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는 ‘곡선의 미’에 취한다. 육감적인 플라멩코 댄서의 휠 듯한 춤이 아니더라도 거리를 지나치면 문득 건축물에서 유연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가우디의 작품들이다. 바르셀로나에 가면 누구나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추억한다. 이 고집스러운 건축가 한 명이 도시의 지도를 바꿨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들은 한해 수백만 명에 달한다. 바르셀로나는 중독의 도시가 됐고, 그 지독한 중독의 중심에는 가우디가 있다.

 

구엘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본 바르셀로나 전경. 뒤로는 지중해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세계유산을 만든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바르셀로나에 남긴 건축물 중 다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그 중 여행자들을 품에 안고, 눈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작품이 구엘공원이다. 야자수를 닮은 돌기둥과 벤치에 새겨진 모자이크에는 모두 그의 열정이 서려 있다. 사람들은 벤치 위에 누워 따사롭고 호화로운 휴식을 즐기기도 한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빌린 아르누보 양식의 작품들은 화려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이다. 공원의 건축물들은 파도를 치듯 언덕을 따라 흘러내린다. 정문 앞 경비실은 동화 속 풍경을 담았고 이 지역 카탈루냐 문양을 새겨 넣은 모자이크 된 뱀도 독특하다. 담 자락에서 발견하는 모자이크들은 깨진 타일들을 정교하게 조합한 형상으로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 1 구엘공원의 건축물들은 하나하나가 개성 넘친다. 정문앞 건물은 동화에서 소재를 얻었다.
  • 2 모자이크가 돋보이는 구엘공원의 도마뱀 상은 이방인들에게는 촬영 포인트로 인기가 높다.
  • 3 구엘공원의 개성 넘치는 모자이크.

 

 

공원 건축은 가우디의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인 구엘(Eusebi Güell)과의 인연 때문에 시작됐다. 본래는 주거용 목적으로 지었지만 공사는 도중에 중단됐고 일반인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가우디의 저택과 광장을 거쳐 공원 뒤편 언덕에 오르면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가우디가 꿈꾸며 그려낸 도시의 실루엣이 지중해에 비껴 어우러진다.


거리로 나서면 곳곳이 가우디의 작품이다. 1882년 짓기 시작한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가우디의 건축물 중 웅대한 규모에 있어서 첫손가락에 꼽힌다.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과 돔은 창공을 찌를 듯 솟아 있다. 가우디는 40여 년간의 생애를 대성당 건설에 바쳤고 사후에도 성당 지하에 안치됐다.

 

가우디의 작품 중 가장 웅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산트 파우 병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가우디의 거리로 불린다. 이방인들은 밤늦도록 노천바에 앉아 대성당을 바라보며 가우디에 취한다. 쌉쌀한 맥주나 스페인 전통주 ‘상그리아’ 한 잔이 감동 위에 곁들여진다. 이곳에서 언뜻 눈에 띄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식습관은 특이하다. 평일 점심때 2시부터 느긋하게 정찬을 즐기는가 하면 식사 후에는 시에스타 시간이 마련돼 있다. 저녁은 9시 넘어서 먹는다. 주말에는 아예 10시쯤 시작해 자정까지 저녁만찬을 즐기기도 한다. 거리의 예술작품만큼이나 생기 가득한 바와 카페들이 뒷골목에는 즐비하다.

 

 

건물에 깃든 고집스러운 곡선미

보행자의 거리인 람브라스에서 이어지는 길목에서도 가우디의 작품들은 이어진다. 걷다 보면 천재 건축가와 골목에서 조우하는 느낌이다. 구엘궁전은 실타래를 꼬아놓은 듯한 굽이치는 정문이 인상적이다. 카사 바트요나 아파트로 지었던 카사 밀라는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그 외형에 일단 눈이 현혹된다. 건축은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는 가우디의 신념을 담아 석회암 건물의 창과 벽에 바다와 파도의 굴곡을 실었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며 곡선은 신의 선이다’고 한 가우디의 정신이 녹아 들었다.

