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라바 정원에서 바라본 나가사키 항구일본 근대화의 영웅, 영국인 글로버가 살던 저택을 공원처럼 꾸며놓았는데, 나가사키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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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토고토리(良いとこ取り)'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좋은 것이라면 누구의 것이든 받아들여 내 것으로 소화해낸다'는 뜻의 일본인 특유의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를 두고 '일본은 없다'며 폄훼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대개는 이야말로 일본 문화의 저력이라며 상찬해마지않는다.

기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먹고 사용하는 것들 중에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게 적지 않다. 근대화 과정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식된 것들이다. 개중에는 왜색 문화나 일제의 잔재라며 치도곤 당하는 것들도 적지 않지만, 돈가스와 라면, 통조림과 같은 먹거리부터 만화나 영화 등 볼거리에 이르기까지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것들이 많다.

뭐든 일본식으로 만드는 '이이토고토리' 문화

그런데, 그것들 중 '오리지널' 일본 것은 거의 없다. 이웃나라인 우리나라나 중국으로부터 비롯된 것들도 있고, 심지어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시대 자신들을 무릎 꿇린 서구열강에게서 배워온 것도 많다. 예컨대, 아이들 모두가 좋아하는 돈가스는 개항 이후 서양의 육식문화를 철저히 일본화한 사례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표적인 일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맵지 않고 달큰한 '기무치'는 우리나라로부터 건너간 반찬이고, 중국 화북지방의 주식인 국수를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라면은 차라리 일본인들의 '발명품'이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돈가스와 기무치, 라면을 '짝퉁' 스테이크나 '가짜' 김치, '표절' 국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앞서 말한 이이토고토리의 힘이다.

그 힘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가 있다. 바로 규슈 아니, 일본의 맨 서쪽에 자리한 항구도시, 나가사키다. 지리적 입지상 예로부터 우리나라, 중국 등과 문물을 서로 주고받았으며, 이른바 신항로 개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16세기 중반부터는 일본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등 서양 국가와 첫 접촉을 가졌던 역사적인 도시다.



▲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1702년 처음 조성된 이곳은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짬뽕'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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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여 년간 이어진 에도 막부의 쇄국정책의 와중에서도 이곳만큼은 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서양과의 통상 교역을 지속시켰다. 이는 곧 동서양의 문화가 절묘하게 융합된 도시라는 나가사키의 성격을 규정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인지 도시의 인구수만큼이나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시대를 넘어 공존하고 있다.

나가사키라는 이름에 반사적으로 뒤따라오는 단어가 바로 '짬뽕'이다. 자장면과 함께 중국음식점의 '감초'인 짬뽕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 나가사키다. 일본 유일의 개항장이었던 데다 중국과 가까운 이점 때문에 중국인들이 일찍이 터를 잡았고, 그들의 즐겨먹던 음식이 시나브로 일본화하면서 변모한 것이 바로 짬뽕이다.

'밥 먹었니?'라는 뜻의 중국 남방 복건성 사투리인 '챠뽕(吃飯)'이 일본인들에게 뒤섞인다는 의미의 '쟌폰'으로 들린 나머지 그대로 음식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전한다. 짬뽕이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정작 음식보다는 뒤섞인다는 의미의 관용적 표현으로 더 자주 쓰이게 된 것이다. 어떻든 짬뽕은 중국과 일본 문화의 융합, 나아가 나가사키라는 도시의 특징을 한마디로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현재 도심 한복판에는 1702년 조성된 중국인들의 거주지가 보존돼 있는데, 이곳이 바로 짬뽕의 '발원지'인 셈이다. 십자로로 난 비좁은 차이나타운에 들어서면 잠시나마 일본이 아닌 중국 어느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이 들지만, 공원 등 주변 풍광과 잘 어울려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여러 식자재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독특한 맛을 내는 짬뽕처럼.

나가사키의 또 다른 '외국', 오란다자카



▲ 오란다 자카 입구네덜란드인들이 모여살던 집단 거주지인데, 소소한 서양건축물과 박석 깔린 길의 모습이 자못 이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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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나가사키에는 '중국'도 있지만, 서양 여러 나라도 이웃처럼 만날 수 있다. 여느 지역에서처럼 박제화한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거나 목적에 맞게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분주한 항구와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봉긋한 언덕 위에 자리한 '구라바' 정원과 그 아래 '오란다자카'는 나가사키의 또 다른 '외국'이다.

