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삼킨 고대 도시 요르단 '페트라' 이곳의 사진 한 장에 이끌려 4개월을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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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사막 한가운데 펼쳐진 붉은 사암지대. 그곳엔 시간을 삼킨 듯한 고대 도시 페트라와 유목민 나바테아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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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유적 일대에선 다양한 색의 천연 모래가 난다. 사람이 다니는 길목에 무지개색 사암을 늘어놓고 파는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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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페트라의 은행 혹은 법원 역할을 했다는 광장.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유적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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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이 풀을 뜯는 낙타. 황량한 사막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곳 원주민 베두인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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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이 가나안 땅, 지금의 이스라엘을 바라보고 있다. 느보산은 요단강 세례터와 함께 교황청의 공식 성지 순례 장소로 지정되어 있다.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기념비와 기념식수인 올리브나무도 볼 수 있다

●Mt. Nebo 느보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디에 

구약시대의 흔적들보다 후대 비잔틴시대의 유적으로 더 유명한 곳이 ‘느보Nebo’와 ‘마다바Madaba’다. 암만 남쪽 25km에 자리한 느보산은 모세가 숨을 거둔 자리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끈 모세는, 구약 신명기 34장에 따르면 느보산에 올라 가나안 땅을 보았지만 정작 자신은 가지 못한 채 광야 40년의 여정을 마쳤다.

광야를 지나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올랐다. “저기가 예언자 엘리야가 승천한 곳이에요.” 구약의 예언자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했다고 전해진다. 압둘라 가이드가 차창 너머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자리에는 광야에 교회만이 덩그러니 서서 승천의 위치를 말해 주고 있었다. 

해발 774m 느보산에는 모세기념교회가 있다. 기원후 4세기경 세워진 교회는 비잔틴시대의 전통에 따라 성서 이야기를 담은 거대한 모자이크 장식이 교회 바닥을 덮고 있는데 마침 교회는 내부공사가 한창이라 모자이크는 따로 전시되어 있었다.

또 하나 눈길을 끈 건 이스라엘 땅이 내려다보이는 시야가 봉우리에 세워진 작품이다. 구리로 만든 뱀이 십자가 형태의 장대를 휘감고 있는 이 작품은 이탈리아 조각가 지오바니 판토니Giovanni Fantoni가 제작했다. 구약 민수기 21장, 모세가 시나이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을 살리려고 놋으로 만든 불뱀을 장대 위에 달아 이를 본 자들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형상화한 것인데,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구리 뱀은 하느님의 치유 능력을 상징한다.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다는 그곳에는 가나안, 지금의 이스라엘이 펼쳐져 있다. 사해 저편은 그저 황량하고, 첨예한 갈등마저 뒤덮인 곳으로 보일 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모세의 광야 40년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저 땅에 젖과 꿀이 흐르고 있을까. 예언자가 아닌 평범한 누구라도 평화가 왔음을 알 수 있는 그런 때 말이다. 

느보산에 자리한 박물관 내부. 비잔틴 시대 모자이크 및 느보산의 역사를 훑을 수 있다

시야가 봉우리에 세워진 십자가 형상의 구리 뱀. 구약성서의 내용을 모티브로 이탈리아 조각가가 제작했다

●Madaba 마다바
모자이크의 도시 

암만에서 남쪽으로 30km 지점에 있는 고대도시 마다바 또한 비잔틴시대 교회 모자이크로 유명하다. 도시 곳곳에 모자이크 수백점이 남아 있다. 1880년대 초 사해 동쪽 카락 지방에서는 이슬람교와 기독교 신자들 간 불화로 2,000여 명의 기독교인들이 마다바로 이주했다. 그들이 비잔틴시대 교회 터 위에 새 교회를 짓던 중 당시의 모자이크가 다수 발견됐다.

그중 그리스정교 성 조지교회의 바닥 모자이크는 560년경에 만든 지도로 크기가 가로 15.5m, 세로 6m에 이른다. 이는 근대 지도학이 등장하기 전 팔레스타인 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정밀한 것으로, 당시 순례자들에게 교회의 위치를 알려주는 수단으로 만들어졌다. 일정한 크기로 잘게 쪼갠 색색의 천연 돌조각 200만개를 모아 북쪽으로 레바논에서 남쪽으로 나일 삼각주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묘사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남아 있는 것은 3분의 1뿐이다.

그리스정교 성 조지교회

성 조지교회 바닥에 장식된 비잔틴 시대의 대형 모자이크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에티하드항공 www.etihad.com, 요르단관광청 www.mota.gov.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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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바의 해변. 수온이 따뜻해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국제적인 휴양도시인 아카바에는 홍해를 끼고 유명 호텔들이 들어서 있다

●Aqaba 아카바
석유와 맞바꾼 바다 

요르단 남부 홍해 동쪽 끝에 자리한 ‘아카바Aqaba’는 요르단에서 유일하게 해상으로 통하는 길목이자 특별경제자유구역이다.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간 중요한 해상 무역로이며 1965년부터 국제공항과 호텔이 건설되면서 국제적인 관광도시가 됐다.

원래 아카바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땅이었다. 1965년 요르단 정부는 사막 일부를 내주고 12km의 해안선을 얻었다. 내륙인 요르단에서 아카바의 가치는 무한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 건네준 땅에서는 이후 석유가 터져 나왔다. 어마어마한 경제적 이득이 날아간 셈이라고 혹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요르단은 꼭 필요한 물을 얻었고 홍해를 통해 인도양으로 통하는 길이 열렸으니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는 모를 일이다. 

홍해가 펼쳐졌다. 짙푸르고 맑은, 뛰어들면 온몸이 푸르게 물들 것 같은 그런 바다다. 건너 저편에는 이스라엘의 휴양도시 엘리아트가 보인다. 라마단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있던 때라, 아카바에는 미리 휴양을 즐기러 온 현지인들이 해변과 호텔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홍해의 수온은 연중 20도 내외로 따뜻해서 스쿠버다이빙과 패러세일링, 윈드서핑과 수상스키 등 해양스포츠를 위한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보트를 타고 30분 거리의 근해에서 스노클링을 즐겼다. 맑은 물 위로 보라색을 띤 작은 해파리들이 떠다니고 물속에서는 산호와 나비고기, 비늘돔 등 홍해의 진귀한 물고기들을 볼 수 있다.

오후에는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아일라Ayla’라고도 불리던 아카바에는 과거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 메카로 가는 순례자들을 위한 쉼터였던 아카바성 옆에는 압둘라 2세의 선조인 후세인 빈 알리의 아카바 저택이 있다. 내부는 고고학 박물관으로 1990년 대중에게 공개됐는데 7세기 중반부터 12세기 초까지의 이슬람 시대상을 보여 준다.

해변을 따라 걸었다. 히잡을 쓴 채 바다에 뛰어든 여성들, 그늘 아래 둘러앉은 가족들, 아시아에서 온 여행자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들. 그들의 행복한 한때를 훔쳐보노라면 아카바에 대한 요르단 정부의 거래가 결코 손해는 아닌 듯싶었다. 

현 압둘라 2세 왕의 고조할아버지인 알 샤리프 후세인 빈 알리의 저택. 고고학박물관으로 사용 중인데 리뉴얼이 한창이었다. 국왕 가문은 예언자 마호메트의 직계 후손이다

로마의 옛 성터였던 시타델 언덕에서는 암만 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Amman 암만
오묘한 회색도시

마지막 날은 암만Amman에서 보냈다. 수도 암만에는 요르단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산다. 도시의 서쪽은 서구의 영향을 받은 쇼핑몰과 카페 등이 밀집돼 있고 동쪽은 전통시장과 모스크가 자리해 이슬람의 전형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암만은 성서에 ‘랍바’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아들을 조상으로 한 암몬족이 세운 수도라고 기록돼 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필라델피아’라는 이름으로 로마의 10개 도시 연맹체인 데카폴리스 중 하나로도 성장했다. 

정오를 갓 넘긴 시각인데 다운타운은 차와 사람으로 가득했다. 2세기에 건립된 로마원형극장은 중심 도로변에 있다. 바위산을 그대로 깎아 6,000명을 수용하도록 만든 이 계단식 극장은 보존이 잘 돼 있어 지금도 공연장으로 사용된다.  극장 맞은편 850m 언덕 위에는 시타델이 자리한다. 로마의 옛 성터다.

폐허와 햇빛이 뒤섞여 눈이 부셨다. 도시가 한눈에 내다보이고 석회를 입힌 암만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회색빛을 띠고 어깨를 잇대어 있었다. 로마의 영화를 대변하는 이 문명의 흔적들은 그러나 대부분 자연의 일부처럼 뒹굴고 있다.

우뚝 솟아있는 헤라클레스 신전은 일부만이 복원되었고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도 발굴 중인 채 남아 있다. 시타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우마야드 모스크에서는 사내아이 몇몇이 공차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아니?”“그냥 건물이죠. 며칠에 한 번씩 공놀이 하러 오는 걸요.” 

누가 알았을까. 사그라진 고대의 잔재 앞에서 저속한 감탄을 하고 선 여행자보다, 아이들의 천진한 무관심이 오히려 죽은 도시와 더 오래 친화되리라는 것을.

암만의 다른 얼굴은 저녁 무렵 ‘레인보우 스트리트’에서 보았다. 요르단의 신사동이라 할 만한 이곳의 이름은 거리 가운데 선 레인보우 극장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아랍과 유럽의 분위기가 혼재된 거리에 카페와 디저트 가게, 이름난 레스토랑과 수제버거 집이 자리한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거리 음악공연을 즐기고, 커피와 노트북에 몰두하는 카페 안의 자유로운 모습들은 중동평화 협상의 중재자로 서방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요르단의 개방된 분위기와 높은 교육 수준을 단적으로 느끼게 한다. 

한참을 기다려 얼굴 크기 만한 수제버거를 포장한 후 2디나에 흥정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요르단에서의 시간들을 샤이 한잔과 버거를 베어 물며 꼭꼭 음미했다. 그리고 잊지 못할 광야의 왕국에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요르단*하비비, 슈크란!  

*하비비는 ‘사랑합니다’라는 뜻의 아랍어로 여성이 남성에게 건네는 말이자, 친근한 상대를 부르는 일상적인 표현. 슈크란은 ‘고맙습니다’라는 뜻.

석양이 내려 앉은 와디 럼

●travel info

▶About  YORDAN

요르단의 정식명칭은 요르단하삼왕국The Hashemite Kingdom of Jordan, 아시아 서남부 중동에 자리한 입헌군주제 국가다. 1946년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국가원수는 압둘라 2세 이븐 알-후세인 국왕이다.

수도는 암만, 약 680만명 전체 인구 가운데 90% 이상이 아랍인이며, 대부분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지만 기독교 6%, 기타 종교 2%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된다. 한반도의 절반이 안 되는 크기로 국토의 3분의  2 이상이 사막과 광야인 황무지다.

검문은 북부와 이스라엘 국경이 가까운 곳에서는 철저하게 이루어지지만, 관광지와 다운타운에서는 치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카바와 암만에서 다운타운을 돌아다닐 때도 불안한 점은 없었다. 다만 여성 혼자 밤늦게 다닐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공용어는 아랍어, 영어가 통용되며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3월부터 10월까지는 서머타임으로 6시간 느리다. 반건조성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섭씨 40도가 넘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기도 한다. 햇볕이 강하기 때문에 선글라스와 자외선차단제 등을 준비하는 게 좋다.

전자제품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것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으나, 간혹 콘센트가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에 멀티플러그를 준비하면 좋다. 화폐의 단위는 디나Dinar, 1디나는 약 1,600원이다.

환전은 미화로 한 후 현지에서 디나로 바꾸면 된다. 대중교통은 주로 택시를 이용하는데 외국인들은 흥정을 요하고 미터기를 사용해도 도착시 추가요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비자는 출국 전 한국에서 미리 받거나 현지 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다. 

▶Hotel 
뫼벤픽 리조트 & 스파

사해사해에 자리한 5성급 리조트. 아랍식 전통 가옥 형태의 건물과 정원이 인상적이다. 사해로 통하는 전용 해변과 수영장, 스파 시설에 총 346개의 객실과 9개의 레스토랑을 갖추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고 물 부족 국가인 점을 감안해 호텔의 시트는 이틀에 한 번씩 세탁하지만 큰 불편함은 없다. 
Moevenpick Resort & Spa Dead Sea, Sweimeh, Dead Sea Road, Amman 11180, Jordan  
+962 5 356 1111  
www.moevenpick-hotels.com/dead-sea

와디 럼 캡틴 캠프
와디 럼에 있는 텐트촌이다. 와디 럼에는 캡틴 캠프처럼 베두인들이 관리하는 캠프가 많은데 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메인 캠프 외에도 에코 캠프, 프라이빗 캠프 등을 운영하며 욕실은 태양열 시스템을 이용한다. 사막이라는 특성상 일반 호텔의 샤워시설을 기대해선 안 되고 모기장이 있지만 모기가 많으니 대비하는 게 좋다. 홈페이지와 전화로 미리 예약해야 한다. 
Ad-Disi, Wadi Rum, Jordan
+962 3 206 0710  
www.captains-jo.com

▶Bar 
터틀 그린Turtle Green 

암만의 레인보우 스트리트 영국문화원 맞은편에 자리한 인기 있는 티Tea바. 요르단에서 가장 처음 생긴 티 전문 바로 커피와 다양한 허브티 외에 샌드위치, 디저트 등을 맛볼 수 있다. 2층 규모에 2시간 무료인터넷 서비스가 가능하고, 분위기와 직원들의 서비스도 만족스럽다. 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펼치고 작업하는 등 학생들과 외국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곳. 500cc 잔에 가득 담아내는 차와 커피는 양도 맛도 매력적이지만 가격은 차와 커피가 평균 2.5디나(한화 약4,000원)선. 2015년 트립어드바이저 위너로 선정된 바 있다.
Al-Rainbow Street, Amman, Jordan  
+962 7 9554 0601  
매일 08:00~23:00 (금요일은 10:00 부터)

▶Food
후무스
중동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으로 요르단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다. 병아리콩과 올리브유, 마늘, 레몬 등을 넣어 만든 소스로 고소하고 부드럽다. 빵이나 샐러드 등 다양한 음식과 곁들여 먹는다. 