 

  • 1 건물 정면을 석회암으로 치장한 카사 밀라.
  • 2 동굴 느낌을 연상시키는 카사 밀라의 창문.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의 작품만 구경하는 별도의 투어 코스가 마련돼 있다. 물론 도시의 건축미가 가우디 혼자만의 열정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몬타네르(Lluís Domènech i Montaner)가 지은 카탈라냐 음악당과 산 파우 병원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가우디에 감명받아 건축한 첨단 돔형의 아그바르 타워는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바르셀로나는 유럽대륙과 맞닿은 지리적 여건 덕에 스페인 제일의 상공업 도시로 성장했고 그 성장을 자양분 삼아 수준 높은 예술을 꽃피웠다. 피카소, 미로 등도 이 중독의 도시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그 이름의 꼭짓점에는 가우디라는 천재 건축가의 삶과 열정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가우디는 죽음을 앞두고 그의 전 재산을 사그리다 파밀리아의 건축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 1 바르셀로나에는 건축물 외에도 자유로운 예술의 혼이 숨쉰다.
  • 2 스페인의 플라멩코에는 강렬함과 곡선미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굳이 계획된 르네상스가 아니더라도 예술의 힘은 세인의 상상을 넘어선다. 가우디가 만들어낸 우아한 건축미는 바르셀로나를 예술과 디자인의 도시로 재탄생시켰다. 그 완성에는 지난한 세월과 건축에 대한 짙은 사랑이 배경이 됐다. 가우디를 부둥켜안은 바르셀로나가 그래서 더욱 설레고 끌린다.

 

가는 길
바르셀로나까지 직항편이 운행 중이나 프랑스를 경유해 열차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열차궤도가 달라 국경역인 포르트부에서 갈아타야 한다. 역은 산츠역과 프란사 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탈리아 등에서 이어지는 야간열차나 특급열차도 여럿 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는 5개의 메트로 노선이 도심 구석구석을 연결한다. 메트로를 이용하기에는 산츠역이 편리하다.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4.11.28 07:47 신고

    구엘구엘 공원

  2.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4.11.28 07:47 신고

    가우디의 흔적을 볼 수 있따면 스페인!! 고고!!

라를 모델 삼아 여신을 그리고 때론 신화 속 이야기를 패러디했다.

'매 웨스트의 방'은 유명한 영화배우 매 웨스트(Mae West·1893~1980)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채워졌다. 방엔 그 유명한 입술 의자와 눈 모양 액자가 걸려 있다. 작은 계단을 올라가 볼록 거울로 방을 내려다보면 방 전체가 우스꽝스러운 금발머리 여인의 얼굴처럼 보인다.

또 다른 방엔 그 유명한 흘러내리는 시계 그림, '기억의 영속성'이 양탄자 위에 인쇄돼 벽 한쪽에 걸려 있다. 저 멀리 달리가 태어난 바다 마을이 보이는 그림. 그 고요하고 또 황량한 풍경 속에 시계는 녹아내린 치즈처럼 늘어져 있고, 개미들은 회중시계 속에서 버둥거린다. 큐레이터는 "달리의 꿈속 세계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했다.

달리의 집 거실.

달리의 집, 카다케스 마을로 가다

해변마을 카다케스(Cadaques)는 달리의 생가(生家)가 있는 곳이다. 피게레스 광장에서 하루 4번 오가는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한다.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멀미가 나도록 달렸다. 카다케스 해변에 자리잡은 '포르트 리가트'라는 어촌 마을이 보인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달리의 생가(Casa Museu Dali)가 나왔다. 지붕엔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달걀이 붙어 있다. 입장료 12유로를 내면서 큐레이터인 에바(Eva)에게 "달리는 대체 왜 그렇게 달걀을 좋아한 거냐"고 물었다. "달리는 여성의 자궁을 늘 그리워했대요. 달걀은 바로 그 엄마의 뱃속, 태초의 자궁을 닮은 존재에요. 달걀을 통해 영원한 삶을 꿈꾼 거죠."

