전시한 이래 예카테리나 2세가 유럽에서 4천여 점에 달하는 최고 수준의 미술품을 구입했고, 이후 소장품은 계속해서 늘어갔다. 건물 자체도 굉장히 화려해 그 당시 황실의 권위를 한눈에 엿볼 수 있다.

층별로 보면 1층은 원시문화, 구소 동방민족의 문화·예술, 고대 세계문화·예술, 2층은 러시아 문화, 19세기 서유럽 예술(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등), 3층은 근대에서 현대까지 서유럽 예술, 동방문화, 고대화폐 등을 전시하고 있다.

성 이삭 대성당은 제정 러시아 시대의 최고 건물이다. 무려 40년에 걸쳐 지어진 성당은 길이 111미터, 폭 97미터, 높이 101미터로 1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 규모를 자랑한다. 성당 지붕의 원형 돔 건설에는 100킬로그램의 금이 사용되었다 한다. 내부장식에는 22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서 내용을 묘사한 그림 150점, 모자이크 62점, 성당 장식 동상 300여 점 등 뛰어난 예술품이 가득하다.

네바강 하구, 그리스도 부활성당
네바강 하구, 그리스도 부활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 핀란드만이 보이는 곳에는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이 있다. 표트르 대제의 여름 궁전으로 1714년 수많은 건축가, 조경기사, 조각가가 참여해 건설했다. ‘위 공원’과 ‘아래 공원’으로 구분되며, 위 공원에는 표트르 대제의 별궁이 있고, 아래 공원에는 조각상과 분수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네바강 하구에 자리한 토끼섬이라는 이름의 작은 섬에는 이 도시의 중추와도 같던 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요새가 남아 있다.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으로부터 러시아를 지키기 위해 건설했다. 요새를 둘러싼 두꺼운 벽은 높이 12미터, 폭 4미터로 5개의 문이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1706년부터 짓기 시작해 약 35년이 걸려 완성됐다. 6개의 성채 가운데 네바강을 향한 나리시킨스키 성채에서는 매일 정오를 알리는 공포를 쏜다.

1881년 5월 1일,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로 암살 당한 자리에 지어진 그리스도 부활성당은 16~17세기 러시아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 피의 사원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성당의 인테리어는 각기 다른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으며, 수천 개의 조각으로 구성된 모자이크로 처리되어 인상적이다. 외형은 흡사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있는 성 바실리 성당을 떠오르게 한다.

‘혁명 희생자의 광장’의 꺼지지 않는 불

마르스 광장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부에 위치한 공원이다. 오랜 세월 군사 행진과 훈련 장소로 쓰였기 때문에 마르스 광장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원래 이 장소는 ‘큰 풀밭’이라고 불렸으나 대북방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즐거운 풀밭’으로 이름이 변경됐고, 18세기 후반에는 다시 ‘차르의 풀밭’으로 명명됐다. 이후 볼셰비키가 1917년 2월 혁명 중 학살당한 많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꺼지지 않는 불을 설치했고, 이 광장에 ‘혁명 희생자의 광장’이란 이름을 붙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야경
상트페테르부르크 야경
모스크바에 볼쇼이 극장이 있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마린스키 극장이 있다. 역사적인 오페라, 발레 극장이다. 세월을 거치면서 ‘황실 마린스키 극장’, ‘국립 오페라와 발레 아카데미’, 그리고 세르게이 키로프의 이름을 따서 ‘키로프 오페라와 발레 아카데미 극장’(약칭 키로프 극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현재 이름은 알렉산드르 2세의 부인인 마리아 알렉산드로프나 황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은퇴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인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음악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 기사제공 : 대한항공 스카이뉴스(www.skynews.co.kr)
※ 자료 협조 : 러시아문화원(www.russiacenter.or.kr) / 메디오루스(www.mediorus.com)

서울/인천~모스크바
대한항공 주 5회 운항 (약 10시간 5분 소요)