팔라펠
콩과 곡식, 채소를 으깨 향신료를 넣고 반죽한 뒤 작고 동그랗게 튀겨낸 것으로 중동 사람들의 주식이자 국민 간식. 레인보우 스트리트에는 유명한 팔라펠 맛집이 있다.

1 에티하드 프리미엄 라운지 2 보잉 B787 퍼스트 스위트 3 에티하드 기내 셰프 4 A380 레지던스 바이 에티하드 침실

●하늘에서 경험하는 프리미엄 서비스

요르단으로 가는 길은 비행 시간만 따져도 약 12시간, 대기 시간까지 합치면 약 16시간이다. 염려스러운 긴 여정의 피로를 덜어 준 건 에티하드의 비즈니스석이었다. 장거리 여행에서 비즈니스 클래스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여행자라면 그 편안함의 차이를 수긍하고도 남을 것이다. 더구나 시차라는 복병을 해결해 주는 새벽 출발, 아침 도착의 일정이라면 더없이 감사하다. 

에티하드 비즈니스 클래스의 서비스는 각종 수상경력에서 알 수 있듯 최고의 수준을 갖추고 있다. 원하는 시간에 식사를 제공하고 식음료 담당 매니저가 메뉴 선택을 돕는다. 요르단 여행에서 탑승한 항공기는 A380이나 B787은 아니었지만 서비스는 물론 그 편안한 잠자리도 에어버스 부럽지 않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좌석이었다. 180도로 완전히 젖혀지는 침대 전환식 좌석에 무드 조명, 사이드 램프까지. 지금까지 경험해 본 장거리 비행 중 단연 최고로 편안했다. 아부다비에 도착한 후 곧장 찾아간 프리미엄 라운지 또한 훌륭했다. 무료 와이파이는 물론이고 각종 편의시설과, 15분 식스센스 스파도 받을 수 있고 허기를 달래 줄 다양한 메뉴와, 특히 풍부한 우유거품이 매혹적이었던 카푸치노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에어버스나 보잉 기종의 퍼스트 혹은 비즈니스 클래스라면 서비스는 가히 프리미엄 위에 프리미엄일 것이다. A380의 ‘더 레지던스 바이 에티하드The Residence by Etihad’는 일등석 한 단계 위 등급이다. 항공기 2층 11.6m2 면적 내 전용 거실과 침실, 욕실, 전담 버틀러 및 VIP 컨시어지 팀을 배치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며, 기내식은 프랑스 베르나르도사의 24K 장식 식기세트와 디자이너 베라 왕이 디자인한 웨지우드 크리스털 글래스를 사용한다. 

일등석인 ‘퍼스트 아파트먼트First Apartment’는 객실마다 64인치의 슬라이딩 도어가 장착된 데다 2m의 침대 전환 좌석이 제공된다. A380과 B787 모두에 도입된 비즈니스 클래스 ‘비즈니스 스튜디오Business Studio’는 모든 좌석이 복도와 연결되고 좌석과 별도의 오토만, 넉넉한 수납공간과 노트북과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캐비닛도 마련되어 있다니. 이 정도면 부티크 호텔이라 할 만하다. 

요르단 여행에서 제공받은 비즈니스의 트래블 키트는 여행브랜드 럭스 시티 가이드의 것이었는데 노선 가이드와 함께 천연 페이셜 용품이 담겨 있었다. 아랍의 영감을 살린 그 아부다비 키트의 독특한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기념품으로 소장 중이다. 에티하드항공은 현재 아부다비를 경유해 인천과 암만을 연결하는 노선을 매일 1회 운항한다. 스케줄은 00:40 인천 출발, 05:45 아부다비 도착, 4시간 30분의 대기시간을 거쳐 10:30 아부다비를 출발, 12:50 암만에 도착한다.

에티하드항공 
2003년에 설립된 아랍에미리트 국영항공사 에티하드항공은 아부다비 국제공항을 거쳐 중동, 아프리카, 호주, 유럽, 북미, 남미, 아시아 등 세계 117개 도시 600여 곳으로 49개 항공사와 공동 운항한다. 월드트래블어워즈WTA에서 7년 연속 ‘세계 최고의 항공사’로, 항공 전문지 <에어 트랜스포트 월드ATW>로부터 ‘2016 올해의 항공사’로 선정된 바 있다. 총 122대의 에어버스 A380 및 보잉 787 드림라이너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아부다비 외에도 시드니, 멜버른, 더블린, 프랑크푸르트, 런던 히드로, 맨체스터, 파리, 워싱턴DC, 뉴욕에 프리미엄 라운지를 운영 중이며, 설치 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www.etihad.com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에티하드항공 www.etihad.com, 요르단관광청 www.mota.gov.jo

페트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2km에 이르는 협곡 사이를 통과한다

페트라, 사해, 아카바, 와디럼….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마다 벅찬 숨을 내쉬었다. 미끈대는 소금바다와 붉은 모래의 감촉, 잿빛 바람에 묻혀 오던 베두인의 체취, 때마다 울려 퍼지던 굴곡진 아잔*소리와 사멸한 도시의 거대한 침묵. 모세의 기적처럼 놀라운 희열이, 요르단 왕국이, 순간마다 스며들었다.

*아잔adhān | 이슬람교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육성

암만 다운타운에서 마주한 예쁜 계단 길, 알고 보니 어느 카페에서 꾸민 것이었다

●요르단을 만난다는 것은

“괜찮겠어?”요르단에 간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한결같았다. 요르단과 페트라Petra를 동의어로 각인시키며 고조된 여행자가 그 염려의 이유를 알아채는 데는 몇 번의 눈 껌뻑일 시간이 필요했다.

중동, 아라비아 반도의 북서쪽에 자리한 한반도 절반도 되지 않는 작은 땅. 요르단은 왼쪽으로 이스라엘, 위쪽은 시리아, 오른쪽은 이라크, 아래로 사우디아라비아를 국경으로 접하고 있는, 지도만 보더라도 참 난해한 나라다. 페트라를 잠시 제쳐두고, 지난해 IS에 대한 보복으로 군복을 입고서 직접 공습을 진두지휘했던 압둘라2세 요르단 국왕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터키 제국이 몰락한 후 트랜스요르단으로 출발,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입헌군주국이 된 게 1946년. 아무리 아랍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유대관계를 강조하는 중동지역이라 해도 알다시피 경계를 둘러싼 정치·경제·사회 상황은 복잡하다. 

중동 평화협상과 친親서방 아랍 국가들간 탁월한 중재자 역할을 해 온 요르단 또한 인접국으로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피할 길이 없다. 게다가 세 차례의 중동-이스라엘 전쟁 때 요르단으로 이주한 수백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걸프전 때 이라크와 쿠웨이트에서 이주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최근 시리아 난민들까지 합하면 난민의 규모는 엄청나다. 1948년 45만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지금은 약 680만명이다. 그들이 일으키는 변화는 분명 불안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요르단 정부의 포용력으로 양질의 국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은 이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새로 추가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 대해 아는 거라곤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였다는 것 외, 심지어 구약과 신약 시대의 무대라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리스, 로마, 이슬람 왕조들과 십자군 시대의 유적들은 차치하고라도 성서에 등장하는 지명 가운데 96곳이 요르단에 있는 데도 말이다. 상상과 실재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여정, 요르단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아찔한 현기증마저 일었다. 

뫼벤픽 리조트에서 바라본 사해. 건너편은 이스라엘 땅이다

사해 주변 바위는 소금으로 뒤덮여 있다 

●Dead Sea 사해
죽은 바다의 힘

 차는 사해死海를 향해 달렸다. 좌로도 우로도 삭막한 광야다. 광야. 요르단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텅 비고 아득한 들에는 이따금 양떼가 지나가고 유목민의 허름한 텐트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 잡고 있다.

특급 호텔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사해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은 바다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해수면 아래 400m에 자리한다. 길이 75km, 폭 6~16km. 북부지역은 깊이가 400m에 달하고 남부지역은 5m 정도다. 물이 흘러들기만 하고 빠져나갈 곳 없이 증발되다 보니 염도가 높아 생물이 살 수 없다. 염도가 약 5%인 보통 바다와 달리 사해의 염도는 33%가 넘는다. 대신 많은 유기물이 피부와 신경통에 좋다고 해서 물과 진흙으로 만든 미용 제품은 기념품 일 순위다.

사해는 또한 천연자원의 보고다. 마그네슘과 칼슘염 등 화공 약품과 의약품의 원료로 쓰이는 화학물질이 수억 톤씩 매장돼 있다. 그런 사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언젠가는 그저 소금밭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이 댐을 건설하고 사해로 유입되는 요단강 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이라 가이드 압둘라는 말했지만, 어찌 그뿐일까. 온난화로 지표면은 건조해지고 물줄기는 말라 가는 것을.

호텔에 짐을 풀고 해변으로 나갔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게 사해는 더할 나위 없다. 부력이 높아 저절로 뜬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뛰어들면 곤란하다. 해변 앞 경고문에는 입수 전 주의사항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얼굴은 담그지 말고, 배영자세로 수영하고, 다이빙 하지 말고, 멀리 나가지 말고…’, 결국 ‘상처가 있으면 들어가지 마라’는 항목에 다다라 입수는 포기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몸을 뒤집은 채 사해를 둥둥 떠다녔다. 손으로 움켜쥔 바닷물은 기름처럼 미끈대고 심하게 끈적인다. 괜한 아쉬움에 돌에 붙은 소금 한 덩이를 떼어내 혀에 대보고는 컥컥대며 내뱉는데, 누군가 입을 헹구라고 민물을 건네준다.

“왜 수영 안하죠? 걱정 말아요. 그냥 뜨는 걸요. 내가 당신을 치유해 줄게요.” 빨간 모자를 쓴 안내요원은 진흙까지 건네며 예수의 기적이라도 행할 것처럼 ‘치유Healing’란 단어를 되풀이했다. 그런 그에게 사해를 보고 흥분해 뛰어오다 무릎이 까졌다는 말까지는, 차마 할 수 없었다. 

요단강가의 세례요한교회. 강물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오지만 지금은 많이 말라 있다. 초기 기독교 당시 세례터로 사용된 곳으로 지금도 교회로부터 연결된 계단으로 내려가 침례의식을 행한다

이스라엘 쪽 세례터에서 한 신자가 침례에 앞서 기도를 하고 있다

맞은편 이스라엘에서 치러지는 세례의식을 요르단 세례터의 여행자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Baptism Site 예수 세례터
요단강 위를 흐르는 것들

요르단에는 성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곳곳에 있다. 중요한 곳 중 하나가 요단강이다. 특히 성지순례를 하는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요단강에 들른다.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신약성서의 기록 때문이다. 4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적 생애를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 또 하나의 자연적인 국경을 이루는 요단강은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해 사해로 흘러든다. 251km에 이르는 강의 서쪽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동쪽이 골란고원과 요르단이다. 

요단강 폭은 불과 5m도 되지 않아 보였다. 그 지점을 사이에 두고 요르단과 이스라엘 정부는 각각 세례터를 만들었다. 요르단 쪽 세례터는 ‘알마그타스’, 웨스트뱅크 즉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 세례터는 ‘까스르 엘 야후드’다.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평화협정 전까지 이 일대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요르단이 알마그타스를 개방한 것은 2002년, 이스라엘은 주변의 지뢰를 제거하고 2011년이 되어서야 세례터를 완전히 개방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장소라면 그 강이 다를 리 없을 텐데 유네스코는 지난해 요르단 세례터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 부분은 기독교 내부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찌됐든 오늘날 성지순례 코스의 대부분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짜여지는 만큼 순례자 대부분은 이스라엘 세례터로 몰린다. 도착 때에도 건너편에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로 보이는 이들이 연신 강에 온몸을 담그며 세례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반면 요르단 쪽에서는 여행자 몇몇이 제방에 앉아 그 광경을 신기한 듯 바라보기만 했다. 동쪽인지 서쪽인지 혹은 예수가 요르단의 알마그타스에서 세례를 받았는지, 그에 대한 정확한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없다.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이천년 전 예수가 요단강에 왔었다는 사실이다.

흙이 씻겨 내려와 누렇게 변한 요단강을 뒤로하는데, 가이드 압둘라가 강물을 손에 적셔 머리에 뿌리며 알 수 없는 아랍어로 기도를 해준다. “나는 무슬림이에요. 하지만 요단강에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 것을 보면 이 강물은 분명 성스러운 것이죠. 종교가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요단강은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입니다. 당신과 당신 가정에 축복이 있기를!” 

뫼벤픽 리조트에서 바라본 사해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에티하드항공 www.etihad.com, 요르단관광청 www.mota.gov.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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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 요단 강, 죽음과 생명의 액체
 

바다
바다
1 뫼벤픽 리조트&스파 사해의프라이빗 비치. 머드를 두텁게 바르지않고 입수하면 상당한 강도의 쓰라림을경험한다.

팔라펠
팔라펠
2 현지 식재료를 최대한활용해 싱그러운 맛을 내는 마다바의한 레스토랑. 요르단에 머무는 동안먹었던 음식 중 단연 최고다. 팔라펠이특히 훌륭하다.