달리의 집은 거실과 안방, 침실과 욕조, 사랑방, 그리고 야외 풀장과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안방 한가운데엔 아내 갈라의 초상화가 한쪽에 걸렸고, 그 곁엔 커다란 백조 박제가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엔 백조 박제만 4개였다. 큐레이터는 "달리가 평소에 키우던 애완동물이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백조가 죽자 이렇게 박제로 만들어 넣어둔 것"이라고 했다.

1982년 아내 갈라가 숨지자 달리는 인근 마을로 집을 옮겨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평생을 오만과 광기, 때론 광대 짓으로 보냈던 예술가는 뜻밖에도 이곳에서 영원한 안식(安息)을 꿈꿨던 모양이다. 달리의 집에서 내려와 카다케스 해변을 걸었다. 어촌 마을은 노을에 잠겨 점점 주홍빛에서 진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연금술사'로 유명한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가 작가가 된 것엔 스페인 북부를 가로지르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났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 길을 걸으며 겪은 체험과 영적(靈的) 탐색을 바탕으로 인간애와 성찰이 담긴 첫 작품 '순례자'를 내놓았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즉 '산티아고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하는 길이다. 흔히 '산티아고 순례길'로 불린다. 원래 종교적 구도자들을 위한 길이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도보 여행길로 이름나 있다.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마드리드 등 유럽 곳곳에서 출발해 이곳으로 향하는 길은 모두 산티아고 순례길이 될 수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 북부를 가로지르는‘산티아고 순례길’. 자신을 찾아나서는 명상의 길로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도보 여행길로 이름이 나 있다. / 롯데관광 제공

일반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남부 국경마을인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 Port)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말한다. 총 800여㎞. 하루 20여㎞씩 40여 일을 걸어야 한다. 길 떠나기 전 순례자 사무소나 협회,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순례자용 여권'을 발급받아야 한다. 순례자 숙소에서도 필요하고 마을을 지날 때마다 확인 도장을 받으면서 여정(旅程)을 이어갈 수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하루 20㎞ 이상을 한 달 넘게 걷는 쉽지 않은 코스이다. 숙소인 알베르게는 4~8명이 한 방에 묵는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긴 일정과 불편한 숙소, 낯선 환경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롯데관광은 중·장년층도 큰 부담 없이 체험할 수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여행상품을 선보였다. 스페인 레온~산티아고 구간을 9박11일 동안 돌아보는 일정 중, 5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 구간의 8분의 1 정도인 110㎞를 걷는다. 도보순례 증명서도 받을 수 있다. 참가자들은 깨끗하고 편안한 숙소에 묵으며, 매일 아침 전용차량을 타고 순례길로 이동 후 가벼운 배낭만 메고 걸을 수 있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와 톨레도, 산티아고 일대의 주요 명소도 탐방한다. 마드리드에서는 마요르 광장, 쇼핑의 거리 그란비아, 푸에르타 델 솔 주변의 구(舊)시가지,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 왕궁 등을 구경한다. 마드리드 남쪽 70㎞ 톨레도(Toledo)는 3면(面)이 강으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문화가 어우러진 고도(古都)로 중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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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을 정원 헤네랄리페에서 바라봤다. 십자가가 서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왼편) 옆으로 15세기까지 그라나다를 지배했던 아랍 왕조의 나사리 궁과 요새 알카사바가 보인다. 나사리 궁 뒤로는 르네상스 양식의 카를로스 5세 궁전이 있다. 
"그라나다를 잃는 것보다 알람브라 궁전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

그라나다를 지배했던 마지막 아랍 왕조인 나사리 왕국(1231~1492)의 마지막 왕 보압딜은 1492년 1월 2일 스페인을 공동 통치하던 부부(夫婦) 군주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에게 그라나다를 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붉은 성(城)'이란 뜻의 알람브라 궁전은 아프리카로 물러난 아랍인들이 스페인에 남기고 간 문화유산이다.