서울/인천~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한항공 주 2회 운항 (약 9시간 50분 소요)

※자세한 스케줄은 대한항공 홈페이지 참고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올해 개관 250주년을 맞은 에르미타주박물관. 눈 덮인 궁전 광장 가운데 알렉산드르 1세를 기리는 탑이 장엄하다.
올해 개관 250주년을 맞은 에르미타주박물관. 눈 덮인 궁전 광장 가운데 알렉산드르 1세를 기리는 탑이 장엄하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시 관광개발위원회 제공

겨울, 도시는 인위로 가득하다. 전력을 다해 화려하다. 운하와 네바강을 건너는 500여개의 다리, 도열한 그리스·로마·비잔틴·고딕·로코코의 건물은 단 한 번의 동어반복 없이 쓰인 한 권의 책이다. 유럽식 유행이 러시아산 청동과 화강암에 들어와 일으키는 우아한 발작, 이곳을 사랑했던 도스토옙스키는 선언한다. "이곳은 모든 것이 카오스다…. 모든 것이 삶이요, 움직임이다." 지난 10일 저녁, 늪 위에 세워진 계획도시에 닿았다. 북방의 수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다.

◇도시의 동맥, 네프스키 대로

도로변, 가로등이 켜진다. 이 예술의 시가지는 전장에서 태어났다. 표트르 대제가 1703년 스웨덴의 침공을 막으려 도시를 세웠고, 전쟁 후인 1712년 아예 수도를 이리로 옮겼다. 시인 푸시킨이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라 읊었듯, 도시는 유럽의 최고급 문물을 한껏 받아들여 치장했다.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정권 탄생지였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900일간 포위돼 40만명이 아사(餓死)한 주검의 땅이었으며, 그럼에도 끝내 미(美)를 포기하지 않은 곳. 도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 연대기의 중심에 네프스키 대로가 있다. 도시의 방문자는 모두 이 거리를 걸어야 한다. 길이 4.5㎞, 폭 30m가 넘는 이 도시의 동맥.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집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속 모든 어리석고 황망한 주인공이 활보하던 이 거리에, 웬만한 명물은 다 있다. 공사 기간 40년, 공사 중 10만명이 죽어나갔고, 돔에만 100㎏의 황금을 칠한 이 도시의 랜드마크 성 이삭 성당, 사탕 같은 양파 지붕을 한 피의 사원, 반원형의 회랑에 9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늘어선 카잔 대성당 등 이 동네의 경복궁이자 숭례문인 굵직한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나른한 땅거미 끝에 밤의 위력이 닥친다. 겨울엔 해가 오전 10시쯤 떠 오후 4시면 진다. 차라리 밤의 거리라 해도 좋다. 소비에트 시절 방공호 같은 지하철 역을 벗어나면, 도로 전선 위에 걸린 램프가 트리 장식처럼 반짝인다. 연애의 기분처럼 몽롱하다. 푸시킨이 연적과 권총 결투를 치르던 날 아침 레모네이드를 마셨다는 '문학 카페'를 찾는다. 1816년 문을 열어 당대 러시아 최고의 문인들이 죄다 다녀간 곳이다. 푸시킨은 졌고, 죽었고, 이후 레모네이드는 판매되지 않는다. 그가 앉았다 갔다는 창가 쪽 세 번째 자리에 다객이 앉아 130루블쯤 하는 커피를 홀짝인다. 붉은 벽지 옆, 창밖에 얼지 않은 운하가 흐른다.