'구라바'는 글로버의 일본식 표기다. 토머스 글로버는 1859년 21세의 젊은 나이에 나가사키에 들어와 차 무역과 조선업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영국인이다. 구라바 정원은 그가 짓고 살던 저택과 정원을 관광지로 꾸며놓은 곳인데, 빼어난 전망과 역사적 의미로 인해 나가사키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사실 그는 우리와 '악연'이 있다. 당시 젊고 유능한 사무라이였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영국에 보내 서양 문물을 배울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일본을 침략해 통상 요구를 강제한 서구 열강의 일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토를 비롯한 일본 근대화의 영웅들을 길러낸 공을 인정받아 모든 일본인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다.

그는 나가사키에 미쓰비시의 전신이 대형 조선소를 세웠고, 현재 일본 굴지의 브랜드인 기린 맥주를 창업한 이로도 유명하다. 말하자면, 상인으로서 사업 수완이었을지언정 일본의 산업혁명을 이끈 또 하나의 주역이었던 셈이다. 복원된 그의 저택 안에는 당시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갖춰놓았으며, 글로버의 업적과 생애를 자세히 안내해주고 있다.

저택 곁에는 글로버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마치 그의 부인인양 다정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일본인들이 많다. 아닌 게 아니라, 글로버는 이곳에서 일본인과 결혼했으며, 푸치니의 오페라 작품 < 나비부인 > 도 그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세계적인 오페라의 무대가 구라바 정원, 곧 나가사키인 셈이다.

우리에게도 글로버와 같은 인물이 왜 없을까마는 이렇듯 외국인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 같다. 예컨대, 조선 말 < 대한매일신보 > 를 간행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고취시킨 영국의 언론인 베델도 있고, 고종의 밀사 자격으로 헤이그에 가서 일본의 침략 행위를 규탄한 헐버트 같은 인물도 우리에게 존경을 받을 만하지 않나.

그러나 그들은 그저 역사 교과서 끄트머리에 한두 줄 살짝 언급돼 있을 뿐이고, 찾는 발길이 뜸한 서울 한강변 양화진 야트막한 언덕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쓸쓸히 잠들어 있다. 동상과 기념관을 세워 업적을 기리기는커녕, 근대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서양 제국주의자의 일원으로 오해되는 일도 더러 있을 정도다.

근대화의 성지처럼 꾸며진 구라바 정원에서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와 일본의 모습을 비교해보게 된다. 근대화를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과정쯤으로 이해하는 우리나라이고 보면, 두 나라의 근대화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가사키에서 글로버는 더 이상 영국인이 아니라, 일본의 근대화 영웅 '구라바'일 뿐이다. 역사에서도 '이이토고토리'의 힘은 건재하다.

일본인 최초의 순교성지도 바로 '나가사키'



▲ 오우라 성당의 모습서양 종교인 천주교가 일본의 목조건축과 만나 '명작'을 만들어냈다. 현재 국보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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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바 정원의 발아래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성당인 오우라 성당이 우뚝하다. 서양 종교 건축으로는 보기 드물게 국보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관광객뿐만 아니라 천주교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본에서 최초로 천주교가 전래된 곳이며, 16세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26명의 신자들을 처형한, 일본인 최초의 순교성지도 바로 이곳 나가사키다.

구라바 정원, 오우라 성당과 간선도로를 경계로 한 반대편 야트막한 언덕빼기 골목길은 이름하여 '오란다 자카'다. 오란다는 네덜란드를 의미하는 '홀란드'의 일본식 표기이며, 자카(坂)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그대로 풀이해보면 '네덜란드 사람들이 모여 살던 언덕'쯤 되겠다. 언덕을 따라 소박한 서양건축물들이 산재해 있고, 길바닥도 유럽풍의 박석이 깔려 자못 이국적이다.

에도 막부의 쇄국정책이 극에 달했을 때도 유독 네덜란드인들에게만은 유화적이었고, 일본은 그들을 통해 서방세계의 변화와 주시하며 서양문물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았다. 이른바 일본 근대화의 뿌리라고 불리는 '난학'은 바로 네덜란드를 의미하는 중국어인 '화란(和蘭)'의 학문이라는 뜻이니, 일본에서 네덜란드에 대한 인식은 각별하다.

