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죽여야 끝이 나는 쇼, 투우 - 또로스 델 라 마에스뜨란사

투우에 대한 의견은 오랫동안 분분해왔지만 어느 쪽이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열광적 에너지일 것이다. 소든 투우사든, 둘 중의 하나가 죽어야만 끝나는 쇼. 헤밍웨이는 투우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에너지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떨리는 기록들을 남겼다. 수많은 동물보호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우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 뜨거운 에너지 아닐까.


투우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세비야는 론도와 함께 현대적 의미의 투우가 시작된 곳이다. 세비야에는 18세기에 지어져 아직도 투우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웅장한 투우경기장, 또로스 델 라 마에스뜨란사가 있다. 1761년에서 1881년 사이에 세워진 이 건물은 스페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의 하나로, 마드리드의 라벤타스 투우장과 쌍벽을 이루며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1만 4천명이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는 규모로, 투우사들과 투우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이곳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진정한 투우사가 아니라는 말이 퍼져있다.


이곳에서는 투우박물관도 볼만하다. 투우사들의 초상화, 광고포스터와 의상 등이 진열되어있는데, 그중에는 피카소의 그림도 있다. 투우경기는 지금도 볼 수 있는데, 가장 바쁘게 열리는 달은 4월, 페리아 데 아브릴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다.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4월이 지나면 5-6월과 9월에 3-4차례씩 열린다. 대부분은 일요일에 진행된다.




종교적 고난을 열정으로 재현하는 축제, 세마나 산타 _ 세비야 대성당

세마나 산타(Semana Santa)는 세비야에만 있는 고유한 축제는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언덕으로 오르는 순간부터 부활하기 전까지의 고난을 고스란히 되살려내는 ‘고난주간’은 종교적인 행사로, 부활절 전의 일요일부터 일주일간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하지만 세마나 산타가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세비야이다. 세비아의 세마나 산타는 열정이 넘친다. 이 시즌에 맞춰 세계에서 세비야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성모자상, 십자가의 그리스도상, 성모마리아상과 종교화들이 행렬하는 이동식 차량인 파소만도 백개가 넘게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거대한 규모의 퍼레이드가 연일 줄을 잇는다. 일년간 준비해온 젊은 남자들은 가마를 짊어진다. 길고 뾰족한 두건을 쓰고 눈만 내놓은 사람들, 성경 속의 인물처럼 차려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나 성모마리아를 찬양하는 노래, ‘사에따(Saeta)’를 부른다. 예수의 수난 연극이 상영되는가 하면 자신의 몸에 참회의 채찍질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화려한 장식을 한 마까레나의 성모와 뜨리아나의 에스페란사 성모상이 나오면 축제는 절정에 이른다.


세비야 대성당은 극도의 호화찬란함과 예술성으로 유명하다.

세비야 한가운데에는 스페인 최대의 성당이자 유럽의 3대 성당의 하나인 세비야 대성당이 있다. 15세기에 이슬람을 정복한 기독교도들이 8세기에 건설된 모스크 위에 지은 성당이 바로 세비야 대성당이다. 고딕양식의 건물이지만 모스크였던 시절의 자취들을 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히랄다 탑이다. 무슬림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미나레트에 28개의 종을 달고 고딕식 지붕을 얹은 것.


지극히 종교적인 축제인 세마나 산타가 끝난 직후, 4월말에 벌어지는 축제가 바로 4월의 축제, 페리아 데 아브릴(Feria de Abril)이다. 그날이 오면 화려한 춤과 온갖 퍼포먼스가 야단스레 펼쳐지며 삶의 기쁨을 찬양한다.




성모마리아에 대한 강렬한 애정, 마까레나 성당

세비야의 성모사랑은 유난하다.


