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을 가리키는 말이다. 누구나 가슴 속에 이루고 싶은 꿈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남들과는 조금 다른 버킷리스트를 가진 두 사람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 꿈에만 그리던 일을 실행으로 옮겼다. 상상만 하던 ‘산티아고 웨딩마치’를 올린 정현우(31), 이혜민(30) 부부. 그 길 위에서 그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순례길 초반 들르는 도시 팜플로나의 시청 광장에서 찍은 셀프웨딩사진. 덕분에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사진=정현우)
'결혼행진이요? 꽃길인 줄만 알았는데 고행길이더라고요.'

산티아고 웨딩마치를 끝내고 귀국한지 막 한 달이 지난 신혼부부 현우씨와 혜민씨를 만났다. 여행 후유증이 채 가시지도 않은 모습의 두 사람이지만 함께 했던 추억들로 여독을 풀어내고 있었다.

이들이 결혼식 대신 산티아고 순례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0년 여름, 디자인공모전 시상식 자리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렇게 만난지 4년째 되던 해, 자연스레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현직 디자이너와 기획자였던 두 사람은 남들 다하는 평범한 결혼식이 아닌 의미 있고 특별한 결혼을 꿈꾸게 되었다. 그 후로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결혼에 대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현우씨가 자신의 버킷리스트였던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이야기 했고, 혜민씨도 '결혼식 대신 그 길을 걸어보자'고 동의했다.

'보통 순례길은 인생의 큰 계기라든지 깨달음을 얻고 싶을 때 가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그 길을 함께 걷기로 했어요. 그래서 웨딩드레스 대신 면사포를, 턱시도 대신 나비넥타이를 챙겨갔죠.'

하지만 여행준비가 생각했던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가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그 뒤에는 회사에서 맡고 있던 프로젝트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이들의 여정은 2년 뒤, 두 사람 모두 회사에 사표를 낸 뒤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받은 스탬프와 조가비(왼쪽), 청첩장 대신 두 사람이 직접 만든 결혼소식지(오른쪽).
'저희의 총 여행일정은 올해 3월 14일부터 6월 9일까지였어요. 이 중 3월 17일부터 4월 27일까지 42일 동안 산티아고를 거쳐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피니스테레까지 약 900km의 순례길을 걸었고요. 마음 같아서는 1년 정도를 떠돌고 싶었지만, 가족들과의 상의 끝에 3개월간 떠나기로 했죠.'

산티아고로 떠나기 전, 예비 순례자가 된 두 사람은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를 하던 중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한다. 산행이나 트레킹 경험이 많지 않은 두 사람이 약 900km에 달하는 길을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루 20km 정도씩 걷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일정을 넉넉히 잡았다. 하지만 적게 걷는다고 쉬워지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욕과는 반대로 저희의 몸이 너무 준비가 안 됐던것 같아요. 지름길로 가겠다고 입산이 금지된 눈 쌓인 경사로를 오르다 동상에 걸릴 뻔한 적도 있었고, 식량을 준비 못 해 중간에 쓰러질 뻔한적도 있었으니까요.'

고통을 겪어보지 않고 진정한 순례자가 될 수 없는 법, 여전히 두 사람은 산티아고를 생각하면 끝없이 걸었던 일이 기억난다고, 하지만 결혼식 대신 걸었던 순례길은 축복받은 길이었다. 특히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이 그랬다. 부부가 만났던 모든 순례자들은 두 사람이 결혼식 대신에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하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고 축하해주었다.

'순례길에서 스님을 만나 함께 길을 걸으며 주례사와 같은 축복의 말씀을 듣기도 했고, 어떤 자연주의 음악가는 넓디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축가를 불러주기도 했어요. 걷는 내내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국적, 성별, 나이, 직업 따윈 상관없이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이 길이 가진 힘인것 같아요. 잠깐의 인연이었지만 만났던 사람들이 걷는 내내 생각나기도 했고 그리웠어요. 생각해보면 그 길을 걷는 자체가 축복이었죠.'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해 현우씨의 프러포즈를 도와준 순례자 친구들. 축가와 축하의 말을 선물 받고 답례로 목걸이와 그림을 주었다. (사진=정현우)
좋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추억도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지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말한다.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힘에 부치고 고통이 극에 달해질수록 서로의 존재가 힘이 되었죠. 내가 이렇게 힘들어도 먼저 가버리지 않고, 이 길이 끝날 때까지 내 옆에 있을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 안심되고 항상 고마웠어요.'

약 3달간의 여행과 결혼행진을 마친 후,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 예전처럼 세상의 기준에 맞춰 아등바등하지 않고 조금 어설프더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하며 함께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곧 새로운 도전을 할 계획이다. 둘이 함께했던 여정을 책으로 엮어보기로 한 것이다.

'출판 계획은 저희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작은 용기를 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나서요?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둘 해나가다 보면 다음 길이 저희 앞에 놓일 거예요. 그러면 다시 그 길을 함께 걸으면 되지 않을까요. 까미노를 걷던 날들처럼요.'

900km가 0km가 된 피니스테레.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그곳에 도착한 부부의 마지막 웨딩사진. (사진=정현우)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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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식 기자 / marchisiyun@emount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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