꽃
3 흐드러지게 핀꽃이 저무는 햇빛을 받아 한층 선명한색을 띈다.

“물은 싹을 눈뜨게 하고 샘을 넘치게 하는 탄생을 뜻한다.” 바슐라르가 쓴 <물의 꿈>의 일부다. 사해, 죽은바다에도 이 문장을 적용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바다도 아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는 고유명사일 뿐. 지형학적으로는 강우량이 적고 건조한 지방에 형성되는 짠물호수, 즉 ‘함수호’라는 표현을 쓰는 게 맞다. 날은 뜨겁고, 물은 증발하고, 1리터당 275그램의 염분이 잔뜩 남아 지금의 상태가 됐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알려진 것과 다르게 어떤 특별한 미생물들은 이 척박한 조건에서도 생명력을 발휘하며 나름의 생태계를 꾸려간다. 몇 해 전, 바닥 어딘가에서는 지하수가 샘솟는 구멍도 발견됐다. 게다가 염도 높은 물이 지닌 마력은 많은 이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다. 퀸알리아국제공항에 막 도착한 여행자들은 대개 표지판 ‘DEAD SEA’가 가리키는 쪽으로 냅다 달린다. 도로는 아래로, 계속 아래로 기운다. 지대가 해수면보다 400미터가량 낮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구상의 최저지대다. 사람들은 이 낮은 땅에서 나는 질 좋은 머드를 두껍게 바르고 유영하며 묵은 여독을 푼다. 기적적인 부력을 이용해 ‘시체놀이’하는 건 덤이다. 그렇게 한낮의 사해는 늘 북적북적하다. 요르단의 서민들이나 배낭여행객들은 공공 해수욕장을 찾지만, 부유하고 나이 지긋한 이들을 비롯해 한껏 안락과 여유를 즐기려는 향락객들은 대부분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를 애용한다. 365일 중에서 330일은 쨍쨍하다는 고운 볕 아래, 까르르 웃고떠드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못내 ‘죽은 바다’라는 이름이 섭섭하게 느껴진다. 어느덧 그림자는 사라지고 ‘사해의 기적’ 놀이도 그만두는 시간, 멀리 이스라엘 땅으로 해가 넘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 바라보는 일몰은 어쩐지 더 아득하고 몽롱하게 느껴진다. 약동하는 지구의 맥박이 느껴지는 듯도 하다.이 일대는 구약성서의 주 무대다. ‘성지순례’라는 거창한 명목을 붙이지 않고도 이곳의 고대사를 따라가며 유적을훑는 일은 퍽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베다니Bethany를 빼놓을 수 없다. 로마 교황청에서 공식 지정한 요르단의5대 성지 중 하나로 그 유명한 ‘요단 강Jordan R.’의 실체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요단 강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향하던 길이며, 신약에서 세례 요한이 물세례를 거행한 무대이자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성소다. 죄를 씻거나, 속세를 떠나 천국으로 건너가거나, 옛 자아가 죽고 거듭나는 공간적 배경이자 상징으로성경에 자주 등장해왔다. 지리적으로는 레바논의 헤르몬 산에서 발원해 갈릴리 호수를 거쳐 팔레스타인, 사해까지흘러 들어간다. 사해가 죽음의 물이라면, 요단 강은 ‘이’와 ‘저’를 잇는 영험한 물이다.눈여겨봐야 할 것은 세례 터가 요단 강을 사이에 두고 한편은 요르단, 반대편은 이스라엘 영토로 나뉜다는 사실.이쪽의 세례 터는 낡아빠진 목재로 얼기설기 지었는데, 저쪽의 세례 터는 흡사 신전의 위용을 갖췄다는 게 상당한아이러니다. 가이드 압둘라는 일행들의 머리에 물을 튕기면서 아랍어를 읊조렸다. ‘당신을 축복한다’는 뜻이란다.그는 무슬림이지만 기독교에 대한 적의라곤 눈곱만큼도 없고, 이곳 사람들 대부분이 그와 마찬가지다.사해의 이웃 도시는 마다바Madaba다. 시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드는 건 보랏빛 꽃망울을 한창 틔운 자카란다 나무다. 온화하고도 향기로운 첫인상. 자국 내에서는 부유한 기독교도들의 소도시이자 유럽 여행객들이 유독 즐겨 찾는 여정지, 그리고 비잔틴 제국과 우마이야 왕조 대에 남긴 모자이크 지도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도시의랜드마크인 성 게오르그 성당 바닥 한가운데를 내려다보면 팔레스타인부터 나일 강 권역까지 그려낸 그림을 만난다. 기원전 6세기, 사해에서 요단 강으로 역류하는 물고기와 가젤을 겨누는 사막의 사자, 예리코의 종려나무까지 모자이크 조감도로 섬세하게 표현한 이 지도는 놀랍게도 20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약 3분의 1 정도를 보존하고 있다. 실컷 구경했다면 카페에 앉아 걸음을 쉬어갈 때. 향이 좋은 레몬민트는 요르단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음료로, 절인 레몬청에 민트잎을 잘게 빻아 넣어 만든다. 그 싱그럽고 달큼한 액체의 맛, 혀끝에 생생하다.


해변
해변

4 사해를 마주한 리조트의야외 수영장. 소금물에 입수하는 게두렵다면 이곳에서 유영하며 기분을내도 좋다. 물론 자유자재로 붕 뜨진못한다.
 
 

나귀
나귀

1 페트라에서의 평화로운 풍경.사실, 나귀를 타고 있는 이들은 대개능글맞은 호객꾼이다.
 

지프투어
지프투어

2 와디럼을달리는 지프 투어. 해가 저물기 2시간전에 떠나면 그림보다도 아름다운일몰을 마주할 수 있다.
 

캠프
캠프

3 캡틴스데저트 캠프의 아침 풍경. 오전에는예상 외로 햇살이 뜨겁지 않다.
 

아랍식 웰컴 티
아랍식 웰컴 티

4 와디럼의 기념품 노점에서 만난한 여인. 전통 수공예품을 가지런히정리하는 중이다. 5 지프 투어 중 들른한 천막 카페에서 달콤하고 따뜻한아랍식 웰컴 티를 마셨다.
 

와디럼의 노점상
와디럼의 노점상

4 와디럼의 기념품 노점에서 만난한 여인. 전통 수공예품을 가지런히정리하는 중이다. 


2페트라 & 와디럼, 모래바람이 이끄는 대로

데저트 하이웨이Desert Highway를 타고 남하한다. 가도 가도 낙타, 광야, 다시 낙타와 광야만으로 이뤄진 디오라마 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하릴없이 사막 여행의 주제가를 꺼내 듣는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이어진 사막 길, 아마 네가 있는 곳보다는 나은 곳이겠지.…” 제베타 스틸의 먹먹한 음성을 듣고 있자니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나르시시즘에 빠진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고, 종착지도 정해져 있으면서. 다만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이어진 사막길’이라는 표현만은 맞는지도 모른다. 이 길 끝에 이르면, 어디에도 없는 장밋빛 도시 페트라Petra가 모습을 드러낼 테니. 황량한 사막을 당대의 첨단도시로 탈바꿈한 건 나바테안왕국의 빛나는 문명이다. 향료 무역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이들은 홍해와 지중해를 건너며 이곳을 거점 삼았다. 결국 기원전 6세기, 수도인 페트라를 이 자리에 건설했는데 이후 로마 제국이 왕국을 집어삼키면서도 개발을 계속이어갔던 것이 지금의 모습에 이른다. 한동안은 대지진으로 흙 속에 묻혀 있었다가 19세기 들어서야 스위스 출신의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재발견됐고, 2007년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올랐다. 그 사이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에 등장해 위용을 떨치기도 했다. 페트라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접한 이들은 거대한 사원 알 카즈네Al Khasneh만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막상 가서 보면 입구부터 알 마드바흐, 왕실의 무덤, 목욕탕, 원형극장, 외곽의 알 데이라 사원까지 아우르는 광활한 규모를 지녔다. 아마 다 둘러보려면 꼬박 이틀은 족히 걸릴것이다. 낙타 위에 올라 편안하게 곳곳을 누비고 싶다면 기꺼이 호객에 응해도 좋지만, 헥헥거리면서도 협곡 통행로인 시크As-Siq를 따라 두 발을 놀리는 것이야말로 페트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여행법이다.유네스코의 활동가들이 우회로를 만들어놓고 시크의 일부를 재건하는 모습은 이곳에서 목도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인데, 걷지 않았다면 그대로 지나쳤을 것이다. 만약 뙤약볕을 피해 쉬려거든 어느 건물에나 들어가면 그만이다.빌라든, 무덤이든, 사원이든, 어디나 곱디곱게 비어 있다. 잠자코 뒤통수를 누인 채 ‘텅 빈 자리’에 대해 생각한다.이곳의 빈자리는 공허감보다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무’의 상태다.다시 데저트 하이웨이다. 아래로, 좀 더 아래로 향한다. 유목민들의 땅, 와디럼Wadi Rum으로 간다. 이곳의 주인은베두인이다. 베두인이란 도시 바깥에 사는 이들을 지칭하는 아랍어 ‘바드우’에서 유래한 말로 사막에 사는 아랍계유목민을 뜻한다. ‘아랍’이라는 단어 자체가 베두인을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흘러나왔다는 설도 있다. 와디럼의 한캠프에 여장을 푼 뒤 잘생긴 베두인 가이드 청년을 따라 지프 선셋 투어에 나섰다. “넌 언제부터 여기서 일했니?”앳된 얼굴을 보고 물었더니 “일한 적 없어. 여기 살 뿐이야”라는 답이 돌아온다. 영어가 익숙지 않은 두 사람의 대화는 직관적이고 집약적으로 흘러간다. 우문에 현답이란 이런 걸까. “배고파.” “차를 마시자.” 달고 향긋한 민트티를 쉼 없이 따라준다. 이곳에서의 민트 티란 수분과 당을 함께 보충해주는 약물이다. “맛있네. 어떻게 만들어?”“응, 립톤 티에 설탕을 녹이고 애플민트를 넣어.” 이렇게 단순하고 속세적인 레시피였다니, 웃음이 픽 새어 나온다.아라비아의 통일에 공을 세웠다던 그 유명한 영국 장교 ‘로렌스’가 살았다는 집, 나바테안들이 그린 암각화, 그리고온갖 기암괴석들을 다 둘러본 뒤에 지프가 마지막 당도한 곳은 해넘이를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탁 트인 절벽앞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한 자리씩 차지한다. 누군가는 셀피를 촬영하고, 누군가는 연인의 어깨에 볼을 비비며 해가 떨어지는 광경을 본다. 새빨간 하늘과 새빨간 땅이 로스코의 그림처럼 스며드는 순간, 긴장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마침 모래바람도 불어온다. 그리고 어느덧 밤. 광공해 없는 새카만 하늘엔 달이 해 노릇을 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형형한 달빛이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궤적이 훤히 보일 정도다. 다만 이 밤의 끝자락은 어디인지 보이질 않는다. 영원히 붙들고 싶었는데.



<2016년 7월호>


시크를 통과하면 그리스 건축양식의 알카즈네Alhkazneh가 자태를 드러낸다

●Petra 페트라
상상 이상의 신비 

요르단의 국보 1호인 페트라는 여행의 백미다. 물론 영화  <인디아나 존스>나 <트랜스포머>가 이곳에서 촬영됐다는 점도 명성에 한몫했을 테지만, 페트라의 가치는 그런 유명세로 저울질 할 차원은 아니다.

베두인들은 페트라에서 여행자들에게 낙타나 당나귀를 태워 주고 생계를 이어 간다

그리스어로 ‘바위’를 뜻하는 페트라는 돌산을 조각해서 만든 거대한 도시다.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붉은 도시’라고도 부르며, 나바트 문명의 중심지로 로마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크게 번성했다. 나바트인들에 대한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 다만 기원전 6~7세기경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 지역으로부터 이주한 유목민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들은 토착민이었던 에돔인들과 함께 페트라를 건설했고, 교역의 중심지로 키웠다. 기원전 2세기에는 페트라를 수도로 한 나바트 왕국을 세웠고 그리스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받아 200년간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106년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해 정복당하고, 이후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페트라의 암석 건물들은 교회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7세기경 지진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1812년 스위스 탐험가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에 의해 다시 존재를 드러냈다.

왕의 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남북으로 뻗은 왕의 대로King’s Highway는 고대 무역상들의 교역로로 지금은 시리아와 이집트를 연결한다. 이스라엘 국경이 가까워지다 보니 세 번의 검문을 거쳐 와디무사에 도착했다. 페트라에는 숙소가 없어서 여행자 대부분은 약 2km 떨어진 와디무사 지역에 여장을 푼다.

바위산 깊이 숨어 있는 페트라로 가기 위해서는 하늘을 가리는 거석을 가로지르는 좁은 협곡 ‘시크’를 2km쯤 걸어야 했다. 페트라 입성에 이보다 더 우아한 전주는 없을 것이다. 높게는 100m가 넘는 바위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웅장하고 기묘하며 온통 붉다. 암석 아래로는 물을 끌어들였던 수로의 흔적도 보인다.