당시 아무리 네덜란드인들에게 허용적인 분위기였다고 해도 그들이 제 나라인 양 나가사키 전역을 활보하며 다닐 수는 없었다. 그들이 일하고 거주한 곳은 통행이 엄격하게 통제됐다. 심지어 막부에서는 '데지마(出島)'라 하여 앞바다에 부채꼴 모양의 인공 섬을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그 섬 안에서만 일하도록 강제했다.



▲ 복원된 '데지마'의 모습서양 상인들의 활동 제한 구역이며, 일본인들에게는 출입 금지 구역이다. 이곳을 통해 서양문물이 일본에 소개됐고, 일본이 서양에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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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매립되어 더 이상 섬은 아니지만, 그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다. 17세기 제주도에 표착해 조선에서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하멜표류기'를 남긴 핸드릭 하멜도 식민지였던 바타비아(현재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이곳 나가사키의 데지마로 가던 중에 풍랑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곳을 통해 일본엔 없던 코끼리나 커피 같은 동식물과 기호품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도자기와 무사도 같은 독특한 일본 문화가 서양에 널리 알려졌다. 나가사키를 일본에서 가장 이국적인 풍광을 지닌 도시로 손꼽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곳 '데지마'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이토고토리'의 발상지와도 같은 곳이다.



▲ 나가사키 또 하나의 '명물', 노면 전차노면 전차가 다니는 철로가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고 있는데, 특별한 신호 체계 없이도 교통 혼잡이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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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나가사키 내 '외국'들은 모두 전차로 연결된다. 버스나 택시도 있지만, 값도 비쌀 뿐만 아니라 이용하기에 번거로워 관광객이라면 대개 전차를 이용한다. 마실 산책 다니듯 나가사키를 음미하며 여행하기에는 전차가 제격이다. 낡고 예스러운 전차들이 최신형 하이브리드 차들과 공존하며 도시를 달리는 모습은 또 다른 볼거리다.

최첨단의 시대, 그것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전선이 거미줄마냥 하늘을 가리고 덜컹거리는 전차가 여전히 굴러다니고 있다는 것이 솔직히 낯설기도 하다. 그러나 이조차 나가사키의 매력이다. 동서양의 문화가 뒤섞여있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시내를 종횡무진 누비는 전차를 두고 '가장 나가사키다운 보물'이라고 말했다. 전차는 '이이토고토리'를 싣고 오늘도 달린다.

큼지막한 평화공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평화'

나가사키 여행에 있어 '옥에 티' 하나. 나가사키를 떠나기 전, 전차를 타고 평화공원에 들렀다. 잠시나마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나가사키는히로시마와 함께 우선 '원폭 도시'로 기억된다. 당시 가공할 원폭에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을 포함해 수만 명이 희생되는 등 도시 전체가 엄청난 생채기를 입었다.

주지하다시피 원폭은 일본인들을 제국주의 시대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시켜버렸고, 침략의 과거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부 정치인들이 극우적 신념을 지니게 된 온상이 됐다. '전쟁의 잘잘못을 떠나 함께 인류 평화를 기원하자'며 원폭이 떨어진 자리에 평화공원을 큼지막하게 조성해 놓았지만, 그들이 외치는 '평화'에 진정성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 평화공원 내 평화기념상한 서양인이 놓고 간 추모의 꽃다발 뒤로 평화기념상이 '육중한' 모습이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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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질의 육중한 기념상의 치켜세운 팔이 원폭의 참화를 잊지 말자는 의미이고, 수평으로 뻗은 팔은 평화를 추구하자는 뜻이라는데, 그러자면 우선 이웃나라들에 엄청난 고통을 안긴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참회와 사죄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곳에 징용으로 끌려와 무고하게 죽어간 이웃나라 사람들을 위한 추모시설이나 위령탑 하나 없는 현실에서 평화 운운하는 건 과거는 다 덮고 가자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평화공원을 찾은 일본인들은 떼를 지어 기념상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빴다. 미국인으로 보이는 백발이 성성한 한 여행자가 기념상 앞 제단에 놓고 간 꽃다발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 건 그래서다. 이방인인 그가 추모하려는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러고 보니 다가오는 8월 9일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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