저녁 무렵의 네프스키 대로.
저녁 무렵의 네프스키 대로. / 상트페테르부르크시 관광개발위원회 제공
◇건축과 그림과 음악의 향연

간헐적으로 눈이 날린다. 바람은 살을 엔다. 박물관은 이럴 때 가는 것. 세계 3대 박물관 에르미타주로 간다. 올해 개관 250주년을 맞았다. 네프스키 대로의 끝에 다다라 무게 600t, 높이 74m짜리 알렉산드르 1세 탑이 시력을 압도한다. 그 앞 에메랄드색 건물, 98개의 바로크 양식 조각상으로 지붕을 꾸민 겨울궁전이 에르미타주의 본관이다. 3층, 400개의 방에 고대 시베리아부터 20세기 프랑스 미술까지 총 300만 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대리석 기둥, 천금석과 공작석의 세공이 끝없다. 한국어 음성안내기를 든 채 거장의 화폭에 정신이 혼미할 때쯤, 창밖을 내다본다. 어김없이 네바강이 흐르고 있다. 멀리 바실리 섬에 있는 피터 폴 요새도 반짝인다.

러시아의 색을 보고 싶다면, 러시아 박물관으로 가면 된다. 11~21세기 러시아 미술의 진수가 총망라돼 있다. 드미트리 레비츠키, 일리야 레핀 같은 러시아 거장의 그림을 만날 절호의 기회. 러시아 박물관 앞 예술광장 가운데 푸시킨 동상이 팔을 벌리고 있다. 19세기 극장 마린스키에 가 발레 '지젤'을 보다 잠이 들어도 좋다. 2시간여의 환각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에서도 빛나는 도시

13일 오전, 도시 외곽으로 간다. 볼이 얼얼할 정도로 눈이 날린다.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푸시킨 시(市)로 가는 길, 스탈린 시대의 튼튼한 주택들을 지나 모스크바광장에서 잠시 차를 세운다. 레닌 동상의 코트 깃에 강철의 서리가 피어 있다. 젊은이들이 눈싸움을 한다. 지난밤,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을 찾아가다 골목에서 먹던 블린(Blin·러시아 팬케이크)처럼, 눈밭이 가로등 불빛에 노릇노릇하다. 그 위에 누가 손가락으로 '페테르부르크 2015'라 써놨다.

눈길을 더 달리면 예카테리나 궁전이다. 눈 내리는 여름궁전, 예카테리나 1세 여제가 세운 러시아에서 가장 호화로운 이 공간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호박방. 방 전체가 5.6t의 호박으로 장식돼 있다. 입에 넣고 싶을 정도로 달콤한 색이다. 각 방의 문이 일직선상에 있는 '안필라다' 양식으로, 금박 된 보리수 장식과 도자기 벽난로 등 이곳에서 저곳까지 한눈에 이어진다. 응접실에선 어린이를 위한 신년맞이 콘서트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 예술의 총아에서, 꼬마들은 새로운 눈을 뜨게 될지 모른다. 점심 무렵, 쇄빙선처럼 해가 건너온다. 도스토옙스키의 '페테르부르크 연대기'를 다시 펼친다. "도시의 미래는 아직도 이데아 속에 있다."

인포메이션
여행수첩 

에르미타주 400루블. 월요일 휴관. 수요일 오전 10시~오후 9시. 나머지 오전 10시 30분~오후 6시. 사진 촬영 허용. hermitagemuseum.org

러시아 박물관 350루블. 화요일 휴관. 목요일 오후 1~9시. 나머지 오전 10시~오후 6시. 사진 촬영 허용. rusmuseum.ru

문학카페 레스토랑 겸 카페. 매일 저녁 피아노 연주. litcafe.su

마린스키 극장 작품과 좌석에 따라 500~5000루블 이상. 인터넷 예매 가능. mariinsky.ru

예카테리나 궁전 400루블. 화요일·마지막 월요일 휴관. 오전 10시~오후 4시 45분. 월요일은 오전 10시~오후 7시 45분. 호박방은 촬영 금지. eng.tzar.ru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근대화를 일군 집념의 예술도시