시크가 끝날 무렵, 갑자기 바위 사이로 시야가 환해지면서 경이로운 건축물이 고개를 내민다. 카즈네Al Khazneh다. 베두어로 보물창고를 뜻하는 카즈네는 기원전 1세기 그리스 건축양식의 건물이다. 높이 43m, 너비 30m의 2층 구조로 전면에 6개의 고린도식 석주가 서 있고, 맨 윗부분에 항아리 형태의 조각이 있는데 그 속에 나바트인들이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전설로 인해 보물창고라 불린다. 실제로 카즈네는 왕의 무덤과 신전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카즈네의 감동은 시작에 불과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수많은 돌무더기와 광대한 유적들이 펼쳐졌다. 원형극장은 7,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40층의 계단식 건축물로 나바트인들이 종교의식을 치르고 로마인들은 공연장으로 사용했다. 맞은편에는 바위에 구멍을 뚫어 만든 무덤들이 있는데 1985년 페트라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베두인들이 살았었다. 좀 더 들어가면 거대한 왕족의 무덤도 있다. 

카즈네를 비롯한 건축물들의 내부는 의외로 단순하다. 돌을 파내 직사각형의 방을 만들고 내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어 암석 고유의 색과 무늬가 드러난다. 페트라 유적은 지금까지 확인된 곳만 4,000여 곳, 아직도 상당수가 발굴 중이고 발굴된 것들 중에도 용도를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개방된 것은 전체의 4분의 1. 그 유적만 얼핏 후회 없이 본다 해도 2~3일은 걸린다니, 1,000년 넘게 잠자던 고대도시와의 몇 시간 대면이 아쉬운 여행자의 발길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왕족들의 무덤. 내부는 텅 비어 있다

페트라에는 바위산을 깎아 만든 건축물들이 산재한다

무덤으로 사용됐다는 동굴들은 이후 베두인들이 거처로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살지 않는다

●Wadi Rum 와디 럼
붉은 사막에서의 하룻밤

페트라에서 남쪽으로 60km, 와디 럼으로 간다. 와디 럼은 사막이다. 3억년 세월을 견뎌 온 그 사막은 그러나, 붉은 모래 위로 바위산들이 솟아 있고 낮은 풀들이 자라는,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사막이다. 자연보호구역인 동시에 유네스코복합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와디’는 비가 오면 강을 이루고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마른 계곡이 되는 땅이고, ‘럼’은 높다는 뜻이에요. 와디 럼은 원래 바다였어요. 오랜 시간 침식과 융기를 거쳐 산과 협곡, 사막이 생겨난 거죠. 이곳은 정말 특별해요. 왜인지 알아요? 이런 바위산과 어우러진 붉은 사막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두바이에서도 볼 수 없죠.” 압둘라 가이드의 말처럼 와디 럼이 시작되는 순간 고개를 내저었다. 이토록 진기하니 오죽하면 영화 <마션>에서 지구 아닌 화성이 되었을까. 

오늘의 잠자리는 이 붉은 사막 위 여행자 캠프다. 베두인이 안내해 준 텐트 안에는 기대조차 안 했건만 침대며 화장실이며 심지어 욕실용품까지 비치돼 있었다. 안도감과 왠지 모를 씁쓸함이 교차했다. 

오후 5시, 일몰을 보기 위해 개조한 사륜구동 지프 뒷좌석에 올랐다. 와디 럼을 찾는 여행자들은 낙타와 지프를 이용해 사막투어를 하거나 트레킹이나 암벽 등반을 즐긴다. 희롱하듯 천천히 혹은 빠르게 지프를 운전하는 베두인의 박자에 따라 사막이 오르내리고, 갑자기 멈춘 붉은 파도 같은 모래언덕 위에는 바람이 윙윙대며 노래를 불렀다. 시리아와 레바논, 팔레스타인으로 가기 위해 이곳을 거쳐 갔다는 카라반들이 남긴 흔적들은 곳곳에 암벽화처럼 남아있었다. 

지프가 협곡 사이 텐트촌 앞에 다다랐다.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샤이(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터번을 두른 베두인은 화톳불 위 시커멓게 그을린 주전자를 기울여 익숙한 몸짓으로 샤이 한잔을 건네준다. 달고 향긋한 차가 여행자의 외로움을 뜨겁게 쓰다듬어 주었다. 일몰이 시작될 무렵 바위산에 올랐다. 주위가 점차 금빛으로 물들고 저기 지평선으로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침묵했고 샤이의 빛깔을 머금은 황혼은 광대한 사막을 타고 여행자의 말초신경까지 흘러들었다. 

텐트로 돌아온 때는 모래가 식고 길게 드리운 그림자도 사라질 무렵이었다. 시원한 모래 위를 맨발로 걷는 동안 저녁식사 준비를 끝낸 주인장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양고기, 닭고기, 감자, 당근, 쌀 등을 넣고 모래 속에서 숯의 열기로 두 시간을 쪄낸 전통음식 자릅Zarb은 먹음직스러운 만큼 맛도 좋았다.

모기떼로 쉬이 잠들지 못했다. 텐트 밖으로 나와 올려다본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동서남북 번갈아 고개를 젖히고 서 있었다. 몇 시인지 모를, 알 필요도 없는 사막의 밤이 깊어 가고 멀리서 늑대 울음이 들려왔다.

새벽녘 텐트 밖 하늘 위엔 별이 가득했다

붉은 모래와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와디 럼의 풍광

와디 럼에는 과거 카라반들이 남겨놓은 암벽화가 곳곳에 남아있다

여행자들을 위한 사막 위의 휴게소

뜨겁고 달콤한 샤이 한잔은 와디 럼의 낭만을 북돋운다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에티하드항공 www.etihad.com, 요르단관광청 www.mota.gov.jo

지난 2008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연인이던 칼라 브루니와 주말 여행을 떠난 곳. 같은 해 10월, 성악가 파바로티의 추모 공연이 열린 곳.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에 16번째로 등재된 곳.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곳. 그리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 3-최후의 성배>와 <트랜스포머>의 배경이 된 곳. 빙고! 요르단의 페트라.

사막에 꽃 피운 붉은 ‘바위 왕국’

페트라는 요르단 남서부 내륙 사막지대의 해발 950미터 고원 바위산에 남아 있는 도시유적이다. 향료무역으로 이 일대를 장악했던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고대 도시다. 예로부터 이곳은 사막의 대상이 홍해와 지중해를 향해 갈 때 반드시 거치는 교역의 중간 기착지였다. 그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들은 사막의 한가운데에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 틈새에 도시를 건설했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들어간 곳에 극장과 목욕탕, 완벽한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도시가 숨어 있다. 한동안 번성하던 나바테안 문명은 2세기께 이곳을 점령한 로마가 교역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급속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도시 전체가 흙으로 묻혀 있다가 19세기 초반에야 재발견된 곳이다.

페트라는 기원전 7세기부터 2세기까지 이 지역에 살던 나바테안들에 의해 해발 950m에 건축된 산악도시이다.

좁고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협곡 ‘시크’

지구에는 그런 곳들이 있다. 사진이나 TV를 통해 몇 번을 들여다본다 해도 직접 그 앞에 서기 전에는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없는 곳들. 페트라의 아름다움 역시 그렇게 간접적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사막으로 달려와 붉은 바위산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전에는, 그 뜨거운 바위를 두 손으로 어루만져보기 전에는 잘 전해지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페트라의 빼어남은 바위투성이 모래언덕과 가파른 협곡에 둘러싸인 그 지리적 조건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페트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좁고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협곡 ‘시크(As-Siq)를 통과해야만 한다. 길이 1.2킬로미터의 시크는 지각변동에 의해 거대한 바위가 갈라져 만들어진 길이다. 좁게는 2미터까지, 높게는 200미터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바위틈인 시크는 페트라의 미모에 걸맞은 신비로운 입구가 아닐 수 없다.

길은 시크에서 시작된다. 코끼리를 휘어감은 보아뱀처럼 강하게 굽이치는 시크에는 페트라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로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2000년을 건너온 테라코타 파이프도 눈에 띈다.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만든 고대 세계로 가는 통로를 걷는 일은 페트라 걷기의 하이라이트다. 이 길의 끝에서 마주치게 될 세계를 상상하며, 좁은 협곡 사이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수로에 걸터앉아 다리품을 팔기도 하며, 달팽이의 속도로 시크를 걷는다 해도, 좀 이르다 싶을 무렵, 알 카즈네가 바위틈 사이로 그 얼굴을 드러낸다.


좁은 협곡 사이에 길을 낸 것은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요르단의 문화 아이콘 ‘알 카즈네’

너비 30미터, 높이 43미터의 알 카즈네는 페트라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건물이자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다. 기둥이나 벽을 세우지 않고 오로지 바위를 정교하게 다듬고 파내서 만든 알 카즈네는 페트라의 상징이다. 6개의 원형 기둥이 받히는 2층 구조로 BC 1세기경, 헬레니즘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알 카즈네’는 보물창고란 뜻인데, 화려한 외부와 달리 내부는 텅 비어 있어 나바테아 왕 아테라스 3세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알 카즈네의 감동을 오롯이 담은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면 오른쪽으로 왕실의 무덤군이 나타난다. 바위를 뚫어 만든 거대한 무덤들을 둘러본 후에는 맞은 편의 알 마드바흐(Al-Madbah)로 건너가자. 40분 남짓 가파른 계단을 올라 언덕 꼭대기에 서면 페트라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알 마드바흐에서 내려오면 원형극장을 거쳐 도시의 중심지를 향해 그늘 한 점 없는 길을 걸어야 한다. 열주대로를 따라 걸으며 목욕탕과 사원, 극장과 왕궁과 비잔틴 양식의 교회를 둘러보자.

기둥과 벽을 세우지 않고 오로지 바위를 정교하게 다듬고 파내서 만든 '알 카즈네'

1km 남짓한 시크 옆으로는 거대한 붉은 사암이 요새처럼 가로막는다.

페트라를 온전히 걷기 위해서는

사막의 열기에 슬슬 지쳐가지만 아직 가야 할 곳이 남아있다. 시가지 끝의 식당에서 목이라도 축이며 잠시 쉰 후 다시 신발끈을 고쳐 묶자. 800개의 계단을 올라 바위절벽길을 지나면 거대한 사원 알 데이르(Al-Deir). 알 카즈네와 비슷한 디자인이지만 더 웅장한 규모의 사원이다. 늦은 오후, 사위는 햇살을 받아 점점 더 붉은 꽃으로 피어나는 사원을 지켜보며 사막에서 보낸 긴 하루를 마감하자. 페트라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낸 가장 경이로운 세계다. 바위를 깎고 다듬어 인간이 만들어낸 건축물 못지않은 이 세계의 또 다른 주인은 자연이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바위들의 붉은 소용돌이와 태양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마법적인 바위 색은 이 도시에 ‘장미의 도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페트라를 걷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하고, 강해야만 한다. 페트라의 다양한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서 늦은 오후까지 사막의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는 강한 체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페트라는 나바테안 사람들이 건설한 도시 전체 중 4분의 1에 해당한다.

페트라의 밤을 수놓는 촛불들

코스 소개
요르단의 보물로 불리는 페트라는 수도 암만에서 서남쪽으로 1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함께 황량한 사막에서 피어난 찬란한 문명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현재도 발굴이 진행 중이며 전체 유적의 4분의 1만이 발굴된 정도라고 한다. 유적지 입구에서 서쪽 끝 알데이르까지의 거리는 5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페트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하루로는 짧다. 최소한 이틀 티켓을 구입해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기를 권한다.

찾아가는 길
요르단까지는 직항편이 없으므로 카타르 도하나 두바이, 인도 델리를 경유해야 한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페트라 관문 도시 와디무사까지는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여행하기 좋은 때
가장 좋은 시기는 10월 중순에서 11월 말이다. 5월부터 9월까지는 가장 더운 시기이므로 피하자.

여행 TIP
걷기 편한 신발을 신고 물과 간식을 준비해 가자. 단체 관광 버스들은 보통 9시 전후로 나타나므로 페트라를 조용히 즐기고 싶다면 일찍 서두르자. 시크를 비롯한 페트라의 주요 관광지들은 침묵 속에서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한다. 알 카즈네는 이른 아침이 가장 예쁘고, 알 데이르는 늦은 오후가 가장 좋다.

 

 

요르단 Jordan

이슬람과 그리스·로마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곳,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성지(聖地)가 공존하는 곳. 아라비아 반도의 작은 왕국 요르단 이야기다. 남한 만한 크기의 이 나라는 고대 유적의 집합소다. 사해(死海)와 홍해(紅海)가 선사하는 자연의 신비도 느낄 수 있다.

요르단 수도 암만 남쪽으로 320㎞ 떨어진와디 럼 사막에선 하늘로 수백m 솟은 바위산이 불쑥 나타난다. 낙타를 모는 베두인족이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전통식 유목 생활을 한다. / 네이버 블로거 김기환씨 제공
언덕의 도시, 암만

요르단의 수도 암만은 황톳빛 언덕의 도시다. 해발 850m에 위치한 이 도시의 옛 성터 '자벨 알 깔라'에 오르니, 맞춘 듯 황토색으로 칠한 직사각형 집들이 언덕에 들어찬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이 도시의 옛 이름은 '필라델피아'다. 정복자 필라델푸스(BC 285~246년 재위)의 이름을 땄다. 유적도 그리스·로마 양식이다. 성터 안에는 헤롯 대왕이 헤라클레스에게 바친 신전과 비잔틴식 성문이 남아 있다. 거대한 헤라클레스 동상은 손가락 네 개와 팔꿈치 일부만 남아있는데, 그 크기가 어른 키만 하다.

시내에는 거리마다 이슬람 모스크가 있고, 사방에서 이슬람 경전인 코란 읽는 소리가 들렸다.

유명한 디저트 집인 '하비바(Habibah)' 앞 길거리에선 사람들이 빈대떡같이 생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코나파'라고 하는 간식인데, 염소 치즈에 설탕과 피스타치오(견과류의 일종) 등을 뿌려 달게 만든 것이다. 하나에 1JOD(약 1600원) 정도 하는데, 양이 제법 많아 시내 관광 후 출출한 배를 달랠 수 있다.