보통 알람브라 궁전이라 하면 요새 알카사바, 나사리 왕조의 나사리 궁, 정원 헤네랄리페, 카를로스 5세 궁전, 산타 마리아 성당,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을 통칭한다. 핵심은 아라베스크 양식의 꽃이라 불리는 나사리 궁. 정복 군주 입장에서는 이교도의 건축물이었지만 파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그라나다에 있던 모스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그라나다 대성당을 지은 이사벨라 여왕도 알람브라 궁전에는 크게 손을 대지 않았다. 이사벨라와 페르난도의 후계자 카를로스 5세는 아예 그라나다에 눌러 살고 싶다며 카를로스 5세 궁전을 나사리 궁에 붙여 지었다.

알람브라 궁전은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섞여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도리아·이오니아·코린트식 양식이 뒤섞인 르네상스식 건물(카를로스 5세 궁)이 아라베스크 양식과 모카라베(종유석을 닮은 아랍식 건물 천장 장식법)로 뒤덮은 나사리 궁이 '알람브라 궁전'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공존한다.

나사리 궁에는 아랍어 캘리그래피로 알라를 찬양하는 글귀가 곳곳에 쓰여 있는데, 100m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다.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지하는 터라 성자는커녕 동물 그림조차 없는 나사리 궁 안 '사자의 중정(中庭)'에는 12마리의 사자 형상이 입에서 분수를 뿜어낸다. 일부 학자는 "12마리의 사자는 유대인의 12지파를 의미한다"며 유대인으로부터 나사리 왕조가 받은 선물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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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네랄리페에 있는 아세키아 중정 분수 앞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수로 양쪽에서 24개의 분수가 물줄기를 뽑아내고 있다. 
나사리 궁은 알수록 더 보이는 양파 같은 공간이다. 아라베스크 문양과 아줄레호(푸른색 타일) 같은 외면을 바라보기 시작해서 더 들어가면 사자의 샘에 새겨진 아랍어 문양과 젤루지(미늘살 창문)라고 하는 통풍과 블라인드를 겸하는 아랍식 창문 양식이 들어온다. 알람브라 궁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나사리 궁은 인파에 떠밀리다시피 해 한 시간 내외로 돌아보게 된다. 찬찬히 살펴볼수록 많이 보이는 곳이라 아쉽다.

나사리 궁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헤네랄리페 정원은 낙원을 지상에 구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5월이면 꽃으로 만발하는 이 정원은 아랍 왕들이 여름이면 쉬러 왔던 여름 별장이라는 설도 있다. 세로형 정원의 중앙에 수로를 설치했고 좌우로 분수를 뒀다. 12세기 당시에 벌써 그라나다 인근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발원한 물을 수로를 통해 끌어와 정원을 가꿨다.

스페인 왕실이 힘을 잃으면서 한때 폐허가 됐던 알람브라는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이 알람브라 궁에 머무르면서 궁에 얽힌 이야기를 엮어낸 소설집 '알람브라의 이야기(1832)' 덕분에 다시 빛을 봤다. 폐허는 문화유산이자 관광 명소가 됐다. 스페인 정부는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예술가들도 알람브라 궁전에서 영감을 얻었다. 클로드 드뷔시는 알람브라 초입에 있는 '포도주의 문'을 그린 엽서에 영감을 받아 라 푸에르타 델 비노(La Puerta del Vino)를 작곡했다. 스페인의 음악가 프란시스코 타레가는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클래식 기타 연주곡을 작곡했다.

알람브라 궁전의 전경은 맞은편 언덕에 있는 알바이신지구에서 잘 보인다. 이곳 산니콜라스 전망대와 산크리스토발 전망대가 명소로 꼽힌다. 해질녘에 붉은 성이라는 이름처럼 붉게 물든 알람브라를 보면 어빙의 말에 찬성하게 된다. "알람브라는 역사와 시를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숭배의 대상이다."