히랄다 탑과 함께 세비야의 또 하나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마까레나 성당의 가장 큰 특징은 “눈물 흘리는 성모마리아”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다. 세마나 산타 기간이 아닐 때 그 축제의 분위기를 알려면 이곳으로 가면 된다고 할 정도로, 이곳에는 평소에도 열광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유독 성모마리아에 대한 신앙이 독실한 스페인 내에서도 성모마리아 사랑이 돈독하기로 유명한 세비야 사람들의 경애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들의 사랑은 종교적 신앙과 옛날부터 내려오던 대지의 여신에 대한 민간신앙이 결합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까레나 성당의 분위기는 다른 성당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이곳은 1949년에 성녀 에스뻬란사 마까레나 동정녀를 위해 지어졌다. 에스뻬란사 마까레나는 투우사의 수호성녀이기도 하다. 신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내부장식. 눈물 흘리는 성모마리아는 금은보화로 장식된 왕관과 호화찬란한 의상에 둘러싸여있는데, 매번 갈아입는 옷들이 다른 방에 진열되어있다. 성모마리아와 함께 수난의 예수상이 모셔져있는 이곳은 중요한 성지순례지이기도 하다.




정열과 변덕과 질투의 화신, 까르멘 _ 세비야대학

안달루시아의 여인들은 정열적이기로 유명한데, 그 이미지의 대부분은 ‘카르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광기에 가까운 정열을 가진 여인, 카르멘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지만 실제 그녀의 이야기를 아는 이는 뜻밖에 드물다.


1820년 세비야에서 있었던 이 요란한 연애담에서 카르멘이 돈 호세를 만나는 곳은 담배공장 앞이다. 그는 선량한 약혼자 미카엘라가 있는 군인 돈 호세를 유혹하여, 담배공장 내에서 일으킨 트러블로 연행당하던 자신을 구해줄 것을 부탁한다. 돈 호세는 그녀를 도망가게 하고 대신 자신이 두달동안 영창에서 지내게 된다. 그 사이에 미남 투우사 에스카밀로의 유혹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며 돈 호세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카르멘은 결국 그와 함께 밀매업자들이 사는 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비극의 시작은 카르멘의 변심. 돈 호세에게 싫증을 느낀 그녀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 하고, 투우사 에스카밀로에게 향한 호감을 숨기지 않는다. 눈물로 호소하는 약혼녀 미카엘라를 차마 뿌리치지 못한 돈 호세는 훗날을 기약하며 병든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결국 그들이 다시 만난 곳은 죽음의 장소가 될 투우장이었다. 에스카밀로의 투우가 있던 날, 그의 팔짱을 끼고 나타난 카르멘을 돈 호세는 결국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그 역시, 마지막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격정과 질투와 사랑이 소용돌이치는 이야기다.


프랑스의 소설가 메리메의 소설을 바탕으로 조르주 비제가 작곡한 오페라 [카르멘]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왕립담배공장은 현재 세비야 대학의 일부분이 되어있다. 19세기, 유럽 전체 담배의 4분의3을 생산하던 이곳은 담배를 만드는 여공들만 무려 1만명에 달했다하니,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카르멘은 강렬하고 변덕스러운 사랑을 보여준다.

화려함과 한의 예술적 만남, 플라멩코 _ 로스 가요스

화려하고 정열적인 춤과 음악인 플라멩코의 다른 얼굴은 슬픔과 한이 서린 비극적인 정서이다. 소외와 박해를 거듭 당해온 집시의 역사가 이 춤에는 녹아있다. 플라멩코의 기원은 단순하지 않다. 플라멩코는 자신이 생겨난 곳, 안달루시아의 수많은 민속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세비야에서는 정기적으로 플라멩코 비엔날레가 열린다.


안달루시아의 정서와 집시들의 감각이 만나면서 만들어진 이 장르에는 수많은 피가 섞여있다. 인도에 기원을 두고 유럽을 떠돌다가 안달루시아에 들어온 집시들의 피. 그리고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땅, 안달루시아의 피.


세비야는 플라멩코의 본고장이다. 마에스뜨란사 공연장(Teatro de la Maestranza)에서 2년마다 플라멩코 예술 비엔날레가 열린다. 비엔날레 시즌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훌륭한 플라멩코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작은 바에서 대형 오페라극장까지 도시 전역의 다채로운 장소에서 플라멩코를 만날 수 있다.