요단강을 사이로 나누어지는 요르단과 이스라엘 국경지대. 침례를 받고 있는 성지순례객들 뒤로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보인다.
중동의 전통 요리인 만샤프도 먹어보자. 밥과 볶은 땅콩, 삶은 양고기가 커다란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뜨거운 요거트를 뿌려 먹는다. 오른손으로 밥을 쥐고 꼭꼭 주무른 후 먹는데, 양이 많아 5~6명이 먹어도 충분하다. 느끼하고 맛이 밍숭맹숭해 한국 입맛과는 거리가 있다.

하늘과 별과 바람, 페트라와 와디 럼

높이 200m의 협곡에 갇힌 폭 3~4m의 깜깜한 길을 따라간다. 머리를 들면 협곡 사이에서 별이 쏟아질 듯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인 고대도시 페트라 유적지의 '야간 개장'격인 '페트라 바이 나이트(Petra by night)'에서 이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 깎아지른 듯한 협곡 시크(siq) 사잇길에 3m 간격으로 놓인 촛불을 따라 1㎞ 정도 가다 보면, 갑자기 길이 확 트이면서 1800여개 촛불이 불을 밝힌 유적 알 카즈나(al khazna)가 나타난다. 알 카즈나는 신전이나 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대 건축물로, 붉은 사암 암벽의 안을 파서 만들었다.

낭만적인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꿈꾼다면,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촬영지인 와디 럼 사막의 베두인족 텐트를 추천한다. 사막 한가운데 마련된 터라 전기도 없고 2인용 텐트에는 잠금쇠도 없다. 그러나 사막에 누워 쏟아질 듯한 은하수를 보고 있노라면 하룻밤의 불편함쯤은 감수할 수 있다. 베두인족이 제공하는 '아라빅 커피'의 향도 즐길만하다.

요르단 남부 고대도시 페트라의 신전(혹은 무덤으로 추정)‘ 알 카즈나’의 야경. / 네이버 블로거 김기환씨 제공
성지와 국경의 공존, 요단강

모세가 숨을 거둔 느보산(해발 805m)에서 서쪽으로 가면 요르단의 상징인 요단강이 나온다. 폭이 10m쯤 되는 우리나라 실개천 수준인데, 여기서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강 건너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 병사와 요르단 군인이 총을 들고 마주 보고 있다. 서로 이야기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각국의 성지순례객이 군인들 사이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쪽 편에선 요르단에 온 서양인 성지순례객들이 요단강으로 뛰어들어 몸을 담그고, 저쪽 편에선 이스라엘에 온 중국인 성지순례객들이 침례를 받았다. 강을 넘어가면 불법이다.

사해와 마인 온천, 홍해에서의 휴양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인 사해는 요르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사해에 몸을 담그니, 구명조끼 없이도 저절로 몸이 둥둥 떴다. 보통 바다 염도의 약 5~6배인 사해는 피부병이나 류머티즘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해에서 동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한 마인 온천은 '폭포 온천'이다. 낮은 산에서 섭씨 55도의 폭포가 떨어지면서 알맞게 식어, 폭포 아래에 고인 물로 천연 스파를 즐길 수 있다. 2000년 전 헤롯왕이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요르단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 도시 아카바는 내륙 국가인 요르단에서 유일하게 해상(홍해)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겨울에도 수영이 가능할 만큼 날이 따뜻해 휴양 리조트들이 자리 잡고 있다.

여·행·수·첩

▲환율:
 1요르단 디나르(JOD)=약 1600원

▲항공·여행상품: 서울~요르단 직항은 없다. 에티하드항공은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인천~암만 연결편을 운항한다. 총 비행시간은 환승·대기 시간을 포함해 13~16시간 정도. 모두투어, 롯데관광, 자유투어, 하나투어 등의 5~10박 패키지 여행상품 가격은 230만~349만원 정도.

▲입국비자: 입국 시 암만공항에서 20JOD를 내면 바로 발권해준다. 유효기간 1개월.

▲요르단관광청: visitjordan.com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관광왕국 요르단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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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바의 사해 근처 해발-265m의 깊은 계곡에서 솟구쳐 떨어지는 마인의 온천폭포(왼쪽 사진). 사진은 이곳의 유일한 에바손리조트로 세계 최고 수준의 식스센스 스파도 함께 있다. 예수가 세례자요한으로부터 강물로 세례를 받은 곳으로 확인된 웅덩이 터(오른쪽 사진). 요르단강에서 50여 m 떨어진 곳으로 지붕을 씌운 곳은 비잔틴시대까지 이곳에 세워진 기념교회 유적이다.

중동 국가 중 유일한 입헌군주국 요르단. 정확히는 ‘요르단 하심왕국’으로 현재는 1999년 타계한 후세인 1세 왕의 뒤를 이어 아들 압둘라 2세가 통치한다. 현재와 같은 중동의 국가 판도가 형성된 건 제1차 세계대전 때다. 당시 아랍민족은 오토만제국(터키) 치하에 있었다.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아랍 대봉기(Great Arab Revolt)가 성공한 1920년. 그때까지 이들은 터키 지배 아래 제각각 부족으로 흩어져 살았다. 그런 와중에 가장 먼저 국가체제를 갖춘 곳이 요르단이다. 당시는 토후국 수준이었지만 아랍 대봉기 직후 영국으로부터 가장 먼저 독립을 인정(1920년)받았다. 아라비아반도의 첫 독립국이 된 데엔 배경이 있다. 터키를 축출하는 아랍무장봉기가 하심왕국의 국조(國祖)인 샤리프 후세인 빈 알리(1854∼1931)의 주도로 이뤄져서다. 이 역사는 1962년 개봉된 명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감독 데이비드 린)에 생생이 그려졌다.

우리가 요르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적다. 그런 만큼 여행지로서 매력에도 무지하다. 그간 다녀간 여행자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스라엘을 목적지로 한 성지순례 중에 잠깐 들르는 수준이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공유한 사해도 비슷하다. 절반(동쪽 연안)이 요르단 것임에도 관광은 주로 이스라엘 쪽에서만 이뤄졌다. 그나마 최근엔 사막의 고대도시 페트라(세계유산) 덕분에 요르단을 기억하는 이가 늘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여행 마니아층에 국한되다 보니 우리에게 요르단은 아직도 미지의 여행지다.

그 요르단을 여행전문기자인 나도 지난달 처음 찾았다. 결론은 긍정적이다. 요르단은 비록 사막의 황무지지만 나라 전체가 관광자원이었다. 여행 테마도 다양했다. 사막투어부터 의료와 건강(사해), 유적답사(성지와 고대 로마 도시)까지. 요르단은 살아 숨쉬는 황무지다. 사막을 적시는 요르단 강과 강이 형성한 거대한 계곡 덕분이다. 해수면(해발 0m)보다 100∼200m 낮은 이 저지대는 기온이 높아 바나나 등 열대과일 플랜테이션의 적지다.

게다가 나라 전체의 토질이 비옥한 테라로사다. 그래서 올리브를 비롯해 과일과 밀 등이 풍성하게 난다. 이런 농경지와 거주지는 대부분 해발 1000m 내외의 산등성에 자리 잡았다. 거기엔 용수와 식수가 넉넉히 공급된다. 기후도 사계절이 분명하고 사람 살기에 적당해 여행하기에도 쾌적하다.

요르단은 사막 땅이지만 바다도 2개나 있다. 사해와 홍해인데 모두 국가 주도 관광개발사업으로 유럽 휴양객이 주로 찾는 럭셔리 휴양지로 변모 중이다. 이곳을 찾는다면 사막과 바다를 동시에 즐기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요르단엔 유적도 많다. 이곳은 지구 마지막 빙하기(1만 년 전) 이후 인류의 발전 역사가 고스란히 발견되는, 보기 드문 곳이다. 8000년 역사의 세계 최고(最古)도시인 예리코(이스라엘)가 요르단 강 건너편인 것을 안다면 요르단에서 무엇을 만날 수 있을지 가늠될 것이다. 페트라만 해도 그렇다. 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에 흥성했던 고대도시다. 수도 암만에서 50km 북쪽의 야라슈는 로마 바깥에서 가장 로마를 빼닮은 고대도시다. ‘요르단의 폼페이’라고 불릴 만큼 보존 상태도 완벽해 요르단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성지순례여행 코스로도 요르단은 적지다. 성지순례는 이미 2000년이나 지속된 올드테마 여행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요르단에서는 다르다. 회개를 통해 곧 우리 앞에 나타날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를 하라고 외치던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예수가 세례를 받은 현장이 요르단 강안의 베타니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불과 12년 전으로 보통사람 예수가 그리스도(구원자)로 처음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이벤트이자 예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의 현장이다. 그런 만큼 순례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근방에는 세례자 요한이 실제 살았던 토굴과 예언자 이사야가 승천한 곳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은 물론이고 하나님에 의해 불로 벌을 받은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 그때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으로 변한 것으로 기록된 롯의 아내 소금 상, 출애굽의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과 가나안 땅을 육안으로 처음 목도한 느보 산 역시 여기다. 더불어 2, 3세기의 초기 기독교 교회와 지구상에서 교회로 지어진 가장 오랜 건축물도 있다.


즐길거리도 다양하다. 와디럼 등 사막에서는 캠핑을 하며 사륜구동차량이나 낙타 등에 올라 사구를 찾아 사막을 가로지르는 사막사파리도 즐긴다. 홍해 연안은 최근 고급 리조트 타운이 들어서 쾌적한 휴식을 보장한다. 이곳의 맑고 투명한 바다에서 스노클링과 다이빙 중에 즐기는 산호더미의 수중 풍경은 아름답기로 세계 최고다. 사해도 ‘암만비치’ 개발을 통해 개념의 세계 최고급 휴양리조트 타운으로 변신했다. 여기에는 켐핀스키 뫼벤픽 등 고급 리조트 호텔이 들어서 수준 높은 휴양문화를 선사한다. 사해 부근 마다바에는 온천수가 폭포를 이뤄 쉼 없이 쏟아지는 거대한 온천계곡(마인)까지 있는데 역시 세계 최고의 식스센스 스파가 에바손리조트 호텔과 더불어 이곳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귀중한 요르단의 관광자원은 친절한 사람들과 깔끔한 건강개념 음식이다. 베두인족은 아랍의 사막 전역에 퍼져 사는 부족으로 요르단에도 많다. 이들의 환대문화는 아주 독특하다. 사막에 치고 사는 텐트를 찾는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물과 음식을 제공하고 재워준다. 요르단인의 친절함은 여기서 비롯된다. 음식도 건강식이다. 수출할 만큼 풍부한 올리브유와 요구르트가 주요 양념이다. 주요 식재료인 야채와 과일도 테라로사 토질에서 사철 풍부하게 생산된다. 육류로는 양고기 쇠고기 닭고기를 주로 먹는데 역시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특히 멘사프 사지야 같은 전통 양고기 요리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요르단은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다. 폭동이 끊이지 않는 시리아나 이집트와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여행하기에도 위험요소가 전혀 없다. 이런 안정은 압둘라 2세 국왕에 대한 국민의 깊은 충성심과 신뢰감에서 왔다. 덕분에 걸프 만 아랍 국가로부터 경제투자도 늘어 경제상황도 상승 무드다. 관광이 국가 주요 사업인 만큼 관광 인프라는 선진국 수준이다.



요르단 구약 기행

한 공간에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한다. 신화와 역사의 시간이다. 간혹 신화의 시간이 역사의 시간을 압도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은 몽환적이다. 해서 자꾸만 아랍 커피를 마셨다. 에스프레소만큼이나 독한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조금은 깨어나곤 했다.

중동땅 요르단 암만 공항에 내려 사막대로에 오르는 순간부터 시간의 공존은 확연했다. 먼 지평선은 모랫바람으로 흐릿했고 가까운 마을은 버려진 것처럼 황량했다. 유난히 추운 겨울, 유목민족 베두인이 머무는 마을이라 했다. 그 마을들의 풍경은 비슷하다. 기약 없는 미래를 향한 철골구조물이 1층 너머 수직으로 뻗었고, 본래 하얗던 벽은 모래먼지에 누렇게 물들었다.

간혹 땅에 솟은 나무는 바람에 밀려 한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찬란한 연두색 대신 먼지를 뒤집어썼다. 가이드 칼리드(Khalid)가 말했다. "요르단은 물이 부족하다. 홀로 크는 나무는 없다. 모두 사람이 가꾼다."

그 황량한 공간에 신화의 시간이 중첩된다. 구약성서의 시간이다. 기원전 13세기(추정) 유대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향했다.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 38년간 광야에서 헤맨 곳이 바로 요르단이다. 그가 지팡이로 때려 물을 솟게 한 바위도, 숨을 거둔 느보산도, 그의 형 아론의 무덤도 모두 여기 있다. 그 흔적을 따르는 길은 아카바에서 시작된다.

출애굽한 200만명의 이스라엘 민족이 헤맨 광야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모세는 40년의 여정 끝에 가나안 땅을 목전에 뒀으나 결국 그 앞에서 숨을 거둬야 했다.

◆38년 고난의 시작, 아카바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국경을 맞댄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경계선 따라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곳이 세 군데다. 요르단 남쪽 도시 아카바는 그 중 하나이자 요르단 유일의 항구다. 대부분의 수출품과 수입품이 아카바를 통해 들어오고 나간다.

유일한 항구 도시, 아카바는 휴양지다. 밤에 더욱 빛난다. 시장을 품은 거리는 호객꾼으로 시끄럽고 카페는 물담배와 커피를 즐기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도 해변은 빼곡하다. 만(灣) 너머 땅은 불빛으로 넓게 반짝인다. 이스라엘 에일랏이다.