여름 궁전
여름 궁전
표트르 대제, 유럽으로 향하는 창을 꿈꾸다

1703년, 스웨덴에서 되찾아온 습지 위에서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1672~1725)는 장대한 계획을 시작했다. 네바 강 하구에 101개의 섬이 얼기설기 자리한 이 습지를  500여 개의 다리로 연결하고 물렁한 땅은 돌로 촘촘히 메워 도시를 만들겠다는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계획이었다. 어찌나 무모한지 반대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았고 심지어 아들까지 반대하고 나섰지만 표트르 대제의 뜻은 확고했다. 결국 아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계획을 밀고 나간 집념의 왕은 해수면보다 낮은 땅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무려 15만명이 희생되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뼈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오명 속에서 성 베드로의 도시, 아니 표트르 대제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표트르 대제 청동 기마상
표트르 대제 청동 기마상
서유럽의 화려한 면모를 닮은 도시

청소년기를 서유럽에서 보낸 표트르 대제는 뒤처진 러시아의 위상에 열등감이 생겼다. 전통만 고수하는 러시아에 변화가 필요하다 여긴 그는 새 도시에서 서유럽의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길 원했다. 특히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매료된 그는 바다와 강, 운하의 능력이 얼마나 많은 이득을 생산하는지 알게 되었다. 러시아 최북서단의 네바 강이 바다로 흘러나가는 길목에 새 도시를 만들고 서유럽과 같은 문화를 심어나간 표트르 대제는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겼다. 러시아 전통 복장을 금지하고 수염을 길게 기르는 습관마저 싹둑 잘라버린 그는 수염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수염세라는 세금까지 매겼다. 이렇게 철저하게 서유럽을 닮아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화려한 서유럽풍의 웅장한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운하와 수많은 다리를 간직한 아름다운 외관이 갖춰지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북방의 베네치아’로 불리게 되었다.

에르미타주 미술관 내부
에르미타주 미술관 내부

은둔자를 위한 겨울 궁전, 에르미타주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서유럽화, 근대화가 남긴 유산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에르미타주 미술관(The State-Hermitage Museum)을 누구나 먼저 손꼽는다. 표트르 대제의 저택으로 지어져 왕가의 겨울 궁전으로 증축된 이 웅장한 왕궁에는 약 400만점의 예술품과 유물이 1,020개의 방에 전시되어 있다. 미처 내놓지 못한 작품도 상당하다는데, 소장하고 있는 모든 작품을 하나에 1분씩만 감상해도 무려 8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농담 같은 통계는 끝없이 이어지는 1,800여 개의 문과 120개의 계단, 총길이 27km의 압도적인 외관 앞에 서면 수긍하게 된다. ‘은둔자의 집’이라는 이름과 달리 이루 말할 수 없이 화려한 내부와 대대로 전해진 방대한 양의 유명 미술품은 루브르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명예를 안겨주었다.

'죄와 벌'을 가른 센나야 광장의 730걸음

벌레만도 못한 전당포 노파를 죽음으로 단죄하기 위해 좁다란 다락방에서 나와 무더운 초여름의 센나야 광장을 가로지른 라스콜리니코프는 노파의 집까지 총 730걸음을 꼼꼼하게 센다.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에 등장하는 센나야 광장과 주변의 빈민가는 러시아의 대문호로 불리는 도스토옙스키가 직접 경험한 가난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다. 지금은 도스토옙스키 박물관(Dostoyevsky Literary Memorial Museum)으로 말끔하게 꾸며져 있는 그의 허름했던 하숙집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담긴 도스토옙스키 작품의 진면목을 소개한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번민에 휩싸여 걸었던 730걸음 동안 펼쳐진 처참한 도시의 풍경은 그의 또 다른 작품 '백야' 속에 등장하는 더할 나위 없이 인위적인 도시의 몽상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깊이를 만든다. 그 깊이야말로 도스토옙스키의 언어로 승화된 진정한 찬사 아닐까.