산타크루스 거리를 중심으로 훌륭한 타블라오스, 즉 플라멩코 클럽들이 포진해 있는데 전문적인 공연은 식사와 함께 즐기는 '로스 가요스(Los Gallos)' 같은 타블라오스나 좀더 저렴하게 공연 위주로 진행되는 아우디토리오 알바레스(Auditorio Alvarez Quintero)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


플라멩코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바일레 플라멩코(춤) 뿐 아니다. 칸테 플라멩코(노래)와 토케 플라멩코(기타)를 포함한다. 그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것은 의외로 칸테 플라멩코. 그러므로 화려한 춤보다 심금을 울리는 노래에 먼저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겠다. 칸테와 바일레, 토케를 맡은 예술가들을 각각 칸타오르, 바일라오르, 토카오르라 부른다.




바람둥이 돈후안은 어디에서 밀회를 했을까? 호스텔 델 로렐

사랑이 넘치는 바람둥이는 단순한 악인으로 취급하기에는 매력이 너무 많다. ‘카사노바’와 함께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불리는 돈 후안이 계속해서 문학작품들에 호명되는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1630년 작품인 티르소 데 몰리나의 희곡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에 처음 그 이름을 드러내기 전에도, 돈 후안의 이름은 민간에 떠돌았다.

사실 그가 좇는 것은 ‘사랑’은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정복. 직업과 외모 가리지 않고 수많은 여자들을 유혹했다 버린 그는 결국 지옥으로 떨어진다. 수많은 작품에 나온 만큼, 그의 성격도 작품마다 천변만화한다. 몰리에르의 [돈 후안],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바이런의 [돈 주앙], 슈트라우스의 [돈 후앙] 등 그의 이름을 제목에 걸고 있는 작품들 외에도, 호프만, 메리메, 키르케고르 등 많은 이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존 조반니의 하인 레포렐로의 입을 빌어 그를 이렇게 설명한다. "저희 주인님이 '작업'한 미인들의 기록은 이렇습니다. 이탈리아에서 640명, 독일 230명,프랑스 100명,터키에서 91명이고 스페인에서는 무려 1003명입니다. 이 중에는 시골처녀,하녀,창부,백작부인,공작부인 등 지위 계급 스타일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부류의 여인들이 있지요."


이쯤에서 궁금한 것. 그는 자신이 유혹한 여자들과 어디에 갔을까? 민간의 이야기로 떠도는 인물이니 실제 장소가 있을법하지 않지만 현재 세비야에 가면, 있다. '호스텔 델 로렐'은 산타크루즈 거리에 있는 작은 호텔로, 돈 후안이 귀부인을 유혹했던 무대로 알려지면서 1년간의 예약이 꽉 차있을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세기의 극작가인 호세 소릴로가 돈 후안의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무대로 삼았던 이 호텔이 결국 돈 후안의 밀회처로 소문나게 된 것이다.





돈 후안은 바람둥이의 대명사가 되었다

신대륙 발견의 열정-알카사르

페르난데스의 [항해자들의 성처녀]는 아메리카 발견을 거의 최초로 묘사했다.


세비야인의 열정은 인생을 즐기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신세계를 향한 호기심을 참지 않았고, 그 산물을 누리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15~16세기, 대항해시대의 무역항이자 아메리카 여행지의 출발점. 세비야 출신이 아닌 콜럼버스의 무덤과 기념탑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세비야의 본격적인 발전은 아메리카 발견 이후에 왔다. 바로 이곳에서 콜롬버스가 아메리카를 향해 떠났고, 이후 식민지의 모든 생산물들은 세비야로 집중되었다. 이곳은 카스티야 왕국의 유일한 독점무역항 지위를 보장받았다. 그러한 번영은 16세기 초 카디스항이 개항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그 전까지 식민지 개척의 달콤한 열매는 세비야를 살찌웠다. 세비야 대성당의 제단 정면에 있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 1.5톤으로 만든 성모마리아의 품에 안긴 예수상은 이 모험이 가져온 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비야에서 모험을 시작한 이는 콜럼부스 외에 마젤란이 있다. 그 또한 에스파냐 왕실의 후원을 받아 세계일주를 떠났다. 그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의 탐험대가 인도네시아의 몰루카 제도에 도착하여 향료를 손에 넣고 돌아오면서 스페인의 식민지는 급격히 넓어졌다.