아침 햇빛에 불려오는 에일랏은 훨씬 가깝다. 그 사이, 좁은 만이 홍해다. 애굽 군사에 쫓기던 모세 일행이 물을 가르는 기적으로 탈출한 바다다.

홍해로 땅끝을 마감하는 요르단에서, 아카바는 모든 길의 시작점이다. 여기서 왕의 대로와 사막대로가 시작해 요르단을 종단한 뒤 암만에서 다시 만난다. 오른쪽으로 넓게 도는 사막대로는 아라바 광야를 가로지른다. 모세가 유대 민족을 이끌고 38년간 헤맨 광야다. 40년에 이르는 방랑 끝에 200만명이 넘던 출애굽 유대민족 중 오직 2명만 남고,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 200만명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닿았다.

그 광야는 높다. 사막대로는 해발 0m에서 700~800m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고도를 높인다. 귀는 순식간에 먹먹해진다. 이스라엘 민족은 조금씩 힘겹게 오르며 고도차에 적응했을 것이다. 그리고 와디럼을 만났을 것이다.

◆풍요 대신 신성을 품은 와디럼

사막이나 광야라 해서 끝 모를 지평선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광야의 한복판, 와디럼에선 불끈불끈 솟은 사암 산맥이 지평선을 가린다. 그 풍경은 위압적이다. 대체로 돌산은 유려한 곡선으로 이어지나 어떤 돌산은 불현듯 솟아올라 길을 막는다. 가까운 산은 황토색이 뚜렷하되, 멀수록 자욱한 모래먼지에 색을 잃어 원근감이 과장된다.

와디럼에서 성서의 시간은 모호하다. 다만 왕의 대로를 걷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이 이 근방을 헤맸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대신 또렷한 건 로렌스의 시간이다. 그는 사막에 매혹된 영국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에 맞서 아랍 독립 전쟁에 참여했다. 영국의 국익을 위해 그리했다는 말도 있다. 그의 삶을 다룬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찍은 곳이 와디럼이다. 영화에서 한 영국인 장교가 말했다. "신과 베두인 족만이 사막에 흥미를 느낀다. 보통 사람에겐 불타는 용광로일 뿐이지."

불타는 용광로의 풍경은 해와 모래먼지, 그리고 메마른 관목이 완성한다. 베두인 족이 모는 트럭을 타고 와디럼 한복판에 들어서면 안다.

황토색 사암은 해의 방향 따라 빛을 얻거나 드러내면서 때로 붉고, 때로 하얗다. 모래먼지는 회색으로 먼 풍경을 거두고, 키 낮은 관목은 녹색으로 땅을 점점이 수놓는다. 문득 사람 키를 넘어서는 나무를 마주칠 때면 모든 이방인은 탄성을 내뱉는다. 그만큼 이 풍경은 풍요가 허락되지 않는 땅의 풍경이다. 사람의 정주(定住)를 거부하는 땅이다.

구약은 모세와 아론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불평을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수기 20장 4절)

이스라엘 민족이 '악한 곳'이라 말할 때, 그 악은 척박한 생존조건에서 온다. 대신 그곳에선 신의 목소리가 울린다. 풍요 대신 신성(神聖)을 품어 로렌스를 비롯, 수많은 몽상가를 매혹한다. 와디럼은 그 악한 곳을 닮았다.

◆모세의 샘이 있는 페트라

페트라는 와디럼에서 멀지 않다. 이쯤에서 왕의 대로로 길을 바꿔 탄다. 왕의 대로는 고대 무역로다. 이집트에서 시작해 아카바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페트라와 마다바, 암만 등을 거쳐 요르단을 종단하고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닿는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걸으려 했던 길도 바로 왕의 대로였다. 그들은 이 길을 통해 가나안 땅에 가려 했으나 의도를 의심한 에돔 왕이 이를 거부해 광야로 내몰렸다.

마땅히, 페트라는 언제까지나 고대 아랍 민족 나바테안의 도시로 남을 것이다. 다만 페트라는 몇몇 지명으로 성서의 시간도 기록한다. 먼저 페트라를 지나는 계곡 이름은 와디 무사(Wadi Musa), '모세의 계곡'이다. 그 계곡 끝엔 아인 무사(Ain Musa), '모세의 샘'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갈증을 호소할 때 모세가 바위를 쳐 물을 솟게 한 곳이라 전한다. 지금도 그 샘은 마르지 않는다. 하나 바위를 지팡이로 내려치며 신의 영광 대신 스스로의 능력을 과시한 탓에 이 유대민족 영웅의 운명은 크게 엇나간다.

페트라의 나바테안 유적지에서도 성서의 시간은 하얀 점으로 또렷하다. 페트라에서 고개를 들면, 호르 산 정상에 아론의 무덤이 홀로 빛난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다.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대제사장 아론은 여기서 숨을 거뒀다. 구약 민수기는 이렇게 기록했다.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 '므리바 물'이 바로 지금 페트라에 있는 아인 무사 샘물이다.

지금은 호르 산을 오를 수 없다. 관광객이 오를 수 없는 호르 산에서 아론의 무덤은 홀로 광야 너머 가나안 땅을 바라본다. 그 땅은 아론이 영원히 닿지 못할 땅이다. 영원히 닿지 못할 땅을 아론의 무덤은 영원히 조망한다. 멀리 하얗게 빛나는 아론의 무덤을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아련하다.

1 마다바 성 조지 교회. 2 예루살렘 및 인근을 묘사한 제일 오래된 지도, 마다바 모자이크 지도. 성 조지 교회 내에 있다. 3 지금도 마르지 않는 페트라 '모세의 샘'.
◆모세가 숨을 거둔 느보 산

사막에선 땅의 진화가 종점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사막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인다. 사막의 사계절은 풍광의 변화 없이 비슷하다. 늘 불어오고 불어가는 바람만이 침식을 재촉하나, 풍화는 아주 더뎌 변화를 가늠하는 일이 쉽지 않다. 수천 년 전과 지금 모습이 별로 다르지 않으리란 짐작은 여기서 기인한다.

모세가 숨을 거뒀다는 느보 산에 올랐다. 모세와 느보 산의 관계는 아론과 호르 산의 관계와 같다. 신의 뜻을 거역한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만 그에게 주어진 축복은 또렷한 전망이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남방과 종려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신명기 34장 중)

실제 그 전망은 모랫바람으로 늘 흐릿하다. 느보 산 정상에서 왼편으로 사해가 눕고 정면으론 이스라엘 여리고가 어렴풋하다. 여기서 여리고까지 27㎞, 예루살렘은 46㎞ 거리다. 40년간 모세가 헤맨 거리에 비하면 코앞이다. 모세는 80세의 '젊은'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길을 터주고 이 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며 죽었다.

성서의 시간은 여기서 역사로 진입한다. 느보 산에선 4세기에 건축한 교회와 수도원이 발굴됐고 9㎞ 떨어진 인근엔 예루살렘 및 인근을 묘사한 제일 오래된 지도가 있다. 바로 마다바 모자이크 지도다.

모자이크 지도는 마을 마다바의 성 조지 교회 바닥에 있다. 6세기쯤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도에서 예루살렘과 사해, 베들레헴 등이 뚜렷하다. 본래 가로 6m, 세로 16m 크기였을 것으로 짐작되나 지금은 약 3분의 1쯤만 남아 많은 지역이 사라지고 없다.

마다바를 마지막으로 신화의 흔적은 잦아든다. 다시, 신화와 역사의 시간이 만난다. 암만에서 그 몽환의 시간을 마감한다.

여·행·수·첩

◆환율: 1요르단 디나르(JOD)=약 1600원

◆항공: 에미리트항공이 요르단 수도 암만까지 두바이 경유편 운행. 매일 오후 11시 55분 인천 출발. 왕복 180만~190만원 선(유류할증료 및 세금 불포함). www.emirates.com/kr, (02)2022-8400

◆입국비자: 입국 시 암만공항에서 10JOD를 내면 바로 발권해준다. 유효기간 1개월.

◆여행 경로

①아카바에서 시작, 와디럼·페트라·느보산·마다바·암만 순으로 북진하는 편이 좋다. 암만에서 아카바까지는 육로로 4시간 소요. 각 구간 버스노선이 취약하므로 차를 빌리는 편이 낫다. jordan.rentalgroup.com 등 렌터카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암만공항에서 차를 빌릴 수 있다.

②아카바(Aqaba)와 페트라(Petra), 암만(Amman)에서 묵을 만하다. 아카바에선 시내에 있는 '캡틴 호텔'이 깨끗하다. 75JOD부터. www.captains-jo.com

트라에선 5성급 호텔 뫼벤픽리조트(www.movenpick-hotels.com)가, 암만에선 역시 5성급 호텔 홀리데이 인(www.holidayinn.com)이 편하다. 이외에도 www.tripadvisor.com, www.activehotel.com 등 호텔예약 사이트에서 각 지역명으로 검색, 예약하는 것도 방법.

◆각 지역 정보

와디럼: 입장료 2JOD. 방문자 센터에서 사륜차투어·낙타 사파리 등을 운영한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2시간짜리 사륜차 투어는 35JOD. www.wadirum.jo

페트라: 유적지 입장료 하루용 50JOD, 이틀용 55JOD. 페트라 관광사무소에 신청하면 영어해설사와 동행할 수 있다. 동행가이드 50JOD부터. +962-3-2156044

③느보산·마다바: 느보산은 마다바에서 서쪽으로 약 5㎞쯤 떨어져 있다. 마다바 성조지 교회 입장료 1JOD. +962-5-3240723 느보산 입장료 1JOD.

◆여행상품: 롯데관광에서 암만·페트라·와디럼 등 요르단을 비롯해 두바이·시리아·레바논을 함께 도는 상품을 운영 중이다. (02)2075-3006, www.lottetour.com


한 발 한 발.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와디(사막의 계곡)무사의 밤하늘에 걸린 반달에 총총히 빛나는 별들, 거기에 바닥의 촛불까지 더했건만. 이런 소심(小心)이 어둠 탓만은 아니다. ‘페트라’라는 가공할 인류유적 앞에서 갖는 경외감이 더 큰 이유다. 2800년 전. 여기 처음 당도한 나바테아인들도 그랬으리라. 도대체 폭이 3∼4m밖에 되지 않는 200m 높이의 좁은 바위 틈새는 얼마나 길지, 그걸 통과하면 과연 뭐가 나타날지. 두려움과 호기심이 그들 발걸음을 더디게 했을 터이니 오늘 밤 나의 이 더딘 걸음도 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바위 틈새로 들어서니 달빛 별빛은 언감생심이다. 오로지 의지하느니 2m 간격으로 놓아둔 바닥의 촛불뿐. 틈새 좁은 밤하늘로 별과 달이 신비롭다. 이렇게 걸은 게 1.2km. 갑자기 정면이 밝아온다. 협곡의 막장이자 페트라 고대도시의 초입인 ‘알카즈나’ 유적이다.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짧은 탄사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1800개의 촛불로 밝혀진 알카즈나의 장대하고 고아한 모습 때문이다. 붉은 사암의 장밋빛깔 절벽에 새겨진 조각건축은 촛불에 반사돼 더더욱 고혹적으로 다가왔다. ‘파라오의 보물’이란 뜻으로 ‘트레저리(Treasury)’라고 불리는 이 유적. 기원전후 1세기경 이집트나 그리스에서 초빙해온 조각가의 솜씨임에 틀림없다.

그 앞에 수백 명이 앉아 있었다. 어떤 소음도 없이 적막한 이 성스러운 공간에서 미동도 없이 앉은 이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 그 모습은 경건하기만 했다. 나바테아 사람들도 이랬을까. 그걸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전통악기 라바바(비올라와 바이올린의 원조로 추정되는 두 줄의 아랍 전통 현악기)연주가 시작됐다. 바위 협곡에 울려 퍼지던 그 신비로운 음색과 선율. 지금도 귀에 선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 거대한 절벽을 파내 바위 전체를 신전처럼 보이도록 만들겠다는 계획. 그걸 왕의 무덤으로 쓰겠다는 생각. 모두 나바테아인의 아이디어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기에 2000년도 전에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 이런 상상 초월의 건축에 도전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들을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당시 이곳은 세계 무역로의 중심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뉴욕쯤 될까. 당시 무역은 낙타에 물건을 실어 장거리를 이동하는 대상의 전유물. 아라비아와 지중해를 잇고 훗날에는 실크로드로 이어졌다. 그들이 바로 이 대상민족이었다.

유목민이었던 이들은 아라비아반도 남부에서 북쪽으로 이동 중 기원전 6세기에 이곳에 당도했다. 그리고 여기에 도시를 건설했다. 그 도시가 ‘페트라’고 최전성기인 기원후 1세기엔 인구 3만5000명 규모였다. 페트라는 대상 이동로였고 그들은 이 도시에서 대상들로부터 통행세(세금)를 거뒀으며 또 스스로 대상무역에 종사했다. 훌륭한 건축물은 훌륭한 건축주가 있어야 나온다. 금융업은 모든 고급 건축물의 건축주다. 그때도 같다. 페트라의 시크(Siq)라고 불리는 이 바위 틈새 협곡은 이 도시로 들어오는 요새형 통로다. 대상은 이 협곡 밖으로 우회했다.

내년은 이 페트라가 한 스위스인에 의해 서방에 알려진 지 꼭 200년 되는 해. 이 기념비적인 해에 페트라 방문은 더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페트라 바이 나이트(Petra by Night)’에 참가한 뒤 이튿날 아침 되찾기를 권한다. 감동이 훨씬 진하다.


