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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강물에 비친 베키오 다리의 모습을 상하 반전한 사진.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 가장 유명한 다리다.

비단처럼 넘실대는 구릉 위 사이프러스나무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이탈리아 토스카나, 그 중심에는 피렌체(Firenze)가 있다. 골목마다 달콤한 향기가 새어 나오는 이 도시의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꽃피는 마을이라는 뜻의 단어 '플로렌티아(Florentia)'에서 기원했다. 

중세 르네상스의 부흥을 주도한 도시답게,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예술 무대다. 피렌체 권력의 상징인 팔라초 베키오, 아름다운 조각상들이 가득한 시뇨리아 광장, 메디치가의 궁전은 물론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라파엘 같은 천재 예술가들 작품의 향연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대성당이다. 꽃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이란 뜻을 지닌 이 위대한 건축물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성당이자, 피렌체의 거대한 심장이다. 피렌체 두오모 혹은 피렌체 대성당으로도 불리는 이 건축물은 1296년 아르놀포 캄비오(Arnolfo Cambio)에 의해 착공됐고, 1436년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의 돔을 꼭대기에 얹으며 비로소 완성됐다. 

피렌체 대성당은 고딕 양식과 피렌체 양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장밋빛, 상앗빛, 초록빛의 오묘한 패턴이 새겨진 대리석으로 꾸며진 외관은 그 자체로도 완벽한 예술 작품이다. 궁극의 화려함과 섬세함을 지닌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내부는 절제미가 돋보인다. 천장을 가득 메운 바사리의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화는 성스러움을 더한다. 

464개의 좁은 계단을 오르면 높이 106m, 지름 45.5m에 이르는 거대한 돔, 큐폴라(Cupola) 정상에 도달한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속, 헤어졌던 연인 준세이와 아오이가 운명적인 재회를 한 바로 그 장소다. 붉은 지붕이 만발한 도시 위로 푸르고 시린 바람이 나부낀다. 사람들은 우두커니 서서 수채화처럼 번져가는 피렌체의 풍경을 아련하게 바라본다. 아마도 영화 속의 두 연인처럼, 열정적이었던 과거와 냉정해야만 하는 현재 사이에 묻어둔 소중한 추억들을 조심스레 꺼내 보고 있는 것이겠지.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Arno)강 위에는 아름다운 다리들이 세워져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1345년에 지어진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다. 베키오는 이탈리아어로 '오래된'이라는 뜻을 지녔는데, 이름 그대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퇴각하면서 피렌체의 모든 다리를 폭파했지만 베키오 다리만은 남겨두었기 때문. 

베키오 다리가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피렌체 출신인 시인 단테가 베아트리체와 처음 조우한 운명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생전 딱 두 번 만났고, 끝까지 맺어질 수 없었다. 그러나 단테는 평생 베아트리체를 가슴속에 새겼다. 그래서일까, 필연적인 사랑과 꿈같은 낭만을 꿈꾸는 연인들은 모두, 이 오래된 다리 위를 찾는다. 아득히 흐르는 강물 위로 영원한 사랑에 대한 맹세를 띄워 보내며. 

피렌체 동남쪽에 자리한 미켈란젤로 언덕은 낭만의 도시, 피렌체의 또 다른 성지다. 아름다운 시내 전경을 파노라마로 담을 수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석양 지는 피렌체는 더욱더 붉게 적셔지고, 아르노강은 황금 물결이 되어 잔잔하게 흐른다. 

어느새 어둠이 자욱해진 밤하늘에는 태양보다 뜨거운 달이 두둥실 떠오르고, 그 아래는 별보다 빛나는 사랑들로 채워진다. 냉정은 가고 열정만 남은 피렌체의 밤이다. 

[글·사진 = 고아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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