그러한 탐험가들이 항해를 위한 자금을 원조받기 위해 스페인 국왕을 알현하던 곳이 바로 알카사르였다. 알카사르에는 식민지 사업을 총괄하던 '카사 데 콘트라타시온', 즉 무역관의 교회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당시 통치자들이 외교적인 만남을 자주 하던 곳이라, 식민지 개척에 관한 중요한 회합과 결정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아메리카 발견을 거의 최초로 묘사한 작품인 알레 호 페르난데스의 [항해자들의 성처녀(The Virgin of the Navigators)]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스페인 5대 도시 필수 코스

스페인의 명소
스페인의 명소로 이름난 세비야 대성당. / 롯데관광 제공
복잡한 역사는, 그 민족에겐 고난일 수 있어도 관광 자원이란 측면에선 축복일 수 있다. 동서양의 통로에 있어 양쪽으로부터 끊임없는 외침과 정복에 시달렸던 터키가 그런 경우다. 유럽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스페인 역시 마찬가지. 북아프리카와 대서양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위치한 이 나라는 로마 시대부터 끊임없이 땅 주인이 바뀌었다. 그 덕분에 이슬람 유적과 성당, 플라멩코, 투우, 가우디, 피카소, 세계 최고 축구 리그 등 온갖 볼거리가 뒤섞인 것이 스페인 여행의 장점이자 기쁨. 스페인 5대 도시의 필수 코스를 정리해봤다.

◇마드리드

축구 팬이라면 레알 마드리드 경기만 봐도 좋다. 하지만 그러기에 마드리드는 너무 많은 볼거리가 있다.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프라도 미술관엔 엘 그레코, 카라바조, 벨라스케스, 고야 등의 그림이 있다. 거장의 그림을 직접 보는 감동은 오직 그걸 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다. 물론 스페인의 왕궁이나 마요르 광장 역시 눈으로 봐야 하는 명소다. 스페인 광장의 세르반테스상과 돈키호테상은 어릴 적 읽은 '돈키호테'의 감동을 되살려 줄 것이다.

◇톨레도

마드리드가 지금 스페인의 수도라면 톨레도는 과거 약 800년간 스페인의 고도(古都)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문화적,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스페인 가톨릭의 중심이 되었던 톨레도 대성당, 엘 그레코의 그림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있는 산토토메 성당 등의 명소는 웅장함과 경건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세비야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주도 세비야는 우리에게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익숙한 이름이다.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다른 어떤 도시에 있는 광장보다 이름난 곳으로 여러 차례 영화 촬영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곳이다.

◇그라나다

그라나다에서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이슬람 건축물 최대의 걸작이라 할 만한 알람브라 궁전이다. 알람브라 궁전은 과거 이슬람의 지배 시절에 그라나다에 머물던 아랍 군주의 저택으로 쓰던 곳으로, 지금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며, 이슬람 건축 박물관으로도 쓰이고 있다.

◇바르셀로나

역시 축구 팬이라면 FC바르셀로나의 경기만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도시이기도 하다. 가우디가 설계한 랜드마크이자 유명한 건축물인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천재적 감각이 돋보이는 구엘 공원, 카사밀라, 카사바트요 등이 절경에 목마른 관광객을 맞는다.