'비밀의 성전' 요르단 페트라
기원전 2세기 번영의 땅… '인디아나 존스'도 밟았다

인간이 꿈을 꾼다. 꿈속에서 구상(具象)은 논리를 잃는다. 논리를 잃은 구상은 추상이나 상상으로 도약한다.

신이 꿈을 꾼다. 그 꿈은 반대로 도약한다. 신은 추상을 구상화한다. 질료는 흙과 물, 불과 바람, 그리고 시간이다.

중동국가 요르단의 남쪽 고도(古都) 페트라(Petra)에서, 신과 인간의 꿈은 뒤섞인다. 고대 아랍인 나바테안(Nabataean)족은 신의 형상을 원과 네모로 추상화했고 그들의 신 두샤라는 천혜의 지형을 선사했다. 뒤섞인 꿈은 지금도 남아 나바테안족의 후예, 베두인족의 거처로 현존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도, 빛과 어둠의 경계도 모호한 페트라를 찾았다. 며칠 동안 자꾸만 눈을 비볐다. 발 딛고 선 공간이 눈앞에서도 믿기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공터에 건물을 쌓을 때, 나바테안은 사암을 조각해내는 방식으로 제 도시를 가꿔냈다.
신의 꿈

먼저 페트라에서 신이 꾼 꿈. 페트라 들어서는 길은 협곡이다. 이 협곡은 좁고 깊다. 기껏해야 협곡의 폭은 3~10m인데 그 높이는 때로 100m를 넘어선다. 터무니없는 비례의 협곡은 바싹 길을 압박하며 소리를 가둔다. 베두인 젊은이가 말을 몰고 지날 때마다 말발굽 소리는 절벽과 절벽 사이에서 파동쳤다.

협곡은 그 소리의 파동을 닮았다. 협곡의 질료, 사암은 바람의 출렁이는 물결 모양으로 1.3㎞쯤 이어진다. 수평의 파도는 때로 용암이 흐른 자국 같은 수직의 무늬를 만난다.

소리와 물질이 서로 닮아 앞으로 나아가는 길의 풍경은 태양 각도를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가까운 협곡은 늘 어둑하나 먼 데서 굽이치는 협곡 정상은 빛을 받아낸다. 그 빛으로 먼데 절벽이 외려 가깝다. 페트라의 해는 원근감을 교란한다. 이 같은 길은 전례 없다. 해서 현실을 딛는 발걸음이 자꾸만 멈칫한다.

사방을 바위산이 감싼 천혜의 요새, 페트라.
◆인간의 꿈

협곡의 끝에 2000년 전 나바테안족이 그린 꿈이 있다. 신과 인간의 꿈이 서로 만나는 순간은 극적이다. 굽이치는 협곡의 끝에서 불현듯 매끈한 질감의 사암이 반짝인다. 이 질감은 인간의 흔적이다. 흔적은 처음엔 아슬하게 일부만 모습을 드러내다 온전히 협곡을 빠져나올 때에야 전체를 보여준다. 그때,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나지막이 탄성을 쏟아낸다.

비로소 시작되는 유적의 서곡, 알 카즈나(Al Khazna·보물창고). 신전이나 왕릉으로 추정되는 나바테안족의 건축물이다. 그들의 건축은 협곡과 완벽하게 조화한다. 다른 민족이 공터에 건물을 쌓아갈 때 나바테안족은 기존의 사암을 조각해내는 방식으로 건축의 뜻을 전복했다. 거대한 암벽을 깎아 기둥을 세웠고, 그 안을 파 공간을 만들었다.

나바테안족은 다른 민족의 꿈과 문화를 제 것으로 받아들였다. 기둥은 로마의 코린트 양식이되, 기둥이 떠받친 형상은 이집트 이시스 여신과 스핑크스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양식, 그리스·로마식 건축이 모두 페트라에 있다. 그 도시를 나바테안은 렉무(Rek Mu)라 불렀다. 그들이 역사에서 사라진 뒤 그리스인들은 페트라(Petra)라 불렀다. '바위'라는 뜻이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의 어원이 바로 페트라다.

꿈의 흔적을 남긴 나바테안족의 기원은 모호하다. 중동 사막지대 유목민이라 추정할 뿐이다. 페트라는 당시 주요 동서 무역로 중 하나였던 '왕의 대로' 길목에 자리했고, 나바테안족은 이를 장악해 기원전 2세기부터 200년간 전성기를 누렸다. 무역로가 향후 북쪽 다마스커스로 옮겨가며 페트라는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1000년 가까이 지난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버크하르트에게 발견되며 서방세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숱한 이를 매혹했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3'와 '트랜스포머2'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굽이치는 협곡의 끝에서 불현듯 반짝이는 알 카즈나. 그 앞에 선 모든 이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나지막이 탄성을 쏟아냈다.

뒤섞인 꿈

나바테안족의 도시 설계는 색다르다. 알 카즈나를 필두로 드넓은 분지 지형에 닿기까지, 도시를 감싼 절벽은 사암을 파낸 무덤으로 빼곡하다. 그 안쪽으로 시장터와 교회, 원형극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공영역이 있다. 죽은 이가 산 자를 감싸는 형식이다. 이를 관통하는 길은 서쪽, 앗데이르(Ad-Dayr·수도원)에서 마감한다.

알 카즈나를 닮은 거대유적 수도원은 높다. 가파른 벼랑길을 40분 이상 올라야 마주칠 수 있는 그곳에선 경계 밖으로 아라바 광야가 내려다보인다. 오르는 길에 드문드문 선 이정표는 이렇게 기록했다. "세상의 끝을 바라보는 전망대."

동쪽 협곡에서 서쪽 수도원에 이르는 길은 인간의 꿈이 쌓은 역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무덤은 나바테안족의 것이요, 원형극장은 로마 시대의 흔적, 극장 맞은편 교회는 비잔틴 형식이다. 이 풍경은 어렴풋하다. 신의 꿈이 인간이 쌓은 꿈의 흔적을 깎아낸 탓이다. 1000년 넘게 지속한 풍화와 간헐적인 지진은 인간의 흔적을 끊임없이 지워냈다. 교회는 터만 남았고 무덤에 새겨졌을 정교한 문양은 지워지고 없다.

신의 꿈이 인간의 꿈을 지워낼 때, 신화의 시간은 종말을 맞는다. 그러나 페트라에서 그 시간은 지금도 여전하다. 유적 사이사이를 말과 낙타로 누비는 민족, 양떼 몰며 뜻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는 민족, 정주 대신 이주를 고집하는 민족, 베두인족이 페트라의 풍경을 지키고 있어서다. 

◆여행수첩

환율: 1요르단 디나르(JOD)=약 1600원

가는 길
① 항공편: 에미레이트항공이 요르단 수도 암만까지 두바이 경유편 운행. 매일 오후 11시 55분 인천 출발. 왕복 180만~190만원 선(유류할증료 및 세금 불포함). 10만원 추가 시 두바이에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다. www.emirates.com/kr, (02)2022-8400 ② 암만~페트라: 육로로 3시간 소요. 암만 공항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암만 시내에 있는 압달리(Abdali) 버스 정류장으로 간 뒤 'JETT'라는 국영 관광버스를 탄다. 매일 오전 6시 30분 출발. 페트라에서는 오후 5시 출발. 편도 8JOD. www.jett.com.jo ③ 길이 쉬워 차를 빌리는 것도 방법. jordan.rentalgroup.com 등 렌터카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암만공항에서 차를 빌릴 수 있다. 공항에서 나와 '아카바(Aqaba)' 방향으로 사막대로를 타고 가다 '페트라(Petra)' 이정표가 보이면 그 방향을 따른다.

입국비자: 입국 시 암만공항에서 10JOD를 내면 바로 발권해준다. 유효기간 1개월.

페트라 정보

① 페트라 입장료: 10월까지 하루용 33JD, 이틀용 38JOD. 11월부터 각각 50JOD, 55JOD로 오른다. 제대로 둘러보려면 최소 이틀 이상은 머물러야 한다. 페트라 관광사무소에 신청하면 영어해설사와 동행할 수 있다. 동행가이드 50JOD부터. +962-3-2156044 ② 묵을 곳: 5성급 호텔 뫼벤픽리조트가 페트라 유적지와 가깝다. www.movenpick-hotels.com 유적지에서 15분쯤 걸으면 페트라 시내다. 여기에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20JOD부터. www.tripadvisor.comwww.activehotels.com 등 호텔예약 사이트에서 '페트라(Petra)'로 검색, 예약하는 것도 방법. 여행사에서 '만실(滿室)'이라는 호텔도 인터넷을 통하면 방이 많다.

여행 상품: 롯데관광에서 페트라를 비롯해 두바이·시리아·레바논을 함께 도는 상품을 운영 중이다. (02)2075-3006, www.lottetour.com

주요 연락처: 요르단 관광청 www.mota.gov.jo +962-6-4603360, 요르단 명예영사관 (02)3701-8474


국토의 80%가 사막으로 이뤄져 있는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
너무나 뜨겁기 때문에 그 속에 감춰진 오아시스는 더욱 시원할 수밖에 없다.
사막 곳곳에 감춰진 숨은 비경을 찾아 떠나는 요르단 탐험.

2003년부터 네 번 여행한 요르단은 나에게 있어 숨은 보석 같은 나라다. 누군가 ‘요르단의 무엇이 가장 좋냐?’ 라는 질문에 ‘열사의 땅이라 좋다’라고 대답한다. 전 국토의 80%가 사막인 뜨거운 나라,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할 것 같은 황량한 사막 곳곳에 숨어있는 보석 같은 장소를 발굴하는 기분은 어떤 나라를 여행한다고 해도 절대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다.

고대 로마부터 그리스도교 그리고 아랍의 역사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를 거쳐 수많은 얼굴과 목소리를 간직한 나라, 요르단. 더불어 신이 조각하고 빚어놓은 것 같은 천혜의 장엄한 자연경관은 모험심 강한 여행자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붉은 사막의 나라 요르단은 때로는 고고학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막의 유목민이 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매력 속에 빠져들기까진 인내가 필요하다. 요르단이라는 나라는 직접적인 거리는 가까울지 몰라도 막상 오고 가는 일은 멀고 먼 나라이기 때문이다. 직항기가 없어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로 가서 한번 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게다가 촬영 당시 故 김선일 살해사건과 관련된 알카에다 사촌이 요르단에 산다는 이유로 우리 촬영팀 몸값이 한 사람당 25만 달러라는 말을 해서 조금은 겁에 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들은 도착 첫날부터 잊어버렸다. 요르단 사람들은 다른 아랍국들에 비해 유난히 개방적이고 정겹고 유쾌했다.


사막 속의 뜨거운 오아시스

2000년 전 왕의 대로를 따라간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은 전국토의 80%가 누런 사막과 석회암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방으로 가다보면 누런 산밖에 없다. 어디를 가든 사방천지 바위와 흙투성이 사막길이 반복되어 혹시 내가 같은 장소를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착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꽃나무들이 화사한 별천지의 세상으로 들어서는데 바로 ‘마인(Ma'in)’이다.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이 사막 고원(East Bank Plateu)에 꽃나무가 피어있는 것도 신기한데 고원의 한가운데 50m가 넘는 폭포가 떨어지는 곳이 있다. 더구나 이 폭포에서는 불처럼 뜨거운 물이 떨어진다. 함마마트 마인 (Hamma Ma'in)이다. 온통 누런 사막 속에 있다가 이 폭포를 보게 된 순간은 정말 충격이였다. 이곳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헤롯왕 시절부터 비밀온천으로 사용되던 곳인데, 지금은 부유층 요르단인들이 이용하는 숨은 리조트가 되었다. 일명 불폭포라 불리는 제 1폭포는 50m 아래에 천연온천을 만들고 다시 그 밑으로 뜨거운 물이 흐르는 오아시스를 만들어낸다. 사막에 흐르는 뜨거운 오아시스라…. 카메라에 김이 서리는 것을 보니 뜨겁긴 한 것 같은데 얼마나 뜨거울지 호기심이 또 발동한다. 살짝 손을 넣어보려고 하자 안내를 하던 온천 매니저가 나를 만류한다.

“80℃요?”

“네, 그 이상이에요.”

그래도 믿지 못한 나는 살짝 손가락만 물에 넣었다. 그리고 그 즉시 너무 놀라 바로 뺏다. 

“앗, 뜨거. 진짜 뜨겁다.”

“마치 뱀이 무는 것 같죠? 내가 뜨겁다고 했잖아요. 달걀을 삶을 수도 있고 양고기도 삶을 수 있어요.”

“물의 온도는 80℃가 넘어요.”

나의 이런 행동에 매니저는 정말 즐거워했다. 이곳은 당장 고기를 삶을 수 있을 정도로 팔팔 끓는 유황온천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풍부한 수량의 물은 사막 어디에서 온 것일까? 건너편 산에 올라가서 보니 희미하게 물 솟는 것이 보인다. 사막고원의 작은 구덩이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폭포와 맞닿는 바위들은 온통 초록색으로 변해 있다. 이 물이 화산작용의 결과이며 미네랄을 품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화산활동의 결과로 생겼고, 3000년 이상 존재해온 곳이라고 한다.

여전히 감탄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수건 하나씩 두른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그 뜨거운 곳으로 온천을 하러 가는 것이란다. 80℃가 넘는 온천물이 폭포로 흘러내리는 곳에 면벽수도하듯 모두 불폭포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마치 무슨 종교의식을 보는 것 같다. 

내가 손을 델 뻔한 80℃가 넘는 온도는 물은 아래로 떨어지는 동안 사람이 맞아도 될 만큼의 온도로 내려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도 뜨거운 사막에서 즐기는 온천 폭포라니…. 이것이 진정 이열치열인가 싶다.