푸시킨 동상 / 넵스키 거리
넵스키 대로를 바라보던 푸시킨의 짧은 삶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넵스키 대로(Nevsky Avenue)를 따라 늘어서 있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표 이미지는 이 대로에서 포착된다. 그 덩치 큰 이미지들의 사이 좁은 골목에 숨은 예술가의 단골집이 있다. ‘문학 카페’로 불리는 유서 깊은 이 찻집에는 러시아 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푸시킨의 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다. 푸시킨은 자신의 아내에게 구애를 하며 명예를 더럽히는 일행을 향해 결투를 신청하고는 안타깝게 결투에 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허망하게도 결투의 총성 아래 서른여덟의 짧은 생을 마치고 만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 말라던 자신의 작품을 마지막 순간에 떠올렸다면 죽음의 결투를 불러들인 노여움을 잠재울 수 있었을 텐데…. 죽음을 불사하며 지키고자 했던 아내와 자신의 명예는 지켜진 것인지.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힌 예술의 혼

마린스키 극장
마린스키 극장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러시아를 집어 삼키려는 히틀러의 야욕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작되었다. 러시아의 서대문 같은 이 도시를 무너뜨릴 소모전 대신 철통처럼 포위해 아사(餓死)시킬 계획을 세운 나치는 내부로의 식량과 연료 공급로를 끊어버렸다. 한겨울 혹한과 허기라면 손쉬운 항복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 나치의 예상과 달리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은 무려 900일 동안 버텼다. 기아와 질병으로 주민의 3분의 1이 사망하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지만 함락되지 않았던 덕분에 모스크바도 살아남았다. ‘영웅의 도시’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안겨준 이 역사 이전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기근이 종종 찾아왔었다. 놀라운 사실은 굶주린 때일수록 예술극장의 무대가 더 활발히 불을 밝혔다는 것이다. 정통 발레의 산실로 불리는 마린스키 극장(Mariinsky Theatre)도 나치의 포위망 아래서 더 열심히 불을 밝혔다. 그 이전인 1920년대에 찾아온 기근 당시에도 마린스키 극장은 불을 밝혔고 마린스키 극장이 배출한 우아한 백조,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가 보내준 식량 원조 덕분에 수많은 무용수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재탄생한 클래식 음악

계속된 서유럽을 향한 모방은 19세기에 이르러 예술가들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했다. 나아가 러시아의 특색이 담긴 예술이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음악가들에게서 러시아만의 개성이 가득한 작품이 속속 탄생했다. 그 결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전문 음악원이 설립되었다. 설립 초기에 차이콥스키가 교육을 받아 작곡가로 데뷔했으나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암암리에 퍼져 힘든 상황 아래 놓였다. 주옥같은 작품 덕분에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작품은 서유럽풍이다.

반면에 음악원 교수로 활동하며 러시아 색채를 꾸준히 담아낸 림스키 코르사코프도 동시대 인물이다. '왕벌의 비행'으로 유명한 그의 작품은 지극히 러시아적인 소재 아래 탄생했다. 오랫동안 음악원을 이끌며 세계적인 수준의 교육기관으로 키워 놓은 그의 능력 덕분에 지금도 그 명성이 대단하다. 전세계에서 러시아 연주자들이 선보이는 놀라운 테크닉과 굵직한 음악성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초절정의 기교를 선보이는 현 클래식계의 인기 절정 피아니스트 아르카디 볼로도스의 화려한 피아니즘도 이곳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 림스키 코르사코프 음악원에서 만들어졌다. 서유럽에 대한 모방으로 만들어진 도시에 유럽 문화의 정수인 클래식 음악의 세계적인 산실이 있다는 아이러니, 바로 이런 개성 강한 역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참모습 아닐까.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네바 강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네바 강

· 글ㆍ사진 : 곽정란(여행작가)
'슬림 유럽 데이', '비엔나 칸타빌레', '자신만만세계여행-유럽, 캐나다, 중국' 저자
前 KBS '클래식 오디세이', '찾아가는 음악회' 음악 코디
· 기사 제공 : 대한항공 스카이뉴스(www.skynews.co.kr)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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