우리나라에서 스페인을 갈 때 보통 어딘가를 거치면 비행시간만 18시간 이상 걸린다. 롯데관광에서 대한항공을 통해 기획한 상품은 인천에서 마드리드까지 약 13시간 정도 걸리고, 바르셀로나까지는 약 14시간 걸리는 직항편을 이용한다. 또 스페인 현지에선 특급 호텔 체인인 힐튼 호텔에서 3박을 하고, 엘 클라시코로 유명한 레알 마드리드 구장 투어, 바르셀로나 근교의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검은 성모마리아상을 관광할 수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 일정 등이 포함돼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안달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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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98m의 ‘누에보 다리’는 절벽 위의 도시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다. 헤밍웨이는 “연인과 스페인으로 떠난다면 꼭 론다에 가라”고 했다. /양지호 기자

스페인에 간다면 안달루시아로 가라.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투우, 플라멩코, 시에스타(낮잠) 모두 안달루시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뒤섞인 안달루시아의 독특한 모습은 수많은 문호와 예술가를 자극했다. 스페인의 정수(精髓)가 이 남부 지방에 녹아 있다. 안달루시아는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의 거의 전역을 지배했던 이슬람 왕조의 영토였다. 안달루시아는 당시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이슬람 왕조의 별칭인 알안달루스(Al-Andalus)에서 유래했다. 1492년 그라나다가 함락되며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됐지만 그들의 유산은 세계의 여행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연인의 도시 론다

협곡 위에 세워진 98m 높이의 누에보 다리는 론다의 상징이다.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이 다리는 42년간의 공사 끝에 1793년 완공됐는데 보는 이를 압도하게 한다. 소설가 헤밍웨이는 "허니문으로, 또는 연인과 스페인으로 떠난다면 론다에 꼭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표작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이곳에서 썼다.

론다는 스페인 근대 투우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18세기 투우사 프란치스코 로메로는 소를 모는 망토와 물레타(붉은 천)를 고안하고 근대 투우를 확립했다. 그의 손자 페드로 로메로는 5000마리 넘는 소와 대결해 승리하면서 전설적인 투우사가 됐다. 인구 3만명의 소도시지만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투우장에서 경기가 열리면 6000석이 가득 찬다.

론다의 진면목은 동트기 직전 이슬이 내려앉은 거리를 거닐며 느낄 수 있다. 여행객의 떠들썩함이 가신 고요한 론다를 새의 지저귐이 채운다. 헤밍웨이가 왜 연인과 오라고 했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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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 ‘카르멘’은 스페인 코르도바에 있는 로마교를 건너는 집시 여인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2 알람브라 궁전 나스리 궁에 있는 ‘사자의 샘’. 3 세비야‘4월 축제’를 즐기는 스페인 시민. 4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의 항구 전경. 말라가는 스페인 남부‘코스타 델 솔(태양의 해변)’의 시작점이다. /양지호 기자
◇코르도바, 이슬람과 가톨릭의 대비

코르도바의 상징은 한때 이슬람 왕국의 모스크였던 '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이다. 이 성당은 메스키타(Mezquita·스페인어로 모스크)라는 일반명사로 더 유명하다. 10세기 이슬람 토후국의 수도였던 시절 이슬람 사원으로 지어졌다가 13세기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을 통해 가톨릭이 코르도바를 차지하면서 성당으로 개축됐다. 건축양식은 여지없는 모스크인데 건물 벽면과 천장은 카톨릭 성화(聖畵)와 성상(聖像)이 가득하다. 교회에 탱화와 불상이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가톨릭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기묘한 동거다.

코르도바는 오페라 카르멘을 낳았다. 오페라의 원작이 된 소설 '카르멘'을 쓴 프랑스 작가 메리메는 코르도바를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 강 위에 놓인 로마교 위를 걷는 집시 여인을 보고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코르도바에서는 파티오 거리를 꼭 찾아야 한다. 파티오는 'ㅁ'자 형태로 집을 만들고 가운데 정원을 꾸미는 안달루시아식 주택의 안뜰을 말한다. 메스키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이곳에서는 매년 5월부터 12일가량 '파티오 축제'가 열린다. 어느 집 안뜰의 화초가 더 아름답게 가꿔졌는지를 겨룬다. 스페인의 햇살을 받은 꽃들은 코르도바 건물의 흰색 벽에 대비돼 더 화사하게 빛난다.