문화가 다르다 보니 재미있는 풍경도 눈에 띄는데 이슬람 사회라서 그런가 여성들은 옷을 입고 히잡을 쓴 채 온천을 즐기고 있다. 또 아이를 제외한 성인 남자는 여자랑 같이 폭포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여자들이 물을 다 맞고 나면 그 다음 남자들이 들어간다.

또한 이곳에 오는 요르단 사람들은 휴식과 함께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폭포가 뼈에 관련된 질병에 좋은 각종 미네랄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 자체의 성분도 성분이지만 30m가 넘는 폭포에서(제2폭포: 뜨거운 물과 찬물이 섞여서 떨어지는 곳. 제1폭포보다는 낮음) 떨어지는 뜨거운 물을 그대로 맞으면 그 자체가 천연 열 마사지가 된다고 한다. 

“뜨거운 폭포에 맞으면 몸이 이완되서 너무 행복해요.”

“모든 요르단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장소죠. 천연 마사지이기 때문에 사람한테 마사지 받는 것에 비해 굉장히 쌉니다.”

나도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데 앞서 들어간 남자들이 나올 생각을 안한다. 멀뚱멀뚱 한 사람만 계속 노려보고 있으니 일행이 있었는지 우르르 몰려나온다. 이젠 내가 들어갈 차례. 하지만 옷을 벗을 수는 없고 나도 이슬람여자들처럼 옷을 입고 들어갔다. 머리엔 흰수건을 두른채. ‘으악!’ 뜨거운 소나기를 맞는 것 같다. 사우나에서 맞는 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폭포의 뒤에는 더욱 놀라운 시설이 있다. 사람들이 손짓을 해 따라 가보니 천연동굴에서는 폭포보다 훨씬 뜨거운 물이 떨어지고 있다. 다들 뜨거워 발을 돌 위에 얹고 앉아있다. 바닥에 흐르는 뜨거운 물 때문에 뜨거운 김이 동굴안에 가득하다. 그야말로 천연 사우나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우리나라처럼 때를 밀어주는 목욕관리사가 보였다. 때미는 솜씨도 프로급에 때수건도 따로 준비해 온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시리아에서 온 여행자로 친구들을 밀어주고 있는 거란다. 때수건도 시리아에서 가져왔단다. 대단한 준비성이다

그 한켠에는 열심히 마사지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마사지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아버지가 당뇨가 있으셔서 다리 마사지를 해드리고 있는 거예요.”

한때 헤롯왕도 피부병 치료차 들렀다는 이 곳,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행운은 길 위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 아닐까? 하늘의 뜨거운 선물 마인온천은 갈증을 식혀주는 뜨거운 오아시스였다.

온천을 하고 벌건 얼굴로 나오니 왠지 낯이 익은 청년이 웃으며 손짓을 한다. 아까 온천에서 나오라고 노려보았던 사람이다. 자신들이 커피를 준비했으니 한잔하고 가라는 것이다. 요르단 남자들은 처음 요르단에 오는 여자 여행객들이 착각 할 정도로 너무 친절하게 대해준다. 뭐 실제로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실 호기심이 더 강하다. 나도 처음엔 ‘여기 사람들 너무 눈이 높은거 같아’ 하며 좋아했었다. 하지만 역시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진한 아랍 커피 한잔을 하며 마인 온천에서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한다. 그들의 친절이 어떤 이유였던가를 떠나 요르단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는 얼굴에 먼저 인사를 해온다. 누구나 환대하고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래서 난 요르단을 더 기억에 남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자연

마인을 지나 사막 계곡, 와디 무지브로 향한다. 요르단 국왕도 칭송했다는 최고의 자연이라 평하기에 더욱 기대가 크다. 와디 무지브로 향하는 길에는 곳곳에서 양을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 대다수가 목축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양들도 사람들을 닮는지 카메라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미는 모습이 요르단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와디 무지브로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조금씩 드러나는 계곡의 모습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와우, 정말 크다.”

요르단의 그랜드캐년이라는 와디 무지브를 보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와디(wadi)는 보통 계곡이나 사막의 마른 골짜기를 일컫는 말인데, 골짜기라 부르기엔 너무나 거대한 규모에 먼저 압도된다. 성서시대에는 고대 모압과 아모리왕국의 경계선이 되었던 아르논 계곡으로 불렸던 곳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 생활을 하며 경유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곳에 서보니 왜 두 왕국의 경계선이었는지 실감이 난다. 정말 큰 협곡, 신이 만들어 준 국경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와디 무지브를 신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구불구불한 협곡의 도로를 따라 계곡 아래로 향한다. 그곳에서 와디 무지브의 숨은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지브 자연 보호 구역(Mujib Nature Reserve)에 들어서자 가이드가 반갑게 맞아준다. 


“요르단에는 여섯 개의 자연보호 지역이 있습니다. 무지브 자연보호 구역은 요르단에서 자연 환경이 가장 잘 보존된 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출발하면 왕복 5시간 정도 걸릴 것입니다.”

무지브 계곡 아래로 난 물길을 따라 5시간 탐험을 시작한다. 입구에서 이제 막 탐험을 끝내고 나온 여행자를 만났다. 젊은 어머니와 아들인데 이스라엘에서 왔다고 한다. 

“일단 아름다워요. 매순간 즐거워요.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계곡이잖아요.”

그들은 무지브 계곡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한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계곡. 그것만으로도 기대와 환상을 품기에 충분하다는 말일 터. 이 속에 어떤 장관이 숨어 있을지 아직 맛보지 못했어도 시작부터 펼쳐지는 장엄한 바위숲만으로도 이미 마음을 빼앗겼다.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장관에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예상을 못하고 있다.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첫 번째 난관이다. 우리의 가이드 하미스가 빠른 물살이 치고 있는 바위위로 올라선다. 와디 무지브의 첫 번째 통과의례니 당연히 가야되겠지만 왜 이리 어려운 곳만 골라서 가는 느낌이 드는지… 다리 짧은 나에게는 유난히 힘이 드는 코스다. 좀전에 만난 여행자들에 왜그리 힘들어보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위험하지도 무섭지도 않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던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눈앞에 펼쳐진 거센 물살의 중심. 수직 절벽에는 사망 사고가 있었다는 경고까지 붙어있다. 아무리 베테랑 가이드가 있다지만 이 거센 물길을 거슬러 가야 한다니 말문이 막힌다. 카메라감독은 카메라를 수중 장비로 뒤집어씌우고 모든 물에 젖는 장비들은 가이드가 들고 있는 수중 팩에 집어넣고 다들 합심해서 바위위에 올라선다. 긴바지를 입은 것을 후회하는 순간 남들은 다 허벅지인데 나는 가슴팍까지 홀딱 젖었다. 신의 뜻대로, 신의 가호로 무사히 건너는데 성공! 항상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고 불행이 있으면 행복이 있다. 

힘들게 어려운 곳을 지나자 신천지로 들어선다. 하늘에서 떡하니 돌이 떨어졌는데 신기하게도 절벽과 절벽사이에 껴 있다. 

“저 돌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떡하지?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거야?”

인간이 연출하지 못하는 자연의 모습에 놀라움과 신기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카메라로 담지 못하는 순간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와, 우와’ 감탄사는 계속 이어진다. 
사막 한가운데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쏟아지는 무차별 물폭탄 폭포, 요르단 국왕이 경호대를 이끌고 뛰어 내렸다는 폭포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온몸으로 폭포를 맞이한다. 폭포 안으로 들어가니 놀랍게도 닥터 피쉬도 있고 가재도 있고 신기하다. 자연이 주는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참을 감상하고 있는 폭포위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밧줄에 몸을 의지한 채 폭포를 맞으며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폭포를 내려오는 도전을 하는 것이다. 

“물이 얼굴로 떨어지는데 놀라워요. 무섭지 않았어요?”

“무서웠어요. 위에서는 자신 있었거든요. 근데 물이 얼굴로 쏟아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세상엔 용감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계곡 탐사의 교차점이다 보니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 중 민망한 수영복 차림으로 바위를 기어오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런 차림으로 험난한 계곡 탐사를 하고 있다니 다치지 말아야 할텐데…’ 걱정이 됐지만,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점점 강해지는 물살에 깊이도 더 깊어졌다. 그 와중에 가이드는 뭔가를 꾸미고 있는 중이다.

밧줄을 타고 온 사람들과 나와 카메라 감독까지 바위에 올라오게 하더니 냅다 한사람씩 거친 물살로 던져 버린다. 말이 슬라이딩이지 그대로 물에 처박혀 물을 한바가지나 먹었다. 옷이 물에 젖어 무거워지고 다리는 풀려 천근만근이지만, 돌아나오는 길이 아쉬워 자꾸 와디 무지브의 계곡을 돌아보게 된다. 언제 다시 이 자연에 올수 있을까? 내가 만난 사막의 오아시스는 요르단 촬영의 잊지 못할 즐거움이었다.
  1.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2.01.07 11:06 신고

    요르단에 가봤죠 정말 좋죠

  2.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2.01.07 11:06 신고

    다들가보셨죠?

  3. Favicon of https://travelbible.tistory.com 오리궁둥이 2012.01.07 11:06 신고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자연을 감상할수 있는 요르단

요르단 와디 럼

요르단 남부 사막지대 ‘와디 럼(Wadi Rum)’의 모습. 화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션’은 사실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요르단 남부 사막지대 ‘와디 럼(Wadi Rum)’의 모습. 화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션’은 사실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 케이채 제공

누구나 한번 우주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을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구를 떠나 모든 것이 전혀 다른 미지의 행성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두렵지만, 상상만으로도 무척 흥분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우리의 꿈을 대리만족시켜 주기 위해 과거로부터 참 많은 영화들이 우주 여행을 주제로 만들어졌다. 최근 큰 히트를 기록한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마션(The Martian) 또한 그중 하나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의 생존기를 그리고 있다.그런데 이런 우주 행성을 다룬 영화들을 보다 보면 의문이 든다.

대체 어디서 촬영한 것일까. 확실한 것은, 달이나 화성 등 우주의 어딘가에 위치한 행성의 모습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실제 그 행성에서 촬영된 영화는 아직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지구스럽지 않은 행성의 모습들 대부분이 바로 지구에서 찾을 수 있는 풍경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마션에 등장한 화성의 모습은 어디에서 촬영된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화성이라고 확신하게 만들었던 그 거친 풍경의 주인공은 바로 요르단(Jordan)에 있었다. 요르단의 남쪽에 위치한 사막지대, 와디 럼(Wadi Rum)이 그 주인공이다.

와디 럼은 남쪽의 가장 큰 도시인 아카바(Aqaba)의 동쪽에 위치한 사막지대로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삶을 영위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바위에 새겨진 다양한 벽화들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장소가 서양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인 고고학자이자 군인이었던 로런스(T E Lawrence) 때문이다.

1917년에 벌어졌던 아랍 반란 시절 이 지역을 여러 번 방문한 그의 활약상이 신문과 훗날 자서전을 통해 세계에 전파되었다.현재까지도 이 지대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전통 부족인 잘라비아 베두인(Zalabia Bedouin) 사람들로, 이들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와디 럼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데 일조했다. 그들의 노력으로 와디 럼은 현재 세계적인 친환경 관광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이들이 와디 럼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만들어낸 가장 인기 있는 관광 상품은 암벽등반과 트레킹이지만, 사륜구동 차를 타고 즐기는 사막 사파리나 낙타를 타고 즐기는 낙타 사파리 등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와디 럼에 온다면 적어도 하룻밤 이상은 꼭 캠핑을 하는 것이 좋다. 베두인 사람들의 천막에서 잠을 잘 수 있을 뿐 아니라, 늦은 밤 와디 럼의 한복판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이 어디 우주 행성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에 젖게 하기 때문이다.

모래사막뿐 아니라 이곳저곳 울퉁불퉁하게 하늘 위로 솟아 있는 바위산들의 모습. 고요함보다 더 고요한 그 적막함은, 마치 이 세상에 오직 나 혼자만 남겨져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하늘 위로 보이는 별들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와디 럼의 다른 이름이 달의 계곡(The Valley Of The Moon)인 이유를 그곳에서의 밤에서 찾을 수 있다.

와디 럼의 모습을 보고 우주의 모습을 느낀 것은 비단 나 혼자가 아니었으리라. 최근 야후 무비와 가진 인터뷰에서 배우 맷 데이먼은 와디 럼이 그가 본 가장 대단하고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이며, 지구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풍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뿐이랴. 마션뿐 아니라 여러 영화가 이미 화성이나 외계 행성의 모습을 위해 이곳을 촬영지로 활용했으니, 2000년작 레드 플래닛(Red Planet)이나 2012년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가 그 좋은 예다.

물론 와디 럼의 실제 모습은 화성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마치 이 세상 풍경이 아닌 것 같은 그 우주적인 아름다움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와디 럼의 푹신한 모래 베개에 머리를 누일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화성으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멀고 돈도 꽤나 많이 들지만, 와디 럼으로 향하는 길은 그에 비하면 정말 가깝고 꽤나 저렴하니까 말이다.

와디럼

■ 여행정보

와디 럼으로 가는 길

한국에서 요르단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스탄불, 카타르, 두바이, 혹은 아부다비를 경유해서 수도인 암만(Amman)으로 갈 수 있다. 와디 럼으로 가는 버스는 없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남쪽 도시 아카바로 먼저 향해야 한다. 그곳에서 투어 등을 통해 와디 럼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암만에서 출발하는 대부분은 와디 럼에서 멀지 않은 페트라로 먼저 향한 뒤, 페트라에서 와디 럼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택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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