안달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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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98m의 ‘누에보 다리’는 절벽 위의 도시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다. 헤밍웨이는 “연인과 스페인으로 떠난다면 꼭 론다에 가라”고 했다. /양지호 기자

스페인에 간다면 안달루시아로 가라.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투우, 플라멩코, 시에스타(낮잠) 모두 안달루시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뒤섞인 안달루시아의 독특한 모습은 수많은 문호와 예술가를 자극했다. 스페인의 정수(精髓)가 이 남부 지방에 녹아 있다. 안달루시아는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의 거의 전역을 지배했던 이슬람 왕조의 영토였다. 안달루시아는 당시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이슬람 왕조의 별칭인 알안달루스(Al-Andalus)에서 유래했다. 1492년 그라나다가 함락되며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됐지만 그들의 유산은 세계의 여행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연인의 도시 론다

협곡 위에 세워진 98m 높이의 누에보 다리는 론다의 상징이다.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이 다리는 42년간의 공사 끝에 1793년 완공됐는데 보는 이를 압도하게 한다. 소설가 헤밍웨이는 "허니문으로, 또는 연인과 스페인으로 떠난다면 론다에 꼭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표작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이곳에서 썼다.

론다는 스페인 근대 투우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18세기 투우사 프란치스코 로메로는 소를 모는 망토와 물레타(붉은 천)를 고안하고 근대 투우를 확립했다. 그의 손자 페드로 로메로는 5000마리 넘는 소와 대결해 승리하면서 전설적인 투우사가 됐다. 인구 3만명의 소도시지만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투우장에서 경기가 열리면 6000석이 가득 찬다.

론다의 진면목은 동트기 직전 이슬이 내려앉은 거리를 거닐며 느낄 수 있다. 여행객의 떠들썩함이 가신 고요한 론다를 새의 지저귐이 채운다. 헤밍웨이가 왜 연인과 오라고 했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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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 ‘카르멘’은 스페인 코르도바에 있는 로마교를 건너는 집시 여인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2 알람브라 궁전 나스리 궁에 있는 ‘사자의 샘’. 3 세비야‘4월 축제’를 즐기는 스페인 시민. 4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의 항구 전경. 말라가는 스페인 남부‘코스타 델 솔(태양의 해변)’의 시작점이다. /양지호 기자
◇코르도바, 이슬람과 가톨릭의 대비

코르도바의 상징은 한때 이슬람 왕국의 모스크였던 '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이다. 이 성당은 메스키타(Mezquita·스페인어로 모스크)라는 일반명사로 더 유명하다. 10세기 이슬람 토후국의 수도였던 시절 이슬람 사원으로 지어졌다가 13세기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을 통해 가톨릭이 코르도바를 차지하면서 성당으로 개축됐다. 건축양식은 여지없는 모스크인데 건물 벽면과 천장은 카톨릭 성화(聖畵)와 성상(聖像)이 가득하다. 교회에 탱화와 불상이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가톨릭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기묘한 동거다.

코르도바는 오페라 카르멘을 낳았다. 오페라의 원작이 된 소설 '카르멘'을 쓴 프랑스 작가 메리메는 코르도바를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 강 위에 놓인 로마교 위를 걷는 집시 여인을 보고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코르도바에서는 파티오 거리를 꼭 찾아야 한다. 파티오는 'ㅁ'자 형태로 집을 만들고 가운데 정원을 꾸미는 안달루시아식 주택의 안뜰을 말한다. 메스키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이곳에서는 매년 5월부터 12일가량 '파티오 축제'가 열린다. 어느 집 안뜰의 화초가 더 아름답게 가꿔졌는지를 겨룬다. 스페인의 햇살을 받은 꽃들은 코르도바 건물의 흰색 벽에 대비돼 더 화사하게 빛난다.