◇축제의 도시 세비야

스페인 안달루시아
안달루시아 자치주의 주도(州都) 세비야는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정열의 도시다. 매년 펼쳐지는 '4월 축제'와 부활절 즈음 펼쳐지는 '세마나 산타'가 양대 산맥이다. 봄의 축제로도 불리는 4월 축제는 일주일 동안 축제 부지에 천여 개 넘는 축제용 천막 '카세타'를 세우고 춤을 즐긴다. 머리에 꽃모양 장식을 달고 안달루시아식 주름치마를 입은 여성과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들이 천막을 돌아다니며 춤을 춘다. 축제가 벌어지는 거리는 말을 탄 연인과 마차를 탄 가족들로 가득하다. 연주와 춤은 매일 새벽 2시까지 이어진다. 올해 축제는 지난 11일에 시작해 17일 밤에 불꽃놀이와 함께 끝났다. 세마나산타와 4월 축제가 이미 끝났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세비야관광청은 "5월 이후 예정된 축제만 21개"라고 밝혔다.

플라멩코가 발원한 안달루시아의 최대 도시인 세비야에는 플라멩코 공연장도 여럿이다. 스페인어 불꽃(flama)에서 유래한 이름인 만큼 화려하고 뜨겁다. 플라멩코 하면 춤만 떠오르지만 사실 무용수, 가수, 기타 연주자의 호흡이 중요하다. 노래는 판소리처럼 구성지고 춤은 탭댄스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화려하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관광객들도 무대에 빠져들면서 함께 손뼉을 치고 '올레'를 외쳤다.

◇피카소가 나고 자란 도시 말라가

말라가는 스페인의 유명 휴양지 ‘태양의 해변(Costa del sol)’으로 가는 관문이다. 지중해의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말라가부터 지브롤터 해협까지의 해변을 그렇게 부른다. 우중충한 날씨의 서유럽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휴양지다. 이 땅에서 파블로 피카소가 나고 자랐다. 말라가 대성당 인근에 있는 피카소미술관에서는 피카소의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작품 8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일정이 바쁘다면 말라가 대성당을 둘러본 뒤 피카소 미술관으로 가면 된다.

(위로부터) 론다 산(産) 재료로 만든 고기 파에야. 코르도바 상점에 걸린 하몽.
인천공항에서 스페인 말라가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스탄불을 경유해 말라가 공항으로 가는 편이 거리가 짧다. 터키 항공(turkishairlines.com·1800-8400)은 6월부터 이스탄불-말라가편을 1일 2회 운항한다. 인천-이스탄불 주 11회 운항. 말라가에서 그라나다, 세비야, 론다, 코르도바까지는 차편이나 기차로 이동. 말라가에서 론다까지는 1시간,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는 2시간 안팎 걸린다. 말라가에 도착해 론다,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 순으로 방문한 뒤 말라가로 돌아와 출국하면 동선 낭비가 적다.

알람브라 궁전의 야경을 보며 식사하고 싶다면 궁 맞은편 알바이신 지구의 카르멘 아벤 후메야를 추천한다. 레스토랑 정보지 자가트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레스토랑 톱10’에 이름을 올린 곳이다. 야외 테이블과 실내에서 모두 알람브라 전경이 보인다. 프랑스 출신 셰프가 안달루시아 전통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메인요리 20유로 안팎. 5 코스 이상의 정찬(正餐)도 50유로부터 시작한다. 1유로는 약 1300원. +34 633 04 28 81

론다에서는 18세기 전설적인 투우사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페드로 로메로가 유명하다. 벽에 늘어선 소 머리 박제가 인상적이다. 안달루시아식 소꼬리찜(Rabo de toro·20유로)이 많이 팔린다. +34 952 87 11 10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하몽(말린 돼지다리)은 잘못 고르면 돼지 냄새 때문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몽 전문 매장이나 시장에서 조금씩 맛을 본 뒤 사는 편이 안전하다. 현지인들은 말라가 대성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아타라사나스 시장(Mercado Central Ata razanas)에서 출국 전 하몽과 말린 무화과, 견과류를 싸게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운영시간 오전 8시~오후 2시.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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