◇축제의 도시 세비야

스페인 안달루시아
안달루시아 자치주의 주도(州都) 세비야는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정열의 도시다. 매년 펼쳐지는 '4월 축제'와 부활절 즈음 펼쳐지는 '세마나 산타'가 양대 산맥이다. 봄의 축제로도 불리는 4월 축제는 일주일 동안 축제 부지에 천여 개 넘는 축제용 천막 '카세타'를 세우고 춤을 즐긴다. 머리에 꽃모양 장식을 달고 안달루시아식 주름치마를 입은 여성과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들이 천막을 돌아다니며 춤을 춘다. 축제가 벌어지는 거리는 말을 탄 연인과 마차를 탄 가족들로 가득하다. 연주와 춤은 매일 새벽 2시까지 이어진다. 올해 축제는 지난 11일에 시작해 17일 밤에 불꽃놀이와 함께 끝났다. 세마나산타와 4월 축제가 이미 끝났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세비야관광청은 "5월 이후 예정된 축제만 21개"라고 밝혔다.

플라멩코가 발원한 안달루시아의 최대 도시인 세비야에는 플라멩코 공연장도 여럿이다. 스페인어 불꽃(flama)에서 유래한 이름인 만큼 화려하고 뜨겁다. 플라멩코 하면 춤만 떠오르지만 사실 무용수, 가수, 기타 연주자의 호흡이 중요하다. 노래는 판소리처럼 구성지고 춤은 탭댄스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화려하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관광객들도 무대에 빠져들면서 함께 손뼉을 치고 '올레'를 외쳤다.

◇피카소가 나고 자란 도시 말라가

말라가는 스페인의 유명 휴양지 ‘태양의 해변(Costa del sol)’으로 가는 관문이다. 지중해의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말라가부터 지브롤터 해협까지의 해변을 그렇게 부른다. 우중충한 날씨의 서유럽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휴양지다. 이 땅에서 파블로 피카소가 나고 자랐다. 말라가 대성당 인근에 있는 피카소미술관에서는 피카소의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작품 8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일정이 바쁘다면 말라가 대성당을 둘러본 뒤 피카소 미술관으로 가면 된다.

(위로부터) 론다 산(産) 재료로 만든 고기 파에야. 코르도바 상점에 걸린 하몽.
인천공항에서 스페인 말라가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스탄불을 경유해 말라가 공항으로 가는 편이 거리가 짧다. 터키 항공(turkishairlines.com·1800-8400)은 6월부터 이스탄불-말라가편을 1일 2회 운항한다. 인천-이스탄불 주 11회 운항. 말라가에서 그라나다, 세비야, 론다, 코르도바까지는 차편이나 기차로 이동. 말라가에서 론다까지는 1시간,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는 2시간 안팎 걸린다. 말라가에 도착해 론다,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 순으로 방문한 뒤 말라가로 돌아와 출국하면 동선 낭비가 적다.

알람브라 궁전의 야경을 보며 식사하고 싶다면 궁 맞은편 알바이신 지구의 카르멘 아벤 후메야를 추천한다. 레스토랑 정보지 자가트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레스토랑 톱10’에 이름을 올린 곳이다. 야외 테이블과 실내에서 모두 알람브라 전경이 보인다. 프랑스 출신 셰프가 안달루시아 전통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메인요리 20유로 안팎. 5 코스 이상의 정찬(正餐)도 50유로부터 시작한다. 1유로는 약 1300원. +34 633 04 28 81

론다에서는 18세기 전설적인 투우사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페드로 로메로가 유명하다. 벽에 늘어선 소 머리 박제가 인상적이다. 안달루시아식 소꼬리찜(Rabo de toro·20유로)이 많이 팔린다. +34 952 87 11 10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하몽(말린 돼지다리)은 잘못 고르면 돼지 냄새 때문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몽 전문 매장이나 시장에서 조금씩 맛을 본 뒤 사는 편이 안전하다. 현지인들은 말라가 대성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아타라사나스 시장(Mercado Central Ata razanas)에서 출국 전 하몽과 말린 무화과, 견과류를 싸게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운영시간 오전 8시~오후 2시.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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